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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슬프고 놀라운 이야기를 만났다. 누구도 겪지 않거나/못할 자기의 고통을 가슴 벅차고 흥미롭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로 바꾸는 재주를 지닌 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내면의 어린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선생님을 보여주는 평전이다. 유명한 인간들의 평전은 종종 신격화로 흐르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 마렌 고트샬크가 선생님의 인생을 펼치는 방식이 무척 간결하고 한 인물의 내면을 적확히 포착했다고 느낀다. (물론 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깊은 내면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나, 읽는 내내 아스트리드와 완벽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 거라고 봐도 좋다.)
선생님이 살아온 시절을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나 누구보다 힘들어... 내 처지 너무나 어려워... 이렇게 징징거리지 않고 자기 앞의 삶을 통째로 버티고 견디고 관통해버렸다. 그리고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야기로 자신의 삶을 승화시켰다. 절대 되지 않겠다던 소설가가 되어서.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읽다 보면 삐삐의 실제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전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세상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아서 몹시 쓸쓸했어요. 그래서 펠레의 엄마를 그렇게 사려 깊게 그렸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영혼의 나이테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다섯 살짜리 어린 나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아... 이 구절에서 아스트리드의 외로움이 다 전해져버린다. 우리는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 동거하는 가족 유무와 무관하게, 해가 저물고 하루를 닫으려다 보면 세상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으리라는 쓸쓸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럴 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스트리드 선생님처럼 이런 건 어떨까.
"글쓰기. 그것은 고된 노동이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근사한 일이다. 아침이면 글을 쓰고 밤이 되면 생각한다. 아! 내일 아침이 밝아 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겠지!!"
문명사회의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습관이 있다면 글쓰기와 책읽기라고 믿는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면 더 좋겠으나 글쓰기는 지금 당장 내 생명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 자신을 구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만족한다. 그래, 언제나 글은 쉽게 쓰이지 않고 펜만 잡았다 하면 내가 말하려는 바를 담지 못하는 표현능력의 한계와 진부함을 수시로 절감하지만 글쓰기는 정말 근사한 일이다! 난 낮에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 생각한다. 아! 도서관에 잠깐 들러 뭐라도 쓸 수 있겠지! 오늘 목격한 부조리와 아까 치밀어오른 불편함을 차분한 글로 펼칠 수 있겠지!
"꿈의 세계를 꽃피우는 자양분으로 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만 있다면,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영혼의 방에 은밀히 들어앉아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그림들이 꼭 필요하다."
아스트리드 선생님은 알고 계신다.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고귀하게 만드는지. 그 그림을 지도로 삼아 우리는 각자 걸어야 할 길을 더듬더듬 가늠하며 헤쳐나가는 것도. 게다가 한 권의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그림은 나 말고는 아무도 형언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나만의 그림이다.
내가 평전을 찾는 까닭은, 한 인간이 지닌 여러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다움을 목격하고 나면 우리가 좇아야 할 높은 인물들에게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하다. 그리고 평전의 주인공들을 내 삶의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 롤모델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뛴다! 갈 길이 흐릿하고 앞이 안 보이는 시대, 내 노력없이 남을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롤모델이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늘 같다. "Be yourself!" 멋진 사람을 내 가슴에 품으면, 나도 그이가 그랬듯이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진정한 독립과 자립. 내 삶의 과제.
"오늘 난 혼자 있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하루 종일 행복하게 혼자 있으면서 책을 읽고 베토벤을 듣는 것만 빼고. ... 맙소사!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루해할 수 있을까? 이런! 대체 어떻게 책을 다 읽고 음악을 듣고 세계 모든 곳을 가보는 일을 해내지? 아니다. 그건 다 거짓이다. 난 아무 곳도 돌아보고 싶지 않다. 경이로운 자연을 체험하는 데, 사람들을 경험하고 예술을 마주하는 데 찰나처럼 짧은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쓸 것이다. 그런 일들을 훨씬 더 하고 싶다. 이 모든 일을 하고 나서도 시간은 물론 더 필요할 것이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나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볼 시간 말이다."
아, 고마워라! 이런 좋은 책을 만나서. 그래서 오늘 난 혼자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하루 종일 행복하게 혼자 있으면서 책을 읽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 떠오를 때는 이렇게 내뱉으며. "그런 일로 대가의 영혼이 방해받지는 않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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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이다.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써 8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1억 3천만 권 이상 판매되었다. 그이가 펴낸 책을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세 바퀴 두를 수 있을 만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172개 학교가 그이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을 붙였다. 스웨덴의 언어문화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영향을 깊고 꾸준하게 받아 왔다. 오늘날에는 많은 아이들이 그이의 책에 나오는 인물로 이름을 불리고, 책에 쓰인 낱낱의 문장들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스웨덴 정부는 그이가 세상을 뜬 해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제정하여 어린이 문화 발달에 기여한 작가들에게 엄청난 상금의 상을 준다.
아스트리드 안나 에밀리아 에릭손은 1907년 11월 14일, 스웨덴 남부 지방의 스몰란드 주 빔메르뷔 시 외곽에 있는 네스에서 농부 사무엘 아우구스트와 한나 에릭손 사이의 둘째로 태어난다. 네스에서의 어린 시절은 거침없는 모험으로 가득했다. 반항기의 청소녀기를 거쳐 1923년 중등학교 시험을 끝으로 학교생활을 마친다. 열일곱 살에 빔메르뷔 지역 신문의 수습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아스트리드는 아이와 부인까지 있는 기혼의 중년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다. 기혼 남자에게서 혼외 아이를 임신한 그이가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첫 아이인 아들을 남의 손에 키우게 한 일은 두고두고 그이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이의 두 번째 남자 또한 직장 상사였고, 그이는 외도까지 했다. 두 번째 아이인 딸을 처음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은 다행이었다.
무엇이 아스트리드로 하여금 미혼모의 상황을, 경제적인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세계가 사랑하는 어린이 책 작가로 만들었을까.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한결같이 어린이 편에 서서 활동하게 했을까. 어린이 책 작가와 편집자로 일하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세금 체계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역설했으며, 원자력 발전의 낙관론에 대해 무책임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린드그렌법’이라고 불리는 동물보호법을 만드는 데 앞장서게 했을까. 이러한 활동 전체는 결국 자기 내면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을 텐데, 무엇보다 어린 시절 네스의 자연환경에서 마음껏 자란 것이 큰 힘이었을 테고, 꾸준한 책 읽기도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스트리드의 글쓰기 습관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울림을 준다.
“한 문장을 열 번 넘게 고쳐 쓰는 일이 잦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문장들을 내 귀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내 귀에 최고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때까지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썼다. 어느 한 곳도 뚝 끊어지는 일 없이 문장들이 선율을 타고 흐를 때까지. …… 난 독특한 언어의 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가락도 이야기도 내 마음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울림이다.” (132쪽)
그녀는 한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이 얌전히 굴지 않자 엄마는 매를 들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회초리를 찾을 수 없자, 아들을 뜰로 내보내 막대기를 하나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아이는 한참 뒤 울면서 돌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막대기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으니 그 돌을 던지라고 말했다. “그때 엄마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모든 일을 아이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엄마가 정말로 날 아프게 할 생각이구나. 막대기 대신 돌로도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엄마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한동안 함께 울었고 돌을 부엌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그때부터 그 돌은 언제나 경고물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과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폭력은 절대 안 돼!” (18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