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만으로도 굵직한 영미권 스타작가 20인의 ‘오싹한 이야기(Thrilling Tales)’를 테마로 쓴 스무 편의 단편소설집이다. 저자 섭외부터 디자인 콘셉트까지 기획 총괄한 마이클 셰이본은, 해당 단편소설에도 합류했다. 본문 뒤편에 수록된 제작노트에도 언급했지만, 지금은 잊히고 만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작가들이 단편을 쓰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작업이고, 독자들 또한 단편을 읽는 게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들의 숭고한 몸부림이 잊어버린 근원을 일깨워주는 보탬과 보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아는 작가는 닉 혼비와 스티븐 킹, 마이클 클라이튼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 기회 지면을 빌어 여러 스타작가를 만나게 되어 더 없이 반갑다. 뒷면에 <수록 작가 소개>가 따로 기술되어 있지만 검색어에 그들의 이름을 입력하면서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내용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실 ‘오싹한 이야기(Thrilling Tales)’를 테마로 하였다고 하여 미리 공포에 떨 준비부터 했는데 그것이 걱정된다면 처음부터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이다. 공포라는 테마는 공통분모지만 소재와 접근법 등 유형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로맨스, 유머, 모험, 공포, 추리, 범죄, 역사, 판타지, SF 등의 각기 다른 장르 속에 불완전한 미래, 고스트와 좀비, 킬리만자로 등반, 잠재의식과 상상력, 역사와 허구, 괴물, 대참사 등 다양한 두려움의 대상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한데 어우러져 나온다.
순간 등줄기가 오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읽으면서 공포가 사무치기도 했으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읽혔던 이야기도 있고, 농담처럼 웃음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작가들이 각자 살려낸 단편작품을 통해, 독자들 역시, 인간이 가진 폭력이나 잔혹성에 근거하여 공포의 근원, 그 본질을 사유하고 성찰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공포란, 시각적인 효과에서만이 아닌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그 두려움의 실체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짧은 이야기 한편마다 그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임팩트 있게 증명하고 있다. |
|
20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놓는다면 전부 취향에 맞기도 힘들고 게 중에는 중간중간 쉬어가는 격인 작품이 섞여있을 법도 한데, 초지일관 각성상태로 편식하지않고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건 진정한 이야기꾼이라 불릴만한 개성강한 작가들로 이루어진 라인업 덕분이다. 20명이나 되는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긴 귀찮지만 스티븐킹, 닐게이먼, 엘모어 레너드 등의 정상급 작가들의 이름은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집의 퀄리티를 말해준다. 공포스런 상황을 주제로 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범위를 넓혀서 기발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하고, 하나같이 일단 시작하고보면 예외없이 마지막문장이 나올때까지 잡아끄는 힘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표제작 <안그러면 아비규환>의 저자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진 닉 혼비. 그동안 닉혼비가 참여한 작품집을 몇번 읽은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항상 그의 작품이 맨 앞에 실려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뭔가 앞에 나서는걸 좋아하는 성격인걸까.
<안그러면 아비규환>은 이혼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5살 소년이 어떻게 한 여자와 한 침대에 눕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게 단순히 한 여자아이와 동침한 사연 정도로 끝나는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면 "서두가 있고, 기묘하게 전개되다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다. 안그러면 스티븐킹 스타일의 얘기 즉, 서두가 있고, 기묘하게 전개되다가, 우라지게 무서운 엔딩으로 마무리해야되는데 그렇게 하긴 싫거든. 그런건 지금 나한테 전혀 도움이 안되니까." 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하는데, 무서운 엔딩으로 마무리 하기는 싫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버클리 청소년 빅밴드에서 가장 예쁜) 마사와 한 침대에 눕게 된 사연은 언뜻 해피엔딩인듯 하지만 좀더 깊은 내용을 알고나면 놀랍도록 처참하고 슬프고 치가 떨리도록 무서운 얘기다. 매사에 긍정을 강조한 엄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해피엔딩이 되기에는 턱도 없는, 이보다 더 끔찍할 수 없는 소재.
원래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 레이이커스의 경기를 녹화하기 위해서 엄마를 졸라 사온 5달러짜리 중고 VCR이 그 화근이었다. 테입도 없이 지상파 방송을 빨리 돌릴 수 있는 수상한 VCR.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보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것은? 정말로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미사와 한침대에 눕는 것 말고는 눈꼽만치도 찾을수 없는 사상최강의 배드엔딩이다. |
|
처음엔 별로 주목하지 않은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동하는 영미권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라고는 ‘닉 혼비, 닐 게이먼, 스티븐 킹’ 이렇게 세 명의 작가가 전부였다. 호감을 갖지 않은 상태로 책을 받아보고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부피감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오싹한 이야기Thrilling Tales’를 테마로 쓴 소설집이라기에 결코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불편하고 거북한 이야기, 오싹함은 끔찍한 피의 현장일 것만 같고 특정 장르소설을 연상하며 내키지 않음 마음이 컸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찬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선입견에 마음을 닫고,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니 결코 후회하진 않았을까? 여하튼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커다란 호기심에 휩쓸렸다. 20여 명의 작가들이 풀어낸 이야기는 참신하고, 그렇다고 가볍게 읽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기묘한 사건,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내내 흥미진진한 시간을 만끽하였다. “노력이라는 것은 치열하게 꾸준히 해야 하는 것” (180)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정리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이다. 항상 귀차니즘에 빠져 안일했던 삶에 강렬한 균열을 일으키며 뒤흔들었다. 최근, 나를 괴롭히던 어떤 일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고 흔들리지 말라고 속삭여주었다. 킬리만자로로의 하이킹을 떠난 후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오래 전에 동생과 함께 준비했던 킬리만자로, 하지만 홀로 떠나왔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끊임없이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자신의 목적을 읽고 방황하고 있었다. 주인공 ‘리타’는 분명 꽤나 무력하고 따분함에 빠져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고도 여전히 겉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밤중, 달빛 아래 드러난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고 그녀는 정상까지 오르기로 결심을 하다. 그녀의 놀라움과 그 성취감에 들뜨는 그 마음이 오롯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녀의 마음이 새롭게 의지와 열망으로 불탔다. 킬리만자로의 산행을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듯, 압도적이었다.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산행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들의 산행을 함께 했던 짐꾼의 죽음 그저 희열, 환희에 들뜬 수도 없어 가책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의욕도 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휩쓸리듯 시작된 산행, 그 며칠 동안의 힘겨운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변화로 인해 내 마음도 뜨거워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또 주저하고 흔들렸다. “짐꾼들과 이대로 캠프에 머물면서 마지막 등정을 포기할까 잠깐 고민한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사진도 있고, 아이맥스 영화도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그녀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리타는 자신이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 오랫동안 그녀는 노상 자신의 깜냥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다, 매번 느닷없이 포기하고는 그저 열심히 했다는 데에 만족해왔다. 성공과 실패 사이, 성취하고 이룬 목표와 조정된 목표 사이의 그 미묘한 지점에서 위안을 발견했다.”(184~185) 아~ 그 어떤 문장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 또한 지금껏 그러했다는 자각에 몸서리쳐졌다. 올 해 초 어떤 목표를 세우고 최근에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1 년여의 장기 레이스에 몸과 마음이, 아니 마음이 많이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갈등, 그녀의 변화가 내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또한 단순한 개인적 성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누군가의 말없는 희생이 짐꾼의 죽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일이 죄 틀어졌는데도 왜 올라간 것일까? 짐꾼들은 매일 앞서 올라갔고, 지독히 춥고 바람이 무지막지 불어도 경치 좋은 장소까지 등산객들이 오르는 것을 도왔으며, 빌어먹을 수박과 커피를 날랐다.”(194) 그런데 힘겹게 짊어지고 올라갔던 수박이 그냥 버려졌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녀는 결코 혼자 힘으로만 그 정상에 오른 것만은 아니었다. 한 편이 짧은 이야기였지만, 삶의 진솔한 단면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속살을 여지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그럼에도 앞으로 수없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리타’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는 아닐지언정, 푸르른 가을 하늘, 오색의 들과 산으로, 따사로운 가을 햇살 속으로 내달리고 싶어진다. “그녀와 정상 사이에는 오직 시간과 숨결밖에 없다. 그녀는 젊다. 그녀는 할 것이고, 해낼 것이다.” (172) |
|
“장르소설”을 즐겨 읽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장르소설이란 “이전에는 ‘대중소설’로 통칭되던 소설의 하위 장르들을 두루 포함하는 말”로 장르로는 “SF·무협·판타지·추리·호러·로맨스 소설”(네이버 지식백과사전 발췌) 등이 있다고 한다. 순수 소설과 비교하여 너무 “흥미” 위주여서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경원시 - 원래 장르소설의 전(前) 명칭인 “대중소설(통속소설)”이 순수 소설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며 이 말에는 “멸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 하는 분들도 있지만 특유의 장르적 흥미와 재미 때문에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늘 차지하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안 그러면 아비규환(원제 McSweeney's Mammoth Treasury of Thrilling Tales /2012년 7월)>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 이름과 작품을 들어봤을 영미권의 장르소설 스타작가 20인의 단편들을 한데 모은 소설집이다. 이 책을 받아들고서 살짝 걱정이 먼저 앞섰다. 75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읽었던 여러 작가들의 작품 선집(選集)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만 보면 충분히 개성 넘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서로의 강렬한 개성과 색깔이 잘 어우리지 못하고 그저 나열식 밖에 되지 않는, 차라리 한 작가만의 단편 모음집보다 못한 소설집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책 표지를 열었다.
영미권의 스타작가 20인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여기에 모인 19인의 작가 못지않게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 -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수록 작품인 <화성에서 온 요원; 행성 로맨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 이다. 저자 섭외부터 디자인 콘셉트까지 책의 기획을 총괄했다는 그는 책 말미에 실린 “제작노트”에서 앞서 말한 “장르소설”의 정의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장르소설 작가에 대한 폄하를 꼬집는다. ‘문학’을 숭배하는 신성한 전통은 소위 ‘장르’ 작가들을 늘 홀대해왔고, 범죄·공포소설은 ‘펄프픽션’이라서 선정적이고 허섭스레기 같은 대중지에나 게재될 뿐, 자존심 강하고 명망 높은 잡지들에는 감히 실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 지으려는 시도는 뚜렷한 근거와 이유가 없음에도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고, 이 작품집은 이런 편 가르기와 선입견에 반대해 최고의 작가들이 던지는 도전장이며, “지금은 잊히고 만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이 책의 목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름 야심차지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 포부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작품을 수록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고 선택하지 기획자의 의도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뭏튼 기획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속살을 들여다보자.
책에는 장르소설 모음집에 걸맞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되어 있는데, <안 그러면 아비규환>을 잠깐 소개해본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표제작(表題作)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이기도 하지만 책 속 단편들 중에서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와 “셔먼 알렉시”의 <고스트 댄스>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닉 혼비” 인데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SF"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열 다섯 살 소년이 우연히 중고 전자제품 가게에서 낡은 VCR를 구입하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밴드 연습 때문에 좋아하는 NBA 플레이오프를 시청할 수 없었던 소년은 엄마를 졸라 낡은 VCR를 한 대 사게 된다. 그런데 주인이 가장 중요한 녹화와 재생이 안 된다는 것 아닌가. 계속 물어보면 가격을 올리겠다는 주인의 협박(?)에 서둘러 사가지고 나온 소년에게 주인은 신경 쓰지 말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집으로 와서 설치하고 시험작동을 해보니 웬걸 작동이 잘된다. 안심한 소년은 농구 경기 예약 녹화를 해놓고 연습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녹화 테이프를 재생해보는데 아뿔싸 공 테이프를 넣어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테이프를 넣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소년은 VCR 리모컨의 빨리 감기 버튼을 눌렀는데 현재 시청하고 있는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빨리 감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녹화해 놓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 방송“을 빨리 감기로 시청하던 소년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6주가 지나면 모든 지상파 TV, 모든 채널에서 해주는 프로는 뉴스 하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된다. 마치 9/11이 일어난 직후 며칠간과 비슷한 상황 말이다. 그러더니 화면에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 비장한 모습으로 연설을 하고, 그 후에는 사람들이 보따리와 어린애를 안고 집집마다 빠져나와 지하로 피신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그러고는 몇 시간 더 뉴스를 하더니 그 다음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지상파 TV가 끊긴 것이다. 혹시나 해서 계속 빨리 감아 보지만 TV에는 검은 화면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즉 6 주 후에 세상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소년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동급생 소녀 ”마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미래를 보여주는 TV 이야기를 한다. 이 단편은 세상이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년이 세상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서 평소라면 절대 엄두도 못 냈을 제일 예쁜 여자애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녀와 자게 된 이유를 소개하는 어쩌면 응큼한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처음의 걱정을 잊게 만들지만 역시나 계속 읽다보니 각 편의 재미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들쑥날쑥 편차가 있다. 그래서 몇 몇 작품은 읽고 나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어떤 작품들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금은 지루한 작품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 작품들은 과감히 건너뛰고 -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 첫 문장과 이야기가 구미를 당기는 작품들과 기존에 만났던 작가들 - 사실 이 책의 작가들 중 만나본 작가는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마이클 크라이튼”, “로리 킹”, “마이클 셰이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작가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 위주로 골라 읽었는데, 헤아려 보니 13편 정도는 읽은 것 같다. 어떤 작품이 그랬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미권의 스타작가들이라고는 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이 몇 되지 않았고,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 모든 작품들의 재미를 올곧이 다 읽어내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처음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소문난 잔치에도 제법 먹을 것이 많다" - 물론 다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장르 소설, 특히 영미권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과도 같은 책일 테고, 다양한 장르소설들의 재미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이 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
|
딱히 글을 잘 적거나 이야기를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나름의 상상은 참 많이 합니다.. 특히나 잠들기전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물론 나이 들고 사회생활에 치이다보면 현실적 생각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지만 - 그래서 자기전에는 재미난 소설을 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름 재미난 상상도 꽤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늦은 밤 지성 팍의 축구경기를 보다가 내가 이 나이에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소원을 빌어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드로 만들어달라고 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아시아에서 온 같잖은 중년 배불뚝이 남자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축구실력을 보여준 후 1년 안에 유일무이한 축구선수로 등극한 후 딱 3년만 축구를 하곤 돌연히 사라지는 뭐 그런 기분 좋은 상상같은거 말이죠.. 사실 이야기를 만드는 분들에게는 이런 순간 떠오르는 상상들을 메모한 후에 단편이나 장편소설의 모티프가 되곤 한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사실 이런 반짝 떠오르는 머리속 이야기들을 표현하는데에는 단편만한게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상상의 기반은 이런 장르적 감성에서 비롯되지 않을까요, 범죄판타지액션스포츠로망에로틱멜로미스터리스릴러SF적 상상들이 대부분이지 않나요, 아님 말고
마이클 셰이본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대단한 문학작가님이시죠.. 순문학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장르적 느낌에 상당히 고차원적인 똑똑함을 덧붙여주시는 작가님이시기도 하시답니다.. 맞나? 개인적으로는 몇 작품을 읽어봤지만 딱히 엄청 재미지고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은 없었습니다만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사이에서 여전히 입지가 대단한 작가님이시긴 합니다.. 이 작가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셨나 봅니다.. 단편에 대한 생각인데요, 단편문학에 대한 개념 자체가 뭔가 장르적 느낌이 다분한데 순문학과 고차원적인 철학적 문학을 다루시는 똑똑하고 젠체하는 문학의 울타리에서 장르문학은 뭔가 B급스럽고 펄프픽션이라는 저급하고 키치적 대중적 감성이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예전부터 짙었다고 생각해서 요즘 잘나가는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여러장르의 입맛대로 고르기 단편집을 편집하시게 된 듯 합니다.. 맥스위니스라는 계간 문학지와 편집자인 데이브 에거스와 함께 말이죠.. 그 결과물이 이 작품 "안 그러면 아비규환" 입니다.. 내가 해설을 제대로 파악한건지 몰라,
상당히 빽빽하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총 20분의 대단한 작가님들께서 단편과 중편 비스므리한 분량등을 선보여주십니다.. 인간이 느끼는 오싹한 이야기라는 뭐 공통된 관심사로 공포와 하드보일드, 판타지, 추리, SF, 역사, 고고학, 생물학등등을 인간들이 행하는 파괴적 본능이나 폭력적이고 잔인하면서도 내면적 심리를 잘 표현하는 그런 단편소설들로 묶여있습니다.. 현 시대에서 니가 제일 잘 나가라고 해도 무방해 보이는 문학작가님들이 대다수 참여하셨습니다.. 일단 편집자인 셰이본을 필두로 해서 닉 혼비, 엘모어 레너드, 닐 게이먼, 마이클 크라이튼, 스티븐 킹, 로리 킹등등 제가 잘 아는 작가들도 있고 잘 모르지만 대단해 보이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근데 참 다양하다는 말을 여기서 할 수밖에 없겠네요.. 보통 장르문학 단편집이라고 하면 뭐 나름의 작가의 개성이 담겨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장르적 느낌을 많이 보여주지요.. 근데 이 단편집은 정말로 스타일이 작가들마다 다릅니다.. 음, 뭐랄까요 각각의 단편들이 보여주는 감성적 색깔이 다 다릅니다.. 작가의 개성이 너무 잘 살려져있다고 봐야겠죠.. 아, 이 작가는 이런 스타일이구나라는 느낌이 팍팍 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드는 공통적인 생각은 대체적으로 장르적 느낌보다는 문학적 감성이 더 있어 보이는데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개인적으로는 보다 저급하고 키치적 감성이 많은 말 그대로의 인간의 야만적 본능을 의도한 장르적 단편소설들이 좋은데 이 작품집은 뭔가 조금은 고차원적이고 똑똑해보이는 작품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주름을 좀 잡게 해주는 편이라고 보는게 좋겠죠.. 하지만 개중 몇몇작은 아주 재미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그런 작품이 많이 포진되어 있네요.. 상당히 두껍고 알찬 양으로 승부를 하다 보니까 뒤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죠.. 첫 작품도 상당히 좋습니다.. 닉 혼비라는 작가의 글재주는 뭐 말로 떠들 필요가 없는 분이시죠.. 이 단편집의 대표제목으로도 사용된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라는 제목으로 뭔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공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닉 혼비가 말이죠.. 닉 혼비가 공포를, 이라는 생각으로 보시면 더욱더 재미지실 듯 싶구요.. 개인적으로는 엘모어 레너드의 맛깔스러운 하드보일드한 작품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닐 게이먼의 폐점시간은 말그대로 게이먼스럽구요, 데이브 에거스의 작품도 산이라는 매개에 등반하는 한 여인의 감성과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킹쌤은 좀 뭥미스럽기도 하구요 캐럴 엠시월라라는 작가의 사령관이라는 작품은 뭔가 뒤끝이 머리속에서 맴도는 끈끈한 맛이 있고 말이죠.. 돌아가신 크라이튼 행님의 글을 볼 수 있어서 나름 즐겁기도 하구요, 근데 내용은 별로더군요.. 여하튼 블라블라~ 그렇게 뒤로 갈수록 조금씩 집중도가 떨어지고 흘려넘기고 책에서 축구경기가 펼쳐지는 작품(축구랑 책을 같이 볼거 못되더만요)도 솔직히 있습니다만 한번 정도는 읽어볼 만하다고 나름 한국사람 특유의 둥글게 둥글게 평을 해보고 싶네요.. 초큼 찔리기는 한다..
이렇듯 작가들은 자신의 느낌과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멋진 단편들을 선보이면서 나도 이런 멋진 생각과 단편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자랑하는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뭐 말은 이렇게 적었지만 사실 조금은 재미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단순하게 한번 읽고 쳐박아두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는거죠.. 뭐 제가 똑똑치 못해서 그런것일수도 있지만 한번 읽고서 이해가 그닥 안가는 그런 작품들도 꽤 있기도 하구요... 특히나 단편이 주는 마지막 반전의 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작품들도 있고 말이죠..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말과 문장과 묘사와 직접적 상황에만 있는 그대로 집중을 잘하는 저같은 대중독자들에게는 뭐, 그렇고 그런 작품집이었다고 볼수 있지요, 달리 말하면 개인적으로 장르소설 단편집을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읽어보고 있습니다만 늘 그렇듯 단편집이 주는 재미는 전체가 아닌 그중의 몇 편이거나 전체적으로 평균적 재미라는 둥글납짝꾸리무리한 독후감으로 정리를 하곤 하죠.. 그리고 덧붙여 아부적 측면을 고려하여 언제 어느시점에서든 다시한번 펼쳐볼 수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만 사실 한번 덮은 작품들, 단편이나 장편 상관없이 두번 펼쳐보기 어려운게 저의 현실인지라 뭐 읽는 동안 조금 지루하면서도 나름 재미진 부분도 있었다는 평이한 독후감으로 마무리 해볼까 싶습니다.. 끝까지 머리속에서 남는 상상은 나도 미래를 볼 수있는 텔레비젼과 리모콘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이라도 원없이 돈 한번 써보고 가게 말이죠, 땡끝
|
|
단편집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것도 장르소설로만 이루어진 단편집은 더더욱. 해서 처음 이 책의 존재들을 알았을 때 기뻤습니다. 장르문학에 관해선 협소하고 인색한 우리 출판 환경상 장르 단편 소설을 보기란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단편도 아니고 장르 소설 계에선 이름난 작가의 단편들입니다. 장르 소설의 팬이라면 이 책 표지에 쓰여진 여기에 실린 작가들의 이름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스티븐 킹이야 뭐 우리나라에 벌써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최근에야 작품들이 나오게 된, 그러니까 이전에는 정말 세계적인 유명세에 비해서는 가뭄에 콩 나듯 작품이 나왔던 엘모어 레너드를 비롯하여 '셜록의 제자'로 이제야 국내 팬에게 첫 선을 보인 메리 러셀 시리즈의 로리 킹 하며 필립 K 딕을 이은 펑크 SF의 대가 할란 엘리슨 거기다 종교 SF의 거장이라는 마이클 무어콕, 얼마전에 작고해서 장르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쥬라기 공원의 마이클 클레이튼, 거기다 아직 우리에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아방가르드한 SF의 진수를 보여준 거장 캐럴 엠시월러(세상이 엠시월러의 작품이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것입니다.)까지 있으니 어찌 눈이 블링블링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장르 팬이라면 닥치고 손에 잡아야만 하는 책입니다. 이것은...
이처럼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의 성격이 궁금해졌을 때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 책에 실릴 작품을 결정하고 모은 편집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편집자가 책 자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뢰할만하다고 정평이 난 편집자라면 그 이름 하나만이라도 사람들이 주머니를 열고 책을 구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지요. 이를테면 SF계에 있어서 이름 높은 편집자인 가드너 도조와 같은 사람들 말이죠. 이 책의 편집자는 마이클 셰이본입니다. 국내에도 이미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니 우리에게 그리 무명의 작가는 아닙니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케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헙'과 SF계의 양대산맥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네뷸러와 휴고상을 동시에 수상해서 더욱 유명해진 '유대인 경찰연합'으로 이미 만나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케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은 '요람을 흔드는 손'으로 유명한 감독 커티스 헨슨에 의해 '원더보이즈'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개봉까지 되었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죠.(유대인 경찰 연합 역시도 코엔 형제에 의해 영화화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뒤 소식을 모르겠네요.)
바로 이 마이클 셰이본이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뭐,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편집했다고 해서 단편집의 읽을 가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 책만큼은 마이클 셰이본에 대한 신뢰에 대한 제 값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여기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읽기에 만족스런 맛을 준다는 것이죠.
첫 작품 닉 혼비의 단편인 '안 그러면 아비규환' 부터 이미 시선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우연히 구입한 VCR이 사실은 비디오 테이프를 빨리 감는 게 아니라 TV의 화면을 빨리 감아서 미래의 소식을 보게 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결국 주인공이 거기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TV 화면을 통해 바로 6일 후에 지구에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종말을 확실히 알게 된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생각한다는 그런 작품입니다. 그렇게 첫 단편 닉 혼비의 작품이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여기엔 SF, 판타지, 호러, 느와르 등등 온갖 장르의 변종들이 다 들어찬 작품집입니다. 작품들마다 간직된 기상천외한 상상력들도 분명 눈길을 끌지만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종주의과 같은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 예리한 삶에 대한 성찰이 더욱 깊은 맛을 줍니다. 확실히 마이클 셰이본의 편집은 재미와 깊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셰이본이 이러한 단편집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건 무엇보다 그 자신의 향수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아비규환의 원서 표지는 한 펄프 매거진의 표지 그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펄프 매거진의 표지 그림을 사용한 것은 바로 그 펄프 매거진이라는 잡지들 자체가 마이클 셰이본으로 하여금 이러한 단편집을 만들게 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펄프 매거진들은 그때까지만해도 정통 문학이라 취급받지 못했던 그래서 이류니, 삼류니 불리곤 했던 장르 소설들을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통로였습니다. 사실 플레이보이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커트 보네것을 비롯하여 유명했던 많은 SF 작가들을 만나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펄프 매거진들은 호러와 SF 그리고 판타지의 보고와도 같았고 그래서 스티븐 킹을 비롯하여 오늘날 장르소설의 대가들은 어린 시절 그 잡지들을 통해 작품들을 만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키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건 마이클 셰이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장르 소설의 단편들을 볼 수 있는 잡지가 사라졌습니다. 호러와 판타지 그리고 SF의 기반이 되었던 그리고 어린시절의 마이클 셰이본을 더 없이 흥분시키고 꿈꾸게 하였던 보물창고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셰이본은 그 사실이 무엇보다 안타까웠고 작가로서의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그 기반을, 그 보물창고를 다시 한 번 세우고 싶어졌습니다. 그것도 간절히. 그래서 그 염원으로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안 그러면 아비규환'은 그러한 염원의 산물이요 집요의 수확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실린 단편들이 하나 같이 독서의 쾌감을 준다는 것은 당연할 것 같습니다. 다시금 그 기반의 도래를 염원하며 신중하게 고른 것을일테니 말이죠. 길어지는 가을밤을 이 다시금 좋은 옛날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열정적인 편집자의 꿈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 뒷 표지에는 '진정한 이야기꾼들의 완벽한 콜렉션'이란 말이 적혀 있는데 누구의 창작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장르소설의 팬이라면 이것이 사실임을 느낄 수 있으실 것입니다.
|
|
다다익선의 미덕을 오롯이 머금고 있는 기특한 책을 만났다. 변영주 감독님의 추천사가 있었던 이 책을 고민도 하지 않고 덜컥 선택하게 된 것은 이 가을. 통쾌한 일대의 행운.
스토리 탄탄하지 재미있지 아이디어 기발하지 유명한 소설가들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다 들어있지. 욕심을 낸다면 한 편이 아니고 다 수 작들의 수록되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 <안 그러면 아비규환>닉 혼비의 재치발랄한 문체의 사춘기 소년이 VCR을 통해 접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의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생각했었는데, 엘모어 레너드의 <카를로스 웹스터가 칼로 이름을 바꾸고 오클라호마의 유명 보안관이 된 저간의 사정>에서의 주인공 캐릭터 성격의 묘사와 설정들의 그 매력지수란 과연 변영주 감독님이 푹 호감을 품게 된 완성도 높은 작품성.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잔치상에 공짜로 숟가락 들이밀게 된 기분으로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후기를 끄적이게 된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후기를 남겨놓은 분은 어쩌면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를 읽었을때 강렬한 감동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주인공 리타의 사고을 좇아 동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열심히 따라가다가 방심하고 있을때 생각지도 못한 가슴을 때리는 현실의 비애감. 그랬구나. 정상등반을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슬픈 존재들이 현실이란게 이렇게 극렬하게 서러운 것이었겠구나하는 감동. 문학계간지의 편집장이기도 한 작가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고 데이브 에거스의 문제의식에 급호감을 품게 하는 작품.
기대를 많이 했던 스티븐 킹의 <그레이 딕 이야기>에서 오히려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는 점만 빼면 캐럴 엠시윌러의 <사령관>에 등장하는 산짐승같이 어여쁜 소녀 "루"를 만난 기쁨처럼 곳곳에서 놀랍고 감탄스러운 이야기 잔치에 푹 빠져들기 좋은 책이란 결론을 짓게 된다. 단편들의 모음이자 현재 저명한 소설가로 명성높은 작가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엮어지는 <안 그러면 아비규환>.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가볍게 시작하지만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란 표현이 딱 이라는 소감. 묵직한 한 방 맞고 내내 싱글벙글. 내 손에 든 이야기 세상. 짜릿하고 감탄스러운 이야기들. 알차게 엮인 책을 만나서 무지 기분이 좋다. |
|
표지에 적혀 있는 엄청난 수의 작가진을 보면서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닉 혼비, 스티븐 킹은 말할 것도 없이 배트맨 시리즈로 엄청 유명한 닐 게이먼, 추억의 베스트셀러작가 마이클 크라이튼, 또 떠오르는 다른 젊은 작가들까지! 책을 읽으면서 이 대단한 작가들을 어떻게 한 자리에 모았을까 궁금했는데 말미에 수록된 편집자노트를 보고 궁금증이 풀렸다.
작가 수만큼 작품의 장르나 내용도 다양해서 읽는 내내 지겹지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좀비 얘기에 빈정거리는 말투가 잘 살아 있는 재치있는 범죄소설도 있고, 순문학 느낌이 나는 소설도 섞여 있고... 휴가 동안 방에서 뒹굴거리며 훌훌 읽어버렸다.
아, 정말 오랜만에 짱짱한 책을 만나서 기쁘다! |
|
‘진짜, 아, 정말이지 이딴 것보단 훨씬 나은 소설이 분명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갖고 우리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영미권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간호사 로맨스물부터 떠올리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반기를 들자. 이제부터 승부다.
영미권 현대 장르작가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서 한 데 뭉칩니다. 그들은 그들의 소설이 통속적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전혀 통속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과거의, 최초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의기투합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 짧은 이야기들은 1930년대 펄프픽션의 느낌에 이릅니다. 마치 미국 최초의 펄프매거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은 모습으로, 장르소설이 꽃피웠던 50년 전으로 돌아가기 위한 숭고한 몸부림으로, 소설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 세상에 나옵니다.
한 권의 책 안에 거친 느낌의 단편 20편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 소설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은 굉장히 빡빡한 느낌입니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는 듯 호객행위를 하며 아우성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매 이야기마다 도입부터 과장된 손짓으로 독자를 유혹하고 어깨에 힘을 줘가며 으스댑니다.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독자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경쟁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일 겁니다. 작가마다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며 강렬한 불꽃을 뿜는 이야기를 선보이는데, 너무나 색이 강렬해서 마치 흰 종이 위에 잉크가 그대로 배어나와 글자들이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품들은 장편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내러티브와 독특한 소재를 보이며 긴 여운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 단편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독자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아, 이야기들 사이의 피를 말리는 경쟁에서 거칠게 승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들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야기도 있어 보여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건 마치 주식시장 같습니다. 널리 알려져 상한가에 치달은 작가의 글은 이제 볼만큼의 재미를 다 본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글은 이 소설집 안에선 내리막을 걷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 막 상장되었거나,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하한가에 치달은 작가의 글은 오히려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뜻하지 않았던 행운, 수익창출, 대박, 인생역전. 아무튼 이 같은 소설집을 통해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글을 소개받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론 닉 혼비, 댄 숀, 글렌 데이비드 골드, 크리스 오퍼트, 에이미 벤더의 글이 보인 색깔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자, 내가 지금부터 무척이나 심장근육이 쫄깃해질 이야기를 할 터이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봐, 하는 식의 말을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내비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게걸스럽게 손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기고선 다음 장의 이야기를 계속 읽는 것 말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도록 독자를 몰아가는 서술 기술들이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단편 장르소설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서 하는 말인가 봅니다.
이제 대충 결말이 어떻게 되겠구나 짐작할 텐데, 난 상관없다, 그래봤자 당신은 그애의 이름만 아는 거고, 우리가 어떻게 섹스에 이르게 됐는지는 모르니까. 우리가 어떻게 섹스를 하게 됐나가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안 그러면 아비규환, 11쪽)
서커스단의 재정은, 긴긴 겨울밤 소품 담당자가 불길을 살리기 위해 고체연료 찌꺼기에 던져 넣는 우랄 산맥 산 허브 조합만큼이나 불가사의하고 중독성이 강했다. 대출과 환매와 예상수입에 근거한 계약 및 역재구매 합의서 등이 있는데, (…) 그 부채를 갚을 길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경제적 신용이란 현대문명의 초석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의 신념이 동물들의 기본적 고결함에 대한 거의 신뢰와 어긋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경우와 같이 그 두 신념이 상충하게 되자 그 불화와 알력 때문에 속이 상했다. (스퀀크의 눈물, 다음에 일어난 일, 380쪽)
“세상에 귀신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나도 알아.” “죽음이란 인식이 종료되고 세포가 부패한다는 것을 뜻하지. 사후를 상상한다는 것은 몹시 끔직한 개념이야. 불멸이라는 것은 모든 종교와 수많은 미신의 공통분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네의 말을 믿네.” “어쩌면 내가 미친 걸지도 몰라.” (척의 버킷, 507쪽)
동반자살을 저지르는 커플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연인 격으로 쳐주지만, 정확히 똑같은 시간에 서로를 살해한 커플은 온갖 신문에서 미친듯이 기사로 내보낸다. 가족들조차 헛기침을 하고 되도록 짧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들은 길고 복잡한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싶어 했다. 나는 수없이 탐문수사를 하면서 말할 수 없는 역겨움과 우월감을 감지했다.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워 보였다. 종국에는 두 사람이 궁극적인 양보의 몸짓을 이루었음을, 자신들의 결합이 완벽한 원을 그렸음을 끝내 깨달았으니 이 얼마나 적절한가. 칼이나 독약보다 더 잔인하게 두 사람을 죽인 것은 필경 그 달콤하고도 쓰디쓴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소금후추통 살인사건, 542쪽)
어쩌면 우린 모두 장님이다, 마음의 눈으로도 한눈에 모든 것을 보지는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는다, 다만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좀더 빨리 죽을 뿐이다. (어둠을 잣다, 629쪽)
|
|
당대 최고의 영미권 작가들 20명의 작품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사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으기 쉽지 않은 작가들일 것 같은데 마이클 세이본이 문예계간지 맥스위니스의 객원편집자를 하면서 유명작가들의 장르 단편소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를 만들어냈다. 공포의 제왕 스티븐 킹, '쥬라기 공원'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마이클 크라이튼,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의 원작자 닉 혼비, SF 판타지 문학의 대가 닐 게이먼 등 내가 아는 작가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는 작가들이었는데 공포, SF, 추리 등 다양한 장르소설들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었다. 지상파 TV를 빨리감기로 미리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설정의 타이틀작인 닉 혼비의 '안 그러면 아비규환'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20편의 향연은 그야말로 단편 장르소설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었다. 작품마다 작가들의 개성이 잘 담겨져 있었는데 카를로스 웹스터가 보안관이 된 사연을 담은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이나 얼마 전 힘겨웠던 지리산 종주를 연상시킨 데이브 에거스의 킬로만자로에서의 모험담을 그린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 '다크 타워'의 외전 격인 스티븐 킹의 '그레이 딕 이야기'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캐럴 엠시윌러의 '사령관'이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비장감 넘치는 줄거리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맘에 와닿았다. 이 책에 실린 총 20편의 작품은 장르도 제각각인데다 분량도 짧게는 10장 내외에서 길게는 100페이지 정도 될 정도로 천차만별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품의 수준이나 취향에 대한 생각도 분명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분명한 것은 다양한 성향의 독자들을 전부 포섭할 만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20편 중에는 내 맘에 속 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좀 아니다 싶은 작품도 있었는데, SF, 호러, 추리, 스릴러, 역사물 등 장르소설의 거의 모든 범주들이 다 들어가 있다 보니 진수성찬 속에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한 마디로 골라 먹는 재미가 솔솔한 책이라 할 수 있었는데 아마 이 정도의 이름 있는 작가들을 다시 한 자리에 모으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 다시 한번 총대를 멘다면 멋진 단편 장르소설의 항연을 누릴 거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