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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신들의 세상 신에 대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거짓 신이라는 것은 내 마음 속의 욕심 덩어리 집착. 내가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나를 추락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갈망하다가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상심한다. 무엇을 그리도 원하는 것일까? 늘 남과 비교하면서 내 행복을 저울질한다.
자기 인생의 중심이 되어 그것을 잃으면 마치 큰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느끼는 것들 그것이 바로 거짓 신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 번 이상은 있을 것 같다. 당시에는 큰일처럼 느껴지지만 점점 별일이 아닌 일로 되어 버리는 것 대학입시. 대학 합격자 발표날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질 듯 하고 큰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막상 살다보면 대학이란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높은 데서 우리네 인생을 내려다본다면 이런 자기만의 우상에 빠질 일은 없을 텐데.
요즘 우울한 뉴스가 많이 들려와서 안타깝다. 모든 일은 다 흘러가기 마련인데 그 당시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빠져드는 것이니 평소에 의지하는 데가 있거나 멘토가 있었더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만큼은 면했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우리가 원하는 무엇인가에 빠져 있는 동안 그것들에 의해 우리의 삶은 좌지우지 된다. 사랑에 깊이 빠져들때 사랑이 미치는 영향력이 커져서 삶을 통째로 들었다 놨다 한다.
시작이 있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을 명심하고 무엇이든 안 좋을 때도 항상 끝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에 집착하면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때는 상실감이 크지 않겠나 말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하고 갖고 싶어지는 요즘 이 책을 읽어보니 집착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중간중간에 예시로 든 상황을 봐도 그렇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살펴봐도 별 일 없이 사는 것이 참 힘든 것 같다.
무엇을 갈망하는지 갈망하기 때문에 그것의 노예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감사해야겠다. 우리 자신의 탐욕과 욕심 알아차리기.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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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마음에 변화가 참 많다. 처음에 그 첫사랑에 무뎌져간 느낌이다. 분명히 내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성령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는 것에는 한치에 어긋나지 않게 믿음이 있지만 처음에 그 설레고 흥분되어지던 감동이나 마음이 왠지 시들한 느낌이 든다. 어느 순간에는 적당히 세상것에 타협하고 흘러가는 나를 보면서 더 이상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내가 왠지 미워진다. 그러다 보니 믿음에 동역자들과의 교제는 점점 더 없어져가고 있고 내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이책을 읽으면서 왜 그리 뜨끔 되던지 크지 않다 뿐이고 심하지 않다 뿐이지 나 역시도 내속에 수많은 우상을 심어두고 적당히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직 데드라인까지 아니라 안심아닌 안심을 한다지만 이 무뎌짐이 오랜시간 지속된다면 사실 나도 많이 걱정이 된다. 티머시 켈러 목사님은 미국 실정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믿는 자들의 고백들을 들어가면 성경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고 또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또 왜 그렇게 되어지고 그런상황이 지속될때에 우리모습이 어떨 할지에 대해 너무나도 상세히 말하고 있으셨다. 또한 이런 현실이 비단 지금만에 문제가 아닌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계시고 성경속에 인물 또한 그런 유혹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견디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서 15절에 말씀처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지지 못한다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 받들고 다른 한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 길수 없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인데도 우리는 가능하다고 믿고 거짓된 행동들을 하고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속에 나 또한 포함 되어지면서 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성수를 하지 않을때가 있고 조금만 몸상태가 아파도 주일을 섬기지 않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회사일이라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한다. 그 또한 돈이 부리는 술책이란 생각도 든다. 세상 모든것에 우상이 있다. 그 옛날 모든이들이 스스로의 우상을 세우고 만들어서 섬겼던 거 처럼 그런데 하나님은 나 이외에 신을 섬기기를 원치 않으시고 질투에 하나님이시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같은 실수를 하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죄를 사함 받게 해주셨다. 그 사랑에도 우리는 지금 현실만 다르지 같은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다. 티머시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이고 이대로 좋을까? 하는 질문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럼에도 길을 틀지 못하고 계속 가야하는 나는 정말 정말 나 스스로의 우상에 같혀 버린걸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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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신들의 세상/티머시 켈러/이미정/베가북스 현직 목회자의 설교집에 가까운 글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은 거짓 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에 다름 아니며 진정한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가 견지하고 있는 종교적인 해석을 옹호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마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없다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종교관에는 찬성할 수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창조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더라도 굳이 그러한 방법으로 인간을 옥죄고 숭배를 받아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창조하였으며 인간들의 죄를 자기 아들이 죽음으로 대속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인간에게 끊임없이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신은 그저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비유하고 싶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자식들 나름대로 깨우친 삶은 인정할 수 없고 오직 부모가 정한 규칙대로 살아야 하며 부모의 권위에 대항하거나 다른 삶을 살아가려 할 때는 가혹한 체벌을 하고 죽을 때까지 부모를 섬길 것을 강요한다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자식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잘못된 길로 벗어나지 않도록 조언해 주는 정도가 가장 합리적인 역할 아니겠는가? 무리는 있겠지만 그리스도교의 많은 논리에는 이와 같은 부모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신의 모습은 저자가 17, 8세기 계몽 시대의 사상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세계의 창조자인 신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세상일에 관여하거나 계시하는 인격적인 존재로는 인정하지 않는(...) 이성적인 종교관인 이신론(理神論)에 가깝다. 그러한 모습이 지금의 현실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두려움 때문에 저자는 더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존감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신 앞에 무릎 꿇고 애원하면서 해결해 줄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할 것이다. 내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을 통해서만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그 자체가 목적이며 유일한 의미이다. 신이란 존재에 깊이 의지할수록 그의 손끝에 달린 실에 매달려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종교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종교에 의존할 때 얻게 될 삶의 무가치함을 경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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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야에 우상이 도사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위험요소인 사랑, 돈, 성공, 권력만을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괄적인 허용의 무드로 다가오기도 하는군요.
지배적인 문화적 '희망'은 (그게 바로 하나님이 아니라면) 모두 짝퉁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우상은 개인적 형태 뿐만 아니라 집합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특정한 애착이 우산숭배로 변했음에도 그것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집단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우상을 식별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한편 서구의 비종교적인 문화들은 개인의 자유를 우상으로 만들며, 이것이 가족의 붕괴, 물질주의의 만연, 경력지상주의, 낭만적 사랑과 외적인 아름다움과 이윤의 우상화를 만든다.-178p
심지어 하나님의 일조차도 그것이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놓일 때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잘못된 흐름을 바로 잡으려는 정의감을 이용하여 사단이 은근슬쩍 교만의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을 본인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군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 조차 자칫 잘못하여 하나님 보다 비중을 더해 갈 때 우리는 우상숭배를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실로 무서운 이야기군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 다각적이고 지능적인 적의 계략을 참으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마 10:16)대처해야만 하는 세상임을 깨우쳐 주네요. 그러나 이 논리를 따라가자면 딜레마에 빠져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하신 일들을 너무 열심히 하면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적당히 조절해 가며 해야 하는가 선후 관계를 인식하면 딜레마의 미로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열심과 봉사가 아니라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변화되고 성화되어 가는 것.
삶이 달라졌다고 그 반응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대가 없는 선물로 베풀 어 주는 하나님의 구원에 반응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103p
이순서가 뒤바뀌거나 흐려질 때 세상 종교나 도덕과 <순전한 기독교>와의 차이점을 잃는 것 같습니다. 갈증이 일 때,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탄산음료를 공급하는 세상과는 달라야 하는 기독교의 본분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책을 통해, 모호한 우상들 틈에서 영적 갈증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생수로 해갈을 느낄 수 있는 물꼬를 트길 기대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누릴 줄 아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한낱 기독교>로 번역한 부분은 교정 바랍니다. -74p,76p 한낱 기독교 =>순전한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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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믿음을 찾아 헤메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메세지 [거짓 신들의 세상] 내 속의 헛된 것들이 나를 흔들게 한다. 바로 이것이 거짓 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으며 이들의 숭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을 찾으라고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미국 맨해턴에서 가장 활기있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기독교신앙인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저서가 미국의 비소설부분 베스트셀러 7위에 오를 정도로 생기있는 글로 넘치고 있다. 그가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인간의 마음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며 그 공장의 연료가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이다. 어떤한 신상에 절하는 것이 우상이라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믿음이 진짜 중요한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우상숭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삶 자체가 우상숭배의 삶이며 자신의 인생이 바라보는 욕망 자체가 우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과도한 욕망은 결국 자신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결과들이 자살 등으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고대문화의 장자상속의 전통 속에서 큰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노년에 아들을 얻어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시험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에 돈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들어와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의 삶이며 하나님이 경계하는 삶인 것이다. 이러한 삶에서 대신 하나님이 번제의 제물을 준비한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번제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대신 바친 예수를 본 받는 삶이다. 우상숭배의 형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사랑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행위로도 나타난다. 사랑이라는 욕망이 자신을 지배한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인 것이다. 또 다른 형태는 돈이다. 돈이 짝퉁 하나님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돈이 자신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삭개오를 생각해보자. 그는 세리장이라는 세금을 걷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임에도 예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었다. 당시 세리라고 하는 직업은 가장 악질적인 지배계층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사람들이다. 그가 자신의 재산의 반을 이웃에게 헌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자비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에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네기가 자신의 비망록에서 말하듯이 우상숭배의 최악의 형태가 부의 축적이며 이러한 축적의 욕망이 가장 큰 우상숭배가 되고 있다. 일반적인 우상숭배의 형태는 성공의 우상이다. 성공을 향한 욕망은 자신의 모습을 왜곡시켜 경쟁과 좌절을 유도한다. 하찮은 일에 대해 폄하하는 것 또한 우상숭배의 또 다른 형태이다. 나아만장군의 예를 들어 볼 때 그가 노예소녀의 말을 듣고 행했을 때 자신의 병이 고침을 받은 것 같이 일상의 삶을 받아들이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인정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저멀리 나하고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웃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이라는 또 하나의 우상을 섬기고 있다. 이러한 우상은 민족주의나 철학 등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마약처럼 떨치지 못하는 유혹이 되고 있다. 강한 민족주의가 인종주의로 변질되면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너무나 당연하게 번하는 우를 갖게 되었으며 철학이 우상이 되면 자신의 신념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하는 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영혼을 아버지에게 맡긴다는(누가복음 23:46) 예수의 고백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생각을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맡긴다는 고백인 것이다. 이런 다양한 우상숭배의 형태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타나게 되며 종교는 자신의 정당화를 통해 나타난다. 요나를 통해 종교인들은 우리들의 선교 열정이 정당한지를 항상 도짚어봐야 한다. 하나님의 약한 모습을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받은 사람이 됨으로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주셨다(갈라디아서 3:13-14).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우상숭배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요즘 한국교회를 가면 예전 자신의 집안에 사당을 모셔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집안에 사당을 모셔두고 자신의 권세가 영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들의 모습과 교회에 가서 매일 자신을 축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루살렘에 오른 예수가 성전을 청소(파괴라 봐야할 것)하면서 이 성전이 돌 하나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 그의 이야기를 오늘날 좀 더 큰 교회를 지으려는 현대교회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성서와는 다른 의미로 사는 현대인들을 깨우치고 있다.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은 매일 교회가서 열심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기도하는 삶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곳곳에서 이웃과 함게 하는 삶인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말한 예수의 이야기를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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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상숭배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믿음의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은 우상숭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티머시 켈러의 거짓 신들의 세상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아마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거짓 신들의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일반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영혼은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상보다 흔한 건 없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이다. 이 책은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는 인식을 갖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리라고 기대하며 우러르는 대상 모두가 바로 우상이다. 우상숭배는 단순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에 온 마음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두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있어도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나쁜 짓의 원인은 언제나 우상숭배에 있다. 우상숭배가 무서운 이유는 우상이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면 성공, 실패, 행복 슬픔의 뜻이 완전히 잘못 설정된다는 것이다. 우상은 제 멋대로 현실을 다시 정의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까지도 왜곡시킨다. 그래서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에 깊이 빠져서 그것 아니면 안되는 지경에까지 빠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이 우상이 되면 그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사랑이 우상이 되거나 돈이 우상이 되거나 성공이나 권력이 우상이 되면 우리의 삶은 왜곡되어지고 만다. 사랑에 대한 생각, 돈에 대한 생각, 성공에 대한 생각까지도 왜곡되어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게 된다. 디머시 켈러는 거짓 신들의 세상에서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늘 원했던 모든 것, 사랑, 돈, 성공, 권력과 영광 그리고 내 안에 숨어있는 우상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이야기를 성경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연결시켜서 아~ 그렇구나하며 새로운 눈이 뜨여질 것이다. 또한 우상들을 어떻게 식별하고 찾아 낼 수 있는지, 우상을 인식한 후에 짝퉁 하나님인 우상을 어떻게 갈아치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개인적인 우상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면서도 그 모습을 훨씬 더 잘 숨기는 다른 우상들이 우리 문화와 사회 그리고 종교에 깃들어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을 보면 우상이 없는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티머시 켈러는 거짓신들의 세상에서 내 안에 우상을 뿌리 뽑으려고 한다면 다시 자라 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우상을 뿌리 뽑을 것이 아니라 우상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된다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래서 짝퉁 하나님인 우상을 진짜 하나님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일반적인 믿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을 말한다. 짝퉁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일은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으로 우상을 대체하는 일은 한번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 신들의 세상을 통해서 내 안에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우상이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갖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고, 우리의 삶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바른 만남에 우리의 마음과 삶을 집중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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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곳은 참으로 묘한 것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요지경이란 말도 있는 것 같은데.. 성경 속 세상도 참과 거짓이 공존하는 장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현시대의 흐름에서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신.. 독생자를 죽이실만큼 사랑하신 세상의 모습을 상실해 버린 것 같다.. 그것을 조종하는 거짓된 신들의 유혹 앞에 어떤 모습으로.. 올바른 신앙의 기준을 나타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흔히 말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라고들 한다.. 우상..거짓된 신들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입맛에 맞춰 우상을 만들고 있는 듯 하다.. 현실이 그런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포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존재목적을 바로 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하는 목적을 상실해 버린다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다.. 비록 우리 인간은 알 수 없는 수많은 계획들 속에.. 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바로 그것을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이유와 핑계를 찾지 않았다..그저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했다.. 거짓 신들이 세상 가운데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인 티모시 켈러를 처음 만났기 때문에.. 어떤 논조를 책을 기술 할 지 사뭇 궁금하였고 그에 따른 기대를 갖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만 느낀 것을 이야기하자면.. 성경 속 수많은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고 쉽게 정리해 주는 듯 하다..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통해.. 세상 가운데 믿음의 깃발을 높일 수 있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책의 제목과 같이 악하고 패역한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유일한 희망을 찾기 위해.. 오늘도 거짓된 신들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려 한다.. 내 안에 있는 거짓된 모든 것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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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살아 있다! 이 진실이 아니라면 .... 그런데 신을 빙자한 또다른 신 역시 살아 있다. 이 책은 거짓 신들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에 대해 때로는 콕콕 찌르듯 적나라하게 때로는 따뜻한 상담사 처럼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 머리로 거짓 신, 우상이라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손에 잡히지 않던 것들이 확연히 정리되는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의 초반에 영화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며 설명한 부분이 내게는 가장 쉽게 우상에 대해 이해하며 외면하려 했던 내 안의 거짓 신들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사우론의 반지의 힘. 어떤 명분이나 정의감에 불타 올라 그 절대의 힘 반지를 손에 넣더라도 그것을 손에 끼고 지니는 순간 반지에 사로잡혀 집착하게 된다는 것. 그동안 그저 영화 속 내용으로만 기억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 지금의 모습이었다.
난 내게 있어 우상이란 물질(돈)? 이단들? 정도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설교자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 가지 S의 우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스포츠, 섹스, 스크린...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은 내게 거짓 신으로 보이기보다는 그저 연구자들 혹은 설교자들이 이론으로 정의하는 어떠한 것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에 인간 스스로가 경배하며 그것을 우상시 한다는 것은 결코 거창하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홀리는 것, 내가 목표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믿는 종교... 그 안에서 거짓 신을 분별하며 늘 정신차리고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 같다. 이 책의 강점은 이런 내 고민에 성경 속에서, 일상생활에서, 혹은 미래 내게 보여질 우상들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가고 있다. 그리고 희망을 주는 것은 내 스스로 우상을 분별하여 극복하며 인내할 수 있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 명설교가의 말씀이라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기독교인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각자의 처한 상황 속에서 정말 많은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god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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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거짓신들의 세상(티머시 켈러) 21세기 C.S 루이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땅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십계명 中 -제2계명
저자가 말하는 '거짓 신들'이라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우상'입니다. 우상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든 신불이나 사람의 형상을 의미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이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신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세의 십계명의 제일 계명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이자 더불어 인간이 범하는 죄악 가운데 우상과 관계된 제2계명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강화되는 명령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우상'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마음의 중심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찾아 나가면 되니까요? 그리고 우상의 판정 또한 어렵지 않습니다. 찾아낸 것이 하나님이냐 아니냐만을 따지면 된답니다. ![]()
<세상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이며 주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21세기 C.S루이스라는 '티머시 켈러'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철저히 의지하는 목소리와 저술활동으로 주목받는 목회자이자 저술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한국에서는 <살아 있는 신>의 저자로 알려진 그는 '참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 미국 사회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많은 변화의 통로이자 산 증인이기도 합니다. <거짓 신들의 세상>은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의 주인이자(적어도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그것들은 우리의 삶의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 마음 속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짝퉁'의 정체를 말합니다.
저자는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현실 세계에서 '거짓 신들'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위기의 현장을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과도한 열망이 만들어낸 위기, 사랑의 변질된 모습, 탐욕의 화신이 되어버린 물질만능주의, 사람들을 무한경쟁으로 밀어넣는 성공의 유혹, 세속 권력과 영광의 참 모습, 선지자 요나의 모습을 통해 바라보는 내 안에 숨어있는 우상 마지막으로 짝퉁 하나님들의 최후와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식별과 극복 방법으로서의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
그 어떠한 메시지도 복음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언제나 성경에 기초하고 성경의 말씀들은 우리의 삶의 지표이자 중심이 되어줍니다. 유난히 자살도 많고, 우울증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는 언제부터인지 삶의 중심과 지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날마다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난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의 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해답의 갯수만큼이나 다양한 우상이 우리 삶의 지표가 되고 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우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 다양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신앙의 삶에 섞여 들어와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가려내기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단과 사이비와 같은 종교와 사상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에 편승하여 새로운 가치로 탈바꿈되어 다양한 메시지로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기도 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들로 인해 멸망의 자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통쾌한 직관력"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이 직관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온다면 필자는 그것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울을 생각할때 하나님은 우상의 반대편에 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함께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일한 중심이자 지표로서 흔들림이 없으십니다. <거짓신들의 세상>을 읽으면서 필자는 사람들이 복음과 세상의 논리 가운데 자신들의 편의를 좇아 스스로 복음을 떠나거나 왜곡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신들'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거짓신들'을 보기 좋게 포장하여 슬며시 하나님의 자리 근처에 가져다 놓지만 하나님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심판은 우리의 눈 앞에 와있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끝으로 필자는 <거짓신들의 세상>이 우상의 편에 서있는 신앙의 삶에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신앙의 삶을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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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란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던 과거의 우상숭배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 내재된 욕구에 굴복해 살아가는 현대의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는 '거짓 신들'이 바로 '우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이 우상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보고서 마음속 저 깊은 데서부터 '내가 저것만 가질 수 있다면 내 인생에도 의미가 있다고 느낄 것이고, 나도 가치가 있음을 알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존심도 생기고 안전한 느낌도 가질텐데...'라고 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바로 당신의 우상이다(26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상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게 설명한 문장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내가 저것만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구절을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만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이라고 바꾸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도 "정말 행복할텐데"라는 한 구절로 모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또는 목을 매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분명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가장 먼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우상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고 내려 놓았던 하나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우상이 될 수 있었던 존재는 바로 그의 아들 이삭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순순히 따르기로 결단함으로써 이삭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삭이 우상이 될 수 있었느냐에 대해 설명하기를 그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희망, 가족들의 희망이 바로 이삭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이삭에 대해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저자의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시각을 통해서 자식에 대한 기대,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 때문에 부모들이 자식들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아브라함이 처했던 상황이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에 뒤이어 저자는 우상으로 역사하기 쉬운 다섯 가지의 요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 요소는 바로 사랑과 돈과 성공과 권력과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인물을 예로 들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야곱과 라헬과 레아를, 돈은 세리장 삭개오를, 성공은 나아만 장군을, 권력은 느부갓네살 왕을, 문화는 요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사랑의 우상과 문화의 우상에 관한 예로 들었던 이야기들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이 참으로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도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설교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야곱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중독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저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의 지적이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나가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자긍심과 앗수르에 대한 증오심을 우상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나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우상과 관련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나아만을 연결해서 설명한 것이 조금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전혀 뜽금없다거나 마음에 거슬리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하나님의 씨름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논리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한 방법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원론적인 주장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또한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식으로 깨닫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는(역자가 이 단어를 명상이라 번역한 것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것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지식을 실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영적 수양(기독교에서 보통 영성수련이라고 표현하는 말을 역자가 잘못 번역한 듯 싶습니다)이라고 표현하면서, 이것도 경배의 한 형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보면서 래리 크랩이 "다른 것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만 중독되고 싶다"고 말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상숭배를 일종의 중독이라고도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결론에 앞서 설명한 내용이 결론보다 더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경배는 즐거움에 넘쳐야 하고 기도에는 하나님의 실체가 생생하게 느껴져야 한다. 예수는 당신의 상상 속에서 당신의 우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당신의 마음 속에서 당신의 우상보다 훨씬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로써 거짓 신들이 하나님으로 대체된다. 우상을 뿌리 뽑아도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지 않으면 우상은 다시 자라난다." 그런데 여기에 이어지는 내용이 굉장히 의미심장했습니다. "기쁨과 회개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 기쁨 없는 회개는 절망을 낳는다. 회개 없는 기쁨은 피상적이며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일시적인 감화만 낳는다. 실제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예수의 희생적인 사랑에 기뻐할 때 진정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는다. 어떤 결과가 닥칠지 두려워서 회개할 때는 우리의 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엽게 여긴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회개는 사실상 자기 연민이다. 두려워서 회개한다면 죄 그 자체를 미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죄악의 매혹적인 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죄악을 억제하는 법만 배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에서 구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알고서 하나님의 고난을 감내한 희생적인 사랑에 기뻐할 때는 죄 그 자체를 미워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지 알고 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장 확신할 때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깨달을 때다. 두려워서 회개하면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반면 기쁨에 젖어 회개하면 죄를 미워하게 된다(226쪽)."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이라 분량이 많음에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우상을 떠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이 부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방법은 아는데 실천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았습니다. 이제 지식이 아니라 실체를 통해 변화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