|
끝이 아니라고, 말해요... 사랑이 끝이라고 믿기보다는
|
|
크리스마스 전날 약혼녀가 있는 세중과 남자 친구가 있는 연희는 퇴근후,무조건 차에 올라 떠난다. 목적지 없이 떠난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강원도 산골 마을. 때마침 퍼붓던 폭설에 갇힌 그들은 외딴 집에서 두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시체중의 하나가 썼음직한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성인이지만 도시에서 생활하던 그들은 겁에 질리고 만다. 춥고 막막하고...외딴 산골에서 발이묶인 그들은 서로의 몸을 탐하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눈에 비친 동식물의 사랑행위는 모두 <짝짓기>로 표현 되는가 하는 생각에 여러번 웃음이 나왔다. 세중과 연희가 며칠을 갇혀서 지냈던 산골 외딴집. 그 근처에 사는 참나무, 박새, 등등 모두가 봄이면 종족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한다면서 묘사한 문장들이 꽤 많은 분량이었다. 그런데 그 표현들이 별로 유치하다거나 추접스런 느낌을 주지않는 것은 작가가 너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묘사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은 외딴 집 근처의 동물과 나무들 말고 사람의 경우 폭설로 외딴집에 며칠 발이 묶인 세중과 연희의 한쌍. 그리고 그들이 그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 집에 살면서 삼각관계에 있던 세남녀. 이렇게 다른' 두가지 사랑의 방식이다. 세중과 연희의 사랑이 순수하기만 한 건 아니다. 세중은 산골에서 내려온 후 연희와 연락을 끊고 유학길에 오른다. 연희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지만 가끔 세중을 그리워 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 대목에서 여자와 남자의 사랑의 방식의 차이를 잘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게 바로 작가의 내공으로 평가되는 것이겠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연희가 세중과 연락이 닿고 다시 그를 만나 *텔에 가는데, 꼭 그런 설정을 해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바로 구세대의 생각이란걸 잘 안다. 그리고 작가야 자기나름대로 남녀의 사랑에서 섹스를 제외 시킬순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에 읽은 책에서도 그랬다. ' 사랑이 없는 섹스는 있어도 섹스없는 사랑은 없다'고. 그런데 여태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라고 믿었던 사랑을 작가는 동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 이유인 '짝짓기" 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 이대목에서 웬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건 내가 감성이 풍부한 탓 일까. 아니면 아직도 로맨틱한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을만큼 순진해서 일까.
신체의 생리구조 부터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있다. 물론 본능도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이 삭막한 세상에서 여자들은 '사랑'의 위대함을 믿고 싶은 것일진대 작가는 제대로 일러준다 이렇게까지 친절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기쁨이나 슬픔, 분노나 절망같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언어는 순간의 상태를 지칭 한다는 것. 사랑의 언어 역시 그 말을 뱉는 순간에만 진실하다는 것 - 본문 p 42>
이 책은 김형경 작가의 소설로 예전에 출간 되었던 <성에>라는 제목의 소설을 이번에 다시 펴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김형경씨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다.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인데 어쩜 그리 몰입해서 읽을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 역시 탁월하였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소설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경험하고 싶어할 때가 많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내 사랑은 언제 가장 순수하였고 언제 가장 사랑에 몰입하였었나 생각해 보았다. 사랑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가을에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
|
며칠째, 가방 속에 들어앉아 어깨의 하중을 가중시키던 책이 드디어 책장에 꽂힐 시간이다. 마음 먹기만 하면, 한꺼번에 다 읽었다던 노 작가의 말이 그대로 실현될 뻔 했다. 게으름에게 탓한다.
거짓말이었다. 완벽하게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있게 꼬리 달았다. 분명 사라졌다'고 믿었는데. 이 책 이상하다. 죽은 줄 알았던 그 집에서 죽었다 결단코 말하던 그 사랑이 다시 되살아온 듯한 기분이다.
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내 이야기인 것만 같다. 완성할 수 없는 사랑을 혼자서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죽었다고 스스로에게도 떳떳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죽기 전 사랑에게 당신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날 남겨달라고 했다. 환상이 깨지기 시작할 무렵, 사랑을 죽였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노마드가 분명한 그래서 폐쇄적 사회인 북한에서 살 수 없었던 남자. '스위트 홈'을 꾸리겠다는 일념으로 산속으로 들어온 사내. 산신녀같은 여자. 여자를 보며 산, 지리를 떠올렸다. 모두 먹여살리고자 했던 산, 모두 품으마했던 산. 그 산에서 주억거리며 분노하는 자는 질투와 욕망에 몸부림치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가득한 인간이다.
참나무가 본 것, 박새가 본 것, 청설모가 본 것. 바람이 본 것. 그리고 원초적 사랑의 원형을 강렬히 경험한 세중과 연희. 역시 인간은 지독하게 오독할 뿐이다.
마치 머릿속을 훔친 듯, 사랑을 겪어 온 모든 사랑했던 자들이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동질함에 놀라울 뿐인 한 구절 보태며, 미친 이 소설의 작은 느낌은 마무리짓는다.
P237 "내 생각에 그 사람은 어떤 특정한 여성을 사랑했던 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사랑하거나, 사랑에 빠진 자신을 사랑하거나,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내면의 환상을 사랑했던 것 같아. 그의 사랑이 훼손되지 않은 채 이십 년 이상 유지됐던 것은 그 사랑이 환상과 이데아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야. 시간에 의해 침식되지 않고 공간에 의해 변형되지 않는 것은 환상이나 이미지밖에 없거든"
내 사랑의 완성이 가능하리라고 여겼던 데는 그 사랑이 환상과 이데아의 영역에 머물러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아직 죽지 못한 사랑, 이승에 여한이 남은 여귀가 내뿜은 입김같은 무진의 안개처럼. 무슨 미련이 남아 여태 죽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게냐? 내 사랑에게 묻는다.
*********이 책 우여곡절이 많았다, 문학나눔 이벤트에 당첨돼 받은 저자 사인본은 택배업체에서 분실했고 또 한 사람의 '을'일 뿐인 택배기사에게서 배상받아 직접 샀다. 리뷰 남겨달라는 말에 그냥 지나치지 못할 이상한 결백함 때문에 홈페이지에 리뷰썼다가 여기에다도 옮긴다. 미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시간 지나면 다 알게 될, 어차피 죽을 운명이겠지만 아직 죽지 못해서 이런 짓 또 한다. 문학책은 뒷장부터 보는데 해설없어서 놀랐다. 이렇게까지 내가 비평에 익숙해져 있는 줄 몰랐다. 나만의 오독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서 별하나 뺐다. |
|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죽었다. 무슨 내용일까? 사람의 마음을 .. 나의 마음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용케도 알고 가르쳐 주는 분..김형경님의 작품이라 궁금증이 일어났다. 이 분의 대부분의 책에서 나는 큰 감동을 얻었고. 심리학자도 아닌데 어찌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분이다. 이 책은 과거에 냈던 책을 다시 출판한 책이라 들었다.
책을 본 순간 부터...마음이 찡했다. 추운날씨에 창에 설핏 얼어있는 얼음...그 모양이였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나는 다른 책에서 처럼.. 누가 어떤 소개를 했고 어떤 추천을 했는지 읽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이 작가님이 나보다 훨씬..훨씬 높은 연배이니..나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 시절을 지나고 있는 서른 중반...후반...마흔의 나이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대학시절 친구로 부터 전화를 받았고.. 그 친구는 어떤 선배의 죽음을 전화로 알았는데 왜 그 전에 먼저 연락하고 얼굴을 한번 보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했다. 그 이야기에 주인공 연희는 20대의 사랑 세중에게 더 늦기 전에 연락을 하고 만났다. - 그때까지 나는 왜 그 집에서 사랑이 죽었을까 궁금해 했다. - 사랑이란것이 지나보면 그것이 진실이였을까? 나에겐 사랑이였지만 그에게는 장난이 아니였을까? 반대로 나는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그에겐 진실이 아니였을까 하는 순간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이야기를 다룬다.
약혼녀가 있는 연희의 사랑이였던 세중과 남자친구가 있는 연희가 서로에 대한 끌림에 무작정 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과거회상으로..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상황에서 여러가기 일들을 겪어가며 마지막에 서로의 사랑? 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연희의 관점이니..세중의 이야기는 잠시 뒤로 빠져있지만..
그 집에서 나오는 다른 주인공들은 ...아직은 몰입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상황에 있는 세중과 연희의 심리 .. 그리고
마지막에 전개되는 연희의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한참을 흔들어 놓았다.
사실 책을 읽으며 다른 관점이 계속 해서 나오는 부분에 .. 으음...책을 잘못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야기보다 ..연희의 심리..
여인이라면 한번쯤..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본것 같은 그 묘사가 참으로 가슴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죽을만큼 사랑을 하며( 단 며칠의 열정적인 사랑이지만..) 그 사랑에 대해 잊지 못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것은 지나가는 누군가에겐 진심이 아니였을수도 있다는 세중이 이야기 하는것처럼 그 순간은 최선이였다는 그런 순간들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것은 아닌지 ..나역시..
한번 손에 들어있는 책은 그 시간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책장을 넘겨갔고 한참을 지난 시간이지만.. 가슴은 먹먹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희의 이야기에 나의 가슴은 박완서 선생님의 소개글처럼.. "굉장히 센 물결을 만난 것 같다. 한꺼번에 다 읽었다" 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
|
사람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됐네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을 살려라 사람이 살게
사랑... 결론적으로 말해보자면 사랑은 진부하다. 거기다가 고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식상한 그 어떤 것처럼 비치곤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곁에 머무는 사랑이 너무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더 보태자면 사랑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며 개인적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혼자하는 사랑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이 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은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자기위주의 감정일 뿐이다. '너를 위해서' 라고 말을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엔 '사실은 나를 위한거야' 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가끔은 처절하다는 표현으로 다가오는 사랑.. 몸서리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하다, 는 뜻도 함께 안고 있는 그 말처럼 사랑은 정말이지 슬프고 끔찍한 명제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애써 포장한다.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거라고. 아름다워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보여지도록 노력하며 산다.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김형경의 글은 읽는 중간중간에 내 속을 후벼팔듯이 들이대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의 글에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모두가 포장을 풀어헤치지 못한 사랑의 겉모습만 바라보며 미소지을 때 과감하게 '아름답다'는 포장지를 찢어버리고 그 안에 든 것의 실체를 바라보라고 소리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당신안의 사랑이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지 않겠느냐고.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없이 들으며 사는 세상이 지금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속에 우리가 산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 남자구나' 했던 남자 세중에게 어떤 '느낌'을 부여했던 것도 연희 자신이었다. 그래놓고는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다. 환상적인 그 어떤 것이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사랑은 그렇게 처음부터 서로를 향한 환상에서부터 시작되어졌다. 그 환상이 깨지기까지의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작정 떠났던 그 여행길에서 눈에 갇히고서야 마주했던 그 사랑은 결국 '그 집' 에서만 허용되어지던 아주 짧은 환상의 세계였다. 눈이 그치고 '그 집'을 나와야 했을 때 그들의 사랑은 포장지가 벗겨지고 마침내는 자신이 그토록이나 보고 싶어했던 사랑의 허상을 보게 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그 집에서 죽은 게 아니었다. 사랑은 비로소 그 집에서 완성되었다, 라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생각나? 그때 그 산속에서는 다르게 말했던 거. 현실의 법칙에 맞추어 살 줄 몰랐고, 현실에 적응하는 노예성의 시기를 거치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현실에 살기 위해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던 거." "그동안 나도 생각이 좀 달라졌어. 그들이 몽상가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패배자는 아니라는 거, 몽상가들이 이 세상에 대해 갖는 긍정적이고 고유한 기능이 있다는 거, 그런 것을 믿고 싶어졌어."
현실... 현실은 정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명쾌하게 이것, 이라고 말할 수 없는 두 명제를 우리앞에 들이민다. 그래놓고는 선택이라는 과제를 낸다. 그 수많은 선택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도, 대신해주어도 안된다는 암묵적인 계시조차 보인다. 누구나 꿈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누구나 꿈을 꾸며 살지는 않는다. 누구나 꿈이 이루어질거라고 말하지만 누구나 그 꿈의 정상에 도달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현재를 거부하며 그보다 더 큰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면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까닭에 현재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더 먼 거리에 있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거라고. 세중과 연희가 필연적으로 가야했던 '그 집'에는 세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꿈을 안고서. 그런데 중요한 건 아무리 크고 먼 꿈을 향해 달려간다해도 지금 처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거였다. 연희와 세중이 눈속에 갇혀 홀린듯 제자리를 맴돌다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머물러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서 살았던 남자와 여자와 사내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일런지도 모르겠다. 세사람 모두 외면하고 싶어하는 각각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믿음이 없어도 지속될 수 있는 관계속에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불현듯 믿음이라는 녀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면 그때부터 외로움은 이름표를 바꾼다.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 믿음조차도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느닷없이 찾아온 두려움을 지독한 사랑의 몸짓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자괴감으로 인해 연희와 세중은 생각한다. 차라리 '그 집'에서 죽고 싶다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환상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해도. 이야기를 마치기전에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연희와 세중을 다시 만나게 해 준 작가에게 왠지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늘 외면하고 싶어하는 자신만의 환상과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서. 그렇게해서 당당하게 현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두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에 대해서. 또다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환상을 향해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연희와 세중을 통해 작가는 내게 말한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고. 그리고 또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현실과 환상은 어쩌면 평행선을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서로를 버릴 수 없기에.
이 책이 오래전에 <성에>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책의 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성에>를 읽지 못했기에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제목만으로는 무언가로 긁어내야만 사물이 보이는 한겨울 창문에 서린 성에처럼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거북스러웠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먼 곳이었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아와 보니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는 설정도 쉽게 지나쳐버릴 수 없었다. 눈속에 갇혀버린 외딴집, 그 집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하나씩은 품고 있을 자신만의 집이 아닐까 싶었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미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의 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작가는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의인화시킨 자연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울림이 있었다. 자연속에 머무는 생명체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위주로 정해놓은 수많은 틀을 깨지 않는 한,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찾지 못한채 포장지속에 갇혀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일기를 통해 보여지는 세사람의 과거와 연희와 세중이라는 연인을 통해 보여주는 현재는 그다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정말 환상일까? /아이비생각
|
|
2004년에 출간됐던 김형경 작가의 <성에>가 새 옷, 새 이름의 개정판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04년작을 읽지 않았기에 2012년작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녀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작품이 처음이다. 띠지의 광고 문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의 모순은 몰라도 실체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그려보였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외딴 곳에 고립된 남과 여, 그곳에서 발견된 세 구의 시체... 이 설정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린 9년차 주부 연희가 과거 연인 세중을 재회하며 시작된다. 뜬금없이 걸려온 동창의 전화, 신문 칼럼에서 10여년만에 마주한 세중의 손톱만한 얼굴이 연희를 세중에게로 이끌었다. 중년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각자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겉돌았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그들의 이야기는 폭설이 내려 고립되었던 그 겨울, 외딴 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3년 간 만나온 남자친구가 있던 연희와 8년 사귄 약혼자가 있던 세중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돌연 강원도로 향했던 것은 사랑의 도피라기 보다는 다분히 충동적인 현실 도피였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폭설에 길을 잃어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한 집으로 몸을 피한다.
그러나 허기와 추위를 달래러 찾아든 곳에서는 세 명의 망자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남자가 죽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한 여자가 죽어 있었다. 분명 이 집에 살던 사람들 같은데 왜 이 두 사람은 누군가에게 피살당한 채 숨 져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 것이 아니라면 제3의 범인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죽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연희와 세중은 이들의 죽음을 추리하는 동시에 죽음과 고립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서로를 육체적으로 탐닉하며 서로를 위로하기에 이른다.
책의 원제가 <성에>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뭘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 하는 책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성에'는 그 사랑을 환상처럼 보이게 하는 어떤 장치 같았다. 손으로 깨끗하게 닦으면 그것은 현실이 되지만 '성에'가 낀 유리창 너머의 그것은 형태 조차 분간이 어렵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책의 원제를 이해하긴 어려웠고, 차라리 개정판의 제목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가 더 와닿았다. 폭설이 연희와 세중에게 유리창에 낀 성에였다면 폭설이 그치고 그들의 시야가 깨끗해짐과 동시에 불같던 사랑도 끝이 난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연희에게 들려온 세중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다양한 서술자가 등장한다. 연희와 세중이 중심인 그들의 과거와 현재, 죽은 귀순자의 일기, 산골의 자연- 참나무, 박새, 청설모,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등은 같은 사건을 두고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켜 나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희와 세중은 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추측할 뿐이며 진실은 땅 속에 영원히 묻혀 버렸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 겨울의 환상만을 쫓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롭다. 이 모든 것이 허상이고 거짓이며 환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삶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까봐 조심하는 모습이다. 아쉽게도 <성에>의 목차에는 있는 해설이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에는 없다. 이런 류의 작품을 읽을 때는 본문 보다 해설을 먼저 읽을 때도 있는데 왜 굳이 뺀 것일까? <성에>에 대한 해설이라 이 책과 맞지 않았다면 개정판 용으로 새롭게 작성해 실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아직은 이 책이 내겐 어렵고 버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