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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이 책을 읽을때면 아빠가.. 무슨 제목이 그러냐며 타박을 주곤 했어요. 원제는 블루칼라 화이터칼라 노칼라.. 인데.. 이 책이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과 '직업의 광채' 이렇게 두권으로 나뉘어서 출판되는거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영문제목이나 우리나라에서 나온 제목이나 다 '일'을 이야기 하고 있죠. 블루칼라는 작업복을 화이트칼라는 남자들이 정장안에 입는 하얀 셔츠를 상징해요. 그래서 흔히 블루칼라는 육체노동자들을 이야기하고, 화이트컬러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죠. 그러면 노칼라는 무엇일까요? 이들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자율적으로 일하는.. 즉 정보산업체에 고급인력들을 말한대요. 솔직히 전 정보산업체보다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이 가장 노칼라스럽지 않았나라고 생각했어요. 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일어난 분화를 상징하는 말보다는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이라는 제목이 더 이 책을 잘 이야기해주는거 같아요. 그만큼 일에 대한 사명이나 보람을 이야기하거나 미국의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된다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거든요. 정말 현실속에서의 일이랄까? 그래서 여러 작가들이 다룬 '직업'이라는 테마를 잘 설명해주는 원제이지만 책을 읽고나면 한국에서 갖게 된 제목이 더 그럴듯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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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나 직업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회 문제의 대부분이 일자리 부족으로 벌어지는 일인 것만 같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여의도 칼부림 사건도 직장 내 갈등관계가 발단이었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 때, 이 유명한 소설가들이 일이나 직업에 대해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만발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설가들이 일이나 직업에 대해 뭘 알까 싶기도 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우리 심정을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
결론은, 그들은 역시 ‘소설가’였다는 것. 맥스 애플은 전업주부가 사업을 시작할 때 그 앞에 가로놓이게 될 긴장과 망상에 대해 농담을 던졌고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갈수록 부를 축적하는 경영자와 코딱지만 한 집 하나 사람 사는 모양새로 가꿔놓지 못하는 일개미 직원의 불균형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일종의 발칙한 계획을 긴장감 있게 그렸다. 리처드 포드는 이 이야기가 대체 직업과 무슨 관계야 싶게 만드는, 총망받는 직업인 남편과 무직에 가까운 아내 사이의 배신과 애증을 다뤘고 마지막 소설인 에드워드 존스의 <가게>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했다.
소설의 형식도 각자 달랐고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라든가 소설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 그 모든 게 저마다였다. 그렇지만 첫 번째 소설 <사업 이야기>는 ‘출발’이었고 마지막 소설 <가게>는 ‘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이 책은 원래 한 권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한국어판은 분량상 두 권으로 분권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권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췄다는 흡족함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가게>가 왜 그렇게 뭉클했는지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생각해보고 싶다. 결국 일을 열심히 하느라 주인공은 애인과 헤어졌고, 주인공의 일터도 이제는 문을 닫게 되었는데 말이다. 나에게도 일과 직업이 <가게>의 주인공만큼이나 무척 소중한데, ‘난 내 일이 좋다’고 말하면 ‘일중독’이라고 오해받을 것 같은 마음이 있다(나는 대부분의 저녁을 집에서 먹는, 그러니까 야근 마니아는 아니다). 주인공이 일이라는 게 자기 인생의 아름다운 한 시절을 망쳤던 방해물이 아니라 그 시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조연이었다고 보았기 때문일까. 일이 내 행복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노라고 말해주고 인정해주는 것 같아 오히려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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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읽은 2권 덕분에 주문해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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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요즘 이 책을 읽었다. 철도 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지금.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제목을 현 우리 정세로 풀이해보자면 <개 같은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이 되겠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쓰인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이다. 단편소설의 대가인 존 치버, 조이스 캐럴 오츠를 포함하여 17인의 작가들 작품이 한 권에 담겼다. 물론 이런 모음집의 특성상, 작품들의 편차는 좀 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예를 들어 조지 챔버스의 3페이지짜리 엽편소설인 (내 아버지가 플랭클린 D. 루스벨트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는 도대체 왜 이런 제목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는 아리송한 작품이다. 직업 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나’가 선셋힐 하우스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작품인데, 그냥 관찰로만 끝나지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느낄 겨를도 없이 작품이 끝나버린다. 물론 내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반면에 리처드 포드의 <사각지대>같은 작품은 단편소설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집주인이 초대한 파티에 가기 위해 스티븐 리브스와 그의 부인 마저리 리브스가 차를 타고 가고 있다. 그런데 별안간 마저리가 남편에게, 일 년 전 집 주인인 조지 니콜슨과 잠자리를 한 적이 있다고, 지금은 다 지난 일이므로 남편이 이 일로 이성을 잃지 말고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남편은 그냥 평범한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이고, 집 주인은 덩치가 크고 스쿼시를 즐기며 가슴팍이 듬직하고 팔에 털이 부슬부슬 나 있는 예일 변호사였으며, 자기 소유의 요트를 타며 쉰 살부터는 소송 일에서 물러나 라켓 경기와 시니어 스크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여간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 스티븐은 아무 말 없이 차를 갓길에 세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백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적신다. 이러다 어쩌면 다른 말도 영영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티븐이 입 밖에 내놓은 단어는 무슨 이유에선지 “지상 교란”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기 도로 앞에서 길을 건너던 너구리 한 마리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치인다. 차는 그냥 떠나버리고 너구리는 그저 거기 가만히 있었다. 너구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 빨리 내려서 너구리를 도와주라고 착한 척 하는 와이프 때문이었을까 스티븐은... 뭔가 음습한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스릴러에 평범한 노동자의 심리 변화가 아주 세심하게 묘사되는 작품이다.
이 밖에 재밌는 작품이 많지만 제일 재밌는 단편은 러셀 뱅크스의 <걸리>다. 걸리라는 동네에서 펼쳐지는 꽤 하드보일드 한 소설인데, 버스운전사, 빵집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가 각각이 맞닥뜨린 사건을 통해 동네의 무뢰한들을 죽여 버리고 아예 그런 범죄자 응징을 직업으로 만들어 성공한다는 내용.
걸리에 진정한 영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중략) 이미 부자인 사람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데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냉소적으로 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에게 일이란 인생 아닐까? 그것이 화이트칼라이든 노칼라이든 우리는 일을 통해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문득 나의 일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지금 이 일은 내 평생의 시간중의 대부분을 투자해도 좋을, 그런 일인가? 두 번째 책 <직업의 광채>를 읽으며 생각을 해답을 찾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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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업 이야기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게 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회피를 하기 위하여서 고군분투를 하는 가정주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만의 일상을 유지를 하기 위한 방법을 찾지를 못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점포를 운영을 하기 위하여서 찾아가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상을 벗어나서 벌어지는 일들이 꼭 환상속의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 걸리 이웃하고 있는 주민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희망을 버리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얼마나 회색으로 보이는 생활일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볼수가 있는 기회를 제공을 합니다. 살인강도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일상인 동네에서 자신의 일에 끼어드는 무뢰한을 폭력을 이용을 하여서 처리한 세명의 사람이 다시 한번더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자신들의 미래와 함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을 이용을 하여서 무엇을 할수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것을 이용을 하여서 현실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 나와 맨디블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하여서 다시 한번더 생각을 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데 나이를 먹은 성인이 초등학교 학생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그러한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는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현상인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자신이 위치를 하고 있는 자리에 의하여서 좌우가 되는 인상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4. 부당한 일 자신은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하였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일에 대하여서 대응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자신의 받은 대우가 아주 비적절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무엇을 사용을 하여서 공격을 할수가 있는지에 대하여서 알아보고 그러한 공격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마음의 고통을 받을수가 있는지에 대하여서도 알수가 있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각종 일에 종사를 할수가 있는데 그러한 여러가지의 일들중에서도 블루칼라라고 할수가 있는 노동직에 종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기연민과 함께 나름의 멋을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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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제목으로 인해 만나기전부터 기대됐던 이 책..
책을 받고는 만만치않아보이는 두께에 살짝 긴장했었다. 17명이 쓴 단편을 리처드 포드가 모아서 책으로 펴낸 이 작품은 다양한 작가들의 필력을 볼수있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을 판단하는데 "어떤 일을 하고있느냐?" 가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서문의 글을 읽고는 전업주부인 나로선 동감하면서도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떠올려보면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할때 나는 무의식중에 "그 사람은 무슨일 하는데?" 라고 묻곤한다. 요즈음처럼 취업이 힘든 세상에서 그의 직업의 유무로 그의 가치나 인간성을 결정하는지까지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의 직업으로 그의 가치관을 미루어 짐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곤했었다~ '일'에 대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 의구심을 가지면 읽기 시작한 이 책에서 나는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되는~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되는 작품을 만났다. '사업이야기'를 읽고는 남자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란 느낌을 받으면서 불폄함을 느꼈고.. '걸리'를 읽고는 '인생역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통쾌함을 맛보기도했다. '나와 맨디블 양'을 읽으면서는 화자의 말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어야하는걸까? 의구심에 사로잡혔고.. '부당한 일'을 읽으면서는 나 자신이 콜먼의 입장이 되어 울분을 느꼈다! '일하는 여자'를 읽으면서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도통 이해되지않았고.. '자파토스'를 읽으면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이모부'에게 박수를 맘껏 쳐주고픈 열망을 느꼈다! '드러먼드와 아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았고.. '뉴저지,에디슨'을 읽으면서 내가 흔히 보곤하는 택배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위대한 실험'을 읽고는 모래위의 위험한 성을 떠올렸고.. 마지막에 쓰인 '가게'를 읽으면서 성실한 한 남자의 이야기에 만족감을 느꼈다.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것..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 어떤 의미인지 감을 잡을수있게 되었다. 각각의 작품이 짧막해서 부담이 없었던 책.. 이사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내게 그래서 더더욱 시기적절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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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제목부터 참 강렬하다. 특히 '개 같은'이라는 거친 표현 때문에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볼 수 없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런 표현을 쓰는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했다 싶기도 했다. 표지는 한 술 더 뜬다. 호숫가 같은 곳에서 거꾸로 처박혀 있는데 튜브는 왜 있는걸까. 죽고 싶지만 동시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건가?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축구 선수, 대통령, 가수, 선생님 등 다양한 대답을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스스로도 잊어가고 나중에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어릴 때의 장래희망이 실제 직업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들 등 주목받는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놓았다. 주제는 '일(work)'이고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시리즈 이름이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라서 그런지 정말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마치 '일'을 주제로 백일장을 실시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목과 표지가 우울해서 그런지 내용도 밝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였다. 아, 어쩌면 내용이 우울해서 제목과 표지를 그렇게 정한 게 순서일지도.
배경은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이 땅에서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새로 사업을 시작해보려고 하고, 사소한 혹은 중대한 문제로 골치아파 한다. 정확히 일(work)이라기 보다는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역할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책임감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 시리즈에 넣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다행히 내용은 괜찮았다.
편저한 리처드 포드의 서문을 장엄하게 읽고 단편을 한 편 한 편 읽었다. 차례대로 읽다보니 앞쪽에 우울한 작품이 많았다. 너무 담담하게 표현해서 내가 잘못 읽었나? 싶은 내용도 있었다. (총으로 강도를 쏘았다는 표현 같은) 그러다 여섯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 숨통이 트였다. 다섯장이 채 되지 않는 이야기였는데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게 진짜 괜찮은 단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톰 코라게선 보일의 '자파토스' 였다.
찰스 담브로시오의 '드러먼드와 아들', 안드레 더뷰스의 '배달'같은 현실성 있고 왠지 내 주위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있는 반면 도널드 바셀미의 '나와 맨디블 양'처럼 소위 멘붕이 오는 작품도 있었다. 아직도 내용이 헷갈린다. ^^; 존 치버의 '사과의 세상'은 느낌이 괜찮았다. 유명 작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달까? 속된 작품을 쓰고는 스스로 태워버리고 자신의 본능적인 행위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였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1권은 전체적으로 우울 이였다면 2권은 부디 희망이길 바란다. 아무래도 제목대로라면 -직업의 광채- 희망을 가져도 괜찮겠지?
제목을 다시 보면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로 표시되어 있다. 판타스틱한 나의 일만 굵은 글씨다. 그렇다. 어쩌면 나의 일은 판타스틱한 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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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도, "일"이야기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루종일 대부분의 생활을 일터에서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터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우리에게 유쾌함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일정한 금전적 보상때문에 피치못하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측면에서 "일"이라는 단어는 '보람'보다는 '의무'에 가까운 단어인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껄끄러운 단어를 소재로 다룬 단편소설들의 모음이다. 특정 주세의 단편 소설들을 정성껏 모아둔 책. 흡사 특정 주제의 컬렉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이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다양하다. 정시에 출근하여 일을 끝내고 퇴근하는 기본적인 구조에서부터 노동과 사업, 소명과 허드렛일, 예술과 성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일(직업)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 탓에 소재의 제한도 없고, 공간적인 제약도 없이 다양한 관점으로 일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자기계발서적을 주로 읽던 나에게 오랫만에 글읽는 재미를 준 책이다. 총 17편 모두 각자의 칼라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존 치버의 '사과의 세상'과 데보라 아이젠버그의 '설계의 결함'을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은 이미 독자의 것이리라. 즐거운 맘으로 다양한 일(직업)을 만나보길~!
초강력긍정주의자
한 작품을 읽는 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니, 일에 지친 어느 저녁 날, 혹은 일하러 가기 싫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 편씩 꺼내 읽으면 좋지 않을까. p.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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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지어 말할수는 없었겠지만, 그들이 하는 일로 그들이 어떤 사람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의 성품이란 기묘한 개념 전체가 바늘 위에 올라선 것처럼 무척 불안하게, 비정상적으로 불안하게 비춰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