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치아에서 죽은 그 남자, 시와 음악의 천재, 바그너 이전과 이후로 세상은 갈라진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어디 한번 이 사람의 정치색을 논하기 전에 눈을 감고 그가 만든 노래를 들어보자(지젝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보라고 조언한 바그너 말은 들으면 아니 된다고 하지만). 바그너를 끝까지 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 스스로의 음악적 교양의 바닥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면서 알랭 바디우의 [바그너는 위험한가]를 읽는다. 먼지가 가득한 음반을 뒤적여보니 [탄호이저] 서곡이 일부 나온다. 그래도 교양머리가 어느 정도 있을라치면 이 정도는 애써줘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먼지를 털고 시디를 가만히 올려놓는다. 히틀러가 즐겨 들었다는 바그너, 반유대주의의 거봉이었다는 바그너. 예쁘기만 한...... 머리 텅텅 빈 금발 미녀 아니 미남은 아닌 것이로구나. 잘생긴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 격이다. 초반에 이렇게 빠져들고 말다니. 객관적인 리뷰는 불가능하다. 감이 왔다.
바디우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에서 음악이 갖는 철학적 특징을 간략하게 논한다. 솔직히, 여기까지 강의 2까지는 읽어내느라 고역이었다. 어째서 하필이면 왜 바그너인가, 짜증도 났고 이 책을 읽겠노라고 무식한 내가 덤빈 것도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은 갑자기 찬란하게 빛났으니 강의 3. <철학적 문제로서의 바그너>에 다다라 알랭 바디우가 말하고자 한 바그너에게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바디우는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바그너에 대해서.
“이것이 바그너에게 쏟아지는 주된 비난이다. 바그너는 사람을 홀리고, 유혹하고, 기만적이고, 히스테릭하고, 미광을 발하고, 매혹적이고, 성적인-저자마다 표현은 계속 바뀐다-음악적 축조물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니체에게(그의 생각은 아직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그너는 ‘늙은 마법사’, 음악사의 마술사이며, 이렇게 끝없이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서 서사적, 시적, 무대적, 극적, 역사적, 인종적 요소 등 여러 잡다한 요소들의 집합-다시 말해 상당히 실질적인 집합-을 전유한다. 그 집합에서는 바그너가 동일성의 강요와 차이의 축소를 대표하는 전형적 형상이라는 사실로 인해 음악에 강제되는 통일성 안에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혼합되고 용해되고 사라져버린다.” (92)
그러니까 바그너는 음악이라는 성스러운 칼을 들고 ‘단절을 초래’했다는 것, 그리하여 단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심지어 바그너는 시간을 봉쇄시켰고. 세상 사람들은 바그너를 ‘음악에서의 헤겔’이라고 주장하지만 바디우는 아니라고 하고. [탄호이저]를 비롯하여 [떠도는 네덜란드인], [반지]에서 방랑하는 이들,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고통의 정념’ ‘고통의 현존’ 바그너가 보여주는 것들. 기독교의 한계와 미래가 바그너의 작품 속에 들어있다.
“주체에게 고통은 어떤 의미에서 기념비적이다. 주체 자신이 금 가고 무너진 기념비와 같다.” (145)
한때 혁명가였던 바그너가 그 음악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을 우리가 듣지 않고 역사 속에 잠들게 한다면 이미 죽어 먼지가 된 그가 만들어낸 음악도 그렇게 죽여 버린다면, 그건 아니다. 바그너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알랭 바디우가 만들어낸 바그너에게 빠져버리고 말았으니 이건 전적으로 내 실수다. 바디우가 논한 바그너를 간략하게 요약하기란 내 역량 밖이다. 비겁한 리뷰 되겠다. 또 실수. 히틀러가 즐겨 들었다는 바그너를 이렇게 비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살짝 성도 내보려고 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코딱지만큼 들은 바그너에게 매혹되었으니 참담하기만 하다. 니체가 왜 그렇게 욕을 해댔는지 그 심정도 어쩐지 이해가 갈듯도 하다. 참담하다. 역시 참담하니 달리 무슨 말을 더 덧붙이겠는가. 브륀힐데의 입을 빌린 바그너의 말을 살짝 덧붙일 수밖에. 아, 한마디 더, 세상이 끝나기 전에 바그너는 들읍시다. 듣고 봅시다. 세상이 끝나건 끝나지 않건 바그너는 세상의 끝에 존재합니다. 코딱지만큼 듣는 걸로 시작했으니 저도 죽기 전까지 바지런히 바그너를 들어볼 계획입니다. 사랑은 안전하게 하고 싶지만 그래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안타깝게도 안전한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더 이상 발할라의 요새로 가지 않는다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나는 욕망의 집을 떠나지요. 망상의 집을 영원히 등진답니다. 영원한 생성의 열린 문을 이제 나의 뒤로 닫습니다. 욕망과 망상에서 자유로운, 지극히 거룩한, 선택된 땅, 화신에서 구원된, 세상의 이주의 목적지로, 깨달음을 얻은 여인은 이제 나아갑니다. 영원한 모든 것들의 복된 종말-내가 어떻게 그것을 얻었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비통한 사랑의 깊디깊은 고난이 내 눈을 뜨게 만들었지요. 나는 세상이 끝나는 것을 보았답니다.” (273-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