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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영화들을 좋아한다. 영화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에 불행을 가져다준 과거의 어떤 결정적인 사건으로 시점으로 돌아간다. 그는 그 부분만 바꾸면, 오랜 기간 자신이 겪었던 불행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눈앞에서 바로 그 사건이 펼쳐진다. 이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되지만, 이상하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연을 가장한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그 사건이 그냥 일어나도록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운명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과거는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철학적인 주제보다 내가 타임슬립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 인생을 바꾼 끔찍한 사건인데, 그 시점으로 가서 다시 그 사건을 바라보니 그냥 꿈속의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때는 감독 특유의 솜씨로 몽환적이고 모호한 아름다움을 가진 장면으로 비치기도 한다.
[커먼웰스]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 영화는 타입슬립과 관련된 소설은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가족 소설이나 성장 소설, 자전적 소설 정도가 될 것이다. 경찰관인 픽스는 아름다운 아내인 베벨리와 살고 있다. 두 딸인 캐롤라인과 프래리 라는 두 딸을 키운다. 지방 검사보인 버트는 테레사라는 아내와 함께 캘, 앨비, 홀리, 저넷이라는 네 남매를 키우며 산다. 그런데 어느 날 버트가 우연히 픽스의 파티에 갔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픽스의 아내 베벌리와 키스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한 번의 키스가 두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 막장 드라마의 장면들을 떠오릴 것이다. 둘 다 가정이 있는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고, 각각 배우자에게 들켜서 물건을 때려 부수는 싸움을 하고, 여자들끼리 만나서 머리를 잡고 싸우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소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이런 시끄럽고 끔찍하고 지저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묘한 분위기로 회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두 가정이 베벨리와 버트의 키스 이후 파탄이 난 후 50년 후의 상황에서 진행이 된다. 픽스는 암에 걸려 죽어가는 상황이었고, 픽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프래리의 시각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소설의 처음은 프래리의 세례 파티 때 초대받지도 않은 버트가 방문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왁자지껄한 파티 분위기가 묘사되고, 그 분위기 속에 진을 들고 생뚱맞게 서 있는 버트가 묘사된다.
"앨버트 커즌스(버트)가 진을 들고 나타나면서 세례파티의 분위기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픽스는 미소 띤 얼굴로 문을 열고,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앞쪽 포치의 시멘트 바닥에 서 있는 사람은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는 앨버트 커즌스였다. 픽스는 지난 삼십 분 동안 문을 족히 스무 번은 열어주었는데 커즌스는 그를 놀라게 한 유일한 존재였다." (P 9)
버트는 픽스와는 업무상으로 경찰서에서 몇 번 스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 파티에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료 한 사람뿐이었다. 그 동료가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픽스의 파티에 갈 거냐고 물은 것이 전부였다. 주 중에 온갖 복잡한 사건에 시달리고 주말에는 임신한 아내와 세 명의 아이가 북적이는 전쟁통 같은 집을 벗어나기 위해 버트는 파티를 떠올리고 방문한다. 그냥 가기 멋쩍어 세례 파티에는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는 진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세례 파티는 술 파티로 바뀌고, 술 파티에 오렌지가 섞이고, 분위기는 금세 이상한 분위기로 바뀐다. 그리고 그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버트와 비벌리는 키스를 한다. 6명의 아이들과 두 병의 배우자, 그리고 본인들의 인생을 끔찍하게 바꾸어 버릴 이 사건을 저자는 이렇게 매우 모호한 분위기로 묘사한다.
"아름다움의 발명지가 되어온 이 도시에서 그녀는 아마도 그가 대화를 나눠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을 것이고, 단연코 부엌에서 옆에 서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핵심은 그녀의 아름다움이었고, 그 사실은 분명했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이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오렌지를 하나씩 건넬 때마다 그들이 손가락 사이에 작은 전류가 흘렀던 것이다. 그는 매번 그것을 느꼈고, 그 찌릿한 불꽃은 오렌지 자체만큼이나 생생했다." (P 30)
어쩌면 당사자들이나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회상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때 버트가 집에 오지만 않았어도, 그가 진을 가지고 오지만 않았어도, 진에 오렌지를 넣지만 않았어도, 둘이 같이 오렌지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둘이 닫힌 공간에 있지 않았어도... 이런 상상을 수없이 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 아픈 과거를 매우 아름다운 색깔로 묘사하고 있다.
6명의 자녀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두 가정은 이혼을 하고 비벌리는 두 자녀들을 데리고 버트와 함께 버지니아로 가서 산다. 그리고 버트의 전 아내인 테레사는 4명의 자녀들을 키우다가 여름이면 그 네 명의 자녀들을 버트에게 보낸다. 결국 6명의 자녀는 여름이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8명의 식구의 여름 날들을 저자는 묘한 분위기로 묘사한다. 8명이 시장통과같이 북적이면서 보내던 여름 어느 날 버트가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날 8명은 왜건에 끼어 타서 호숫가의 모텔에 도착한다. 그러나 정작 버트와 비벌리는 다음날 점심까지 잠을 자고, 아이들끼리만 남자 6명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호수로 여행을 간다. 캐롤라인이 아빠에게 배운 옷걸이로 차 문을 여는 기술로 버트의 차를 열고, 아이들은 거기서 총과 술을 꺼내서 호수로 간다. 호수로 가는 무더운 길을 걸으며 캘은 자신이 챙겨온 알레르기 약을 나눠주고, 아이들은 알레르기 약을 술이나 콜라와 함께 먹는다. 다른 가정의 6명의 아이들, 낯선 호수길, 총, 알레르기 약, 진과 콜라. 이런 단어들과 묘사들이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뜨거운 오전 태양 아래 베나들릴 네 알과 크게 꿀꺽한 진 한 모금만큼의 잠을 자게 될 앨비 옆에 그들이 마신 캔을 내려놓았다. 캘은 홀리와 새 여동생들에게서 나머지 약을 받아 비닐봉지에 넣고, 그걸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초코바가 녹기 시작했고 총은 햇볕을 받아 뜨거웠다. 그들은 그것들을 전부 다시 종이 봉지에 넣고 호수로 향했다. 호수에 도착했을 때 그들 다섯은 부모와 함께 왔다면 허락받았을 만큼보다 더 멀리까지 헤엄쳤다. 프래니와 저넷은 동굴을 찾으러 갔다가 해안 작은 숲에서 서로 뚝 떨어져 있던 두 남자에게 낚시하는 법을 배웠다. 캘은 미끼 파는 가게에서 호호스 과자 한 봉지를 훔쳤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종이봉지에 든 총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P 122)
이 여름날의 경험 뒤에 프래리의 시각에서 이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 여름 내내 그런 식이었다. 그들 여섯이 함께한 매년 여름이 그런 식이었다. 그 나날이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이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진짜 뭔가를 하고도 결코 들키지 않았다." (P 123)
어떻게 이런 묘한 시선으로 폭풍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끔찍한 시절들을 묘사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소설의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으면서 조금 풀렸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이고, 작가인 앤 패칫 역시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 속의 이야기의 화자인 프래리가 바로 앤 패칫의 또 다른 자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한 시절을 작가 역시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경험했을 것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는데 한참을 애를 먹었다. 과연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 분위기를 어떤 단어나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모호하면서도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한 과거의 묘사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자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인생을 후회나 원망이 아닌, 그렇다고 긍정적인 시선도 아닌, 참으로 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던 과거도 돌이켜 보면 마치 꿈을 기억하듯 모호하고 담담하며, 어떤 때는 아름답기까지 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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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세례파티에 참석한 버트와 세례파티 주인공인 프래니의 엄마 베벌리의 단 한 번의 키스로 두 가족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버트와 베벌리의 재혼으로 버트의 4명의 아이들과 베벌리의 2명의 아이들은 여름방학 동안에 함께 지내게 된다. 버트의 큰아들인 캘이 죽은 이후에 가족들은 서로에게 소원해지며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마음 한켠에는 캘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 같은 죄책감을 갖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내며 놀 때 자신들에게 짐이 되는 막내 앨비를 재우기 위해 약을 먹였는데 그 약이? 사실은 캘에게 꼭 필요했던 약이었다. 캘에게는 벌에 쏘이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치명적인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 캘이 벌에 쏘였다는 걸 몰랐던 아이들은 캘이 장난치는 줄 알고 캘을 그대로 두고 다른 곳에서 캘이 올때까지 기다렸지만 캘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상황에 약이 없어서 결국 죽게되었다. 그래서 나머지 아이들이 캘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고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른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은 그 당시에 너무 어렸었다.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고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혼을 많이 하니 이혼 후 재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고 또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은 이 소설을 읽고난 후에도 아직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가족들이 조금씩 다시 연락하고 만나고 어렸을 때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서로를 더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술이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효과를 발휘하였고 실제로 작가도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의붓남매들과 생활을 했었다는데 그것이 이 소설을 쓰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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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커즌스가 진을 들고 나타나면서 세례 파티의 분위기는 딴판으로 달라졌다.> 주황색 상큼한 오렌지가 가득한 표지와는 다르게 가슴 아픈 서사가 담겨 있다. 서로 다른 가족이었던 여섯 아이는 어느 날 부모의 잘못된 행동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살게 된다. 한 번의 키스로 네 명의 부모와 여섯 아이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어른들의 실수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 아이들. 그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는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캘리포니아에서 버지니아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배경 속에서 그려지는 가족의 이야기는 먹먹함을 느끼게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저마다 마음속에 죄책감을 품고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저 한없이 안아주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프래니의 세례 파티에서 벌어진 비극의 시작은 이들에게 후회의 시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파티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인생은 평화로웠을까. 앨버트의 손에 술이 없었다면, 아니 애초에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들의 가정은 지켜질 수 있었을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인생에서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십여 년에 걸친 이들의 이야기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가족이라는 끈에 얽혀 위태롭게 매여있는 이들의 관계는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에 후회와 죄책감이 더해져 정처 없이 흔들리는 인생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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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를 읽고 앤 패칫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이렇게 좋은 작가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냐는 한탄 섞인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부지런히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앤 패칫의 소설과 산문집을 구해지는 대로 읽고 있는데, 그의 소설로는 처음 읽은 <커먼웰스>가 역시나 너무 좋았다. <커먼웰스>는 2016년에 출간된 자전 소설인데, 먼저 읽은 작가의 산문집 두 권(다른 하나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통해 작가의 개인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물론 소설은 소설일 뿐 실제 사연과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겠지만. 소설은 196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시작된다. 지방검사보인 앨버트 커즌스는 일 때문에 알고 지내는 지방경찰청 형사 픽스 키팅의 둘째딸의 세례 파티에 초대된다.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건너뛸 생각이었지만, 주말에 집에서 아내와 아이 넷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더 커져서 충동적으로 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앨버트는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 여자를 만나는데 바로 픽스의 아내 베벌리이다. 둘은 그 자리에서 사랑에 빠졌고 몇 년 후 각자의 배우자와 이혼한다. 앨버트는 베벌리와 재혼하면서 베벌리의 두 딸 캐롤라인과 프랜시스를 맡는다. 정작 자신의 혈육인 네 아이(캘, 홀리, 저넷, 앨)는 양육권이 아내한테 넘어가 1년에 4주만 만날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자전' 소설인 이 소설에서 작가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는 다름 아닌 세례 파티의 주인공, 픽스와 베벌리의 둘째딸 프랜시스이다. 나라면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고 새아빠와 재혼했다면, 새아빠의 아이 넷과 여름을 보내야 한다면, 좋은 감정보다 싫은 감정이 더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프랜시스는 그렇지 않다. 앨버트의 첫 번째 부인이나 친자식들한테 앨버트는 결코 좋은 남편, 아빠가 아니었지만 프랜시스에게는 새아빠로서 부족함이 없었고 어떤 면에선 친아빠보다 나았다. 엄마의 재혼으로 만나게 된 형제 자매들 역시 어릴 때는 친구처럼 편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피가 섞인 가족만큼(때로는 더) 의지가 되었다. (물론 이는 프랜시스만의 생각이고 언니인 캐롤라인은 달랐다는 점에서(새아빠 싫어함) 개인차는 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가족 소설인 동시에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소녀가 한 명의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프랜시스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는다. 글을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작가가 되는 건 한정된 소수에게만 허락된 일이기에 그 무게와 책임감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프랜시스는 힘들게 배운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오랫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비슷한 일을 경험했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을 넣은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자신의 개인사, 그것도 결코 좋게만은 볼 수 없는 (친모와 의부의 불륜) 이야기를 꺼낸 작가의 심경을 더욱 정확히 받아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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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commonwealth 서평 -우연히 찾아간 파티, 두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단 한 번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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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미소설로 커먼웰스는 미국의 켄터키,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네 개 주를 통칭하는 단어라고 하는데, 이 책의 전개 중에 등장하는 소설의 이름이기도 했다. 어느 두 가족에게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전혀 관련 없는 두 가족이었지만 이 가족들이 어떻게 관련이 생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가족들이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잔잔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의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일단 파티에서의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줄거리를 보지 않고 읽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파티에서의 장면이 반전의 요소처럼 느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줄거리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갑자기(?)라는 생각이 드는 충격적인 전개로 다가왔다. 막장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요소였다. 그래서 더 그 뒤의 전개가 궁금해졌던 책이기도 했다. 프래니가 스토리의 핵심적인 주인공이었지만, 처음부분에서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던 부모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긴 스토리에서 하고 있는 내용은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갔는가이다.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나이와는 관계없이 다가온다. 이 책에서처럼 어느 한 사람의 선택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은 이들이 가족이라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가족이라는 관계가 참 중요함을 알 수 있었고,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있어서인지 이 책에서의 내용에 몰입되는 것도 있었고, 느끼는 점들이 많았던 것 같다.
(44p)
(123p) 인생은 한순간 한순간 어떤 작은 변수에 의해서도 바뀌고 또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게 된 부분 같다. 프래니라는 인물은 점점 성장했고,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일들을 겪게 되고,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다시 보게 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 그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던 책 ‘커먼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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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픽스와 베벌리 키팅 부부는 둘째 딸 프래니의 세례파티를 연다. 이웃, 친구, 교회사람들, 베벌리의 여동생, 자신의 형제들, 부모들, 관할구 전체라 해도 될 만큼의 경찰들이 모였다. 픽스는 경찰이었다. 그 중에 진을 들고 나타난 초대 받지 않은 남자 앨버트 커즌스가 있었다. 커즌스는 지방검찰청에 근무하고 있다. 이 표지에 나오는 상큼한 오렌지와 버트가 가져온 진과 섞어 술을 만들어 마신다.
버트는 부인 테리사가 아이스바 틀에 오렌지주스를 넣고 얼려 만든 아이스바를 먹었고 저녁에는 얼음을 넣은 오렌지주스에 보드카나 버번, 진을 따라 마셨다고 하니 파티에 온 사람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파티가 무르 익어갈 무렵, 모두가 취한 저녁 버트가 베벌리에게 키스를 한다.
한 번의 키스가 네명의 부부와 여섯 아이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버튼 키즌스와 베벌리 키팅은 각자의 배우자와 이혼을 하고 결혼을 해 버지나아로 떠났다. 커즌스의 아이들과 키팅의 아이들은 버지니아에서 매년 여름을 함께 보낸다. 서로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일일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처럼 보였다. 이들은 무엇보다 부모에 대한 환멸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면서 묘하지만 진정한 애정을 나누고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여섯 아이가 함께 보낸 “그 나날이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이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진짜인 뭔가를 하고도 결코 들키지 않으며” 자기들끼리의 비밀을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그 여름의 나날은 한순간의 비극적인 사고로 끝이 나고, 남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 한편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모두가 조금씩 죄책감을 품고 있는 그 비극이 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소설은 여러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2장에서는 프래니가 나이를 먹었고 픽스는 암 치료를 받고 있다. 픽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픽스가“버트는? 그 늙은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묻는다. 세 번째 여자가 있었잖아. 베벌리와 헤어졌나? 버트와 헤어진 테리사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지방검찰청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3장에서는 과거 여섯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에서 여름을 보내던 아이들 여섯은 버트의 차안에서 권총을 가지고 모험을 한다. 4장에서는 시카고의 바에서 일하며 소설가 리오 포즌을 만나는 이십대의 프래니를 보여준다.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파머하우스에서 리언 포즌을 만난 이야기를 오래도록 계속하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시카고에서 로스쿨에 다니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바에서 일하는 일은 아예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훗날 자신의 아버지와 버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p131
프래니가 칵테일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작가 리오 포즌을 만나 사귀게 된다. 그것도 서른 두 살이 많은 남자. 그 당시 리오는 소설가로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프래니의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재혼, 여섯 아이가 함께 보냈던 그 사고에 대해 들려준다. 리오는 이야기를 소설 ‘커먼웰스’를 썼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커먼웰스를 읽으면서 오십년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바빴다. 아이들이 여섯이고 주변 인물들의 각자 이야기를 담아서 조금 산만했지만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되었던 소설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소설과 같지는 않지만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커먼웰스의 작가 앤 패칫의 자전적 소설이다. 앤 패칫의 부모가 이혼을 했고 어머니가 자식이 넷 있는 남자와 재혼을 하여, 그녀 또한 어느 날 낯선 가정에 던져졌다. 앤 패칫의 어머니는 이 소설에 대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앤 패칫은 “이 책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하나도 없지만 감정은 아주 흡사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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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책 표지를 보며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저 오렌지 한알이 진 한병이 키스 한번이 만들어낸 불안정함이 전혀 상큼하지 않아서.. 마지막 장을 덮고 차오르는 물기에 어른거리는 오렌지는 이 책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오렌지 잎 .. 이들은 떨어지고 없어져도 이들의 과거는 나무에 남아 새로운 잎을 내고 열매를 맺는다. 과거의 오렌지와 현재의 오렌지는 인과관계에 놓인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부분이다. 인간의 삶도 그런것 같다. 가족, 학교, 직장, 사회, 집단이라는 과거의 나무에 매달려 잎을 내고 열매를 맺지만 매 순간 나무도 잎도 열매도 현재다. 과거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 정말 현재가 미래가 달라질수 있었을까? 내 과거의 나무가 오렌지나무가 아니고 사과 나무였다면 난...달랐을까? 알 수 없는 삶이란 놈은 사과 나무에서도 가끔은 오렌지를 낼지도 모르겠다. 내 스스로 결정하고 자주적인것 처럼 말하지만 여러가지가 어울려 만들어낸 가지가 원래 뻗으려던 쪽에 서서 스스로 결정했어요 하는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너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나 삶이 영원을 의미하지는 않으니 삶을 붙들고 무엇이라도 해야한다. 삶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과 후회들 또 선택들 복잡하고 어지럽지만 그럼에도 우린 살아있고 그러니까 우린 사랑하고 용서해야한다. 그 일을 하는데 평생을 소비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서늘했던 이야기가 따뜻함으로 바뀌고 미소로 바뀌는데 단 한문장이면 충분하다. 이제 그녀는 먼훗날 어느 순간에 오늘밤과 같은 밤이 또 있을 것임을, 그런 밤에 그 이야기를 떠올리겠지만 앨비를 제외하고 이 세상 누구도 그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어떤 것은 그녜 혼자 간직할 필요가 있었다. p418 어떤 순간어 내가 떠올릴 사람이 있고 날 떠올려줄 사람이 있어서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슬펐던, 애처롭던, 황당했던 과거가 지금은 조금 이해되고 따뜻했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걸 보면 말이다. 침대 이불 위 남편 옆에서 반쯤 잠든 채로 프래니는 과거라는 정박지 없이 펼쳐지는 미래의 길은 어떤 것도 그려볼 수 없었다.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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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 웰스 / 앤 패칫 / 문학동네
부모에 대한 환멸이라는 감정을 공유한 두 가족 이야기! 어느 여름, 픽스와 베벌리 키팅 부부는 둘째 딸 프래니의 세례파티를 연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버트가 들고 온 진 한 병을 발단으로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집에서 술을 가져와 마신다. 모두가 얼마간 취한 무렵, 버트가 프래니의 엄마 베벌리에게 키스하면서 네 명의 부모와 여섯 아이의 삶이 흔들리는데...
앤 패칫(Ann Patchett) 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내슈빌에서 자랐다. 세라로런스대학교 졸업.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을 수강했다. 1992년에 발표한 첫 소설 "거짓말쟁이들의 수호성인"이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되었다. 1994년 두번째 소설 "태프트"로 재닛 하이딩거 카프카 상 수상, 1995년에는 구겐하임 기금을 받았다. 2002년에 소설 "벨칸토"로 펜/포크너 상과 오렌지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앤 패칫은 현재 내슈빌에 파르나소스 서점을 열고 지역 서점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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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벨칸토 경이의 땅 # 읽고 나서. 사랑은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일상이 되면서 사랑은 희미해져 간다고 생각했는데, <커먼웰스>를 읽으면서, 희미해지면서 남기고 가는 게 일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시작은 아이 프레니의 돌이다. 더운 날씨 캘리포니아에 여러 손님들이 바글거리고, 그 안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버트도 함께한다. 그리고 우연히 아이를 찾아봐달라는 픽스의 부탁으로, 아이를 어르던 베벌리를 만난 버트는, 무엇에 끌리듯 서로 키스를 나누게 되고, 그 키스를 계기로 두 가정은 찢어지고 만다. 버트와 베벌리가 결합하면서 그들의 아이들도 함께하게 되는데, 어색함과 함께 결국 잘 어울리던 그들은 비극적인 사건 - 캘의 죽음-으로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키스 한 번으로 갑자기 각 가정이 깨져버리게 되고, 귀찮은 막내를 떼어버리기로 한 게 사건으로 이어지고, 벌 한 마리가 죽음을 가져오기도 한다. 시간순이 아니고, 시간 점프가 심해서 갑작스러운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극적이었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100프로 성립하지는 않더라도, 인생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 그렇게 작은 요소 하나하나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발생한 결과, 인생의 방향은 오롯이 자신들의 것이다.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을 살게 되는 것도 결국 그들의 몫이었다. Life goes on. 삶은 계속된다. 각자에게 남긴 상처는 그들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잡아주었고, 누군가는 명상을 하면서, 누군가는 속에 있던 이야기를 존경하는 사람에게 털어놓으면서, 누군가는 그날을 계속 복기하면서 살아간다.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집착하면 할수록 과거는 그대로, 오히려 그들의 미래가 바뀌게 되는 아이러니. 사건에 바로 이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그것들이 각자의 삶에 조금씩 파고들어 미치는 영향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게 재밌었다. 결국 그런 게 삶이고, 일상이고. 사랑이고. *밑줄 정말로 찾고 싶다면 시간을 들여야 해. - 60쪽 그녀는 그의 시간을 존중해 준 적이 없었다. "당신만 빼고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버티는 건 당신뿐이야." - 86쪽 "지금까지 우리 삶에 일어난 모든 일, 우리가 한 모든 일은 정확히 이미 일어난 그대로 일어나야 했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도록." - 104쪽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 있어요?"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보탰을 것이다. "저는 그냥 독자가 되고 싶었어요." - 144쪽 희망은 삶의 피와 같은 것이라고, 픽스는 말했다. - 299쪽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 절대다수의 경우," 픽스가 말했었다. "자기를 죽일 요소는 이미 자기 안에 있어." - 3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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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는 주말에 집에서 세 아이를 보는 게 싫어서 아내 테리사에게 일 때문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한 뒤, 초대받지 않은 세례 파티에 간다. 지역 경찰관인 픽스와 아름다운 베벌리의 둘째 딸 프래니를 위한 자리였다.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버트는 낯선 이들 사이에 모여있기보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오렌지주스를 짜는 베벌리를 도와주며 은밀한 공상에 빠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픽스가 프래니를 누가 데리고 있는지 찾아봐달라는 부탁에 버트는 집을 둘러보다가 여러 아기들이 잠든 방에 있던 베벌리와 마주친다. 묘한 분위기에 빠진 두 사람은 키스를 하게 되고, 그 후 몇 년 뒤 버트와 베벌리는 각자의 남편, 아내와 이혼 후 결혼해서 버지니아로 떠난다.
베벌리와 픽스의 딸 캐럴라인과 프래니는 엄마를 따라 버지니아에서 살게 됐고, 버트와 테리사의 자식들인 캘, 홀리, 저넷, 앨비 역시 엄마와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남는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따로 사는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라 반대편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돌아오곤 한다. 각기 다른 학교 일정 때문에 버트와 베벌리의 집에서 여름 얼마 동안 함께 지내게 되는 여섯 아이는 그렇게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관계로 서로 어울리지만, 어느 여름날의 사건으로 아이들은 부모들이 모를 비밀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다.
그들 여섯이 함께한 매년 여름이 그런 식이었다. 그 나날이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이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진짜인 뭔가를 하고도 결코 들키지 않았다. p.123
버트와 테리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픽스와 베벌리의 나름 행복했던 가정은 두 사람의 키스로 인해 완전히 깨지고 말았는데,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없긴 했다. 캐럴라인과 프래니가 엄마가 아닌 아빠와 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알아서 잘했고, 네 명이나 되는 테리사의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나름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여름방학 동안 한 집에서 지내며 어울리면서 어른들에게 절대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 생겼다. 당시 여섯 살로 제일 어렸던 앨비가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자, 알레르기 약을 늘 가지고 다니던 캘이 막냇동생에게 약과 진을 먹게 해 재워두고 다섯 아이들만 노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후로도 종종 앨비가 귀찮게 하면 캘이 늘 약을 줘서 동생을 재워버렸다.
여섯 아이의 어린 시절인 과거 시점과 성인이 된 프래니와 앨비, 그리고 가끔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현재가 등장했다. 로스쿨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바에서 일하다 좋아하는 노년의 작가 리오를 만나 함께 살게 된 프래니와 10대 때 학교에 불을 지른 사건 이후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떠돌아다니던 앨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후반에는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픽스를 보러 간 캐럴라인과 프래니, 혼자 사는 테리사가 아파서 보러 가는 픽스와 딸들, 엄마의 두 번째 남편 버트를 만난 프래니의 모습 등도 이어졌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이기에 보채는 앨비가 약을 먹도록 한 것이었고, 그 사건이 불러일으킬 끔찍한 사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두려운 마음에 피하려고만 해서 부모들에게도 절대 말하지 못 할 비밀로 간직하게 된다. 그러다 프래니가 소설가 리오를 만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소설로 나왔을 때 큰 파장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책을 그리 즐겨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당시 어려서 몰랐었던 앨비만이 그때의 일을 알게 되어 연락이 끊어졌던 프래니를 찾아냈을 뿐이었다.
그는 이것 ─ 가족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아기를 안아주고 그날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인지 궁금했다. 그들에게 삶은 이런 것일까? p.229
소설 내용 중 가장 큰 사건은 캘의 사고이고 진실도 중반 이후에 밝혀지긴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사건이 아닌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는 가족의 모습과 그들의 관계였다. 앨비와 유독 친해서 그를 남동생이라 부르고 새아버지 버트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이어간 프래니, 가족을 이룬 저넷과 그녀의 살가운 남편을 보며 방황을 끝낸 앨비가 있었다. 픽스는 아내를 빼앗아간 버트를 미워했을지라도 방화 사건을 일으킨 그의 아들 앨비를 두말 않고 보호감호소에서 꺼내줬고, 후반에 프래니는 테리사와의 관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단어로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바람이 나서 가정이 깨지긴 했지만, 모두들 서로를 탓하지는 않았다. 픽스가 농담처럼 말하던 때가 있긴 했어도 마음에 담아뒀을지도 모를 미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렇게까지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도 이렇게 살았으며, 굳이 이어붙이지도 억지로 끊어내지도 않은 관계가 물 흐르듯 흘렀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이어지는 관계가 굉장한 대인배처럼 보여 대단하게 느껴졌다. 버트는 테리사에서 베벌리로 이어진 결혼생활에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그를 찾은 프래니를 보며 몰랐던 건지, 아니면 이제는 상관없어서 그럴 수 있던 건지 조금 의문이긴 했다. 저런 사람일지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들의 인생을 일상을 보여주듯 이어가는 소설이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는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독특한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마지막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