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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레이코의 말인 '기억의 잔존'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왜 이 책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한 텔레비전 광고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는 장면을 시작으로 닥친 하루키 열풍에 나도 동참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었는데 국내에 들어오면서 다시 지은 제목이 더 좋았다. 시대에 맞물려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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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은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실과 고독을 견디는 법에 대한 기록처럼 읽힌다. 책장을 덮고 나면 줄거리보다 분위기와 감정의 잔향이 오래 남는다. 이 작품은 화려한 사건 전개보다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와타나베의 시선은 담담하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설렘이나 기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어려운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나오코의 불안정함과 미도리의 솔직함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결국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청춘’이 반드시 밝지만은 않다는 점을 정면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젊은 시절을 빛나는 시간으로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혼란과 방황,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 어둡고 불완전한 시간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든다.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과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깊이 파고든다. 격렬하게 울리기보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문체 덕분에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해지면서도 어딘가 먹먹해진다. 음악, 술집, 기숙사 방, 산책길 같은 일상적 공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장면들이 하나의 정서적 배경음처럼 작용한다. 마치 오래된 LP판을 듣는 느낌과도 닮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함께 있어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은 상대를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고 곁에 머무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짊어질 수 없다는 현실이 때로는 차갑게 다가오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또한 상실을 겪은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가 은근히 흐른다.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사람은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계절은 바뀐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소설은 거창한 희망을 외치지 않지만, 그 조용한 지속성 자체가 위로가 된다. 감정선이 섬세한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내면 묘사가 중심이 되는 소설을 찾는 사람, 그리고 한 번쯤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빠른 전개나 강한 반전을 기대한다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느림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깊이가 있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면서도 묘하게 따뜻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놓아보냈던 순간,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과 겹쳐 읽히는 하나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작품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단지 이야기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물들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무력하며, 또 어떤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따뜻함을 보인다. 그런 모순적인 모습이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과 닮아 있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읽는 동안 여러 번 멈춰 서게 된다. 특정 문장에서 감정이 툭 건드려지듯 올라오고,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번진다. 특히 관계 속에서의 침묵, 말하지 못한 감정, 끝내 닿지 못한 마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말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를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소설은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올 것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읽을 때는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지만, 어느 순간에는 삶과 죽음, 성장과 선택이라는 더 큰 질문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삶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펼쳐보고 싶은 이야기로 남는다. #노르웨이의숲 #무라카미하루키 #일본문학 #청춘소설 #상실과사랑 #감성소설 #추천도서 #책리뷰 #고독 #내면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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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는 어떤 모습이었지? 대학엘 다녔고, 회사에 다녔고, 그리고 20대의 끝자락에 결혼을 했다. 나는, 내 청춘은 무엇을 위한 고민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치열했고, 전쟁 같았고, 찬란했을 거라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 조차 알지 못했기에 우린 고민하고 고뇌했는지 모른다. 인생에 대해, 결혼에 대해, 사랑에 대해,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누군가 내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 물으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다시 수많은 고민들을 안고 살고 싶지 않다고. 그렇다고 지금... 내가 고민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젊음은 좋을 수 있지만 이젠 미숙한 건 피곤하다. 지금 완숙함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보다 아주 조금 자랐으니 그 자체로 만족한다.
평소 하루키의 소설은 나와 맞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몽환적이고 난해한 느낌의 그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오랜 명작이라고 하는 ‘노르웨이의 숲’은 궁금했다. 그가 써 내려간 청춘에 대한 이야기. 물론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가 우리와 달라 100% 공감할 수는 없어도 하나의 생각 거리라도 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간 책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하루키의 책은 아니 소설은 나와 많이 버석거린다는 거.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늘 함께 한 친구가 있었다. 기즈키와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 셋은 만나면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기즈키의 자살로 균열이 생긴다. 열아홉. 와타나베는 도쿄의 한 사립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나고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대학 생활을 한다. 둘은 가끔 도쿄에서 만나 특별한 연민과 애정을 나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나오코는 자신은 지금 요양원에 와 있다며 편지를 보내고, 와타나베는 그곳으로 나오코를 찾아간다. 요양원으로 찾아가던 와타나베는 자신이 나오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과는 별게로 같은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다른 매력의 아가씨로 와타나베의 일상에 개입하게 된다. 나오코와는 다르게 발랄하고 명랑하고 거침없는 미도리...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와타나베는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스무 살의 시간을 살아가는데...
내 스무 살은 확실히... 나오코나 미도리 그리고 와타나베와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다는 스무 살의 혼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이 책이 왜 명작인지도... 확실히 나는 명작을 구분하는 촉이나 느낌이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남들이 좋다고 나까지 좋은 건 아니지.. 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하루키 특유의 문장들과 표현들. 어떤 때는 그것들이 참 좋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거북할 때가 있다. 또한 지금처럼 이런 내용이라면 더욱. 청춘이 가진 매력은 다양한 혼란과 다양한 고민과 다양한 사랑일 수 있지만... 청춘이기에 의미 없는 섹스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왜 이런 표현들이 거북한지 모르겠다. 역시.. 나와 하루키의 장편 소설은.. 맞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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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너보다 열배는 더 노력할꺼야." "그렇겠죠."나는 인정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가끔 세상을 둘러보다가 넌덜머리가나. 왜 이 인간글은 노력이란 걸 하지 않는거야. 노력도 않고 불평만 늘어놓을까 하고."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나가사와를 쳐다보았다.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내가 뭘 잘 못 본겁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나가사와는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건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거야." - 398,399
노르웨이의 숲,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중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노력의 재정의를 해버린 하루키에게는 외경심밖에 들지 않는다.많은 이들이 노력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노력이 아니라 노동이다. 때문에 자신이 갈망하는 삶을 이루지 못한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항상 노동을해왔던 존재로써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 이제는 형식적인 노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력을 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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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오래전에 읽고 다시금 저자의 책이 읽고 싶어 구매하였습니다. 오래 전, 일본 서점에서 원서 문고판을 본 적이 있는데 상/하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빨간색 표지, 초록색 표지가 있어서 본 양장판도 그러한 표지 디자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책이 전해주는 이미지가 붉은색, 초록색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나오코는 나를 사랑조차 하지 않았다는 제 1장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인상적인데요 나오코와 미도리, 와타나베를 함께 보면서 다시금 오래 전 읽었던 여흥을 느끼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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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가니까 이런 책을 찾게 되고 스무살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까맣게 잊었던 일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늘 머리속에 남아서 무슨 계기만 되면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며 나타나는 어떤 사람! 사실 하도 매스컴이나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책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바쁘고 여유롭지 못하다는 핑계로 발간되고 20년이 지나서야 처음 책을 사서 읽어 보게 되었다. 회사일로 엄청 바쁜중에도 거의 600페이지나 되는 책을 3일만에 정독해서 읽게 되었다. (내딴은 엄청 빨리 읽은거임) 그리고 그 후유증이 1주일은 갔던거 같다. 아련한 그 시절의 풍경들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였다. 오랜만의 어릴적 기분을 되살리니 괜찮은거 같아 약빨이 떨어질 즈음 다시 한 번 또 읽어 봐야겠다. 중년의 감성적인 아저씨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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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읽었던 상실의 시대의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정확할 듯 싶다. 내용은 당연히 같기에 특별히 색달라 보이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책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뭔가 시공간을 훌쩍뛰어 넘는 느낌이다. 그 때는 뭔가 어렵고 두렵다는 느낌도 많이 받은 상태에서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었는데..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나서 그런건지 몰라도 술술 읽히는 게 새로운 감정이 든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다. 어쩜 예전보다 지금 이 시점에 책의 내용에 더 공감이가고 뭔가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감정도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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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마음 한켠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보았다. 모두 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가 강한 사람은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이 심지가 약한 사람보다 강하여 그것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쩜 시기가 적절했다고 해야 할지, 현재 내가 많이 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된 게 지금의 나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함께 견뎌내보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불완전함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며 살아왔건만, 요즘의 나는 나의 불완전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이 책은 하나의 힐링이라기보단 한 번 더 마음을 잡게 만들어주는 지표 같은 책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있어 불완전한 순간에 나를 잡아주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에게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책 마지막 장에도 나왔듯이 나오코의 무너짐과 죽음으로 인해 주인공이 한없이 저 깊은 수렁으로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은 떨어져 버린 수렁 속에서 미도리라는 사랑의 줄을 잡고 다시 한 번 일어서는 주인공이었으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작게 든 크게 든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주인공을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작게 든 크게 든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마지막 소설 끝의 주인공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끝, 그 이후의 주인공이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미도리와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나오코의 몫만큼 행복하기를 바란다. 끝까지 자기 자신을 놓지 않은 와타나베가 기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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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로 번역되었던 기존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나온 표지가 너무 예뻐서 구입하게 되었다 원제를 살려 특별하게 제작된만큼 더욱 기대가 됐다.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여러권 읽어보았는데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고 싶었다. 하루키 특유의 문체와 감수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소설 두고두고 곱씹으며 기억속에 남을듯하다 |
| 극도의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 나가사와. 그것이 '개인주의'라고 불러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만을 위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아무렴 어떻든 좋다. 하지만 스무살도 안된 십대의 나이에도 나가사와의 그 개인주의적인 생각에 물들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주관을 뚜렷히 표현하되 다른 사람의 입장, 생각 등을 고려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와타나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느낄 생각이나 판단에 대해서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이 둘의 대비되는 가치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은, 스무살인 와타나베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아무것도 몰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