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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서서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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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서서비행 금정연 글 마티 펴냄,2012.8.17./13800원     시골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꾼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과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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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 서서비행
 금정연 글
 마티 펴냄,2012.8.17./13800원

 


  시골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꾼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과 사고 현장에 발빠르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문에는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아주 잘 실립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신문기자는 어느 작가 한 사람을 취재한다고 해서 ‘어느 작가 한 사람이 쓴 글과 책을 두루 읽’지 않아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무턱대고 물어 봅니다. 곧, 오늘날 신문에는 ‘어느 작가 한 사람 이야기’가 깊거나 넓거나 알차게 실리지 않습니다.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을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는다 하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을 뿐입니다. 나는 잡지를 안 읽습니다. 잡지를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지에 글을 싣는 분들은 으레 교수이거나 학자이거나 지식인인데, 이들은 모두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분이 드물고,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사귀는 분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곧, 신문도 잡지도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요. 어쩌다 한두 번, 가뭄에 콩 나듯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룰 뿐입니다.


  이제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불거지던 때, 정작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시골마을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시골사람이 어떻게 힘든가 하는 대목을 옳고 바르며 알차게 담은 신문은 없습니다. 4대강 삽질을 다룬대서, 이 4대강 삽질이 시골마을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시골사람을 얼마나 죽이는가를 깊고 넓으며 알맞게 다루는 잡지는 없어요. 왜냐하면, 4대강 언저리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글로 빚는 분이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 하루키는 농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사 주는 것은 고맙지만, 프루스트 정도는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말하자면 K에게는 박노자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신의 입장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  (29, 48, 271쪽)


  나는 퍽 어릴 적부터 ‘아줌마’가 쓰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왜 좋아했는지 잘 몰랐으나, 요즈음은 환하게 깨닫습니다. 아줌마들은 글을 쓸 적에 으레 ‘아이와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를 섞어요. 아저씨들은 글을 쓰며 ‘아이와 부대끼는 삶’ 이야기를 거의 못 써요.


  나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볼 적에도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사진책조차 나오기 몹시 어렵기 때문에, 참 훌륭하며 멋스러운 사진책이라고 느낌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윤미네 아저씨는 바깥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밤늦게 돌아오거나 주말에 겨우 짬을 내어 아이들을 만나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윤미네 아저씨는 윤미가 어릴 적에 ‘매우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얼굴 겨우 보는 아버지인 터라, 윤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 사진기를 안 쳐다보’고 싶습니다. 윤미는 아버지하고 얼굴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가끔 얼굴 스치는데 사진으로만 찍히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사랑하는 짝꿍 둘이 만나는데, 서로 먼 데 떨어져 지낸 터라 얼굴 보기조차 어렵다면, 이렇게 지내다가 겨우 얼굴 한 번 볼 틈이 났을 때에, 서로 무얼 할까요. 사진을 찍을까요?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맞추든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든 하겠지요. 윤미네 아저씨로서는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적바림하고 싶은 때’가 있었겠지만, 윤미한테는 ‘아버지하고 새롭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대목을 미처 짚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윤미네 아저씨 아닌 윤미네 아줌마가 사진기를 손에 쥐어 윤미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는, “윤미네 집”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저씨들 바깥일 얽매인 삶으로는 도무지 못 담고 도무지 생각 못하며 도무지 깨닫지 못할 깊고 넓으며 아름다운 이야기 그득그득 길어올릴 수 있어요.


.. 나는 알아야 했다.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를 말해 줄 책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까닭도, 낯선 도시를 개처럼 돌아다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광고 속 그들’이 노래하는 대한민국은 소비자의 팀일 뿐이다. 적어도 나의 팀이 아니다 ..  (165, 170, 286쪽)


  겨울비가 내립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 겨울비가 내립니다. 이 한겨울에 우리 식구는 겨울비를 누립니다.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 따스한 겨울비를 누립니다. 추운 곳에서 살아가면 겨울눈을 누리겠지요.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펑펑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테고, 도시 한복판이나 한켠에서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물결을 바라보겠지요.


  삶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숲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숲을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공장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아파트와 공장을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삶이라면 돈을 생각합니다. 이름값 드날리는 삶이라면 이름값을 생각합니다.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를 늘 만나는 삶이라면 풀벌레와 풀노래를 생각합니다. 맑은 냇물이 집 곁에서 흐르는 삶이라면 맑은 냇물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삶을 부릅니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즐거운 삶을 부릅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사랑스러운 삶을 부릅니다.


  더 낫거나 더 나쁘다는 삶은 없습니다. 누리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더 기쁘거나 더 슬프다는 삶은 없습니다. 좋아하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 그들은 별 생각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허한 당위와 텅 빈 대의. 아무려나. K는 상명하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거기에 일종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특유의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터였다 … 말하자면 K는 출구 없는 회로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건 차라리 무척 느린 자살에 가까우니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 바로 K가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짐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것이다 ..  (264, 269, 379쪽)


  금정연 님이 쓴 《서서기행》(마티,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책이란 삶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인 만큼, ‘삶을 읽는 삶’이요 ‘삶을 말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곧,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지만, 늘 ‘삶을 읽’는 나날입니다.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지만, ‘삶을 읽은 느낌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누구이든 이녁 삶 아니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곧, 글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삶을 읽고 삶을 쓴’다고 할밖에 없어요.


  나날이 ‘책 말하는 책’이 자꾸 나오는 까닭은 ‘삶 말하는 삶’이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책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내 이웃 삶을 좋아하며 마주하는’ 삶입니다. 입으로 말을 주고받아 이야기꽃을 피우듯, 손으로 글을 써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글 한 자락으로 태어납니다. 글 한 자락이 모여 책 한 권으로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을 읽어 새로운 삶을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을 생각하며 느낌글 하나 갈무리합니다.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오직 하나 있겠지요. 내가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바로 하나 들 만하겠지요.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살아가니까요. 삶결이 책결이요, 생각무늬가 글무늬입니다. 삶빛이 책빛이며, 생각자락이 글자락입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이달의 사락 h*******e 2013.01.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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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을 하는지 사무실위에서 들려오는 드릴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이미 읽고 있는 책이 있음에도 도서관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신간코너에 서서비행이라는 재미난 제목을 단 책이 눈에 띕니다. 생계독서가, 매문기라는 발칙하고도 자학적인 부제는 취미독서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인터넷 서점 인문분야 MD를 하다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어서 서평가의 길로 접어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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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모델링을 하는지 사무실위에서 들려오는 드릴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이미 읽고 있는 책이 있음에도 도서관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신간코너에 서서비행이라는 재미난 제목을 단 책이 눈에 띕니다. 생계독서가, 매문기라는 발칙하고도 자학적인 부제는 취미독서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인터넷 서점 인문분야 MD를 하다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어서 서평가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그를 보면 정작 도서관 사서와 책방 점원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입니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게 좋다"는 보네커트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전문 서평가의 길을 걸어가며 쓴 글을 골라 책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들이 책을 년간 몇 권 안 읽는다고 하는데도 직업적 서평가뿐 아니라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걸 보면 독서에도 양극화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업계나 도서판매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 제 입장에서 이미 많은 이들이 서평을 남긴 책에 대하여 또 하나의 독후감을 더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독서기록을 남기고자 한다면 비공개로 하는 것이 겸손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하는 이유는 이웃들에게 공감의 지원을 받고 생각을 교환하고 이웃의 리뷰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책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직 인터넷 서점 MD출신이라 보았던 업계의 뒷이야기도 살짝 전하고 있는지라 인터넷 서점에서 대부분의 책을 구입하고 책을 읽은 소감을 그 곳에 올리기도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평하고 있는 책을 꼭 닮은, 닮으려고 노력하는 서평"이 좋고, 지겨운 책에는 지겨운 서평, 재미난 책에는 재미난 서평을 쓰는 것이 서평가의 윤리랍니다.


   동네 책방과 달리 온라인 서점이 가진 장점이 진열공간의 제한이 없는지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출판사에서 절판되면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콜렉션은 저자의 우려대로 아름다운 장정으로 소유욕을 자극했음에도 절판되었고 낱권으로 몇 권만 판매중인 것을 저도 확인했습니다. 저자가 맛깔스럽게 소개한 김수영과 박인환, 헤밍웨이와 피츠제랄드의 애증의 관계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겨서 찾아봤더니 헤밍웨이 vs. 피츠제랄드도 유감스럽게 절판입니다.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초판본을 소장해야겠다는 열심은 없지만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보다는 진주같은 책이 진흙속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독서가에게 관심을 환기시키는 서평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y***d 2012.12.01.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서서비행》그러니까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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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내가 읽은 책은 총 110권이다. 그렇게나 부지런히 읽었는데, 이것밖에 못 읽었어. 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수치로 보면 거의 3일에 한권 꼴로 매일같이 책을 봤다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 나라 직장인들의 1년 평균 독서량이 5권도 안되는 걸 아냐고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인데, 아무리 계산해봐도 1년에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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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내가 읽은 책은 총 110권이다. 그렇게나 부지런히 읽었는데, 이것밖에 못 읽었어. 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수치로 보면 거의 3일에 한권 꼴로 매일같이 책을 봤다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 나라 직장인들의 1년 평균 독서량이 5권도 안되는 걸 아냐고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인데, 아무리 계산해봐도 1년에 읽을 수 있는 책은 제한되어 있고 그렇다면 나의 남은 생애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란 고작 3,000여권 내외일 거란 말이다. 하루에도 수백권씩 쏟아지는 책들, 매일같이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고, 서점에라 가지만, 내가 읽어야할 그 수많은 책들 속에서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그누구도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읽을 수 없다는 것.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 정도.

 


그래서 이런 나에게는 동지가 필요하다. 1년에 베스트셀러 한권 읽을까 말까하는 평범한 대다수의 직장인들 말고, 책에 대한 미칠듯한 애정으로 습관적으로 마구 책을 구입하거나, 희귀한 책들을 수집하거나, 강박적으로 읽어대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말이다. 이 책의 작가는 자신을, 책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애서가도 아니고, 책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말하는 독서광도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나는 그의 애정넘치는 서평이 재미있었고, 뭉클했고, 친근했다. 마치 나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아직 의심을 버리지 못한 당신은 묻는다. 영화 속 졸부들이 하드커버 껍데기로 서재를 채우는 일과 무엇이 다르냐고. 그런 당신을 위도하는 에코의 일화가 있으니, 수많은 장서로 가득 찬 그의 서재를 방문한 사람이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렇게 묻는다. "와, 시뇨레 에코 박사님! 정말 대단한 서재군요. 그런데 이 중에서 몇 권이나 읽으셨나요?" 에코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니요. 저 가운데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이미 읽은 책을 무엇 하러 여기에 놔두겠어요?" 정답!


그리하여 나는,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  책장에 오늘도 몇 권의 책을 꽂는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즐거운 독서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일종의 스피노자적 행위. 사과나무엔 언젠가 열매가 열리기 마련이고, 종말은 아직 멀다.

 


움베르코 에코의 이런 일화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준다. 이미 읽은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책보다 한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라는 것. 나이를 먹고, 지식이 쌓이고, 읽은 책도 높이 쌓이지만, 그만큼 서가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 말이다. 요즘엔 이북이 많이 나오고 있어 그나마 부피가 덜해졌지만, 종이 책들은 책꽂이를 늘어나게 만들고, 자리가 없어 방바닥에 쌓이고, 책상 위를 굴러다니고 있다. 이제 그만 책 좀 그만사라는 잔소리를 가족들에게 늘 듣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모든 책들은 내가 꼭 읽어야 하는 것들이란 말이다.

 


어떤 타짜들에겐 첫 패가, 어떤 당구 동호인들에겐 첫 타가, 어떤 일본인들에겐 찻잔 속의 찻잎이 그렇듯 새해 첫날 읽은 책이 그 해의 운수를 말해준다는 믿음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듯하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 라는 이국의 속담을 바꿔말하면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이고, 새해 첫 책은 이내 펼쳐질 한 해에 대한 암시인 셈이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모두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으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올해 나의 첫 책은 할런 코벤의 '숲'이었다. 흠, 우연이지만 나름 만족스럽다. 내가 영원히 사랑하는 장르의 책이니 말이다. 올해도 스릴러, 추리소설 분야를 열심히 달릴테니까. 그럼 작년 첫 책은 무얼까 돌이켜보니, 윌리엄 에이커스의 '시나리오 이렇게 쓰지 마라'였구나. 작년에는 작법 공부와 스터디에 충실했으니 딱 맞는 책이었군. 그럼 재작년에는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였다. 오호라, 어째 정말 첫 책이 그 해의 운을 말해준다는 게 맞는 것도 같다. 재작년에는 한창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져 행복에 허우적거리던 해였으니 말이다.

 

 

자, 당신이 올해 처음 읽은 책은 무엇인가? 당신이 지금 읽는 책이, 바로 당신을 규정한다는 말은 어처구니 없는 단언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매혹적인 마술같기도 하다. 아직까지 올해 아무런 책도 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한해 운을 만들어줄 멋진 책을 하나 골라서 읽어보라. 내년 이맘 때 즈음에 어쩌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미소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지금 당장 책을 집어들어라.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책밖에 없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3.01.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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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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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상에서 꽤 유명한 책,알고보니 읽은 사람은 많지만 구매한 사람은 적은,다른 사이트에서 작가 결혼기념 반값 행사로 구매했다.그런데 왜 예스에 리뷰를 남길까?그야말로 예스의 서평단들이 꼭 읽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이전에 우연히 발견한 글이 있었다.그건 바로 서평 쓰는 형식에 관한 강의였다. (카페 회원들에게 강의하는 글이었던것 같다)우선 줄거리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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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상에서 꽤 유명한 책,

알고보니 읽은 사람은 많지만 구매한 사람은 적은,

다른 사이트에서 작가 결혼기념 반값 행사로 구매했다.

그런데 왜 예스에 리뷰를 남길까?


그야말로 예스의 서평단들이 꼭 읽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우연히 발견한 글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서평 쓰는 형식에 관한 강의였다. (카페 회원들에게 강의하는 글이었던것 같다)


우선 줄거리를 적는다, 그리고 본문의 문장을 2~3개 정도 적는다. (적기 싫으면 사진으로 찍고) 그리고 감상을 2~3줄로 마무리.


아니 서평이라는 건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보고 읽지 않은 사람이 어 재밌겠네?해서 구매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미 책 표지에서도 줄거리를 말하고

온라인 서점 서평란에도 줄거리만 가득하니 이미 읽기도 전에 흥미를 잃어 버리고 만다.


이 책은 그런 이상한 서평세상에서

'서평이란 사실 이렇게 쓰는 거에요'

라고 알려준다.


단지 문체가 하루키 에세이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작가가 싫어할까?



b***n 2014.03.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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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줄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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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줄거리들    구글, 네이버 그리고 오랜만에 다음에서 '후장사실주의자'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엊그제는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읽었으며, 덧붙여 작가와 관련된 몇몇 시시껄렁한 인터뷰도 찾아보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한 번 poptrash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소득이라고는, 후장사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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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줄거리들 




 




글, 네이버 그리고 오랜만에 다음에서 '후장사실주의자'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엊그제는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읽었으며, 덧붙여 작가와 관련된 몇몇 시시껄렁한 인터뷰도 찾아보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한 번 poptrash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소득이라고는, 후장사실주의자의 후장이 바로 그 '후장'이라고 얼버무리는 정지돈의 인터뷰 답변 하나와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속 주인공들이 스스로 '내장사실주의자' 클럽이라는 것을 만들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야만스러운 탐정들> 1,2권은 몇 달 째 책장 속 가장 눈에 띄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읽고는 싶은데 선뜻 손을 못 대고 있는 상황. 같은 처지에 있는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역시 읽어야 하는 책이기는 한데, 과연 21세기안에 이 책들을 다 읽는게 가능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겉표지만 익숙했던 나로서는 '내장사실주의자'와 '후장사실주의자'간의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짧은 추측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은 가늠할 수 없었다.


도저히 모르겠다. 그놈의 '후장사실주의자'가 뭔지 말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인 것 마냥 달고 다니는 그들 패거리만의 무언가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지금까지도 이렇게 집착하고 있다. 가끔 보통의 남자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자신의 끈기와 열정을 다시금 확인하고는 한다. 찌질해보여도 어쩔 수 없다. 무슨 소리냐고? 같은 남자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럼 정정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애시당초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지도 않고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을 펼쳐본 게 화근이었다. 물론 당장 나에게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군지 묻는다면 서슴없이 '볼라뇨'라고 답할 수 있기는 하다. 지난 반 년간 <아이스링크>를 시작으로 <칠레의 밤>, <먼 별>, <부적>, <전화>까지 꾸준히 읽어왔다. 가장 유명한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을 마지막 목표로 삼아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쯤이면 나와 볼라뇨를 처음 만나게 해준 2,666원의 책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을 볼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착각이었다. 수 많은 볼라뇨 감염자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대표작들을 먼저 읽고 오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감염자들은 나만 쏙 빼고 자기들끼리 아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던 중 나는 볼라뇨 감염자를 자처하는 또 한 사람의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이름은 금정연이라고 한다. 그가 이 책에 남긴 <2012년 7월 10일, 서울 은평구 진흥로 3길>이라는 제목의 글. 이게 서평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책을 언급하고 있으니 서평이라고 해야 할 듯한 글. 이 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줄거리 대신 그는 자신과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맴돌았던 이야기를 쓰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한 간증법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문득 나도 이 사람처럼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는 서평을 남기면서 콕 집어 누구처럼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금정연의 글은 내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해오던 글쓰기의 스타일과 닮아 있었다. 이내 그의 다른 서평들이 궁금해졌다. 필자 소개란에 따르면 그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인문 분야 MD로 일했으며, 다행히도 그의 서평들을 모아 낸 <서서비행>이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책이 잘 됐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를 수식하는 이 표현만큼은 못보고 지나쳤어도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후장사실주의자'였다


<서서비행>이 경유지인 옥천 HUB를 거쳐 성남 금광동의 한 아파트에 당도하기까지는 총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도착한 책을 다 읽기까지 다시 또 일주일이 걸렸으니 총 10일 정도의 긴 여정이었던 셈이다. 만족스러웠다. <서서비행>과 함께 한 여행(혹은 실린 글들)은 무척이나 프랜들리했다, (진짜로 그가 후장사실주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LG트윈스의 오랜 팬이라는 사실은 알게 됐으니까) 그가 책의 줄거리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도 여기서 <서서비행>의 내용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책 내용이야 다른 사람들이나 사이트가 세세하게 다 말해주고 있을 테니, 원한다면 여기보다는 그리로 가보는 게 좋겠다. 계속 말하지만 나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진짜로 그래서 이 글도 남기는 것이다. 


그러니 한 가지만 부탁드린다. 혹 후장사실주의자에 대해서 뭐라도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로 좀 알려주십사 하고 말이다. 사례는 답글로 두둑하게 드릴테니. 거기에 원한다면 이 책 <서서비행>도 답변자에게 넘겨드릴테니 말이다. 




 

g******x 2015.05.25.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선견자의 비행 [서서비행] 금정연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선견자의 비행 [서서비행] 금정연" 내용보기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 있고, 그 책을 읽은 듯이 만드는 서평이 있고, 그 책이 왜 팔리는지 알게 만드는 서평이 있다. 이 서평들은 모두 책으로부터 내용을 길어와 책에 직결된 형태로 쓴 서평이다. 한 권의 책을 주인공으로 두고 관련한 다른 책들을 조연들로 등장시키는 형태도 있고, 두 권의 책을 대조하여 쓴 서평도 있다. 한편 책으로부터 내용이 아니라 영감을 길어와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선견자의 비행 [서서비행] 금정연" 내용보기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 있고, 그 책을 읽은 듯이 만드는 서평이 있고, 그 책이 왜 팔리는지 알게 만드는 서평이 있다. 이 서평들은 모두 책으로부터 내용을 길어와 책에 직결된 형태로 쓴 서평이다. 한 권의 책을 주인공으로 두고 관련한 다른 책들을 조연들로 등장시키는 형태도 있고, 두 권의 책을 대조하여 쓴 서평도 있다. 한편 책으로부터 내용이 아니라 영감을 길어와 쓴 서평도 있다. 책을 소개하거나 책 내용을 간추리거나 책의 특징과 의미를 설계하는 대신 에세이를 지어놓은 형태가 이런 서평이다. 
 이 책 [서서비행] 한 권에는 이 모든 종류의 서평이 다 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중략) 평균 4일이 걸린다고 하자. 그렇다면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실린 모든 작품에다 4일을 곱하면 65,400일이 된다. 365일로 나누면 거의 180년이 된다. 이런 계산은 틀림없다. 그 누구도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31쪽

 

 표지에 대놓고 매문기賣文記라고 적힌 이 책은 금정연 저자가 쓴 서평의 모음집이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수많은 서평문 사이에 틈틈이) ‘왜 서평을 읽냐?’를 물어보는데, 움베르토 에코가 이미 답을 했다. 사람이 살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의 한계, 독서가능영역의 국경선 위로 가뿐히 날아오르고 싶으니까 [서서비행] 같은 서평모음집에 몸을 맡기기 마련이다.

 

 

 [서서비행]의 저자 금정연은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다 현재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중이다. 이 책은 책을 팔다가 글을 팔게 된 저자가 서평문을 기고하면서 느낀 ‘독서의 기쁨과 슬픔’이다. 저자에게 독서는 오롯하게 취미, 재미, 의미의 온실 속에만 머무르지 못한다. 왜냐면 책 읽은 소감을, 책에 대한 소개를, 책 읽기를 추천하는 바를 글로 써서 팔아야 하거든. ‘먹고 사는 게 다 뭔지‘ 싶다가도 ’먹고 사는 게 전부지, 뭐‘하고 마무리하게 되는 세상살이가 읽기와 쓰기를 생계 수단으로 삼게 되면 어떤 의식의 흐름을 보이는지 이 책이 잘 보여준다. 시종일관 마감과 생계의 족쇄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그 무겁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 두드리는 실로폰 놀이라도 하듯 쓴 서평이 이어진다.

 

사실, 초반부에 저자가 온라인 서점 MD로 일할 때의 경험들, 구체적으로 병아리 고르듯이 무감하게 수십 편의 서평을 본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 서평도 그런 취급을 받겠구나 하는 자괴감에 ‘이거 더 읽어야 해, 말아야 해?’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초반부는 그 정도의 현타를 감수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 마시길. 비행준비를 거쳐 이륙 초반을 지나면 이 비행飛行은 참으로 흥미진진해진다. 재밌다. 야간비행과 악천후 따위도 문제없다. “희망 같은 건 없는 좇같은 상황”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맞는 경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야간비행>과 <악천후> 꼭지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현실에 대한 염증을 더하기는커녕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다. 낭만주의의 엔진을 꺼보면 진짜 현실로 우리는 착륙한다.

 

 이 책의 제목은 비행이지만 어쩌면 이건 메트로놈이다. 빠르기를 맞추기 위하여 피아노 위에서 연이어 손가락을 흔들던 그 놈.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을 즐긴다면 메트로놈 같은 건 불필요하다. 메트로놈은 나의 연주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갖추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만 기능한다. 서평가는 그래서 독서 그 자체에만 매달려서는 안될는지 모른다. 우리 시대에 ‘책’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원고가 팔려야 원고를 쓰는 사람이 계속 생기고, 책을 팔아야 원고를 사서 책을 만드는 사람도 계속 생긴다. 독서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소비하는 일과 상품으로서 소비하는 일이 교차한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읽는 행위 자체에만 매진하는 독서가는 어쩌면 자기가 연주를 했다는 일에만 만족하는 연주가에 그칠 밖에. 소비자인 동시에 판매자였다가 이제는 생산자가 된 저자가 쓴 서평은 그런 면에서 메트로놈으로 기능한다. 책은 많이 팔릴수록 좋고, 어떤 출판사도 손해를 보거나 적자가 안 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나 그렇다고 너무 티 나게, 말도 안 되는 책들을 팔거나 독자에게 권하는 건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빠르지만 다정하고 위엄있게’ 라든지 ‘느리지만 경쾌하고 산뜻하게’ 연주하라는 세상에 없을 밸런스를 요구하는 피아노 악보를 연주하는 일, 까다로운 세상 속에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이다.

 

 서평이라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의 기록은 메트로놈이 될 수 있겠지만 메트로놈이 필요치 않은, 독서 그 자체에 충실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상술한 움베르토 에코의 글처럼 우리가 제아무리 부지런히 독서를 한다고 해도 현실은 언제나 빡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을 놓쳐버리고 마는지. 저자 금정연은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선견자다. 설령 허점이 분명한 책, 참으로 읽기 난해한 책이더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발견하여 일러준다. 저자의 소개가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책을 알게 되는 기분 좋은 일이 바로 이런 서평을 읽을 때에 일어난다. 특히 이 선견자가 ‘설탕을 입힌 것처럼 달콤한 일반론을 경계하는’ 눈 밝은 독자라면 어찌 믿을만하지 아니한가. 독자에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비非지식인, 비非문명인이라는 흑백논리를 들이대거나, 자신의 화려한 문장이나 문체에 도취되거나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는 등 별의별 서평이 온라인에 가득하다. 믿을만한 책을 소개해달라거나, 참고가 될 만한 서평문을 가르쳐달라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한 권으로 대답이 되겠다.
 
p.s. 1)
 원숭이와의 섹시 대결 : <모비 딕> 허먼 멜빌의 서평 ( 77쪽)
 책과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 저자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 책 중에서 최고로 웃겼던 글을 한 편 꼽자면 이것. 영화 <혹성탈출>을 본 여자친구가 섹시한 원숭이, 마초적인 킹콩에 대하여 던진 말들에서 털복숭이도 아니고, 우어어어하며 칠 갑빠도 변변치 않은데다 읽기와 쓰기라는 영 섹시하지 않은 취미와 생업을 가진 저자가 여성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도태되는 멸종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고군분투기를 쓴 내용이다. 자기 이름도 못 쓸게 분명한 털북숭이들에게 도저히 질 수 없었던, 져서는 안 되는 현대 남성(적어도 글로 여자는 못 꼬셔도 독자는 꼬실 수 있는)으로서 대항할 수 있는 문학적 섹시함을 찾아 치열하게 책들을 뒤지다가 허먼 멜빌 찬가로 글을 끝내는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보시길. 웬만한 코미디를 가뿐하게 이긴다, 이 글이.

 

p.s. 2)
 * 책에 직결된 형태로서의 서평, 가장 보편적이고 참고할만한 형식으로서의 서평
 나태해진 영혼에 죽비를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 출판 49쪽
 쉼표 하나만큼의 성장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문진영, 창비 137쪽~
 어른이 자라는 법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푸른숲 145쪽~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 페테르 샌디, 문학동네 159쪽~
김훈은 김훈이다 <흑산> 김훈, 학고재 169쪽 ~


* 북에세이라고 부를만한 서평: 에세이 읽는 재미와 책 소개 받는 재미 이렇게 일타쌍피네.
 낭만도 서른도 모두 병이다 <빵 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134쪽~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리> 서효인, 다산책방 342쪽~

 

 p.s. 3) 저자 금정연은 좋은 서평의 기준은 어쨌든 좋은 글이어야 한다고 에필로그에 썼는데, 전지적 독자의 솔직한 마음으로서는, 책을 정성스럽게 읽고 공들여 솔직하게 썼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썼든 읽어볼만한 서평이라고 생각한다.

 

 

 

 

o********e 2020.03.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