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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으로 찾아온 중년 여인 레일라가 있다. 찾아오는 가족도 편지를 써주는 사람도 없으며 무기징역인 그 여인이 신부의 조수로 온다. 눈이 안 보이는 야곱 신부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을 써주는 일을 위해. 가정일은 손도 안 댈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적의와 경계로 가득하다. 더듬거리며 차를 따르고 칼로 빵을 써는 신부를 그냥 바라보면서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삶의 방식으로 살아왔음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신부에게 오는 편지의 양이 많아서 일부는 버리기도 하고, 신부가 불러주는 내용을 답장으로 쓰지 않기도 하며, 신부의 돈을 갚겠다며 보낸 돈을 손에서 잡고 한동안 응시하기도 한다. 갑자기 신부의 집에 들어와 돈을 훔치려는 우체부를 잡고 나서는 레일라가 지키는 집을 보면서 우체부는 편지를 배달하지 않는다. 야곱 신부는 단순히 편지가 매일 오지는 않는 모양이라고 말할 뿐이고. 결혼식인지 세례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는 레일라의 말에 좌절하며 자신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신부. 레일라의 시각으로 보던 영화의 시각이 신부의 입장으로 변한다. 이런 신부를 이해하지 못해 택시를 부르지만 정작 갈 곳이 없어 떠나지 못하는 레일라. 서로 다른 이유로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다고 절망하는 두 사람이 절대적인 절망 상태에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더 이상 신부복을 입지 않고 내복 차림으로 생활하는 노인과 그에게 사는 이유를 다시 불어넣는 레일라. 편지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봐 지붕에서 비가 새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음에도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레일라는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의미 없는 신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면서 그녀가 변화한다. 우체부에게 소리를 지르며 오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이미. 영화 후반부에 보이는 레일라의 고백은 신부가 왜 그녀의 사면을 요청했는지 함께 듣게 한다. 인간의 죄와 용서, 선한 본성과 이해에 대하여. 그리고, 신부의 마지막을 레일라가 지키며 언니 리사의 끊임없는 편지 한 꾸러미로 이 영화는 끝난다. 인간에 대한 호의와 보이지 않는 배려가 처음부터 사람을 확 바꿔 놓을 수 없지만, 서로가 함께하는 시간과 좋은 말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음같은 사람의 마음을 물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야곱신부와 레일라, 우체부를 통해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