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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가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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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넥스트 소사이어티』(2002)에서 ‘다음 사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물론 드러커는 예언이나 예측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이미 일어난 어쩔 수 없는 변화들을 파악하고 앞날의 모습을 제시했습니다. 꼭 10년 전의 저서입니다.“다음 사회는 지식사회가 될 것이다. 지식이 지식사회의 핵심 자원일 것이고, 지식근로자가 노동력 가운데 지배적 집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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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넥스트 소사이어티』(2002)에서 ‘다음 사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물론 드러커는 예언이나 예측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이미 일어난 어쩔 수 없는 변화들을 파악하고 앞날의 모습을 제시했습니다. 꼭 10년 전의 저서입니다.


“다음 사회는 지식사회가 될 것이다. 지식이 지식사회의 핵심 자원일 것이고, 지식근로자가 노동력 가운데 지배적 집단이 될 것이다. 지식사회의 세 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국경이 없다. 왜냐하면 지식은 돈보다 훨씬 더 쉽사리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둘째, 상승이동이 쉬워진다. 누구나 손쉽게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할 확률도 높다. 어떤 사람도 ‘생산 수단들’을, 즉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획득하고 휴대하고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이 필요한 곳이며 전 세계 어디든지 접근해서 소속되거나 위탁 업무를 하청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성공 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승리할 수는 없다.” 


20세기 최후의 지식 르네상스인이자 경영학의 구루로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주간’이었던 2009년 클레어몬트대학교에는 세계적인 많은 기업가, 학자들이 참여해서 그를 추모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임의 폐회사를 맡은 아이라 잭슨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재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전 세계가 위기와 혼란에 처해 있고 지식사회로의 불편한 이동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 ‘윤리적 리더십’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드러커의 통찰이 지금처럼 필요한 때가 없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드러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더’ 필요하다.”


왜 이렇게들 드러커를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경영, 경영학에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이미 피터 드러커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경영은 겨우 5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2차 대전까지는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그 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때 이후로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기능이었으며 이에 관한 연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학문분야였다고 합니다. 지난 50~60년 동안 경영과 경영자들만큼 빠른 속도로 등장한 것은 없으며 단시간 안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각 기업의 CEO들의 비망록(備忘錄)에만 적혀 있던 단편적인 경영방침이나 경영철학을 전 방위적인 학문으로 성장시키고, 실제로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 각 개인들에게도 경영자적인 마인드를 불어 넣어준 것은 순전히 드러커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러커는 경영을 치유에 비유했습니다. 의사의 치료행위가 과학이 아닌 것처럼 경영자의 겨영활동은 과학이 아니며 의학과 경영 둘 다 실천(practice)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뒤이어 이런 말을 한 부분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

“실천은 대규모의 진정한 과학에서 자란다. 의학이 생물학, 화학, 물리학과 다른 많은 자연과학에서 정보를 얻듯이 경영은 경제학, 심리학, 수학, 정치이론, 역사와 철학에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의학과 같이 경영 또한 그 자체의 권리로 자체의 가정, 자체의 목적, 자체의 도구, 자체의 성과 목표와 평가를 가진다.”


드러커가 경영자들에게 불어넣어주고 싶어 하는 마인드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경영자가 ‘인문 예술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영을 실천하는 것은 인문예술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드러커가 강조하는 경영자의 ‘인문예술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전하는 능력

둘째, 남과 함께 일하는 능력

셋째, 자신의 일과 공헌과 경력을 결정하는 능력

넷째, 무엇보다 조직에서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고, 목표를 성취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능력.


이렇게 옮겨놓고 보면, 경영자의 범위를 확대시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경영자이지요. 또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중 상당수는 드러커가 쓴 책에서 모티브를 얻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1년 정도 자의반 타의반 자기계발서를 수십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느낀 점은 그 나물에 그 반찬이라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 키포인트를 뽑으라면 딱 한 줄인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 한 줄이라도 내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해봤냐~!”입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많이 적용은 못해봤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드러커의 조언을 딱 한마디만이라도 건져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드러커가 젊어서부터 몸에 배인 습관 또는 의지가 있습니다. 드러커는 자신을 교사이자 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러커는 매년 자신이 잘 모르는 특정한 새로운 주제를 설정하고 배웠지요. “내가 신문사에 근무할 때 우리는 오전 6시부터 일했고 오후 2시 반, 그러니까 최종 편집이 인쇄에 들어가면 퇴근했다. 따라서 나는 오후와 저녁에는 혼자 억지로 공부를 했다. 국제관계와 국제법, 사회제도와 법률제도의 역사, 일반 역사, 재무 등을 공부했다. 차츰 나는 나름대로 공부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3년 또는 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한다. 그것은 통계학, 중세 역사, 일본 미술 그리고 경제학이 될 수도 있다. 3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서 그 주제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지만 그 주제를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60여 년 이상 한 시기에 한 주제씩 공부하고 있다.”


 드러커가 공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은 안했으나 짐작 가는 부분은 독서와 강좌를 통해서 그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드러커 만큼 시간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기에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기 전까지는 독서에 대한 계획도 나름대로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못 그렸지만 2년 간격으로 큰 주제를 정하고 다시 분기별로 소주제에 따라 독서를 하고 리뷰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내가 특히 약한 부분이 역사와 철학입니다. 그리고 또 많고도 많지요. 


이쯤 읽어 오시다가 혹시 이상타 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한국인인 듯 한 데 드러커로 시작해서 드러커로 끝나니 말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세계적으로 많은 팔로워들(드러커리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최고의 피터 드러커 전문가인 이재규 교수의 역작입니다. 이 교수가 이 글을 쓰실 때는 와병중이셨다고 합니다. 2011년 7월 25일 이 책의 원고를 마지막 교정까지 하여 출판사에 보낸 후 같은 해 8월 8일에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고인의 유작인 셈입니다. 


책은 피터 드러커의 사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 조사한 보고서 형식을 띄기도 합니다. 글 중간 중간에 드러커의 저서가 소개됩니다. 앞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드러커의 사상이 문학, 역사, 철학, 음악, 미술 등의 인문, 예술 분야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배울 점이 많습니다. 요즘 회자되는 통섭의 학문, 통섭의 경영은 드러커가 진작부터 시도했던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러커가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한 신부님의 질문을 옮겨봅니다.


“너는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





s******5 2012.09.21. 신고 공감 3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벽의 티타임을 즐기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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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구루라고도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고 그가 경영학에 남긴 발자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전공이 경영학이 아니라서 그런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말고는 딱히 읽어 본 그의 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죠. 당연히 우리나라에 이토록 피터 드러커라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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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학의 구루라고도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고 그가 경영학에 남긴 발자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전공이 경영학이 아니라서 그런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말고는 딱히 읽어 본 그의 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죠. 당연히 우리나라에 이토록 피터 드러커라는 한 인물만을 집요하게 연구해 온 학자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의 저자 이재규씨가 그러합니다. 어쩐지 이 이름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번역하신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약력을 보니 그가 피터 드러커에게 더욱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 피터 드러커를 직접 만나 대담을 나누고나서 부터였고 그 대담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번역하게 된 것 덕분이라고 하니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저에게나 그 분에게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분에 대해 말하면서 일부러'존재했었다'라는 과거형을 썼는데요, 그 이유는 그 분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 책을 다 쓰시고 교정까지 마쳐서 출판사에 보내고 난 뒤에 말이죠. 네, 이 책은 유작이었습니다. 그게 이 책에 대해 제가 놀랐던 두 가지 이유중의 하나였습니다. 나머지는 이 책의 분량이 상당해서 놀랐습니다. 무려 630 페이지나 되더군요. 피터 드러커에 대해 잘 모르는데 피터 드러커의 입장에 바탕에 쓰여진 이 방대한 이야기들을 제가 다 소화나 할 수 있을까 슬쩍 걱정되기도 하더군요. 다행히 책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들이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을 지향하고 있었거든요.

 

 피터 드러커는 인문학에 바탕을 둔 경영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아무리 경영학이라 하더라도 실제 경영이 오로지 경영학 이론에서 비롯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경영은 어디까지나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러니까 문학, 철학, 예술, 역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된 경영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피터 드러커를 멘토로 여기고 있는 작가 이재규씨는 이것을 이 책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엔 경영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음악 그리고 미술까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독립된 장을 할애하여 경영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영을 듣는 것 만큼 우리는 문학을, 철학을, 역사를, 음악을 그리고 미술을 그로 부터 듣게 되는 것이죠. 그것도 아주 세세하게 말이죠. 예를 들어 미술을 보자면 피터 드러커가 유독 동양 미술에 관심이 많았음을 유념해 일본 회화사와 중국 회화사를 아주 세부적인 사항에까지 모두 망라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은 이렇게 아주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기에 이 책엔 원심력이 작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원심력이란 바깥을 지향하는 힘을 말하죠. 그렇게 책의 내용들은 어느 한 줄기로 묶이려 들지 않고 바깥으로 흩어집니다. 너무 상세하게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좋은데 얼른 이것을 전체의 맥락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단편적 지식의 습득으로는 참으로 유용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가 추구하는 주제와의 접속을 생각한다면 어느 구멍에다 플러그를 꽂아야 할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제가 느낀 가장 커다란 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재규씨가 이렇게 써야만 했던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피터 드러커 논지에 충실하기 위해서 입니다.

 

 피터 드러커가 경영에 대해 강조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경영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과학처럼 모든 사안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론은 불가능하며 그 때 그 때 현장과 대치하면서 나름의 전략, 전술을 펼쳐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경영은 그렇게 실제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의학이 과학이 아닌 것 처럼 경영은 과학이 아니다. 둘 다 실천이다. 실천은 대규모의 진정한 과학에서 자란다. 의학이 생물학, 화학, 물리학과 다른 많은 자연과학에서 정보를 얻듯이 경영은 경제학, 심리학, 수학, 정치이론, 역사와 철학에서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의학과 같이 경영 또한 그 자체의 권리로 자체의 가정, 자체의 목적, 자체의 도구, 자체의 성과 목표를 가진다. (...) 경영을 실천하는 것은 인문예술의 영역이다. (p. 18 ~ 19)

 

 그러므로 보다 제대로 된 상황 파악과 적절한 대처를 위해서는 경영자의 안목이 필요해집니다. 경영의 성과는 바로 그 안목에 달린 것이죠. 이제 왜 피터 드러커가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인문예술의 영역이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바로 그 안목을 키워 주는 것이 인문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경영이 가진 특성도 특성이지만 여기엔 또 하나 외부적 요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토록 인문에술의 지식이 필요해지는 것은 안목의 성숙 외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전의 사회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물론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오늘 날의 사회는 무엇보다 지식 근로자가 중심 노동력이 된 사회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된 사회를 특별히 지식 사회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지식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지식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단일한 분야의 지식으로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유동적으로 상황에 맞게 참조와 응용이 가능하도록 지식들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적재 적소에 알맞은 지식들을 활용하는 것이죠.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가 해야 할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체계적 혁신을 위한 지식 혁명'(하나의 의미로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다양하게 적용하기 위해 지식들을 유동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에서의 혁명) 이것이 바로 경영자의 임무라는 것이죠. 자ㅡ 이렇게 제대로 경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보다 폭 넓고 깊은 안목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지식들을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경영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양한 지식들을 제대로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보다 세부적인 사항까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겠죠. 확실하고 깊게 알아야만 안목도 깊어지고 활용도 손쉬울테니까요. 그래서 이제규씨도 문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와 음악 그리고 미술을 우리가 몰라도 상관없는 부분들 마저 세세하게 써내려간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때고 유용하게 써 먹힐지도 모르니까요...

 

 이제규씨의 유작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는 제게 이런 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뚝심 같은 것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오로지 피터 드러커라는 한 우물만을 파온 작가답게 피터 드러커의 논지에 충실해서 이 책을 써내려가겠다는 그런 뚝심이 말이죠. 솔직히 좀 부럽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여 그 논의를 더 없는 충실함으로 자신의 책에다 우려내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애착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산만하기가 이를 데 없는 저인지라 더욱 그랬습니다. 저도 이렇게 천착해서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가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바랐을만큼 말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에게 아주 뜻깊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정과 존경이 듬뿍 묻어나는 책을 본다는 건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죠. 아무튼 이 분의 열정으로 잘 몰랐던 피터 드러커에 대해 보다 깊이 알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문득 창문으로 이 새벽을 덮고 있는 밤 하늘이 보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저기 어느 구름 위에서 밤하늘에 아름답게 수놓인 별들을 보며 피터 드러커와의 새벽의 티타임을 즐기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l****1 2012.09.28.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미래는 어떻게든 온다. 드러커가 아니더라도.
"미래는 어떻게든 온다. 드러커가 아니더라도." 내용보기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대학 때 읽었다. ‘지식근로자’의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책을 읽을 대학 당시에는 꽤나 신선했다. 이 책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는 국내의 피터 드러커 전문가이자 국내 번역된 드러커 책의 번역자로 유명한 이재규씨가 쓴 책이다. 어떻게 보면 피터 드러커의 전기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드러커주의를 신봉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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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대학 때 읽었다. ‘지식근로자’의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책을 읽을 대학 당시에는 꽤나 신선했다.

이 책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는 국내의 피터 드러커 전문가이자 국내 번역된 드러커 책의 번역자로 유명한 이재규씨가 쓴 책이다.

어떻게 보면 피터 드러커의 전기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드러커주의를 신봉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책을 읽으면 느끼는 바가 많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가 피터 드러커와 관련된 강의를 했던 것을 엮은 책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책의 제목처럼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에 대한 신선한 자극을 기대했었는데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적확하게 무슨 말을 하려 하는가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와 닿는 것이 없다고 해야 할까?

 

 

#

먼저, 피터 드러커가 그의 여러 저작을 통해 강조했던 경영의 인문예술화를 소개한다. 단순히 회사와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의 통칭이 경영이 아니라 회사와 조직의 구성원을 아우르는 인문적·예술적 특성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드러커가 강조하는 경영자가 갖춰야 할 ‘인문예술 능력’은

첫째,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전하는 능력

둘째, 남과 함께 일하는 능력

셋째, 자신의 일과 공헌과 경력을 결정하는 능력

넷째, 조직에서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고, 목표를 성취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능력” (p.19)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이 경제민주화와 재별 개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재벌이 잘 돼야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사람에서부터 재벌 해체를 부르짖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은 광활하다. 여러 책에서 소개된 스웨덴의 ‘발렌보리’ 가문은 재벌이지만 공정하고 정의로운 경영을 통해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의 재벌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총수가 제왕적 통치를 하고 국가의 법과 통치범위를 초월하는 초국가적 존재가 되어 버린 국내의 재벌은 드러커가 강조하는 경영의 ‘인문예술 능력’ 네 가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만을 전하지 말고 남과 함께 일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가 막힌 인문예술 능력을 함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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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약점이 없는 사람보다는 전투에서 승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장군으로 뽑았다. 온갖 분야에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나무랄 데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같은 것은 없다.” (p.51)

 

링컨이 했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세상에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은 없다. 라는 말에 일견 동의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하지만 링컨이 전투에서 승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으면서 다른 약점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남북전쟁 시대에나 통할 말이 아닌 가 싶다.

‘불법 부동산 투기를 해도, 위장전입을 해도, 얌체같이 군 면제를 받아도, 이곳저곳에서 돈을 받아도 능력만 있으면 뽑겠다.’라는 생각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무랄 데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은 물론 없겠지만 당최 있는 것이라고는 업무 능력 밖에 없는 온몸을 위법으로 도배질 한 사람을 뽑는다면 그것은 비극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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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회사 형편에는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와 복지 추구에 급급했던 노조 행태가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p.210)

“JAL의 직종별 노동조합은 여덟 개나 된다. 조종사, 객실 승무원, 지상 근무요원 등 직종별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바빴다. 주인 없는 회사에 경쟁적인 노동조합들” (p.495)

 

GM과 JAL의 몰락을 너무도 간명하고 확실하게 진단해서 좀 놀랐다. 이 부분을 읽으며 ‘설마 노조에 대한 지적밖에 없을라고!! 드러컨대??’ 생각했다. 진짜 없었다. GM과 JAL이 망한 가장 큰 이유가 노조라니...

그러면 노조가 어떤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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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임종 무렵 문병 온 친구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했다. 친구는 쇼팽의 곡을 쳤다. 그러자 쇼팽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내 것 말고 더 좋은 거……. 모차르트 피아노곡 말이야.” (p.305)

 

이 책을 읽으며 전혀 몰랐던 얘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 저자는 5장 경영과 음악에서 모차르트에 대해 긴 찬사를 늘어놓는다. 나는 클래식에 조예가 없지만 모차르트는 안다. 영화 「아마데우스」만도 몇 번은 본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개된 모차르트의 모습은 영화적으로 각색된 것이고, 모차르트 아버지의 헌신과 모차르트 본인의 지독한 연습이 낳은 천재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아! 드러커가 굉장히 좋아했다는 것도 강조했다.

개인적 기준에서는 피아노 하면 쇼팽이었었는데, 쇼팽이 진짜 임종을 앞두고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을 쳐달라고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

“첫째, 경영은 하나의 전문적 직업이고, 경영자는 그들의 일차적 과업이 조직의 장기적인 건강을 돌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지식근로자들은 감독할 수 없고 통제를 가할 수도 없다. 지식근로자들에게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셋째, 비영리조직은 좋은 사회, 즉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창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넷째, 드러커는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속성과 장기적 비전을 역설했다.

다섯째, 드러커주의의 행동강령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세우고 자기관리를 통해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다.” (p.575)

 

“막을 내린 20세기는 정부와 기업 모두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대였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더 그랬다. 21세기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배적 사회 환경, 즉 도시에 공동체를 만들어줄 비영리 사회조직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p.624)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도시 공동체적인 영역에서 비영리 사회조직들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화된 지식근로자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해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내는 사회를 말한다. 더불어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비영리 조직이 필수적 요소라 지적한다. 좋은 말 인 것 같지만 모순적인 듯싶다. 기업이 번창하는 사회가 과연 자유로운 사회일까? 비영리 조직이 기업 번창의 필수적 요소일까?

이 책을 읽은 후 바로 다음 읽을 책이 「이상호 기자 X파일」이다.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이상호기자가 쓴 책이다. 그런 전지전능한 기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비영리 조직에서 일한다. 최저생계비 정도의 돈을 받으며 사회 공적영역에 헌신하고 산다.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게 드러커의 주장은 딴 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l****h 2012.09.21.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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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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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드러커의 예언은 일단 맞았다. 이익 최대화가 기업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는 말도 맞(았)다. 이익이 중요하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기업의 본질은 경제적 성과를 향상하는 것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으면 모든 생산요소는 단지 자원 자체로 머물 따름으로 결코 생산물이 될 수 없다. 자유경쟁 경제체제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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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에는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드러커의 예언은 일단 맞았다. 이익 최대화가 기업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는 말도 맞(았)다. 이익이 중요하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필요조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기업의 본질은 경제적 성과를 향상하는 것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없으면 모든 생산요소는 단지 자원 자체로 머물 따름으로 결코 생산물이 될 수 없다. 자유경쟁 경제체제 아래서는 경영자의 자질과 능력이 그 조직의 성공과 생존을 결정한다. 경영자의 자질과 능력이야말로 자유경쟁 경제체제 기업이 보유할 수 있는 유일한 효과우위이기 때문이다.(p.402) ㅡ '경영자‘란 말이 ’상사‘라는 말을 약간 멋있게 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우습기도 하면서 뜨끔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익‘이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떨까. 기업에게 이익이 ’존속을 위한 필수물‘이라면, 근로자에게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소득을 이전‘받은 것이라는 대답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기업이나 이익을 배경으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현대 산업은 우리가 과거부터 익히 알고 있던 그 어떤 것과도 전혀 다른 기본적인 자원들로 구성된 조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이익을 내는 것과 성장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기업이 피고용인들에게 가부장적 권위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성립된다. 한 개인이 기업에 종사하는 것은 자발적이고 취소 가능한 고용계약에 따른 것이지 어떤 신비스러운 해소불능의 유대감 때문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471)



어떤 기업도 실질적으로 안전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날카롭다. 기업은 철저한 ‘이익사회’라는 것이다. 그럼 비영리단체의 강화는 어떨까.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의 일을 자선으로 보지 않고 급료를 받는 일과 같은 경력을 쌓는 것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때로는 혁신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비영리화’는 복지국가적 관료주의에 잘못 관리되어온 현대사회를 구출해낼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비울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기업이건 개인이건 ‘사회’라는 틀 안에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 과거 농업사회는 토지가 주요 생산요소였기 때문에 토지확보를 위한 전쟁과 시민혁명이 있었고, 산업사회 역시 기계파괴운동과 공산혁명 등이 있어왔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는 피 흘리지 않는 조용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지식사회에서는 작업현장의 작업자와 지식근로자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해야만 한다.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찾아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지식혁명이란 말이 어울린다. ‘사물이 변하고 있을 때, 목적의식과 한 묶음의 공통 가치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드러커적 관점이었다. 그러고 보면 드러커가 경영자의 개성과 그들이 부담하는 거대한 책임을 강조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기업이라는 제도적 기관이 경제적 성과와 사회와 개인의 누적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면 우리는 아무도 그 혼란과 테러를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u******o 2012.09.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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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의 지식경영 -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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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은 지난 몇 년 간, 혹은 수십 년간 계속해서 주목받았다. 아마도 그가 지속력 있는 경영학의 이론과 저술을 펴낼 수 있던 까닭은 자신을 문필가로 규정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식 사회에서의 지식 근로자, 그리고 지식 경영이 펼쳐질 것이라는 그의 예견은 사실로 드러났다. 끊임없는 지식의 획득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살아나가야 하는 그는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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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은 지난 몇 년 간, 혹은 수십 년간 계속해서 주목받았다. 아마도 그가 지속력 있는 경영학의 이론과 저술을 펴낼 수 있던 까닭은 자신을 문필가로 규정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지식 사회에서의 지식 근로자, 그리고 지식 경영이 펼쳐질 것이라는 그의 예견은 사실로 드러났다. 끊임없는 지식의 획득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살아나가야 하는 그는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좋은 선례였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를 한 것은 저자 이재규가 피터 드러커의 저서들을 끊임없이 소개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전에 검색을 해보면 그의 대표적인 저서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재규의 손을 거쳐서 번역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피터 드러커의 영향력은 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 이재규의 마지막 저서인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는 피터 드러커의 이론을 바탕으로 경영과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미술 등 문사철을 통해 경영의 자원을 얻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반적인 경영학 도서보다는 당연히 두껍고 경영학이 세상에 학문으로서 모습을 보인지 5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보다 충실한 학문을 구성하기 위해 인접학문과의 통섭을 요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방식 또한 피터 드러커 역시 지식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예견했던 것이다.


 각 분야의 학문이나 예술을 통해 지적인 통찰을 얻고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묶으려는 저자의 시도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비하는 경영학의 탐구자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마치 책이 2권의 내용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경영과 각 학문을 교차시킨 부분과 뒷부분의 경영학의 주요 주제들을 다룬 부분은 각 부분은 물론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통합적으로 하나의 주제라기보다는 조금 산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영과 철학이라는 장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경영과 종교라는 주제가 적합한 듯 하다.


 마지막에 실린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업의 존재의 영구적인 존속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생각으로 떠올린 비영리단체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책임, 개인의 지속적인 발전을 떠올리면서 중용을 지키려 한 이재규와 피터 드러커의 경영철학을 떠올리게 되었다. 피터 드러커나 이재규가 쓴 모든 내용에 동의를 할 수는 없어도 개인의 욕구와 성취도가 불합치하는 청년기를 지나는 그 누구에게나 한 번 쯤 고민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오는지에 대한 주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다만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to create it)이라는 결론에 동의한다면 해답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i****h 2012.09.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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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이재규, 21세기북스, 2012.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이재규, 21세기북스, 2012." 내용보기
국내에 피터 드러커 사상을 많이 소개하셨던 이재규 교수님의 유작이다. 책 앞부분에 아내되시는 분이 쓴 글을 보니 마음이 찡하다.아마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그렇게 닮고 싶어 했던 드러커 박사님을 만나 "박사님 뵙고 싶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달려왔습니다" 하며 말씀을 나누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사님 앞에 이 책을 내놓으면서 "박사님, 당신의 사상을 전파하려고 애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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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피터 드러커 사상을 많이 소개하셨던 이재규 교수님의 유작이다. 책 앞부분에 아내되시는 분이 쓴 글을 보니 마음이 찡하다.


아마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그렇게 닮고 싶어 했던 드러커 박사님을 만나 "박사님 뵙고 싶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달려왔습니다" 하며 말씀을 나누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사님 앞에 이 책을 내놓으면서 "박사님, 당신의 사상을 전파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라고 하시겠지요. - p.13


2011년 7월 25일 이 책의 원고를 마지막 교정하여 출판사에 보냈고 다음달인 8월 8일 소천하셨다니 암 투병중인 분으로써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통해 피터 드러커의 사상을 한권으로 압축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몇년전에 참석한 세미나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재규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살아생전의 모습을 본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되었다. 


책의 전체 3분의 2는 인문예술경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문학(2장), 역사(3장), 철학(4장), 음악(5장), 미술(6장) 등 피터 드러커가 추구했던 인문예술과 경영의 컨버전스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준다. 


특히 1장에서는 피터 드러터가 평생동안 주장했던 지식혁명, 지식재산, 지식근로자 등 '지식'에 초점을 맞추어 지식사회에 대해 설명한다. 1장의 내용은 자기계발서의 내용과도 유사하게 지식사회에서 지식인 그리고 리더의 역할을 정의한다. 리더에서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힘, 즉 지적성실성이다. 바로 유능한 리더는 유능한 동료를 격려하고 밀어주는 한편 그들을 자랑으로 여긴다.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좋은 방법은 그 미래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지식사회에서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인생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성공 또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따라서 지식사회에서 지식근로자는 목표설정이 중요하며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지식근로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내가 마땅히 '공헌해야 할 것'(should contribute)은 무엇인가?"

그런 다음에는 또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강점에 부합하는가? 그것은 내가 원하는 일인가? 그것으로 보람을 느끼고 도전의식을 느끼는가?"  - p.63.


두번째 장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문학이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드러커의 통찰력과 선견력이 문학에서 나왔다(p.67)고 결론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 드러커의 저술에 등장하는 소설과 작가를 찾아서 정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인의 종말>에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주로 인용했으며, <격변기의 경영>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인용했다. 드러커의 2002년 저술인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는 단테의 <신곡>, 디킨스의 <황폐한 집>,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그 이외에 헤시오도스, 베르길리우스, 세네카, 발자크 등의 작품을 인용하였다. 대부분 서양고전작품들이 인용되고 있는데 저자의 이야기대로 통찰력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고 간접경험을 통한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생긴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문학, 역사, 철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문예술적 지식전달을 마치고 나면 기업의 목적(7장), 혁신과 기업가정신(8장), 지식생산성 향상방법론(9장)에 대해 논의하고 마지막으로 10장에서 책의 제목과 같은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업의 목적이 경영자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사적 이익으로 귀결되도록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고 드러커는 주장했고 저자도 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최근의 금융자본주의를 위시한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고하는 메시지도 결국 자본주의가 비효율적이거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p.474). 


8장의 '혁신과 기업가정신'은 혁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출발한다.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로마는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천 년 로마도 멸망했다는 것이다.  - p.479


혁신은 한마디로 '위험하다'. 상당한 변화를 일으키며 고도의 위험을 동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혁신가는 위험을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위험을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성공한다(p.522). 성공한 혁신가는 보수적이며, '위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기회'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혁신은 간단해야 한다. 복잡하면 그것을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은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하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것은 틀림없어. 어쩌다 이런 생각을 진작 못했지?"  - p.523


우리가 과거에 윈도우라는 운영체제를 처음 사용하면서, 이메일을 처음 사용하면서, 웹브라우저를 통해 웹사이트를 서핑하면서,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생각들 아닌가? 이것이 혁신이다.


대학에서 경영학개론 과목을 공부하기도 했고 또 최근에는 강의도 해보았지만 일반적인 경영학개론 교과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영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드러커의 다양한 저술을 고도로 압축해 놓은 요약집과도 같다. 드러커의 많은 책들을 이 책을 통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드러커의 철학과 사상을 엿볼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경영에 대해 관심이 있는 회사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로 추천하는 바이다.





k******1 2012.10.11. 신고 공감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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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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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정말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예측해야 한다. 자신이 미래를 만들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제대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자신이 가져야 할 것들, 갖고 있는 것들, 그리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미래에 도전해야 한다. 그런 도전정신을 기르기 위해서, 그리고 불안한 위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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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정말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예측해야 한다. 자신이 미래를 만들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제대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자신이 가져야 할 것들, 갖고 있는 것들, 그리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미래에 도전해야 한다. 그런 도전정신을 기르기 위해서, 그리고 불안한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로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미래에 대해 예측하기 바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u 2017.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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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경영학 책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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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인문학과 경영학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다.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이라는 개념이 그 관점을 입증한다.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의 출발점은 피터 드러커이다. 드러커는‘미래의 결단’에서 지식이 지식들로 이동하여 새 지식을 낳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지식과 지식들의 구분은 과학철학자 바슐라르의“과학 같은 것은 없으며 과학들이 있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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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인문학과 경영학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다.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이라는 개념이 그 관점을 입증한다.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의 출발점은 피터 드러커이다. 드러커는‘미래의 결단’에서 지식이 지식들로 이동하여 새 지식을 낳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지식과 지식들의 구분은 과학철학자 바슐라르의“과학 같은 것은 없으며 과학들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이는 인문학과 경영학이 기저(基底)에서 통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바슐라르가 과학은 없다고 했지만 그가 한 말의 취지는 인간의 인식 구조는 역사에 따라 늘 변한다는 것이고 상상력에 따라 개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 변화는 피터 드러커가 말한 이동에 상응한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지식은 오직 응용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드러커가 지식이 주요 생산요소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한 것에 비유된다.

 

그는 경영을 과학이 아닌 실천으로 규정했다. 오늘날 지식은 체계적 혁신에 적용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경영자는 지식의 적용과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드러커에 의하면 오늘날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지식사회이다. 그에 의하면 지식사회의 세 특징 중 하나는 국경이 없다는 점이다. 드러커는 지식은 돈보다 훨씬 더 쉽사리 돌아다닌다는 말을 한다. 오늘날 인터넷의 눈부신 발전은 지식의 광속도적 유포를 낳고 있다. 그런데 지식이 돈보다 훨씬 빨리 돌아다닌다는 말은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지식이나 돈(예컨대 인터넷을 통한 금융 거래)은 클릭에 의해 공평하게 광속도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지식은 일반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 전달받은 사람의 변화나 발전을 불러일으켜야만 속도가 빠르다, 효과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드러커가 보인 남다른 통찰력과 선견력의 근원은 문학이다. 멜빌의‘모비딕’, 카프카의‘아메리카’, 발자크의‘인간 희극’, 셰익스피어의‘템페스트’, 괴테의 ‘파우스트’, 볼테르의‘캉디드 혹은 낙천주의자’, 토마스 만의‘부덴브로크 일가’등은 그가 읽고 인용한 주요 문학 작품들이다.(드러커는‘최후의 가능한 세상’,‘선에의 유혹’등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저자는 프롤레타리아의 소외는 불가피하게 착취로 이어진다는 마르크스를 거론했다.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생존을 전적으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에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공유지를 빼앗고 농민들로부터 토지와 집을 빼앗는 수차례의 인클로저를 통해 자본을 집적했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농민들이 부랑자가 되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운명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저자는 인클로저 운동은 매우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말을 한다: 116 페이지) 저자는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타도될 것이라 말한 마르크스는 엉터리 예언가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가 틀렸다 맞았다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계기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 것에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폐기 선언보다 우리가 사는 체제가 너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식사회란 말은 좋은 말이고 매력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사는 체제의 모순이나 문제점들을 가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오늘날 기후 문제, 과잉생산, 식량 문제 등에서 보듯 위기의 징후는 심각하다. 아무리 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생산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파헤쳐지는 자연, 지구 온난화 등의 문제를 지식이 해결할 수는 없다.(최근 나는 한 책에서 미국과 중국을 두 기후 범죄국이라 칭한 것을 보았다.) 혹 먼 미래에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저자의 책은 유익하다. 특히 프란츠 카프카가 위대한 작가일 뿐 아니라 안전모를 발명했고 공장시설 검사 활동과 보상관리 분야의 전문가였다는 지적이 그렇다.(125 페이지) 드러커는 마르크스와 달리 공산주의가 역사의 귀결이라고 보지 않았고 후쿠야마와 달리 자유민주주의의 영원한 승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자는 드러커를 진보사관을 베이스로 둔 채 역사의 연속과 변화를 강조한 학자로 규정했다.(130 페이지) 저자는 지식이 동서고금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것은 푸코가 논한 계보학을 연상하게 한다. 푸코는“계보학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부분적이고 불연속적이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지식들이 어떻게 기존의 지식체계가 진정한 지식이나 과학이라고 제시한 자의적 잣대에 의해 정복당한 지식들로 취급되어 걸러지며 서열화되고 질서가 부여되는지를 찾아내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권력과 지식‘ 116 페이지) 푸코는 지식인의 문제를 거론하며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 가치의 담지자로서의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라 그가 사회 속의 어느 특정한 자리에서 진실을 생산하고 확산시키느냐는 것이다.(’지식과 권력‘ 166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차이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에 경도되어 있었다면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집중 연구했다. 아퀴나스는 인간을 타락한 존재로 본 전통적인 아우구스티누스派와 끊임없이 논쟁했다. 이에 대해서는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로마 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란 부제를 가진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의 ’가장 위험한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나치즘의 근거로 악용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저작 '게르마니아'에 대한 진실을 다룬 책이다. ’게르마니아‘는 나치에게 바이블이었고 600만 명 대학살의 근거가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오독의 결과였다. 독일의 민족성을 정의하는 데 원용된 이 텍스트가 실은 한 로마인이 쓴 인간의 미덕에 대한 상상의 소산이자 정치적 발언이었던 것이다.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에는 ’게르마니아‘를 연상하게 하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 후 감옥에 갇힌 루이 16세가 우연히 볼테르와 루소의 저술들을 읽고서 ”내 왕국을 쓰러트린 것은 이 두 놈“이라 외쳤다는 것이다. 두 사례는 실천의 근거로 작용하는 지식의 위력을 말해준다. 나치즘과 인종학살은 오독(誤讀)의 결과이고 프랑스 혁명은 정독(正讀)의 결과이기에 관건은 바른 읽기이다. 물론 ’게르마니아‘의 경우 저작(著作)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푸코의 지식인론은 빛을 발한다. 저자는 지식혁명을 피 흘리는 전쟁 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혁명이라 정의한다. 본문에 의하면 신앙은 신비체험이 아니라 절망과 고난, 고통스럽고도 끊임없는 투쟁으로 체험 가능하다. 성 바울이 하느님과 자신의 통합이라는 내적 인식을 희망이라 했지만 모든 사람은 신앙을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절망을 느끼기 때문이다.(230 페이지)

 

드러커는 전체주의는 루소의 ’이상적 사회‘에서 시작하여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마르크스의 계급 없는 사회,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와 사회에 의한 구제 사상으로 이어졌으나 동 유럽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로 종말을 맞았다고 보았다.(244 페이지) 저자의 글을 읽으면 드러커가 다양한 문화 영역에 고른 관심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드러커가 안톤 베베른에게 작곡을 배웠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드러커는 모차르트 음악에서 고객 만족 경영을 배웠다. 드러커의 체계적 폐기는 ”끈기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 포기“라는 모차르트의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키르케고르와, 그가 성인으로 받든 모차르트는 모두 드러커가 좋아한 인사(人士)들이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천사들이 하느님을 위해서는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고 자신들끼리 즐길 때는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317 페이지)

 

레기날드 링엔바하는 지식은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말을 하며 하느님을 음악으로 정의(定義)(’하느님은 음악이시다‘ 99 페이지)했지만 칼 바르트의 말은 깊은 진리를 내장(內臟)한 듯 보인다. 링엔바하의 말은 질서와 조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기도 하거니와 지식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모차르트, 키르케고르 등을 좋아한 드러커와, 드러커의 그런 점을 인용한 저자의 지향점은 질서와 조화에 가 닿았음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식이 생존의 문제로 환원되는 시대에 순수 철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일이다. 물론 나는 많은 인문학 프로그램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한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자리는 없는 것 같다.”(’불온한 인문학‘ 95 페이지)는 정정훈의 견해 역시 들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비실용과 비정치로서의 휴머니즘의 신화는 그 이면으로 지극히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비호를 받으며 융성했으며 휴머니즘이란 애초 인간을 위한 학문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아니었으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공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굳건하게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물론 저자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며 휴머니티는 인간성,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서 시작되었으며 중세 이후 신에 예속되었던 인간을 근세 르네상스 이후 재발견하고 고전을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태동했다는 말을 했다.(19, 20 페이지) 관건은 인문학의 효용에 대한 숙고이고 드러커의 예에서 보듯 인문학에 뿌리를 둔 경영학의 위상에 대한 재고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주된 바탕은 경영과 미술편에서 집중 언급된 중국과 일본의 미술(또는 미술사)에 대한 글에 대한 찬탄이다.

 

’불온한 인문학‘이 <인문학 = 순수한 학문>이라는 등식에 균열을 일으켰다면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는 <경영학 = 목적의식에 경도된 무미건조한 학문>이라는 세평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사실 리더십, 조직, 성과, 관리, 인사(人事), 혁신 등 경영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어휘들로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기 어렵다. 저자에 의하면 지식조직의 모델은 교향악단이며 지식 사이에는 서열이 없다.(538, 539 페이지) 드러커는“나는 예언하지 않는다. 다만 창문 밖을 내다보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은 것을 전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574 페이지) 저자는 드러커의 핵심 사상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경영은 하나의 전문적 직업이고 경영자는 그들의 일차적 과업이 조직의 장기적인 건강을 돌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며, 둘째 지식근로자들은 감독할 수 없고 통제를 가할 수도 없다, 셋째 비영리조직은 좋은 사회, 즉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창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넷째 드러커는 혁명을 꿈꾸지 않고 우리들의 기존 가정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도록 촉구했다. 다섯째 드러커주의 행동강령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세우고 자기관리를 통해 그것을 달성하는 것 등이다.

 

1986년 소련의 붕괴를 예언한 드러커는 자신은 관찰자이지 참여자가 아니며 직접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한층 더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58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지식사회는 개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제각기 책임을 질 수 있는 장(場)을 필요로 한다.(592 페이지) 지식사회의 특징은 국경이 없고 상승 이동이 쉬워지고 성공 뿐 아니라 실패할 확률도 높은 것이다.(611 페이지) 가장 획기적인 것은 지식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구입하는 고용주와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들을 종업원이 아닌 전문가로 인식한다는 것이다.(612 페이지) 그런데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상승 이동은 극도로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는 누군가의 지적이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정답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아직 지식사회에 접어들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승하려는 사람들이 지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드러커의 진단이 틀린 것일까?

 

남태현에 의하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상류층에 더 늦기 전에 진입하기 위해 기를 쓰는 데에는 사기(詐欺)가 숨어 있다. 상류층은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끼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가 실제로 현실적인 이익과 직결되고 상징적인 의미로도 중요한 것이기에 보통 사람들이 따라오는 만큼 그들의 영어는 점점 더 세련되어간다는 것이다.(‘영어 계급사회’191 페이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영어 성적의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임을 감안하면 남태현의 진단은 서글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를 생각해보라. 구별짓기는 배제이고 차별화이다. 저자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만 기업이 공동체를 제공할 수는 없고 오직 사회부문의 기관 즉 비정부기관, 비기업, 비영리 단체들이 지금 필요한 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다.(623 페이지) 드러커는 1969년 처음으로 민영화를 제안했다고 한다.(630 페이지)

 

민영화는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에 의해 잘못 길들여진 현대경제를 살리는 치료약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민영화가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에 의해 잘못 길들여진 현대경제를 살리는 치료약이라면 비영리화는 복지국가적 관료주의에 잘못 관리되어온 현대사회를 구출할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확인한 것은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와 복지국가적 관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하기야 관료주의는 수용할 수 없는 악이 아닌가.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드러커의 진단 및 예견은 우리 사회에 큰 무리 없이 적용될 것이다. 우리사회가 커다른 변환의 포인트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영학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사실 자기계발서는 종종 읽는다. 이는 모순적 행태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내가 경영학 책과 자기계발서를 동등한 반열에 놓고 본다는 뜻은 아니다. 드러커의 관점을 지식, 질서, 조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면 꽤 매력적이다.‘미래는 어떻게 오는가’가 독특한 경영학 책이다. 문화예술 서적으로 보아도 손색 없는 책인 것이다.

m******1 2012.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래의 도래, 경영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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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의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2012)는 그동안 대한민국에 피터 드러커를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그의 마지막 유작이다. 이 책에서도 첫 번째 구절은 피터 드러커의 말로 시작하는 데 살짝 들여다보면“ 나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진정한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이 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 구절로 머리말에 서두를 정식한다. 이 이야기의 숨은 위도는 몬든 학문의 길은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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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의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2012)는 그동안 대한민국에 피터 드러커를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그의 마지막 유작이다. 이 책에서도 첫 번째 구절은 피터 드러커의 말로 시작하는 데 살짝 들여다보면“ 나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진정한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이 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 구절로 머리말에 서두를 정식한다. 


이 이야기의 숨은 위도는 몬든 학문의 길은 경영을 학습함으로써 통하다는 같은 말의 다른 판본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든든한 배경이 버티고 있으며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가와 노동자들이 숨어있다. 그들의 ‘이념’에 윤리와 도덕이라는 테마를 입혔다. 물론 여기에는 일정한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의 순서를 반드시 기억할 것. 그 연대기적 서술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경영의 방식에서 약간은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으면 다른 시간의 접근 방식을 더 선호하게 만든다. 


먼저 서문의 ‘사회기능이자 인문예술로서의 경영’에서 경영은 인간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이른바 실천이다 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으며 피해갈 수 없는 반드시 경유해야만 하는 통과제의라고 명시한다. 그 수준 높은 삶의 지양과 그 목표를 수립하고자 애쓰고자 하는 모든 방법들의 총합의 결과는 결국에는 자본의 소유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재규는 피터 드러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에서의 지식사회의 이해와 지식근로자의 목표설정, 경영과 문학에서의 피터드러커의 통찰력과 선견력은 문학에서 나왔다, 경영과 역서에서의 역사변동은의 원동력은 지식이다, 경영과 철학은 지식근로자, 어떻게 살 것인가, 경영과 음악에서의 드러커는 모차르트 음악에서 고객 만족 경영을 배웠다. 경영과 미술에서의 중국화와 일본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기업의 목적에서의 기업의 목적은 이익추구가 아니라 고객 만족이다, 혁신과 기업가정에서의 고슴도치의 기업이론과 여우의 혁신전략, 지식생산성 향상 방법론에서의 지식산업의 이해와 지식생산성 향상 방법론,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에서의 이미 일어난 미래라는 종결부를 통하여 경영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방법과 그 장르에 대한 혼종교배를 시도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독서탐구적 자세의 태도도 엿보인다. 예를 들면 경영과 문학에서의 장에서는 여러 나라의 소설을 소개하면서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소개하는데 불행하게도 이 소설을 일고 바로 경영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 여기서 함정이다. 왜냐하면 경영의 리얼리즘과 소설의 판타스틱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을 서로 완전히 오해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보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아메리카>, 찰스 디킨스의 <마틴 추즐위트>,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회극>, 괴테의 <파우스트>를 언급하는데 대한민국 문학판 에서도 드물게 인용하는 이런 소설을 일고 나머지 감명을 받아 숫자와 데이터로만 움직이는 매트릭스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뚜렷이 보인다. 물론 파우스트의 구절“ 보기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바깥을 내다보기만 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뜻이야.” 처럼 이른바 숙명의 불가능성에 대한 과잉의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고전들이 인용된다. 그 이유는 드러커의 이론들이 바로 거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작을 알리는 도서들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들은 시간의 터널을 들어서야만 한다. 그 공간에는 우리들이 필요한 말들 스펙의 유용함의 보물 상자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맺은 말은 다소 특이한 주제를 함의하고 있는데 바로 도시생태학에 의해서 벌어진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도시의 문명화 그로 인해 비롯된 부작용 그리고 경영의 합리화 과정 중에 들어난 인간의 불합목적성 칸트의 철학. 이 모든 것의 목표는 기업의 계속 유지이다. 



n*****m 2012.09.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