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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먹이라.
예수님의 영감을 받고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를 세우고 "비범한 사랑으로 평범한 것"들을 해 나간다. "뱃속이 빈 사람은 하느님을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에티오피아와 비슷한 여러 나라에서 보아온 것은 단지 한 조각의 빵이 없기 때문에, 한 잔의 물이 없기 때문에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품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26p)"
"빨리 먹는게 두려워요. 이 빵을 다 먹어버리면 전 또 배가 고플 태니까요.(27p)"
"우리는 빵에 대한 굶주림만 굶주림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굶주림, 훨씬 더 고통스러운 굶주림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굶주림, 나를 원하는 누군가에 대한 굶주림, 어떤 이에게 특별한 누군가가 되고 싶은 굶주림입니다.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매우 큰 굶주림이자 커다란 빈곤일 것입니다.(32p)"
그녀는 육적으로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온 생을 바쳐 다가간다.
"말하지 말고 무엇이든 행동하세요.(44p)"
"줄 수 있는 걸 주세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봉사할 손과 사랑할 마음을 주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평화와 기쁨으로 보상받게 됩니다.(45p)"
가르침뿐만 아니라 몸소 뛰어든 사랑의 실천 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다.
"여러분이 직접 무언가를 주려고 노력하되 그 사람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이 명예롭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하도록 애쓰십시오,(77p)"
때로는 온몸으로, 때로는 따뜻한 손길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육체적, 영적 굶주린 이들을 도왔지만 그녀 자신도 때로는 고통스러운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고 힘들어할 때도 있었음을 밝힌다. 그녀의 그 방대한 가르침과 위로와 행적들을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보도에서 죽어가는데 제가 어찌 선풍기 아래에서 잘 수 있겠습니까?(105p)" 하며
그러나 한가지, 나의 눈살이 찌푸려 지는 수식어가 있는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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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러니까 올해 9월 4일에 마더 테레사로 호칭되는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이 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추앙하는 성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이 책은 그 시성식 이전에 테레사 수녀의 시성을 기원하며 테레사 수녀의 평소의 행적, 말 등을 기록한 책이다. 책의 본문은 테레사 수녀가 행한 자비의 일곱 가지 육체적 활동과 일곱 가지 영적 활동을 구분해서 총 14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장은 이와 같은 육체적/영적 활동에 대한 짧은 소개 글과 테레사 수녀가 직접 쓴 글이나 다른 사람의 증언에 기초한 테레사 수녀의 말에 대한 인용(말씀으로 구분) 및 증언 또는 증거에 기초한 테레사 수녀의 실천 사항(실천), 간단히 성찰할 거리와 기도문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400쪽이 넘어가니까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테레사 수녀의 성장 과정이나 사랑의 선교회의 형성 배경, 팽창 과정 등을 보여주는 전기는 아니다. 상당 수준 테레사 수녀의 이름이 알려지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던 시기의 행동과 말, 사상을 다룬 것이므로 감안하고 접해야 할 것이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성녀 테레사의 증거'라고 이해하면 빠를 테다. 테 내가 읽기에 이 책은 테레사 수녀에 대한 용비’테레사’천가이다. 잡티 하나 없는, 무결점의 인생을 산 테레사 수녀만 보인다. 아니 그런 테레사 수녀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에 대한 아낌 없는 지원과 봉사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 조금 다른 형태의 가톨릭 성인전이라고 할까? 가톨릭, 더 나아가서 범 기독교라는 Inner Circle 내의 충성스러운 신도들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범위의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히 있다. 책에서 보여주는 모습대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직접 빵을 나눠주는 모습으로만 남았더라면 좋을 텐데 사회 이슈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점은 테레사 수녀가 가톨릭 신자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반감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혼전 순결이나 피임, 낙태 등에 대해 나타낸 부정적인 시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수녀의 모든 활동이 선교와 연계된 것도 불편했다. 신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동등한 상태가 아니라 신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실행한다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었을까? 신이 없다면 사람에 대한 사랑은 없었을 것인가? 각 장의 내용에서는 좀 억지를 부린다 싶은 것들이 눈에 띈다. 그들이 찬양하는 수녀의 모습에서 고집스럽기도 하고 편협하기도 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냥 우기고 버티니까 문제가 해결되더라 식의 내용들이 꽤 된다. (그들에게는 기적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말이다) 그들이 감동 받았다고 하는 내용에서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믿음을 강요 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로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성심을 가지고 낮춘 마음으로 대응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세상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그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했는지 잘 보이지 않기도 한다. 구성의 측면에서도 성찰 부분은 빠지는 게 좋았을 듯 하다. 일종의 맨스플레인 당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들만의 Inner Circle을 대상으로 했다면 매우 타당한 구성이었을 수 있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의 행위가 세상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다른 측면의 시각을 알고 싶다면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를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책 내용 중에서도 언뜻 비치지만 테레사 수녀는 부자들의 부를 이용하는데 별 거리낌이 없었다. (p.196 등 참조) 부의 정당한 분배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았으며 부자를 나무라는 내용도 없다. 선교회 사업을 위해 세상의 추악함과 어떻게 결탁했는지는 먼저 언급한 자비를 팔다 등을 보시기 바란다. 지역사회의 부패에 대해 호소하는 신자에게 테레사 수녀는 ‘세상에는 선이 많다.’고 덮어버린다. (p. 264~265) 테레사 수녀가 자신의 행위 뒤에 숨겨진 추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데 손을 든다 이 정도까지 다루는 것이 책의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테레사 수녀의 실수나 오판으로 인해 발생된 구빈 과정 상의 문제점들 중 작은 것들 만이라도 다루어서 균형 감각을 보여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비판적으로 테레사 수녀에 대한 글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께는 그리 권하고 싶지 않으며 좋은 얘기, 긍정적인 얘기를 읽고 영혼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다. 테레사 수녀의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에는 나도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이면도 보아야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테니 테레사 수녀가 살아서도 참 피곤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니 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나 역시 동의한다. P.S 하느님이라고 표준어를 사용하는 점과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는 점은 마음에 든다. (내가 책을 고를 때 챙기는 부분 중 하나) 다만 이해인 수녀의 소개 글 중 p.7에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과 p.115의 사도 바울(이후로는 성 바오로라고 표기한다)은 교정 상의 실수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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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참 ! 많이도 보고 들은 이름이다. 아이들 who? 만화 위인전에도 있다. 우리 초등 5학년 아들도 who 를 읽고 와! 엄마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요? 엄마도 알아요? 마더 테레사 ? 하고 물었었다. 그땐 이 책을 읽기 전이라 '어 텔레비전에서 많이 들었어' 라고만 말했었는데 정말 놀랍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내려놓고 살수있는지..... 평범한 세속적인 욕심을 가진 나로서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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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을 성인 반열에 올리는 시성미사가 있었다. 테레사 수녀님을 그린 그림이 성당의 벽에 대형 벽화로 걸린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수녀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두 손에 묵주를 들고 있었다. 97년 선종하신지 19년만이니 기존의 전례에 비추어 볼때 성인으로 추대된 것은 빠른 편이라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 시대 - 자비와 사랑이 부족한 - 에 우리에게 울리는 하나의 경종이 아닐까?
이 책은 수녀님과 20년간 함께 활동했던 수녀님의 최측근인 브라이언 콜로제이축 신부님이 직접 엮었다. 자비에 관한 일곱가지 육체적 활동과 일곱가지 영적 활동을 구분해서 싣고 있다. 먼저, 수녀님의 말씀을 싣고, 수녀님이 보이셨던 행동과 실천을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 담았다. 그리고 수녀님의 말씀과 성경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장을 담고 있고, 마지막으로 수녀님이 자주 바치셨거나 성찰과 연결되는 좋은 기도문들을 담고 있다.
특별했던 부분은 바로 성찰과 기도문을 담은 부분이었는데, 단순히 수녀님의 말씀과 실천을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그것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과 또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도문으로 각 장을 마침으로서 수녀님은 언제나 실천에 앞서 기도하셨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수녀님은 당장 눈 앞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병들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한번도 없었다. 당신이 꼭 참석해야 하는 어떠한 행사나 참석 자리라도 우선 순위는 바로 눈 앞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나라면 내 밑에 다른 누군가를 시켜서 맡게 하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수녀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그 한사람 한사람을 모두 예수님으로 믿고 섬기며 정성껏 돌보아 주셨다.
수녀님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움직이셨다. 지인들의 증언과 인터뷰에도 나와 있지만 어떻게 수녀님은 그렇게 빨리 또 그렇게 잘 볼 수 있는가였다. 길거리이건 성당이건 어디에서나 수녀님은 다친 사람이나 쓰러져 있는 사람, 병들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찾아내셨다. 그 다음은 바로 행동으로 그 한사람 한사람을 돌보고 한없이 따스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로 다가가셨다.
수녀님의 행동을 담은 실천편을 보며 놀랐던 또 한가지는 단지 인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시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 홍수나 지진을 당한 재난 지역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어김없이 가셨다는 점이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시고 정부나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셨다. 수녀님의 말과 행동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그 요청은 거절당하는 법이 없었다.
수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굶주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빵에 대한 굶주림만이 굶주림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굶주림, 나를 원하는 누군가에 대한 굶주림, 어떤 이에게 특별한 누군가가 되고 싶은 굶주림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수녀님은 하느님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부름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겼으셨는데, (놀라운 사실이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수녀님에게 일부러 허락하신 내적 고통은 아니었을까?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수녀님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 어려움은 그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녀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시면서, 기도만 하는 것도, 일만 하는 것도 이는 사랑의 선교회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의 선교회원은 기도와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종종 일이 많을 때면 기도를 거르거나 생략할 때가 있다. 기도와 일을 함께 해야함을 잊지 말아야 겠다.
수녀님과 관련해서는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른 비판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수녀님도 한 인간이고 부족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수녀님에 관한 비판을 적은 책을 썼던 저자가 수녀님의 시성 준비 과정 중 바티칸에서 직접 연설을 할 수 있도록 교황청에서 초대했다는 사실도 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성과정은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듣고 교황청이 판단한다.)
그래도 수녀님이 교회의 성인으로 선포되었다는 것 (그 삶을 따르고 존경하기 위해)은 잘못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녀님이 행하신 언행이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도 세속적인 관점과 교회에서의 관점은 어느 정도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보다 중요한 사실은 수녀님의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 그만큼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짐을 느꼈다. 얼굴이 자꾸만 화끈 거렸다. 내 욕심만 내세우는 내 모습에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그저 수녀님의 말씀과 실천이 좋았다고 하며 단순히 책을 덮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수녀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잘 기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한 가지씩이라도 실천해 보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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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먹이라” 나 부터가 아닌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자기희생적인 정신이
없으면 행하기 어려운 실천이다. 육체의 힘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신념으로 일관되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 보임으로써 만인의 어머니이면서 사랑의 선교회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성녀 테레사의 흔적은 보통 사람으로써는 그녀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 마더 테레사는 가난한자 중에서도 더가난한자, 아픈
사람중에서도 더아픈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중에서도 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가시밭 같은 험난한 길로 자신의 몸을 던져셨다.
전쟁이 일어난 지역이나 지진이 발생한 지역과 가난과 질병이 만연한 곳등 자신의 힘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던지 달려갔어 그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따뜻한 미소로 그들의 고통에 화답을 주었다. 그 뿐만아니라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수녀들의 올바르지
못하는 언행에 대해서는 엄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사랑의 눈길은 잊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여러 증언들이나 그녀의 어록에서도 그녀의 정신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총 14장의 섹션으로 이루여 있지만 어느것 하나 소홀히 다루거나 그냥 지나칠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음을 미리 알려드리고
싶다. 테레사 수녀의 육체는 나약할지 모르지만 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신적인 아우라(Aura)는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힘일 것이다.
독자는 이책의 주옥같은 글귀중에서 그녀가 말한 “용서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랑이 필요하지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또 한가지 “행동은 어떠한 말보다 더 큰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가 가슴에 울림을 전한다. 자신을 용서하던지 타인을 용서하던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용 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을 사랑하므로써 가능할 것이다. 두번재는 수많은 말보다 남을 위해서 자애심(自愛心)이 없으면 행하기 어려운 실천으로 타인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다.
무너진 세상속으로 걸어간 그녀의 정신을 후손들이 본받아 실천하는 더 많은 테레사가
곳곳에서 희망의 빛을 밝혀 가난한사람, 아픈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이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길 바라는 것이 마더 테레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고 독서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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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시성식이 개최되었다. 그분의 업적은 그 어떤 배타적인 사람일지라도 종교와 상관없이 수녀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테레사 수녀님의 정결한 삶을 닮아가야 하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과연 어떻게, 나와 같은 사람이 그 분을 닮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주님과 성모님 못지 않게 멀고 먼 분이셨다. [먼저 먹이라]는 수녀님이 생전에 남긴 글들과 수녀님 곁에서 함께 구호활동을 하였거나 목격한 이들의 글을 묶어놓은 편집물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새롭게 알게된 부분도 있지만 서두에 밝힌 것처럼 때로는 천사의 모습으로,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리고 하늘아버지의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수녀님이 강조하시는 것 중 두드러진 것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넘치는 세상이며 음식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보다 사랑에 굶주린 이들이 훨씬 위험하고 구제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특히 서유럽쪽에는 사랑이 고프고, 관심이 고프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어지길 바라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 또한 목마르신 주님의 다른 모습이라 하셨다. 가난한 나라에 직접 찾아가 발로 뛰어가며 그들의 허기짐을 구제할 수도 있지만 우리 이웃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는 것도 나눔에 있어서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하셨고, 당장의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것이 자신의 몫이며 그들이 자립해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또다른 누군가의 몫이라 하셨다.
저는 이것이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함께 일한다면, 하느님을 위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31쪽
책을 읽으면서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수녀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영혼까지 친근하게 대하려고 하셨고 그들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가난한 이들, 헐벗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 모두에게서 주님을 발견하셨다는 점이다. 수녀님께서 손을 내밀고 물을 건넨 이는 다름아닌 '주님'이셨기에 그토록 기쁘게, 늘 낮은자세로 사람을 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우쭐해하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난한 사람임을 고백하고 주님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웃을 돕는 수녀님은 그야말로 이 세상에 잠시 다녀간 주님의 천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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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라는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느낀다. 가난과 전쟁등으로 배고프고 헐벗은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먹이고 입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탐욕과 욕망이라는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들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지기 위해 내가 아닌 타인을 짖밟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어려운 사람들을 우리는 못 본체 눈을 돌리고 귀를 닫는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먼저 먹이고 씻긴 다음에 영혼의 치유에 힘을 쏟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행동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자선을 베푸는 것은 그들에게 더 않좋을뿐이라고.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결코 자신의 신념을 꺽지 않았다. 그들이 당장 내일 죽을지라도 지금 이순간 음식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이다. 이책은 수녀님이 살면서 어떠한 마음과 행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헌신하는 삶을 실천했는지 잘 나타난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만났을때 주변의 시선이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읽는 내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지금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다. 개인의 탐욕으로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전쟁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속으로 내몰린다. 이런 내전들만 줄어도 전쟁고아나 기아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라오스의 스님들이 아침 탁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노스님부터 어린 동자승까지 길에서 일렬로 관광객이나 주민들로부터 바구니에 음식을 시주 받는 모습이었다. 무척이나 생소한 장면이었다. 스님들은 탁발을 끝내고 가면서 바구니에 시주 받은 음식을 사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본인이 먹을 양의 식사만 남기고 아낌없이 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자신의 탐욕과 욕심을 줄이면 같이 공생할 수 있는 삶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를 떠나서 마더 테레사도 이러한 생각과 신념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했을 것이다. 개인의 행복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조금 더 생각하는 배려라고 해야할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정말 살기 힘들다고 얘기한다. 경기는 바닥을 치고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는 점점 더 강팍해지는게 현실이다. 경제적인 빈곤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묻지마 살인이나 폭력들이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마더 테레사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에 훈훈한 온기가 감돌것이다. 이 한권의 책으로 조금 더 따듯함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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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먹이라』 - 제목만으로는 Mother Teresa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읽고 다시 제목을 읽으면 마더 테레사라는 인물에 대해서 잘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느낀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더디고 더뎠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꾸준히 읽었다. 읽으면서 읽을 때마다 느낀 점을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성경보다 다른 종교서적보다 더 성스러웠다는 점이다. 어렸을 적이었지만 성경도 읽어보고 불경도 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Mother Teresa에 대한, 그녀가 한 일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나 자신을 정확히 보도록 해주었다. 나 자신이 얼마나 나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반성의 시간을 만들어 준 이 책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마더 테레사가 알려진 것은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는 거대한 사업 - 이것 역시 가치 있고 필요하지만-을 계획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 분은 먼저 그들 개인의 삶을 바꾸셨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 마더 테레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 결과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오해를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들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조그만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Mother Teresa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TV에서는 이런 CF가 나옵니다.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의 퉁퉁 부은 모습. 그리고 이 아이를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몇 만원의 돈을 지원해 달라는 말. 솔직히 이런 CF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다른 종류의 CF들에서 내가 느낀 점은 믿지 못하는 거짓 정보다. 만약 사람들이 이런 CF를 보고 돈을 냈다고 칩시다. 과연 그들의 낸 돈이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에게 먹을 것으로 온전히 갈까요? 그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는 어디선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해본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도에서 죽어 가는데 제가 어떻게 선풍기 아래서 잘 수 있겠습니까?” - 마더 테레사가 한 말인데요. 안 그래도 이번 여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선풍기조차 틀기 무서운 세상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전기세조차 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누진세를 적용해서 돈을 걷겠다고 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보도에서 죽어갈 때 한국에서도 이 찜통더위 속에서 선풍기조차 틀지 못한 채 가난한 방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윗사람이라는 사람들은 멋진 모습을 보였다는 TV뉴스를 접했습니다. 만약 마더 테레사가 살아계셔서 이런 한국인의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용서하라고 했을까요 최악의 병 - 외로움. - p. 179 마더 테레사께서 항상 말씀하셨다시피, “세계에서 최악의 질병은 암도 에이즈도 아닙니다. 최악의 질병은 바로 외로움일 것입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누진세 때문에 선풍기조차 틀기 힘든 이들은 모두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입니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분들이지요. 이런 분들이 겪는 최악의 병,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찾아가는 것으로도 아마 치유가 되겠지요. 간단하지만 어려운 치유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행동이라 길게 말을 못하겠네요. “하느님께 이 세상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십시오” - 하지만 일본인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못하겠습니다. “나가사키를 방문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기도부터 할 것입니다. 제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해왔던 것처럼 그곳 사람들을 방문하고, 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원자폭탄을 사용한 결과 지금까지 그곳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남아 있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그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께 세상을 지켜달라고, 그 끔찍한 파괴로부터 우리 모두를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만약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 때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한 행위는 원자폭탄으로 인해 생긴 고통보다 더 했으니까요. 일본인들은 원자폭탄을 맞을 만했습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나 아마도 일본인들이 이 때 원자폭탄을 맞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일본인들 때문에 고통을 맛봐야 했을 겁니다. 일본인들은 먼저 자신들이 평화를 해치고 남의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그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이 책을 읽을 당시 경주에 큰 지진이 발생하여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복구 작업을 하거나 복구 작업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지진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