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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사 재무장과 핵 발전, 자위대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왕이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여하려 하자, “나는 전후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수상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나는 오키나와를 잘 몰랐다. 여행사의 팸플릿 속에서 오키나와는 남국의 관광지라는 특징으로 기억되곤 한다. 《오키나와 노트》는 현대 일본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인 오키나와를 다루고 있다. 오키나와는 원래 독립 왕국이었다. 100여 년 전인 명치유신 무렵까지는 '류큐'라는 그리고 일본의 오키나와 지배의 역사는 미국이 군정을 실시했던 독립 왕국이었다. 기간 27년을 빼고 나면 불과 100년도 채 안 되는 극히 짧은 기간이다. 일본에 편입된 류큐, 즉 오키나와는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2차대전이 종국으로 치달을 무렵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을 위해 오키나와에 상륙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남녀노소 17만 명의 목숨을 잃는다. 이어 1945년 4월부터 니미츠(C.W. Nimitz)포고에 의하여 미군정이 시작되고 거대한 미공군기지가 설치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다시 귀속되었다. 지금부터 18년 전 류큐인은 결코 자신들이 일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어폐가 있는 말일지 모르지만, 류큐 일반 백성들이 스스로 일본인이라는 자각을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 받은 교육의 영향 탓이다. 그런 류큐인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인으로서 기꺼이 죽은 것은 모두 교육의 영향 때문이다.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오키나와 인의 뿌리 깊은 피해 의식과 아픔의 세월을 말하고 있다. 100여년 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에 강제 편입되지만, 정작 패전 후엔 그 일본에게 버려져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어쩌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의 아픔을 가진 것이다. 1972년 오키나와 반환교섭이 급진전됐다. 그러나 오키나와 주민과 일부 야당은 반환과 함께 미군기지 철폐 또는 축소 특히, 핵기지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여 미국과 일본 양쪽 정부와 충돌했다. 이 때 오키나와 내에는 일본과 단절하려는 오키나와 독립론이 일어나 신문에는 '류큐 민족의 독립을 절규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고 류큐 독립당이 결성되기도 했다. 일본 자민당과 사토 내각은 이들의 주장을 묵살한 채 국회에서 비준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1972년 5월 비운의 땅 오키나와는 다시 일본의 영토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치기 현의 의사가 《류큐신보》에 이런 글을 투고했다. 류큐국 사람들이여! 제군들의 나라는 원래 독립국이네. 도쿠가와 시대나 그 이전 당나라 때 사쓰마 번이나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겨우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번듯한 독립국이 아니었던가?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제군들은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군사시설 말고는 본토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같은 영토이지만 조선은 독립했다. 타이완도 독립했다. 제군들의 류큐는 어째서 독립하지 않는가?…… 자유의 나라 류큐, 어떤가, 제군들의 나라다. 시시한 본토 복귀 염원 따위는 집어치워라. 제군들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이다. 1972년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반환되었지만 ‘미군 기지 안에 오키나와가 있다’는 현실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일본 면적의 0.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 시설의 75퍼센트가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오키나와 전투의 집단사(일본은 오키나와 주둔 군인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자살을 강요하였다)를 서술한 이유로 당시 군 관계자와 유족이 법원에 제소했고, 2007년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정에서 군의 강제 부분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2011년 4월의 대법원 판결은 오에 겐자부로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교과서 검정에서는 직접적인 ‘강제’를 서술하기 보다는 ‘군에 의해 내몰렸다’는 정도로 ‘관여’를 드러내는 경우 수정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다. 같은 시기 히로시마로 향한 일본의 눈과 오키나와를 향한 일본의 눈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히로시마에서는 피해자 일본을 적극적으로 내세우지만, 오키나와는 그들의 기억에서 지우려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키나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본의 침략 야욕이 시작된 출발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노트》를 쓰면서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의 질문을 더욱 많은 일본인들이 스스로에게 해 보기를 바란다. 일본인이란 무엇일까? 그렇지 않은 일본인으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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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8 너와 내가 이웃이 되려면 ― 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 이애숙 옮김 삼천리 펴냄, 2012.8.17. 우리 집에서는 살림돈을 조금 모으면 으레 ‘오키나와 까만설탕(흑당)’을 장만합니다. 오키나와에서 자라는 사탕수수를 그대로 졸여서 만든 ‘까만 덩어리’는 더없이 맛나고 여러모로 쓰기에 좋습니다. 배고플 적에 먹어도 되고, 기운이 빠졌을 적에 먹어도 되며, 떡볶이를 할 적에 넣어도 됩니다. 사탕처럼 먹어도 맛나지요. 그런데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뒤로 ‘오키나와 까만설탕’을 손사래치는 사람이 꽤 늘었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일본하고 오키나와(류큐)는 서로 다른 나라인데, 후쿠시마 핵발전소하고 ‘오키나와 까만설탕’이 어떻게 이어진다고 그럴까 아리송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일본이고 류큐(오키나와)는 류큐이기 때문입니다. 정 모르겠다면, 세계지도를 펼치면 됩니다. 세계지도를 펼쳐서 ‘류큐’가 어디에 있고, 류큐섬에 있는 ‘나하’라는 도시가 일본 도쿄나 후쿠시마하고 어느 만큼 떨어졌는지 자로 재 볼 노릇입니다. 그리고 이 자로 다시 류큐와 한국이 어느 만큼 떨어졌는지 재 볼 노릇이에요. 류큐섬하고 어느 나라가 더 가깝고 어느 나라가 더 멀까요? 후쿠시마하고 훨씬 가까운 나라는 어디일까요? .. ‘나는 왜 오키나와에 가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너는 왜 오키나와에 오는가?’라고 거절하는 오키나와의 목소리와 겹치며 언제나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 본토 일본인은 오키나와 화생방 부대의 위협이 없는 땅에서 원자력잠수함의 자유로운 출입에 대한 방호책을 대충은 갖추고 살고 있다 … ‘과연 원폭 체험은 일본인에게 참 경험이 되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야만 한다. 어쩌면 원폭의 참 경험이라는 인간적 샘물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갈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 (18, 51, 109쪽) 일본은 류큐섬을 식민지로 삼다가 미군기지로 내주었다가 일본땅 가운데 하나로 끌어들였습니다. 일본이 류큐섬을 식민지로 삼기 앞서까지 류큐섬은 홀로 아름답게 삶을 이루던 터전입니다. ‘일본에 있는 오키나와’가 아니라 ‘태평양에 있는 류큐’입니다. 그런데 이 류큐섬 옆에 ‘게라마 줄섬(열도)’이 있고, 게라마섬에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천황을 섬긴다고 하면서 아시아에 전쟁바람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 군대가 류큐섬 사람들을 모질게 괴롭히고 짓밟다가 죽였어요. 이 같은 이야기는 ‘마루키 도시’ 님과 ‘마루키 이리’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오키나와의 목소리》(꿈교출판사,2013)에도 아주 잘 나옵니다.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엮은 《오키나와의 목소리》를 읽으면, 평화로우며 사랑스럽던 작은 ‘섬나라 류큐’에 어떤 군대가 끔찍하게 몰려들어 온통 잿더미와 주검더미로 만들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류큐사람은 조선사람처럼 ‘일본에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가야’ 했고, 류큐사람도 조선사람처럼 나가사키에서 핵폭탄에 맞아서 죽거나 피폭후유증으로 오랜 나날 괴롭게 앓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짓이라 할 텐데, 일본은 일본이라고 하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그악스럽게 괴롭힙니다. 더 들여다보면, 일본은 일본이라는 테두리 안쪽에서도 저희끼리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한국 사회도 일본 사회와 다르지 않아요. 한국도 한국이라고 하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한국으로 오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가 어떤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는지 들여다보면 잘 알 만합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쪽에서도 학벌에 따라 따돌리고, 지역차별이 크며, 성차별과 신분차별도 끔찍합니다. .. 오키나와에는 일하러 가서 피폭되어 귀향하거나 원폭 관련 질병에 대한 전문적 치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수많은 사람들이 증인으로 생존해 있다. 하지만 원폭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을 방법이 없어서 피폭자들 대부분이 침묵하고 있다 … 나하 군항에서 일하는 잠수부들이 몸에 이상을 호소했다. 코발트-60에 오염된 진흙을 계속 채취하여 체내에 오염을 축적시킨 물고기 틸라피아와 섭조개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미군은 잠수부들의 이상이 방사능과 관련 없다고 단언하고서 그들을 본토 원폭병원으로 보내려던 전군노의 계획을 가로막았다 .. (29, 48쪽) 평화를 바라려면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평화를 바라려면 손수 흙을 지어야 합니다. 총이나 칼을 든 평화란 없습니다. 권력을 한손에 거머쥔 채 평화를 말할 수 없습니다. 돈주머니를 홀로 꿰찬 채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가른 채 평화를 읊는 일이란 덧없습니다. 전쟁무기가 있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은 안 가르치면서 시험성적으로 등급과 계급을 만드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제국주의 일본도 평화롭지 않았으나, 오늘날 한국 사회도 평화롭지 않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람을 사람답게 돌보지 않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웃을 아끼거나 섬기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지 않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느니 경제개발이라느니 하고 내세우면서 온 나라를 뒤집어엎는 짓을 잇달아 벌입니다. 한국에서 왜 새마을운동 같은 끔찍한 짓이 생겼고, 이런 새마을운동 깃발은 아직도 펄럭일까요? 한국은 조금도 안 평화롭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새마을운동 바람이 분 뒤로, 시골을 고향이나 보금자리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고, 아직도 새마을운동 깃발이 펄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시골이 시골답게 있을 수 없습니다. .. 나는 우익이 쳐들어왔다고 쓰고 싶지는 않다. 우익이 방해 연설을 했다는 말도 사용하지 않겠다.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쳐들어온 자들이나 더러운 말을 내뱉는 남자와 내 피가 직접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 오키나와가 미국 군부뿐 아니라 본토 일본인이 새삼 인지한 핵기지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한테 물었다.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그저 씁쓸히 침묵하는 내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 복귀는 ‘평화의 거점으로서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 (142, 154쪽) 오에 겐자부로 님이 쓴 《오키나와 노트》(삼천리,2012)를 읽습니다. 1960년대 끝무렵부터 1970년대 첫무렵 사이에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어느덧 마흔 해나 묵은 글인데, 마흔 해를 묵은 글이라지만, 류큐(오키나와)와 일본을 묶는 슬픈 쇠사슬은 제대로 풀렸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랑스러운 끈이 아닌 그악스러운 쇠사슬이 너무 단단합니다. 한국사람은 왜 서울로 가려고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서울에서 살려고 할까요? 서울이 아니면 부산, 부산이 아니면 대구, 대구가 아니면 인천이나 대전, 또 이런저런 큰도시, 저런그런 큰도시, 오직 도시만 바라보는 얼거리인데, 왜 자꾸 이렇게 나아가려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대학교를 가야 할까요? 대학교 졸업장은 왜 따야 할까요? 왜 꿈을 안 키우고 졸업장만 따려 할까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왜 교과서 시험공부만 하고,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는 공부는 안 하거나 못 할까요? .. 1903년의 이른바 인류관 사건은 당연히 그런 오키나와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권업박람회 기간에 학술 인류관이라는 부스에 오키나와 여성 두 사람이 ‘진열’되었다. 그녀들은 곰방대와 야자수잎 부채를 들고 오두막에 앉아 있었고, 채찍을 든 남자가 여인들을 ‘이놈’이라고 부르며 설명했다고 한다 … 볼도저의 굉음,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찬미하는 노랫소리는 그 의문의 목소리를 뭉개고 울려퍼지지만, 언제까지 굉음과 노랫소리를 지를 생각인 것일까 … 오키나와에 대한 무지의 단순화는 의식적인 회피와 냉혹한 일본인의 행태를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침략적으로 날뛰지 않을 때조차 일본인은 단순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인을 차별했다 .. (165, 167, 171쪽) 너와 내가 이웃이 되려면 서로 무엇을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주먹을 휘두르면서 서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나한테 더 있는 돈을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배가 고픈 이웃한테 밥 한 그릇 내주지 않으면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내 손에 있는 것을 서로 나누려 하지 않을 적에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서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지 않고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오에 겐자부로 님은 《오키나와 노트》라는 책을 쓰면서 ‘류코와 일본 사이에 맺힌 앙금’을 모두 풀지는 못합니다. 아마 풀 수 없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풀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서로 이웃이 되면 앙금이란 없어요. 서로 벗이 되고, 서로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되면 어떠한 앙금도 없습니다. 이를테면, 왜 류큐에 미군기지를 그렇게 많이 두어야 했을까요? 도쿄 앞바다에 미군기지를 두어야지요. 왜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세웠을까요? 도쿄 한복판에 핵발전소를 세워야지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커다란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짓겠다면, 서울이나 부산 말고 문경이나 장흥 같은 데에 지어요.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면, 서울이나 부산 한복판에 지어요. 대학교가 서울에 이처럼 많이 다닥다닥 모이도록 하지 말고, 서울에는 딱 한 군데만 남기고, 다른 모든 대학교는 군마다 한 군데씩 있도록 해야지요. 모든 길이 서울과 부산으로만 이어지도록 하지 말고, 군과 군 사이를 살가이 잇는 작은 길을 내야지요.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몽땅 없애고, 군부대와 전쟁무기에 들이던 돈은 이제부터 마을과 삶을 가꾸는 데에 써야지요. 경제개발이나 경제발전은 살포시 내려놓고, 사랑과 꿈을 아이들이 품고 키우면서 일구도록 이끌어야지요. 대외무역에 기대지 말고, 이 나라에서 먼 옛날부터 모든 것을 손수 지어서 손수 누렸듯이, 모든 집·밥·옷을 누구나 손수 지어서 얻고 가꿔서 누리는 길로 나아가야지요. 댐을 지어 수돗물을 쓰는 얼거리가 아니라, 시골과 도시 어디에서나 냇물을 마시도록 해야지요. 큰 발전소를 짓는 얼거리가 아니라, 집집마다 제몫으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도록 해야지요. .. 자신들이 방치하고서 적을 향할 무기를 거꾸로 겨누고 자행한 강간에 대해, 먼저 자신을 속이고는 기만하기 쉬운 타인부터 의심 많은 타인까지 ‘거짓말’로 계속 왜곡시켜 나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 눈에 강간이 아름다운 ‘한순간의 사랑’으로 바뀐 것을 발견한다. 둔감한 상상력으로 그는 오키나와 현장에서 오키나와 여성 피해자가 “아니야, 그건 강간이었어!” 하고 소리치며 규탄하는 손가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라마 집단자결의 책임자도 그런 자기기만과 타자에 대한 기만을 끊임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보상하기에는 너무나 큰 죄 앞에서 그는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한다. 그는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과 왜곡되는 기억의 도움을 받아 죄를 상대화시킨다. 그리고 자기변호의 여지를 남기려고 과거 사실의 날조에 힘을 쏟는다 … 실제로 지금 재일조선인을 둘러싸고 젊은 세대의 윤리적 상상력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번 보라. 지극히 평범한 어리석은 고등학생이 실체도 모르는 것과 연결된 사명감, ‘어떤 고양감’에 휩싸여 조선 학생을 때리는 치졸하고 파렴치한 실상을 보라. ‘전쟁 중에 일어난 여러 사건과 아버지들의 행동’과 똑같은 짓을 신세대 일본인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반복할 때 … 오키나와의 무한한 이의제기의 목소리를 묵살하려고 못 들은 척 하거나 들을 수 있는 귀를 키우지 않는 것은 국가 범죄로 가는 새로운 포석이 아닐까 .. (184∼185, 189쪽)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이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함께 노래하고 웃으면서 춤을 춥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기에 ‘경쟁’이 불거지고 ‘순위’와 ‘등급’이 나타납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쓰레기는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먼 옛날부터 곱게 잇던 두레와 품앗이가 저절로 마을마다 되살아날 테니, 굳이 협동조합 같은 것은 없어도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기에, 스스로 노래를 안 부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길을 짓지 않기에, 신문과 방송과 책에 휘둘린 나머지, 손수 짓는 삶과 자꾸 동떨어집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지 않으면 벼랑까지 그대로 나아가다가 그만 굴러떨어집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어야, 바로 이곳에서 아름답고 푸른 숲을 이룹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지 않으면 이 지구별은 그만 꽝 하고 터집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어야, 바로 이 지구별이 온누리에 맑고 밝게 빛나는 사랑스러운 터전으로 거듭납니다. 4348.1.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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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슬픔은 오래 되었다. 조선시대만에도 당당히 독립국으로 주변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류큐왕국'이 바로 현재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 현이다. 우리 고소설인 <홍길동전> 속 이상국가였던 '율도국(유구국)'과 이름이 비슷하여 홍길동이 다스리던 나라로 비춰진 적도 있던 터라 역사공부를 하면서 관심을 가진 적이 있기에 나에겐 그리 낯설지가 않은 터였다.
그러면 언제 '류큐왕국'은 일본에 편입 되었을까? 일본이 이른바 '막부 국가'에서 '천황제 국가'로 탈바꿈한 명치유신(일본명: 메이지이신)을 단행하며 일방적으로 침략하여 일본 본토에 편입한 1879년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껏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을 외쳤으나 번번히 무시당할 뿐이었다. 그러다 태평양 전쟁이 마무리되던 때에는 일본 본토로 진격하는 미국을 막기 위해 전초기지로 이용되었고, 역부족이자 '본토 진공'을 조금이나마 늦추려는 방패막이로 전락하였다.
아픔은 그것으로 다하지 않았다. 방패막이로도 소용이 없어지자,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집단자결'을 강요당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미국쪽 종군기자에게 찍힌 벼랑에서 떨어지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쪽에선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라고 묘사하였고, 일본쪽에선 '목숨을 바쳐 조국에 충성하는 일본인의 결연한 의지'라며 죽음으로 본토를 사수하자는 '선전용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전쟁 당시에 오키나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결'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패배에 처한 본토군인들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집단자결'을 한 것이 아니라 '집단사', 또는 '집단학살'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전후 일본은 오키나와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말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들어서자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 공격'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당시 최강의 폭격기였던 'B-29'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뜨고 내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또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전역에 미국의 신탁통치가 내려진 것이다. 그러다 1951년에 본토는 미군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국의 군사기지 신세에 처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또다시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다. 전쟁 중에도 '본토 사수'를 위해 재빨리 버리더니, 재빠른 '본토 복귀'를 위해 오키나와를 이용한 것이다.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러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 지배 아래에서 독립을 꿈꾼다. 메이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귀속된 식민지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오키나와, 아니 '류큐' 사람들의 자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서 독립의 의지는 더욱 부풀어만 갔다. 그러나 1972년에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태평양의 작은 나라들이 속속 독립을 하면서 '류큐' 사람들도 독립의 꿈으로 부풀었건만, 결과는 일본에 다시 반환되어지는 것이었다. 다시 '오키나와'가 된 것이다. 더불어 독립의 꿈도 좌절되고 말았다. 여전히 미군 기지로 전락한 채로 말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일본은 무엇일까? 독립을 앗아간 것은 물론이려니와 제대로 일본 사람 취급조차 해주지 않는 일본을 향해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본토'에 살고 있는 일본인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일게다. 그들이 그런 취급을 하였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오키나와의 실정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본토인'들인데, 어찌 그 둘이 같은 수가 있을까?
오에 겐자부로는 이런 '오키나와'의 현실을 외면하는 '본토인'과 '일본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00여 년 전에 강제로 식민지로 삼아놓고서 철저히 이용만 해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제대로 '본토인(일본인)' 대접도 해주지 않는 짓거리를 서슴 없이 비판하였다.
뒤친이(옮긴이)는 말한다. 본토인들이 '오키나와'에 무관심한 것처럼 우리도 '류큐'에 대해서 모르긴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식민지 시절에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만하다가 희생을 당한 수많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묻히기도 한 그곳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없다고 말이다. 어쩌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애국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선으론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말이다. 허나 조금이나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들의 아픔은 과거의 아픔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나아가 훗날까지 이어질 아픔이라고 말이다. 그걸 꼭 꼬집어서 말해줘야 이해할만 한 것인가?
과거는 쉽게 잊혀진다.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다. 허나 <역사>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역사의 아픔>은 아문 상처를 비집고 다시 피가 솟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끝내 상처가 벌어져서 그 아픔 그대로 다시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면 당신은 느껴지지 않더란 말인가? 이 책에 쓰여진 지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오에 겐자부로가 느꼈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생생히 말이다.
< 삼성천양기, 류큐공화국의 국기란다. 독립되는 그날에 휘날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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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160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오키나와 현은 일본 큐슈에서 대만까지 이어지는 류큐 열도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보다는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탄생한 오키나와 현이 있기 전, ‘류큐왕국’ 이라는 독립국이 있었다는 것과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에 휘말려 전후 27년 동안 미군이 통치했다가, 1972년 일본에 복귀됐다는 아픈 근현대사를 가진 섬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기 전 미군정 시대의 1969년 1월에서 1970년 4월까지 오키나와를 돌아보면서 쓴 르포입니다. 사실 전후민주주의자여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천황의 훈장을 거절 했다고는 하나 적당한 반성을 느낀대로 적은 글이겠거니 하면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류쿠처분이후 오키나와 근현대사에도 오키나와와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본토 일본인의 관찰과 비평에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아주 뻔뻔스런 왜곡과 착오가 수없이 담겨 있다. 그것이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의 가장 추잡한 속성에 대한 자시선전이 저지르는 왜곡과 착오이다. (p. 20)”로 시작하는 신랄한 비판은 그의 시각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가 단순히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글을 미화하지는 않을거란 희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일본인은 복잡하고 모호한 세계의 중심 일본이라는 ‘중화사상’적 정서, 적어도 아시아의 중심 일본이라는 감각이 있다면서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왜 여태껏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으로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는 발상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육체와 정신이 뒤집어지는 불쾌감을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오키나와의 독립을 꾀하던 지식인들과 주민들의 물음에 답을 못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을 합니다.
당시 일본군이 한 일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기에, 본토에서 온 일본인 군대가 살아남기 위해 “부대는 지금부터 미군에 맞서 장기전에 돌입한다. 따라서 주민은 부대 행동에 방해하지 말고 식량 제공을 위해 깨끗이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는 대목에서도 그들이라면 그럴 수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1970년대 당시 섬의 수비대장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때가되었다면서 오키나와를 방문하려고 한다는 대목에서는 본토 일본인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때가 되었다는 건지....
“죄를 저지른 인간의 후안무치와 자기정당화. ‘거짓’피해자 의식 그 위에 여전히 끔찍한 공포를 조장하는, 윤리적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의 도착된 사명감이 있다. (p. 186)” 고 글을 쓴 저자이기에 당시에는 크게 문제가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한일간의 가장 큰 이슈가 된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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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오키나와 노트 오키나와를 떠올려 본다. 따뜻한 날씨와 너그러운 인심, 그리고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 가슴속이 천혜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벅찬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오에 겐자부로의 저서 《오키나와 노트》(이애숙 역, 삼천리)를 통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충격과 공포로 바뀌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직접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엮은 이 책은 오키나와 반환 운동으로 평생을 바친 후루겐 소켄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작된다. 차별과 억압 속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 소켄 씨의 모습이 오키나와의 실상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목차는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주제는 세 가지 핵심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바로 ‘전쟁’과 ‘강탈’, 그리고 ‘차별’이다. 오키나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쓰라림이 서린 땅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본토로 진격하는 미군을 막기 위해 오키나와를 최후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무려 3개월이나 지속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무자비한 학살에 절규하며 죽어갔다. 패전의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일본군은 주민들에게 미군의 포로가 되지 말고 자결하도록 강요한다. 이로 인해 부모가 자식을, 형이 아우를 죽이는 집단자결이라는 참상이 벌어진다. 지금도 오키나와 곳곳에는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념공원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저자도 신음하며 죽어간 영혼을 기리며 때때로 감정에 치우치기도 한다. “자네의 갈팡질팡하는 문장 스타일에서 피해망상의 징후를 발견한다.”(본문 147쪽)
오키나와는 ‘강탈’당한 땅이다. 일본 영토의 0.6%에 불과한 이곳에 주일 미군 시설의 75%가 자리 잡고 있다. 오키나와는 미국 입장에서 지리적 여건상 북한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동북아의 전략 요충지이다. 전쟁이 터지면 2시간 이내에 군 투입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오키나와 기지에 미군을 주둔시키며 그들의 영토를 강탈해 왔다.
오키나와는 ‘차별’받는 땅이다. 오키나와는 진정한 의미에서 일본이 아니었다. 본토 일본인은 오키나와를 일본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본토와 차별하며 냉대해 왔다. 1972년 미군 통치하에서 반환되기까지 오키나와는 본토 일본인의 왜곡된 민중의식 속에 갇혀버린 땅에 불과했다. 지금도 그 차별 의식은 계속되고 있다. 본토 출신인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일본인이란 무엇일까? 그렇지 않은 일본인으로 나를 바꿀 수 있을까?” 《오키나와 노트》에는 에필로그가 없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나는 오키나와 노트를 도저히 내 가슴속에서 닫을 수 없다. 나는 오키나와를 기준으로 삼아 일본인으로서 자기 검증을 하기 위해서 이 노트를 썼다. 하지만 점점 논리적으로 완결시켜 끝마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본문 180쪽)
지금도 왜곡된 편견과 싸우는 오키나와를 위해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진정한 오키나와는 무엇인가? 진정한 오키나와 사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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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모습을 처음 본 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소나티네>였다. 책은 1969년 1월,오키나와 반환운동에 평생을 바친 후루겐 소켄 씨 장례식에서 출발한다.
올해는 일본의 패전으로 미군에 점령되었던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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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일본인은 일본인이 아닌것 같다. 오키나와는 휴양지로서 본토에 사는 많은 일본인들이 겨울이나 오봉야스미등의 휴가철에 자주 들러는 일본에 속한 섬이다. 포르투칼인들이 처음에 오키나와에 상륙하여 많은 유럽의 문물을 최초로 받아들여 일찌기 문명이 본토보다 더 발달된 섬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유럽풍의 건축물이 남아있어 일본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이는 알고만 있는것으로 실제로 오키나와를 방문한적은 없다. 예전에 "일본문화사"라는 책을 통해 근대의 일본문화를 책에서 읽었을 뿐이다. 오키나와 노트를 읽기전까지 오키나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속한 섬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일본인들은 오키나와를 포기하고 미국에 속한 섬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받았다. 우선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에서는 유명한 문학가로 알려져 있고 노벨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일본인이 어쩌면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생활할때 TV 대담 프로에서 여러번 얼굴을 대한 적이 있어 사진을 보고는 금새 이 사람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문학적 성향을 살펴볼 만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지 못해 이번 기회를 통해 저자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반전평화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는 사회운동가로서 많은 사회적 이슈에 참가했다고 한다. 일본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새삼 느껴본다. 현재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정치적 이슈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정치가들이나 정권실세들의 행태를 보고는 그들이 과연 정직하고 국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경제적 상황조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으로도 한국땅이라 알려진 사실을 왜곡하기에 바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바쁜 그들을 보면서 어쩌면 섬나라에서 사는 국민들의 국민성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일본국민들이 바라보는 일본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국민들 모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TV에서 시위하는 일본인들, 2차 세계대전의 잔재를 고스란히 가지고 야스쿠니 신사에 정렬한 참전 군인들....과연 그들은 세계인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이 나라를 위해 싸웠고, 그로 인해 일본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듯하여 한편으로 불쌍하기도 하고 글로벌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과연 일본은 세계인들과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지성인인 오에 겐자부로조차 오키나와는 일본땅인지 미국에 속한 미국땅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고 오늘도 전쟁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일본에 대하여 "일본인이란 무엇일까?" "그렇지 않은 일본인으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제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오키나와인들을 전쟁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식량을 축낸다는 이유로 오키나와에 살고있는 오키나와인을 자결로 내 몰았다는 사실에 과연 오키나와인은 일본인인가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오키나와는 미국땅은 아닌지 의문이다. 책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오키나와 반환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일본 본토에 사는 일본인은 오키나와를 오키나와인을 일본국민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것은 아닐까?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가덴마 미군기지는 현재도 미국기지의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러한 반환운동에 정치권이 강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일본의 안전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그 속에서 원자력 잠수함등의 폐수에 의한 환경오염은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인이 가져야 할 큰 상처가 아닐까? 이러한 상처조차로 치유하지 못하고 미적대는 일본은 과연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일본인이 맞는가 의문이다. 지금 한일관계를 되집어 보면서 과연 일본인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고, 일본에도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지성인이 있어 아직은 희망적이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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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일본이면서 동시에 일본이 아닐 수도 있는 땅.
우리 제주도와 비슷해보이면서도 어쩐지 달라보이는 곳.
예전에 류쿠왕국이라는 한림신서를 읽었다. 류쿠왕국은 비교적 최근까지 일본 본토와 독립적인 왕국으로 존속했다. 그들의 문화는 일본인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꽤 이질적이다. 특히, 미군정 시절 일본정부가 류쿠를 미군기지로 제공하면서 그러한 이질성은 더 커졌다.
현재의 오키나와 상황이 지속되는 한, 공적으로 본토 일본인은 오키나와와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서 면죄부를 받을 수 없으며 어떤 참회도 할 수 없다. ... 류쿠처분(류쿠의 강제합병) 이후 오키나와 근현대사에도 오키나와와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본토 일본인의 관찰과 비평에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아주 뻔뻔스런 왜곡과 착오가 수없이 담겨 있다.
21p
나는 예전에 미국에서 핵전략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상한 경험이 떠올랐다. 그는 연필로 극동 지역의 지도를 그렸다. 그런데 일본열도가 오키나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작았다. 생각해보면 핵전략가의 머리속에서 나온 너무나 자연스런 지도였을 뿐이다. 핵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희생과 차별의 총량에서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아니 그보다도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33p(1969년 9월)
그런데 일본 본토보다 좁고, 중국 대륙에 더 가깝고, 섬 전체가 노출된 오키나와가 핵기지로서 위협 확산에 그토록 큰 역활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 오키나와에 핵기지를 두고 상대를 위협하는 백악관이나 펜타곤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오키나와 민중은 보복 핵공격으로 섬멸당할 사람들이다. 상대국의 정치 지도자와 군부의 상상 속에서도, 오키나와 민중이 궤멸되는 상황을 작은 희생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배치한 핵무기가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상황을 분명히 알고 있다.
60p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7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일본에서 골치덩어리 취급을 받은 듯하다. 2005년 이 책의 오키나와 전쟁 부분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최근 판결은 이 책의 손을 들어 준 듯하다.
여학생들은 오키나와 전투에 강제로 끌려 나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상상할 힘마저 빼았기고 참혹하게 죽었다. ... 총리의 눈물은 오키나와 여학생들의 죽음을 거짓으로 꾸며 낸 여학생들의 추상적인 죽음으로 단순화시켜 버렸다. ... 그리고 눈물이 마르자 이제 '오키나와 문제는 종결되었다'라는 한가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170p
수치를 모르는 자기기만과 거짓이 수많은 이른바 '오키나와 전기'를 휩쓸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군의 포위로 군대는 물론 그들에게 버림받은 오키나와 민중도 구조받기 힘든 상황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생면부지의 오키나와 여성을 말없이 범했다. 20 여년이 지나서 그 병사는 자신이 저지른 강간을 '한순간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이중 삼중으로 비열한 강간을 저질렀다. ... 그는 오키나와 현장에서 피해자가 '아니야, 그건 강간이었어!'하고 소리치며 규탄하는 손가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184~18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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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만을 특히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본 문학을 즐겨 읽는 편이다. 많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은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일본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할지 때로는 가벼움을 통해, 솔직한 따뜻함을 통해, 또 다양한 형식과 구성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일본 문학이 재미있었기에 자연스레 일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듯 하다. 역사적인 시각의 차이 혹은 국가 간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 등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과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일본을 찾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당간의 문화적인 교류가 있어왔기에 일본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부분도 없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이에 비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한정된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그들의 역사적인 상황, 사회적인 여건, 또는 일본인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 등의 전반적인 인상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었기에,「오키나와 노트」를 읽으면서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했던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오키나와에 대한 역사적인 상황을 알 수 없기에 이로 인해 누적되어 있는 감정들, 본토라 불리는 일본 내지 지역의 주민들과 오키나와 주민들 사이의 관계와 상황, 그리고 오키나와가 미국의 신탁통치로 인해 경험해야 했던 그 모든 과정들을 후덴마 기지와 관련된 기사들을 통해 잠시 접한 지식이 거의 전부였기에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가깝다고 인식했던 일본에 대해서 정말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아시아의 국가이며 역사적으로 상당히 서로에게 영향을 준 국가임에도 서로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인문학적 접근이 부족했음을 생각해보게 된 책이기도 했다. 「오키나와 노트」의 경우 60년대 후반 오키나와의 상황과 모습을 적고 있는 글이기에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생각해 본 것은, 상대적인 차별과 박탈에 대한 무관심, 충분한 이해와 주민들의 요구를 애매모호하게 응수하며 본토 반환을 확정한 일본의 모습, 그 속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며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하는 씁쓸한 상황임에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당한 거절을 하고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모습을 읽으면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지, 각 도시들의 여건과 그들의 목소리를 어떠했는지, 한 국가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혹은 어떤 불편한 문제 등에 대해서 은근히 모른 척 했던 적은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저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무감각하게 오키나와를 바라보고 있는 일본인의 시선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일본의 모습 그리고 그와 다르고자 하는 의식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을 바라보고자 하는 그 시선이 모호하게 느껴졌던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쉽게 답할 수 없는 그 질문에 대해서 끝없이 답을 찾고자 노트를 써내려가는 그 과정을 읽는 것이 조금은 어렵기도 했지만, 분명 필요한 질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우리만의 오키나와를 인식할 때가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되짚어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