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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기사님이 틀어주시는 라디오를 얼핏 듣고 있었다. 나는 무척 힘든 시기였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시기였다. 라디오에서 때마침 이 책에 관한 리뷰가 나오고 있었다. 상처란..용서란.. 너무 친밀해서 너무 많이 바라게 되고..기대하게 되고..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고 했다..기대하는 순간..상처는 깊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 정도가 라디오에서 들은 정도이다. 라디오를 그렇게 귀기울여 들은 적은 처음이다. 얼른 책제목을 메모했고, 다음날로 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1시간 남짓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1시간 내내 와닿는 책은 처음인 것 같다. 비록, 천주교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고, 나 역시 천주교 신자이지만..천주교 신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누구나 꼭 한 번 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상처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진짜 상처"이고 다른 하나는 "사소한 상처"이다. 천주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짜 상처"의 치유법은 그렇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소한 상처"의 치유와 용서의 방법은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가장 객관적으로 다루어진다. 내가 이 책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을텐데..그럼 내 주위 사람들을 그렇게 잃어가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책에서 말한 대로 모두 수용하며 살기는 물론 어려운 일일테지만, 또한..어디선가 봤을지도 모를 그런 내용이지만.. 1시간을 쪼개서 책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는 내 지인들에게 이 책을 한권씩 선물할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이해한다면, 서로 상처줄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진짜 상처를 받았다면 용서해야 될 대상은 우리에 상처를 입힌 상대방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소한 상처라면 용서해야 될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사소한 상처에서 헤어나려면 기대하지 말라. 상대방이 어머니처럼 나를 돌보아 주고 헤아려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버려라. 기대한다는 것은 곧 실망하고 상처받겠다는 것이다. 기대는 안개와 같다. 안개는 있지만 만져지지는 않는다. 기대는 우리를 속이고 헤매게 만든다. 기대는 우리 마음을 멍들게 하고 관계를 파괴시킨다. |
| 세상의 모든 이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지만 "상처와 용서"라는 작은 책을 통해서 내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 대한 용서도 필요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책을 잘 읽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께서도 제목에 나와있는 용서라는 문구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보시고 엄마에게 말씀하셨단다 "내가 상처와 용서라는 책을 보았는데 거기에 용서하라는 말이 있어서 당신을 용서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들으신 엄마는 진짜 용서는 내가 해야 하는데 하는 억울함 반 행복함 반 이 섞인 미소를 지으셨다 진정한 용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자기애(愛)가 많아지면서 행복해지는 거 같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얻게 되었다 끝으로 Yes 24에서도 이책과 비롯해서 시리즈를 구입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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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이 되었다. 이 책을 대부에게 선물받은 것이. 삶의 전환기에 어쩔 줄 모르던 나에게 건네진 이 책.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줄을 치며 읽었다. 그 때는 몰랐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상처의 인정과 용서. 그 사이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계속 스스로의 상처에 부딪혀 좌절하면서 언제나 나에게 상처의 치유가 일어날지 조바심내며 지금까지 견뎌왔다. 몸에 병이 나면서 용서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을 겪게 되었고, 오늘 다시 책을 펼쳐보면서 언젠가 내가 겪어야 할일을 옛날에는 읽으면서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아프고 크게 탈이 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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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어떤 심리학 책 보다 더 나를 어루만져주는 책이다. 내가 받은 상처에만 집중하고 살았는데 ...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하는이유와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상처준 사람을 종교적으로 용서한다는것일 나의 감정과 깊은 상처를 없애주는것이 아니란다. 너무 많은 부분을 체크하는바람에 그냥 처음부터 다시읽기를 두번했었다. 정말 작지만 읽을것을 권하고 싶은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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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땅에 묻힐 때까지 상처를 주고 받는다.
자신이 받는 상처는 크고, 남에게 주는 상처는 작거나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가 대부분이란다.
상처는 왜 받는 것일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받은 상처들은 용서하고 잊어버리면 된다.
말은 쉬운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상처를 안고 태연히 살아가는 처럼 보이는 것 보다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쉽고,
나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
| 프랑스 시인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말했듯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인간과 인간들의 부대낌 속에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말일 것이다. 그 상처가 가벼워서 쉽게 잊거나 금방 회복이 되면 다행이지만, 수 십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살다 보면 그것이 응어리가 되고 한이 되어서 병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은 한이라는 고유한 정서를 갖고 있다. 한의 정서는 주로 여성에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인내와 인고를 의미한다. 화날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하는 것이 미덕이 되다 보니 참고 참다가 결국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정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책은 상처와 용서에 대해서 말한다. 상처는 누구나 받게 된다. 그 상처를 어떻게 다스리고 치유해야 하는지 이 책은 말한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 내게 상처 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이다. 용서하기 않을 경우, 분노, 적개심, 화 등은 내 안에 쌓여 독소가 되고 그 독소는 나를 병들게 한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용서해야 한다. 둘째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피곤한 사람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불평 불만과 분노나 적개심 등을 늘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나를 피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난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어진다. 셋째로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그 모든 죄들을 주님은 용서해 주셨고, 도말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 분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생각한다면 우린 용서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용서에 대해서 종교적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나는 정말로 용서하였는가?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여전히 아프고 섭섭한 것일까?’라고 자책한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였다면 더 이상은 그 사람 때문에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내게도 해당하는 문제이다. 설교 말씀 중에서도 용서에 관한 말씀이 나오면 난 늘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난 아직도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는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아픈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행위로서 용서한다는 것과 느낌 차원에서 용서하는 것은 서로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용서하는 행위는 하나의 종교적 선택이요 결심으로, 그것은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내리는 종교적 행위이다. 그러나 몸 자체가 용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신앙 안에서 용서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아픈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심각한 상처뿐만 아니라 작은 것에서도 쉽게 상처를 입는다. 대표적인 것이 기대함으로써 오는 상처일 것이다. 기대한다는 것은 이미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을 때 오는 상처. 그래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기대를 하면 안 된다.(그런데 인간인데 어찌 기대를 안 하며 살까?) 나도 요 며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오는 상처로 가슴앓이를 했다. 가뜩이나 건강악화로 위축되어 있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리고 느낀 것, 기대하지 말자, 절대로... 절대로... 이 책을 읽으며 위로 받은 것은 마지막 부분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부분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자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예수님 역시 이들을 사랑하셨다. 오빠 나자로가 병들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오빠의 상태를 알렸다. 그것만으로도 오빠는 나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친히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아도, 말씀만으로도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도 않았고, 말씀도 없었다. 결국 오빠는 죽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입었을 상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마르다 남매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이 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곧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마르다 남매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필레오 사랑, 즉 형제간의 사랑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 신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그 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큰 뜻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입는다. 그것은 요즘의 내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죽은 나자로가 살아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나의 이 고난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라고 하신 것처럼 나를 사랑하시는 그 분은 나보다 생각이, 시야가 더 높고 깊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고난 중에도 그 분을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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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참 위로가 되더라, 하는 글을 읽고 무심코 카트에 이 책을 넣었다. 나는 (미사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든 천주교인이니 종교에 대한 거부감도 덜하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파괴력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그 파괴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것인지에 대하여. 요즘 어쩌다보니 심리학이나 상처, 치유에 관련된 도서를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많이 다운되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안 풀리고 답답하고 외롭고 힘든 것이 모두 그 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파괴력 때문인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든 이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더라. 어디서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거든. 오로지 현상에 대한 설명뿐이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용서를 하란다. 그게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란다. 사실 이런 말을 많이 읽었고 듣기도 했지만 나는 아직 용서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모양이다. 쉽게 용서할 수 없기에 더 우울하고 속상한지도 모르겠다. 많은 부분을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노력해서라도 용서를 해 볼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덜 안쓰럽고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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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상처를 안겨준 원수를 미워하고 증오하는가중에서 부정적감정이 가장가장극단적인건 날 아프게했던사람이 죽기를바라는것이다 그러나 용서를하려면 결심이필요하고 하느님꼐 도음을청해야한다 그래도 하느님은 용서하기를원하신다 우리의 정신건강에 꼭 필요하기떄문이다 수련회가서 불꺼진 어두운 곳에서 누가 우는지 방언하는지도모르는 분위기에서 날 아프게했던 사람을 용서가 아닌 잊혀지게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용서를해야 잊혀지는것을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