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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라고 해서 늘 밝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청소년 소설은 밝은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듯하다. 지금 생각나지는 않지만, 내가 본 청소년 소설 가운데 그리 밝지 않은 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 본 다음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어둡다’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다르게 흐를 수도 있었을 텐데, 좀 아쉽다. 하지만 그게 바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하는 듯하다. 밝기만 하면 그것에 눈이 멀어버릴 수도 있다. 가끔은 어둠을 바라보며 눈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는 어둠도 숨어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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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대체 왜 그런 끔찍한 짓을 했어?” “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일 수가 있는 거야. 사람 속이 얼마나 악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냐고” “엄마는 니가 무섭다. 내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게.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도...니 얼굴만 봐도 겁이 나고 무서워.“ 밤새 두들겨 맞고도 아침이면 그를 위해서 따스한 밥을 차리던 엄마. 정말 불쌍한 우리 엄마.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나도 증오하게 된 내 엄마.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한번도 잘해 주지 못하고 결국 더 불쌍하게 만들어 버린 엄마. 엄마, 아니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맨홀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쓰레기였어요. 아니 지금도 쓰레기입니다.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심판을 받았느냐고요? 아니요. 차라리 심판을 받았다면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돼서 태어나긴 했는데, 저한테 아버지는 없습니다. 그저 순직한 거룩한 소방관의 탈을 쓴, 밤새 엄마를 불쌍한 내 엄마를 두들겨 패고 또 패던, 착하디 착한 누이에게 넌 공장이나 갈 빌어먹을 년이라고 저주하던 괴물이 있었어요. 그는 툭하면 우릴 괴롭혔죠. 솔직히 죽길 바랐어요. 자라면 그의 목을 따 버릴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아주 거룩한 죽음을 맞았죠. 아마 그래서였을까요? 제 안에 똬리를 튼 분노가 그 대상을 잃었어요. 슬프게도 제 안에 그 분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몰랐어요. 괴물이 사라져 버렸으니 평화로운 정말 평범한 가정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바보같은 엄마는 남편이라고 괴물을 그리워하고, 어느날 이 모든 게 연극이라며 그럼 나는 연극배우가 돼서 여기에서 벗어날꺼야 라고 했던 내 사랑하는, 진짜 연극배우가 돼서 자기 삶을 반짝거리게 하고 있던 그 누이가 어이없게도, 이젠 죽었으니 그동안의 모든 죄를 사하여 내 아비로 인정하노라 라고 선언할 줄 어떻게 알았겠냐구요. 순간 전 누이가 미친 건 아닌가 생각했었어요.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죠? 제 손을 꼭 잡고 날 데리고 나가 주겠다고 했던, 누구보다 엄마를 경멸하고 그 괴물을 죽이고 싶어 했던 그 누이가 그래도 아버지라고 얘기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래서 사람을 죽였나구요? 아마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누이까지 그렇게 변하고 마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다 기진이들을 만나고 희주도 만나고. 물론 파키가 절 먼저 때린 것도 있어요. 누이가 괴물을 팔아 산 로펌 변호사로 절 변호했을 때 그랬죠. 정당방위와 같은 거라고, 힘없는 고등학생을 폭행한 외국인 노동자는 가해자고, 그를 죽여 버린 제가 피해자라고. 그런데 파키를 때릴 때의 그 희열감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요. 누이와 엄마에게 그 괴물따위를 추억하느냐고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내뱉을 때에도, 제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단 생각에 즐거웠어요. 이런 제가 낯설고 또 낯설었어요. 너 그 사람이랑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라는 누이 말이 아니였다면 몰랐을 거예요. 저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몸안에 더러운 괴물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하긴 제가 조금이라도 용감했다면, 저는 예전에 그 괴물을 죽였어야만 했을 거예요. 그리고 제 안에 흐르는 피를 모두다 쏟아냈겠죠. 이런 제가 이상하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렇게 이상한 저라도 누이가 있었던 그 어릴 땐 그나마 사람다웠어요. 누군가 내 곁에 같이 있었을 땐 이렇지 않았어요. 엄만 왜 악해졌냐고 제게 말했죠. 도저히 맘을 다스릴수가 없다구요. 엄마...엄마를 때리던 그 괴물보다 제가 더 무섭나요? 제가 더 악한가요? 그런가요? 근데 엄마 엄만 왜 그렇게 악해요? 어릴 때 누이가 그랬죠. 차라리 이혼하라고. 엄만 그랬죠. 너네들 나중에 결혼이나 취직같은 걸 하게 되면, 이혼가정이 흠이 될 거다. 다 너희를 위해 참는 거야 라고. 그 말이 우리 목을 죄고 있는 족쇄라는 걸 아셨어요? 너네가 내 족쇄라고 가르쳐 주셨잖아요. 누이와 나 때문에 맞고 있는 거라고 확실히 말씀하신 거였어요. 마치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가시관을 쓰고 죽을 때까지 채찍질 당하던 예수인 것처럼 말씀하셨죠. 순결한 피해자인척 하시며 그걸 즐기셨던 거 아니였나요? 밤새도록 당신이 맞는 걸 듣고만 있어야 했던 우린 생각 안 했잖아요. 한번도 정면으로 우릴 바라 본 일이 없다는 거 아세요? 우릴 바라보지 않는 엄마를 보며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이라는 맨홀에 빠지게 만들어 버렸잖아요. 엄마, 엄마도 괴물이였던 거예요.
내 사랑하는 누이. 누이, 어릴 적 누이가 있으면 그 어떤 밤도 무섭지 않았지. 그런데 누이 그거 알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곳, 맨홀같은 곳에 가지 않는 거라고? 누이는 그곳에서 울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어린 자신을 던져 뒀겠지만, 동시에 날 버린거야. 왜 날 데리고 가지 않았지? 왜 내가 그 괴물과 같은 얼굴이 되도록 내버려 뒀어? 차라리 날 데리고 가지. 그랬다면 나는 쓰레기가, 맨홀이 안됐을꺼야. 나는 그날 밤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누이가 그리워.
형편없는 자존감, 무능력함으로 꽉 채워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기진이들이 주는 관심이 너무 좋았어요. 희주와 첫 키스를 했던 그 다락방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 기분 좋음이 결국은 남지 않더라구요. 제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누이가 날 버린 것처럼. 내가 날 버렸으니까요. 저는 쓰레기입니다. 저는 맨홀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같은 맨홀이 주변에 많아졌어요. 오늘만 해도 초등학교에 난입해서 야전삽으로 아이들을 해친 아이가 있었대요. 아마 그 아이도 알겠죠. 자신은 그저 까만 어둠 속에서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쓰레기 맨홀이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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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이라고 하면 뭔가가 감춰야 할 부분을 덮고 있는 곳을 의미하는 듯 하다. 지져분하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감추는 역할을 하는 그런곳, 어쩌면 모든이들에게도 그런 맨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을 만나면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뭔가의 문제점들이 있지만 그속에서도 꽃을 피워나가는 희망이야기, 그래야지 우리아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할 수 있기에 더 좋아하는데 이 책은 너무 어둠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솔직히 울 아이들에게 읽는것을 주저하도록 만든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아이가 느끼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아마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정도롤 비참할거란 생각이 든다. 거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엄마, 아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불만이 더 아이에겐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악마같은 아버지가 사회에서 영웅이라고 칭해지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그 가식이 주는 거부감은 고등학생인 아이에겐 모든것이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일어난 살인사건 그 살인사건의 재판에서 그렇게 혐오하는 아버지 때문에 보호감호로 형이 집행되고 그걸 마음속으론 거부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 이 모든것들은 아직 제대로 가칙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맨홀' 처음에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폭력에 방어하는 은닉의 장소였지만 어느순간부터 맨홀은 모든것을 다 감춰주는 은닉의 장소였다. 나만의 공간이었지만 나의치부를 감추고 동조해주는 그런 곳 솔직히 모든이들은 이런 장소를 원하거나 가지고 있을것이다. 그곳이 자신의 방이든 아무도 모르는 어둠의 장소든간에 나만의 공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맨홀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여 희망과 꿈을 이야기했으면 하는 마음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장이다. 있을수 있는 우리사회의 이야기이고 우리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밝음이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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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분위기는 꽤 무겁다. 주인공 "나"는 밖에서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소방관 아버지를 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아버지는 집에만 오면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누나와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무서운 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야 했던 어린 나와 누나는 어느 날 공사가 중단된 현장에서 맨홀을 발견한다. 그 후 맨홀은 나와 누나에게는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두 번째로 맨홀을 방문했을 때 그 곳에서 발견한 건 유기견 "달이"였다.
아버지의 폭력이 심해질 때마다 누나와 나는 어김없이 맨홀을 찾는다. 그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는데, 어느 날 누나는 더 이상 맨홀을 찾지 않게 되고, 자신의 꿈을 연극에서 발견하고 연극배우가 된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누나였는데, 이제 더 이상 누나는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젠가는 꼭 아버지란 사람을 죽이겠다고 누나와 결심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아버지란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영웅이 되어 죽었다. 화재장소에 뛰어들어가 안에 갇힌 열여섯 명 전원을 탈출시킨 후 불길에 약해진 나무 계단에 깔려 죽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엄마나 누나, 나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었던 남자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영웅 아버지를 화마에 떠나보낸 나를 안타깝게 여긴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버지때문에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했던 누나가 죽은 그 남자를 기꺼이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그 남자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
나는 학교에서 겉돌게 되고 수업을 빠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어느 날 그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파키들과 시비가 붙게 되고 그로 인해 다치게 된다. 나를 때린 파키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우연히 만나게 된 그를 실수로 죽이게 되고 시체를 맨홀에 숨긴다.
누나에게 사실을 말하고 자수했다는 점, 아버지가 16명의 사람을 구한 영웅이라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약한 처벌을 받는다.
언젠가 밖에서는 유능한 의사지만 집에만 가면 폭력남편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편으론 피해자였지만 한 편으로는 가해자였던 소년의 이야기.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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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전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보았다. 모성애가 없는 어머니와 그의 아들사이에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이야기이다. 짧게 내용을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있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임신을 하게 되고 아들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에서 접근하지 못한 채 심리적으로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점점 성장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학교의 많은 학생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와 여동생 마저 죽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면회에서 본 아들에게 이유를 묻자, 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았었는데, 잊어먹었어요."라고..
2. 소설 <맨홀>에는 한 남자 아이가 나온다. 아버지에 대한 가정 폭력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왔다. 악마라고 생각하고 증오해왔던 아버지가 소방관으로서 여러 명의 생명을 구하고 순직하게 되면서 세상에 의해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고, 이를 아니라고 세상에 외쳐 진실을 바로 잡고 싶지만, 무의미한 게 되어 버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입장이었기에 '내 편'이라 의심치 않았던 누나는 연극배우가 되고자 곁을 떠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악마로서 아버지가 아닌, 영웅으로서의 아버지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이자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살인죄가 감면당하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역시 영화 <케빈에 대하여>처럼 엄마가 아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을 두려워 하고, 괴로워 하며 감정을 쏟아낸다. 그런 엄마를 두고 집을 나와 집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이 두 작품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속의 국적과 상황, 그리고 정서는 다르지만 교묘하게 두 작품의 끝은 닿아있다. <케빈에 대하여>의 '알았었는데 잊어먹었다'는 아들의 짧은 답변 속에 담긴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말로 풀기에는 너무 복잡한 그 감정.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였기도 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찾아 자신의 악몽 속을 헤집기에는 너무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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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멀쩡해 보이는 맨홀도 무섭다. ‘땅’이라고 믿은 도로와 인도도 무섭다. 언제 홀hole이 생기거나 거대하게 가라앉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지반 침하는 모두 맨홀man(made)hole이다.
허술한 시스템이 대량 양산한 현실 곳곳의 유무형의 홀hole들이 안타깝고 두렵다. 박지리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을 이제야 읽는다. 작품 속 맨홀은 어둡고 깊은 함정일까, 도피처일까.
“이곳은 운동과 상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잠깐의 유예 장소일 뿐이다.”
아...! 제목을 보고 인간이 ‘만든’ 홀(들)만 생각했는데, 인간 자체가 무수한 구멍이구나. 한 방식으로 아는 지식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면 그제야 어떤 깨달음처럼 느껴진다. 그렇구나, 내 몸에 난 구멍을 다 셀 수가 없구나. 땀구멍과 모공이 모두 몇 개야...?
이런 충격(?)을 도입부터 받고,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장소와 상황에 대해 마치 절절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문장력에 사로잡혀 점점 더 깊게 파묻히며 계속 읽어 나갔다.
“아홉 살 때 목격한 절망적인 천장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던 열두 살의 어두운 하늘과 이어져 있고, 열두 살 때 느낀 공포는 마치 오늘이 어제가 되듯 잠을 잘 수 없었던 열다섯, 열일곱의 밤 속에 녹아 있다.”
박지리 작가님 그리 일찍 떠나지 않으셨으면 어떤 작품들을 더 만나볼 수 있었을까 진해지는 아쉬움과 비례하듯, 막 넘어진 직후라서 벗겨진 피부로 찬 공기와 출혈을 고스란히 느끼는 순간처럼 이야기가 욱신욱신 아프다.
문학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통”이 반복되는 가정, “고요한 순간 뒤에 다가올 더 큰 폭력에 두려워하는” 가정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평균’과 ‘표준’에 가까운 어떤 것들이다. 친구들에게서도 아주 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소, 지금 십 대 아이들의 시절도 대개 무탈하고 별 일이 없다. 즉... 지독한 악몽 같지만 자력으로 떠날 수 없는 지옥 같은 시간들을 견디는 법을 혹은 끝내는 법을 모른다.
“변호사는 내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맨홀에 보물처럼 숨겨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엄마와 누나는 긴장한 모습으로 변호사의 말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마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반복적으로 폭행하고 살해하기도 하는 가해자를, 세상은 여전히 가족이라고 혈육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럴까, 어린 시절 흔한 경고처럼 조심하라던 낯선 사람보다 더 위험하고 위협적인 그가 영원한 생득적 권리를 가진 듯 가족이어야 할까.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긍지라는 게 조금일도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죽음에서 어떤 슬픔도 느끼지 않았으며 내가 저지른 살인은 오로지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고 항의했어야 했다. 당신들이 나를 성실하고 착한 아이로 알고 있었을 때, 나는 늘 살인을 꿈꿨고 오히려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살인자가 되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
세상엔 피난처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나이만)어른이 된 뒤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이 의논할 단 한 사람의 어른은 왜 이리 부족하냐고 남의 일처럼 화를 내며 살았다.
“십 년간 나를 불러들인 구멍은 구청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시멘트로 막아 버렸다. 하지만 여기 밤거리를 달리는 이 구멍은 무엇으로 막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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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있었던 일도 없던 일이 되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인간도 다 용서를 받을 만큼? 그럼 나도 죽을까? 내가 죽으면 둘이서 그딴 행사에 다니면서 남들한테 행복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보이면서 살 수 있을거 아니야. 둘이 바라는게 그런 거잖아."p147중
박지리의 전작소설인 [합체]를 유쾌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작가의 다음작품을 기대하던 중에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뜻 집어들지 못했었다. 다루고 있는 내용이 가볍지않다는것을 알았기때문에, 현실에서의 일상의 무게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나에게 또다른 무게의 짐을 얹어주고 싶지않았다.그러면서도 끝내 손을 내밀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합체의 여운이 워낙 강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가정폭력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폭력이 대물림된다는것과 피해자가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때문이라고 한다.가정폭력에 노출되었던 한 소년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기본적인 내용을 알면서 이책을 읽는 내내 초조하고 불안했다. '나'라는 소년이 아버지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때의 그 불안감과 그리고 소년이 행할 앞으로의 일들때문에 불편한 심정으로 책을 노려보며 읽어야했다.
소년의 열여덟과 열아홉에 만나게 되는 두번의 죽음, 죽음이 주는 의미는 천지차이였다. 하나의 죽음은 억압된 소년의 정신을 해방시키는 것이었고 두번째 죽음은 소년의 인생의 문을 닫아거는 죽음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가정에서 늘 가해자였다. 어린 소년과 누나는 집안의 감시인이 되어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했고 보고와 조금이라도 다른 면이 있으면 늘 엄마에게 가해지는 끝없는 폭력을 지켜보며 불안에 떨어야했다. 그래도 누나가 어린 소년의 손을 잡아주고 있으면 그나마 참을수 있었다. 늘상 반복되는 일상, 그 폭력의 희생자였으면서도 인생을 연극으로 살아야했던 엄마. 있었던 일을 마치 꿈이었다는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밥상을 차리던 엄마를 누나와 소년은 이해할수 없었다. 누나는 자랐고 소년에게 맨홀만을 남기고 떠났다. 함께 아버지를 단죄하고 어머니를 단죄하던 그 맨홀의 구멍속에 소년만을 남기고..
가정폭력의 주동자였던 그 사람이 여러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소방영웅이 되어 죽음을 맞았다. 마치 잘짜인 한편의 연극처럼 사람들은 죽어간 그 사람을 추모했고 연극배우인 누나는 정말 아버지라는 그사람의 죽음이 슬프기라도 한것처럼 애통하게 울어댔다. 장례가 끝나고 연극이 끝났는데도 누나는 그 연극의 막을 내릴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렇게 증오하던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않게 용서할수 있는것인지. 죽음이란것은 그렇게 모든 허물마저도 포용할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않는 소년. 늘 그사람에게서 벗어날 희망만을 꿈꾸고 살았는데, 사는동안 바라는 단한가지의 소원이 그사람의 죽음이었는데,이상하게도 그 죽음이후에 벌어진 상황들은 소녀의 생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린 시절 소년의 손을 잡아주던 누나는 더이상 없었고 마치 일이라도 해야 숨을 쉰다는듯이 어머니는 바빴다. 어느곳에도 마음붙일수 없던 소년은 그런 소년을 받아주는 무리에 섞이게되고,그리고 그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온몸이 구멍으로 이루어졌을것이라고 생각하던 소년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곳은 오로지 단 한곳,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와 어머니의 나약함과 비겁함에서 도망칠수 있었던 '맨홀'뿐이었다. 그러나 소년이 살인자가 되고 아버지라는 미화된 소방영웅의 도움으로 풀려나게되면서 소년을 반기는곳은 그 어느곳에도 없었다. 단하나의 안식처는 사건과 함께 막혀버렸고 어두운 밤을 달리는 소년의 발걸음은 길을 잃는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소년은 아버지를 혐오했고 그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어머니를 혐오했다. 누나와 소년을 지켜주지못한 어머니는 피해자인 동시에 또다른 가해자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소년은 누나와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안에서 들끊는 분노를 다스리기 힘들어진다. 그런 소년에게 꽂히는 누나의 한마디. '너는 지금 그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부정하고 싶은데...그말이 어떤 상처인지 누구보다 잘아는 누나로부터 들은 그 말은 소년의 존재를 부정하는것과 같았다.
누군가 물었다.매일 싸우면서 사는 부부는 그대로 사는것이 좋은가? 아니면 이혼하는것이 좋은가? 그 질문을 받은 상담가가 답한다. 만약 일반적인 싸움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지키는것이 맞겠지만 폭력이 동반된 싸움이라면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이혼하는것이 맞다고 말이다. 아버지의 그 끔찍한 폭력을 어머니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참고 견디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내 살인자가 되어 나타난 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니가 무섭다"라고..왜 진작 아버지가 그렇게 어머니를 향해 폭력을 휘두를때 그사람에게 그런말을 건네지못했을까..이미 저질러진 죄가, 한사람의 어이없는 죽음이 그렇게 가볍게 처리될 사안이 아니기에, 소년의 시간을 거슬러가서 바로 잡아주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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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창의적인 생각들을 불러올 것만 같은 겉과는 다르게 속은 어둡고, 외롭고, 서글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이라는 고통을 안고 혼자가 되어버린 소년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빠르게 전개된다.
주인공인 소년은 하루가 멀다하고 엄마와 누나, 자신에게 손을 대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일상이었다. 너무나도 증오스러워 '아버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버린 남자와 매일 맞으면서도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다음날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침밥을 해다 바치는 엄마를 진저리 칠 정도로 미워하며, 소년에게는 오로지 네살 위의 누나만이 위안이었다. 같은 고통을 느끼며 아버지와 엄마를 향해 함께 증오의 말을 내뱉는 것만이 소년과 누나에게는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폭력을 피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맨홀' 아래의 수로관이 둘에게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자 소년이 유일한 편이라고 여겼던 누나마저 변해 전처럼 소년과 맨홀 안으로 들어가 손을 꼭 붙들고 증오의 말을 뱉어내는 대신,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극의 일부라고 상상하며 다른 안식처를 찾아 그것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다 연극을 하겠다며 집을 나가서는 3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폭군처럼 굴며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밖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소방관이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갑자기 화재 현장에서 열여섯명의 사람을 구출하고는 사망하게 된다. 훌륭한 일을 하다 숨진 아버지를 추모하는 행렬들로 장례식을 북적이는 와중에도, 예전에는 그렇게도 증오해 마지않던 누나가 "아버지"를 부르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소년은 그저 이제야 평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과 변해버린 누나에 대한 배신감으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장례를 치룬다. 집에서는 그토록 끔찍한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밖에서는 의롭고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이 소년에게는 우습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라며 예전에 엄마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는 누나를 보며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죽음이라는 게 그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과 증오를 다 잊게 할만큼 강한 것인지 소년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년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얻지 못했다. 편안함을 느껴야 할 집과 사랑받는다는 느낌들, 그리고 행여 은연중에라도 가정폭력의 그늘이 드러날까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어 그 흔한 친구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한 무리의 친구들 사이에 끼게 되어 함께 어울려 다니다 네팔인 외국인 노동자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소년이 그토록 증오해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른 아이들의 형량에 훨씬 못 미치는 벌을 받게 된다. 재활센터에서 16주를 보내고 나와서는 1년 보호관찰이 전부. 사람을 죽인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는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재판 결과였다. 재활센터에서 16주의 시간을 보내고 나온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 검정고시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얼마 후, 느닷없이 자기 아들이지만 두렵다며 오열하는 어머니를 두고 집을 빠져나온다.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는 소년의 마음 속 말로 글이 마무리가 되는데, 죽음을 암시하는 듯해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가정폭력이 가져온 다른 가족들의 불행한 삶을 보면서 화도 나고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이 어린 소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엄마가 불쌍하게 느껴지면서도 밉고,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용서할 수 없었던 소년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감추고 싶고, 끔찍한 악몽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었던 맨홀 아래의 어두운 수로관만이 이 소년에게 안정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보호 받고 사랑 받아야 할 나이에 집이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라면 어떨지. 읽는 내내 소년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아팠다. 가정폭력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신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종종 미디어 매체를 통해 봐왔다. 어쩌면 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에도 이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받은 폭력이라면 밝히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가정폭력은 그 수치심때문에 숨어들고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치료를 받을 수가 없으니 그것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소년의 눈과 마음을 통해 본 가정폭력의 그 그늘은 말로 다 설명할 수도 없는 고통과 슬픔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가 쌓이고 굳어져 깊게 박혀버렸는데, 다 성장한 후 심리적 치료를 통해 치유한다고 완전히 없던 일처럼 치유될 수 있을까? 이런 슬픈 일이 어떻게 해야 사라질 수 있는 것이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런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만 맴돌았다. 오랜만의 묵직한 소설이었다.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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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문학상'이 있다는 것도 심지어 '박지리'라는 작가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나는 "맨홀2012"이라는 작품으로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짧디짧은 인생으로 '세븐틴 세븐틴2015', '다윈 영의 악의 기원2016', '번외2018',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2017', '양춘단 대학 탐방기2014', '합체2010' 라는 작품을 남긴 故박지리 작가의 책 중에 나는 '맨홀'이 궁금했다.
'맨홀'은 사춘기(?)라 하기엔 커보이는 19살 미성년 남주인공이 살인으로 보호재활센터에서 지난 날을 회상하며 적어내려간 일기 같은 내용이다. 처음엔 객관적인 시선으로 혈기왕성한 이 주인공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하며 읽어내려가던 나는 점차 책속에 주인공의 시선과 마음으로 감정이입되어 왜 그랬을까? 하며 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작가가 실감나게 글을 쓴 것도 있지만 내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유년의 기억 때문일 지도 몰랐다.
'16명의 사람을 구하고 순직한 훌륭한 소방대원' 사람들은 그렇게 겉으로 보여진 것으로만 그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엔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것을 그 가족만 알고 사람들은 모른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사적인 공간 가정을 사람들은 알려고 할까. 문득 어릴 때 자식을 낳아놓고도 제대로 돌보지도 않던 부모가 그 자식이 유명해지고야 뒤늦게 나타나 내가 니 아비, 니 어미다. 하며 소송을 거는 사건들이 생각난다. 자식을 낳아놓고도 나몰라라 하고 돈 때문에 나타나는 부모의 저의가 무엇인지. 사건을 접할 때마다 화가난다. 그런 내 감정이 '맨홀'의 소년에게 약간은 스며들었나보다. 양육의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엄마, 아빠가 애들을 낳아 학대하고 심지어 배우자까지 폭행하는 가정폭력...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다. 커가면서 나는 안그래야지. 나는 다를꺼야 다짐하면서도 무의식 중에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학대 받고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기억이 있다면... '맨홀'의 남주인공도 누나와 어릴 때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달라. 생각하지만 결국에 아버지의 그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운게 아닐까. 하는 슬픔이 느껴졌다.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결국엔 '맨홀'에 빠지고 마는 '블랙홀' 같은 현실. 친구조차도 믿음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좋아했던 여자친구와도 진심을 털어놓질 못하는 미성숙한 소년. 과거를 잊어버리고 받아들이자는 엄마와 누나. 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소년. 가족 사이에서조차 불협화음이 일어날진대, 학교에서나 사회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있을까. 결말도 씁쓸하다. 의도치 않은 살인이었지만. 감형 받는 주인공과 그의 힘든 시기를 함께 했던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故박지리 작가의 다른 소설이 급 궁금해졌다. 다른 소설은 어떤 주인공을 내세워 내 가슴을 후벼팔까.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으로 주관적인 리뷰를 작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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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장편소설 '맨홀'에 갇힌 청소년
맨홀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합체]의 박지리 작가 두번째 책. [맨홀]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열여덟의 소년은 열 여섯명의 목숨을 구한 소방영웅의 아버지를 그 불길속에서 잃었다. 그러나 그토록 미워하며 죽이고 싶던 아버지는 죽어서도 그의 분노를 자아낸다. 엄마가 애지중지 안방으로 옮기던 감사패와 훈장도, 죽은 아버지를 두둔하는 듯한 누나도 그는 배신감과 분노로 눈쌀을 찌뿌린다.
이유모를 분노에 사로잡힌 채 방황하던 그에게 학교에서 소위 노는애들무리인 녀석들과의 어울림은 그를 외모에서부터 변화시킨다. 연극과 대입시험준비로 바쁜 누나와 요양병원에서 간병일로 하루종일 병원에서 숙식하는 엄마, 덕분에 그는 아무도 없는 집이 싫어 떠돌이처럼 밤을 헤메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와의 말다툼 속에서 그는 아빠처럼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방관인 그 사람이 가스선 라이터를 갖다 대며 집을 폭파시켜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그런 때가 아니라 결국 언젠가는 늙어버릴 그가 어느날 나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짧은 편지를 써서 내 손에 쥐여 주는 순간이라는 걸. 언젠가 늦은 밤에 하는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에서 어린 아들을 학대했던 아버지가 다 늙어서 아들과 화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늙고 못생긴 그 남자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한때 아들에게 큰 실수를 했다고 고백했다.
열아홉의 소년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아버지의 동료 소방대원들은 훈장까지 받은 명예로운 죽음의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등장하여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상심에 대해이야기하고, 늘 반에서 5등안에 들었던 성적이 최근 바닥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진 성적표를 제시하였다. 맨홀속에 버린 아버지 훈장과 감사패를 변호사는 아버지의 보물이라 숨겨둔 것이라 했다. 친구들은 모두 징역 3년형을 받았지만 그는 보호관찰로 끝날 것이라며 변호사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이상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맨홀]은 우리 모두의 안에 숨어 있는 커다란 구멍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쨍쨍이 떠있는 해로 낮은 밝지만, 저 밑바닥에 있는 맨홀속은 비밀스럽고, 어둡고, 교모하다. 주인공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맨홀 구덩이속에 가둬버린다. 끝없이 깊고 어두운, 그리고 구원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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