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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기대했던 것이 사라져버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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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을, 산길을 걸어보지 않은 자,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산길은 산길을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산양의 왕과 평생 그를 좇는 한 남자 사냥꾼의 얘기다. 뭉클한 것이 금새 텅빈 마음을 촉촉히 채운다. 고백은 무겁고 공기는 뜨겁다. 삶과 죽음, 쫓김과 당함, 자연과 속세, 거대한 자연의 룰이 생생히 살아숨쉰다. 산양은 늙어 죽어가고, 사냥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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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을, 산길을 걸어보지 않은 자,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산길은 산길을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산양의 왕과 평생 그를 좇는 한 남자 사냥꾼의 얘기다. 뭉클한 것이 금새 텅빈 마음을 촉촉히 채운다. 고백은 무겁고 공기는 뜨겁다. 삶과 죽음, 쫓김과 당함, 자연과 속세, 거대한 자연의 룰이 생생히 살아숨쉰다. 산양은 늙어 죽어가고, 사냥꾼은 오래 전부터 열의를 다해 쫓으면서 삶을 보낸다. 산양은 제 자리를 내어주고 땅과 흙으로 돌아갈 때임을 직감하면서 사냥꾼을 조롱한다. 사냥꾼은 산양의 조롱에 번번이 당하면서도 다시 또 다시 산양의 왕을 잡아 주머니 채우고 배불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찾아헤맨다. 살기 위해, 살아있기 위함이므로 모두 이 이상 열렬할 수 없다. 도망하는 자와 도망치는 자를 쫓는 자는 간혹 전복된다.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이 세계의 룰이 그러하듯.

 

혼자가 아님에도 둘은 처절하게 독자적이다. 어릴 때 사냥꾼의 총에 어머니를, 독수리의 탐욕에 누이를 잃고 외롭고 절박하게 획득한 이 자리를 퍼질러놓은 자식들 중 하나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산양의 왕이 처한 운명은 울음을 머금고 있다. 산양에게는 해가 없다. 내리막이 보인다. 그의 절정이 언제였는지, 만개한 꽃처럼 화사한 시절이 언제였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소리없이 뒤에서 치는 독수리 보다 차라리 발소리와 냄새가 흔적을 속삭여주는 인간이 낫다는 산양의 목소리는 짐짓 으스스하다. 낫다면 뭐가 더 낫고, 나쁘다면 뭐가 더 나쁜가.

 

에리 데 루카는 '일생에 한 번은 보고 죽으라'는 항구도시 나폴리 출신으로 이탈리아 중견작가다. 고산지대 등반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철학적 고제인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무거움과 가벼움의 한 뼘 차이를 인간의 팔에 올라타도 느껴지지조차 않는 나비의 무게에 비유한다. 인간의 육체에서 갓 빠져나온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던 미국의사 맥두걸 박사의 이론만큼이나 중의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헤밍웨이 문학의 정점 '노인과 바다'에 비견되는 소재의 무거움을 갖지만, 언어는 훨씬 더 시적인 풍부함으로 씌어졌다. 시종일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이 느껴져, 살아있음이 성스럽다. 산양이 아닌 것도 사냥꾼이 아닌 것도 차라리 축복이지만 세상은, 세상을 지켜주는 건 따로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뭐 그런 얘기가 아니다.

 

살아온 만큼 살아갈 것이라 믿는 이들은 없다. 양보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삶이지만 되돌려줄 수는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얼마되지 않는다. 오만불손한 마음가짐들이 모욕과 굴욕으로 한 차례 스쳐가고나서, 비로소 내가 주인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기 위해 죽을 걸 알면서도 결투하는, 산양의 왕과 사냥꾼의 대면은 차라리 희열이었다.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주고픈 재앙이고 슬픔이었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더라도 나는 수평을 맞추기 위해 손을 뻗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마주해야 한다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의 어떤 무게. 하지만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더이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산양의 왕과 사냥꾼이 어떻게 되었는 지는 말하지 않는 게 옳겠다. 중요한 건 산양의 왕과 사냥꾼이 떠난 자리에 나비가 가만히 내려앉았다는 사실이다. 나비의 무게에 심장이 멈추고, 나비의 무게에 세상이 끝나고, 나비의 무게가 생사의 경계에서 오만한 인간을 지켜주었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리 데 루카가 과연 어디있다 이제 나타났을까를 물어야 한다. 그는 스무살에 미장이로 일하며 쓴 소설을 마흔에 출판할 정도로 열성적인 작가였다. 작가라는 타이틀 앞에 그에게 붙는 직업적 수식어는 많고, 과거에는 더 많았던 것 같다.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문학,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이 세상, 온전히 내 것도 아니고 당신 것도 아닌 시간과 공간. 빌려온 것을 소중히 내어놓는 것이야말로 삶과 죽음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제목으로 쓰면서 영원한 재귀를 꿈꾸는 니체가 말한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인간은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라 언제 어디서든 부재하고, 내일이면 부존재할 수 있음을 역설하며 존재의 무거움에 대해 말했다. 에리 데 루카는 심장에 내려앉는 나비의 무게로 존재의 숭고함에 대해 역설한다. 두 작가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클리셰는 결국 같은 셈이다.

 

다시 질문. 존재는, 자연은, 인간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어버린 모든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인가, 혹은 무거운 것인가. 누군가를 돕는다고 믿는 많은 순간이 민폐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텐데. 답을 알려고 한다면 이미 죽은 후여야 하겠지. 살아있는 한, 인간은 삶과 죽음 모두를 알 수가 없는 거겠지. 다만, 살아온 날들의 순간 위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포개 죽어서도 기억해보려 안간힘 쓸 뿐.



s*****d 2012.09.1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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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을 담담하게 이겨낸 숭고한 삶
"모든것을 담담하게 이겨낸 숭고한 삶" 내용보기
자신도 모르게 긴 호흡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 있다.  글을 읽기 시작한지 채 몇분도 지나지 않아 어느새 한문장, 한문장 의미를 짚어가며 읽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글. 에리 데 루카의 <나비의 무게>도 그런 종류의 소설이다.  130페이지가 되지않는 단편에 가까운 글이지만, 그 안은 이미 충분하게 채워져 있다.  산양들의 왕과 산양을 사냥하는데 능수능란한 사냥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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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게 긴 호흡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 있다.  글을 읽기 시작한지 채 몇분도 지나지 않아 어느새 한문장, 한문장 의미를 짚어가며 읽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글.

에리 데 루카의나비의 무게도 그런 종류의 소설이다.  130페이지가 되지않는 단편에 가까운 글이지만, 그 안은 이미 충분하게 채워져 있다. 

산양들의 왕과 산양을 사냥하는데 능수능란한 사냥꾼은 둘 다 산양 왕으로 불린다.

이들의 관계는 사냥꾼의 성실함과 날렵함으로 인해 산양 왕의 가족들이 포획되는 순간부터 원수지간으로 엮이게 되었지만, 이 둘은 서로 닮은점이 참 많다.

산양 왕은 짐승이고, 사냥꾼은 사람이지만, 그들이 겪은 상처와 그것을 이겨내며 살아온 방식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가족을 잃은 후부터 산양 왕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헤쳐나갔다.

젊은시절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까지 치르고 난 사냥꾼은 산속으로 들어와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사냥꾼 역시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냈다.

사냥꾼이 겪은 그 참혹한 사건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지만, 사냥꾼이 다시는 생각하기도, 돌아가기도 싫을만큼 인간에게 환멸을 느낀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둘은 같은 산 아래에서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각자의 삶은 성실하게 살아 낸다.

그렇다.  그것은 기쁨에 들뜬 삶들이 아니다.  살아낸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담담하고, 묵묵하고, 성실한 일상이다.

그렇게 20  장장 20년을 살았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옴을 느끼는 이 가을.  그들 둘은 자신들의 삶을 정리할 때가 온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올 죽음을 기다린다.  대비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담당하게 그것을 맞을 준비를 한다.

스스로 이번 겨울이 마지막 겨울이라는 것을 느끼며 지내오던 어느날, 마지막 사냥을 위해 산을 오른 사냥꾼과 마지막 겨울을 조용히 지낼곳을 찾으러 나온 산양 왕은 산 중턱에서 만나게 된다.  마주친 것은 아니다.  사냥꾼은 산양 무리떼를 향해 바위위에 엎드려 총을 겨눈채, 산양 왕은 사냥꾼이 엎드린 바위의 바로 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사냥꾼을 뛰어넘은 산양 왕의 마지막 점프는 아름답고 숭고했다.  본능적으로 산양 왕에게 총을 쏜 것을 후회하면서 산양 왕을 등에 짊어진 채 심장 박동이 멈춘 사냥꾼은 신비로웠다.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이 들 둘의 무게에 가벼운 날개의 무게를 더했을 때, 모든 것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채로 발견된 그들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 감탄스럽다.

에리 데 루카라는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나비의 무게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 벌써 그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j*****7 2012.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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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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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담백합니다. 산양 왕이 어린 시절 누이를 독수리에게 잃고 혼자 남겨진 채 산양의 왕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하얀 나비들이 결투에서 이긴 승자의 피 묻은 뿔 위에 내려앉았다.”(p. 18). 뒤 이어 사람들이 산양의 왕이라고 부르는 사냥꾼이 나옵니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상처 입은 고고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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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이 담백합니다. 산양 왕이 어린 시절 누이를 독수리에게 잃고 혼자 남겨진 채 산양의 왕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하얀 나비들이 결투에서 이긴 승자의 피 묻은 뿔 위에 내려앉았다.”(p. 18). 뒤 이어 사람들이 산양의 왕이라고 부르는 사냥꾼이 나옵니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상처 입은 고고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총신에도 나비가 앉습니다. “총 위에 올라앉은 나비는 총을 희롱한다. …나비는 조준점을 옮겨 다니며 아무 데나 가서 앉아버린다. 나비가 내려앉는 곳이 바로 중심이 되고 마는 것이다.”(p. 61).

  드디어 11월 겨울의 장막이 내려앉고 있을 때, 사냥꾼은 산양의 왕을 만납니다. 산양의 왕은 사냥꾼을 짓밟아 죽일 수 있었지만, 사냥꾼의 목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작가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다리와 뿔을 차려 입은 바람이었다. 그는 바람이었다. …”(P. 114). 그러나 사냥꾼은 산양의 왕에게 총을 겨누고 11그램짜리 탄환이 그 심장을 뚫고 지나갑니다. 짐승은 사냥꾼을 살려주었지만, 그는 짐승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산양의 왕의 내장을 독수리에게 넘겨주고, 사냥꾼은 산양의 왕을 어디엔가 묻어주기 위해 어깨에 들쳐 메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퍼지고, 사냥꾼은 짐승을 업은 채, 서 있습니다.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산양의 왼쪽 뿔 위로 앉았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은 산양을 어깨에 걸친 채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쓰러집니다. “그건 세월의 무게에 더해진 깃털, 모든 걸 무너트릴 수도 있는 깃털이었다.”(P. 125)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있는 것처럼, “데 루카는 말들에 지극한 정성을 쏟아 붓는 작가”(P. 150)임이 분명합니다. 작가, 에리 데 루카의 이력이 남다릅니다. 기계공, 트럭 운전사, 미장이 등 수없이 많은 직업을 전전했으며, 성서 연구가이며 등반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삶의 이력이 그의 글을 깊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나비의 무게는 삶과 고난의 무게입니다. 한편, 삶과 죽음은 나비의 무게만큼이나 가벼운 것입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삶과 죽음은 그렇게도 허망하면서도 숭고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다시 처음보다 더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입술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에리 데 루카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의 책이 또 번역된다면 꼭 읽어볼 것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었고, 영혼이 정화되는 듯했습니다.

l******y 2012.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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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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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는 '에리 데 루카'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작가로 등단하기 전에 수많은 직업을 가져서인지, 아니면 그의 취미가 등반이라서 그런지 '나비의 무게'는 산양과 산양을 잡는 사냥꾼의 이야기다. 20여년 동안 산양왕으로 군림해온 산양과 산양을 잘 잡는다고 사람들에게 산양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사나이. 어렸을적 산양왕의 엄마를 죽인 사냥꾼.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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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는 '에리 데 루카'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작가로 등단하기 전에 수많은 직업을 가져서인지, 아니면 그의 취미가 등반이라서 그런지 '나비의 무게'는 산양과 산양을 잡는 사냥꾼의 이야기다. 20여년 동안 산양왕으로 군림해온 산양과 산양을 잘 잡는다고 사람들에게 산양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사나이. 어렸을적 산양왕의 엄마를 죽인 사냥꾼. 그래서인지 둘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서로에 대한 의식을 놓치지 않는 그둘. 무리지어 살지만 항상 혼자 독립적인 삶을 산 산양왕. 그리고 오두막에서 외롭게 혼자 살아가는 사냥꾼인 산양의 왕.

책을 읽기전에 줄거리를 대충 읽어 봤는데, 왜 제목이 나비의 무게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양과 사냥꾼 이야기인데 왠 갑자기 나비? 라는 생각이.. 궁금함을 가진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난 책을 읽을때 특히 소설책을 읽을때 남들처럼 작품을 분석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그냥 감동을 받았다. 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도의 감상만 남을뿐이었다. 그런데 이책은 한번 읽고 책을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쩜 그리 매혹(?)적일 수 있는지. 항상 아름다운 나폴리를 보면서 살아서 인지, 너무 매혹적이었다. 읽다보니 나비의 무게라고 지은 제목역시 당연히 이해가 되었고 이책의 주인공은 산양, 사냥꾼 그리고 나비였다. 다시한번 천천히 느긋하게 책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평생 소장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m********u 2012.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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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한 사냥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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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이탈리아 국민작가 에리 데 루카의 소설이다. 에리 데 루카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에서만 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둔 <나비의 무게>는 등반가로서 고산지대의 암벽들과 함께했던 작가의 경험이 거대한 자연을 주제로 삼아 써왔던 서사시들의 시적 언어와 어우러져 탄생한 작품이다. 거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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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이탈리아 국민작가 에리 데 루카의 소설이다. 에리 데 루카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에서만 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둔 <나비의 무게>는 등반가로서 고산지대의 암벽들과 함께했던 작가의 경험이 거대한 자연을 주제로 삼아 써왔던 서사시들의 시적 언어와 어우러져 탄생한 작품이다.

거대하고 강인한 산양과 고독한 한 사냥꾼의 이야기다. 산양 왕은 여리고 힘없는 새끼였을 때 사냥꾼의 총에 어미를 잃는다. 외톨이로 잔혹한 고난들을 이겨내고 대적할 상대가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키운 산양 왕은 세상에 두려울 것도, 이루지 못할 것도 없는 존재로 절대 권력을 누리며 오랫동안 그의 왕국을 지배한다.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던 그의 왕국에도,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그는 나이가 들고, 그의 권력을 위협하는 힘센 수컷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산양들의 왕은 어느 날 불현듯 그의 다리가, 그의 발굽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아직은 그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위대한 왕은 평생 그의 뒤를 쫓았던 사냥꾼과의 마지막 결투를 선택한다.

사냥꾼 역시 때가 되었음을 안다. 그의 인생에 마지막으로 남은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제껏 그가 잡았던 산양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막강한, 그토록 오랫동안 추격했던 산양 왕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완성해야 할 어떤 작품과도 같은 것이다. 마침내 11월의 어느 날, 산양 왕과 사냥꾼의 마지막 결투가 벌어진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8 2012.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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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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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걸 억지로 꾹꾹 눌러 참고 있는데 누군가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와락 눈물을 쏟고야 마는 때가 간혹 있지요. 곧 터질것 같이 팽팽하게 부푼 풍선처럼 잔뜩 긴장 된 분위기도 불쑥 내밷은 누군가의 한 마디에 눈 녹듯 플릴 그런 때 말입니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짓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생긴다는 로렌츠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은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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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걸 억지로 꾹꾹 눌러 참고 있는데 누군가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와락 눈물을 쏟고야 마는 때가 간혹 있지요. 곧 터질것 같이 팽팽하게 부푼 풍선처럼 잔뜩 긴장 된 분위기도 불쑥 내밷은 누군가의 한 마디에 눈 녹듯 플릴 그런 때 말입니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짓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생긴다는 로렌츠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은 몸짓 하나, 말 한마디의 무게랄 수 있지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비의 무게가 강인하고 고독한 두 산양 왕의 생의 막바지에 늙고 지친 그들의 몸 위에 내려와 앉은 한 마리 나비의 무게가 다름아닌 두 제왕을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무거울 수도 있다는 군요. 그것은 아마도 삶과 고난의 무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왕들의 최후를 결정하는 것은 나비 한 마리의 무게일 뿐이라는 어쩌면 삶의 허망함과 무의미를 상징할 수도 있구요.

 

 

이 책의 주인공은  산양과 사냥꾼이지요. 공교롭게도 둘은 산양 왕으로 통한 답니다. 사냥꾼의 총에 어미를 잃은 어린 산양은 홀로 고독과 싸우며 대적할 상대가 없을 만큼 강한 힘을 키워 마침내는 산양 왕에 올라 절대 권력을 누리며 오랫동안 그의 왕국을 지배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요. 시간은 흐르고, 나이가 들자 그의 권력을 위협하는 힘센 수컷들이 성장하여 그의 권좌를 호시탐탐 노리게 되지요. 산양들의 왕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왕은 평생 그의 뒤를 쫓았던 사냥꾼과의 마지막 결투를 선택합니다. 그의 어미를 죽였던 사냥꾼과 산양 왕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숙적임과 동시에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영광과 몰락을 지켜 본 동반자였지요.

 

나이든 사냥꾼 역시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는 산양 왕을 찾아 나섭니다. 오랫동안 추격했던 산양 왕을 쓰러뜨리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마지 목표이기도 하니까요. 최후의 결전이 끝났을 때 그들 누구에게도 승리의 트로피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산양 왕의 마지막 선택은 평생의 숙적이었던 사냥꾼에 의해 용감한 최후를 맞는 것이였으며, 그것을 오로히 이해하는 사냥꾼은 산양 왕의 죽은 몸뚱이를 짊어지고 북쪽의 만년설원으로 발을 옮기지요. 마침내 삶의 막바지에 이르른 순간,  한 마리 흰 나비가 날아와 산양 왕의 뿔 위에 내려앉지요.

 

하얀 나비 한 마리가 그에게로 날아와 주변을 맴돌았다. ...장작들로 가득 찬 지게의 무게, 어깨 위로 짊어지고 다니던 짐승들의 무게, 암벽에 매달리던 그의 손가락 끝에 실린 무게, 야생의 산림 속에서 그가 보낸 세월의 무게가 하얀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위로 옮겨 앉았다. ...그건 세월의 무게에 더해진 깃털, 모든 걸 무너트릴 수도 있는 깃털이었다. 그의 숨소리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굳어지면서 날개의 박동과 심장의 박동은 동시에 멈춰 서고 말았다. 나비의 무게가 그의 텅 빈 한줌의 심장 위로 떨어졌던 것이다. p125∼126

 

그 나비의 무게가 그토록 무거웠을까요. 아님 이승에서의 삶의 무게가 더 버거웠을까요. 마침내 땅에 쓰러진 사냥꾼과 산양 왕, 자연의 섭리 앞에 순응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던는 두 영웅의 최후는 비장함과 동시에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소설은 한편의 시를 읽는듯 함축적이고 많은 생갇을 갖게 하네요. 평생을 쫓고 쫓기며 살 수밖에 없었던 왕들의 몰락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주더군요. 이기고 짐도, 화해와 용서랄 것도 없이 그저 삶이기에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일부로 그렇게 살아왔을 뿐. 종국에는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 간다는 자연의 진리를 들려주고 있답니다. 저자인 데루카의 언어는 살아 있는 풍경과 생명체의 영혼을 고스란히 느껴지게 합니다. 삶과 죽음, 죄와 용서에 관한 묵직한 주제를 간결하지만 힘있게, 무겁거나 결코 가볍지도 않게 아름다운 문체로 쓰여졌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두 산양 왕이 삶의 마지막 길을 힘겹게 걷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함께라서 그들은 더이상 외롭지 않을 겁니다.

k******2 2012.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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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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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번역 된 이탈리아 국민작가 에리 데 루카의 소설 나비의 무게..책 제목만 보고서 뭔가 큰 것이 함축 되어 있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역시 읽으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이렇게 자연을 벗 삼아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으니..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등반가로서 그리고 자연을 벗 삼으면 그가 쓴 서사시의 매력들..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읽으면 감수성을 자극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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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번역 된 이탈리아 국민작가 에리 데 루카의 소설 나비의 무게..
책 제목만 보고서 뭔가 큰 것이 함축 되어 있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역시 읽으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이렇게 자연을 벗 삼아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으니..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등반가로서 그리고 자연을 벗 삼으면 그가 쓴 서사시의 매력들..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읽으면 감수성을 자극해야 한다 해야 할까나..
저자는 나비를 의인화 하며 삶의 성찰과 반성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려 내고 있다.
나비를 생각하며 나의 인생 그리고 타인의 인생에 생각을 해 보았다.
거기서 삶과 죽음 그리고 기로에 선 우리의 모습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그리고 나비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보편적인 것들에 익숙한 우리가 감히 인생의 무게를 논 할 수 있을까?
무수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지만... 
결론은 아직 미궁속이다..
책 속에 나오는 두 명의 인물 속에서 극과 극을 다룬 이야기 이지만..
여기서 그들의 모습과 삶을 엿 보면서 우리는 결코 혼자서 는 할 수 없다는 것과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 등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저자의 필력에 또 한번 감탄하며....
왜 이제서야 이런 책을 만나게 된 걸 까 하는 늦은감 또한 들었다.
그 만큼 훌륭하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에서 잊혀 질 때 쯤 다시 한번 꺼내 봐서 읽어 봐야 겠다.
너무나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읽고 난 후에 머리가 너무나 복잡해 졌다.
생각이 너무 많아 졌다..

q*****8 2012.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비의 무게(에리 데루카)
"나비의 무게(에리 데루카)" 내용보기
나비의 무게(에리 데루카)   한번은 더욱 깊어진 감정으로 인해 힘든 시간속을 거닐고 있을때 세상의 잘못된점을 지적하고 일상을 잔혹한 전쟁터에 대해서만 심각히 집중하게 된다. 죽으면 가진 모든것을 놓듯 지금 이 세상에 내몫이 없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점점굳게 믿게 된다.   악어에 물려있는 작은 들소를 슬픔에 잠겨 크고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그 아이를 구할수 없는
"나비의 무게(에리 데루카)" 내용보기

나비의 무게(에리 데루카)

  한번은 더욱 깊어진 감정으로 인해 힘든 시간속을 거닐고 있을때 세상의 잘못된점을 지적하고 일상을 잔혹한 전쟁터에 대해서만 심각히 집중하게 된다. 죽으면 가진 모든것을 놓듯 지금 이 세상에 내몫이 없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점점굳게 믿게 된다.


  악어에 물려있는 작은 들소를 슬픔에 잠겨 크고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그 아이를 구할수 없는 상황에 어미는 어떻게 할수 없다는 사실에 어미는 꾸부정한 자세로 몸을 버티고 서있다. 또다른 들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것처럼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거대한 기업들이 개인들이 평생 해서 벌지 못하는 것을 불법을 저지르는 사항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힘이 없는 자신을 한탄하기에 딱좋은 케이스이다. 즉, 인간은 다양한 법규와 규칙들을 쏟아 내지만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조약사항을 무시하고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어 상대의 목덜미에 흉터를 낸다.


  하지만 우린 결코 그런 불신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지 말아야 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분명히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자신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탈리아 작가 '에리 데루카'의 작품에서 나오는 나비처럼 지금 죽어있는 동물보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나비가 더 무거운 가치를 나타내는 모습처럼 생명을 잃은 자에게 나비의 무게는 세상의 그 어느것보다 무겁다. 생명 그 고귀한 가치를  행복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n***k 2012.09.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