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6%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11%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이완용 평전 - 자기계발서의 끝판왕이라더니 멘붕이 오기도
"이완용 평전 - 자기계발서의 끝판왕이라더니 멘붕이 오기도" 내용보기
전우용 교수의 농담처럼, 진정 '자기 계발서 끝판왕'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자기 계발서는 사실 관심이 없다. 왜 끝판왕인가? 그것이 궁금했다. 내 머리속에 이완용은 매국노, 을사오적, 맞는지 틀리는지 학부대신 이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구체적인 악행이 무엇인지는 아는게 적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김영수의 간신론이란 책을 권하고 싶다. 간신론은 자기 계발서라
"이완용 평전 - 자기계발서의 끝판왕이라더니 멘붕이 오기도" 내용보기
 전우용 교수의 농담처럼, 진정 '자기 계발서 끝판왕'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자기 계발서는 사실 관심이 없다. 왜 끝판왕인가? 그것이 궁금했다. 내 머리속에 이완용은 매국노, 을사오적, 맞는지 틀리는지 학부대신 이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구체적인 악행이 무엇인지는 아는게 적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김영수의 간신론이란 책을 권하고 싶다. 간신론은 자기 계발서라기 보다는 대대손손 욕먹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실력을 키워 폭망하는 법', '대대손손 잘살며 욕먹는 방법'이란 책이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신은 엘리트가 지위가 오르면 사리사욕을 목표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고, 가장 큰 간신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들로 규정한다. 그런데 이완용 책을 읽으면 뉴라이트, 식민사관의 의견과 사실로 바라보는 부분에서 약간 혼선이 생기는 부분이 존재한다. 부끄러운 역사와 사실도 언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바보같고, 형편없이 운영하다 팔아먹은 것이 어째던 우리의 국가다. 이점은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기며 읽어야 온고이지신의 올바른 방향이 생긴다.


 이완용 평전이란 책을 읽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역사의 사실, 사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어떻게 바라보고 중론을 결정해서 역사를 기록해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의 권리를 월권적으로 이양하고, 친일을 통해서 생존해가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격이 있는 듯해 보이는 행동이 왠지 거슬리고 불편한다. 거짓말의 최고봉이 스스로 거짓말을 참으로 믿는 수준이라면, 이완용은 친일이 아니라 정말 생존을 위해서 왜와 일체화를 선택한 행동이라고 느껴진다. 


 역사적인 투쟁의 과정에서 패배자가 자신의 권리를 앚아간 대상에 대한 분노와 잘못만을 기술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어떤 민족과 국가도 수 천년간 끊임없는 영광의 역사만 갖고 있는 곳은 없다. 잘못된 시기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실패와 좌절의 사실에서 배움이 없다면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한다고 생각한다. 자긍심도 중요하지만 남의 눈의 들보만 보는 것은 식견이 부족한 것이고, 자신들의 과오를 제대로 인정하고 발전의 계기로 만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생각과 판단을 바꾼다. 그런데 누구는 욕을 먹고, 매국노라는 소리를 듣고 어는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하나는 저지른 일의 경중에 따라서 판단된다. 다른 하나는 생각과 판단이 바뀌는 범위와 방향에 따라서 결정된다. 3.1운동 직전 '내가 어차피 매국노인데 만세한번 부른다고 애국자라고 불리겠는가?'라는 반문을 통해서 그가 생존을 위한 인식의 방향이 민족이란 관점에서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단히 현실적이다. 반면 고종과 순종의 나라를 팔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공적인 생각과 행동, 사적인 생각과 행동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소양이 있기 때문에 민족의 관점에서는 나쁜 놈이 틀림없지만, 왜의 입장에서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봉에 다다른 것이다. 뭘 해도 Top을 찍는다는 실력의 관점에서는 인정할만하고, 품격이란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고심해 봐야 할 부분이다. 자기계발과 성공이란 아주 협소한 관점에서 이완용평전을 읽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사회, 국가, 세계라는 범위에서 그것은 전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황실, 척족, 대신들도 생존을 위해서 생각을 바꾸도 비굴하고 천박한 행동을 통해서 자리를 유지하고, 일관성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읽다 보면 마치 경쟁적으로 '누가 더 나라를 빨리 망하게 하나?'란 주제 아래에서 경진 대회를 여는듯 하다. 그 연속성이 시간이 흘러 잘 정리되지 않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돌아가고 있다.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것이 민족이란 기준으로는 참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시대가 빨리 종식하고 새롭게 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 필요가 있다.


 제일 놀라운 사실은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초대 회장, 독립문 현판이 그의 글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초등교육의 보편화에 대한 의사결정, 동학과 천도교도 자신들을 위해서 친일의 앞잡이 일진회를 구성한다는 것등 좀더 세밀하게 역사를 볼 기회가 생긴다. 너무 가까이 바라본 경험이, 현재를 되돌아보는 이유가 된다. 그럼 현재가 또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은 필요를 인식하고 필요를 채우는 방향성을 띄게된다. 그런 점에서 읽어 볼만 하다.



k***i 2019.03.14. 신고 공감 7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이완용 평전
"이완용 평전" 내용보기
이완용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수치와 증오와 경멸의 이름이다.그런데 우리가 이완용이라는 사람에 대하여는 정작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단지 이완용은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공부나 탐구가 없이 모든 잘못된 것을 이완용이 혼자서 떠안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과연 구한말 당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과연 이완용을
"이완용 평전" 내용보기

이완용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수치와 증오와 경멸의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완용이라는 사람에 대하여는 정작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단지 이완용은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공부나 탐구가 없이 모든 잘못된 것을 이완용이 혼자서 떠안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구한말 당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과연 이완용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만의 잘못일 수도 없다.

나라도 그렇게 가정도 그렇고 결국 모든 문제의 책임은 최고 통치자가 지고 가장이 지는 것이다.

당시의 왕이였던 고종은 치외법권처럼 면책을 누리고 있다.

당시의 시대 관념으로는 이완용은 왕조를 지키기 위한 충신으로도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논의들이 가능할려면 우선 많은 공부를 해야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아주 많은 지식들을 제공한다.

저자는 좌파적 사고가 강한 사람이여서 이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완용과 관련된 내용이나 사실은 시중에 나와 있는 이완용에 관한 어떠한 책보다 풍부하고 도움이 된다.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 책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y****7 2019.10.17. 신고 공감 5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반전의 이완용
"반전의 이완용" 내용보기
놀라움과 반전의 연속이다이책은 이완용을 깔려고 작정하고 쓰려한 책이었지만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역적이라고 독박쓰고 있는이완용을 반쯤은 측은하게 까지 하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왜?1. 그는 일본어를 사실상 못했다그는 처음에는 친미 이후 친러 즉 서구파였다을사늑약 당시까지 사실상 일본을 정식 방문한적도 없는 일본 배척파였다2. 그는 어머니와 양아버지의 사망시 각각 1년
"반전의 이완용" 내용보기
놀라움과 반전의 연속이다
이책은 이완용을 깔려고 작정하고 쓰려한 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역적이라고 독박쓰고 있는이완용을 반쯤은 측은하게 까지 하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왜?
1. 그는 일본어를 사실상 못했다
그는 처음에는 친미 이후 친러 즉 서구파였다
을사늑약 당시까지 사실상 일본을 정식 방문한적도 없는 일본 배척파였다
2. 그는 어머니와 양아버지의 사망시 각각 1년반 3년을 지킨 당시 기준 보편 유교적인 효자였다
3. 그는 을사늑약의 바탕이 되던 러일전쟁때를 포함해서 그 시기에 부친상 등으로 3년이상 서울을 떠나 있었다
즉 을사늑약 불과 수개월 전에 억지로 고종에 의해 서울로 불려와서 관료가 되었지 그전부터 치밀하게 나라를 팔아 먹고 있었던게 아니다
4. 책에 의하면 구한말 그 시기 왕궁의 관료 면면을 보면 수구에 찌들지 않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한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던것 같다
5. 실제로 을사늑약의 장본인은 나약한 고종 자신이었고 자신이 그 책임을 신하 소위 을사5적에 넘겼다
6. 이완용은 상당히 충신이었다
어째듯 왕의 부름을 끊임없이 받았고 그에 보답했고 보위하려 하였다
왕도 죽을때까지 이완용에 의지 하였다
7. 을사늑약 당시 일제의 제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그냥 닥치고 받아 들이는것 외에 대안은 없었다
중국 러시아 영국 심지어 수호통상조약국인 미국맞리 일본에 넘어갔고
이미 그 지경이 되도록 나라꼬라지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8. 그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거론되던
서재필이 설립한 독립협회의 회장직을 한 핵심멤버였다

등등
을사늑약 전까지의 이완용의 이력만 본다면
이완용을 친일매국의 1등 대명사로 하기엔
억울함이 있어보인다

그런데
을사5적에 유독 이완용만 남은 이유는 무었인가?
그건 그 후의 압도적인 그리고 똘똘한 매국 행적 때문이리라
때문에 말그대로 일본이 조선인 중 최고 귀족직과 최고 책임직을 맏겼으니 말이다

지극히 자신에 합리적이고 기회주의적 판단에 의해 움직였다고 볼수 있다
러일전쟁이후 그는 모든계산이 섯을것이고
당시 영어를 하는 몇안되는 관료였고
나름 총명한 인물이었으니
나라도 꼼꼼하게 팔수 있었을 것이다

을사늑약 이후의 이야기도 충격적이다
한일합방을 앞두고 두 인물이 일본에 충성경쟁을 하는데
누군고 하니 하나는 동학혁명 최고 우두머리고
나머지 하나는 독립협회 최고 우두머리였다니
또 조선왕이 이토히로부미 암살에 대해
지극히 통탄해 하고 안중근이 사형될때 이토를 더욱 챙기는 상황
삼일운동의 33인 대표라는 자가
이완용에게 같이 독립운동을 하자고 하는 어이없는 현실감각
실제로는 매국을 했음에도 이권을 위해 일본에 저항 했다고 독립군으로 둔갑하는 상황
마지막 장에는 을사오적의 후손들이
해방이후 대통령 대법관 무려 역사학자 등 국가의 초고위에 앉아서 떵떵거리는 상황등

한국 역사책에서 차마 쪽팔려서 얘기할수 없는 수많은 적날한 불편한 진실 투성이다
한심하고 참담한 내용인데
지금 까지도 그 내용을 공공연히
감히 말하기는 어려운 시대이다
그걸 말하는 순간 주요 기득권 세력으로 부터 매카시즘적인 공격을 받게 될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독립군이 지폐에 등장한적이 없는 희귀한 나라라고 한다
과연 언제쯤 그게 가능할런지 의문이다

근례에 읽은 책중에 가장 집중해서 재은 책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고
저자의 면밀하고 광범위한 조사와 식견을 잘 풀어서서 내용도 군더더기 없는 매우 훌륭한 읽을거리인것같다
간만에 고퀄의 책을 읽은 기분이다

추가로 작가는
미군에 대한 시각을 자주 피력하였는데
아마 사대주의에 대한 경멸적인 시각에서 비롯한것 같다
그게 미군이든 청군이든 일본군이든 러시아군이든 말이다

최근 아프간 상황을 보면
자주적이지 못하고 부폐한 정부의 결말도 자명함을 실감한다
또한 세상에 공짜는 없음을 실감한다
남의나라 군대와 군인이 공짜로 피흘릴 이유는 절대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나라 청년을 타국에 총알받이로 보낼 이유가 없지 않는가?
오직 자주국방만이 온건히 주권을 지키는 방법이다
지금 당장 그게 어렵다면 그러한 방향으로라도 가야 하는게 맞다고 본다
w****6 2021.09.09.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이완용 평전. 후기에요.
"이완용 평전. 후기에요." 내용보기
1. 어째서 읽었습니까.저는 한일관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역시 그 한 가운데 있는 이완용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알면 안되겠다 생각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완용 혼자서 팔아넘긴 것일까? '을사오적'이라는 다섯 명이 문제인가? 그만큼 그의 권한이 막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2. 책의 내용과 인상깊게 본 부분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말을 빌려서 저의 감정을 이야기
"이완용 평전. 후기에요." 내용보기
1. 어째서 읽었습니까.

저는 한일관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역시 그 한 가운데 있는 이완용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알면 안되겠다 생각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완용 혼자서 팔아넘긴 것일까? '을사오적'이라는 다섯 명이 문제인가? 그만큼 그의 권한이 막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

2. 책의 내용과 인상깊게 본 부분

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말을 빌려서 저의 감정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참고로, 저자분께서는 '친일인명사전'이라는 것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근무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똑같은 놀라움을 느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착수한지 얼마 안 되어 곧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너무나 다른 이완용의 모습이 계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며느리와 사통할 정도의 패륜아도 아니었으며 고종에게 칼을 들이댈 만큼 배은망덕한 인간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술도 마실 줄 모르고 여자도 밝히지 않았으며 오로지 시문과 서예를 낙으로 삼은 전형적인 조선 선비였고 일제에 협력하면서도 조선왕실에 끝까지 충성을 바친 '충신'이었다. 그리고 구한말 애국 계몽운동을 주도한 독립협회의 위원장과 부회장, 회장으로서 독립협회 전체 존속기간의 3분의 2 이상 동안 사실상 독립협회를 이끌었으며 학부대신으로서 이 땅에 의무교육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법제화한 인물도 그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8-9

인용글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 내용에 저는 이 책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

<세계화 논리의 증조 할아버지는 이완용>

흔히 그를 친일매국노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 책을 통해 바라본 그는 세상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을 능하게 하는 인물로 보였습니다. 나쁘게는 기회주의자라고 불리는 부류가 되겠습니다.

나의 지나온 바를 말한다면 최초 25세경에는 종래 조선인이 목적으로 삼았던 문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미국과의 교제가 점점 긴요해졌기 때문에 그 때 신설된 육영공원에 입학하여 미국에 가게 되었다. 갑오경장 후 을미년에 이르러 아관파천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당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후 일러전쟁이 끝났을 때 여기에서 전환하여 현재의 일본파라는 칭호를 얻었다. 때에 따라 마땅한 것을 따를 뿐 달리 길이 없다. 무릇 천도에 춘하추동이 있어 이를 번역이라 하며 인사에 동서남북이 있어 이 또한 변역이라 한다. 천도와 인사가 때에 따라 변역하지 않으면 이는 실리를 잃어 끝내 성취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57-58

이 내용을 읽고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평소 세계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자기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동일한 나이대에 세계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130년 전에 그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변변찮은 조미사전이나, 조러사전, 조일사전도 없으며, 통역관조차 없었을 당시에 어떠한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봤을 것입니다. 또 단순한 친일파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친청(문과급제)이었다가, 친미였다가, 친러였다가, 친일파가 된 것입니다. 결국 그도 그럴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외국인의 저작물이 아니면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재구성할 수 없다.>

이는 제가 이후에 독서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완용을 포함한 을사오적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을사오적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그런 다섯 명에게 망할 만큼 근본적으로 문제를 가진 국가의 문제였습니까? 저는 학교에서 그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거나, 기억하지 못하거나 였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말에 미국보빙사나, 일본 신사유람단으로 갔다왔던 조선의 외교관들이 그 어떤 제대로 된 서양견문기나 일본견문기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면에 미국에서 들어온 Lowell은 단 3개월 조선에 체류했음에도 불구하고 'The land of morning calm'을 출판했다는 점을 비교합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미국 방문 12년 후, 박정양의 '미속습유'를 이는 일반에게 퍼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나는 제대로 우리 근현대사를 알고 있는가? 의문이 들기 시작하고, 이후에 일본 혼마 규스케의 '조선잡기', Isabella bird bishop의 'korea and her neighbours', 독일 선교사의 책 등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조선독립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독립문'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자 민비가 청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상호병력철수를 합의했던 텐진조약에 의해 일본이 조선으로 병력을 보내면서 청일전쟁이 시작되게 됩니다. 1894년 발발한 이 전쟁은 예상과 달리 일본의 압도적 승리로 끝이 나게 됩니다.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이 1895년 3월에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의 '이홍장'이 만나서 강화 조약을 하는데, 여기서 제1조가 '청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을 인정하며 조선이 청국에 대해 시행하던 조공도 폐지한다.'고 규정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명목상이나마' '자주독립'을 얻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완용은 독립협회의 협회장이 되며, 독립문 건립 사업을 하게 되는데 1895년 11월 21일에 주춧돌을 놓는 독립문 정초식을 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완용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

조선이 독립을 하면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해치려고 하면 구라파의 폴란드라는 나라처럼 남의 종이 될 것이다. 미국처럼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나 폴란드같이 망하는 것 모두가 사람하기에 달려 있다. 조선 사람은 미국인같이 되기를 바란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69

제가 기억하던 이완용은 그저 '을사오적' '친일파' 정도로 묘사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조선 사람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란 것입니까? 어째서 폴란드같이 남의 종이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까? 전 책에서 서술하듯이 여기서 그가 아마도 미국 공사로 갔던 것이나,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바탕으로 그런 지식을 얻게 되었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

<독립문 현판은 이완용이 쓴 것>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독립문 현판은 이완용이 쓴 것이 1백 퍼센트 확실하다. 독립협회는 독립문 건립을 목표로 정동파가 주축이 되어 창립했으며 이완용은 발기인 가운데 보조금도 가장 많이 냈고 위원장으로서 이 사업을 주도했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70

'동아일보' 1924년 7월 15일자 연재기사인 '내동리 명물'에도 '독립문'이라는 글씨가 이완용이 쓴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70

그러나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어둔다고 해서 그것이 자랑스러운 민족의 유산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름을 그대로 놔둔다고 해서 고름이 살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70

아마도 '조선독립'은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을 상징하기 위해 독립문을 건립한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독립문을 지금까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까? 아마 반대의 의미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

<최초의 초등교육을 의무화>

이완용은 신식교육을 미국 공사에서 경험도 있고 신식교육기관 '육영학원'에서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교육부장관으로 생각되는 '학부대신'에 임명된 후 '소학교령'을 통해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을 도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를 '만고의 매국노'라는 이유로 우리 교육사에 획을 긋는 자취를 남겼다는 점을 숨기기 위해 적극적인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누군가 시대를 앞선 업적을 했는데도 그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이미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업적까지 왜곡하며 숨겨야 하는 것입니까?

이완용은 이어 전국적인 범위에서 소학교 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7월 19일 국왕의 재가를 받아 칙령 제145호로 소학교령을 공포했다. 소학교령은 8세부터 15세까지를 학령으로 하며 수업연한은 심상과 3년, 고등과는 2년 또는 3년으로 하고 교과목은 독서, 작문, 산술, 체조, 조선 역사, 조선 지리, 외국 역사, 외국 지리 등으로 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소학교령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근대적인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규정하고 그 교육체계와 내용 및 관리운영 전반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무시 못할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22

<민비는 대원군의 묵인하에 시해되었다.>

이 책에서는 민비와 대원군의 권력다툼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째서 구한말에 러시아,청,일본,미국이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세를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마구잡이로 갖다쓰던 당시의 지배계층에 대한 배경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명성황후라 불리는 민비에 대해서는 조선의 국고를 탕진해가며 자신의 아들을 위해 명산이라는 명산에 굿판을 벌이고, 청에 조공을 갖다 받치는가 하면, 그런 민비에 의해 배후조종당한 고종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필요할 땐 러시아도 갖다쓰고 일본도 갖다쓰고 청도 갖다쓰고 앞뒤가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었으니, 어떻게 정상적인 외교가 가능했을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원군이 실각한 후 여러 권력 다툼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어떻게 그런 지배계층이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겠는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결국 일본-러시아간 조선을 둘러싼 이익다툼에서 민비는 대원군의 묵인하에 일본인과 조선훈련대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 것입니다.

...한구석에 숨어있던 가냘프게 생긴 여인을 발견했다. “왕비인가.”라고 묻자 여인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며 대청마루로 뛰어나가려는 순간 칼날이 떨어졌다. (중략) . 그녀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목격한 것은 훈련대 제2대대장 우범선이었다. 서너 명의

궁녀가 몰려와 시신이 민비임을 확인했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32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한 이후 22년간 계속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이성을 잃은 권력투쟁은 대원군이 일본인과 훈련대(일본이 훈련시킨 조선군대)를 이끌고 경복궁에 들어와 민비을 죽임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32

민비시해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일본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통렬하게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 일본인을 끌여 들여 나라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든 대원군의 행동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133

?

<을사조약의 최고 책임자는 고종이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다섯 명의 문제인가, 아니면 다섯 명이 팔아먹을 만큼 허술한 국가의 문제인가라는 부분에 대한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팀의 말단 사원이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은 팀장이 지는 것인데, 어째서 저는 역사에 있어서는 부하 직원을 탓하고 있었습니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들 상소문(임금의 뜻을 어기고 마음대로 조약을 체결한 을사오적을 죽여야한다는 내용)을 올린 전, 현직 고관들이나 시골 유생들은 17일 어전회의와 조약체결 과정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또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신하가 전제군주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저 짐작으로 황제는 반대했는데 역적들이 대신 감투에 연연해 일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리고 보호조약의 모든 책임을 이른바 을사5적에게 돌린 것이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223

통신수단이 미비했던 왕조시대에 상소는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 통로였다. 이들의 상소문을 받아 당사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신문들도 한결같이 '황제는 끝까지 반대했는데 5적이 일본에 굴복해 멋대로 보호조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해서 '고종이 을사조약에 반대했다.'는 '신화'가 창조되어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마치 역사적 진실인 양 굳어져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223

고종이 이토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고 내각에 책임을 떠넘긴 데 이어 나중에는 '협의하여 처리하라'고 지시함으로써 내각 대신들로 하여금 선택의 여지를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223

<나라가 망했는데도 황제의 아들은 침략국에 건너가 국고를 탕진하면서 주색잡기에 몰두>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의문이었던 것은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5명이 팔아먹을만큼 쉬운 나라였던 것이 문제입니까? 당시 지배계층의 모럴 해저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한일합방 이후 순종의 아들 의친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의친왕은 전에 도쿄에 머물면서 공부는 안 하고 돈을 물 쓰듯이 쓰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이토에게 여러 차례 꾸지람을 당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나라는 망해 가는데 황제의 아들이라는 의친왕은 침략국에 건너가 국고를 탕진하면서 주색잡기에만 몰두한 것이다.

이완용 평전, 윤덕한, P.272

또, ‘나라를 빼앗긴' 순종이 우리가 '나라를 빼앗았다고 알고있는' 이토 히로부미가 죽자 조선통감부에 조문하고, '문충공(文忠公)' 이라는 시호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겁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배후조종’당했다는 핑계를 댈 것입니까?

을사오적이 문제였습니까? 을사오적이 팔아먹을만큼 허술한 나라가 문제였습니까? 저는 이 책을 이 정도 읽었을 때, 답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

이외엔 그가 몰락양반가의 아들로 태어나 양아들로 입양된 후 성장한 과정, 일제에 협력하는 장면이나, 그가 축적한 자산등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그 후에 호적에 파졌다는 이야기 등 '일당기사'외 여러 사료에서 (저자는 참으로 씁쓸하다고 표현하면서도)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책이었습니다.

?

3. 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역사적 사실은 다각도의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을 읽고나서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이 책만 3일 내내 볼 만큼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친일파' '매국노' 정도로 알고 있던 이완용이 했던 이야기(세계화 논리)나 그가 행했던 일들은 왕을 협박하고 나라를 팔아넘겨 자신의 이득만 취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완용이 고종, 순종을 협박하여 국가를 강탈했다면 특히 고종이 계속해서 그를 기용하고, 어머니 3년 상 중에도 불러다가 대신에 앉히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19세기 말에 근대화된 세계를 바라보고 이를 조선에 옮기려 했던 인물>

이완용은 근대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청 속국에서 벗어난 이후 '독립문 정초식'에서 '미국인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3.1운동시에 '실력을 양성해야 하니 자제하라'고 하거나, '일당기사'에 나오는 것과 같이 '세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인 '육영학원'에서 교육을 받거나, 근대적 학제인 '소학교령'을 공포하고, 구한말 영어를 할 수 있던 3명 정도의 조선인 중 한 명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신문물의 습득과 전파에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제 마음을 크게 사로 잡았습니다. 왜냐면 저 또한 세계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고, 그에 맞춰 실력을 양성해가야하며, 한국의 기준이 아닌 세계의 기준에서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하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대한민국의 K-Pop이 세계에서 인기있게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저는, K-Pop이 한국 것이라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큼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한국 드라마'라서 좋아하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저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완용은 세계의 관점에서 조선을 바라봐야한다는 것을 130년 전에 깨달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

<상대적 다면성을 가진 인간 세계>

저는 20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나가본 적이 없어서 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교류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한국이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고 바라본 세상은 분명 제가 알던 곳과 달랐습니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미국을 갔다왔는데, 거기서 전 다면성의 인간을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떤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문제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있는데 그 친절이 누군가에겐 '불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친절한 사람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친절을 받은 누군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이분법으로 절대적 '선'이라거나 '악'이라거나로 하는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4. 마무리

이 책을 시작으로 한일근대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어째서 나는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일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라는 한 마디에 친구관계가 뒤틀리기도 하고, 가족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험도 최근에 많이 느꼈습니다.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역시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지만, 어째선가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논의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생각이 어떻습니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일본'을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까?

만약 우리가 그들을 미워한다면, 그 근거는 전 세계적으로 납득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a*****2 2020.04.15.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