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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프랑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고,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심리학자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널리 알려 졌습니다. 그런 그가 아흔 살이 되던 해에 쓴 회상록으로 마치 그의 일기를 보는 것 같은 책입니다. 제목 또한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이니 그의 개인적인 삶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습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린 시절, 정신과 의사 시절, 수용소 시절, 전후 활동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가 하일라이트인 것 같습니다. 3년 동안 나는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수용소와 튀르크하임 수용소를 전전했으며. 그리고 살아남은 그는 여동생을 제외한 가족들의 운명은 “신은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죽음을 주었다.”는 릴케의 표현으로 대신하면서 가족의 죽음조차 문학적으로 표현했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고 매일 한 컵씩 배급되는 물의 반을 아껴 세수를 하고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한 일화는 저자 빅토르 프랑클에 대해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끝난다면 그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 의사로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고민한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세 가지 가치와 가능성, 즉 우리가 하는 행동, 우리가 하는 일, 그리고 경험, 만남, 사랑과 근본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란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짧지만 무거운 뜻을 담고 있는 문장이 로고테라피를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도 가장 큰 일을 할 때처럼 철저하게 하고, 가장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할 때처럼 편안하게 한다는 그의 원칙은 큰 울림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의 저서 <인간의 의미 추구>(국내에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를 읽고 쓴 "프랑클은 자신의 삶을 글로 쓰는 사람이며, 그 글처럼 사는 사람이다. (p. 167)"라는 한 죄수의 서평처럼 가장 암울한 20세기 유럽의 한 복판에서 살다간 빅토르 프랑클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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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고 나는 이분의 팬이 되었다. 이미 돌아가신 고인이라 안타깝게도 만나볼 수는 없지만, 그분의 책을 통해서 그분의 생각들을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삶에 대해서 나는 정말로 궁금한 것이 많다.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나조차도 관점이 서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이분의 '로고테라피'에 관해 궁금증이 생기고 정말로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에 이분의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된다. 이 책은 책 제목처럼 빅터 플랑클이 많은 책을 썼지만 90세 때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자서전같이 쓴 글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사생활까지 알고 싶은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3년 반을 보내면서 생사에 갈림길에 여러 번 서게 된 빅터 플랑클이 느낀 삶이란 무엇일까? 이미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여러 번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외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졌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맞는 것일까? 나 좀 알아야겠다. 내가 좀 정의를 내리고 이거야!!!!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천지차이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하게 된다면 사춘기도 없어질 것이고, 또 살면서 고난과 힘듦도 잘 극복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먼저 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삶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동양고전에서도 그렇고 성경에서도 삶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삶에 대한 욕심이 많기 때문에 내가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질문이 많은 것 만큼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행복한 고민이다. 뭔가를 고민하고 갈구하는 게 있다는 것이 참 좋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탈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영혼을 구원한 사람은 오 세상을 구원한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열다섯 혹은 열여섯 살 무렵에 이 모임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발표를 했다. 당신 나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사유를 전개시켰다. 그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물어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대답을 해야 한다. 우리 존재를 스스로 책임질 때 우리는 이런 삶의 문제에 대해 답을 할 수가 있다. 또 다른 사유는 삶의 최종적인 의미는 우리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한마디로 초월적인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월적인 의미만 믿을 수 있고, 또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설령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항상 초월적인 의미를 믿고 있다. 아마도 같은 시기, 같은 해였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햇빛이 쏟아지는 어느 오후에 항상 산보를 다니던 타보르슈트라세의 그 자리에서 나는 나 자신을 대면했다. 그리고 내가 높이 평가하는 명언을 가만히 곱씹었다. 운명을 축복하기를! 운명의 의미를 믿기를! 거듭 말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어떤 궁극적인 의미, 다시 말해 초월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인간은 그 초월적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그저 믿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모르파티,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나는 이미 1929년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세 가지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구상했다. 그 세 가지 가능성은 바로 우리가 하는 행동, 우리가 하는 일, 그리고 경험, 만남,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설령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대결한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 즉 인간의 고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다. 내가 책 제목을 "... 그리고 바보는 진실을 이야기한다"라고 구상했던 것은 심리치료 속의 심리주의와 싸우면서, 아픈 것이 절대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 이것을 로고 이론이라고 부르곤 한다. 로고테라피는 모든 것을 병리학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주장과 맞서 싸울 것을 선포한다. 혹여 책 제목을 다르게 붙인다면 앞에서 밝힌, "편집증 환자가 주장했더라도 2x2=4이다!라고 할 것이다. "인간이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해 매우 고통스러운 시련에 부닥치는 건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마치 뭔가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내게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마치 뭔가가 결정되어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 그렇게 솔직한 마음을 쏟아내자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순간에 선량한 폴락만큼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늙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없다. 그런 까닭에 '나이가 드는 만큼 성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늙는 것이 전혀 대수롭지 않다.'라고 말하곤 한다. 2주 전에 쓴 원고가 2주 뒤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를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글이 좋아지는지는 거의 분별할 수 없다. 결국 늙는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의 측면이다. 하지만 이 덧없음이 근본적으로 삶을 책임지게 하는 유일하게 큰 자극제이다.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임감에 대한 인식. 그렇기 때문에 로고테라피 치료의 원칙은 인간 개개인의 자전적 관점과 관련짓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나는 이 원칙을 어느 날 꿈속에서 생각하다가 잠에서 깬 뒤 급하게 글로 옮겨 적어서 저서 <의료 성직자>를 통해 발표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라. 첫 번째 인생을 잘못해서 모두 망쳤는데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도 지난번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라. 실제로 책임감은 그런 가상의 자서전을 거쳐 진짜 자신의 삶으로 옮겨가게 된다.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뒤에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바탕으로 정신의학의 셋째 사상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 심리치료 이론을 발표했다. 로고테라피는 '로고스'와 '테라피'를 합한 용어인데, 로고스는 '이성' '의미'를 뜻한다. 따라서 로고테라피는 우리말로 '의미 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자아가 무너진 사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쾌락 의지'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권력의지'를 제시하는데 반해, 프랑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로고테라피는 고통에 처함 사람에게 앞날에 그 고통 자체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치료법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조차 인간에게는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생생한 증언은 일상에 젖어 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찾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정신없이, 치열하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 깊은 상실감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은 로고테라피의 관점에서 보면 생물학적 요인이나 사회적인 요인보다는 결국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실존적인 공허'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지닌 의의는 위대한 한 인간의 인생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아무 의미도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이란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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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미도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이란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 빅토르 프랑클
어떤 삶이 의미있는 삶인가? 그리고 누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빅토르 프랑크는 우리 모두의 삶이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그런 삶을 산다고 이야기한다. 놀랍도록 강력한 메시지다. 이것을 정말로 깨닫는 사람은 앞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주 중요하다. 프랑클은 이런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다. 자기 자신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이 책을 통해서 새삼 알게 되었다. 그의 삶의 태도는 그처럼 삶의 어려운 국면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자기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이 잘 살아보자고 격려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것을 '구원의 권력'이라는 말로 표현했다.(p.76) 그리고 <탈무드>의 한 구절 '한 영혼을 구원한 사람은 온 세상을 구원한 것과 마찬가지다.'을 인용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권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각났다. 남들보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 몸도 약하고 여러 상황이 안 좋지만 잘 살아보려고 하는 후배가 있다. 어렵게 발버둥쳐 보지만 가끔씩 낙담하는 걔를 볼 때마다 어떻게 해 줘야 할 지 몰라서 안타까웠는데 프랑클의 책이 그에게 나의 백마디 말보다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일화가 한 가지있다. 어느 날 새벽 막 자살결심을 한 여자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물론 프랑클은 자살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그 여자는 그 결심을 접고 다음 날 아침에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오늘 새벽에 내가 박사님의 얘기를 듣고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단잠을 깨웠는데도 박사님이 화를 내거나 투덜거리지 않고 삼십 분동안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조언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
프랑클은 수용소에서 나온 이후로 끊임없이 강제수용소에 있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생은 정말 의미있고 값진 것이며 하나도 우연히 된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의 다른 책들을 계속해서 읽으며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배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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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프랑클의 책은 이전부터 읽으려고 했으나 결국 이번에 새로 나온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가 결국 내가 읽은 그의 첫 책이 되었다. 첫장부터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듯한 내용들이 나에게 충격이 되었다. '아버지는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돌아가셨다'는 이 한마디가 왠지 둔탁한 무엇인가에 얻어맞은 듯한 그런 아픔을 나에게 주었다. 유난히 부모님과 강한 애착 관계를 가졌다는 프랑클, 그는 부모님을 모두 수용소에서 잃었다. 그 이후에도 그의 인생은 계속되었다.
이 책은 아주 간결한 문체와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아직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론 - 로고테라피- 와 그가 수용소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만한 충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나에게도 그랬다.
모든 인생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따라서 지금 당하는 고통도 그냥 무의미적인,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이것을 알면 분명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원치 않아도 계속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무조건 회피하려고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여러 사건들과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의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프랑클은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렇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갈등하고 있었을 때 그는 하늘의 계시를 바랬다. 그 날 집에 왔더니 탁자에 놓인 작은 대리석 조각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그 날 불탄 유대교 회당에서 주어온 율법을 기록한 석판 조각인데 십계명 중 한 계명의 머리글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였다. 정말 전율이 흐르게 하는 내용이다. 프랑클은 그 말을 듣고 부모님과 함께 '그 땅'에 머물렀고, 그의 부모님을 그 땅에서 잃었다.
어떤 인생도 의미없는 인생이 없고, 그냥 우연의 연속이 아님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 뭔가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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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아우슈비츠 비극의 산증인이자 독자적인 심리치료법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인 빅토르 프랑클의 90세 되던 해에 출간한 회고록이다. 저자가 유명한 정신과 의사의 자사전이기에 상당히 심오하고 오묘한 내용들이 있을거란 생각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듯 싶지만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정신 분석학에 대한 내용보다는 빈에 지낸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 제 1차 세계 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신경과 의사로서 활동했던 일들,제3 빈 학파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를 창안하게 된 과정,그리고 악몽같았던 3년 동안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체험 및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으면서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사건들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간략하면서 압축해서 써서 그런지 90세의 저명한 정신 분석학자의 회고록 치고는 200페이지 안쪽이어서 상당히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이야가들은 뭐 저자의 일반적인 삶과 일에 대해서 다룬것이기에 별반 커다란 느낌은 없었지만 강제 수용소에서의 삶에 대한 글을 읽으면 가슴 한편이 아려한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나치 치하의 강제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아버지를, 형을, 아내 틸리를 모두 잃었다.그는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가족없이 혼자 미국으로 갈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강제 수용소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호흡곤란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께 숨겨논 모르핀을 투약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편안케 하는 마음의 고난도 겪었다.그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탈리의 소식도 남녀도 분리된 수용소에 갇히면서 생사를 알지 못하다가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빈으로 돌아온 첫날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밤마다 아내의 간을 누군가 파먹는 꿈을 꿨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시련의 시간을 보낸다. 사실 빅토르 프랑클이 겪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불행은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을것이 틀림없다.실제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많은 이들의 그 당시 고통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은 지탱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는 잃어버린 책의 초고를 다시 써야겠다는 의지 덕분에 그런 고통어린 삶을 견딜수 있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강제수용소는 내가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시험대였다”말을 했는데 요즘처럼 삶이 힘들고 각박하다고 스스로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도록 권해본다. 아무리 현재의 삶이 힘들지라도 과연 강제 수용소의 죽음의 행렬속에서 사라남은 저자 보다도 힘들었는지,그리고 그 저자는 그 과거의 고통을 과거속에 묻으며 낙관을 갖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아마 새로운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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