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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포스터는 이 책은 앞서 나온 그의 책 {뉴미디어의 철학}(민음사)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포스터는 그가 정보양식(mode of information)이라고 부른 상황을 단순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을 설명하고 또한 그로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이를 위해 먼저 우리가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에 대한 자신의 문제설정을 제시한다. 즉 미디어를 통한 주체 구성 과정 이해는, 주체와 사회의 내적 메커니즘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테크놀로지를 '탈인간화'로 묘사한다던가 아니면 주체 구성 과정에 대한 분석이 주체의 행위를 기술적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는 아님을 분명히 해 두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주장하는 바를 질문의 형식으로 바꿔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는가? 또는 알튀세르가 말한 이데올로기적 호명의 메커니즘을 인터넷 시대에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는 어떤 결론에 이르렀을까? 물론 결론은 없고 단지 또 하나의 질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바뀔 것은 분명하다. 포스터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가상 공간 속에서 근대의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자기 구성적 주체―독자, (도시)시민, 사적 개인―로서의 우리는 데이터 베이스 속에서 분류되고 범주화되는 복합적 정체성을 가진 주체로 변형되는 새로운 공적 공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없이 단순히 통제와 감시의 증가만이 있을 것인가?
마크 포스터가 이러한 질문을 감히 던지는 까닭은 그가 인터넷을 통해 번식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의 어떤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인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해 그리 수용적이지 않았다. 테크노크라트에 의한 통제와 관리의 이미지가 강하게 대두되었고, 그로부터 기술로 인한 인간 소외문제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기술로 인한 생활의 편리라는 측면에서 단지 부분적으로만 긍정했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마크 포스터의 기술에 대한 태도는 약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술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한 새로운 사회성의 상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힘보다는 그것이 다르게 쓰일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포스터의 이러한 주장은 그것이 기술전문가나 정책결정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서구 지성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의 시선을 통해 조감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자원이 무엇일까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포스터는 마르크스와 푸코를 비교 연구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지적 궤적은 독일전통의 비판이론과 프랑스의 구조주의 및 포스트구조주의 양자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의사소통의 이론가 하버마스와 데리다 또는 보드리야르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이론과 자원들을 비판적으로 전유하고 그로부터 그/녀들이 보지 못했던 관점을 정립하는 것밖에 뭐가 있겠는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는 법이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말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 바로 하버마스이다. 하버마스는 일찍이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19세기 부르주아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에 주목한 바 있을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과 사회 진화}로부터 진행되는 연구를 통해 '이상적 담화 상황'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포스터의 하버마스 평가는 약간은 잔인할 정도다. 그에게 하버마스는 문화적 또는 상징적 상호작용을 소통행위로만 한정시키고, 이에 대해 '이상적 담화 상황'이라는 권위주의적인 조건을 설정함으로써 다시금 계몽적 보편의 형식으로 복귀하자는 보수적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한 포스터의 표현이 걸작이다. "진실해야 한다는 압력은 진리를 생산하기 위한 필수요소가 못 된다"(p. 163).
이에 반해, 포스트 구조주의적인 관점은 주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하는 역할―사회적 교환의 과정, 매개체(여기서는 언어, 전자 매체)를 통한 주체 구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의 맥락 의존성이나 주체의 역사성, 우연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이론으로 자리매김된다. 특히 의미의 사회적 교환이라는 영역을 분석한 보드리야르의 경우가 중요한데, 왜냐하면 보드리야르는 사회적 의미의 생산에서 기호들의 중요성을 사회 이론의 영역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포스터가 보기에 보드리야르는 상징교환에서 코드의 힘을 일방향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주체에 의한 의미 생산의 가능성을 거의 무시해버렸다.
보드리야르는 코드의 지배에 대한 대중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저항에 대해 거의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마크 포스터가 제기하는 것은, 비판 사회 이론이 생산양식의 경계를 넘어서 문화와 테크놀리지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보편적 혁명 주체의 문제설정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언어와 매개체를 통한 주체 구성 과정을 해명해야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해 가는 사회 상황에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이 제기하는 문제들―고착된 경계의 제거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대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와 새로운 매체에 대한 포스터의 강조를 그 자체로 완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는 가상공간에서의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몽의 담론이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고유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만들고 나서야 외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개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전자적으로 매개된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은 새로운 문제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어떠한 위치나 맥락 의존적인 주체성을 우리가 인정하자마자―주체 구성이 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면―해방의 과정은 주어진 질서 너머의 절대적 보편에 의존할 수 없게 된다.
해방적 주체 구성이나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사고함에 있어서 포스터의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전자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주체가 구성되는 방식이 전혀 새로운 대상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 [인상깊은구절] "진실해야 한다는 압력은 진리를 생산하기 위한 필수요소가 못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