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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장 말하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가장 너스레가 많은 사건, 전쟁
"인류가 가장 말하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가장 너스레가 많은 사건, 전쟁" 내용보기
발음하기도 힘든 저자 비엣 타인 응우옌이라는 베트남께 미국 작가의 '동조자'라는 소설을 어떻게 손에 잡아 읽게 되었었다. 그리고 그 작가는 사실 소설가라기 보다는 학자라고 하면서, 베트남 해방전쟁에 대한 분석글을 썼다고 하는 설명을 보고, 이 책도 골라봤다. 둘 다 참 문장이 읽히지 않는 편이었다. 두 책의 번역자가 다른 걸 보면, 번역상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인류가 가장 말하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가장 너스레가 많은 사건, 전쟁" 내용보기
발음하기도 힘든 저자 비엣 타인 응우옌이라는 베트남께 미국 작가의 '동조자'라는 소설을 어떻게 손에 잡아 읽게 되었었다. 그리고 그 작가는 사실 소설가라기 보다는 학자라고 하면서, 베트남 해방전쟁에 대한 분석글을 썼다고 하는 설명을 보고, 이 책도 골라봤다. 둘 다 참 문장이 읽히지 않는 편이었다. 두 책의 번역자가 다른 걸 보면, 번역상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부질없이, 프랑스 문화권에 오래 식민화된 베트남 지식인의 특성인가 생각하다가... 저자는 거의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도 아닌거라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하여간, 문장을 참 난해하게 쓰는 거의 철학자이다. 그리고 그가 대상으로 하는 철학이 전쟁, 그것도 제국을 대상으로 승리하였으나 뭔가 반쪽만 인정받는, 그리고 많은 일들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전쟁이니, 아무래도 그 정서와 논리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동조자'에 등장하는 영화제작에 대한 저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있게 접해본 것 같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에 대해, 정말 강력하게 반발하는 그의 입장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휴전국이고, 승리한 북베트남의 입장이나 패배한 남베트남의 입장과 동일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베트남에 대한 것과 또 다르니, 미국의 주류문화의 해석에도 쉽게 동의하거나 반발할 정서에서도 거리감이 있을 듯 하다. 어쩌면 식민지 시대를 겪고 난 후 일본에 대한 생각과의 유사성이 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어쨌거나, 평생 살아오면서 조선이전의 역사에 나오는 전쟁 이야기 말고는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그리고 걸프전과 지금의 이란전쟁 등 거의 모든 전쟁이야기에 대해 미국의 시각이 지배적인 스토리들에만 익숙해온 입장에서, 저자의 전쟁에 대한 시각은 설명하기 어렵게 새로웠다. 

"... 미국 전몰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워싱턴 DC에 있는 추모비는 약 137미터이다. 같은 간격으로 베트남 전몰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비슷한 추모비를 만든다면, 그것은 아마 15킬로미터에 이를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이것이 기억의 현실이며, 그 속에서 미국 병사들은 희생자이고, 300만 베트남인들은 그저 한통속으로 전체주의자들일 뿐이다..."

모든 통계수치를 어떻게든 피부에 닿게 표현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 또한 말 그대로 살떨리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최적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자신들의 해방전쟁에 대한 주류 선진제국의 무심함이나 억지스러운 왜곡이 저자의 메인 주제는 아니다. 저자는 앞부분에 "여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그 전쟁의 정체성은 전쟁 그 자체의 정체서과 명확히 구별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그는 파묻힌 베트남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서의 부조리를 분석하려 하는 듯 하다. "... 그러나 모든 전챙의 시작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고 끝은 결론이 나지 않는 채 이어가기 마련이다...." 어떻게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지가 이 책의 주제라고 말할 법 하다고 본다. 

약소국이 그리고 그 국민들이 전쟁을 기억하고 이어갈때 느낄 수 밖에 없는 억울함을 일단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이러한 불평등의 한 징후는 미국이 실제로는 그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베트남을 제외한 전 세계 문화 전선에서 벌어지는 기억 전쟁에서는 승리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입장이 단순히 승리한 '북베트남'의 입장만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은 앙었다. 저자는 패주한 남베트남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저자의 소설 '동조자'에서 거의 처음 접하다시피한 입장이 남베트남 피난민들, 그들 중의 지배층과 그 후손들이 가지는 정서였다. 미국이 생명의 은인이지만 감사할 수는 없고, 북베트남 동족들을 그리워할 수도 없는... 그런 이들에게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기억 말이다. 

"... 기억과 망각의 기본적인 변증법은 우리의 인간성을 기억하고 비인간성을 잊는 것이다. 역으로 상대의 비인간성을 기억하고 인간성을 잊는 것이기도 하다. 그 대신 공정한 기억은 윤리적 기억에서 변증법의 마지막 단계를 요구한다. 자신의 기억을 상대방의 기억으로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비인간성이 어떻게 서식하는지 보고 기억하는 윤리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전쟁에 대해 말하면서 제대로 기억할 수 없을 때, 과거의 곤혹스러운 무게를 우리는 명백히 느낀다. ... " 말한 것처럼 3각의 관계에서 서로간에 잊고 기억하는 변증법 정도를 고민하다보면, 전쟁 그 자체에 대해 생각이 확장될 것 같기도 하다. 유쾌하지 않을지라도. 그러다보니 "... 우리가 저질렀거나 용인해 온 잔혹한 일은 언급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을수록 유리하다. 게다가 정말로 결코 잊지 않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인간성과 타자의 비인간성이다..."  약간 서늘해졌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과 타자의 비인간성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지옥의 묵시록도, 디어헌터도, 람보도... 미국의 인간성과 베트남의 비인간성을 기억하려 했고, 그 기억의 전쟁에서 남겨지는 기억들도 그렇다. 하지만, 남베트남인들이 기억하고 싶은 자신들의 인간성은 무엇이며, 북베트남과 미국의 비인간성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해 이전에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타자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스스로 절대 악을 행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결국 악을 행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것이 캄보디아와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난 많은 나라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캄보디아를 끌어들이면서 북베트남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한 셈이라고 본다. 약자들의 비인간성말이다. 한두번 비틀어보면, 우리의 4.3이나 빨치산, 인민재판, 나아가 광주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후반부에서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하게 되는 베트남출신 예술가, 대부분 작가 또는 영화감독에 대해 여러가지 평을 한다. 그 언급되는 작품들 전부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뜩이나 난해한 분석에 대해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 작가와 목격자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듣거나, 기억하기 꺼리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하는 윤리적 요구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잊히지 않는 괴로움을 진정시키기보다는 영속시키게 된다고 할지라도..." 무슨 소리일까 했는데..."... 작가, 예술과, 그리고 비평가들이 휘두르는 상징 권력은 여러 가지 위해를 가할 수 있다. 소수자와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쥐면 결과적으로 해를 끼치게 된다. 소수자와 예술가도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진다. 소수자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소수자가 단순히 무기력한 피해자이거나 역사의 수동적 존재 혹은 낭만적 영웅이 아니라 인간이면서 동시에 비인간이 행위자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자신이 분석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소수자의 비인간성을 표현했는지를 지적하고자 하고, 그 분석의 지평을 미국의 작가들, 그리고 일반적 서구 작가들의 입장으로 확대하려 하며, 그와 동시에 베트남이나 몽족, 그리고 한국계인 이창래 작가까지 넓히고자 한다. 작품속에서도 실제 사회에서도 "...윤리는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주거나 가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면서 우리를 시험한다..."라고 하면서. 가장 잔혹한 인간사의 사건인 전쟁을 통해서 분해되는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 같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상당 부분 내용과 분석의 정서(그 이전에 그 작품들의 정서)를 따라가지도 못했기에 한계는 많지만 그래도 작자의 입장을 몇가지 발췌해보겠다. "만약 인도차이나에서 일어난 혁명에서 서구인들이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면, 저항과 해방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일 것이다. 피해를 입은 이들이 권력을 갖게 될 때 그들 또한 타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유령을 만들게 된다." ... "소수민족 서사의 영역에서, 타자의 범죄와 자기 민족이 당한 범죄를 기록할 때 자기편이 저지를 범죄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윤리 도덕적으로 자신의 권력과 정면 대결하는 것을 꺼리는 태도이다. 그러나 자기편이 어떻게 유령을 만들었는지 고백하는 것만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멈추고, 비인간성의 짐을 지는 것으로 인간성의 무게를 완성한다." 유령은 일종의 허위의식이 아닐까 싶다. 혹은 실존하는 인간(들)을 괴롭히는 망령의 기억, 또는 기억의 망령이랄까? 어떤 측면에서 저자는 되도록 전쟁을 그대로 기억하고 기록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안그러면 기억은 반쪽이되고, 일부에 불과하면, 그렇기에 왜곡되고, 그러한 비정상 기억을 가지고 사는 개인이나 사회는 소외될 수 밖에 없다는 것. 물론, 가장 큰 범죄집단인 백인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무게의 분석을 덧붙인다.  "... 피해자가 되든지 아니면 목소리를 내든지 선택하라는 것.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 정체성이 전혀 없는 것은 백인다움의 특권이며, 그것은 정체성을 갖지 않는 척하는 정체성이다. 자본주의, 인종 그리고 전쟁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는 정체성이다. 피해자가 되는 것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소수자에게 특정되어 있으면서 피할 수 없는 형태의 소외인 것처럼, 백인다움은 백인들이 겪는 소외의 형태이다."

어쩌면 너무 분석적이거나 낭만적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의 입장이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상의 흐름이나 성장의 과정에서 체득된 멘탈에 기반해서 되도록 모든 전쟁을 전쟁의 모든 차원에서 그 자체로 바라보는 방법을 사색하는 입장이라고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다음의 인용부분이 어찌보면 내가 이해하기 가장 무난한 저자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 우리를 흥분하게 하고, 피를 흘리고, 장엄한 전투 광경과 병사들의 희생을 통해 전쟁의 진실을 말해주는 '좋은' 전챙 이야기는 전쟁의 필요성을 수긍한다.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한정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은 반전을 주제로 한 영화가 실제로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영화의 중심인물은 항상 어떤 병사이고, 그 또는 그녀가 영웅인지 반영웅인지 계속 검증한다. 심지어 주저하는 관객들에게 전쟁에 뛰어들라고 설득한다. 만약 그들이 전쟁에 반대하면, '우리의 군대를 지원하라'는 수동적 공격을 요구한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니라면, 왜 애국자들을 인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병사를 위로하려다 보면 기만과 냉소가 숨어 있는 수사적 말들로 군대를 지지하는 정치가들, 장군들, 그리고 무기 제작자들을 허용하게 된다. 이러한 미사여구들의 목적은 전쟁을 지속하려는 것이기에 기만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냉소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군대가 고향으로 돌아오면 지지를 받지 못하고, 보호도 받지 못하며 우울증, 트라우마, 노숙생활, 질병, 혹은 자실을 방지할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전쟁 이야기는 하나의 병사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 그나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해야만 한다. 진정한 전쟁 이야기는 민간인, 난민, 적에 대해 말해야 하고, 특히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전쟁기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쟁 이야기가 전쟁의 일상적 측면을 다룰 때 어떤 일들은 그것이 '지루하다'고 하거나 '전쟁'에 대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 전쟁 이야기들을 이렇게 관습적으로 보는 관점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광범위한 본성에 대해 눈을 감는다." 사실 소설(혹은 다른 예술장르라고 하더라도)이 전쟁이 아닌 다른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할 때, 그 모든 것을 그 자체로 다루지는 못한다는 생각은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을까 싶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그 단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인정하면, 저자의 매서운 비판은 과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단편적 묘사와 서술이 초래하는 다양한 왜곡들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은 동의할만 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나의 최애 작가 중 하나인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의 '제5도살장'에 대한 생각이 났다. 어쩌면 전쟁과 그 이후의 기억에 대해 가장 폭넓은 시공간 범위에서 이야기를 구성한 작품일 수도 있겠단 생각... (이 책을 다 읽는 시점에 slaughter house 5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도한 것인지, 분석을 이어가다보니 끄트머리로 정리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전쟁에서 어찌보면 가장 많이 숨겨지면서도 가장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범죄중 하나인 강간에 대해 약간 집중적으로 정리한 부분이 있었다. "..인간 종종이 처음으로 다른 인간 종족을 살해하는 짓을 저질렀을 때 강간도 함께 저질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강간은 분명히 인간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집단적 살해 욕망의 표현이다. 모든 병사가 강간범은 아니지만 모든 군대가 강간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강간은 전쟁의 매우 고질적은 특성임에도 승리한 전쟁에 바치는 소독된 무수한 기억 속에서 강간은 사라진다." 일제 징용자의 기억을 잊으려 하는 후안무치한 이들은 이같은 기형적 결벽증 환자들이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그들이기에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질환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창래 작가를 언급하면서 하는 난민출신 작가들의 주류사회 진입전략에 대한 언급도 인상적이기에 남겨본다. "... 이주한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난민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난민이 아니라 난민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이며, 이제 피해자를 만드는 가해에 대해 말할 때조차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된다. 난민이 아닌 관객들을 향해 말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작가의 정체성은 달라졌다. 그래서 난민 공동체는 그들이 배출한 작가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하기 쉽다. 작가의 정체성이 변했으며, 그들과 동일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난민인 저자는 서구의 독창적 작가가 되었지만, 그녀 혹은 그가 대변하는 공동체는 여전히 일반 대중이 강요한 조건 속에 살고 있는 소수집단이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작가가 아닌 공동체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 이런 분석을 접하면서, 지금 우리 시대의 작가들이 편입하는 주류사회라는 것을 전지구적 문화시작으로 확대해보게 되었다.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도 그렇고 6-70년대 작가의 작품들도 나름 통시적으로 바라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떻게 판단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우리의 피해와 그 아픔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 고통의 시공간을 확장하는 것도 모두 시도하고 있는 한국의 작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러 측면에서 전쟁에 대해 추상적일지라도 가장 많은 고민을 하게 해준 독서였던 것 같다. 

e****s 2026.03.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