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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모어 히로시마! 원폭의 열꽃 위에 핀 평화의 메시지
"노 모어 히로시마! 원폭의 열꽃 위에 핀 평화의 메시지" 내용보기
“폐를 끼쳤습니다. 저는 예정대로 죽으러 갑니다.” 이런 유언을 남기고 히로시마의 열아홉 살 아가씨가 자살했다. 19년 전 어머니 뱃속에서 원폭의 업화를 뒤집어쓴 아가씨이다. 어머니는 피폭 뒤에 죽었다. 물려받은 고통과 가난을 짊어진 젊은 생명은 기력이 소진된 느낌으로, “예정대로 죽으러 갑니다”의 ‘예정대로’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노 모어 히로시마! 원폭의 열꽃 위에 핀 평화의 메시지" 내용보기

 

“폐를 끼쳤습니다. 저는 예정대로 죽으러 갑니다.” 이런 유언을 남기고 히로시마의 열아홉 살 아가씨가 자살했다. 19년 전 어머니 뱃속에서 원폭의 업화를 뒤집어쓴 아가씨이다. 어머니는 피폭 뒤에 죽었다. 물려받은 고통과 가난을 짊어진 젊은 생명은 기력이 소진된 느낌으로, “예정대로 죽으러 갑니다”의 ‘예정대로’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일본인이 아닌 히로시마인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지만, 피해자라고 외치는 일본인들. 우리 민족을 향한 억압의 역사와 분노는 접어두고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하는(적어도 히로시마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로 하고 책을 펼쳤지만 솔직히 그들을 온전히, 아무런 감정 없이 이해하기란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의 창끝이 되돌아와 그들의 심장을 겨누었을 때 일본의 폭압에 스러져간 수많은 식민지인들의 고통을 그때서야 그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전쟁 없는 밝은 세상이 올 수 있도록 부디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사 재무장과 핵 발전, 자위대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왕이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여하려 하자, “나는 전후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수상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가 1963년부터 1965년까지 기자의 신분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하며 패전 후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들과 그들을 선의로 돕는 사람들, 이해관계에 얽혀 이합집산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과정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땅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한반도에 떨어질 위기가 있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이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해 한반도에 원폭 투하를 검토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다.

 

날개가 불탄 제비는 날 수가 없어서 종종 거리며 땅 위를 걷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일이다. 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권력 핵심층에서 ‘터뜨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국민들 중에선 날로 영토를 확장해 가는 국가가 패전국이 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식민지 조선인, 중국인 들에게 차마 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도 있다. 하지만 2차 대전의 쉰들러처럼 적극적으로 조선인들을 도와주었던 일본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이 아닌 ‘일본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기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그들 일본인은 용서 못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만난 조선인 노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젠 미국도 일본도 원망하지 않아요. 비록 전쟁으로 불구가 되긴 했지만, 오히려 한국인인 내가 일본에서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일본인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요. 저는 일본인이라거나 한국인이라는 문제는 제쳐 두고, 자식을 다섯이나 잃은 어미로서 원폭 금지만을 바랄 뿐입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선 일본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이 노부인의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이 아니었으면 그 악랄한 식민지 생활도 없었을 터이고, 원폭 피해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본인에게 생활 보호를 받는 것이 무어 그리 대수란 말인가?

그것은 전쟁을 겪고, 그 아픔과 고통을 평생의 업으로 지고 살아가는 이의 회한과 포기의 정서가 아닐런지. 식민지인으로 전쟁의 아픔을 먼저 겪었던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온 용서와 관용이 아니었을까..

 

전쟁이란 국가가 국민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악질적이고 용서받지 못할 폭력이다.

 

전쟁을 겪은 노부부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용서하였다고는 하지만, 난 아직 일본을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먼저 진실된 모습으로 반성하고 사죄할 때 가능한 것이다. 아직 진정성 어린 용서를 빌지 않는, 심지어 강제적인 한일 늑약 때 강취해 간 독도를 여전히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나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의 아집과 독선으로 전쟁이라는 포화 속에 휩쓸린 일본인들, 강자의 입장이었지만 역시 피해자이기도 했던 일본인들을 용서해 볼까 하는 마음이 움트기도 한다. 아직은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한일관계에서 이만큼의 마음을 먹는 것도 쉽지 않은 결심이다.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대학 교수의 글은 ‘용서’ 라는 씨앗을 내 마음에 품을 수 있게 한 작은 시작이었다.

 

더 이상 전쟁은 싫다. 더 이상 전쟁은 싫다. 이것은 히로시마 원폭 체험자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비통한 절규이다. 글이나 말로는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평화 욕구의 진정한 절규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런 잔혹한 체험을 이 세상 누구도 겪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것을 세계를 향해 호소한다. 더 이상 또 다른 히로시마들이 나오지 않도록. “노 모어 히로시마!”

 

전쟁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인 것이다.

다시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k*****m 2012.09.16. 신고 공감 11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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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평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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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아시아인 노벨상 수상자, 일본의 양심이란 수식어를 숱하게 들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던 터라, '드디어' 읽었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만 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 내용에 앞서, 평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느낌부터 말해야 겠다. 내 개인적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본에 가본 적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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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아시아인 노벨상 수상자, 일본의 양심이란 수식어를 숱하게 들었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던 터라, '드디어' 읽었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만 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 내용에 앞서, 평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느낌부터 말해야 겠다. 내 개인적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본에 가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일본일을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일본인 관광객에게 간단한 길안내를 해준 경험과 바로 앞집에 일본인 아내와 그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둔 '다문화 가정'을 두고도 간단한 인사만 건내며 지낸 경험이 전부다. 그렇기에 하릴없이 일본이나 일본인에게 적대감을 표하거나 거부감을 느낄 아무런 까닭이 없다.

 

  허나 역사적 관점이나 일본 정부의 행보를 볼작시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또 일본 우익이라고 하는 세력들의 뻔뻔스런 행태를 접할 때면 울화가 치밀어오르기 일쑤다. <일본서기>나 <고사기>에서 보여준 거짓부렁은 고대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풀리기'라고 애교로 넘어갈 수 있어도 근대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해묵은 '임나일본부'를 끄집어내어 한국의 역사가 '식민'의 역사에서 시작하는 명백한 증거랍시고 내놓은 것부터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런 가운데 홀연히 대두된 '한사군'이란 것도 한반도 사람이 결코 홀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무능한 민족이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날조한 <식민사관>이 여지껏 <대한민국>을 알 수 있는 역사관으로 살아남아 있다는 것부터 맘에 흡족하지 않는다. 물론 더 웃긴 것은 일본 안에서 뿐 아니라 우리 나라 안에서도 버젓이 자리잡고 있고, 일명 '강단사학자'란 분들이지만 말이다.

 

  거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독일처럼 '전범 국가'로서 피해국가와 피해국민들에게 철저한 사죄와 빈틈없는 보상을 하여 국제사회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면서, 일본 우익의 입김이 작용한 발언들, 즉, 역사왜곡과 같은 파렴치한 짓거리나 망언을 일삼는 짓거리 들을 몬본 척, 안 들은 척하는 뻔뻔한 행동을 일삼는 것이 참 못마땅하다. 더 늘어놓을 거도 없이 요근래 일본이 '독도'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만천하에 드러내놓은 뻔뻔함은 도를 넘는 수준에서 '우주최강'이란 말을 들어도 모자를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 일본인>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끼게 되고,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바라보려 해도 좀처럼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역사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욱 심해졌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좀 더 넓어진 까닭인지 요즘엔 그닥 불같이 화를 내던 20대 시절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도, 소설도 그닥 즐기지 않는 편이다. 특히 소설이 심한데, 읽어도 '소재'가 참신할 뿐 '깊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천박스럽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에 <우주소년 아톰>과 <마징가Z>를 보며 열광했고, <들장미소녀 캔디>와 <플란더스의 개>를 보며 감수성을 키웠고, <미래소년 코난>과 <은하철도999>를 보면서 미래를 꿈꾸기도 했고, 메델과 늘 함께 있던 철이가 하염없이 부럽기만 했다. 여담이다.

 

  내게 이런 느낌과 생각을 준 <일본>이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우리를 괴롭힌 나쁜 일본과 일본인이 받아야 마땅할 '천벌'쯤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대동아공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침략을 일삼고, 다른 나라 문화와 민족 쯤은 <일본제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그들의 망상을 깨뜨리기에 딱 알맞은 무기라고 여겼었다. 물론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에 벌어진 참혹함조차 못본 체하는 '내 안의 추한 본성'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말이다.

 

  '일본의 양심' 답게 오에 겐자부로는 겉으로는 "노 모어 히로시마'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물밑정치'를 일삼는 몰염치한 정부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원폭로 인해 아픔을 겪은 희생자를 기리고, 살아남아서 멈추지 않는 아픔을 겪고 있는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 "평화,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하늘 높이 울려퍼지지만, 이들에게 아낌없이 지원을 해도 모자른 정부과 관계 당국은 '국가이익'을 앞세우며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과 손을 잡고 만 아이러니 앞에 오에 겐자부로는 따끔한 일침을 놓은 것이다. 물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 나라도 번번히 그런 식으로 국민들을 희생시켰으니 말이다.

 

  그런데...일본 정부의 이중성을 비판한 오에 겐자부로의 양심에서 난 아무런 감흥이 오질 않는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닐까? 양식 있는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양심선언'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지낸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오히려 오에 겐자부로가 한국 시인 <김지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 책을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본 듯 싶어 제대로 이 책을 가늠하지 못하겠다. 애초에 <히로시마 노트>를 보기 전에 약속하기를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이기에 그의 진솔한 대담을 엿보고서 양심이 없는 듯이 구는 일본의 작태를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하고, 그를 통해 일본인에게도 양심이 있음을 엿보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평소에 하던 '양심'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진 때가 1965년이었음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아쉽지만 제대로 된 평가는 다음으로 미뤄야 겠다. 그래서 별 셋!



YES마니아 : 로얄 z******8 2012.09.16.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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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Hiroshimas(노 모어 히로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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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유명한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라는 신념을갖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를 일관되게비판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사 재무장과 핵 발전, 자위대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있다고 한다. 올해 열린 반원전 집회에서도 작가는 원전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기도했다.이 책도 그의 그런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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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유명한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라는 신념을
갖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사 재무장과 핵 발전, 자위대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올해 열린 반원전 집회에서도 작가는 원전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기도했다.
이 책도 그의 그런 신념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데,원폭의 폐해에 고통 받고 있는
히로시마에 대한 그의 관심을 알 수 있다.


 1963년 여름, 월간지 《세카이》의 의뢰로 ‘제9회 원수폭금지 세계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처음 히로시마를 방문한 작가는 당시 뇌에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때문에,원폭의 영향으로
고통 받고 있는 히로시마 인들의 모습에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당시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의 분열로 인해 대회는 제대로 열리지 못했고,히로시마 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실망스러운 진행사항과 관계 없이 작가가 그 곳에서 만난 원폭병원의 시게토 원장,히로
시마어머니회의 할머니들,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평화행진을 맞이하는 원폭병원의 환자, 피폭
자와 약혼한 젊은 여성, 피폭자를 업고 산을 오른 조선인 등은 진정 인간의 '위엄'을 보여주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감동 받은 작가는 이후 히로시마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이들과 친분을 쌓기도
하고 히로시마와 원폭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쓰여진 이 책은 비록 60년대에 쓰여진 책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이나 애초에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나 히로시마의
사람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가해자이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를 들며 자신들의 피해를 얘기하지만 그들도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조건 그 입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징용으로 끌려간 많은 이들도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지만,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빈곤과 고통 속에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과 비교적 가까운 경남지방에 지금도 상당 수의 원폭 피해자와 그 2세들이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데,우리 정부나 일본정부 모두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1945년 가을 미군 측 원폭피해 조사단은 히로시마에 대한 조사 결과“원자폭탄 방사능의 영향으로
사망할 사람은 이미 모두 사망했고,이제 잔존 방사능에 의한 생리적 영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작가가 이 책을 쓴 65년에도 여전히 피폭의 고통은 계속되었고,2세에까지 유전되어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백혈병무혈성 괴사증,다운증후군,골다공증 등 다양한 형태의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제대로 치료 받고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작가는 분노하고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책이 나오던 당시까지 20여년 동안 일본정부는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때문에 원폭피해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책임은 현지에서 피폭 당한 히로시마 주민들의
몫이 되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직접 만나고 들은 히로시마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엄과 긍지를 지닌 가장 인간
다운 모습이었다.


 "더 이상 히로시마들이 나오지 않도록”(No more Hiroshimas)이라는 표어는 오늘날의 국제정세
하에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말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인류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있어서는 안된다.
책을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해를 말하며
전쟁의 피해자인냥 하는 일본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이 떠올라 이 책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100%
작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y******5 2012.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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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투하 이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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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여러 매체를 통해 핵폭탄에 의한 피해들을 본적이 있으나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것이 사실이다. 이전에 "핵폭탄 만들기"라는 두권으로 이루어진 핵폭탄 제조와 성능에 관한 기록을 본적이 있다.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독일, 미국의 핵물리학자들로 이루어진 개발자들의 노력과 파인만이라는 미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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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여러 매체를 통해 핵폭탄에 의한 피해들을 본적이 있으나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것이 사실이다.

이전에 "핵폭탄 만들기"라는 두권으로 이루어진 핵폭탄 제조와 성능에 관한 기록을 본적이 있다.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독일, 미국의 핵물리학자들로 이루어진 개발자들의 노력과 파인만이라는 미국학자 물리학자의 과학적 탐구와 더불어 최후에는 핵폭탄을 만든것을 후회한다는 그 물리학자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개발 초기에는 핵폭탄의 위력에 대해 이론적 영향과 성능에 대하여 알게 되었으나 사막에서 이루어진 실험에서 핵폭탄의 위력을 이미 파악한 후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핵폭탄이 개발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투하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서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에 대하여 긴 시간 진행되어온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쩔 수없었다고, 그리고 많은 피해자는 있었지만 그 이후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고 오에 겐자부로의 노트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서 이는 투하자와 피해국가의 책임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피해에 대해 조사를 하였지만 피해가 크지 않다는 결론에서는 인류의 생존 위협에 대한 책임회피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오키나와 노트와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에 대한 무책임한 회피에만 전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본다.

이와 같은 현실은 우리의 위안부 아니 성노예 할머니들에게도 적용된다. 아무런 책임없이 사과와 보상은 물론 이를 오히려 회피하고 정당화 하고자하는 일본 정부의 대응을 보면 과연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은 과연 인류에 있어 어떤 행동 서슴치 않고 할 수 있는 무자비한 인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모든 일본인이 그렇다는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인류사회가 신뢰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오에 겐자부로가 바라본 히로시마의 참상과 이를 극복하고 세계속에서 일본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게 하기위해서는 피해자들과 더불어 핵폭탄에 의한 참상을 더욱 세계에 알려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없기를 바라면서 피해를 입은 의사들과 피해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알려준다.

전쟁 종료 후 20년이 지난 1960년대에는 피해자들을 치료하고 사회적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안아주고자 하는 노력이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것에 대해 저자는 큰 실망감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노트라는 취재중에 적은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젊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가슴아파했던 내용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표면상 드러난 상처로 인해 숨어지내야 했던 젊은 아가씨들의 좌절감...본인의 피해를 입기전의 얼굴을 보고 싶다던 여성들의 사연은 가슴 아픈, 핵폭탄만큼이나 큰 파장으로 다가온다. 이후 이러한 피해를 두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이 상처 투성이인 피해자들이 나서 핵폭탄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당시의 기록이 이제는 핵폭탄만이 세계 안정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핵 보유국에 참상을 알리는 중요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오타

  : 173페이지 3번째 줄 -> 하지지만 - 하지만

   168 페이지 아래에서 2번째 줄 -> 아름다움'으 - 아름다움'을

   200 페이지  위에서 5번째 줄-> 함께 톺아 - 함께 돌아



l*****7 2012.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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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히로시마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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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게는 굉장히 낯선 지명이다.   나가사키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   이라는 정보밖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그 한가지가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들의 죽음은 모두 원폭 후유증에 따른 비참한 죽음이며, 원폭을 저주하는 원폭 반대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만 여겨져야 하는 것일까? ... 원폭 반대를 위한 자료로 이용되기보다는 보통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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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게는 굉장히 낯선 지명이다.

 

나가사키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

 

이라는 정보밖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그 한가지가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들의 죽음은 모두 원폭 후유증에 따른 비참한 죽음이며, 원폭을 저주하는 원폭 반대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만 여겨져야 하는 것일까? ... 원폭 반대를 위한 자료로 이용되기보다는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후유증도 없는 낙천적인 피폭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12~13p(마쓰자카 요시마사)

 

 서민들에게도 분노는 있지만 그 표현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우리도 그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지 않나요?

 

 64p(가나이 도시히로)

 

 1945년 가을, 미군쪽 원폭재해조사단이 발표한 "원자폭탄 방사능의 영향으로 죽을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고, 잔존 방사능에 의한 생리적 영향은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성명이 세상에 유포되고 난 뒤 10년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히로시마의 신문기자로서 그는 가슴속에 꾹 누르며 참아 왔다.

 

 65p

 

 명백한 원폭증 환자라고 해서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는 없다. 피폭 전에는 전혀 병이 나지 않던 체질이었는데도, 이렇다할 특별한 증상은 없지만 그날 이후로 분명 건강한 몸이 아니라는 말을 나는 너무나 자주 들었다.

 

 81p

 

 자신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이 살아남은 자가 비참한 죽음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죽은 자는 살아남은 자의 생명의 일부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죽음 이후의 생명에 대한 믿음이 미야모토 사다오 씨의 원폭병원 활동이었고 도게 산케치 씨의 입당이었던 것이다.

 

114p

 

 히로시마의 의사들은 피폭당하여 부상을 입은 몸으로 곧바로 의료 활동에 참가했다. 자신들도 품 안에서 고통받는 환자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고통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불안해하면서도 피폭 직후 구조 활동을 벌였다.

 

125p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청년은 네 살이던 여름에 피폭됐다. 그는 백혈병을 앓으며 스무 살을 원폭병원 침상에서 맞이했다. ... 백혈병을 치료하는 의사는 초기 단계에서 엄청난 백혈구의의 증가를 저지하며 이른바 질병의 '여름휴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 ... 의사들은 청년을 위해 그의 병력을 숨기고 취업을 알선했다. ... 청년은 어느 인쇄소에 취직했고 회사 동료들에게 사랑받는 좋은 직원이었다.

...

 그러나 2년이 지나 충만한 '여름휴가'는 끝이 났다. 청년은 심각한 구토증에 시달리다 재입원했고, 관절 마디마디 전해 오는 극심한 통증에다 백혈병 환자가 겪는 온갖 최악의 고통 끝에 사망했다. 1주일 뒤 죽은 청년의 약혼자가 청년을 돌본 의사와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

그들은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짐작하고 서둘러 약혼했을 것이다. 끝내 청년에게는 죽음의 시간이 찾아왔고 아가씨는 온화한 각오로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 아마 그녀는 백혈병에 걸린 청년을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조만간 다가올 확실한 죽음을 두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을 터이다.

 

159~164p

 

 물론, 나는 기독교인으로 자살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l 2012.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히로시마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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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의 붕괴로 인해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달라지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지만, 핵 원료를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기회였기에 세계 곳곳에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것은 핵무기의 보유가 아닐까 한다. 냉전 시기 그리고 그 이후 핵을 통해서 서로간의 견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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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의 붕괴로 인해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달라지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지만, 핵 원료를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기회였기에 세계 곳곳에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것은 핵무기의 보유가 아닐까 한다. 냉전 시기 그리고 그 이후 핵을 통해서 서로간의 견제를 가능하게 만들어 직접적인 전쟁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그 목적에 어느 정도 공감했었지만, “후쿠시마 노트”를 읽으면서 그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1960년대의 후쿠시마를 여행하고 그때 그곳의 삶과 현실을 적고 있는 책이다. 원폭의 피해 등을 위한 여러 집회와 정치적인 논의가 계속되었지만, 다양한 집단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분열을 보이고 있을 때, 저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취재차 히로시마를 방문하게 되고, 이때를 기점으로 가끔 히로시마를 찾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나가고 현실 속에서 버티고 서있는 진정한 히로시마 사람들의 “인간의 위엄”을 만나게 되면서, 전쟁 후 잊고자 했던 혹은 회복이 되었을 것이라 막연하게 넘겨짚었던 그 생각들에 일침을 놓는다.


침묵할 수도 있었지만, 다시금 스스로의 상처를 설명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런 아픔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믿으며 활동하는 사람들, 원폭의 피해자에게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늘 고민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현실 앞에서도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치료에 노력하는 의사들,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숨기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고 싶지만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자 하는 원폭 피해자들, 언제 다시금 질병이 자신의 삶을 삼켜버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살아가고픈 젊은이들, 많은 이들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삶의 모습은 어떨지 불안하기도 한 히로시마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저자는 잊고자 했던 또는 먼 곳 어딘가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일이라 여기며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연대가 필요한 이들에게 공감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막연하게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었고, 그 피해 혹은 원폭 이후의 삶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에, 어떤 문제가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의 경우 오래전에 쓰여 졌기에 오늘의 현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한번 마주보게 되면 눈을 감아도 또는 고개를 돌려도 다시금 떠오를 것 같은 그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음을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짧은 글을 통해서 히로시마 사람들의 삶과 인생, 아픔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먼 곳에 사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며, 인간의 결정과 선택으로 인해 그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음을, 그리고 이런 잘못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생각된다.


d*******p 2012.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오에 겐자부로의 반핵 평화 메시지 [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반핵 평화 메시지 [히로시마 노트]" 내용보기
저에게 히로시마란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원자폭탄이 터진 곳, 그리 강하지 않은 듯한 프로야구구단의 연고지 이상으론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한 번도 가본적이 없고,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자주 접한 곳이 아니어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에겐 다르게 다가온 곳이었습니다. 그런 오에 겐자부로가 1963년 6월부터 1965년 5월까지 히로
"오에 겐자부로의 반핵 평화 메시지 [히로시마 노트]" 내용보기

저에게 히로시마란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원자폭탄이 터진 곳, 그리 강하지 않은 듯한 프로야구구단의 연고지 이상으론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한 번도 가본적이 없고,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자주 접한 곳이 아니어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에겐 다르게 다가온 곳이었습니다. 그런 오에 겐자부로가 1963년 6월부터 1965년 5월까지 히로시마를 여러 차례 방문으로 하고는 그들의 아픔, 상처에 아파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제9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열리는 1963년 여름의 히로시마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의 히로시마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묘지이고 아주 조그마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 위령탑이 시내 곳곳에 널려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전 세계에 알려진 히로시마·나카사키는 원폭의 위력이지 원폭피해의 인간적 비참함은 아니다 (p. 65)"라고 썼듯이 그는 하로시마도 히로시마지만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춥니다.

 

종전 뒤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 원폭증이 발생하자 인간답게 죽고싶다며 자살을 하는 사람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담담히 써내려 갑니다.

 

억울하게 희생되고 고통을 받는 그들의 심정을 전쟁을 겪지 않은 제가 단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피해자라는 입장으로 글이 쓰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옮긴이가 마지막에 언급했듯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희생되었다고 ‘추정’되어지는 2만여명의 조선인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가혹한 일이 일어난 히로시마의 인간 세상에서는 위엄이라는 말도, 굴욕 또는 수치라는 말도 단순하게 쓸 수 없다. 적어도 그런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항상 가지고 나타난다.(p. 106)라는 표현을 합니다.

 

또한 “이젠 미국도 일본도 원망하지 않아요. 비록 전쟁으로 불구가 되긴 했지만, 오히려 한국인인 내가 일본에서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일본인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요. 저는 일본인이라거나 한국인이라는 문제는 제쳐 두고, 자식을 다섯이나 잃은 어미로서 원수폭 금지만을 바랄뿐입니다. (p. 88)”라는 한국인 노부인에 대한 기사를 잠깐 인용한 것이 전부입니다.

 

인류가 다행히 핵무기 공격을 두 번 다시 겪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나날 속에서 살아남은 히로시마 사람들의 지혜를 분명히 기억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합니다. 역시 팔이 안으로 굽듯 그의 눈에는 히로시마는 단지 피해자이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다른 사람이 겪게 해선 안 된다”라는 피폭한 평화운동 참가자들의 의지는 백번 공감을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왠지 씁쓸한 덜 공감이 가는 평화르포였습니다.

y********a 2012.09.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