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중요한 대목을 보통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다 이룬 경지나 다름 없다. 닦아 가는 입장에서 보면 내 마음속에 팔만사천의 업장이 꽉 차 있는데 어떻게 '응무소주이생기심'을 바랄 수 있는가. 올라오는 감정이나 생각에 끌리지 않고 생각 하나하나를 바쳐서 항복 받다보면 응무소주이생심은 그냥 되어진다.
탐심을 깨치라 함은 육체를 영위함에 필요한 것들을 전혀 끊을 수는 없으니 자신에게 알맞은 양을 깨달아 그 이상을 취하지 말고, 진심을 참게 되면 용수철을 누르는 것과 같아 더 큰 힘으로 폭발하거나 위나 가슴등에 질병이 생기니 올라오는 진심을 각자의 믿는 분을 향해 바쳐야 한다. 치심은 곧 자기 잘난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가 잘 알 수 없으므로 평소에 자꾸 닦을 수 밖에 없다.
마음 속 분별은 끝이 없으므로 계속하여 바치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으면 나지 않는다는 그 생각에다 바쳐야 한다. 바칠 때에는 눈을 감지 말고 바쳐야 한다. 눈을 감고 정진을 하면 앞이 깜깜하여 모른다 안보인다는 생각을 증하게 되므로 눈을 감더라도 반쯤은 뜨고 하여야 한다. 잠을 잘 때에도 불을 끄고 되면 까깜하므로 모른다는 것을 증하게 되어 그만큼 공부가 늦어지게 된다. 밤이든 낮이든 대낮처럼 밝아야 마음의 성리가 밝아지게 된다. 재양은 모른다 깜깜하다는 생각에서 발생한다.
누군가와 얘길할 때나 들을 때에도 부지런히 바쳐라. 상대가 화가나서 얘길할 때에도 바치면서 듣게 되면 상대가 쉬게되고 바치면서 얘길 하게되면 감정이 조절되고 더 밝은 지혜가 떠오른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순간에도 바친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바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