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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humoresque and absu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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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에고가 제 초라한 현실과 맹렬한 충돌을 일으킬 때 사람은 정신병자가 된다. 부모에게 주입받은 세계관이란 게 실상은 지극히 편협하고 낡은 고물덩이에 불과한데, 본인이나 그 부모나 그게 세상의 끝에라도 도달한 양, 그 이상 무엇이 더 없을 완성태인 양 착각하고 괴물 같은 사고에 빠진 인간들이 있다. 어제 내가 리뷰한 '아담스 패밀리' 시리즈도, 현실에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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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에고가 제 초라한 현실과 맹렬한 충돌을 일으킬 때 사람은 정신병자가 된다. 부모에게 주입받은 세계관이란 게 실상은 지극히 편협하고 낡은 고물덩이에 불과한데, 본인이나 그 부모나 그게 세상의 끝에라도 도달한 양, 그 이상 무엇이 더 없을 완성태인 양 착각하고 괴물 같은 사고에 빠진 인간들이 있다.

어제 내가 리뷰한 '아담스 패밀리' 시리즈도, 현실에서 남보란 듯 행세나 가능한 부(富)나 쌓고 나서 저런 짓을 하면 우습지라도 않을 텐데, 현실에 부자가 많지 않은 것이나 딱 마찬가지로, 이런 망상에 빠진 인간들이란 대개 애덤스 일가와 (통장 잔고가 아닌) 정신병만을 공통점으로 공유하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진심 주제도 모르고 무슨 과학을 가업으로나 물려받은 양, 입만 벌리면 채 이해도 못한, 터무니없는 과잉 담론을 제 전공이나 되는 양 사기를 치는 인간도 있다. 그 DNA 속에 범죄자의 특성이 면면히 흐르는 죄업일 뿐이니 따지고 보면 제 잘못으로 돌릴 수만도 없는 경우이긴 하다. 끝도 없이 허풍과 과장과 근본 없이 지어낸 소리를 목청 높여 떠드니, 그 주변에 친구가 있을 리 있겠는가. 명절에 갈데도 없어서 남들 오붓한 가정에 송편 빚어먹고 따뜻한 담소를 나눌 때, 이 괴물은 썩은 눈깔을 돌려가며 싸구려 전자책 단말기만 부여잡은 채 대단한 문화 생활이나 누리는 양 혼자만의 망상에 빠진다.

번듯한 집안 출신에 제 격에 맞는 약혼자와 이제 식 올릴 날만 기다리는 벤은, 안타깝게도 하나 부족한 게 있으니 상상력과 재능의 부족으로 그 이상 커리어를 키워 나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뉴욕에서 그래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여러 출판사와 작업을 이어가는 그는, 어떤 운명의 장난이 특별히 이 날을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느닷없는 자연 재해 때문에 남부 새버너(지역 이름임)로 가는 비행기로 이동을 못 한다. (정확하게는 기상 악화와 기체 문제로 인한 불시착)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여인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비행기 사고에 된통 데인 그는 다시 다른 항공편을 구할 엄두를 못 내는데, 문제의 여인과 함께 같은 방향까지만 철도로 이동하기로 의견을 맞춘다.

그가 식을 올릴 새버너는 이제 허리케인이 엄습하기 직전, 말 그대로 '폭풍 전야의 고요'가 감도는 형편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설령 아무리 국토가 넓다 한들 이동의 수단이 그처럼 옹색하게 마련되었을 리가 없는데, 이 남녀가 선택하는 경로마다 하필 마가 끼기라도 한 듯 문제가 생겨 도대체 스케줄을 맞출 수가 없다....고는 하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저 여자가 문제이다. 얌전히 앉아 철로의 정해진 코스만 통과하면 되었지, 뭐하러 지붕 위로 올라가 그 난리를 친단 말인가? 조신하지 못한 행동이 사소한 파장에 파장을 더해, 나중에는 재앙의 거센 파고를 몰고 오는 것이다. 이걸 두고 '포스 오브 네이처'라고 이른다면, 그건 정직하지 못한 상황의 호도이자 합리화에 불과하다.

여튼 이 과정에서 벤은 여인에게 반한다. 그가 자란 가정 환경, 틀에 박힌 듯 절제된 생활, 비슷한 출신 가정 환경(그러나 경제적 레벨에서 그렇다는 것이며, 극중에도 여러 번 나오듯 정치적 성향이 판이할 뿐 아니라, 동부와 남부라는 수백 년 간에 걸친 정서적 대립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의 약혼녀라는, 아무 부족할 바 없는 환경에 잘 길들여진 그가, 생전 처음 만나는 이 야생녀 같은 타입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이동 중 그는 부친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어 묻는다.

'결혼은 할 만한 것인가요?'

여기에 대한 답은 부친과 모친이 번갈아가며 사랑하는 아들에게 들려 준다. 하지만 그 나이를 먹도록 명확한 자아관이 서지 않아 이제 이 낯선 감정과 상황의 폭풍 앞에 존재 자체가 흔들려 가는 이에게, 고작 그런 답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내가 낯선 여인과의 사이에서 이런 감정이 생겼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약혼녀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여인과의 마지막 밤(이 될 줄은 아마 몰랐겠으나) 그는 이 자유로운 영혼과 대판 싸운다. '당신은 일부러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열등한 남성만 골라 사귄 거에요. 마음대로 지배하려다 그 이기적인 욕구가 충족 안 되면, 못난 남자에게 상처 받았다며 마음 놓고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속보이는 연극이 지겹지도 않습니까? 아무도 안 믿는 환상을 혼자 세워 놓고 현실을 직면하기는 두려워서, 쉴새없는 허풍을 떨며 그 취약한 에고를 지키려 드는 것 아니에요?'

여기서, 보는 관객들은 오히려 벤의 달변에 놀라게 된다. 그 정도로 인간에 대한 통찰력도 못 갖췄을 것 같고, 여자한테 대차게 쏘아붙일 만한 배짱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여하간 억울하게 상황과 환경의 희생양이 되었을 뿐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충분해 보였던 여인은, 이 장면부터 벤의 신랄한 고발의 힘 때문인지 대단히 초라해 보이기 시작하고, 말과 행동 사이의 현격한 간격도 사정 없이 노출되는 모습이다.

(스포일러)
이 영화는 헐리웃 웰메이드 로코의 정해진 경로를 크게 이탈하기에 오히려 각본의 깊이가 느껴지는 경우이다. 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관객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여자 처음 봤다며 새러를 택한다면 그 '처음 만나는 자유'에 온전히 안기는 주인공의 패기에 공감할 수는 있겠으나,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브리짓에게는 웬 천하에 몹쓸짓을 저지르는 셈 아니겠는가. 또, 저처럼이나 불안정하고 무책임한 여성(애까지 딸린)과 그가, 어떻게 남은 생을 안락하게 꾸릴지도 걱정이 안 될 수 없겠고 말이다. 극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 자'가 뭘 가르치려 들어야 설득력이 있게 마련이다. 잘 보면, 하는 짓이 멋지게 보여도 그 실상은 관계의 파탄을 매번 빚은 실패자가, 실패를 낭만인 양 전염병처럼 퍼뜨리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벤이 브리짓에게 얌전히 돌아간다 해도, 납득할 만한 각성이 이뤄지지 않은 채 현실에 안주(그가 새러를 택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 부, 평판, 관계, 직업 등을 잃게 됨)하는 그의 선택이, 어떤 드라마상의 감흥을 온전히 부를 리가 없다. 올바르고 편안해지는 선택이긴 하나, 결국 제자리로 맥없이 돌아오려면 대체 이 모든 소동을 뭐하러 일으켰느냐 이 말이다. 이 점에서 이 무렵, 그리고 지금까지도 별 수정 없이 이어지는 로코의 관습과는 두드러지게 다른 경로임이 명백하다.

각본이 (스스로 예비한)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인물(벤과 새러)이 여태 우겨욌던 껍질과 허상을 스스로 모조리 부인하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혹여 최종 귀착점이, 현실의 힘을 맥없이 인정하고 제자리에 주저앉는 것이라도, 환각을 눈에서 거두어내었다는 그 의의가 얼마나 큰가. 폭풍우를 뚫고 오며 거센 시련 끝에 다시 마주하게 된 현실, 그리고 자신의 정직한 실상이기에, 이제 그들은 번거로운 연극 없이 그 못나고 취약한 점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

정신병자가 어디서 얄팍한 대중서 한 구절을 읽고 영향을 받아 마치 지가 원리를 발견이라도 한 양 나잇값도 못하고 과학자의 원귀에 빙의라도 된 듯 목청을 높여 가며 구호 복창을 하는 꼴이란, 결국 단 한 번의 결혼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한 채 제 어린 자식에게까지 경멸 받는 저 새러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사람과 고릴라의 차이는, 과거의 실패를 통해 어떤 반성의 교훈을 얻느냐, 아니면 당장 눈에 띄는 손톱만큼의 호기를 빌미(99%가 착각임)로, 그간 억눌러 왔던 미친 푸닥거리를 (손상된 해마의 도움을 통해) 또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저주받은 DNA의 위력이란, 웬만해서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s****o 2017.10.08.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