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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번 경우는 모험이었다. 오로지 번역자 전혜린에 대한 관심 하나로 선택했으니, 솔직히는 작가도 제목도 나에겐 생소했다. 독일에서도 사회 풍자를 많이 했다지만, 오히려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아동문학에서였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지성인인 주인공 파비안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겪는 성적 문란, 정치적 광신, 실직 그리고 배고픔 등 비뚤어진 사회는 더 이상 소생 불가능해 보일 뿐이다. 패전 후 불안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서 어떤 변화도 이끌내지 못하는 지성인으로 살아가는 그 자신과 썩을 대로 썩은 사회에 대한 절망과 체념이 전반적인 침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래서 우울하고 답답하고 나중엔 나까지도 절망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분위기가 어쩐지 번역자 전혜린과 잘 어울려서, 파비안의 이유도 없는 답답하고도 우울한 행동들을 뚝 뚝 끊어서 그렇지만 여운이 왠지 잔잔하게 깔리 듯 표현함이 꽤나 설득적이다. 어쩐지 내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도 파비안을 통해 자신을 모습을 본 것이 아닌가 했다.
그렇게 짙게 깔린 우울함 속에서 독자들이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 작가의 배려, 그 허를 찔리는 재미가 또한 상당히 쏠쏠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기대하는 반응에 침을 뱉듯이 그래서 허탈한 감정이 밀려들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장치가 기가 막히다. 동화같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며서 동시에 눈물이 같이 떨어지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마치 프랑스 영화? 아니 가까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분위기다. 무겁지만 가볍고 또 가볍지만 무거운.....
사전 지식 없이 감행한 모험 속에서 웃음도 눈물도 한꺼번에 뽑아낸 것 같다.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지만, 왠지 짠~ 하다. 그게 그냥 좋다랄까! 기대하지 않았는데, 월척을 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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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케스트너는 사실 이 파비안보다는 에밀과 탐정들, 날으는 교실 같은 아동문학가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파비안은 정작 위의 작품들보다 먼저 쓰여진 것이지만 동화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마치 빛이 이리저리 파동을 일으키며 구부러져 보이는 아주 특이한 소설이다. 파비안은 실직자이며 베를린이라는 대도시의 한 시민일 뿐이다. 그는 수많은 비리와 부패들을 본다. 그러나 파비안은 이런 부조리한 사회에 비판이나 개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단지 그것들을 방관할 뿐이다. 그는 결국 물에 빠진 한 소년을 구하려다 자신이 익사하고 만다. 왜 베를린이 낯설지 않았을까? 케스트너가 의도한 이 일그러진 동화적 분위기가 왜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에 쓰여진 모든 일들이 우리 현실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 볼 수 있는 '파비안'은 아주 조용하면서도 충격적인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