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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작업실이 탤런트 김혜자씨 집 앞에 있었을 때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씨가 담배를 피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국민 엄마가 담배를 피는 것이 놀라워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엄마라는 이미지와 모순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영화 <마더>를 구상했고, 김혜자씨를 캐스팅 했다고 했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사회에는 여성이 담배를 피는 것에 대한 통념이 있었다. 통념에 따르면 할머니는 담배를 펴도 되지만 엄마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술집 여자는 담배를 피지만 일반 여자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러므로 봉준호 감독의 작업실 앞에, 전원일기 할머니인 탤런트 정애란씨 집이 있었고, 정애란씨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봉준호 감독이 봤다면 영화 <마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김혜자씨는 지금은 딸의 기도로 담배를 끊었다고 하지만 한창 담배를 필 때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밖에서 마음 놓고 담배도 못 피우고, 누가 담배 피우냐고 물어보면 거짓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말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김혜자씨가 담배를 피웠다는 것을 대중이 몰랐던 것은 기자들이 김혜자씨의 그런 마음을 알고 일부러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는지. 담배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김혜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는지. 스타를 보는 것은 당대 사회를 보는 것과 같다. 스타는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 스타는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화려함, 가정적임, 정치적 올바름, 용기, 희망 등)을 보여주고 대중에게 거짓말(키, 몸무게, 나이, 출신, 학력, 성적취향 등)을 한다. 스타는 허상이다. 허상과 실상 사이 간격이 멀어질수록 또는 실상을 숨기지 못할수록 스타는 추락한다. “시나트라는 1947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열렬한 대중적 지지를 구했고, 가족이 지닌 가치를 전했으며, 논쟁이 될 만한 정치적인 명분을 옹호함과 동시에 바람을 피웠고, 악명 높은 범죄자들과 어울렸으며, 깡패처럼 행동했다. 기자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위협하면서 그는 화를 자초하고 있었다. p304” 프랭크 시나트라는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스타는 괴로워. 프랭크 시나트라의 팬은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스타를 존경해. 스타한테 실망했어... 프랭크 시나트라의 파티, 마피아와의 관계, 여성편력, 병역미필, 폭력 스캔들, 빚투는 지금으로 치면 연예계 은퇴를 해야 할 판이다. 반면 자유에 대한 숭상, 흑인차별을 반대한 인권운동, 호방함은 연예인의 표준으로 숭상될 법하다. 누군가는 프랭크 시나트라 평전을 읽고 추잡한 속살을 봤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허상과 실상 사이에서 살아야 했던 스타의 비애를 봤다. 스타가 마지막 무대에서 흘린 눈물에는 무대를 내려가는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게 될 설레임도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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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트라의 대표곡으로 알려져있는 “my way”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이 곡을 처음 들었을때의 느낌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듣자마자 “빠져든다” 또는 “목소리가 죽인다”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던거 같다. 그의 목소리는 훌륭하고 그의 노래는 아름답지만 시나트라의 팬이라거나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이 시대는 시나트라보다는 마이클 부블레를 즐겨듣는 시대이다. 재즈라는 장르 자체의 관심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굳이 이전 시대의 가수들을 일부러 찾아듣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시나트라에 대해서는 20세기의 위대한 유명한 가수이며 배우이기도 했던 인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초반에 가수로 활동했고 어느 순간 배우로도 활동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는 이미 여러 권, 좋아하는 인물들의 생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고 매우 재미있고 소중히 아끼는 책들인데 다른 분야에 비해 음악에 몸 담았던 인물들의 평전이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과 의미가 크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앤서니 서머스와 로빈 스완이 지은 시나트라의 평전은 히치콕의 평전만큼 매우 두껍지만 새로 나온 북 디자인은 책 사이즈가 작아져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이전보다 편해서 좋았다.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평전인만큼 시나트라의 삶을 자세하게 최대한 충실하게 그의 인생을 기술하고 있다. “호보컨 출신의 목소리가 죽이는 말라깽이. 100퍼센트 이탈리아 사람” 거물급 마피아였던 루치아노가 회고한 사람들에게 들은 시나트라 이야기를 시작으로 보비삭서들을 흥분시킨 스타가 된 이야기. 음악적 노력. 여성편력과 마피아. 정치와의 관계들. 정상에 올랐다가 추락했던 그가 다시 재기하게 되는 여러 여정들. 음악적인 노력들과 엄청난 프로듀서들과의 작업. 그의 삶은 8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파란만장했고 그 속에 20세기 미국 사회의 모습이 모두 녹아있다. 놀라운 열정과 꿈을 가지고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는 단순히 가수나 배우만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열정과 노력의 정수를 끌어낸 삶을 산 대단한 인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처럼 감염되는 흥분 상태...... 100년에 두세 번 나올까 말까 한 집단적인 히스테리 증상” [뉴 리퍼블릭]의 이러한 표현을 시작으로 그에 대한 수많은 흥미로운 말들로 가득하고 특히 음악적인 부분을 따라가면서 그때 그때 해당 곡을 찾아 들으면서 읽으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듣는 “My way”는 다르게 들린다. 그의 아들 프랭크 시나트라 2세는 마이웨이의 마지막 문장이 아버지를 정확히 말해준다고 했다고 한다.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어 I’ve travelled each and every highway 모든 길을 다 가 봤고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리고 그보다 더욱더 중요한 건 I did it my way 나는 내 방식대로 했다는 것이지 뛰어난 프레이징 기법과 호흡의 조화를 이루어냈던 그가 남긴 많은 곡들은 이제 다른 가수들이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부르는 명곡들이 되었고 그것이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루러낸 것임을,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의 묘비에 새겨진 것처럼 “The Best Is Yet To Com”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라는 메시지를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들려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열정을 다해 사는 모두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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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트라 ? 마이 웨이, 내 방식대로>(을유문화사) 앤서니 서머스/로빈 스완 지음 (서정협, 정은미 옮김)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어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모든 길을 다 가봤고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리고 그보다 더욱더 중요한 건 I did it my way 나는 내 방식대로 했다는 것이지
<My Way>, 노래 가사 중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들어보지 않고 20세기를 살아온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20세기의 결코 죽지 않는 역사이자 전설이 되었다. 그는 그의 인생을 노래 ‘마이 웨이’에 집약해 놓았다고 주변 지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곡의 작사가 폴 앵카는 ‘마이 웨이’가 “완전히 시나트라”이며, 프랭크 시나트라 2세는 “I did it my way”라는 다섯 단어가 “아버지에 대한 정확한 요약”이라고 말했다. 시나트라 자신도 ‘자서전’과 같은 노래임을 인정했다. 여기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이런 그의 범상치 않은 삶을 온전히 담아낸 훌륭한 평전이 을유문화사에서 번역되었다. BBC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앤서니 서머스가 충실하게 엮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대중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평전을 이렇게 한국어로 만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게 다가온다.
평전답게 아주 두껍지만(무려 824쪽), 평전답지 않게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물론 프랭크 시나트라의 삶에서 매력적이면서도 연민을 자아내는 요소들이 많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이렇게 지루함이 없이 엮어내는 능력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10대 소녀들을 끌고 다니면서 혼절하게 만들었던’ 프랭크 시나트라라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앤서니 서머스와 로빈 스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크게 6가지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1. 그의 길 2. 밴드 활동 3. 정치와 예술 4. 사랑과 욕망 5. 최고의 엔터테이너 6. 최상의 것은 앞으로 올 것이다.
이 각각의 챕터 안에 연대순별로 일어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소챕터 5-6개를 포함하고 있는 형식이다. 아래는 이 책을 번역한 서정협 음악칼럼니스트의 책 줄거리 소개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1915년 미국 뉴저지주의 낙후된 선창가 호보컨에서 태어났다. 앞서 1900년 그의 할아버지 프란체스코 시나트라는 단돈 30달러를 호주머니에 넣고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뉴욕행 배를 탄다. 당시 미국 사회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백인 취급을 못 받고 ‘더러운 이탈리아 놈’으로 불리며 차별 받았다. 말라깽이 시나트라도 걸핏하면 패싸움에 휘말리곤 했다. 부모가 운영하던 술집에서 시나트라는 동전을 받는 재미에 노래를 불렀다. 외아들 시나트라의 엄마인 돌리는 호보컨의 마당발이자 아들 일이라면 극성을 떨었다. 시나트라가 고교 중퇴 후 빌빌거릴 때 동네 음악 그룹 스리 플래시스를 찾아가 자기 아들을 써달라고 집요하게 부탁해 성사시킨 이도 돌리였다. 그룹이 해체되자, 이번에도 돌리가 나서서 동네 야간 업소 러스틱 캐빈에 웨이터 겸 가수로 시나트라의 취업 자리를 연결했다. 여기서 시나트라는 이름난 밴드의 눈에 띄면서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시나트라의 꿈은 그의 우상 빙 크로즈비처럼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물넷인 1940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고, 1943년 음악 잡지가 꼽은 최고 가수로 선정되었다. 그 이후 약 10년간 이른바 ‘시나트라 히스테리’가 미국을 휩쓸었다. 공연장마다 흰 양말을 신은 ‘보비 삭서’들이 무대에 속옷을 던지고, 스타에게 몰려가 키스를 퍼붓고, 혼절해서 구급차에 실려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보다 10~20년 앞선, 20세기 최초의 연예인 우상숭배 현상이었다. 여성 팬들은 시나트라 특유의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그가 내게 노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재즈의 시대가 가고, 팝과 록의 시대가 오면서 시나트라는 적응하지 못했다. 음반사와의 계약도 줄줄이 해지되었다. 빛의 속도로 떠올랐던 스타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시나트라를 구해준 건 뜻밖에 영화였다. 여배우 애바 가드너의 아프리카 촬영장 텐트에 구차하게 빌붙어 살며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조연 마조 역을 구걸하다시피 따냈고, 1954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1955년에는 마약중동작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으로 열연한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시나트라의 여성 편력도 이 전기에서 꽤 흐임로운 대목이다. 그는 1976년 네 번째 부인 바버라 막스에게 정착하여 “놀라운 평온”을 얻었다고 말하기까지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그레이스 켈리, 마를레네 디트리히, 진 카먼, 애바 가드너, 메릴린 먼로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 뿐 아니라, 무명의 신인 배우와 가수 등과 침대에 들었다. 그와의 데이트를 거절한 배우 페기 말리에 따르면, 시나트라는 “만나서 ‘안녕’하고 인사하는 거의 모든 여자와 자는 사람”이었다. 이 책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이들 여성들과의 사랑과 결혼, 이혼과 다툼을 옐로 페이퍼 못지않게 다룬다.」 (820~822쪽, 후략)
이외에도 무엇 하나 땅에 떨어질 것 같지 않고 고공행진만 하던 스타 시나트라의 모습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거대한 마피아 조직을 숙주 삼아 연예활동을 이어갔던 어두운 모습, 민주당의 지지자로서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탓에 여러 정치적 혼란에 빠졌던 순간들도 모조리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시나트라의 지인들이 했던 말들과 남아있는 기록들을 철저하게 수집하여 저널리스트다운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평전의 신뢰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데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하고, 시나트라의 삶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낮고 매력적인 바리톤의 음색, 유려한 프레이징, 애무하는 듯이 관능적이면서도 절제된 표현력,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말하는 듯한 가사전달력 등으로 유명하다.
「우울한 시기에 가장 좋은 것은 “하루 약 30센트로 살 때 먹었던 크림치즈와 땅콩 샌드위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일!”이었다고 시나트라는 기억을 떠올렸다. “제일 추웠던 밤에도 나는 버스 요금 10센트가 없어서 5킬로미터를 걸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 하나로 일했다. 그것은 바로 활동적일 것, 할 수 있는 한 많이 연습하기이다.”」 (83쪽)
「시나트라는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박자와 발성으로 노래했고, 음절을 새롭게 나눴으며, 완벽하려고 애썼다. 그는 불완전한 발음이나 문법을 싫어했다. (중략) 그와 녹음을 같이 한 로즈메리 클루니는 그의 발음을 잊지 못한다. “어떤 노래를 부르든지 발음이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다.” (중략) 가수 줄리어스 라 로사는 이렇게 발음 기술을 향상시키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여기에 마침표를 찍고 저기에는 쉼표를 찍으면서 의미를 명확히 했다. 이는 프레이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단어들을 말하듯이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노래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는 혁명적인 시도로서 바로 지금의 시나트라를 만들었다. 아무도 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나트라는 32마디 노래를 3막짜리 연극으로 바꿀 줄 알았다.”」 (308~309쪽)
앞서 말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들은 그의 피땀어린 노력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11살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노래 부르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들였고, 이는 그가 무명의 가난한 가수지망생이었던 시절에도 그를 살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러스틱 캐빈에서 일했던 전속 트럼펫 연주자와 결혼한 루실 커크는 시나트라가 “어린 가수”였다고 말했다. “내가 들어 본 최고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가 입을 열면 관중이 숨을 죽였다. 그저 그가 관중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들은 압도당했다. 그에게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113쪽)
「스태퍼드는 말했다. “좀 약해 보이는 더벅머리 총각이 나왔을 때 나는 그냥 생각했다. 음, 말랐네. ......그런데 그가 <Stardust>를 몇 마디 부르자 극장이 숨을 죽였다. ......여태껏 아무도 그처럼 노래를 부른 사람은 없었다.」 (139쪽)
「아먼드 도이치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팬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명 같은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전에는 들어 보지 못한 소리였는데, 가수에 대한 애정과 순진무구한 에로티시즘을 절규하듯 표현하는 소리였다. 소녀들을 막아 내기란 거의 불가능했고, 내쫓으려고 하면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에.......(후략)」 (172쪽)
프랭크가 마이크를 잡을 때 얼마나 사람들을 매혹시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모성 과잉’, ‘집단 최면’을 자주 언급하는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여성 팬들이 시나트라를 엄마처럼 대하고 시나트라도 팬들을 엄마처럼 대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또한 그에게서 ‘아버지 이미지’를 보았다. 그가 “일종의 음악적인 스트립쇼”를 했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이 현상에 다가서는 분석일 것이다. (중략) 젊은 여자들은 흔히 남자에게서 여성의 모습을 원하는데, 시나트라를 보고 실신했던 소녀들은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던 그를,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처럼 수줍어하는 젊은 남자로서의 그를 가슴에 그러안았다.」 (184쪽)
이 부분에서는 심지어 20세기의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 마이클 잭슨, 21세기의 저스틴 팀버레이크나 방탄소년단을 떠오르게 만든다. 평소 시나트라의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받은 느낌들을 글로 적나라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10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콘의 시초였다는 사실도, 평전을 읽고 알았다.
무서운 폭염이 전유럽을 뒤덮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도, 시나트라의 음악은 전세계인들에게 전쟁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그의 병역이 면제된 데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는 군부대를 돌면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군인들에게 요즘 관심사에 대해 물으면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답변이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시나트라는 잘 알려진 그의 다소 폭력적인 성향과는 다르게, 인도주의적인 성향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정치와도 연결되어 드러난다.
「시나트라가 가지고 있는 정치 철학은 단순했고, 심지어 순진하기까지 했다. 루스벨트는 “경제 피라미드 하층에 위치한 소외된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는데, 시나트라는 이에 공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루스벨트를 좋아한 이유는 약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재산이 많아도 약자가 분명하다.”」 (221쪽)
프랭크 시나트라는 20세기 아메리칸 드림의 최대 수혜자이지만, 사실 그는 이태리의 별볼일 없는 호보컨 출신으로, 그의 출신에 대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들의 명성과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연민과 공격성으로 점철된 삶을 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 시대를 호령한 스타도 결국은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씁쓸하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시나트라의 이런 면모가 내적으로만 곪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소외받고 있던 흑인과 유태인의 인권을 중시했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던 아버지이기도 해서, 평생 이 싸움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도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국가의 시민이기도 했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한’ 여자의 남자로 남기에는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많은 염문설은 내로라하는 것이었고, 그와 말을 섞은 여성들은 모두 그와 잤다고 보는 편이 맞는다는 말까지도 나돌았다. 수많은 여배우들과 가수들이 있지만, 그 중에 프랭크 시나트라와 지독하고도 집착적인 연인관계를 지속했던 가수 애바 가드너와의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다. 심지어 애바 가드너로 인해 자살 소동까지 일으켰다고 하니, 시나트라가 얼마나 그녀에게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브래드 덱스터가 1960년대 초에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술을 마시고 내 어깨에 기대어 울기 시작했다. 애바가 그를 나약하게, 정말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는 상처를 받았다.”」 (339쪽)
「새미 칸의 전 부인 글로리아 칸은 말했다. “친구들은 프랭크가 애바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굴종적이었다. 그는 그녀라는 존재에 복종했다. 그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귀여운 강아지 같았고, 사람들은 그가 남자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기분이 안 좋으면, 뭐랄까 그를 해고할지도 모른다.”」 (346쪽)
애바와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 프랭크는 이미 낸시 시나트라의 남편이었으며,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가 뿌린 여자들과의 수많은 염문설 때문에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허무함과 애정결핍을 여성들에게서 채움 받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을 화나게 하면 곧바로 폭력을 휘두르고 마피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강인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여성들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프랭크의 어머니가 강압적이고 엄격했으며, 어렸을 때 프랭크를 나약한 ‘여자아이’로 취급한 데서 기인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30대에 접어들며 소녀 팬들에게 얻었던 인기를 점차 잃어가고,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재기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시나트라의 <I’ve Got You Under My Skin>, <Night And Day>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 두 곡이 편곡자 넬슨 리들과 함께 작업한 음원이라는 것을 알고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리들과 작업하면서 시나트라는 10대 소녀팬들을 뛰어넘어 미국의 모든 연령층에서 팬들을 형성하게 된다. 그가 맞은 두 번째 전성기는 리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프랭크 시나트라라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누구나 장사가 못 되는 법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목소리뿐만 아니라 청력, 시력, 기억력까지 모두 잃어가는 바람에 노래를 하다가 무대 위에서 내려온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노래하고자 했다. 몇몇 인터뷰에서는 은퇴한다고 했다가, 다시 몇몇 인터뷰에서는 곧바로 힘 닿는 데까지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 시점에서 발표된 그의 트레이드 곡, <My Way>가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비올라는 시나트라의 <My Way>를 듣고) 이렇게 회고했다. “전율을 느꼈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였다. 그 남자는 자기 인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701쪽)
미래 영화 <하이스트>에는 이런 대화가 있다.
진 해크먼(강도 역) “아무도 영원히 살 수 없어.” 레베카 피전(그의 아내 역) “프랭크 시나트라는 그랬어.”
그는 그의 노래처럼 불멸의 인생을 살다 갔다. 새천년을 아이처럼 기다리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밀레니엄의 동이 터오는 것을 고작 2년 남겨둔 1998년에 영원히 잠들었지만, 그의 묘비에 쓰인 문구처럼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고 믿는다.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그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그가 노년에 했던 공연들의 피날레에서 늘 말해왔던 것처럼.
“Cent’anni! 100년을 위하여! 당신이 100년을 살기를. 그리고 당신이 듣는 마지막 목소리가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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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격동의 시대를 노래로 관통한 한 사람. 'My way'라는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어머니로 인해 읽게 된 책. 어머니 당신이 살던 시대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시대는 같았고, 어머니가 얘기하던 많은 스타들의 이름이 평전 곳곳에 나와서 낯설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800쪽이 넘는 책을 읽으며 내가 갖게된 생각들. 1. 단순하고 명쾌한 색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없다. 시나트라는 군에 징집되는 것을 교묘히 피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자신이 이탈리아계로 겪었던 차별로 인해 누구보다 인종차별에 맞서며 음악계에서 흑인이 부당한 처우를 당하지 않도록 애썼다. 여성에게 예의바른 신사로 기억되나 여럿의 성추문과 여성 편력으로 수많은 스캔들의 중심이였다. 삶은 결국 자신의 지향점과 본성사이의 줄다리기인 것인가. 2. 마피아와 연예계의 깊은 연결고리. 시나트라는 마피아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루머가 늘 따라다녔으며 실제로 그는 어둠의 세력과 깊게 관련되었다. 그들이 강제하고 종용하는 무대에 올라야 했고, 그들의 돈을 운송하기도 했다. 당시 마피아의 말을 듣지 않는 연예인들은 바로 살해되었다. 그가 권력과 힘의 맛을 알고 누렸던 것도 있지만(혼자 있을 때는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의 반짝임을 자신들의 세력확장도구로 이용하려는 그들의 검은 손을 목숨걸고 거부할 수 있었을까. 3.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는 그만큼의 외로움을 부여받는다. 무대의 함성과 반응 뒤편에 남겨진 그는 항상 무대 너머의 관중보다 자신의 곁에서 대화하며 진심으로 편이 되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다. 조금만 상대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그 관계자체를 잘라내어 상처받지 않으려 했다. 사랑받고 싶으나 상처받기는 두려워한 남자였던 그. 4. 정치와 연예인. 시나트라는 힘에 대한 본능적 추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 가까이에 있고자 했고, 신기하게도 촉이 좋았다. 케네디, 닉슨, 레이건 등 그는 자신이 줄을 선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케네디를 열렬히 지지했고 응원했지만, 대통령이 된 케네디가 마피아와 가까운 시나트라에게 선긋기를 하면서 그는 몹시 상처를 받게 된다.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도록 힘을 쓴 마피아가 그가 그들을 되려 검거하고 탄압하려하자 그를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다. 정치는 연예인에게 쏠리는 관심을 이용해 표를 얻고, 연예인은 세력을 가진 정치인을 등에 업고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히는 공생의 고리. 5. 한 시대의 문화, 예술, 정치, 인물들은 각각의 당위에 의해 촘촘히 엮여 있다. 한 부분을 알기 위해 다른 부분을 읽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그는 20세기의 전쟁과 정치의 역동기를 관통한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인 것이다. 그의 노래가 다음 세대의 문화적 색채를 입고 재생산되듯 그의 묘비명처럼 'The best is yet to come.'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의 음악적 순간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6. 이 책을 읽으며 또하나의 즐거움은 그의 수많은 노래와 관련된 아티스트의 멋진 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I'll never smile again', 'This love of mine', 'Polkadots and moonbeams'등 그의 LP를 곧 사게될 것 같다. 그의 삶과 고뇌와 달리 그토록 편안하고 달콤한 음악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책을 읽고나니 그의 'My way'가 조금 더 쓸쓸하고 무겁게 들린다. 그리고 에바 가드너를 평생 사랑한 그, 그의 삶의 순간순간 등장해서 자신을 잊지 못하게 하는 그녀는 진정한 팜므 파탈이다. - 그의 꼬이고 외로운 인생은 우아함과 추함이 어우러진 기이한 합성물이었고, 엄청난 실패와 현기증 나는 성공, 단호한 충성과 똑같이 단오한 혐오, 친절과 무례함이 섞인 혼합물이었다.....프랭크 시나트라 내면 어디에선가 그는 아프다. 괜찮다. 언제나 그래 왔던 식이다. 청중의 즐거움은 예술가가 겪는 고통에서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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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형태로든 차별이 있다면 나는 노래하지 않겠다. 나는 피부색, 신념, 술주정뱅이이든 멀쩡한 양반이든 상관 않고 모두를 위해 노래하니까." 시나트라는 자신의 실패한 녹음본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는 사람이다. 실패를 통해 배움을 찾는 그의 노력에서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낙심과 좌절을 반복하지만, 겸손이란 찾아볼 수 없는 당찬 성격을 갖고 있다. 하루 종일 바쁜 스케줄에 치이면서도 평생 독서하는 습관을 고수했다고도 한다. 마피아에 문외한인 나도 아는 인물인 '럭키 루치아노'와 막역한 사이였고, '루스벨트'와도 친했으며 '마틴 루터 킹'의 인권 운동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들을 통해 그 시대가 또렷하게 그려지며 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시나트라의 별 볼 일 없는 외모와 출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이름 때문에 그의 무대를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의 노래를 들으면 일순간 조용해지며, 노래가 끝나고 환호했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가 굉장히 궁금해져서 기억 속에 있는 팝송 'my way'를 들어보았다. 그의 반생을 읽으니 그 노래에서 '마피아, 고독, 영화 대부'의 이미지가 연상됐다. 창법을 바꾸기 전에 20세기 최초의 아이돌이었던 그의 데뷔 초기 노래도 여러 곡 들어보았다. 그의 삶이 연상됐다. 그가 강조하던 '내 이야기를 노래한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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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시나트라의 평전이다 앤서니 서머스(Anthony Summers)와 로빈 스완 (Robbyn Swan) BBC 저널리스트 답게 심층적인 평전을 만들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원조 아이돌 인기와 그의 여성편력, 마피아와의 관계, 시칠리아 제화공의 아들로서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라면서 백인들로부터 무시당한 어린시절, 스타로 성장하기까지의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던 시절과 JFK와의 일화등이 소상히 적혀져 있다 마피아와 얽힌 이야기는 마리오 푸조 원작의영화 대부에서 배역을 맡게 해달라고 청탁하는 쌈마이 배우가 프랭크 시내트라 본인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마피아와 얽힌 관계는 JFK의 대통령 당선에도 쭉 이어진다 애바 가드너, 미아 패로, 바바라등 결혼와 이혼을 4번했다 두번째 마누라인 애바 가드너 역시 음주와 흡연으로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후에도 숱한 여배우, 가수들과 염문을 뿌렸다 화려한것 같지만 외로운 연예계 생활과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했던 프랭크 시내트라 ? 프랭크 시나트라의 묘비명; 1915-1998 The Best is yet to come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직 안왔다 ? 폭력과 절제되지 못한 사생활, 인기를 한몸에 받은 빅스타, 마피아와의 유착관계 ?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 프랭크 시나트라 ? ? ? ? 미국 쇼 비지니스의 추악한 이면을 잘 볼 수가 있다 ? #현대예술의 거장 #프랭크시나트라 #예술가 #대중음악 #연예인 #다큐멘터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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