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 탓 일까? 이런 날에는 외갓집의 뜨끈한 온돌이 생각난다. 외갓집에는 큰 아궁이가 3개 있었다. 3개의 아궁이에 볏 집과 나무 장작을 떼면 안방의 아랫목은 절절 끓었다. 그 아랫목에 앉아 할아버지가 구워주신 고구마에 얼음 살살 낀 동치미를 먹었다. 외갓집의 안방에는 한지로 만들어진 조그만 창문이 있었다. 아랫목에 앉아 그 한지 창문을 열고 눈 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 그때만큼은 아무것 하지 않아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온전히 내 것 같았다.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 주변엔 드물게 집이 보였고, 논과 밭이 있었다. 우물이 있었고, 동네 강아지와 개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소들의 음매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사부작 떨어지는 눈의 움직임.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모습이 아름다워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이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내 기억들...
이런 날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지금 우리 집에는 절절 끓는 아랫목도 없고, 그때 먹었던 고구마의 진한 맛도 없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도 그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바람 불고, 찌뿌드드한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밥 한 끼 먹지 않아도, 좋아하는 책 뒤적이지 않아도, 하루 정도 씻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하루 종일 누워 있어 허리가 아파도, 그 방바닥에 엑스레이를 찍고 있어도, 괜찮은 그런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나에게도 분명 그런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그 자체를 게으르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 혹은 계획 없이 산다라는 잣대를 가지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주입시킨 것은 아닐까?
우울증은 세 가지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대요. 1.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듯한 고독감. 2.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 3. 희망이 없는 절망감. (49)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167)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때론.. 그 마음을 존중해주는 것은 어떨까? 하루 종일 창밖을 바라보며 멍 하니 앉아 있어도,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아도, 하루 종일 한쪽 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위로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에 뭔가를 꾹꾹 담아 눌러 담지 않아도,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늘 채우는 것에 급급했다면, 오늘은 비우는 것에 마음을 쓰면 어떨까? 이런 날에는 오로지 나를 사랑해주고 좋아해주면 어떨까? 오늘은... 나를 사랑하기 딱 좋은 날.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해 달라, 나를 바라봐 달라 징징거리지 않고 내가 나를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나를 사랑하기 딱... 좋은 날이다. |
|
서울에서 처음 맞는 한여름 더위 폭탄을 집에서 맞고 있다. 아이들이 함께 있는 주말엔 어딜 가든 외출을 했지만 이번 주말은 모처럼 방해 받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늘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탓에 이번 주말은 실컷 책이나 보자 결심하고 마음을 편히 먹고 있었는데 더위가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너무 쾌적해 심신이 풀어지는 것보다 나을 진 모르겠지만 너무 더우니 집중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이러다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낼 것 같다. 몇 권의 책들이 내가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 여기저기 엉키듯 뒹굴고 있다. 애초 무슨 책을 먼저 읽고자 했던 것인지 애써 기억해보려 하지 않으면 마치 모조리 다 읽기로 했던 것처럼 보인다. 처음 의욕만 충만한 채로 산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늘 쫓기듯 세상의 속도를 따라다니기에 지쳐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주위 모든 방해꾼들을 뿌리치고 나만의 일에 집중하기가 참 버겁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일상이 실상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하기 싫은 일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산다. 늘 뭔가를 해주어야 하는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게다. 내 뜻대로 살지 못하니 그런 기회가 주어져도 마음대로 활용을 못한다. 아니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뭔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는 듯한 찝찝함에 하고 싶은 일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나도 모르게 무심하게 흘러있다.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들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 내겐 그런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늘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가 미루고 있을 뿐이다. 이제 그게 습관이 되버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않고 미루듯 시간을 보낸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은 없는데 마치 그런 날처럼 아무일도 하지않고 시간을 보내버린다. 그래서 아예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을 말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럽다. 나와는 반대로 일상에 몰입하며 살면서 때론 모든 것을 비우듯 하루를 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늘 시간을 챙기며 사는 사람들은 일상의 모든 것이 관심사며 이야기거리가 된다.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감에 충만할 때도 있고 아프고 힘들 때도 있다.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일상의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 뜬 장님처럼 일상의 소소한 일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정작 가치있는 일에 몰입하기 힘들어지고 자신의 존재가치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엄마, 사람은 어때?" "죄다 스티로폼 같지." "스티로폼?" "응 접착제처럼 누가 붙잡아주지 않으면 어디에도 들러붙지 못해 떠도는 사람들이란 뜻이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행복할 줄 모르지. 가끔 누워서 멍하니 있을 수 있는 기쁨도 몰라." _(P.018)
엄마 수달이 사람을 두고 한 얘기다. 문득 내 머리가 왜 스티로폼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성긴 뇌세포들 때문에 가벼워진 느낌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행복해 할 줄 모르는 무뇌인간처럼 느꼈기 때문일까? 늘 아이들에게 TV나 게임에 중독되면 바보가 된다는 말로 아이들 주의를 돌리지만 정작 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없이 못사는 바보가 되버린 건 아닐까? 내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바보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해 삶이 편협한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남의 가치 역시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반대로 사소한 일에도 늘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눈이 생긴다. 남들이 놓치는 일상의 이면들을 보는 통찰력이 생긴다. 삶을 올바로 바라볼 줄 알고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사람의 정신은 풍요로울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인생 역시 풍요로워 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빈곤하게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나만의 성 안에 갇힌 라푼젤처럼 현실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살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뜨거운 열기에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에도 아이들이 활기차고 건강함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가장 많이 산 사람은 장수한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이다." 루소가 이렇게 말했어요. 지상에 소풍와서 돌아가는 날, 다 버려도 진정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온 감각으로 맛본 삶의 느낌뿐이겠지요. (P.167)
어제 오늘 양일 간 더위와 싸운 것 외에 내가 의미있게 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교보문고까지 가서 이 책을 구입했고 이 책을 읽었고 난 더 열심히 뭔가를 하지 않은 데 대해 나를 질책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무심히 보낸 시간에 대해 느끼고 고쳐야 할 시간관리 습관에 대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얘기했지만 우리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일상이 바뀌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내일은 다르게 살면 된다. 단지 습관에 문제가 있었다면 제대로 깨닫고 고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메울 방법을 찾으면 된다. 쫓기듯 살지 않아도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길은 분명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가르쳐준다. 때론 새로운 것으로 나를 채우기 위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을 만들어 나를 비워보는 것은 어떨까? 더 채울 것이 있다면 늘 채우기만 할게 아니라 때론 비우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나를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오늘이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이죠. |
|
헛된 낭만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글이라서 충분히 위로라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흔히 성의 없는 인사를 나누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영혼없는 대답을 할 때처럼. 그랬는데, 그런 생각들만으로 얼마나 공허해지던지. 그런 생각들만으로 삶이 무의미하게 다가오며 그렇다면 왜 사는데?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그런 질문 자체가 어떤 답을 찾기 위해 던지는 건 아니잖아.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간파라도 한 것일까. 신현림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세심하게도 마음 구석구석을 긁어준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다들 나름의 사연이 있어요. 당신은 잠시 쉬고 있는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쉬고 난 후에는 훨씬 강해질 테니." (P.30)
아무것도 안할거면 하지 말아야지. 자학은 왜 하는데!! 자학할 거라면 찾아서 무엇이라도 해보던지. 내가 그랬다. 맘껏 누리지도 못할 거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가혹하리만치 스스로를 얼마나 학대했었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미 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조바심과 걱정이 쉽게 떨쳐버려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속에 새겨진다. 어쩌면 누구나 그런 단순한 위로 하나쯤 마음에 품어도 되는 거니까.
"낭비된 인생이란 없어요. 낭비하는 시간이란 외롭다고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뿐이죠." 날카로운 펜촉이 가슴을 긋고 갔어요. 가슴을 긋는다는 건 감동이며 깨우침이죠. 외롭다 생각하며 우리가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요." (P.38)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잠시 잠깐 돌아 본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볼 때, 뜬금없이 나도 나이먹는구나 싶고, 왜 이리도 나 자신을 방치하고 말았을까 싶을 때 한없이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감정이 한 번 들고나면 권태기가 찾아온 것 마냥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내 안의 삶의 열정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리곤 했던 경험들이 나에게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시간들이 무심코 허비한 시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 방황의 시간들이 오히려 약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인생을 살며 그런 잠깐의 순간들이 사실은 바닥을 차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래서 '낭비된 인생이란 없다' '우리가 허비하는 시간은 없다' 라고 마침표 찍고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을 읽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내 마음속 구석구석 느꼈을 아픔, 상처, 고통, 사랑 그리고 추억의 단편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괜히 차분해지고 그랬다. 오랜만에 가슴이 이렇게나 뜨거워졌는데, 삶이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온 감각으로 삶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다짐 아닌 다짐도 해 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인가 보다. |
|
'신현림'을 대표하는 책은 아무래도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이 아닐까 한다. 신현림 작가가 알고 있는 시들을 엮어서 만든 책인데, 1권이 출간된 후에 반응이 좋았고, 곧 2편인 사랑편이 출간되었다. 신현림은 '시집을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보면서 엄마가 떠오르듯, 시를 보면서 딸을 생각했던 것이다.
![]()
"딸아, 네가 상처받고 아파할 때 엄마는 같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은 네가 짊어질 인생이기에 말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음을 말이다. "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중에서 p.12 신현림은 시인이자 사진작가이다. 문학을 먼저 공부하고, 사진을 공부했다. 그녀는 그동안 다수의 시집을 냈고, 번역도 하기에 역서도 다수 있다. 거기에 동시집도 냈으며, 사진전도 3차례에 걸쳐서 열었다. "신선하고 파격적 상상력, 특이한 매혹의 시와 사진으로 장르의 경걔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다." (작가 소개글 중에서) 서평을 쓰기 위해서 작가의 프로필을 검색하던 중에 그녀의 모습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엄마 살아 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ㅣ흐름출판사ㅣ2011>도 그녀의 에세이이다.
정말로 요즘은 너무도 아름다운 가을빛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나는 어쩌면 '가을을 타는 듯'하다. 가을이면 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오늘도 올림픽공원을 거닐다가 비오듯이 떨어지는 단풍들을 보면서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휘드러지게 피어난 억새의 모습에도 서글퍼지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해 같았으면 이런 모습들을 사진에 담았을텐데, 그런 사진찍기 조차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을 담아내기 힘들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에 그냥 눈에 담아둔다.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 속에 이 아름다움을 담아두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샛빨간 단풍잎들이 잔바람에 살랑거린다. 작게, 그리고 조금 크게.... 이런 가을날에 무기력해지고 싶지만, 하루는 24시간이고 그 시간들은 남는 시간없이 꽉 채워진 시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지만 그래도 뭔가는 해야되는 날들이다. 신현림 시인처럼 '바다사자처럼 누워'보고 싶지만, 어쩌다 보면 하루 해는 서산으로 저물어간다. 어느날을 붉은 해가 떨어지는 모습에 넋을 놓게 되는 날들도 있다. " 아, 일어나기 싫어", " 아무것도 하기 싫다", "왜 너는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 이렇게 시인은 자신에게 지인들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 있기에. 이 책은 아주 얇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다. 시인은 요즘 세태를 이렇게 말한다.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스마트폰 귀신, 사람들이 TV를 보듯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생각,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비교 습관.... 신현림의 글은 확실히 문학성도 있고, 대중성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매혹적인 작가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이 책 속의 문체는 시적이어서 더욱 마음에 따스함을 더해준다. " (...) 히아신스의 꽃말을 겸손한 사랑입니다. 고난을 이겨낸 뒤에는 자신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되듯이, 겨울을 이긴 히야신스가 더욱 투명하고 향기롭습니다. 고난마저 사랑하면 인생길이 더 잘 보이듯, 온전히 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인생의 꽃샘추위에 떨지 마세요. " (히아신스 테라피 중에서, p. 61)
(...)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걸 새삼 느낄 거예요. 살아보니 말하기 보다 듣는 게 편합니다. (...) " (아름다운 침묵 중에서 p. 72) " (...) 이룰 수 없는 꿈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참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나도 오늘은 크림빵처럼 달콤한, 그 이룰 수 없는 꿈을 소망해 봐요." (맨오브라만차 중에서, p. 158) " 1초의 선택으로 근심은 기회가 되거나 더 큰 근심이 되기도 해요. 당신이 그리웠다는 1초의 한마디로 인생은 큰 용기가 되지요. 조만간 내게도 그런 기쁜 소식이 왔으면 해요. 그 기쁜 소식을 그리워하며 봄 향기에 취해 다녔어요. " (1초의 낙화에 인생의 절정과 몰락이 있다 중에서, p. 178)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늘이 나를 사랑하기 좋은 날이라고 시인은 말하니, 오늘은 나를 사랑해야겠다. |
|
책 제목대로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었다. 너무 무리하게 자전거 연습에 매달려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머릿속으로만 뭔가를 계획하고 질질 끄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나이탓인가. 이럴 때면 보다 젊었을 때 이것저것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때는 왜 그렇게 두려움이 많았는지. 이제는 두려움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이다. 저자의 일상에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무엇보다 그냥 편하게 만들어준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전철에서 카페에서 조금조금씩 부담없이 읽어내려갔다. 내 또래 여성들의 치열한 삶과는 조금 다른 여유가 느껴지는, 연륜있는 언니의 조언 같다고나 할까. 다만 솔로들은 다 짝이 없어서 혼자사는 거라고 했는데, 조금 의아하다. 싱글을 선택한 사람들도 분명 있는데... 뭐 싱글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배필을 못만난 것도 짝이 없는 걸로 친다면 할말은 없지만... 대충 아무나 맞춰서 결혼하는 것보다는 싱글이 훨씬 낫다고 생각된다. 어찌됐든 가을에 참 읽기 좋은 책이다.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간다. |
|
책읽기 삶읽기 181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날 ―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신현림 글 현자의숲 펴냄, 2012.8.12. 해가 기웃기웃 지려고 할 즈음에 뒤꼍으로 그릇을 하나 들고 나갑니다. 곁님과 아이들이 곧 배고프다고 할 듯하다고 느껴서, 뒤꼍에서 쑥을 뜯습니다. 이월이 막 저물고 삼월로 접어들었으나 쑥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침개 넉 장을 부칠 만큼 뜯을 수 있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쑥잎을 하나둘 뜯어서 그릇에 채웁니다. 쑥잎은 아무리 작아도 곁에 쪼그리고 앉으면 향긋한 기운이 퍼집니다. 쑥부침개를 하든 쑥국을 끓이든 쑥버무리를 하든 온통 쑥내음이요, 마당이나 뒤꼍에서 쑥을 뜯을 적에도 쑥내음입니다. .. 세수도 안 하고 속살이 훤히 보이는 속옷을 입고 뒤척일 때 지친 하마같이도 보여요. 그래도 귀여우세요. 애써 꾸미지 않아도 당신은 아름다워요 … 사람들은 책을 봐야겠다고 늘 결심만 하죠. 정말로 실천하려면 20년은 걸릴 거예요 .. (8, 27쪽) 쑥을 헹군 뒤 밀가루 반죽을 합니다. 불판을 달굽니다. 기름은 아주 조금 붓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쑥을 넣고 더 섞은 뒤, 불판이 뜨끈뜨끈하면 이제부터 쑥부침개를 합니다. 기름이 자글자글 익는 부침개는 부엌을 지나 마루를 거쳐, 아이들과 곁님이 있는 방으로 퍼집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알아챕니다. “우와, 맛있는 냄새 난다! 아버지가 뭐 하나 봐!” 두 아이는 마루를 쿵쾅쿵쾅 뛰면서 부엌으로 달려옵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은 무슨 밥?” 두 아이는 부침개 익는 냄새만으로도 배가 살살 고픕니다. 한 장을 부쳐서 동그란 꽃접시로 옮깁니다. 두 장째 부치려고 반죽을 불판에 붓고 나서 아이들을 부릅니다. 자, 이제 먹자! 따끈하게 덥힌 국을 그릇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은 밥과 국과 부침개를 바지런히 먹습니다. 부침개 담은 접시가 빌 무렵 다음 부침개를 따끈하게 올립니다. 이제 석 장째 부치고, 부침개를 먹는 젓가락은 조금 느슨합니다. 마무리로 넉 장째를 부친 뒤 설거지를 합니다. 두 아이는 조잘조잘 떠들면서 천천히 밥술을 뜹니다. .. 딸아이를 부려먹거나 일 시켜먹으려 낳은 건 아닙니다. 일하는 법을 가르치긴 합니다. 엄마가 없을 때 혼자 있게 되면 뭐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 고난마저 사랑하면 인생길이 더 잘 보이듯, 온전히 다 사랑하면 후회가 없습니다 …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험담으로 낮아져서는 안 돼요. 자신을 어여삐 보는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어여쁨을 보세요 .. (50, 61, 76쪽) 신현림 님이 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현자의숲,2012)을 읽습니다. 새빨간 옷을 입은 가볍고 앙증맞은 책에 조그마한 그림이 깃듭니다. 무슨 그림일까 하고 가만히 쳐다봅니다. 아하, 신현림 님이 그린 그림이지 싶습니다. 하늘로 쪽 뻗은 파르스름한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그림이 예쁩니다. 신현림 님은 파랑을 사랑하는군요. 그러고 보면 ‘사과 여행’ 사진에서도 ‘파랑 능금’이 곧잘 나옵니다. .. 서른 살을 보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고 고시공부하듯 탐구하고 창작열을 불태우는 것뿐이었어요 … 마음속을 가난이 아니라 풍요로움, 행복, 자유의 이미지로 채워 보세요. 내가 꿈꾸는 이미지와 말로 내 속을 채워 나가면 삶은 바뀌더군요 .. (112, 127쪽) 파랑은 모든 목숨을 살리는 빛깔입니다. 우리는 흔히 ‘푸른 빛깔’이 모든 목숨을 살린다고 여길 테지만, 푸름과 파랑은 목숨을 살리는 구실이 다릅니다. 푸름은 ‘밥’으로 목숨을 살리고, 파랑은 ‘바람’으로 목숨을 살립니다. 아니, 푸름은 목숨을 살린다기보다 몸을 살찌우는 밥입니다. 파랑은 그야말로 목숨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왜냐하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바람은 ‘파란 기운’을 가득 담아서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로 깃들거든요. 밥은 며칠을 굶거나 보름을 굶더라도 목숨이 안 끊어지지만, 바람(숨)은 몇 초만 끊어도 곧바로 목숨을 잃어요. 그만큼 파랑이라는 빛깔은 우리 목숨하고 크게 잇닿습니다. .. 한옥의 즐거움은 마당을 거닐거나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 통지표를 보다 보니 엄마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성적이 뚝 떨어져 의기소침한 나를 편안히 대해 주던 엄마 .. (138, 142쪽) 이야기책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책이름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어떤 날일까 하고 수수께끼를 내고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풉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남이 나를 종(노예)처럼 부리면서 시키는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답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빙그레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날이라면, 우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지으면 모든 날이 기쁨입니다. 사랑을 지으면 어느 날이나 노래입니다. 꿈을 지으면 온 날이 웃음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내 삶을 잃거나, 내 사랑을 잊거나, 내 꿈을 놓친 날입니다. 하늘을 보면서 바람을 마셔요. 별을 보면서 바람을 느껴요. 해님과 마주보면서 바람을 누려요. 구름하고 동무하면서 바람을 불러요. 내 가슴 가득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담으면서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해요. 그러면, 오늘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열 수 있어요.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문학읽기)
|
|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이런 때에 무작정 힘을 북돋우는 자기계발서를 보는 것은 오히려 힘이 빠지는 일이다. 나는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의욕도 욕망도 사라진다. 이 책은 예스24에서 시월 둘째주 테마 추천도서 중 한 권으로 선정된 책이다.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산문집이라는 설명에 이 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귀찮아지고 축 늘어지는 나도 내 모습의 한 면이다. 이런 나에게 잔잔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 책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을 읽어보게 되었다.
두려워하고, 지겨워하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나다. -피터 한트게
남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 자신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 이런 날에는 글씨도 많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에세이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런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 책, 애써 꾸미지 않아도 당신은 아름답다고 격려해주는 책, 괜시리 힘을 얻어 위안이 된다. 아무 것도 하기 싫으면 좀 어때? 이 책에서도 말한다. 쉴 때는 잉여인간이구나 자학하지 마세요. 겉보기엔 멀쩡해도 다들 나름의 사연이 있어요. 당신은 잠시 쉬고 있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쉬고 난 후에는 훨씬 강해질 테니. (30쪽)
이 책은 소제목이 마음에 드는 에세이다. '당신은 바다사자처럼 누워계셔요', '관능적인 라면 먹기', '생선 한 마리와 인생의 신비', ''포도잼 김치볶음' 이런 제목이 마음에 든다. 각각의 이야기는 짧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긴 글을 읽는 것도 벅차다. 그저 짧은 호흡으로 끊어서 읽으며 딴짓을 해도 좋은 그런 책이 필요하다. 무언가 하도록 종용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모습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책이 좋다.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읽고, 다시 힘을 내서 다른 종류의 책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은 온전히 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에 좋은 날이다. 세상에 꼭 해야할 일도, 내가 아니면 안될 일도 없기에, 가끔씩 쉼표를 찍으며 나 자신을 위로해줄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날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를 준다. 우연히 라디오를 켰을 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DJ의 말처럼, 따뜻한 말소리로 은은하게 낭독해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정신없이 바쁘게만 허덕이는 일상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을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지쳐서 하기 싫은 것보다는 이왕이면 자발적으로 스스로에게 휴식의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짧은 말 속에서 나만의 생각 속에 잠기게 되는 책을 읽었다. 책이 하는 말보다 나 자신에게 내가 던지는 말이 훨씬 많은 시간이다. 이런 날에는 나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
|
무언가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은 저 땅 밑을 헤매고 있어요. 이럴 때 근사한 풍경 속을 배회하다보면 조용히 가슴을 치던 글귀들이 생각나요.
「감사하는 것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시간은 언제나 남아 있다.」<본문 중에서>
눈을 뜨면 해야할 일로 머릿 속은 바쁘다. 시간관리를 좀 한다는 사람들은 자기 전날 미리 다음 날 할 일을 계획하기도 한단다. 늘 바빠야만 하는 삶이다. 잠시 빈둥거릴 순 있다. 그건 바쁜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늘 빈둥거릴 수 있는 삶은 몸은 편하겠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일상에 지치면 '이딴 일 집어 치우고 마음 편히 살았으면' 하는 바램은 늘 갖지만 이 땅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건 곧 생기 없는 삶, 죽음을 의미한다. 멈추고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늘 일에 쫓겨 살지만 뭘하며 사는가 싶을 때, 몸과 마음은 바빴지만 왜 바빴는지 몰라 허전하기만 할 때, 그럴 땐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잠시 떠올려 봐야 한다. 누구나 꿈을 좇는 듯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지는 대로 사는 시간이 더 많다. 생각할 여유없이 사니 그렇다. 그러다 쉼없이 바쁜 시간을 떠나 잠시 여유를 부릴 즈음에 마음 속엔 바람이 인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 하지만 깊이 생각지 않으면 다시 일상의 분주함에 묻혀버린다. 다음 시간까지 생각을 보류하게 된다. 문득 지금 해야할 일은 모두 거부하고 싶어진다. 지금껏 내 몸과 머리를 채우고 있던 분주함을 던져버리고 싶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그 관성의 힘을 거스를 의지는 약해져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가 됐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과감히 거부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이제 의미없는 분주함을 집어던지고 과감히 다른 것들로 채워보고 싶은 날.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새로움을 담는 날이다. 신현림 시인의 《아무것도 하기 싫은날 》은 새로움으로 나를 채우는 날, 나를 사랑하는 날을 재촉한다.
조용한 장소가 필요해요. 마음의 고용함이 필요하지요. 인생을 유익하고 풍요롭고 지혜롭게 살며 단순해져야 마음이 잘 보여요.<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