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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를 되새기고 추억을 떠올리는 일이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제대로 일깨워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소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반성만이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일본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마법사가 등장하고 초등학생들이 주요 인물로 나오길래 애들을 상대로 한 동화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책이 결코 애들을 상대로 만든 책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왕따 문제나 부모간의 갈등 문제 그리고 뺑소니와 같은 사회문제는 애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과거를 추억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바라봐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기에 이 책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리카라는 고등학생이다. 특이한 점은 리카는 분명 추억전당포의 단골인데도 결코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전당포에 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카 이외의 인물들은 추억전당포를 들르면서 최소한 한번쯤은 자신들의 추억을 맡기고 돈을 받아갔는데 추억전당포의 주인인 마법사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리카만 유일하게 추억을 맡기지 않고 가게에 들르기만 해 의아함을 자아낸다. 왜 리카만이 추억전당포에 자신의 추억을 맡기지 않는 것인지, 이는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책을 읽고 독자 스스로 알아내기 바란다. 이 책은 총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추억전당포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이야기한 점’이다. 추억전당포는 20세 미만의 인간(여기서 이용 대상을 인간이라 지칭한 것은 가게 주인이 인간이 아닌 마법사이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함이다)으로부터 추억을 사서 운영하는 그런 곳이다. 주요 영업 대상은 초등학생(중고등학생도 추억을 맡기러 오긴 하지만 주 고객은 초등학생이다)인데 마법사라는 가게 주인은 인간의 추억을 나름대로의 기준을 적용해 값을 매긴 후 그들로부터 추억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돈을 내어준다. 나중에 맡긴 추억을 다시 찾으러 오면 돈을 받고 추억을 되돌려주는 시스템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나이를 먹은 후 추억을 되찾으러 오는 사람은 1% 내지 2%에 불과하다. 즉 한번 추억을 맡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맡긴 사실을 잊은 채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이 추억전당포라는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설정을 통해 추억을 잊는 것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저 추억을 잊는 것에 대한 순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대개 추억전당포에 추억을 맡기러 오는 애들은 싫은 기억을 맡기곤 한다. 추억전당포의 단골이라 할 수 있는 하루토는 어머니로부터 혼난 안 좋은 기억을 주로 맡긴다. 하도 어머니로부터 자주 혼나다보니 자연스레 추억전당포의 단골이 되어버린 경우인데 반전이 일어나면서 발길을 끊는 극과 극을 달리는 평범한 듯하면서도 독특한 인물이라 하겠다. 이 책엔 하루토 말고 추억전당포의 단골이 한명 더 등장하는데 그 인물은 바로 시라토 메이라는 소녀다. 그녀는 재색을 겸비한 고등학생인데 잊고 싶은 추억을 전당포에 맡기기 위해 자주 전당포에 들른 인물이다. 메이가 맡긴 추억은 다름 아닌 같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에 대한 기억 즉 왕따를 당하는 것에 대한 기억인데 메이는 이런 기억을 갖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추억 전당포를 찾아와 그 기억을 맡겼던 것이다. 이렇게 하루토와 메이의 사연을 들어보면 추억 전당포의 기능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싫은 기억을 맡아 주고 떠올리지 않게 해주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추억 전당포에 이런 기능만 있었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라 했다. 추억전당포는 나쁜 혹은 안 좋은 기억을 맡아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진 안 좋은 추억도 맡아주기 때문에 역기능 또한 존재해 그 존재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하루토라는 아이다. 이 초딩은 어머니로부터 자주 혼이 나서 불만을 안고 추억전당포에 들르게 된다. 하루토는 마법사에게 혼났던 일을 하소연을 하는 식으로 추억을 맡기고 가는데 나중에 가선 자기가 그랬던 일을 몹시 후회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한 것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일반적으로 어렸을 때 부모와 다투거나 혼이 난 기억은 안 좋은 기억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어찌 부모와 늘 잘 지낼 수만 있겠는가! 그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부모와의 추억은 좋은 것도 있지만 당연히 안 좋은 것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갈등과 화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지 늘 좋은 추억 혹은 좋은 일들만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아끼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의 갈등을 맡기는 행위를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저자는 뒷부분에 하루토에게 발생하는 일을 통해 추억전당포의 위험성에 대해 크게 경고한다. 당시엔 너무나 안 좋은 기억 같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라는 점을 저자는 하루토라는 소년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왕따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을 암시한 점’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시라토 메이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생 된 지금도 아사미들(아사미를 비롯한 패거리)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아사미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앞세워 메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그녀로부터 금품을 갈취하는데 그 내용과 장면이 참으로 가관이다. 아사미들이 메이를 괴롭히는 이유는 메이가 세 가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첫 번째 죄목은 밀고죄고, 두 번째 죄목은 친구의 남친을 가로챈 죄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죄목은 위 두 가지 사실을 숨기고 뻔뻔하게 학교를 다닌 죄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세 가지 죄를 물어 그들이 메이를 괴롭히는 것이 나름 명분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건 그들만의 억지고 열등감의 표출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사미들이 메이의 죄를 거론한 첫 번째 죄를 살펴보면 밀고죄는 말도 안 되는 모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이는 중학교 때 그들과 함께 학원을 다니던 시절 그들 패거리 중 하나가 컨닝하는 걸 목격하곤 이를 학원 선생님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치상으로 정당하고도 당연한 일이고 공정경쟁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아시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되려 메이를 밀고를 한 앞잡이 취급을 하며 괴롭히는 명분으로 사용한 것이다.
두 번째 죄로 거론한 것을 들여다보면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도 실은 아사미 패거리 중 하나의 남친이 메이의 예쁜 외모에 반해 그녀를 차버린 것을 두고 그걸 메이 탓으로 돌린 것인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쁜 외모 때문에 남자가 꼬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외모가 잘 나서 남자가 꼬이는 걸 두고 아시미들은 그걸 메이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그게 과연 메이의 탓일까? 메이의 외모에 홀려 여친을 버리고 간 남자가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지 가만히 있던 메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렇게 아사미들이 주장한 두 번째 죄도 비논리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첫 번째 죄목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죄로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세 번째 죄는 앞의 두 가지 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죄가 아니게 된다. 이렇게 결론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보면 아사미들이 메이를 괴롭히는 명분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도 없고 비논리적이고도 비합리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이 메이를 괴롭히는 행위는 열등감의 표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인들이 왜 그토록 같은 또래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타 민족을 괴롭히고 차별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일본은 사실 과거에 그렇게 우수한 문화를 지닌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의 문화는 주로 대륙을 통해 전해온 것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지 자체적으로 문화를 발전시킨 것은 거의 없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측면에서도 중국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그들의 향유한 고급문화를 주로 중국(대표적인 나라가 당나라)을 통해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역사적 실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조선)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인 지금까지도 지금 상황을 놓고 과거를 왜곡할 뿐 우리나라로부터 받은 영향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의 이와 같은 행태는 자신들의 열등감을 감추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를 앞섰던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과거 몇 십 년 앞선 것도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고작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좀 앞섰다고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문화의 소유자고 선진국인양 떠들어대고, 다른 국가와 민족을 무시하고 깔보는데 이는 스스로 열등감 덩어리라는 것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아사미들이 보여준 것은 바로 일본이 주변 국가를 상대로 드러내고 있는 열등감 표출과 다를 바 없다.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워 영토 분쟁을 일삼으며 주변국을 괴롭히고 과거 자기들이 잘못한 것을 정당화시켜 오히려 죄를 주변국들에 묻고 뻔뻔하게 구는 것은 아사미들이 메이에게 한 짓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저자는 겉으론 동화 같은 혹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쓴 것 같지만 실상은 지금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문학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본 정치계는 우경화가 심해져 아무리 제대로 된 이야기를 꺼내도 들어먹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를 인식해 나라가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소설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일깨워주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일본이 왜 쇠퇴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한 점’이다. 2012년 9월 현재 일본은 한국에 뒤쳐져 있다. 단지 기술적인 면에서만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서 일본은 한국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날 일본이 모든 면에서 한국을 압도하며 세계에 이름을 떨쳤던 것을 떠올리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아무리 한국이 시나브로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분명 한국보다 크게 앞서 있었는데 왜 21C에 와선 일본이 한국에 밀리며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일본이 반성 없이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다 결국 퇴보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은 패망 이후 단 한 번도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일본은 한국을 비롯해서 동아시아에 큰 상처를 입히고도 아무런 반성 없이 그저 선진국 행세를 하며 앞으로만 나아갔던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선진국들은 대체로 힘이 강하기 때문에 과거에 어떤 죄를 저질렀어도 당당할 수 있었다. 후진국 내지 개도국은 과거 선진국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어도 선진국이 가진 그 무시무시한 힘이 무섭고 두려워 차마 제대로 된 항변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서양의 선진국들이 했던 행동 그대로 배워 동아시아 국가들을 대했던 것인데 과거엔 모든 면에서 앞서 있었기에 그게 먹히고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의 일본은 더 이상 아시아에서 넘버 1이 아니다. 여전히 경제대국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한국과 중국을 압도할 만한 정도의 힘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이 발전하는 동안 일본은 조금씩 쇠퇴의 길을 걸어갔고 결국 지금은 창피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아시아에서 지는 별이 되어가고 있다. 만약 일본이 한창 잘 나갔을 때 과거의 죄를 사과하고 한국과 협력하여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일왕 히로히토를 사형에 처하고 모든 국민들이 동아시아인들을 향해 과거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악행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며 같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랬는데도 일본이 지금처럼 내리막길을 걷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필자는 만약 일본이 선진국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칠 때 과거사를 사죄하고 반성했다면 지금처럼 고립되어 점점 망해가는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 점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거를 잊고 앞으로만 나아가서는 종국엔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영토 분쟁을 통해 현재의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늘 그랬듯이(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일본 열도 통일로 인해 생긴 내부적인 문제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의도적으로 일으켰던 전쟁이었다) 내부적인 문제를 감추기 위해 눈을 외부로 돌리려는 수작인데 과거엔 통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이 상대할 만한 적수가 아니다(지금은 중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와 차원이 다른 때다). 한국은 군사적인 면에서 일본에 좀 밀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에겐 미국과 북한이 있다(북한은 우리의 적국이긴 하지만 일본이 우릴 친다면 자기들에게 하등 도움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면 우릴 도울 것으로 추정됨, 100% 장담은 못함). 만약 양국 간에 영토 문제로 전쟁이 터지면 어느 나라의 편에 서서 도와줄지는 모를 일이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미국은 늘 강자의 편의 손을 들어줬기에(과거 미국은 일본이 잘 나갈 때,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것을 인정해준 역사가 있다) 지금 현재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놓고 따져 우리 편이 되어 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여러 가지 문제와 함께 자연재해(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진과 지진해일)라는 환경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어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려고 주변국에 시비를 걸며 과거처럼 전쟁을 통해 이 난관을 헤쳐 나가려는 것 같은데 어림없는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 중일전쟁 당시의 허약한 중국이 아니다. 군사적으로 일본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중국이다. 일본은 과거처럼 우경화를 통해 어떻게든 쇠퇴의 길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모양인데 정신 차리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만약 계속해서 과거사를 잊고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만 떠올리며 자꾸 도발적인 행위만 일삼는다면 자연재해로 망하기도 전에 주변국에 의해 패망하여 민족이 말살될 수도 있음을 일본은 인식해야 한다. 과거 잘나가던 시절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본이란 나라 하나 세계지도에서 지워진다고 해서 세계가 크게 타격을 입지 않는다. 미국만 믿고 까불다간 언제 배신당해 큰 코 다칠지 모르는 일이다. (과연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리 정신을 차려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길 바라는 바이다. 영원히 사는 자에겐 추억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찰나(100년 내외의 시간)를 사는 인간에겐 추억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계속해서 과거를 무시하고 추억을 값어치 없게 여긴다면 쇠퇴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국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저자는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마법사와 현실 속에선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추억을 맡기는 전당포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추억의 소중함과 반성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본이 이런 저자의 경고 내지 조언을 못 들은 척 한다면 일본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추억의 소중함과 반성의 필요성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보려고 하면 보이는 것도 있어요.” “밤뿐이 아니라 낮에도 별은 하늘 가득 빛나고 있어, 사실은. 그저 보이지 않을 뿐.” “4년간, 멀리 떨어져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바로 운명이야.” “추억이 되지 않는 사람. 그가 운명의 상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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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난 가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 세상이라기보다 책 속 세상이라고 해야겠군요. 어딘가에는 ‘추억을 파는 편의점’(무라야마 사키)이 있습니다. 꿈을 맡아주는 ‘좋은 꿈 하나 맡아드립니다’(고마쓰바라 히로코)에는 사람의 나쁜 꿈을 먹어주는 맥이 하는 꿈은행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일본동화군요. 우리나라에는 신기한 사진관이 나오는 동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꿈을 찍는 사진관’(강소천)입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누군가를 꿈에서나마 보고, 사진사는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줍니다. 제가 아는 것은 이 정도뿐이지만 더 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 책은 아니지만 이상한 가게가 나오는 게 하나 떠올랐습니다. 제목에 이상한(신기한)이 들어가는 ‘후시기공방증후군’입니다. 무엇인가 하나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들은 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후시기공방에 우연히 들어간 사람의 바람을 들어준다는 것밖에는. 그곳에 우연히 가게 되는 사람한테는 모두 아픔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말한 동화 ‘추억을 파는 편의점’과 ‘꿈을 찍는 사진관’에 나오는 사람도 그렇군요. ‘좋은 꿈 하나 맡아드립니다’에 나온 악마의 부하도. 이번에 본 책에는 전당포가 나옵니다. 추억을 맡기면 돈을 준다는군요. 본래 제목도 ‘추억을 맡아드립니다(想い出あずかります)’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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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기도 하고 그리움이 있어 인간이 존재하다고 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 추억이란 무엇일까? 추억과 기억의 차이란,기억과 사실의 차이란 무엇일까.추억이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일다.그러면 기억이란 이전의 의식에서 있던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안 현재에 있는 일' 사전적 의미가 약간씩 다르다. 바닷가 절벽에 위치한 '추억전당포' 이곳은 어른들은 모르는 20세 생일이 되기전까지 기억되고 드나들 수 있는 아이들만의 공간이다. 이 곳에서 행복했거나 슬펐거나 가족이나 친구 그외 모든 것에 대한 '추억'을 마녀가 사고 그에 대응하는 값을 돈으로 지불한다. 하지만 한번 판 추억은 판사람에게는 기억만 남아 있고 추억은 없다. 하지만 20세가 되기전 자신이 가져간 돈을 지불하면 모두 다시 되찾아 올 수 있다.
추억에서 좋고 나쁜 것이 있을까? 좋은 추억도 나쁜 추억도 모두가 더해져서 인생을 살아가는 영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막상 지금 당장 사고 싶은 게임기나 그외것들을 사기 위하여 필요한 돈을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보다 이곳에서 추억을 팔고 받는 돈이 더 많이게 이곳에 와서 자신들의 추억을 판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는 '추억'으로 여겨지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팔고 받은 돈으로 게임기도 사고 필요한 돈을 충당한다. 이곳에 드나들며 자신이 차남이라는 이유로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하루토는 '엄마에 대한 추억'을 팔고 돈을 받아 게임기를 산다. 그런가하면 신문부 기자인 리카는 이곳에 대한 취재를 하여 학교신문에 쓰려고 했는데 친구들의 반대로 자신들 기억속에 묻어 두기로 한다.아니 어른들은 이런 것을 믿지 않을 것이란 말에 더 무게를 두지만 그녀도 한 두번 바닷가 절벽의 추억전당포를 드나들다보니 그곳에 오는 사람드르이 이야기도 그리고 추억전당포의 마녀하고도 친해지게 되기도 하고 점점 기자정신을 발휘하여 세상사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밝혀 내고 싶은 마음도 있는가하면 점점 마녀하고도 친해지게되기도 하여 이곳에 오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대부분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불만을 자신의 가족중에 엄마나 그외 형제들에게 털어 놓고 해결하기 보다는,아니 가족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안좋은 것들은 모두 마녀에게 팔고 돈으로 환산하여 지금 당장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쓰기 때문에 이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을 한다. 과연 그럴까? 이야기는 리카의 초등시절부터 20세 생일을 맞이하는 날까지 추억전당포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와 관계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어떻게 좋은 추억만 가지고 살아갈까? 그 속에는 좋은 일도 있겠지만 삶 속에는 분명 죽음도 있고 친구와의 나쁜 관계도 있으며 마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잡다한 일들이 무한히 존재한다. 서로 엇갈리는 감정 속에서 가졌던 미움도 어느 사이 다시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고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되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감정도 어쩌면 성장을 해 가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아법사 이야기와 재밌게 얽혀 그들의 성장이야기를 들려준다. 학창시절을 부모의 갈등과 친구와 이성의 갈등을 겪으며 보내게 되지만 그것이 다 인생이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성장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것을 마법으로 없던 일처럼 깨끗하게 처리한다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있을까.
바닷가 절벽 추억전당포에 가서 엄마에 대한 추억을 모두 팔았던 하루토는 갑자기 자신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자 다시 자신이 받았던 만큼의 돈을 들고 가서 '엄마에 대한 추억'을 고스란히 찾아 온다.비로소 그 모든 지난 추억들이 자신에게 값진 시간이었음을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리카는 오랜시간 자신과 친한 친구이며 사랑하는 사이라고 알고 지내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아니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알게 되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 늘 왕따로 지내던 메이는 리카와 친구와 되면서 그늘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는다. 그들이 찾아간 '추억전당포'는 어쩌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들의 등을 토닥여 준 따듯한 '사랑방'과 역할을 하여 그들의 삶을 지켜본다. 마녀는 자신의 마법을 그들의 삶에 하나 적용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찾아가지 않은 추억은 반짝반짝 바닷속 불가사리를 만들정도로 인간의 삶에 무관심한 척 하지만 그들의 등을 늘 두드려주고 따듯한 차로 그들을 위로한다.
어쩌면 우리 살아가는 동안 '위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 공간이 제일 필요할 때가 자아가 성립하기 전인 시기인 사춘기인지도 모른다. 부모님과는 소통이 안되고 친구하고는 소통이 잘 된다고 하는 사춘기시절, 그들의 통을 토닥여주면서 슬프거나 나쁜 추억도 인생의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녀는 가르쳐 주고 있는 듯 하다. 추억을 돈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추억에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는 그런 기준도 없다. 삶에도 죽음에도 모든 시간들은 다 필요하고 내 주위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하루토에겐 엄마가 아픔만 주고 간 것 같지만 실은 그의 모든 추억속에 과거에도 미래에도 살아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거기에 있어. 왠지 그런 기분이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마녀가 아닌 친군감이 넘치고 달팽이 세마리가 유리창 청소를 하고 다람쥐까 따듯한 차를 끓여주는 바닷가 절벽에 위치한 추억전당포, 멋진 경관만큼이나 따듯하게 아이들을 감싸주면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당포가 아닐까.
처음 시작은 가볍다고 할 수 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렇지가 않다. 바닷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불가사리처럼 인생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지만 왠지 멋진 환타지속 이야기 같아 달콤하게 별사탕이라도 먹어가면서 인생의 의미를,삶에서 추억이 차지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친구도 가족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도 삶에는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좀더 가족애와 우정에 관하여 무관심보다는 관심으로 기울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추억전당포가 있다면 어른들은 누구에 관한 이야기를 추억전당포에 맡길까? 돈도 아이들보다 더 필요하고 맡길 추억도 많을텐데 정말 이런 곳이 있다면 대박날 듯 하다. 하지만 추억은 내 안에 존재할 때 비로소 그 값어치를 갖는 것 같다. 빈껍데게뿐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추억으로 간직되어질 때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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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전당포 이미지는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반짝반짝 추억전당포>에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물건들만 가득한 전당포일 것 같았다.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표지 그림처럼 책 속의 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를 읽는 느낌이었다.
해안가 절벽 아래 바닷가에는 마법사가 운영하는 전당포가 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아이들뿐 어른들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아니 어른들은 이곳의 존재조차 모른다. 아이들은 이곳에 자신의 추억을 맡기고 마법사에게 돈을 빌려간다. 마법사에게 맡긴 추억은 아이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다.
스무살이 되기전에 빌려간 돈을 가져와서 추억을 되찾아가면 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추억을 되찾으러 오지 않는다고 한다. 스무살이 되면 전당포가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스무살이 되도록 아이들이 추억을 찾으러 오지 않으면 그 추억은 반짝반짝 빛나는 불가사리로 변하여 절벽 해안가를 빛나게 해준다.
마법사는 무엇때문에 아이들의 추억을 받는걸까? 아이들의 추억은 각자에게 소중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낱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을텐데..세상 모든것을 마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사가 무엇이 부족해서 아이들의 추억을 사는걸까? 아무도 오지않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달팽이, 다람쥐. 고양이와 살아가는 마법사에게 아이들의 추억 전담품은 무료한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때문이다. 아이들의 맡긴 추억을 파일에 보관하고 수시로 파일들을 들여다보면서 흥겨워 한다.
전당포라하면 개인이 물건을 전당포 주인에게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곳이며 기한내에 맡긴 사람이 찾으러 오지 않으면 전당포 주인 맘대로 물건을 처분할 수 있는 곳이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원하는 물건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은 뛰어난 마법사라도 만들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상대로 추억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과 다르게 추억 전당포 마법사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싫고 좋고 화나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던 마법사는 아이들의 추억을 통해 서서히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감정을 터득하게 된다.
아이들이 맡길 수 있는 전담품에는 어떤게 있을까? 엄마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하루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그 아픔을 잊기 위해 추억 전당포를 찾아오는 메이, 할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드리기 위해 마법사를 찾아온 유키나리, 한교신문에 마법사에 대한 기사를 싣기위해 취재차 방문했다 마법사의 친구가 된 리카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기억에서 지워야 할 추억은 없다. 추억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행복이기때문이다. 엄마를 잃고 엉엉 울면서 맡긴 추억을 되찾아가는 하루토의 모습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른이 되면 추억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마법사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자신만이 가진 추억은 누구에게나 모두 다 소중하다. 추억 전당포에는 따뜻함, 아름다운 우정, 사랑 그리고 행복을 만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가끔은 가슴이 아리도록 아픈 일들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그것 또한 내 삶에서는 소중한 편린임을 깨닫게 해 주는 감동 가득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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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반짝반짝하다. 뭔가 특별한것이 가득할것 같은 추억을 맡아주는 추억전당포. 해안가의 절벽 바닷가에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추억전당포가 있다. 몇만년을 살아가는 마법사는 세상살이에 심심하지 않게 아이들을 상대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스무살 이전의 아이들은 마법사에게 추억을 맡기고 돈을 받을 수 있다. 마법사는 그 추억의 이야기를 듣고 적당한 가격을 책정해준다. 그리고 맡긴 추억은 스무살 이전에 찾으러 오면 찾아갈 수 있다. 추억을 맡기면 그 추억이 있었다는건 기억하지만 어떤 추억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른을 상대로 하면 돈과 얽히는 많은 복잡함이 있기때문에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도 스무살이 되면 전당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엄마와의 추억을 가져와 전당포에 맡기는 초등학생 하루토는 형을 따라 처음 이곳에 오게 되었다. 돈이 생기면 가지고 싶어하는 게임을 할 수 있기때문에 매일 사소하게 있었던 엄마와의 추억을 맡긴다. 물론 좋은 추억보다 나빴던 추억을 많이 남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토가 엄마와의 안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있었던건 아니다. 안좋았던 추억도 있지만 엄마에게 칭찬받았던 소중한 추억들도 하루토는 종종 마법사를 찾아와 맡기고 돌아간다.
리카는 신문부기자로 취재차 처음으로 마법사를 찾아갔다. 아이들을 상대로 아이들의 추억을 가져간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법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법사와 친구가 된다. 비록 자신의 추억은 마법사에게 맡기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도 상담하고 그렇게 마법사와 대화를 하면서 리카는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간다. 추억과 기억. 어쩌면 자신이 알고 싶어하지 않느 다른 사람이 보았던 자신의 추억을 들춰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유키나리와 친구 메이와의 얽힌 사실이 궁금하지만 그래서 진실을 알고 싶지만 마법사는 그녀에게 정말 그 장면을 보고 싶냐고 물어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하지만 한번 보게 되면 앞으로를 장담할 수 없다. 또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기억속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떤 특별한 능력이 생기게 된다면 나쁘다는걸 알면서도 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법사는 리카에게 그것을 가르쳐준다.
남자친구 유키나리가 뺑소니 당한 할머니의 기억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마법사를 찾아가지만 마법사는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마법사의 능력으로 그 사실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그 사실로 인해 그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이 때로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것이다.
엄마와의 추억을 맡기는 하루토의 엄마는 뺑소니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하루토는 자신때문은 아니지만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죽은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전당포를 찾아가 엄마와의 추억을 모두 다시 찾아온다. 마법사는 아무도 스무살 이전에 자신의 추억을 찾으러 오는 이가 없다고 했다. 그 추억은 그들에게 있었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하나의 사건일뿐이었다. 그렇기에 리카와 하루토를 보면서 인간의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말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마법사도 외로웠을지 모른다. 오랬동안 한 곳에 자리에 아이들을 상대로 전당포를 맡아오며 살고 있었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게 되는게 마법사도 힘들었기에 누군가에게서 잊혀지기보다 자신 스스로 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무살이 되면 전당포가 있었다는 사실도 자신도 모두 잊도록 규칙을 정했을 것이다.
리카는 어느덧 스무살 생일을 앞두고 있다. 추억을 한번도 맡긴적 없지만 그녀는 추억전당포를 잊고 싶지 않았다. 마법사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법사는 스무살 생일을 맞이한 그녀에게서 전당포와 자신의 기억을 삭제시키지 않았다. 물론 예외가 한번 생기면 끝도 없지만 마법사도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의 추억을 맡긴다는 설정이 참 재밌다. 추억을 맡기면 그 추억은 사라진다. 추억이 있었다는 정도만 기억할뿐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도 바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결국 그 기억도 가물가물 잊게 되고 우리는 새로운 추억을 다시 쌓아가게 된다. 나도 지난 나의 추억들을 되짚어 보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만약 스무살 이전의 학생이었다면 어떤 추억을 맡기고 싶었을까? 그 추억은 좋은 추억일수도, 때로는 안좋은 추억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힘든순간 좋았던 것을 추억하기도 하고 안 좋았던 순간도 지나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된다.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라고 한다. 추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을 하는것이라고 한다. 기억은 단순한 사실을 꺼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추억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것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는 감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도 지난 추억을 꺼내어 보게 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해안가 절벽의 바닷가에 가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법사가 나를 기다릴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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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추억전당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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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추억전당포 요시노 마리코 / 북로드 지금은 거의 사라져 찾기가 쉽지 않아져 버린 전당포.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모두 기억 하실 것이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겟지만 결국 '급전'이 필요해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얼마전 '생활의 달인'에서 전당포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사람들이 맡긴 물건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나와 이십여년 가까이 된 물건도 기억하곤 했다. 당시 주인은 이제까지 문을 닫지 않고 있는 이유는 혹시라도 다시 돌아와 당시에 자신에겐 중요했을 물건을 찾으러 왔다가 실망해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며 답했다. 주인도 당시에는 생계의 한 일환이었겠지 만 몇 십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그것을 초월한 듯 해 보였다. '마법사는 하려고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제어할 수 있어. 하지만 선택지가 많은 게 꼭 좋다고는 할 수 없어. 오히려 두고두고 고민하는 일도 있어' 바로 앞에 바다가 있는 곳에 위치한 테라스가 있는 빨간 지붕의 이층집. 이곳은 마법사가 운영 하고 있는 '추억 전당포'이다. 20세 미만의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한 진짜 마법사가 운영하는 전 당포. 마법사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추억을 사고 그들의 기억에서 해당 추억을 지우고 값어치에 따라 돈으로 환산해서 쥐어준다. 추억을 판 아이들은 20세가 되기 전에 언제든지 와서 이전에 받은 값을 지불하고 다시 찾아가면 되지만 성인이 되 갈 무렵의 그들은 '이전의 추억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인지 대부분 그런 수고는 하지 않는다. '추억이, 되지 않는다? '좋아했어'가 되지 않는 사람. 그 시절에는 좋았는데 하고 여겨지지 않는 상대. 몇 년이 지나도 좋아. 줄곧 현재진행형'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하루토'는 매일같이 이곳으로와서 자신의 엄마와 관련된 추억을 팔아버린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하면서. '메이'는 하루하루가 힘이들어 전날의 일들을 잊어버려야 살수 있을 것 같아 마찬가지로 매일 그날의 기억 - 추억 - 을 팔아 버린다. 그들의 중심에서 '리카'는 비록 추억은 팔지 않더라도 마법사와 그리고 그녀들과 함께 한다. '내가 인간을 재미있어하는 까닭은 서로 마주 보면서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야. 갖가지 오해를 해' 이미 모든 것을 알수 있지만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마법사는 '사람들'을 보며 흥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방관자의 입장만 고수할 뿐 아무런 조취도 하지 않는다. 철없은 아이와 엄마와 의 관계, 동급생사이에서의 왕따, 남자친구와의 문제, 신뢰와 질투사이에서의 갈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추억전당포' 안에 녹아있다. 어린시절 집옆으로 높게 자란 풀밭이 있었고, 옆산에 조금만 올라가면 산딸기가 가득 열려있고 지금과 같은 놀이터는 없었지만 언제나 아이들끼리 모여 북적북적 놀았던. 나름대로 많은 추억 들이 있었을텐데 억지로 생각해내려면 나지 않는 것으로 봐 우리동네에도 '추억전당포'가 하나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20세가 지나서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나의 추억을 간 직하고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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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진 않지만 사람은 추억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지난 과거가 단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겐 감정이 있기에 각색되어 나만의 추억이 된다. 그런 추억을 담보로 거래를 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마법사의 존재에 이끌려 지속적인 친분을 유지하는 리카는 청소년기를 거쳐도 마법사를 볼 수 있게 되지만 어린 시절처럼 모두가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쓸쓸하게 느껴진다.
추억이 아름다웠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난 시간들이 우릴 단순한 생물에 그치지 않고 존재감을 부여해주기에 추억은 소중하다. 이 전당포를 찾는 아이들은 저마다 소중하거나 잊고 싶은 추억들을 가지고 방문하는데 처음의 낯섦을 지나면 곧 친근함과 신기함에 끌려 지속적으로 마법사를 찾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성인이 되면 곧 잊는다니.... 무엇이 소중한지 보다 무엇이 효율적인지를 판단하는 나이라서 그런가 보다. 혹 노인이 되어 그리움에 찾는 사람은 없었을까? 불현듯 그런 궁금증이 일 정도로 추억전당포는 그저 잊히기엔 너무 아쉽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신선한 발상으로 다른 세계로 초대받은 듯한 들뜬 기분으로 읽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는 듯 여리고 부드러운 색감과 선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소녀감성의 풋풋한 아름다움과 도심의 이성적인 시선을 거두고 인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장소에 위치한 추억전당포는 노스텔지어를 제대로 자극하여 동화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온다 리쿠의 소녀적 감성이나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 추리물을 통한 따끈따끈한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괜찮은 발상으로 재미있게 시작했지만 그만큼 마무리에 대한 설정이 흐지부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간중간 깔리는 복선도 좀 작위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제 순수하게 내용만 따라가기 보단 구성을 보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표지는 파스텔 톤의 포근한 일러스트와 손글씨느낌의 제목이 어우러져 동화의 입구를 연상케 한다. 한동안 많이 삭막했었지. 이렇게 따뜻하고 투명한 느낌을 만끽했던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지금 우리는 너무 돌진하는 나이인 걸까? 그런 시대인 걸까? 어느새 경계에 대한 뚜렷한 구분과 선명한 색감 같은 생활을 추구하게 되면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인생을 무료하게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무료하게 살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습관이 남아서 아직도 간단명료하고 비효율적인 부분은 과감하게 배제하는 생활을 하면서 나의 감성 역시 정리되고 축소되었나 보다. 가뜩이나 현실감각 없는 나에겐 늘 읽어선 안되겠지만 가끔은 이런 서정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당서평은 북로드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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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다. 잊고 싶은 추억 간직하고픈 추억, 어떤 것이든 추억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린 추억과 함께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억은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그런데 만약 지우고 싶은 추억이 있다면, 지워 버렸던 추억을 필요할 때 되찾을 수 있다면, 일상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혹 좋지 않은 추억을 지워버린다고 마음에 맞는 순간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추억이 사라짐으로 최소한 마음의 짐이나 고통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추억을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우린 다행스럽게도 망각이라는 지우개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추억 지우개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망각은 좋은 기억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나쁜 기억만을 쏙쏙 뽑아내어 팔 수 있다면 어떤 추억을 버리고 싶을까
어른들이 간직하고픈 추억은 무엇일까? 세상에 찌든 그들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추억한다. 그들은 누구도 자신의 현재 모습을 추억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순간은 추억으로 기록된다. 인간이 존재하는 건 추억을 회상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속의 유토피아를 찾는 것도,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을 기다리는 것도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 깊은 추억의 잔존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은 어른들보단 어린이들에게 어울린다. 최소한 아이들은 싫고 좋음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짝 반짝 추억 전당포’는 한편의 동화 같은 소설이다. 절벽을 가로질러 바닷가에 위치한 마법사의 집은 자체로 신비로운 기운을 연상시키고 마음의 짐(?)을 덜기위해 가파른 절벽 계단을 내려오는 이들은 대부분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아이들, 어쩌면 저자는 서로 간에 믿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상을 훌쩍 들춰내어 추억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끄집어 내려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추억을 팔기위해 마법사를 찾아온다. 마법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격을 흥정하고 보다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추억은 적지 않은 가격을 매겨준다. 어떤 아이들은 쉽게 돈이 생기는 것에 혹하여 추억을 팔려하고 어떤 아이들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추억을 판다. 하지만 추억을 팔려는 그 누구도 추억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린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오래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마법사의 흥미와는 달리 아이들의 추억은 어느 순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 언제였는지를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왜 아이들은 즐거움만을 기억하려는 것일까? 인간 본래의 속성이 즐거움에 기반을 두고 있을지라도 인생은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즉, 고통이 있어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린 흔히 이별의 순간에 추억 만들기란 거창한(?) 표현을 사용한다. 보다 성숙된 자신을 위하여 추억은 속속들이 우리의 현재를 마주보고 있다.
엄마가 싫은 하루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메이, 추억을 사고파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마법사와의 대화를 즐기는 리카, 그리고 이들의 틈에서 추억이라는 시공간을 만들어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추억은 혼자 만들지 못한다. 추억은 누군가와의 교점이 성립해야하며 서로의 감정이 오고가야한다. 이러한 감정의 흔들림이 곧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추억으로 기록된다. 추억은 슬플 수도 기쁠 수도 있지만 슬프기만 한 것도 기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오래된 시간을 기억하는 건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사유임에도 추억을 한낱 물건으로 취급한다면 자신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린 누구나 감추고 싶은 추억이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자신의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보내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일지 충분한 공감이 갈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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