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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커서 뭐하고 싶냐 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무언가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무언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면 그 일은 위험하고 돈도 못 버니 돈 잘 벌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많다. 지금까지도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어려운 사람이 뜬금없는 상황에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으로 그 꿈을 보고 평가까지 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꿈이란 것을 광고하고 다니듯이 입에 붙여서 다니기는 힘든 일이다. 꿈을 말하는 것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오리'라고 외치면 '꽥꽥'이라고 답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얼마 전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질문은 '한국에서는 토론이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었다. 센델 교수가 말하길 한국 사람들은 말하기 전에 그 말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이나 회의는 언제나 이상적인 형태로 끝나고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의견인데도 불구하고 실행되기 힘든 이유는 속에 있는 진짜 의견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이상적인 말들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거쳐 사회, 역사, 윤리 전반에 걸쳐 결론에는 대부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든지 절충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대안 없이 두루뭉술한 결론이다. 이런 두루뭉술한 결론들의 결과는 어떤가? 센델교수의 말대로 이상적인 대답과 의자에 여전히 붙어있는 엉덩이다. 나도 한국 사람이기에 꿈을 말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나에 대한 어떤 생각을 하는 지에 신경을 써서 더 조심스러운지도 모른다. 이것은 응당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대로 젊은이들이 받는 질문들을 기성세대에게 하면 보통 나이 이야기부터 나온다. 이미 살만큼 살았다는 이야기다. 꿈도 희망도 없다. 하지만 속마음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본인들을 말하기 힘든 그 꿈과 속마음을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생각하라고 하고 있다. 선생님이 대뜸 와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도대체 뭐하고 대답해야 할까? 교수님이 와서 앞으로 뭐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수업 때나 보던 그 분 앞에 자신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야 하는 걸까? '모른다.' 혹은 '없다.' 라고 대답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다'며 한탄을 시작한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은 있다. 하지만 모두 다 할 수는 없다. 학교는 꿈의 탐색을 도와야 한다고 한다. 학교는 과연 꿈의 탐색을 도와주었는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의 폭력과 폭언과 교과과정에 끼워 맞춘 교육과정은 우리의 꿈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우리는 우리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기에 앞서 겁먹는 법과 하면 안 되는 말부터 배운다. 하지 말하고 하면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 교감선생님이 아이들을 말을 안 듣는 다고 뺨을 소리가 나도록 세게 때리는 것을 보았다. 충격적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 었다. 우리의 꿈을 말할 수 있는 창구를 모두 닫혀 있는 데 왜 우리는 꿈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꿈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꿈은 언제나 있다. 다만 지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조금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고 일찍부터 결정해서 그 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는 왜 꽉 막힌 환경을 주고 일찍부터 꿈을 정해 경쟁하라고 부추기는 것일까? 이 경쟁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꿈을 강요받고 그 꿈을 향해 달리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것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다. 프로그램 속으로 밀어 넣는 것도 아니고 철창에 가둬놓고 끊임없이 교육만 시키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국영수 중심인 시험 점수가 아니라 우리가 꿈에 대해 이해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예전에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침팬지가 가장 먼저 한 수화는 '나를 놓아 달라.' '나에게 자유를 달라.' 이었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자유를 달라. 동물도 원하는 그 자유를 달라.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남의 꿈이랑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이 책과 별로 상관없다. 이 책을 읽고 한 생각이다. 이 책은 많은 것들을 정치와 연결시키고 있다. 사회, 예술, 경제를 정치와 밀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글들의 공통점은 해방을 원하고 있고 자유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제된 자유가 아니라 만장일치가 되는 그 길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시끌시끌하겠지만 각자 이야기를 하고 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 시끌시끌할 수 있는 자유다. 바쁘게 돌아가며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닌 세상이 아니라 몇 가지에만 신경 쓰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핵심적인 톱니바퀴를 원하고 있다. 아마 이 글은 이 글로써 끝날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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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기를 사람들은 진보의 무덤이라 말한다. '지금 여기의 진보'에는 홍세화의 글이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지금 진보신당 대표인 그가 총선의 저조한 득표율로 당이 취소되고 다시 당사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맞딱드린 현상은 이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여의도 당사를 비워져야 할 기일을 다가오는데 새로 옮길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한 달 보름이 걸려서야 겨우 계약할 수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당 이름을 말하는 순간 건물주가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 일이 허다했고 심지어 계약을 하고 나서 취소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사태 이후 벌어진 풍경이었다. '우리(진보신당)는 그 당(통합 진보당)이 아니'라거나 구차함을 무릎쓰고 우리는 당이 아니라 준비하는 단체라고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p. 283~ 284)
하지만 진보는 이번 총선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진보진영의 주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통합 진보당은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다. 지역구 의원 7명에 비례대표 6명. 모두 13명의 의원을 산출했을 뿐만 아니라 제3당으로까지 그 지위가 격상했다. 바야흐로 이제 좀 진보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다들 기대가 컸다. 그것으로 총선의 결과가 준 실망감에 대한 위안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기대와 위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구당권파의 선거 조작이 탄로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뒤통수를 더 강하게 내리쳤던 건 다른 데 있었다. 비록 부정 선거가 이루어졌어도 도덕적인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진보답게 그 선거로 인해 당선된 사람들이 자진 사퇴했으면 좋게 마무리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보라는 이름표를 붙인 자로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 사퇴를 하지 않고 버텼으며 그들의 세력인 구당권파는 온갖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들을 비호했다. 더구나 그들의 사퇴를 의결하기 위해 모인 대의원 회의때는 12시간이 넘는 동안 조직적인 의사 방해 공작으로 우리 모두의 공통된 가치인 민주주의마저 망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도 그들은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들은 당당했고 오히려 부정선거로 당선된 자들을 정당하게 사퇴시키려 하는 사람들을 음모라며 공격했다. MB정권 때 가장 많이 썼던 사자성어는 바로 '후안무치'였다. 정확히 그 때의 구당권파도 거기에 막상막하였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다음날 모두 쌍욕이 작렬했다. 배신의 정도가 컸던 한 사람은 지금도 진보란 말만 들어도 진동 모드의 휴대폰처럼 부르르 떨기도 한다. 그렇게 진보는 비오는 날의 쓸모없는 전단지처럼 바닥에 버려졌다. 진보의 깃발은 남의 말은 전혀 들을 줄 모르는 막귀에다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낼 줄 아는 입을 가진 자들의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지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진보의 신념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고 비민주와 불합리로 무장한 자들에 의해 무너졌다.
진보가 살던 동네는 이제 폐허만 남았다.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사람들은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나 폐가를 보듯 멀리 떨어져서 이제 그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무시도 오래갈 수 없다. 거기를 보지 않으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보다 훨씬 더 어둡고 희망없는 세상이 빵셔틀을 하려는 일진들 처럼 '씨익' 웃으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도 없고 돈도 없는 약자들은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을 가진 자들의 총알받이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 그래서 네거리만 나가면 만나게 되는 편의점 마냥 상처와 절망을 받게 되는 세상이 말이다. 그러니 '그래, 똥 묻는 개보다는 그래도 겨 묻은 개가 낫겠지' 싶어서 진보를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나마 약자가 살려면 그래도 진보가 좀 나아보이니까. 다시 말해 지금의 세상이 영혼을 익사시킨다고 한다면 진보는 적어도 조금의 숨통은 풀어줘서 자맥질이라도 할 수 있게는 해주니까...
그래서 다시 찾았다. 망해버릴대로 망해버린 진보지만 다 타버린 건물 더미에서 쓸만한 것을 건져내듯 다시금 진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었다. 여전히 완전히 믿지는 못해도 칠흙 같은 어둠 보다는 그나마 반딧불 정도의 밝기라 해도 빛이 있는게 나으니까. 오늘의, 너무도 어이없어서 오히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사태를 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거쳐야 했던 시행착오로 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보게 된 책이다. '지금 여기의 진보'라는 책은... 진보진영 10명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내게 꼭 진보 위에 드리워진 무덤 속 같은 깊은 어둠 속을 저마다 홀로 날아다니고 있는 진보의 목소리라는 반딧불 하나 하나를 채집해 모아 놓은 유리병 같았다. 진보 진영에서는 제법 명망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너진 진보를 어떻게 새로운 축대와 서까래로써 다시 새롭게 지을 것인가 그 고민이 담겨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고민들이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어떤 하나의 줄기 아래 같은 이야기를 하자고 모인 책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마다 생각한 것을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광장이다. 그래서 군무가 아니라 독무다. 개성을 가진 열 마리의 반딧불이 저마다의 빛깔로 사람들의 앞길을 비춰주고자 모여 청사초롱과 같은 빛을 내는 것. 그게 바로 '지금 여기의 진보'라는 책이다.
그러므로 순서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드는 이 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이 열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뿌려내는 다채로운 색깔들은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 처럼 당신 앞에서 진보라는 그림으로 탄생한다. 시인이자 사회학자 심보선은 진보의 개념이 옛 것 그대로가 아니라 오늘에 맞게 새롭게 설정되어야 함을 말하고 현재 진보신당 창당준비위회 정책위원회 의장인 장석준은 이제 진보가 녹색사회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번 총선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녹색당이 참여했었다.)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인 박상훈은 진보가 대중들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받을 것인가를 현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번역해서 더욱 유명해진 홍기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살림살이 경제학을 다시 되살려 그것을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한다. 이렇게 이 책은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열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고유의 선율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보에 대한 그들이 가진 고민의 깊이는 비슷하고 그것을 그저 말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모아놓고 들으면 불협화음의 아니라 근사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마음을 도닥여주고 평화로움에 젖게 하다가 나중에는 웅대한 비젼을 연출하여 저절로 희망을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오케스트라 말이다. '지금 여기의 진보'는 그런 희망을 위해 열 명의 반딧불들이 연주하는 빛의 오케스트라이다. 일독(一讀)이 아니라 일청(一聽)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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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심보선,장석준,박상훈,홍기빈,이택광,하종강,서동진,엄기호,박경신,홍세화 공저
총 열 명의 사회 진보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각각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보는 이름은 홍세화씨 한 사람뿐.
어릴 적에 ‘진보’ 내지는 ‘좌파’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해리 포터’에서 이름을 부를 수 없던 그 사람처럼 말이다. 중학교 때 역시 분위기는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가 되어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학교 주위로 매캐한 냄새가 종종 바람을 타고 실려 왔고, 거리가 시끌벅적했다. ‘진보’라는 말은 조금 허용이 되었지만, 여전히 ‘좌파’라는 말은 금기어였다.
대학교에서 나에게 ‘좌파’라는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한 학회실에서, 수업도 듣지 않고 민중가요나 부르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선배들의 모습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난 아마 그 당시 꽤나 잘난 척하는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그런 학회 선배들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난 너희와는 달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머리에는 ‘대학생 좌파 = 멋도 모르고 선동당하는 모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허송세월하려고 대학을 온 게 아니라면서 그들을 한심해했다. 변화를 원한다면, 세력을 키워서 집권층이 되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물어본 이런 내 질문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라는 비웃음만 돌아왔을 뿐이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그런 쪽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뉴스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진보’란 결국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고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좌파’나 ‘진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왔다 갔다 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카드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진보 = 빨갱이’라는 말이 대뜸 나오는 시대이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이 퍼져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모 사이트 댓글을 보면, 진짜 가관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댓글을 달면 단번에 ‘너 빨갱이지?’라는 답글이 달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과연 저 공식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무지로 빚어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동안 이런 장르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최근에 뉴스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도대체 이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떠올랐다.
쉽게 풀어서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쓸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써도 되지만 그러면 ‘진보’라는 고고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예상한 이 책의 독자층 수준이 높은 것인지 의문이다.
대학 때,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대답하던 동기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그건 네가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하고, 자기들끼리 민족이니 평등이니 하니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은 접근을 불허하는 그런 느낌. 그러니 ‘진보’가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니, 이건 어쩌면 처음부터 맞지 않는 레벨의 책을 고른 내 책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보’라는 것이 현 상황에 머무르거나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보거나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소외받고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지 못하는 계층의 권익 대변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진보’는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Fail이다. 그런 사람들은 종이책에서만 볼 수 있나보다, 도도새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람들과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난 집과 직장만 다니는 소심한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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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진보/심보선 외 9인/이음 아직도 진보 정치와 진보 정당 건설을 입에 올리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아직도 진보가 사망했다는 소실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진보는 죽었다![312p] 우리에게 진보란 아직도 유효한 가치인가? ‘역사 발전의 필연’이란 이름으로 진보의 당위성을 인정한다 해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그러한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회의는 우리 역사에서 진보가 얼마나 유효한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고 이제는 진보가 굳이 없어도 미래는 밝은 방향으로 계속 나갈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에까지 미친다. 이 지점에서 바로 진보의 무용론이 태동하고 더 힘을 얻는다. 지금 ‘진보의 위기’라는 파고가 높은 것은 진보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행위들이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집권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책임 있는 정당 정치의 주체로서 인정받으라는[307p] 최장집 교수의 지론에 이제는 귀를 열어야 할 때이다. 이 책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정책이나 방향에 대한 글은 아니다. 10명의 진보적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따로 쓴 글은 진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기 위한 작은 조각 퍼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좌파의 변천사와 녹색사회주의, 노동문제와 예술, 공교육 문제와 표현의 자유에 이르는 주제를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지만 진보적 시각과 모색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문제의 시급성과 절박함에 대한 저자들의 높은 목소리가 정작 독자들에게는 그리 크게 와 닿지 않는 까닭은 작금의 진보진영에 대한 실망감이 한 몫 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무용론에는 찬성할 수 없다. 진보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은 진정어린 반성과 함께 계속되어야만 한다. “구원은 위험이 있는 곳에 있다”는 휠덜린의 말을 기억하자. 지금의 위기는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초래한 위기이며 그것을 극복할 책임 역시 그들에게 달려 있다. 지금의 상황은 진보의 무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의 능력을 과신한 데서 초래된 문제라고 볼 때 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진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조금 더 다가선 세상을 만들어 줄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에 대한 답이나 확신을 이 책에서도 얻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그 어떤 출중한 이념이나 활동도 현실과 동떨어지고 대중과 괴리되면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우친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그 당이 ‘가난한 자의 정당’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탈당했다는 어느 활동가의 말이야 말로 진보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가장 솔직하게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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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revolutionize make a change nothin's strange, People, people we are the same No we're not the same Public Enemy, <Fear of a Black Planet>, "Fight the Power", 1990 본질적으로 ‘알레고리’라는 낱말은, 괴테의 설명에 의하자면, ‘보편을 위해 특수를 구하는 방식이며 상징은 특수 속에서 보편을 보는 방식이다.’ 라고 한다. 여기에서 그 순수한 의미에서 알레고리라는 단어를 상기하게 된 것은 <지금 여기의 진보>(2012)의에 “서문: 왜 ’지금 여기‘의 진보인가?” 에서의 첫 번째 구절에서의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장소의 특이성과 진보라는 보편적 기획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라는 다소 근심어린 질문을 보자마자 불현듯 떠올리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프랑크푸르트 학파 연구가 수잔 벅 모스는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알레고리에 대해서 “예술가가 알레고리를 자신의 미학적 장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세계가 주체에게 알레고리를 인식적 명령으로 강요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특정한 경험이 알레고리적인 것이지, 특정한 시인이 알레고리적 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지칭하면서 알레고리적이라고 지적한 특정한 경험 또는 시대란 ’자본주의적 근대‘라는 다소 익숙한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과 근대의 조우. 자본의 형성과 근대의 발전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진화라는 관점에서 대한민국 정지척 지형도는 기이하게 왜곡되는 현상으로 축적된 평면도이다. 그러니깐 자본에 잉여가치에 따라 나누어진 계급들이 그들이 처한 환경을 위배하고, 물론 상부계층들은 그들에 이익을 배신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라고는 쓰지만 일종의 신기루 현상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리스 시대의 나올법한 참주제도(僭主制度:전제정치)가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늘함을 느낀다. 이 책에서 밝히 바와 같이 ’진보‘라는 개념이 왜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인 통념의 정치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에게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는 일종의 오딧세이의 여정에 매타포이다. 정치/사회/문화에서의 논리는 ’이성‘이라는 합리적으로 결단의 선택을 내리는 대신에 ’감성‘의 효율적인 순간의 결정으로 치우치는 편으로 그 중심축의 방향이 이동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진보‘의 ’정치는 결코 세력화, 권력화 할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하부구조를 전황 할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인 ‘계몽’보다는 전체적인 ‘학습’에 유입과 유통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좌파’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시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노동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여기지 않으며 교과서적 패러다임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 노동하는 시간에 대한 정당한 권리행사와 임금협의의 과정을 거쳐 현실적인 좌파의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들은 지루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리포트에 쓰인 예측 결과대로 예견된 지겨운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나르시시즘을 끌어들인다면 명백히 실패의 귀결와 참혹한 파국을 초래하고 마는데, 이 충동의 과정 안에서 ‘우리들의 현실적인 행동 ’투표‘이후에 그 대안적인 필요성에 대한 감시의 역할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을 우리가 져야 한다. 여기에서 투표에 정당성과 그 기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 회복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필요성의 담론을 끌어들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계에 대한 냉소와 불신, 우울하고 어둡고 이러한 이미지에 대해서 어는 정도의 형성화를 기여하는데 우리들의 ’무지‘가 한 몫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스산한 여름의 밤을 보내기 어려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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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좀 생각이 정돈되는 것 같구나. 지난 19대 총선 때 느낀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감에 대해, 시의적절하게 진보라는 대주제 안에 정치/경제 등등 소주제별로 분석한 이 책을 통해 정리가 되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진보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다뤄주는데도 여전히 여성주의적인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고, 심지어 여성 필자조차 한명 찾기 힘들다니. 그게 좀 아쉬웠다. 이것이, 우리나라 진보 스펙트럼의 한계인가? 아니면 우리나라 여성주의의 한계인가. 아ㅡ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걸 절절하게 체감하는 요즘인데 내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풀어낼 곳은 투표, 딱 하나뿐이라니. 슬프구나. ㅠ_ㅠ; 여성주의 정치인들, 제발 좀 나타나주세요. 이러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게 생김. ㅡ_ㅡ;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지금 여기'란 말. 'nowhere'를 'now here'로 새롭게 바라보자는 누군가의 반짝이는 생각으로 나온 말일테지. 지금 여기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제발 올 12월 대선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진보'한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면. 하긴, 이보다 더 나쁠 수야 없겠지.
p23 좌파의 깃발은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대의 가 새겨진 깃발이 아니라 좌파의 매력이고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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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서는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입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은 보수가 아닌 진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을것 같은데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진보에 대하여서 자천타천으로 진보논객으로 보여지는 분들이 자신들이 생각을 하고 있고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분야에서 생각을 하는 진보적인 부분에 대하여서 설명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각자의 분야가 서로 다른점이 책을 읽는 매력으로 작용을 하고 있고 읽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을 골라서 읽으면 더욱 좋을것 같습니다. 정치분에 투신을 하여서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고 그동안에 행한 일들에 대하여서 어떠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실천을 하기 위하여서 정치인으로 변신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과는 완전하게 다른 분야인 정치에서도 자신의 과거만을 생각을 하고 운동을 하는 방법으로 정치를 하면서 많은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실패를 하고 계속하여서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정치와 운동에 대하여서 느껴야 하는 부분에 대하여서 논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사회에 전하기 위하여서 생각을 알리는 여러가지의 방법중에서 이목을 집중을 시키는 방법을 찾아서 행하고 그러한 행동을 통하여서 알리고자 하는 생각에 대하여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현재의 사회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운동은 자신이 추구를 하는 목적만을 위하여서 활동을 할수가 있고 그러한 사람들이 올바른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정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활동을 하면서 시작이 되어온 긴세월 함께 한 행동이면서 언제나 많은 불란을 가지고 오는 행위인데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에 대하여서 깊은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행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행동은 독선적인 인물로 보여지고 좌와우를 통합을 하여서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가 된다고 하여도 그 행동이 이익이 된다면 행할수가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고 그러한 행동을 할수가 있는 사람들은 일부의 사람이 가능한 것이므로 자신이 현재 행하고 있고 일정한 업적을 만들고 있다면 지금의 생활에 매진을 하여 업적 을 만들어 가고 일종의 수렁이라고 할수가 있는 정치판에 투신을 하여서 모든 것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리는 행위에를 하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글이 있습니다. 진보라는 것이 그 당시의 상황에 의하여서 분류가 변화를 하는것 처럼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이고 활동을 하여야 하는 분야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너무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에 만들어온 보람있는 생활을 망가지게 하는 분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심정을 잘보여주고 있는 부분인것 같습니다. 교육과 경제에 대하여서 진보진영의 시각을 보여주는 일면도 있고 환경적인 문제를 논하는 면도 있는것과 같이 진보라고 하여서 획일적인 사상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것이 아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분야에 대하여서 논하고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들이 논하는 사상이 기존의 기득권층에게는 아픔이 될수가 있는 부분도 많지만 실제로는 아픔이 아닌 더욱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진보논객들의 여러가지 사상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보고 왜 진보진영이 사회에 필요한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제공을 하고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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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자제하고 전통을 유지하려 것을 말하고 진보란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라고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모든 생물은 변화하는 것을 꺼려한다. 환경에 적응하려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국민들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기 때문에 변화는 꼭 필요하다. 사실 모든 분야에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특히 정치적 영향이 큰 것 같다. 자타가 공인하는 10명의 진보 아이콘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보에 대한 자성과 나아갈 바를 정의 하였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물어보면 대부분 진보를 지지한다고 대답한다. 또한 보수정당의 정치인들 조차 진보를 지향한다는 투로 말을 하곤 한다. 요즘 시대엔 진보가 대세이긴 한 모양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진보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존재한다면 진보는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열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라 지식인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은 사전적 의미의 일정한 교양이나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군중 속에서 검증되지 않는 지식인이 리더에 올라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군중심리라는 이상한 심리상태에 빠져 그에 열광하고 있지만 두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서 그를 바라보면 그의 오류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 우리 국민의 수준이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란 현정부와는 좌 클릭된 상태를 말한다. 현 정부의 성적표가 좋지 않을 때 진보의 가치는 올라가게 되어있다. 우리 진보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진보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어느 놈이나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이 힘들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최빈국인 소말리아나 마다가스카스, 미얀마, 아이티, 라오스등의 기득권(군인, 왕족)들은 선진국의 누구 보다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이유 때문에 기득권들을 싫어한다. 부자나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양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는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남의 나라 얘기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의 진보가 위기 상황이다. 모든 분야에 진보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진보가 가장 선두에 있고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은 누구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인 각 분야의 진보라 할 수 있는 저자 10명은 진보의 문제점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가 나타나더라도 국민전체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소수의 의견도 경청해야 더 낫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10명의 저자 중 절반 정도의 글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절반 정도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에 그들의 글을 접해서 일수도 있다. 여러 사람들의 동조를 얻으려면 여러 사람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어려운 용어를 난발하고 있다. 소외 계층들에게 공짜로 책을 나눠주며 동조를 원하더라도 결코 동조를 얻어낼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사전적 의미의 지식인이라면 그들만의 리그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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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상호기자의 북살롱에 다녀왔더랬다
이상호기자에게서 정의에 관한 그의 입장을 물었을때
그가 말하길.."아름다운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는 저마다의 개인에게 다르게 적용할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수 있다.
...
<지금 여기의 진보>에 참여한 저자들의 몇몇 행보와 저작들을 접했기에
이 책의 가치는 한국판<뉴레프트리뷰>라고 보여졌다.
쉽게 읽기에는 너무 많은 담론을 기억할수없었다는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울뿐이다
똑똑하지 않은 독자인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덮게 했다는것이 이책의 단점이지만
반대로 이책은 굉장히 지적인 대화인것이다.
한번에 읽기보다는 하루 한명의 저자의 읽기로 그날그날의 반추되는것만으로
읽기가 통달해 이해가 된다면 좋겠다.
언젠가 뉴욕타임즈(163회 1부)에 홍세화 대표와 김어준 총수의 대화중에서
집권당으로서 개혁안을 내놓으라는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에
선거연합은 가능하나 정당의 정체성을 지킬수 없을때 연합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진보는 분열하면 망한다 - 김용민
진보는 분열해서 많아진다. - 홍세화
동의안됨 - 김어준
진보의 정체성은 다양성에서 찾는다는것을 이책을 읽고 이해했다
보수처럼 하나일수 없는 진보의 가치는 다양성으로
자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것을 인지한것만으로도
읽기에 조그마한 성과를 얻었다 |
내 나이 31살 국회에서 항상 보여주기식 싸움, 끝나지 않을것같은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공약때면 나오는 보수와 진보 과연 나는 어떤 성향을 가졌을까? 본인도 정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선거는 나에게 하루 주어진 공휴일이고 하지만 소통정치라는 이름아래 자행되온 이번 시기에서 정말 뼈져리게 느끼며 정치란 무엇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일까? 심보선, 장석준, 박상훈, 홍기빈, 이택광, 하종강, 서동진, 엄기호, 박경신 그리고 홍세화
각계각층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진보에 대해 읽어보았습니다. 정치를 처음 아니 보수, 진보라는 것에대한 글을 처음 읽는 입장이라 그런지 소설처럼 쉽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그럴때는 단어의미 검색ㅋ 진보 보수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성향인 보수도 기존의 가진 것을 더 탄탄하게 하여 정말 읽은 책중에 긴 시간을 투자해 읽었습니다.윽
한국의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 명을 먹여 살릴 잘 나가는
다른 진보도 중요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멀다고 느꼈는지
보수와 진보는 어쩔수 없이 대립하겠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정답은 없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