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도서관에서 이것을 발견한건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때는 그져 누렇게 낡아버린채 한쪽에 조용히 꽂혀져있는 책 한권을 무심코 집어들었을 뿐으로, 이 책에 관해서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무식한 독자였다. 그랬던것이 이 책의 재미를 더한 건지도 모르겠다. 초반 몇장을 읽을때부터 범상치가 않더니만 병원의 진단서를 빼내는 부분에서는 머리속에 주제가 선명하게 잡혀있지 않다는 그의 말을 이제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자우간 나는 그의 성공이 계속가기를 바랬다. 그가 그의 성공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가 죄책감을 지닌채 불안속에 살지 않길, 작가가 변덕을 부려 죄인은 죄값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설교를 늘어놓지 않기를 나는 내심 바랬다. 요근래야 이 책을 직접 구입했는데, 그것이 표절을 다시한번 읽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재발행은 하질 않았는지 이번에 온 책 역시도 여전히 종이는 누렇고 몇몇의 학습지에서 나는 그 종이만의 독특한 냄세가 난다. 그런데 그것이 왠일인지 이 책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건 예전이나 다시 읽고난 지금이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게다가 왠지 나는 낡은 책을 좋아한다.) 철없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니콜라는 이제껏 그에게 전혀 악의를 갖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것. 니콜라의 방약무인하고 거침없는 행동을 열등감을 가득담은 그가 왜곡해 받아들인 것은 아닐지. 무심코 대한 니콜라의 행동을 그가 자신만의 열등의식으로 가득차서 나름대로 해석해 버린후 이책에 풀어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곳에는 니콜라가 의도적으로 그의 그녀를 빼앗아 갔다는 결정적인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또한 그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니콜라의 탓 만으로 돌리고있다. 이것은 자신이 글쓰는 것에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한사코 인정하지 못하는 억지로는 보이지 않는지. 조용히 미소짓고 있는 모습 뒤에 증오심을 불태우고 있는 그의 모습처럼, 나는 그에게 속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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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인기작가 니콜라 파브리는 만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늘 연일 떠들며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있다 반면 그의 친구 에드워드 램은 모든 점에서 그 와는 대조적으로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하며 심한 열등의식 속에서 불행한 나날을 보낸다 겉보기에 조용한 사람들을 경제할지어다 반 편생을 친구의 그림자에 가리워져 눌려 지내야만 했던 어린양이 급기야는 끔찍한 복수극을 벌인다 그가 꿈틀하도록 만들었던 것, 낙타를 쓰러뜨리는 마지막 한짐, 물병을 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 그것은 젊은 날 니콜라에게 자신의 여인을 부당한 방법으로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니콜라의 최신작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야스나미 그녀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사로잡힌 에드워드 하지만 니콜라가 쓴 그 소설은 곧 콩쿠르 상을 받을 것이고 온 세상의 축복을 받을 참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내어 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에드워드입장에서는 가히 좋지 많은 않은 일이었다
부당하다는 쓰라린 감정이 마침내 폭발하고 드디어 그는 행동을 개시한다 격하게 불타오르는 증오심과는 대조족으로 그가 준비한 복수극은 천천히 그리고 완벽하게 진행된다 한 여자로 인해 한 남자는 다른 남자에게 생각지도 못한 치밀한 복수를 한다 그것도 완벽하게 천천히 진행됨으로써 다른 한 남자는 복수당하게 된다 복수라는 테마는 이미 많은 문학작품에서 수없이 다루어져던 고리타분한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부한 주제에서 출발한 표절은 복수에 사용된 무기가 책이라는 점에서 특이하겠다고 하겠다 인간의 증오심은 수만 가지 형태의 복수를 야기한다 그리고 증오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복수 또한 극단적인 양상을 띠는 법이다 가상 원시적인 수단에서부터 보다 세련된 것까지 복수에 사용되는 무기는 다양하다 그러나 오랜세월 축적되고 다져진 에드워드 램의 증오심은 돌발적이고 일회적인 폭력의 행사보다 오히려 더 잔인하고 더 냉혹한 완전범죄로 그를 인도했으니 그것은 치밀하게 조작된 시나리오로 가해자의 손에는 한 방울의 피도 묻히지 않고 희생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한편 예상을 넘어서는 결말은 어찌보면 비도덕적이라고까지 여겨질지도 모른다 범죄자가 행복해진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유럽문화의 진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즉 이범죄야말로 정당한 것이 아닌가 누가 진정 그르고 누가 진정 옳다고 판단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꼬리를 남기는 것이다 선인과 악인의 대립이나 권선징악이라는 테마를 거부하는 지극히도 유럽적인 작품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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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이런저런 수소문의 소용돌이를 거쳐 이제 당도한 책이고 무척 뿌듯하게 읽었다. 94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내용도 꽤나 재밌을 뿐더러, 치밀한 구성도 돋보이는데 왜 이제야 읽었을까.
가끔 우리는 알 수 없는 것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그 알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증오를 품고는 한다. 때로 그것은 범죄가 되기도 하고, 완전범죄가 되기도 하며, 그저 증오로 남고 말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걸쳐 서서히, 하지만 그만큼 견고하게 완성된 증오가 완전한 범죄로 꽃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려나... 에드워드 램이라는 주인공은 니콜라 파브리의 영국 출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인이다. 에드워드 램은 전혀 외향적이지 못하며 간혹 동성애 경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어린시절의 연인이었던 야스미나라는 이국의 처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니콜라 파브리는 에드워드 램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아니 평균 이상을 상회하는 배경과 능력으로 주목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소설이 시작되는 현재에도 니콜라 파브리는 외교관이며 동시에 소설가로 모든 여인의 선망을 받고 있는 인물. 하지만 에드워드 램과 니콜라 파브리는 표면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맺은 인연으로 매우 막역한 사이이며 또한 긴밀한 사이이기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만큼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내 속에 두 개의 영혼이 있는 것처럼 부단히 나 자신과의 대립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나에게 남들과 어울려 살면서 사회적으로 뭔가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도록 해주는 영혼이고, 다른 하나는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를 핥으면서 잠재의식 깊은 곳에 벌벌 떨며 웅크리고 숨어 있는 영혼이다." 라고 스스로를 진단하는 에드워드에게 어느날 니콜라 파브리의 새로운 원고가 도착한다. 자신의 소설을 가장 명쾌하게 진단하는 자로 에드워드를 택한 니콜라 파브리가 새소설을 가지고 그에게 달려 온 것이다. 하지만 그 소설 속에서 에드워드는 과거 자신의 유일무이한 사랑이었던 야스미나의 죽음이 바로 니콜라 파브리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니콜라를 파멸시키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물론 예상대로 니콜라는 자살이라는 나락으로 치닫게 된다. 소설의 또다른 축은 바로 이 부분에 달려 있다. 에드워드가 니콜라에게 사용한 범죄의 방법이 바로 표절이다.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작품을 읽은 후 존재하지 않는(문학인의 명단에는 올라 있지만 몇 편의 단편을 발표했을 뿐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문인을 이용해 단지 몇 권의 책을 만들어 여기저기에 흩뿌림으로써 니콜라가 꼼짝없이 표절 의혹에 다다르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문학이 범죄가 되는 전과정을 다시 문학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장 자크 피슈테르가 실은 역사가라는 사실이다. 스위스 출신의 저명한 역사가로(물론 대학에서 문학박사를 거머쥐었다고는 하지만) 십여권의 역사서를 내기도 했던 작가가 어째서 스스로 서스펜스 심리소설이라고 지칭하는 이러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그것이 사뭇 궁금해진다. 표절이 문학이 문학을 대상으로 삼는 반면, 역사 또한 어찌보면 수없이 많은 표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에서 에드워드가 잘 만든 책 몇 권으로 진실을 바꾸어버리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꾸며진 몇 가지 증거들로 진실이 바뀌는 것을 목격했던 거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서 작가가 이런 소설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미와 그것을 그저 재미로 남기지 않는 의미심장함으로 기억될만한 책이다. |
| 아~ 이런류의 소설을 범죄소설이라 하는구나! 이젠 범죄소설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번 잡으면, 절대 도중에 놓을 수 없는 책!! 한장 한장 넘기면서, 뒷장의 내용에 가슴 졸이는 책!!! 애드워드는 항상 니콜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자신보다,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자신보다, 처세술에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자신보다, 운도 더 따른다고 생각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에까지도 열등감을 느낀다. 또다른 열등감은 니콜라의 소설들을 대필하면서 생긴다. 그 열등감은 둘사이에 우정이 깊어질수록, 아니 세월이 더 흐를수록, 강도가 더해져 나중에는 자격지심에, 복수심까지 갖게 된다.. 그 복수심에 불을 당기는 것이, 니콜라가 쓴 <사랑해야 한다>에 나오는 야스미나와 니콜라의 관계이다. 야스미나는 애드워드가 처음 사랑한 여자이고, 그 여자때문에, 다른 여자들은 사랑할 수 없게 된 여자이다. 30여년간을 다른여자와는 사랑을 할 수 없었던 애드워드는 자신의 30년에 대한 보상과, 또 사랑하는 여자를 겁탈하고, 임신을 하게 만들고, 결국엔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니콜라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기로 다시한번 다짐한다. 이 복수라는 것이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어떻게 그렇게 치밀할 수가 있는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한치의 의구심도 갖지 않을 수가 있는지.. 애드워드가 니콜라의 임상진단서를 훔친 것은 복수극의 도입부분에 해당되며, 콩구르상을 탈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복수극의 중간쯤의 단계에 해당될 것이다.... 복수극의 결말이 정말 놀랍다. "니콜라의<사랑해야 한다>와 매우 흡사한 책이 아주 오래전에 <사랑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이미 발간되어 있었다"는 복수극의 결말! 마지막까지 이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이 복수극이 완전범죄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궁금증의 증폭때문이다. 애드워드가 만들어낸<사랑의 의무> 표면상 <사랑의 의무>의 작가 어윈 브라운, 어윈 브라운의 여동생이라며 나타난 한 여인때문에 역시 완전범죄는 아니군,,했었다. 그러나,,,완전히 허를 찔렸다.. 이 책의 제목은 "표절"이다. 애드워드가 만든<사랑의 의무>는 니콜라의 <사랑해야 한다>의 표절작품이다. 결국, 정작 표절을 한 애드워드는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진다.. 바로 이 결말이 이 책의 매력인거 같다. 권선징악에서 완전 빗나간 결말. 우리의 허를 찌르는 결말.. 표절... 책 제목이 정말 딱! 들어맞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의 저자라면 "복수"정도의 제목밖에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
| 표절이라고 하면 유행가를 떠올릴만큼 대중가요에 있어 표절 문제는 늘 뉴스를 몰고 다니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한 작가를 표절 작가로 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게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처음 부분은 지리하게 끌고 나가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인공의 범죄 행각은 대담하고 완벽하다. 그래서 완전 범죄로 늘 인과응보를 원하는 대다수 독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사실 모방은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만큼, 어느 정도의 카피나 벤치마킹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이지만, 순수예술일수록 표절은 다시는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팔이나 다리 하나를 꺾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의 영향력을 지닌다. 광기어린 예술을 신봉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술도 역시 삶의 한 부분이므로 도덕성을 그 전제에 깔아야 하지 않을까?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부분이었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도식적인 결과가 아니라 사람들을 눈을 속이고 위조품을 진품화하는 무리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음을 풍자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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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이 책은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재미로 책을 선택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인생에 즐거움이 있어야 하듯, 책에도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시한번 나의 무딘 예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주 재미있다. 프랑스의 범죄소설부문에서 수상한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는 "서스펜스 심리소설"이라고 말한다.
"복수"라는 테마로 이루어지는 완벽한 법죄(그러나 이 글의 범죄는 어쩌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를 행하는 과정의 주인공 심리 묘사가 아주 탁월하게 그려져 있다. 해부학적 문체로 글을 쓰려고 했다는 작가의 말답게 이 글의문체는읽기에 아주 수월하고 분명하다. 힘을 가지고 있다. 글의 내용에 들어가기 전, 이 표절은 아주 독특한 인물의 생애를 표절(?)하는데서 시작한다.
"로맹가리.." 개인적으로도 그의 "벽"이라는 작품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 낯설면서도 낯익은 "로맹가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로맹가리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앞의 생"의 저자, "에밀 아자르"를 기억하는가?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을 이용해 작품을 출판하기도 하였었다. 신기한 사실이지만 진실이다. 또한 그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되어 있다. 자신의 본명으로 출판활동을 하면서 굳이 가명을 이용해 글을 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이한 사고방식의 로맹가리를 모티브로 한 주인공 니콜라, 그에게 커다란 상처를 받은 친구 애드워드 램(오히려 램이 주인공격이다).간단한 줄거리는 에드워드 램이 니콜라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이다. 빛과 그림자 관계라고 에드워드는 말한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그림자였고, 니콜라, 그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고. 램이 니콜라를 첨 보았을 때 아주 강한 견인력같은 것을 느꼈다. 단 몇 시간만에 한 존재가 한 존재에게 복종하게 된것이다. 친구로서의 관계라기보다는 일종의 노예같은 관계로.
사실 니콜라는 조금은 전지적 인물로 그려진다. 모든 여자들이 반하는 남성적 매력의 소유자, 외교관이면서 소설가로 명성을 날리는 완벽한 인물, 복수의 발판이 된 그 문제의 소설은 공쿠르 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그런 그의 그림자와 같았던 램은 알게모르게 니콜라에게 강한 증오심을 느낀다. 삼십년 동안 하나하나씩 보이지 않게 쌓였던 증오라는 형태가 결국 램으로 하여금 니콜라에게 완벽한 복수를 자행하게 한다. 자신보다 나은 인물이기에, 단순히 자신이 그의 그림자로 군림했기에 복수가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야스미나! 에드워드 램에게 단 하나의 사랑, 운명의 여인. 그녀에 대한 자책감으로 그는 삼십년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10대 후반 짧은 기간, 그녀와 지독한 사랑을 한다. 그러나 곧 그녀는 실종되고 후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램은 그녀의 죽음이 자신과 신분이 다른 탓에 이루어진 것이라 판단하고 그후 삼십년 동안 철저히 자신을 죽이며 살았었다. 그러나 공쿠르 수상작인 니콜라의 작품을 읽게 됨으로써 야스미나,그녀가 니콜라에게 철저히 망가졌음을 알게 된다.
복수의 과정은 아주 완벽하다. 복수에 있어서 다시한번 표절이라는 방법이 도용된다. 아주 기발하다.구체적 방법은 적지 않는게 오히려 당신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리라. 램이 니콜라를 망가지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의 방법을 사용한다. 어떤 무기도, 피도 묻히지 않고. 니콜라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 니콜라 스스로 자살하게까지 만든다. 우리의 완벽한 이성주의자 에드워드 램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오히려 끝부분에서는 복수에 성공한 램이 또다른 성공의 발판을 밟고 있다. 비지니스뿐 아니라 30년 동안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사랑"의 분야에도 좋은 예감의 문장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완벽한 범죄주의자 램에게 오히려 영광을 선사한 이 소설은 완벽한 유럽식 사고의 유럽풍 소설이리라.
"표절"의 램은 어쩌면 나 자신이 꿈꾸었던 남성상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차가운 이성을 가진, 냉철한, 완벽한.아마 나라는 인간이 이런 종류가 아니기에 반대급부가 더욱더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램...그에게 마지막 성찬이 있으랴..
"그러나 증오하는 감정은 사랑의 감정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이 책의 맨 서두에 어떤 계시처럼 적혀져 있었다. 과연 사랑과 증오는 하나의 몸인가? [인상깊은구절] p. 46 어찌됐건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들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 저녁의 파티에서 니콜라는 나를 정복했고 또 나를 팽개친 것이다. 일순간 나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였고 부당하게 위배당한 자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 속에는 하나의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코 아물 수 없는 상처로 자리잡게 되었다. p. 204 어떤 기대감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의혹과 희망 그리고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생활을 의미한다. 나 역시 그러한 철칙에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니콜라가 용기있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어두운 시기가 지나면 충분히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나는 서늘함을 느끼고 닭살을 돋을 지경이었다. |
| 대입 본고사 때문에 나는 엄청난 독서의 부담을 지고 학교를 다녔었다. 할일이 없을 때는 의식적으로 서점엘 갔고 이런 저런 책을 뒤적이다가 없는 용돈에 밥값을 꿍쳐두었다가 책을 사곤 했다. 그렇게 사들인 책 중에는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만의 보석으로 남은 좋은 책들이 몇 권 있다. 장자크 피슈테르의 '표절'이 바로 그런 책이다. 니콜라 파브리는 명성을 얻은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나의 손을 거쳐야만 빛이 났었고, 그것 하나만으로 그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니콜라의 위선을 참아왔는데 최근에 교정을 부탁받은 니콜라의 신작은 이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훌륭하다. 공교롭게도 내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어릴적 아랍소녀가 니콜라 때문에 죽은 것을 알게된 나는 니콜라 파브리에 대한 처절한 복수심으로 그의 역작을 이미 죽어버린 무명 작가의 소설에 대한 표절로 몰아 니콜라를 파멸(자살)시킨다. 특히 자신의 계획(?)에 알맞은 무명작가를 찾아내고 니콜라의 책을 그의 책으로 둔갑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1000피스짜리 퍼즐처럼 참 잘 짜여져 있다. (글속에서 나는 2차대전에서 각종 증명서를 위조사는 정보계통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소설 자체가 복수의 무기로 사용된다는 소재의 신선함도 책읽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큰 요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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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에 의한 죄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기억상실증 환자가 한 줄 한 줄 써나갈 때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베껴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 없이 집필을 계속할 수 있을까? 만일 그가 그 책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불안 속에서 살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 본문 중에서
* 누군가의 인생을 끝장내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복수는 어떤 것일까? 소설 '표절'은 끔찍하다. 주인공은 소설가 니콜라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의 신작이 실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소설의 표절이라고 믿게 만들어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자신의 머릿 속 조차 믿을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나? 헬렌켈러는 '서리의 임금님'이라는 동화를 썼는데 그 이야기가 어릴적 들었던 이야기의 표절이었다고 밝혀졌다. 이후 어떤 것이 떠오를 때마다 이것이 내가 예전에 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로서는 자신의 머릿속을 믿을 수 없게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형벌이 아닐까? 인간의 자격지심과 복수가 얼마나 무서운 끝을 만드는가에 대한 채깅기도 했다.
가끔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거나 몇자 끄적일 때 나역시 이게 어디서 나왔던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읽은 모든 책들을 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자꾸만 작가의 이름이나 책 제목 혹은 내용의 어떤 구절들이 생각이 나지 않고 맴돌 때, 가끔은 이게 나의 생각인가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싶을 때가 있다. 때로 어떤 글들은 나의 입을 빌어 나오는 그저 전혀 다른 생물체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말이다. ^^ 표절.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다른 인생들을 표절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멋진 사랑이야기의 한 장면이나 따뜻한 가족의 한 단면을 따라하며 슬쩍 내 것으로 만들고, 되고 싶은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며 더 가까워 지려고 더 비슷해 지려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보면 어디 인생이 표절 아닌 것이 있으랴 싶다. 다만 그 표절 과 복사 위에 나만의 해석 나만의 재해설을 덧붙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한다고 해서 다 성공할수 없으며 따라한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나 복사나 표절 만으로는 내 것을 만의 것을 만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 허뭄 |
| 복수에 대한 이야기.흥미롭게 책이라는 매체를 이용한 복수 이야기이다. 주인공 에드워드 램과 그의 친구 니콜라 파브리의 지독한 악연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그늘밑에 가리워져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그에게 끌린다. 그는 재력있고 잘생겼으며 매사 당당한 리더쉽으로 사람을 압도하는,에드워드에게선 찾을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있다. 그런데 마침내 터지고야 말았다. 실에 묶인 참새처럼 끌려다니던 에드워드가 결국 도화선이 다 타버린 폭탄과 같이 폭발해버렸다. 어릴 시절 니콜라로 인해 소중한 두 친구를 잃은것도 모자라 에드워드에겐 목숨과도 같았던 연인 야스미나와 니콜라와의 관계 그리고 죽음을 알게되었을때 에드워드는 걷잡을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복수를 준비한다.빈틈없고 잔인한 복수를... 이 책을 읽으면서 논어의 어떤 말이 생각났다.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가 힘들고,부자이면서 오만하지 않기 또한 쉽지않다- 에드워드 램이 가난한 사람이고 니콜라 파브리가 부자의 입장이다. 부자가 가난뱅이가 가졌어야할 영광과 가난뱅이가 가졌어야할 미래의 희망까지 앗아가 버린것이다. 그런 가난뱅이 에드워드가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여타 복수를 소재로한 소설처럼 선혈이 낭자한다거나 피비린내를 풍기지 않고서도 훌륭하게 복수를 완수했다. 끝으로 이 책은 참 애매모호 했다.절대선도 없고 절대악도 없다. 오만한 부자 니콜라 역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죽기전 마지막 편지에서의 그의 글을 보니 한편으론 측은하기까지 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에드워드가 맡는 일종의 해피엔딩이라 할수있는 결말도 뭐라 설명할수 없이 좀 애매한 느낌이었다. 옮긴이의 말로는 선인과 악인의 대립이나 권성징악같은 상투적인 테마를 거부하는 유럽 특유의 작품이라고 하던데 어찌됐든 난 이런 신선하기까지한 애매모호함이 참 마음에 들었다. |
| 표절이란 단어는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단어이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가수들의 표절설과, 근래의 다 빈치 코드 표절설까지.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에 의하면 M모 가수는 '저는 작곡하기 전에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지 않기때문에 표절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라고 망발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표절이라는 것은-표절 의혹을 받은 수많은 저작가들의 핑계에 따르면-신기할 정도의 우연성과, 무의식 속에서 이뤄지곤 한다. 표절의혹을 단 한차례도 받아보지 않은 저작가들도 가끔씩 '내가 지금 지어내고 있는 것이 어딘가에서 보고 들은 것이 아닐까?'하고 고민을 하곤 한다. 그런데 만약에 자신이 모르는 사이, 표절을 했다는 증거가 나타난다면? 그 저작가는 그야말로 혼란에 휩싸여 글을 쓰지 못하는 지경이 될 것이다. <표절>은 그렇게 한 작가를 죽여버리고 만다. 너무나 잘난 니콜라. 니콜라에게 열등의식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의 노예가 되어 30년 동안 그를 따른 에드워드. 시간이 흐르고 에드워드는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소녀, 야스미나를 니콜라가 뺏어갔고, 죽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복수를 기도한다. 아니, 오래전부터 그는 니콜라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를 도우면서도, 그를 증오했던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였다. 야스미나에 대한 진실은 단지 기름이 되었을 뿐. 이 소설의 복수는 책을 통한 복수이다. 2000페이지짜리 두꺼운 백과사전으로 머리를 찍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책장에 독을 발라 두는 것도 아니다. [사랑해야 한다]라는 소설을 표절작으로 만드는 복수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잔인하다. 니콜라는 허위와 가식을 벗어던지고, 그야말로 그가 살아있는 소설을 쓴다. 니콜라에게 있어서 그 소설은 최고의 작품이고, 그의 유일한 진짜 소설이다. 비평가들의 칭찬이 없더라도 그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소설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해야 한다]는 니콜라의 과거이며, 에드워드의 과거이다. 그리고 야스미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었다. 에드워드는 이 소설을 보고 복수심에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니콜라의 소설을 혹독하게 비판해오던 비평가들도 [사랑해야 한다]에 대해서는 그동안 그저 그런 소설을 써오던 니콜라가 이런 재능을 보인것에 대해 무척 놀란다. 문단에서의 평가도 최고인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복수는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만약 [사랑해야 한다]가 표절이라고 밝혀진다면? 니콜라는 그야말로 매장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것이 아니다. 니콜라는 전쟁때 기억을 일부 잃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 표절시비와 함께 이것이 알려진다면, 그의 진심어린 호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그 자신도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만다. [내가 정말 표절을 한건가?] 하지만 에드워드는 더욱 치밀하다. 겨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표절을 했구나] 에 이르러 [내가 쓰는 이 글이 어디선가 봤던 글은 아닐까? 누군가가 썼던 표현을 나는 참신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적는게 아닐까? 이때동안의 다른 글도 표절한 글이 아니었을까] 의 상황에 닿도록 부채질한다. 사회적으로 매장되어버리는 피해자는 이 두번째 계획에 의해 회복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파멸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다. 자신조차 믿지 못한채, 계속하여 자학을 하며...... 책으로 이런 끔찍한 계획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그리고 무섭다. 이 소설은 작가가 이끄는대로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나 지적, 미스테리 스릴러류 처럼 잠시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추고 범인을 떠올리고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 다만 이야기에 빠져들면 된다. 상황자체는 느슨하게 전개된다. 애초에 독자는 살인자의 편에서 이야기를 보고있으며,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빠른 상황전환과 의혹의 긴박감은 없다. 하지만 그 몰입도와 긴장은 무시할 수준이 못 된다. 특히 중 후반에 들어서 치밀하면서 잔인한-그러나 동시에 피는 보이지 않는-계획이 드러나고, 그것은 소름이 끼칠정도다. 자 이 화제의 책?을 언제든지 5천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