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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이란 시인을 어디서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읽던 책에서 언급되었을 것이고,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다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을 것이다. 어떤 책에서 언급되었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많이 들어봐서 궁금했던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설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설렘도 잠시 원문과 함께 실린 시의 해석을 보면서도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 시가 한없이 낯설어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꺼냈을 때도 서걱거리는 느낌은 그대로였다. 우리 언어로 된 시도 어려운데 하물며 번역된 시를 읽는다는 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한 시인이 많음에도 내 책장에는 국외 시인의 시집은 드물다. 그렇다고 원문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번역한 사람들의 흔적이라도 쫓아가자 싶다가도 맥락이 끊기는 느낌을 받을 때면 어려움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집을 끝까지 읽었던 이유는 시인이 묘사한 풍경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나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19세기에 활동했던 시인의 교훈적인 시들이 낯섦을 줄 때도 많았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그가 남긴 시들이 애절하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목사직을 사임할 만큼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으로 상실이 컸고, 유럽 여행으로 시인으로 거듭나기도 하지만 노년에 찾아 온 건강상의 불행은 그를 더 애잔하게 만들었다. 나의 정원에서 세 길이 만나는/ 지점은 세 배로 행복한 곳./ 은자-지빠귀가 거기 와서 집 짓고,/ 집배원-비둘기들이 둥지를 튼다. <월든> 중 시 제목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그 월든 호수가 맞았다. 소로가 월든을 쓰면서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곳이 에머슨의 사유지였다고 하니 뭔가 연결된 기분이었다. 이름만 익숙한 시인의 시가 낯설고 피부에 와 닿지 않다가, 소로와 월든 호수로 이어진 연결고리가 뭔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소로도, 월든 호수도, 에머슨도 시대와 공간이 주는 이질감 속에 존재할지 모르지만 글을 통해 공통의 시간을 갖게 된 기분이었다. 여전히 어메슨의 시들은 서걱거렸지만 이 작은 인연으로 그제야 그의 시 속으로 좀 더 느긋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시공간의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른 공간에서 좀 더 일찍 살다 간 시인의 흔적을 엿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고뇌와 우수와 환영을 보는 듯한 그의 시 속에서 잠시 현실감각을 잊었을지라도, 작게나마 19세기의 자연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의 시를 느끼기엔 나의 내공이 여전히 부족하다. 에머슨의 시 뿐만 아니라 번역된 시들, 그리고 우리 언어로 된 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시에 대한 알 수 없는 갈증이 자꾸 나를 시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조금은 무모하다 싶은 읽기도 기꺼이 감내해 내는 지도 모른다. 나의 작은 바람은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다시 이 시집을 꺼냈을 때 지금은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그때 발견하는 것이다. 이 시집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길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