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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질거란 말을 수도 없이 들어 왔다. 오븐 옆에서 하루종일 7000원짜리 피자를 구워내며 열기와 가스로 멀미를 앓는 엄마 입에서도, 여름한철 축축한 기운이 곰팡이만 배불리는 단칸방 한 구석의 외할머니 입에서도, 나아질거란 말이 염불처럼 맴돌았다. 언제부턴가 결핍된 이 생활이 정상이 아니란 걸 눈치 챈 뒤에도 나는 별 수 없이 그 말에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남은 것이라곤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희망 밖에 없으므로. 한 때는 부분이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한 덩어리의 백혈구가 죽은 세포를 종식시키듯 내가 깨어있다면 전복당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헛배 불리는 희망 따위 개나 줘버리라며 사탕도 당근도 마다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체는 너무나 거대하고 정교하다. 어쩌면 사람이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비루해지는 방법을 이다지도 완벽하게 구현해냈을까. 큰 사람이 되라던 옛말이 무색하게 우린 이제 혼자 거대해질 수가 없다. 우린 우리를 버리지 않는 이상 이 전체를 견딜 수가 없다. 서두부터 이토록 장황하게 토로하는 이유는, 이 책이 들추는 풍자의 전면에 바로 나와 같이, 혹은 나보다 더 깊이 닳고 앓는 이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장도리는 네 컷의 그림으로 링 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중계한다. 급도 없는 비상식적인 대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유린하는 상대는 분명 우리와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책 표지에 드러나듯 그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땅을 밟고 사는 듯이 분리되고 구별된다. (책의 표지야 말로 묘미라고 생각한다. 어쩜 이처럼 적확한 비유가 있는지!) 실컷 얻어터지고도 하소연조차 할 수가 없다. 신의 권력을 자임한 이들에게 고작 ‘사람’인 우리들은 엎드리고 빌고 순응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진화한다고 누군가 거창하게 설파했지만 몇 천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도 사회구조는 놀랄 만큼 유사하다. 적을 숨기는 방법, 저항을 무마시키는 방법 등이 치밀하게 발달했을 뿐이다. 장도리가 10년이 넘도록 (결국 같은 말을 하는) 만화를 그려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의 만화는 ‘진화’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까막눈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각성제다. 그러나 각성제는 깨우는 일만 한다. 깬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다.
이 책의 효용도 이러한 한계를 놓고 가늠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해학과 풍자는 그 대상이 분명하며 그로 인한 메시지도 편파적인 것이 당연하다. 저널리즘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분명 권력감시의 기능을 하기는 하지만, 만평의 특성상 공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네 컷 짜리 만화 속에 담을 수 있는 목소리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힐끔 흘기고는 히죽거리거나 욕짓거리를 하는 것 정도가 창작자가 기대하는 보통의 반응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1958년 김성환 화백의 ‘경무대 똥통’, 1972년 윤영옥 화백의 ‘새마을 운동 비판’, 1986년 안의섭 화백의 ‘대통령 모욕’ 사건 등은 대단히 고무적인 사건이다. 만평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에 처벌을 감행한 ‘그 분’들도 보통은 아니지만.
현재 시사만화의 위기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90년대말 조선일보가 네 컷 만화의 연재를 중단하면서 다른 일간지들도 줄줄이 연재를 중단했다. 2000년대 들어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한겨례신문도 네 컷 만화를 지면에서 뺐다. 장도리의 만화는 여전히 연재를 지속하는 경향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전반적인 만화계의 쇠락, 언론사의 열악한 환경을 배경으로 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날 선 것들’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 아닌가 한다. 보수신문이야 제 살 깎는 말을 사서 할 필요가 없으리라. 더구나 지금처럼 풍자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무슨 불똥이 튈 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장도리는 분명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는 용기있는 ‘척’하지 않는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갖는 오류로 충분히 위험하지만 확신을 갖게 하는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진술이다. 세상에 허점 없는 진실은 없다. 그것을 믿는 신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들간의 충돌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의 맞은편엔 ‘저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이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이 쪽 저 쪽 기울며 전진한다. 수평을 유지하며 나아가는 자동차는 없다. 그 기울기를 얼마나 인정하느냐는 차이가 있겠으나 내 쪽으로 기울었다고 불편해하거나 억지로 맞추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숫자상으로도 ‘99%’에 기울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책에 대한 평가라기 보단 주관적인 진술이 강했다. 하지만 무언가 뒤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상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메시지는 무겁지만 깨알 같이 숨은 재미에 유쾌하다. 그간의 연재분을 모아 둔 것이니 굳이 차례대로 따라가며 읽지 않아도 좋다. 중간 중간 정리되어 있는 특집편만 골라 봐도 무방하다. 어딜 펼친들 4컷 속에 일그러진 사회의 일면은 한결같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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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웬 아저씨 한분이 십만원 정도를 내밀면서 제발 신문 좀 봐달라는 말씀을 하셨다.아마도 신문 보급소 소장님이신 것 같은데 워낙 신문의 구독률이 떨어지다보니 이제는 선물이 아나라 현금을 들고 판촉활동을 하시는 것 같다.요새는 신문 구독비도 안받고 무료로 읽으라고 하는 곳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대부분 수입은 독자들의 구독료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찌리사 광고 수입으로 대체되기에 광고 수입을 얻기 위해서는 현금 사은품을 걸고서라도 신문 구독자를 확보해야 되는것 같다. 사실 요즘은 사람들이 별로 신문을 읽지 않는 것 같다.워낙 무가지들이 많다보니 굳이 돈주고 신문을 사볼 필요가 없는데다 동일한 내용이 인터넷 포탈란에 뜨니 말이다. 이처럼 신문을 안보다 보니 어느샌가부터 시사 만화를 본 기억이 거의 나질 않는데,예전에 아버지들이 신문을 보실적에는 가장 먼저 보는 란이 바로 4컷짜리 시사 만화가 아니었나 싶다.비록 4컷짜리 아주 짧은 지면이지만 그 만화속에는 신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사가 함축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시사 만화를 즐겨보았던 것인데 이처럼 시사만화는 오랫동안 권력의 남용과 횡포를 비판하며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해 왔기에 당대의 권력자들이 매우 무서워 했었지만 요새는 신문 구독자들이 줄어들다 보니 그 자정 기능이 예전만 못하단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시사만화하면 고바우 영감이나 왈순 아지와 같은 정겨운 서민 캐릭터가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근래들어 신문지상에서 눈에 딱 뜨이는 시사 만화 캐릭터가 드문데 시사 만화가들은 일반적으로 신문사의 직원으로 편입되어 있어 진보적 성향의 젊은 작가들의 생각이 보순적인 신문사의 논조와 맞지 않아 창의성의 감퇴가 풍자 만화의 재미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사만화의 위축에서도 어떻게 보면 신선한 캐릭터라고 할수 있는 장도리는 경향 신문에서 1995년부터 연재된 시사 만화로 서민이 느끼는 애환과 분노, 희망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 나는 99%다는 경향신문에서 장도리를 연재하는 박순찬 화백이 그동안에 연재되었던 시사만화중 근래의 것을 묶어 출간한 책으로 제목의 의미는 대한 민국은 단지 1%의 국민만을 위해서 존재하면 돌아가는 사회로 나머지 99%는 이 1%를 위해서 사는 아무런 권력도 힘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다. 저자는 4컷의 시사만화에서 실직한 가장이 넘쳐나고 대학 등록금에 허리가 휘면서도 취업이 안되는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가 암울한 현실과 그런 현실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 집단에 대해 날카롭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사실 요즘의 시사 만화는 신문에서 인테넷으로 독자들이 넘어가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보수적인 신문의 논조등으로 인해서 예전보다는 통렬하게 정치,종교,대기업등에 대해 제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시점에서 여전히 날카로운 그림으로 기득권 세력에 일침을 가하는 장도리와 같은 시사 만화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 스럽다. 장도리와 같은 시사만화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부패와 오만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하는 사회의 목타 같은 존재이니 앞으로도 부당한 권위를 부정하고 권력의 오만과 월권을 지적하고 서민들의 삶과 절망을 이야기하며 풍자와 해학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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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도 있듯이 시대가 암울할 수록 사람들은 보다 잘 견딜 수 있게 해 줄 무언가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게 현진건에게 술이었다면 저에게는 '나는 꼼수다'가 나오기 전까진 박순환의 '장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선 즈음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지금은 끊었습니다만 제가 경향신문을 보게 된 것도 장도리 때문이었습니다. 모두들 다시 80년대로 돌아갔다며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고 입조심을 하던 때에 장도리만은 거침없는 풍자로 그나마 저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으니까요.
솔직히 아주 많이 애정하는 만화입니다. 하고 있는 이야기가 저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니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삽질 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에 이어 두 번째 장도리 모음집이 나왔습니다.
'나는 99%다'가 바로 그 책입니다. 표지도 정말 근사합니다. 예전에 '이집트 왕자'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모세 태어날 즈음의 이야기를 이집트 벽화 스타일로 근사하게 만든 걸 본 적이 있는데 표지는 그걸 응용했더군요. 정말 이 정도로 우리나라의 지배관계 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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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 그림 자체가 이 시사 만화 모음집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군림하는 1%가 아니라 그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99%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한다는 것을 말이죠.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낼 정도로 장도리는 용감합니다. 그 대담성만 보자면 그는 절대 99%가 아닙니다. 요즘엔 정말 보기 드문 1% 입니다.
저 표지 위의 앵무새들 처럼 모두가 자신의 본분을 잊고 더러는 돈에 영혼을 팔고 더러는 걷어 차일 것이 두려워 입을 닫고 있을 때 장도리만은 굴하지 않고 이 만화처럼 촌철살인 식으로 현 정권의 문제점을 드러내주었으니까요.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네 컷의 만화였는지는 몰라도 이 만화를 보는 이들에겐 하나의 희망이었습니다. 모두가 제 하나 살자고 숨죽이고 있는 시대. 그렇게 살아야만 될 것 같았던 시대. 그래서 더없이 굴욕적이었던 시대에 용감히 일어나 할말은 하는 이를 본다는 건 까만 어둠 가운데 홀연히 빛이 떠오른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거짓을 말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진실을 들려주었고 그래서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물을 찾게 되듯 유일하게 숨통을 트일 수 있는 통로였으니까요.
보통의 만화였다면 이야기가 어떻고 연출이 어떻고 짜임새가 어떻고 등등의 얘기를 하겠지만 이 만화 앞에서는 그저 침묵하렵니다. 이 만화는 사실 그런 거 다 필요없습니다. 모두가 침묵하는 시대에 당당히 나서서 해야 할 말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던가요. 그 말은 정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난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장도리와 같은 영웅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는 영웅입니다. 99%라서 영웅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시대의 보통 가장이라서 영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므로 영웅입니다. 이 만화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보통 영웅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러면 저 표지 위의 구도 역시 뒤집어지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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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장도리 이지만 주인공보다 이명박이 더 많이 나오는 시사만화 '장도리'. 이제 이명박 정권의 5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데 드디어 그 날이 가까워진다는 속시원함과 함께 이제 다음 대통령은 이 정권이 싼 똥을 치우느라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치우고 바꿔야 할게 참 많이도 생긴 5년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특징은 오로지 '돈돈돈'이었다. 권력을 가진자, 돈을 가진 자는 이명박 정권이 너무나 달콤했을 것이다. 특히 대통령 측근들은 콩고물을 다 받아먹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너무 천박해서 입에 올리기도 힘든 일들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하나하나 주옥같은 사건들을 풍자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도 않을(역사를 등한시하니) 이 정권은 정말 많은 사건사고를 만들어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에서 일이 하나씩 터지고, 관련없는 것도 북한 이름을 들먹이고, 민간인 사찰과 용산참사 등 도무지 정상적이지 않은 나날들 이었다.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장도리를 보면서 그동안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싶다. 부디 다음 정권은 돈이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가슴에 분노 대신 희망이 샘솟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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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현실을 제대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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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연재되는 4컷 만화인데 인물 하나하나를 알아볼 수 있는 그림 실력은 물론이고 내용과 내포된 의미까지 이해하고 나면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나 그 천재성에 매일 보면서도 매일 놀랜다. 표현이 재미있어 혼자 박장대소할 때도, 당시의 사건 회상에 분노할 때도 있고, 슬픈 현실에 다시 한 번 안타까울 때도 있다. 아마도 나도 99%에 속하기 때문이리라. 한 권의 책으로 보니 시대의 흐름과 당시의 사건을 돌아볼수 있어 좋다. 짧은 설명이 있음에도 간혹 이해가 안 가는 날은 그만큼 사회에 무관심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워낙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어 그리 빨리 읽히지는 않는다. 주인공 장도리 대신 99%인 장도리를 힘들게 하는 몇몇 분들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지만 장도리 만화를 만난다면 내가 날리고 싶었던 신랄한 촌철살인을 대신 날려주는 대리만족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시는 그 분이 꼭 보시기를 바래본다. 그 분이 이 심오한 만화를 다 이해하실 지는 확신이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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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조어가 합성되고, 대부분은 이내 잊혀지며 공감을 얻은 소수는 살아남아 유행어가 된다. 요 근래 생긴 조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웃프다'를 들 것이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뜻으로 조합된 말이다. 나름 뼈아픈 상황인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웃음이 나올 때 주로 쓰이던 말인데, 나중에는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에 폭넓게 쓰이게 되었다.
<나는 99%다>를 읽다 보면 '웃프다'라는 말뜻을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웃음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4컷 만화 자체는 짜임새 있고, 센스가 뛰어나고, 정말 재미있다. 그런데 이내 장도리 만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장도리에 나온 이야기가 현실이라는 것에 이내 슬픈 기분이 든다. 정치 풍자 블랙코미디를 보고 한바탕 웃은 다음,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과 매한가지다.
<나는 99%다>의 표지는 책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응집하여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 신화와 벽화를 알고 잇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대폭소하고, 잘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최고신이 자리하는 곳에 오늘날 돈의 제왕이 있고, 대개 왕과 왕비가 있는 곳에 삽을 든 왕과 선대 왕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공주가 있고, 재칼의 탈을 쓴 자가 그들을 호위하며, 그 외에도 하나하나 깨알같은 상징이 잔뜩 숨어 있다. 그러면서도 상징성에 완성도가 매몰되지 않고, 멋들어진 표지를 그려냈다. 그리고 이 표지같은 만화센스와 사회문제의식을 책 한 권 가득히 담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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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여러번 경향신문을 통해서 시사만화 '장도리'를 만날 수 있었다. 좀 더 들여다보니 '장도리'는 1995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99%다'에서는 2010년부터의 '장도리'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하나의 신문을 들여다 봄에 있어 신문을 읽는 독자층이 다양하기에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부분 또한 다르리라. 어떤 이는 경제면이나 사회면을 다른이는 정치면이나 사설 등을 눈여겨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두루두루 들여다 보는 편이지만 만평이나 시사만화 등에 좀 더 관심이 가게 된다. 한 컷이나 단 몇 컷의 연속된 만화로 시대상을 압축해 담아내는 일은 자칫 보기에는 쉬워보일지 모르겠으나 그 누구나 할 수 없는 치열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MB정권도 서서히 그 자리를 다음 주자에게 넘겨 주어야 할 시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빗대어 표현된 '고소영'의 문제점부터 시작해 특정 종교에만 편향된 모습, 민간인 사찰과 측근들의 비리 등은 MB정권의 문제점들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점들이 눈덩이마냥 커져서 결국에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재벌들은 더욱더 승승장구하면서 몸집을 불려 화려한 1%가 되는 반면 그 나머지 99%의 서민들은 각종 푸어의 고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게 오늘의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99%다'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데, 만평이나 시사만화를 보면서 그냥 웃고만 넘어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윗쪽에 자리잡고 있는 1%의 힘있는 자들이 스스로 반성하면서 좀 더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면 99%의 삶이 한결 나아질텐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는 부분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된 '장도리'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곪아터진 문제점도 발견할 수가 있으며, 이를 토대로해서 앞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있는 해법도 모색해 볼 수가 있는 것이리라. 이런 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나는 99%다'를 들여다 본다면 좀 더 의미 있고 의식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모습이기도한 99%의 삶을 파헤쳐 보고픈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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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찬 이분은 시사만화의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는 분이다.
그의 탁월한 안목과 해학(골계미)이 깃든 시사만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독자로서 행복이고
국민으로서는 불행이다. 주제별로 잘 편집된 이 책은 근현대사를 꼬집은 통렬한 역사교재라고 해도
무방하므로 소장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부디 머지않은 미래에 작가님의 소원대로 공상과학 만화나 명랑만화를 마음 편히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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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박순찬 화백의 만평 시리즈인 장도리가 드디어 단행본으로 나왔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장도리는 만화 본편에 별로 안 나오고, 대신 지금 청와대에 계신 '가카'께서 많이 나온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이 나라의 주인공은 명실상부하게 가카가 아니시던가?
불과 4컷으로 제한된 공간이지만, 그 공간 안에 작가는 무수한 상상력을 압축하고 요약하여 현재의 시국을 풍자한다.
알고 봤더니, 박순찬 화백은 그리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닌, 30대 후반의 젊은 만화가였다.
그래서 현재의 시국에 대한 유쾌하고도 통렬한 시각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행본의 표지 그림은 고대 이집트 벽화 양식을 빌어서 현재의 시국을 풍자한 것인데, 이 또한 매우 포복절도한 것이라 발매 전부터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를 보고 저마다의 해석을 하며 즐거운 상상의 날개를 폈다.
제목인 나는 99%다 처럼, 지금 이 나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면서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몫을 뜯기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사람들은 언제나 깨달을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진보와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