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음에 책을 드리우다
(남진우,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필자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 있는데, 책을 추천해 달라고 말 하는 사람이다. 듣기 나름이겠지만,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닌 입장에 섣불리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결국 나를 찾기 위한 과정인데, 어떠한 책이 감명 깊었다는 식을 줏대 없이 내뱉고 나면, 내 욕망을 떠벌리는 것 같아 괜히 입이 텁텁해진다. 상대의 지적 수준과 상대의 욕망을 고려하지 않고, 권위자들이 선정한-(옥스퍼드 선정 고전, 서울대 선정) 등과 같은 리스트 나열은 능력에도 못 미칠뿐더러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꺼져’ 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대충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식으로, 상대의 취향을 고려하여 책을 소개해 주는데, 남진우의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문학동네),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숲), 이현우의『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문학과 지성사) 가 그것이다. 새벽에 불면증이 심해 좀비처럼 돌아다닐 것 같은 사람에게는 김훈의 책으로 감수성에 파도를 타라고 하고(시집에 관한 김훈의 서평), 골방이나 도서관에서 탐독을 원할 꺼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김현의 책을(독서 일기), 어떠한 인문학적 지식과 자신의 사유를 넓히고 싶은데 방향 못 찾는 길치에게는 이현우를 (로쟈의 저공비행으로 더 유명한 이 시대의 블로거), 그리고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민인 사람에게는 남진우의 책(시인이자 문학 비평가인 그의 글은 때로는 엄숙하고 날카롭지만, 한국 문학을 생각하는 그의 연민은 독자를 숙연하게 한다) 을 소개 시켜 준다. 여하튼 이 책들은 나름의 대가들이므로 리스트가 무궁무진하다. 골라서 잡수시라는 것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필자로서 ‘꺼져’ 와 동급인 말을 에둘러 표현한다는 것만 알아주면 된다.
각설하고, 책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이다. ‘떠 들여 본다. 는 말이 있는 것처럼 쭉 읽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 넘어가 다시 보고, 혹은 메모도 하고, 책을 덮고 잠시 명상을 가져보기도 하고, 등과 같이 독자로 하여금 능동성을 요구하는 고된 수련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처럼, 한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느리게 사는 삶의 전형이며, 고속화를 요구하는 현대에 잠시 과거의 마음을 뒤적여 보는 정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옛 마음을 빛바랜 사진을 앨범에서 꺼내 보는 것 처럼 순수를 요구한다. 더불어 그러한 순수에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잊고 있었던 세계에 대한 연민을 불러 오게 하는 숙련된 장인의 망치질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 열림원에서 나왔던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가 2010년 시공간을 넘어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으로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1990년대를 살아오면서 저자의 노트 어딘가에 적혀 있었을 소중한 글귀와 사유가 더 없이 소중하다. 남진우의 책은 그의 오랜 직업이기도 했던 문학 비평가의 모습은 조금 잊어도 좋을 것 같다. 것 보다는 독자 한 사람으로 돌아가 문학에 대한 단상과 나름의 바람을 적었다고 할까? 인터넷 블로거들의 글쓰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 때,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또 다른 방법론을 일깨워 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팔을 뻗으며 그는 손가락에 와닿는
책의 차갑고 단단한 몸을 느낀다 바닥에 등을 댄 채
그는 마개를 따고 거품이 흘러내리는 잔을 높이 치켜든다
이제 곧 축배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북 드링커」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