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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을 제대로 알기란 힘들다. 모든 사람이 말하는 좋은 작품이 내게는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향의 차이도 존재하고, 그 책을 읽을 때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자주 하는 말 중에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다,라는 거다. 책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그동안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무척 좋다고 여기지 못했다. 이 책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에서야 비로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동안 읽어왔던 작품들에게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았던 탓일까.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이 일본에서 꽤 많은 인기를 얻었고, 말년에 일본과 몬태나를 오가며 쓴 글을 모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아 권총으로 자살해 유명을 달리했다.
작가가 말년에 느꼈을 미국과 일본의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두 나라가 가진 차이점들을 짧은 소설로 엮은 것이다. 일본 작가의 작품 속에서 드러난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그 시절에 느꼈을 일본의 사회상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들어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에서 일본 여성의 정조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미국인 젊은 남자와 일본 여성이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했을 때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말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보통의 연인 사이와 함께 산다는 것의 차이점을 말하는데 어쩐지 씁쓸해졌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의 마음이 안타까웠달까. 남자의 집에 갈때면 늘 그의 칫솔을 썼던 일본 여성이 자기 칫솔을 욕실에 가져다 두었을때 그게 싫었던 남자의 행동. 기쁜 마음으로 욕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못했던 여성의 슬픔이 느껴져서였다. 이것 또한 하나의 이별의 방법일텐데 그 여성이 느꼈던 감정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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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살기 위해 오십 개 단어만 써야 하는 난쟁이 기사가 있었는데, 그만 단어를 순식간에 다 써버렸다. 이제 그에게는 갑옷을 입고 재빨리 검은색 말에 올라타 불이 잘 붙는 숲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만큼의 시간만 남게 되었다. (171페이지, 「추운 왕국 기업」 전문)
131편으로 된 단편소설은 꽤 짧다. 에세이처럼 읽혀지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의 마음속 이야기가 편안하게 쓰여 있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 답답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편안하게 읽혀졌을 수도 있다. 힘을 뺀 이야기라서 좋게 느꼈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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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들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을 꼽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 대한 매력을 여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 좋았다. 내가 제대로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 작가를 만나는 것도 어떠한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동안 좋다고 여기지 못했던 책들을 제대로 읽어야 겠다,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왜 많은 작가들이 그의 이름을 말했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번역자 김성곤의 말처럼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을 읽고 싶거든 이 작품을 먼저 읽고 과거의 작품들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비로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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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때로는 벼룩 같은 짜증과 뾰루지 같은 실망의 연속이다. (263p)
작가가 써놓은 짧은 글들의 향연이 마치 아코디언의 바람구멍이 접혔다 펼쳐지듯이 굽이굽이 파도를 타고 넘실대고 있다. 촥 펼쳐진 부채살에 천이나 종이를 놓고 한 살 한살 착착 접듯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야기들이다. 여러 시즌으로 연결된 드라마의 한 시즌안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듯이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줄을 지어 연달아서 나오고 있다. 매력적이다.
거기다 비유적인 표현은 정말 주옥같다. 조개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기 위해서 수천개의 조개를 까야하는 수고로움을 덜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그런 표현들을 볼 수 있다. 넘쳐나는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단,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무엇일지 곰곰히 씹어야 한다. 그저 후딱 눈으로 보고 지나갔다가는 분명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가령 행복하고 취한 치약처럼 웃고 (39p)에서 보자. 여기에서 '치약'은 왜 사용된 걸까. 치약이 행복할리도 없고 취할수도 없는데 말이다. 거기다 입을 꼭 다문 조개처럼 행복하다.(111p)는 표현은 어떠한가. 조개는 왜 입을 다물고 있는데 행복한 것일까. 아마도 입을 열면 잡혀갈텐데 그렇지 않아서 행복한 것일까. 이런 표현은 어떤가. 크리크의 겨울은 새하얀 갑옷 같았고, 길은 갑옷을 베어내는 얼음 칼이었다. (167p) 갑옷을 베어나는 칼, 그것은 바로 길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비유가 아니라 누구도 할 수 없는 특정한 비유다. 그것이 바로 저자의 글이다. 왜 그의 글을 읽고 공부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그것들은 침대 옆 유리잔에서 물고기처럼 뛰어 오르고 있었다.(255p) 이런 표현은 약간 식상한가. 그렇다면 이런 표현은 어떨까. 정확하게는 옷이 나를 입고 있었다.(170p) 무엇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어지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이것은 술에 취한 채 잠이 들었다 일어난 작가의 모습이다. 신선한 발상이지 않은가. 비유적인 표현의 절정은 개인적으로는 <태평양>이라는 제목의 글이라 생각한다. 지구상 가장 큰 바다. 그 바다를 작가는 태평양을 초코바 포장지로 덮어두고 떠났다. (27p) 이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작가의 표현방식에 의하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의 전환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만이 알수 있는 그런 특권. 하나 더 <창문>이라는 글도 그러하다. (319p) 작가는 자신의 기분을 짧은 글로 나타냈다. '그러니까 아주 추운 날 김이 서린 부엌 창문 같다.'로 시작하고 있는 이 글은 어찌보면 제목 그대로 창문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지만 마지막 줄에 보면 ... 그게 오늘 아침의 내 기분이다. 라는 글로 맺었다. 감탄의 소리가 아니 나올 수 없다.
'눈'이라는 동음 이의어를 표현한 글은 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사형수들의 식단표를 소재로 삼은 글이나 단돈 50달러인 차에 관한 설명은 그야말로 해학적인 분위기까지 드러내고 있다. 약간의 블랙코미디랄까. 일본인 부인과 결혼해서 몬태나와 도쿄를 오가면서 그린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그 어떤 책들보다도 더욱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참신한 비유를 원한다면 필독을 추천한다.
카시트도 없고, 팬더도 없고, 백미러도 없고. 헤드라이트도 없고, 브레이크도 없고., 범퍼도 없고, 타이어도 없고, 트렁크도 없고, 윈도브러시도 없고, 앞 유리창도 없다. (21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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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살아 있는 좋은 친구보다 죽은 좋은 친구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생각을 처음 했을 때, 그는 자기가 맞는지 보려고 마음속에서 전화번호부 페이지를 넘기듯 친구들의 생사를 확인해봤다. 그가 옳았다.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처음에는 슬펐다. 그러나 서서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바람이 심한 날 바람을 의식하지 않듯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곳에 바람은 없다. p.69
나는 신주쿠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하라주쿠 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보통 일본 여자보다 키가 큰 여성이 서 있었고, 우리는 함께 열차에 탄다. 빈 좌석이 없어서 서서 가다가 나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서 좌석이 비었다. 나는 앉지 않고 서서 그녀가 앉기를 기다린다. '제발 앉아요. 저는 당신이 앉기를 원해요.' 빈자리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자리를 그녀에게 권했고, 그녀는 앉으면서 나에게 영어로 '땡큐'라고 말한다. 불과 이십 초 만에 일어난, 복합적이고도 조그만 삶의 발레동작은 내 마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땡큐'라는 단어가 그토록 슬프게 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는 더 진행되지 않는다. 그저 젊고 슬펐던 그녀의 '땡큐'가 유령처럼 내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을 뿐, 나는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신주쿠 역에서 내릴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은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색다른 에너지가 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공허한 인간관계를 어쩔 수는 없다. 이 작품 속에서 나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재회를 약속하지만 다음 날 장소가 기억나지 않아 인연을 놓치고, 낯선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말없이 스쳐 지나가 버리곤 한다. 내일이 없는 관계란 삶의 덧없음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 수록 집착에서 멀어지고, 매사에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고, 아웅다웅 사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달으며 노년의 쓸쓸함을 향해 간다. 브라우티건이 이 작품에서 도쿄와 몬태나를 오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가고자 했던 곳은 결국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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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 나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 배역을 맡은 배우를 유심히 살펴본다. 서리 내린 것처럼 머리카락을 하얗게 분장한 그는 배역에 맞는 나이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뼈와 근육과 피가 노쇠하고, 심장이 망각으로 가라앉고,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집들이 사라지며, 그리고 자신의 문명을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나 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p.226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전세계 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브라우티건의 말년의 삶이 드러난 작품으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일본 도쿄와 미국 몬태나를 오가며 쓴 131편의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의 초기작에 비해 40대에 접어든 브라우티건의 쓸쓸한 위트를 맛볼 수 있는, 조금은 '소프트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고, 짧은 건 한 두 페이지 혹은 단 몇 줄로도 이루어져있는 단상들이라 더욱 임팩트있게 읽히는 글들이기도 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마음에 훅 들어오는 이야기들이었고, 여러 번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1960년대 자유주의 정신을 갈망했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1970년대 서양문화가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해 그 대안으로 일본행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몬태나와 도쿄를 오가며 131개의 에피소드를 집필해 이 책을 출간했지만, 결국 사 년 후 마흔아홉의 나이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타지 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나이 들어감에 대한 슬픔과 허무, 그리고 죽음에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느낌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삶을 응축한, 한 편의 시 같은 소설들이라 더 마음에 오래 남겨두고 싶은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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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짧은 글들이 재밌다. 뭔가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그의 하루하루는 뭔가 자잘하고 말할 게 많은 이야기가 가득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소박한 그의 시간이 이렇게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에게 흥미로움과 웃음을 만드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니라,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에 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는 거다.
저자가 1970~1978년까지 보낸 시간의 기록이다. 미국 몬태나와 일본 도쿄에 머물던 그의 시간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미국과 일본에 머물던 그의 시간은 그리 밝은 분위기로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민낯을 보는 느낌은 오히려 그의 문장들이 더 가깝게 와 닿게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때로는 상황에 맞게 포장해야 할 때도 있고, 침묵해야 할 때도 있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되는 순간들을 목격한 것만 같다. 이런 기분, 이런 쓸쓸함을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편안함 같은 거 말이다. 왜 굳이 두 도시(실제로는 두 도시의 이야기만은 아니지만)의 시간일까 싶었다. 그는 미국이 자유주의 정신을 잃었다고 하면서 일본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말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변함없는 건 인간관계에서 보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나이 들어가는 슬픔을 언급한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겠지.
때로는 우리가 그곳에 존재할 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눈을 뜨기도 전에 사라지는 날. (99페이지, 우리가 눈을 뜨기도 전에 사라지다)
살아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생의 화두를 그만의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이야기가 소박하면서도 즐겁다. 다양한 소재가 일상을 꽉꽉 채운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생각들을 쏟아내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가 새로운 세계로 맞이하고자 떠났던 일본은, 그의 생각만큼 삶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낯선 외국 생활이 그의 상실과 갈망을 해소해줄 거로 믿고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겪은 이국에서의 삶은 그를 더 공허하게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또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도 없이 만나는 인연들 사이에서 내 곁에 영원히 머무는 이는 없다. 가장 먼저 맺은 인연인 가족도 언젠가는 이별하지 않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게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매 순간 또 다른 인연을 맺을 준비를 하고 또 맺어간다. 그러면서 또 잃어가고 얕아지는 것처럼 스치는 인연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에서 풀어내는 그 관계의 흐름도 비슷하다. 저자는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연극 무대에서 본 노인 분장의 배우 얼굴에서 노년의 쓸쓸함을 느낀다.
수록된 131편의 글에서 풍기는 서늘함이 오히려 저자를 애틋하게 바라보게 한다. 누구나 비슷하게 갖는 감정 앞에서 한 번쯤은 이렇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순간 있지 않을까. 누가 대꾸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 거르지 않고 한번 다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폭발할 때. 아마도 저자는 그런 작은 순간들의 소소한 기록들이 이 책 하나로 뭉쳐 거대한 감정을 쏟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앞서 출간된 저자의 작품들을 완독하지 못해서, 그의 작품이 꽤 어렵다는 생각만 했다. 왜 이렇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까, 이 이름을 한 권쯤 완독하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싶어서 항상 궁금했던 작가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읽다가 만 그의 작품들을 읽을 마음이 생겼다.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이 책의 짧은 이야기들이 그의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을 더 가깝게 들리게 한다. 아마 읽다가 만 그 순간보다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가 하고 싶은 더 많은 말을 담은 것만 같은 그의 장편을 제대로 읽어볼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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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몬태나 특급열차》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76년부터 1978년 사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쓴 산문을 모아 1980년에 출간한 책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4년 여의 시간이 흐른 1984년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권총 자살하였다. 그의 거처를 알지 못하여 사립탐정을 고용한 출판사에 의해 시체를 발견하였다. 이 때문에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사망한 정확한 날짜는 알 수가 없었다. “1854년 조지프 프랭클의 서부에는 형편없는 구식 무성영화 같은 새가 많았고(칠면조, 메추리, 오리, 거위, 도요새, 꿩), 그런 영화의 배우 같은 짐승이 많았고(들소, 엘크, 늑대), 흘러나오는 영화 제목 같은 물고기가 많았으며(창꼬치, 메기, 농어), 영화와는 달리 아무도 살지 않고 빈약한 길에 방향을 잃기 쉬운, 광활하고 쓸쓸한 지역이 있었다.” (pp.17~18) 지금까지 작가의 책을 다섯 권 읽었는데, 모두 소설이었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미국의 송어 낚시》, 《워터 멜론 슈가에서》, 《임신중절》,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가 그 다섯 권이고 내게는 모두 훌륭하였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에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간혹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산문집으로 이름이 붙은 책에 실린 글들을 보면서는 오히려 소설 같구나, 느꼈다. (나중에 살펴보니 이 책의 분류가 소설로 되어 있다.) “나를 지나치는 그 남자의 표정에서 나를 안다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내 얼굴도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를 잘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없다는 바보 같은 사실뿐이었다.” (pp.86~87) 어떤 장소나 그 장소와 관련된 인물, 그러니까 몬태나나 도쿄를 거점으로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는 않는다. 그곳을 오고 가던 시절에 글을 썼다는 사실이 제목에 투영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1960년대의 자유 정신의 시기가 끝이 나고, 케네디 암살과 베트남전 패배 그리고 워터게이트로 얼룩진 1970년대의 미국은 어딘가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듯한 작가의 글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편지를 다 읽고 나자 그녀의 삶도 끝났다. 그녀도 남자의 뒤를 따라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녀는 전과목 A를 받던 대학을 중퇴하고, 잭슨 거리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접시 닦는 일을 시작했다. 그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접시를 닦으며 사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치 부엌의 유령 같았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고는, 한때 캐나다 공군과 사랑을 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한번도 접시에서 눈을 들어 다른 사람을 보지 않았다. 무려 삼십오 년 동안이나.” (pp.153~154) 물론 〈그녀의 마지막 남자친구는 캐나다 공군〉과 같은 글은 완전하고 좋아서 몽땅 옮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스치듯 만났던 남자를 잊지 못하여 남은 삶 모두를 헐벗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의 그녀는 어쩌면 60년대의 자유주의가 지향하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작가일까, 넘겨 짚어 보기도 하였다. “이 글도 그렇지만, 가끔 나는 글쓰기를 마치면 어쩐지 나 자신이 불필요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니면 초라한 옷차림에 비를 맞으면서, 아름답고 유혹적인 젊은 여자들의 잔해로 가득 찬 카바레 전단지를 들고 있는 노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 여자들이 문간에 있는 당신에게 다가올 때면 도미노 쓰리지는 소리가 들린다.” (p.285) 1960년대 히피 세대가 꿈꿨던 낙원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진창이 되어가는 주변을 돌아봐야 했던 작가의 부유하는 심란함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글들이 실려 있다. 갑자기 그가 지금의 미국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몬태나 주민들을 (몬태나는 강하게 트럼프를 지지하는 주이다) 확인한다면? 그는 1970년대라는 진창도 참지 못하였고, 지금은 그저 지옥일 따름인데...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 / 김성곤 역 /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The TOKYO-MONTANA Express) / 비채 / 2019 (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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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좋아한다는 건 겉으로 보여지는 취향으론 놀라운 일이다. 가끔은 먹어보지않은 각성제처럼 말이 안되듯 말을 하는 글 때문에 갑자기 웃어버리게 되고, 또 어떤 글은 끝내주게 문장이 멋지고, 또 어떤 글은 그래 어쩌란 말이냐..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글의 내면속에 있는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은 순수한 마음, 그렇지못한 쓸쓸함, 그리고 다정하여 약한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예전에 나오자마자 들고 병원에서 읽고 있었는데, 그 쓸쓸함에 눈물을 참지못해 그냥 접었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감정을 건드리는 책은 절대 사양이라고 했지만 어제저녁 이 책을 보자 너무 읽고싶어졌다. 읽는내내 마음에 드는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여두느라 노란색 반통을 쓴것 같다. 그 어떤이에게는 전부였던 것은,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일지라도 알 수 없다는 그 쓸쓸함. 사는 내내 주대표 미식축구선수라는 사실이 전부였던 청년의 묘지에서 목사는 아주 겨우 기억해낸다. "이 젊은이는 미식축구를 했지요."..p.35 그가 바라보는 뭔가가 있을텐데, 나는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p.44 ...만났덜면 친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문제는 우리가 나눌 추억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우리는 우정의 가능성을 말살한채 각자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p.87 ... 나는 전화다이얼을 돌리는데에 서투르다....p.97 (이 단편을 읽을때 내가 꾸는 악몽중 하나가 생각났다. 아주 긴급한데, 다이얼전화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돌리는데 자꾸만 나는 잘못된 번호를 돌렸고, 다시 버튼을 눌러 처음부터 다시 돌려야만했다. 이건 꿈해몽사전을 찾아보지않더라도, 내가 너무나도 말하고싶지만, 내 마음을 어떻게 전달할지 모르는 답답함이다) ...가끔 나는 혼자서 여섯 자루의 옥수수를 머리에 맞은 그 닭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p.132 (이 단편 또한 내 이야기인가 싶었다. 나도 저자처럼 내가 그 닭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법을 잘 알고있었다....작가는 그녀를 쳐다보지않고 사인을 했다. 그게 전부였다.....p.140~141 그런데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기억과 나이듦에 대한 쓸쓸함도 더해진다. ... 어릴적 내 영웅인 제시 제임스를 쏴 죽인 사람을 아직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한때 내가 알았고 내게 그렇게 중요했던 것들을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시간의 힘은 서부의 전설을 앗아갔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채 사라진 들소떼처럼...p.179 하지만, 그러기에 자신의 말하지않은 호의가 받아들여졌을때의 그 연결됨과 기쁨은 그의 속에서 반복되어 넘친다. ... 그녀의 떙큐는 유령처럼 영원히 내 마음에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p.60 그의 쓸쓸함은, 그의 재치있는 말들로 인해 흐려진다. 내면의 쓸쓸함은 사라지지않지만, 다정함은 재치로 웃음으로 이어지고, 그의 글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매혹시킨다. ..무덤은 금년 겨울에 자유로웠고 행복했다....p.53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으면, 그곳에 바람은 없다....p.69 나는 태평양을 초코바 포장지로 덮어두고 승강장을 떠났다....p.77 ...우리 모두는 역사에서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이 있다. 내 역할은 구름이다...p.210 .. "움직여, 이 개새끼야!" 그게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p.144 바로 위 인용문을 읽을때 소리내서 웃을뻔했다. 쓸쓸한 마음으로 책을 잡고 있던 내게 누군가 차의 창문을 내려 소리치는것 같았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p.303페이지부터의 닭들의 업적에서 유기동물이 되는 동물들의 비참함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떼서 여기저기 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읽히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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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에 젖는 것을 개의치 않기 때문에 우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산은 내게 언제나 미스터리인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비가 오기 직전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때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진다. 어쩌면 우산들은 도쿄 지하의 작은 아파트에 모여 사는지도 모른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만나게 해주는 인연. 내게 브라우티건의 책이 몇 권 있는데 정작 읽은 것은 바로 이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이다. 그러니 이 책이 나와 브라우티건을 만나게 해준 다리였다. 이 이야기는 짧은 생각의 연속이다. 마치 자려고 누웠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밤을 꼴딱 새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 밤에 머릿속에 끝없이 떠오르던 생각의 단상들을 한 줄도 빼먹지 않고 써 내려간 느낌이다. 사실과 환상과, 상상과 공상의 경계를 나누지 못할 모호한 이야기들의 발상으로 가득한 한 권이다.
이 작품은 도쿄에서 몬태나 주까지 가는 특급열차가 중간에 서는 정류장의 기록이라고 브라우티건은 말했다. 그래서 수많은 정거장 만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짧고 간결하고 한 페이지 남짓하는 이야기들의 이야기. 그곳엔 서로 다른 문화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던 자신의 모습과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과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긴 여행의 시간들을 견뎌내기 위한 단상들과 소소한 일화들이 뒤섞여서 엮어진 환상특급 같은 말들이 담겨있다.
이 단편이라기에는 모자란 단상들의 모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아쉽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생각의 타래를 옮긴 글들이 마구잡이로 정형화된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해질 때도 있고 킥킥거리며 웃음 지을 때도 있고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도 있고 아! 하며 탄식이 나올 때도 있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글을 만난 기분을 표현할 길 없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곳곳에서 복병처럼 만나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별뜻 아닌데도 별뜻처럼 읽히고 별일 아닌데도 별일처럼 해석되는 그런 문장들. 읽는 내내 나도 그 기차 안에서 덜컹거렸다. 수많은 정거장마다 뜻 모를 이야기들의 단상들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도쿄 몬태나 특급 열차는 나와 브라우티건의 사이를 정거장마다 당겨놓았다.
예전에 그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었더라면 나는 이 글들의 정체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를 추억할 글들이 내겐 없기에 나는 그에 대해 이 짧은 글들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이 글이 그와의 추억이 되어 다음 글들에선 추억거리를 나눌 만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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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과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허무를 비판하면서 자유주의 정신을 갈망하는 작가이다. 그런 그가 서양문화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일본으로 떠나지만 그곳에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고독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고 그가 느끼는 삶의 고통이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를 통해 불안하고 좌절한 그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다. 무엇이 그를 슬프고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브라우티건에게 찾아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허무주의에 사로 잡힌 브라우티건이 원하는 방식과 방법으로 자신만의 죽음을 만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읽게 되었다.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는 중간 중간에 정류하는 역 중에서 구성되어진 이야기로 소설 속 '나' 는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가 정차하고 있는 역들의 목소리 라는 것을 브라우티건은 말하면서 각각의 에피소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조지프 프랭클의 이야기로 131편의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조지프는 음악을 공부하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지만 어느날 금을 캐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오게 된다. 젊은 아내와 아들을 남겨 두고 미지의 땅 캘리포니아에 왔던 조지프를 이해할수 없었는데 그가 쓴 일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수 있기를 바라지만 답을 찾을수 없었다. 결국 아름답지만 조지프에게는 불운한 땅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내에게 돌아간 그가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오지만 이번에도 실패하고 조지프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그가 불행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오게 된 조지프의 삶을 끝내 이해할수 없을것 같았다. 1964년 1월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거리에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버려져 있었다. 1963년 크리스마스는 케네디 대통령 사건으로 브라우티건을 비롯해서 미국인들에게는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버려진 트리를 보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사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버려진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을 수백장을 찍어서 트리를 몰래 내다버린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절망과 유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390장의 버려진 트리 사진을 찍었다. 작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이상했던 그 시절 사람들은 잠시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 느낀 상실감을 위로받고 싶었던 작가가 일본에서 지내면서 일본인의 집을 방문했을때 아름다운 부인이 손님을 위해 분주하게 요리하고 상을 차려 대접하지만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손님과 남편의 대화를 듣고 있는 부인이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고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브라우티건은 일본의 과거를 엿보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부인은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고 자신을 낮추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와 미국에서의 일을 비교하는 모습에서 서양과 동양의 문화의 차이를 비교하게 되지만 지금은 그 당시 브라우티건이 충격을 받았던 손님에 대한 부인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두 나라에 살면서 작가는 그들의 문화를 비교하게 되지만 모든 문화에는 장단점이 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상대방의 나라에 적응해서 살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가 이글은 쓴 시대와 지금은 일본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브라우티건이 알게 되면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고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드러나는 글을 읽으면서 그가 이 글을 쓰면서 느꼈을 감정변화를 이해하면서 브라우티건이 표현하고 싶었던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열정은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남기고 간 글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비판하는지를 되돌아보면서 외롭고 자유로웠던 그의 사상과 고독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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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몬태나 특급 열차는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느끼게 된 문화적 차이와 동서양의 인간적인 사고에 대해 두 나라의 이질적인 면과 자신이 거기에서 받게되는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31개의 에피소드에는 1970년대의 일본과 미국을 볼수있는데 자신이 살았던 미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와 이질적인 행동을 비교할수 있었는데 각 나라마다 배우고 싶은 부분도 있고 부러워할만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그의 글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외국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허무와 회의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데 죽음에 대한 생각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쓴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는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허무가 더 깊어져가고 있었던 시기에 쓴 작품이었습니다. 조지프 프랭클의 일기에서 그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1851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음악을 공부했던 그가 1875년 캘리포니아에 금을 캐러 왔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조지프에게는 캘리포니아는 실패의 땅이었고 여러번의 도전을 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조지프는 그가 찾고 싶었던 것을 끝내 찾을수 없었지만 죽음의 그 순간 캘리포니아는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그래서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조지프차럼 자신도 고향을 떠나서 낯선 나라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조지프가 그토록 캘리포니아에서 찾고 싶었던 것을 찾지 못한 것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것 같습니다. 금요일 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리던 택시를 타면서 택시 안에 있는 잉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잉어의 성지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림과 사진 우화가 가득한 택시 안에서 일본어로 잉어가 행운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마치 행운의 부적처럼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브라우티건은 우산은 미스터리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상 예보관이 비가 내린다고 해도 그날 해가 있으면 우산은 사라지고 없었고 반대로 기상 예보관이 해가 뜬다고 해도 사방에 우산이 보이면 곧 비가 온다는 사실이 우산의 미스터리 라는 글을 보면서 우산에 대한 작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때가 있습니다.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을때 녹색 신호등에서 친구가 차를 멈추고 어떻게 할지 몰라 그냥 있을때 뒤에 많은 차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추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잠시 멈추었을때 누군가는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있지만 학교가 보이지 않는 거리에는 학교가 있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경고 표지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어디론가 옮겨 갔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표지판을 보면서 학교에 대한 미스터리는 풀수 있었지만 표지판을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알수 없었습니다. 131개의 에피소드에는 미국과 일본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엿볼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케네디 대통령 사건은 브라우티건에게 충격으로 남았고 더 이상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기 어려운 그가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꿈 꾸지만 낯선 나라에서의 인간관계와 변화에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작가의 내면의 고통이 드러나는 이야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담담하게 전해지는데 소소하지만 기발하게 사람의 내면을 들추어내는 그의 글을 통해 그가 갈망하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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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대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집 도쿄 몬태나 특급 열차는 작가의 말년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는데 이 작품을 쓴 후 4년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는 그래서인지 이 작품 안에서도 죽음이나 묘지에 대한 글이나 나이 듦의 허무함 같은 글들이 종종 보인다. 작가가 제목에서도 썼듯이 몬태나와 일본에서 살았을 때의 이야기가 제법 많은데 특히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서구의 문화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인식하에 동양의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리처드 브라우티건 역시 그래서 동경하던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는 적극성을 보였다. 당시의 일본은 지금과 달리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서구에서 건너간 작가에게 비치는 그런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은근한 부러움이 깔려있는 듯한데 일본의 눈에서 특히 그런 마음이 드러난다. 식사 준비를 한 아내는 남편과 손님의 자리에 같이 합석하지 못한 채 멀리 떨어져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은커녕 행복한 눈을 하고 있다는... 서구에서는 그런 일이 있다면 남자의 시중을 드는 대신 강력한 한방을 날릴 거라고 하는 대목에서 여자의 순종적인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본 문화에 대한 은근한 부러움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또 판타지 소유권에서는 좀 더 나아가 스스로 레스토랑을 소유해 다양하고 상냥한 일본의 웨이트리스를 매일 볼 수 있다면 하는 자신만의 판타지를 풀어놨는데 이런 걸 보면 그의 눈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비친듯하다. 이에 비해 서구의 모습은 조금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 많은데 특히 390장의 크리스마스 사진 찍기에서는 그런 마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모두가 즐기고 환호했던 크리스마스트리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면서 무용지물처럼 여기고 여기저기 집 앞을 비롯해 아무 데나 버리는 걸로 모자라 길거리에까지 버려둔 채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버려진 크리스마스트리의 사진을 찍어 사람들의 경박함을 고발하고 있다. 죄를 짓고 쫓기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엄마가 택한 방법이 경찰이 잡아갈 수 없도록 아들을 깔고 앉는 것이란 글에서는 그의 시니컬한 유머감각이 느껴지고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지나면서 우연히 한 남자가 자살하려는 걸 목격하고서도 차를 세워 그를 저지하지 않고 단지 그가 자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한 어떤 수고도 하지 않으면서 그 청년이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성의 외로운 수로 표지 같다는 글을 보면서는 삶에 대한 짙은 허무가 느껴진다. 어쩌면 그 청년의 모습에서 자신을 오버로크 시킨 건 아닐지... 세계 평화를 위해 만난 지미 카터와 이집트 대통령 두 사람을 태운 열차를 보면서 그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 모두는 역사에서 각자가 맡고 있는 역할이 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그의 철학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시니컬하고 조금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세상은 온갖 부조리함과 모순으로 가득한듯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들은 쉽게 읽히는 게 있는가 하면 왜 이런 걸 썼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글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무슨 말인지 난해한 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이 많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의 글에는 매력이 있고 힘이 있다. 미사여구 없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을 보면서 그가 왜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장으로 대우받는지 이해가 갔지만 역시 쉬운 글에 익숙한 나에게는 함축되고 생략된 그의 글이 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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