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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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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허상 이기영 『민촌』, 『홍수』 감상문   ‘팀플을 하면 왜 공산주의가 망했는지 알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과제를 팀원들과 나눠서 해야만 하는 팀플을 하다보면, 모두에게 공평한 양의 일을 분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대개는 한두 사람이 거의 모든 일을 하게 된다) 농담이다. 대학생들이 이 농담에 마냥 웃지 못하는 것은, 많은 이가 이 농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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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허상

 이기영 『민촌』, 『홍수』 감상문 

 


‘팀플을 하면 왜 공산주의가 망했는지 알게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과제를 팀원들과 나눠서 해야만 하는 팀플을 하다보면, 모두에게 공평한 양의 일을 분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대개는 한두 사람이 거의 모든 일을 하게 된다) 농담이다. 대학생들이 이 농담에 마냥 웃지 못하는 것은, 많은 이가 이 농담의 실제 희생양이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쩐 일인지 팀플을 시작하기 전에는 의욕이 넘쳤던 팀원들이 팀플만 시작하면 급한 일이 생기기 시작하며, 몸이 아프다는 연락이 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황당했던 기억은 키우던 새가 죽어 참석을 못하겠다는 이야기 아니었나 싶다. (그 슬픈 심정은 백번 이해하겠다만, 그것이 왜 팀플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팀플 장소에 도착하지만, 팀플이 끝날 때까지 나 혼자만 남아 있는 슬픈 사례도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가장 최근 (수료증을 안 받으면 그만이라며) 내게 일을 떠넘기고 도망친 대외활동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아마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끝이 없을 테니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공산주의는 터무니없는 이상에 불과하다. 개인에게 욕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감정이 있는 이상 다른 이와 무언가를 평등하게 소유(분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재물이 있다하더라도 그 이상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을 욕망하기 마련이기에, 모든 이가 공평하게 일하고 공평하게 나눠 갖는 공산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된다. 『민촌』, 『홍수』의 인물들이 간절히 바랐던 공동체적 삶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소망한 공동체적 삶은 언뜻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지만,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일 뿐이다.

 

두 소설은 공통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안타까운 농촌의 현실을 말하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평등한 삶’을 제시한다. 이들이 말하는 평등한 삶이란 부자만 부를 축적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만큼 부를 얻을 수 있는 (부자와) 가난이 없는 사회다. 두 소설은 이런 사회가 존재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인물의 대사로 밝히며 이것을 꾸준히 긍정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사회는 홍수의 결말부에 비로소 구체화되어 나타나는데 (민촌의 경우 이 같은 이상사회는 간접적으로 언급될 뿐이며, 이 작품은 이보다 농촌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을 유일의 지식인 건성이 홍수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마을에 구성한 ‘조합’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도와주며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고, 이 힘을 계속해서 사용하기 위해 홍수가 끝나고도 조합을 유지하도록 결정한다. 작품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고, 팔고 나누는 이들 조합은 ‘홍수’와 같이 거대한 힘을 얻게 되었다고 소설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고 있다. 즉 두 소설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이상적 사회란 결국 모든 생산 활동을 함께 하고 분배마저 함께 하는 공산주의 사회였던 셈이다.

 

하지만 작품이 추구한 이 같은 이상적 사회와는 별개로, 과연 이 같은 이상적 사회가 실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홍수의 결말부에 이들은 똘똘 뭉치는데 성공했다고 언급을 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불투명해 보이는 것이다. 작품 내부에 등장한 인물의 면면이 공동체 실현의 불가능성을 이미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민촌을 보자. 민촌의 박주사 아들은 상당한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돈에 집착하는 모습(욕망)을 보인다. 이미 첩을 두고도 점순을 새로운 첩으로 맞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욕망에 한계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 그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당장 먹고 살 것에만 관심이 있어 별다른 욕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 역시 어느 정도의 분배를 받고 나면 자신의 소유물을 갖는 것에 조금 더 집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음은 홍수의 인물이다. 홍수는 민촌에 비해 비교적 여러 인물이 공동체 와해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소설 초반 광성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관리에게 잘 보여 논마지기를 얻으려 한 것은, 민촌의 박주사 아들과 같이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할 것은 마을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내에서 유일하게 공부를 한 건성에 대해서는 존중을 보내고 있는 것에 비해, 서로에 대해서는 (건성에게 보내는 것만큼의) 존중을 보내고 있지 않다. 치백은 건성에게 상담하기 전까지 완득을 머슴이라며 마땅치 않아 하지만, 건성이 치백을 설득하고서야 비로소 완득을 사위로서 인정하는 것이 그 예다. 만약 건성이 그를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를 그의 사윗감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았을 때 마을 사람들이 교화가 된 것은 실상 건성이라는 인물의 리더쉽에 의한 결과임을 가정해볼 수 있다. 그들이 공동체를 받아들인 건 실상 모두가 진정으로 공동체를 꿈꿨다기보다 건성이라는 인물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가정이 성립한다면 소설 말미에 건성이 붙잡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마을의 공동체는 결국 와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홍수의 결말부에 결국 (두 소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조합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공동체는 필자의 가정과 달리 와해되지 않고 계속된 모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이야기가 쉽사리 믿기지 않는 것은, 이미 소설 곳곳에 이 같은 공동체가 설립될 수 없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공동체가 이룩해내는데 성공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주장은, 작가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개연성 없는 결말 아닐까. 과연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게 공산주의의 추구였는지, 그가 정말 공산주의가 정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작가가 팀플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나름 학교에 오래 다닌 학생으로서 감히 예상하자면, 그는 절대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w******m 2017.04.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