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출판계에 요즘 ‘헨리 나우웬’이라는 저자의 책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다. 두란노, IVP 등 기독교 출판사뿐만 아니라 분도 출판사, 바오로딸 같은 카톨릭 출판사에서도 그의 책이 출판되고 있다. 헨리 나우웬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신구교 양측에서 그의 책을 앞다투어 출판하고 있을까? 수많은 글을 통 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헨리 나우웬은 예수회의 신부이자, 심리학자인 사람이다.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할 정도로 그는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삶 때문이다. 그는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자신의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죄책감과 어려운 이웃에 대한 부담감을 너무나 느꼈다. 그래서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박약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죽는 날까지 함께 하였다. 이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과 영성수련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의 책 속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모든 책들이 보석과 같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글이지만 특별히 이번에는 분도출판사의 <마음의 길: 사막의 영성과 현대의 사목직>(이봉우 역, 분도출판사, 1989)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사제(목회자)들의 영성을 위해서 원래 쓰여진 책인데, 사막의 교부들이 고독, 침묵, 기도를 통해서 어떻게 영성을 수련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수다스러움을 생각해 보자.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엄청난 양의 광고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 복잡한 교통, 우리를 짓누르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 그리고 인터넷. 우리는 이 복잡하고 말많은 사회에서 나 자신을 잃고 미아가 되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영성’을 지켜내고 계발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일상이라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 우리에게 ‘영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헨리 나우웬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고독’, ‘침묵’, ‘기도’라는 세 가지로 풀어낸다. 첫째, 헨리 나우웬은 우리에게 ‘고독해져라’고 권한다. 그는 “고독은 변형의 용광로다”라고 말한다. 고독은 우리가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위한 죽음’을 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죽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죽는 것이다. 판단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헨리 나우웬은 우리에게 ‘침묵’을 이야기한다. 침묵은 고독을 보강하며 완전하게 한다. 현대의 상업 광고들은 계속해서 ‘말’을 한다. “나를 사용해라. 나를 데려가라. 나를 사라. 나를 마셔라. 나를 먹어라. 나를 소유해라.” 이러한 세상에서 과연 누가 ‘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가 있을까? “말로써 말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는 언어유희도 있듯이 많은 말로 덕을 끼친다는 것이 힘든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은 소중하다. 침묵의 깊이와 길이가 그 끝에 터져 나오는 ‘말’에 힘과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셋째, 헨리 나우웬은 마지막으로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앞에서 말한 고독과 침묵이 궁극적으로는 ‘기도’의 소명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고독이 단순히 분주한 일에서의 도피이고, 침묵이 시끄러운 환경으로부터의 도피라 한다면 고독과 침묵은 쉽게 자기 중심적인 금욕주의의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독과 침묵은 기도를 위한 것이다. 고독은 홀로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귀기울이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침묵, 고독, 기도의 길을 통해서 여러분도 부단한 영성수련에 힘쓰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영성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소망한다. |
| 1. 마음은 지성과 대조되어 감정의 창고로 이해되기 쉽지만, 사실 마음은 인간 전존재의 근원이자 인격이 있는 자리를 뜻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이 그러하고, 우리말에서의 마음도 그런 의미를 어느 정도 담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마음은 존재를 말하고, 마음의 변화는 인격의 변화를 뜻한다. 그리고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다. 우리가 천국에 이르는 길도 마음에 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마음을 돌보지 않도록 우리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이 세상은 진정 우리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며, 도리어 감정을 따르는 마음(<마음 가는 대로>라는 책 제목처럼)만이 마음의 역할로 오도하고 있다. 2. 마음을 다스리기. 얼머나 어려운 일인가. 그저 흘러가는 감정대로, 눈과 귀를 통해 입력되기를 강요하는 주변의 정보로부터 마음을 살피고 돌아본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 권장하는 바도 아니요,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게 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바쁘게, 또는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드물게 마음을 돌아보는 사건이 일어나곤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이별, 실패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이런 인생의 변곡점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며, 모처럼 찾아온 기회조차 약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잊어버리고 무심하게 사는 것이 일상화된 시절이다. 이런 풍조 속에, 나도 예외일 수 없다. 3. 나우웬은 초기 기독교 순례자들 중 이집트 사막에 들어가 수련하며 살았던 성자들의 삶과 글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목(아마도 pastor의 가톨릭 번역일 것이다. 개신교 식으로 말하면 목회자가 될 것이고, 만인제사장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사역자, 섬김이가 될 것이다)이 바른 사목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세 가지 길을 찾아 제시한다. 그것은 <고독>, <침묵>, <기도>이다. 4. 고독은 세상의 <강제>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오늘도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강제의 세상에서 나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홀로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고독의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독은 세상의 강제로부터 탈출하는 투쟁과 선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공존한다. 그 때 바른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남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얻게 된다. 5. 침묵은 입술의 침묵이 아니라 마음의 침묵을 뜻한다. 그것은 고독을 보강하고 완전하게 하며, 고독을 현실의 것으로 만드는 길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면서, 그 말을 후회하며 또 말이 의사전달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 침묵은 말의 고향이다. 침묵은 말에 힘과 결실을 준다. 말이 결실을 거두려면 침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 침묵은 말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이다. 따라서 우리의 말은 사람들의 주의를 침묵으로 인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침묵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말을 하기를 좋아하지만, 말은 내적 생명과 영적인 불을 방출해서 속을 비게 하는 문과 같다. 침묵은 고독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정하는 긍휼로 인도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침묵은 고독과 함께 남을 사랑하는 방법이 된다. 6. 현대인은 기도를 지성의 행위로 바꾸어 버렸다. 지성의 기도는 기도를 하나님께 말하기와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제한해 버렸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의 행동이 되어 버렸고, 행동주의로 만연한 요즘 세상에서 기도는 부가되어야 하는, 시간 확보를 요하는 그래서 거추장스런 하나의 행동으로 변질되었다. 기도는 마음의 기도이어야 한다. 우리가 마음으로 들어간다면 바로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된다. 마음으로 내려가는 기도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반복하는 단문기도는 우리 마음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내적인 정적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도울 수 있다. 끊임없는 기도는 이웃을 수반하는 기도이며 일상 중에서도 내 안에서 진행되는 기도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기도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기도인데,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과 하난가 되기 때문이다. 참, "항상 기도하라"의 축어적 번역은 "와서 쉬시오"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가서서 쉼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의 기도이다. 7. 고독과 침묵과 기도는 개신교 영성에서, 특히나 한국 기독교 영성에서 무척이나 낯설고 이교적으로 비추일 수 있다. 개신교 영성의 틀로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개신교 영성은 기독교 영성 흐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잃어버린 부분이 많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 문화의 영향 하에 많이 노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본서가 고독과 침묵과 기도를 현대의 사목에게 필요한 영적 수련법으로 제시한 것이 혹 개인 영성의 강화로만 보여질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우웬이 사막의 지도자들로부터 세 가지 길을 가져온 것은, 그것이 홀로 영성 혹은 종교적 체험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목이 회중들을 섬길 수 있는 길로서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공감할 수 있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음성을 듣게 할 수 있으며, 기도를 통해 참된 쉼과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성은 내 종교 체험을 강화하는 자기 만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영성은 하나님 뜻에 맞게 살아서, 나와 이웃이 하나님을 즐거워 하며 하나님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8. 이제 고독의 자리를 만들고, 말을 아끼며 침묵하고, 마음으로 내려가 기도하자. 단순하게 그리하자. |
| 요즘 새로이 쓰여지는 단어들 가운데 "매니아(mania)"라는 말이 있다. 열광, 심취등의 사전적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한마디로 말해 "Henry J. M. Nouwen"의 매니아다. 그의 저서 가운데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거의 읽었을 뿐 아니라, 소장하고 있는 그런 매니아다. 그의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그의 책은 힘이 있다. 사람을 움직이고 무언가 "충격"을 주는 그러한 힘이... 이 책 가운데 저자는 "고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진정한 고독의 의미와 그 고독으로의 여행을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저자는 신부이며, 또 이 책 역시 가톨릭계 출판사에서 나왔기에 용어에 있어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가 말하는 고독과 기독교 영성에 대해서는 조금의 오차 없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사역하고 있는 수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의 삶을 보면 참으로 외롭고 고독의 길임에 틀림이 없다. 세상의 일도 아닌 보이지도 않는 분을 위한, 이득도 없는 그러한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막에서의 고독보다 더욱 외롭고 힘든 싸움일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고독에 맞부딪히고 그 고독으로의 여행을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도전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도전이었다. 이제 고인이 되신 분이지만 많은 것들을 그분을 통해 배우고 알아간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러한 고독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