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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또 17살이다. 17살이라는 나이는 魔의 나이가 아닐까. 요즘 부쩍 이 나이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자주 만난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이이기도 하고 온전히 혼자만의 방황에 빠지기도 쉬운 나이라서일까. 나의 17살은 어땠던가. 중학교 때와는 확연히 다른 교육시스템에 여고생이 된다는 처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피곤함에 절어있던 모습만 떠오른다. 여고생 시절의 스승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도, 객기라고밖에 할 수밖에 없었던 심한 반항도 있었지만, 그 시절 나는 그냥 피곤했다. 선희의 삶 역시 풍랑주의보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리틀 시카고』는 17살 선희가 돌아보는 12살의 기억 속에, 정확히는 12살 기억 속 '리틀 시카고'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이 씨실과 날실이 얽히듯 촘촘히 그리고 애틋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예쁜 시절이 있다, 누구에게나. 이 여인들도 태어날 때부터 이렇듯 소용돌이치는 인생의 변주가 자신들을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다 보니.... 그래, 살다 보니 이 골목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세상의 모진 풍파에 휩쓸려 떠돌다가 꾸역꾸역 흘러들어온 곳이 '리틀 시카고'라 이름 붙여진 골목이었다. 각양각색의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을 가진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골목, 리틀 시카고. 몸을 팔아야 삶을 연명할 수 있는 이들을 지켜보던 선희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기지촌 여인들의 삶에서 무엇을 보길 원했던 거니 너는? 이 소설에는 미군들에 의해, 미군들에 의한 삶을 살아갔던 골목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리거나 늙었거나 하얗거나 까맣거나 양 극단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슬픔이 스며있는 곳, 12살 선희의 눈에 비치는 '리틀 시카고'의 풍경은 아프고 처참하고 을씨년스럽고 하지만, 살아가는 곳, 그런 곳이다.
이들의 삶을 보며 누가 누구의 불행을 논할 수 있을까? 누가 누구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일어날 일이었을 뿐 너에게 혹은 나에게 불행의 책임을 전가하는 건 아직 삶에 대한 용기가 한참이나 부족한 나약한 인간들의 전유물이다. 굳이 불행에 책임이 있다 한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우리 모두의 상처이다. 아니면, 이렇게 말해야 할까. 살았고 살아왔고 살아남은, 살아갈 자들의 이야기라고......
매일이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하루가, 얼마나 미세하게라도 다양성을 가진 변주의 날들인지.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지 않은 날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이제서야.
기지촌 골목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궤적만을 쫓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는 전쟁의 상처가 있고, 여인들의 아픔이 있다. 그걸 지켜보는 선희의 성장이 있다. 의무에 의해, 강압에 이끌려 징집이 되고 누구는 누군가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고,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죽여야 하는 전쟁터의 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더 힘들 일인지도 모른다. 피의 절규 속에 스러져가는 이들의 고통 어린 비명이 언제까지고 이명이 되어 귓가에 맴돌 테니까. 전쟁의 페허 속에는 아이 어른이 없다. 모두가 피해자고 모두가 날을 세우고 있는 미끈한 총구의 겨냥 대상이다. 왜, 우리는 죽고 죽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누가 이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는가. 전쟁터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살고자 버텨도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고통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최악의 순간이다. 폭격에 쉼 없이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들, 머리통이 처참하게 박살 나고 사지에서 핏빛 소용돌이가 난무하고, 그 폐허 속에서 살려 달라 절규하는 아이, 어른, 노인, 사람들의 눈물 안에서 우리는 보게 된다.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굴레 속에 얽혀있는 우리의 연약하디 연약한 날것 그대로의 모습과 전쟁의 상흔 속에서 뒤엉켜 살아가는 남은 자들의 삶을.
공동묘지에서 들려오는 12살 소녀의 사모곡.
엄마는 골목의 클럽걸이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날마다 보는 풍경 속에 엄마가 있었다는 뜻이라. 하루에 주스를 스무 잔씩 마시는 언니들, 미군들의 팔에 매달리는 언니들, 옷을 벗고, 춤을 추고, 울면서 자는 언니들, 그 풍경 한가운데.-50쪽
선희에겐 엄마란 애초부터 무덤 그 자체였다.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하얀 뼈 덩어리. 그래서 엄마가 묻혀있는 공동묘지 무덤가를 떠나지 않았고 장미를 심었으며 노래를 불렀다. 핏덩어리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무정하게 떠나버렸지만 놓을 수 없던 사람, 밝은 노래를 불러줘야 했고, 장미꽃잎이 만개하길 애타게 기다리게 했던, 땅속 깊이 잠들어 있는 세상에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엄마라는 단 한 사람. 감촉을 느끼지도 눈을 맞춰보지도 못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그렇게 선희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사람이다. 미군기지가 이전하게 되고 재개발의 바람이 부는 골목에서, 엄마가 묻혀있고 아픈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이 공동묘지만은 지켜야 한다며 장미 묘목을 발이 부르터라 옮기고 손이 부르터라 심어댔던 선희의 무정한 속울음이 바로 엄마에게 보내는 사모곡이다. 장미 덩굴이 무덤가를 켜켜이 감싸고 외부의 어떤 손길도 거부한 채 고이 이곳에서 잠들길 바라는 딸의, 엄마를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하면 되려나.
너에 대한 모든 게 궁금하구나. 그런데 이거 아니?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나한테는 최고라는 거.지금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왔을까. 내가 너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겁이 나서 잠에서 깬 적도 있어. 하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수많은 날들이 있잖아. 네가 태어나면 차근차근 배워나가지 뭐. 그때까지, 건강히,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겁내지 말고, 엄마 목소리를 잘 듣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 언제까지나 널 사랑한단다.-231쪽('에필로그' 中.....)
이 부분을 읽고 정말이지 엉엉 울어버렸는데... 지켜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곁에 있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엄마의 양수 속에서 유영하는 주먹만한 선희를 상상하고 12살, 17살 선희의 너무도 부쩍 커버린 어른 아이의 모습을 봐온 어른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면 될 거 같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난 눈물이 난다...
리틀 시카고의 공동묘지에는 그들의 삶이 있다. 그곳에 가면 시시각각 변주되는 그들의 애환이 있다. 살기 위해 몸을 팔았고 사랑의 결실을 가졌지만 미처 싹 틔우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아름답게 그러나 치열하게, 사랑하며 그러나 많이 아팠던 그들이 잠들어 있다. 살기 위해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그녀들, 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준비되어있나요? 꿈을 마주 안을 준비.
"꿈에 대해 물을 건 하나뿐이란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 얼마나 많이, 아프게 하는가."-107쪽
나는 '결과만 좋으면 되지' 같은 말이 참 싫다. 비록 나 역시도 간혹 그런 말을 뱉을 때도 있지만,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 보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결과의 뒤에 어떤 힘겨움이 있어도 보지 않으려 하고 그저 결과에만 만족하는 사람들, 그래서 꿈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요즘 세상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꿈, 희망, 아픈 현실, 이를 바라보는 선희의 12살은 아프다. 미군기지의 이전으로 생존권을 잃어버린 골목 사람들을 바라봐야 하는 12살의 성장통은 그렇게 아프다. 떠나는 이들 뒤에는 언제나 남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떠나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배웅하지만, 금방이라도 한숨이 새어나오는 건 남겨진 자들의 피해 갈 수 없는 서러움이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 아픔을 먹고 살던 사람들. 그렇게 모여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며 살아가던 사람들, 전쟁이 없었다면 미군 기지가 그곳에 터를 잡지 않았을 테고 그들이 모일 일도 없었을 테다. 감싸 안고 살아갔지만,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상처받은 영혼들의 삶은 그토록 애처롭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을, 하지만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다룬 12살 선희를 통한 세상과의 교신. 이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서로가 눈을 맞추는 찰나의 순간에도 우주의 폭발은 일어나고 세상의 끝은 점점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랑할 수 있을때 마음껏 사랑해야하고 열심히 오늘과 입 맞춰야 한다...
*Bette Midler의 'The rose'라는 곡, 다들 잘 아실 거에요.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하기도 했던 이 노래의 초반 구절이 소설 후반부에 나옵니다.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the tender reed. 이 노래는 단순히 이성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인생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어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인생에 있어 장미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역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에 장미꽃 한 송이를 싹 틔울 수 있는 아름다운 열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열정이 충만한 당신을 위한 장미 한 송이를 제가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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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살의 선희는 자신의 등뒤에 있는 침묵의 골목을 바라본다.. 한 때 그곳에 가득했던 빛과 소리,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환영처럼 떠오르는 그 어두운 골목길을... 그리고 선희는 결심을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그것이 그곳에 남은 자들. 살아있는 자들의 책임일 테니까... 암전....
그리고 다시 등장하는 골목길은 조금 전에 선희가 바라봤던 침묵과 어둠의 골목이 아니다. 노란색머리, 빨간색 머리, 파란 눈동자, 갈색의 얼굴, 검은색의 얼굴... 그렇게 갖가지 색깔를 가지고 50년을 살아온 '리틀 시카고'... 선희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선희는 엄마가 없다. 아침마다 묵묵히 미군들을 위한 아침을 준비하고, 스테이크를 구워 파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아빠가 있다.. 그리고 골목 밖 텃밭에서 갖은 야채와 함께 아름다운 장미를 가꾸는 아빠의 고모 미세스정 .. 클럽에서 미군들에게 웃음과 쥬스를 파는 다양한 모습을 한 예쁜 언니들..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을 돈을 벌어 부치는 마음 착한 필리피나 언니..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흑인 혼혈아 미카와 알로하 클럽의 딸 세라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존 목사님 항상 내기를 즐겨하시는 양복점 할아버지와 트럼본을 잘 부시는 잭슨 할아버지..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들은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주변인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열두살 선희에게 이들은 다정한 언니, 친구이고 마음을 나누는 이웃들이었다. 선희는 매일 엄마의 무덤앞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엄마와 교감을 한다. 그렇기에 엄마가 곁에 없어도 항상 엄마 품에 있는 것 같았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들과 함께 하는 따뜻함과 밝음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듯 어린 소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미군부대가 옮겨지게 된다는 소식과 함께 골목을 점점 그 빛을 잃어가게 된다. 남들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일을 하나 둘씩 겪게 되면서 미카와는 점점 멀어지고.. 혼자 견딜 수 없는 외로움때문에 사랑을 나누지만 그 사랑에 배반을 당하며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클럽의 언니들의 안타까운 모습,그리고 미군부대를 따라 클럽을 옮겨가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고 희망처럼 여기고 있던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예쁜 그릇과 함께 깨져버리는 희망들... 전쟁, 죽음이라는 고통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움추려드는 한 미군의 텅빈 눈동자를.. 나이들고 병들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할아버지들의 한숨과 그 허망함.. 엄마의 무덤조차도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함.. 그리고 알게 된 엄마의 죽음에 관한 진실.. 이 모든 것은 열 두살의 선희에게는 너무나도 큰 아픈 현실이었고 번개를 맞은 것 처럼 견디기 힘든 너무도 고통스러운 성장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렇게 선희는 그 골목안에서 행복하고, 아프고, 슬프고..그렇게 한 뼘씩 커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둘씩 꺼져가는 간판.. 그리고 쇠락해져가는 골목안의 풍경.. 그러나 끝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키겠다는 아버지의 굳은 결의는 선희의 맘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선희도 결심한다, 결코 엄마의 무덤만은 지키겠다고.. 그 염원을 담아 미세스정의 장미 묘목을 하나 둘씩 묘지 주변에 심기 시작한다.
그들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미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잃어버린 잭슨 할아버지의 트롬본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매일 밤 싸움을 한다.. 그렇게 얼굴을 시퍼런 멍 투성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트롬본을 다시 찾겠다는 그래서 자기 자신을 다시 찾겠다는 희망의 표시로 느껴진다. 아버지는 절대로 레스토랑 문을 닫지 않을 거라고 하신다.. 그리고 무너져버린 흙집을 다시 지을 거라고.. 선희의 장미는 마치 공동묘지에 카펫을 깔아 놓은 듯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엄마가 선희를 갖고 써 내려간 선희에게 남긴 수첩...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과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엄마의 사랑이 담겨있다.
아픔, 소외 , 외로움, 슬픔... 이러한 것들이 녹아있는 장소로 대변되는 골목... 리틀 시카고 그 골목속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하며 성장하는 선희.. 떠난 자들과 그리고 그 골목에 남겨져 있는 자들.. 과연 누가 떠난 것이고 누가 남은 것인지.. 이 고요 속에 남은 자들의 미래는 어떤 것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조용히 연주하기 시작하는 희망가가 점점 크게 그리고 점점 힘차게 들려오길 바래본다.
얼마전에 만났던 자기앞의 생의 모모가 떠올랐다. 모모와 함께 아파트에서 지냈던 사람들.. 그리고 선희가 골목안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 어찌보면 비슷한 아픔과 절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모는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사랑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고 선희는 그들이 떠난 후에도 남겨진 자들이 품고 있는 희망,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열네살이지만 열살꼬마로 남고 싶은 모모와 열두살의 선희가 바라본 세상..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싶은 사랑과 희망을 함께 느껴본다.. 아마 모모와 선희가 만났다면 베스트프렌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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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의 선희가 그 골목안에서 골목안 사람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그 골목. 미군 기지가 있는 곳의 기지촌. 그 골목안에서 선희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이곳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국 여자들이 많았다면 이제 이 골목엔 외국에서 온 여자들이 더 많다. 필리핀에서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 돈을 벌러 와 많은 돈을 번 것 같지만 가족이 있는 필리핀에 보내고 나면 달랑 티셔츠 2개, 청바지 하나 뿐인 삶을 살기도 한다.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하는 여자들은 미군들과 사랑에 빠져 같이 살지만 어느 순간 미군은 떠나버리고 남은 건 초라한 자기 자신과 아이들 뿐이다. 미군들이 있어서 골목안이 활기가 차는 곳. 미군들이 있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그 골목안을, 열두 살의 선희가 우리를 그 골목 안으로 안내하고 있다.
미군부대앞 '리틀 시카고'라고 불리우는 그 골목안에서 태어난 선희는 어느 새 열두 살이 되었다. 열두 살의 선희에게는 혼혈아 인 미카 라는 친구가 있고 러시아에서 온 타샤 라는 언니도 있다. 양복점 할아버지와 트롬본을 잘 부는 잭슨 할아버지, 아빠의 레스토랑에서 번 돈을 다 필리핀으로 보내는 필리피나 언니, 클럽을 운영하는 아줌마의 딸 세라와도 친하게 지낸다. 또한 쉼터를 차려 운영하는 존 목사님도 있다. 미세스 정이 텃밭에서 하는 장미 묘목을 다듬는 일을 도운다. 선희가 매일 하는 일은 엄마의 무덤에 찾아가는 일이다. 날마다 엄마의 무덤에 찾아가 엄마에게 말을 걸고는 한다. 그러면 마치 엄마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그곳은 사람 살데가 못된다고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를 가나 다 비슷하다는 걸 알겠다.
문제는 죽는 게 아니라 사는 거야. (143페이지 중에서) 미군이 떠나게 된 그 골목에서 이제 하나 둘 가게 들이 불을 꺼지고 있다. 엄마의 무덤이 있는 곳, 죽은 아이들, 기지촌 그 골목안의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공동 묘지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어지게 되었을때 선희는 공동묘지가 없어지는게 싫어 그곳에 빨강, 노랑, 분홍 등 색색의 장미를 심는다. 미세스 정의 창고에서 장미 묘목을 훔쳐 매일매일 염원을 담아 장미를 심었다. 무덤이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바래서. 그곳에 묻힌 엄마의 영혼과 아이들의 영혼이 헤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세스 정의 텃밭에 심었던 장미와는 또다른 장미였다. 매일매일 비료를 넣어줘야 하고, 말라 죽을까봐 물도 줘야 하고, 온 정성을 다해 가꾸며 숨죽이고 기다려야 하는 장미였다. 곧 쓰러져 죽을 것처럼 잘 살아내지 못했던 묘지의 장미 묘목들이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낸 것처럼, 그리고 화사하게 꽃을 피웠던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골목 안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성장을 했다. 선희도, 이 책을 읽는 우리도.
P.S. 1. 나는 소설 속 미카가 여자아이 인줄만 알았다. 남자 아이라고는 생각을 안해 본게 너무 우스울 정도였다. 미카가 남자 아이란걸 알게 된게 줄리 아줌마가 찾아 왔을때 '남자 친구'라는 말을 해서이다. 왜 나는 선희 곁에 있었던 친구가 당연히 여자 아이라고 생각했을까.
2. 65페이지 선희가 힐러리 여사한테 편지 쓴 부분에서 '이선희' 라고 되어 있고, 156페이지 빨간 머리 미군이 아빠한테 시계를 선물해주며 '미스터 박'이라고 했는데 미군이 아빠의 성을 잘못 알고 있었단 얘기인가 궁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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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올해 딱 열두 살이다. 열두 살 아이의 눈에 세상은 어떤 색깔일까?
나의 열두 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딸이 많은 집 어중간한 둘째는 여기저기로 치이는 탁구공 같은 존재라 쉼 없이 사랑이라는 존재와 싸워야 하는 서글픈 아이라는 걸 느껴야 하는 나이였다. 감정을 혹은 슬픔을 서서히 뒤로 숨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고, 아무도 모르게 울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나를 표현해야 할지, 누구에게 나를 숨겨야 할지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나이이고, 나 자신이 결코 잘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나이다. 세상이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나이이고, 잘사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나를 구별할 수 있는 나이이다. 학교에 누군가의 엄마가 왔다 간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다른 특권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채는 나이이고, 나와 다른 친구들의 환경을 살포시 눈치 채는 나이이기도 하다.
나의 열두 살은 평범했지만 지독했고, 고독했다. 처음으로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건... 존재감 없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었고, 그림을 잘 그리거나,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얌전하고 쉽게 말도 건네지 못했던 평범한 아이. 그 아이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와 친해지고 싶다 말하며 초대했던 그 친구의 집은 내가 꿈속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집이었다. 그렇게 화려한 집도, 그렇게 큰 집도 나는 가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왜 그런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까? 나는 왜 딸들 많은 그 시끄럽고 지긋지긋한 집에 태어난 것일까? 그 친구와는 많이 놀지 못했다. 내 마음이 두근거려서, 뭔지 모를 억울함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해서, 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냥 엉엉 울고 말았다.
이 책에서 만난 선희의 나이가 열두 살 이다. 선희가 태어난 곳은 리틀 시카고라 불리는 곳이다. 미군이 지은 그 이름은 마피아와 갱단이 활약하던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따온 것이다. 노란색 머리를 가진 사람, 빨간색 머리를 가진 사람,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회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 갈색 얼굴을 가진 사람, 검정색 얼굴을 가진 사람... 그 사람들이 사는 곳에 선희네는 할아버지 때부터 골목길 한가운데서 레스토랑을 했다. 지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레스토랑을 아빠가 하신다. 선희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아빠와 둘이서 산다.
선희는 그곳에서 세상을 본다. 골목에서 낳은 아이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미군은 거의 드물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미국에 대해 이야기 하고 미국을 꿈꾸게 하고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다. 핑계도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미군부대 안으로 갔을 때 그들은 말한다. 그건 자기들 담당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안에는 골목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멀찌감치 새하얀 축구 복을 입은 미군 자녀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과 상관없이 언제나 부대 안쪽은 평화로웠으니까.. 그렇게 부당한 미군이지만 그들 때문에 골목은 먹고 산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자신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그 미군 부대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미군이 움직이는 것을 반대하고, 미군이 가려고 하는 지역에선 들어오지 못하게 반대를 하고.. 인생은 그래서 결코 달지 않고 쓴 모양이다.
선희는 그런 환경 속에 점점 강해진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침묵하기도 하지만 선희는 성장한다. 자신의 지역을 지킬 줄도 알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도 알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선희가 못내 아프다. 읽는 내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묘지에서 노래로 푸는 아이가, 혼자서 노래를 불렀을 그 아이가 외로워서, 같이 해줄 누군가가 없어서 눈물이 났다. 자신의 존재를 아프게만 생각했을 선희가 내 아이와 같은 나이라 더 슬펐다.
“내가 싫었다. 엄마도 포기한 아이라면, 태어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174)
미군의 이야기라서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속상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아닐까 지레 겁부터 먹었다. 이재익 작가가 쓴 아이린이란 책의 주제가 무거워서, 이 책 역시 읽기가 껄끄러운 것은 아닐까 걱정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는 다른 감동이 있다. 결코 눈물 흘릴 것 같지 않은 타이밍에 눈물이 확 쏟아지는 절제된 눈물도 좋았다. 선희는 자신의 환경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인다. 미군을 대하는 태도 역시 아이 답지 않게 쿨 하다.
태어날 때부터 내 주위에는 많은 미군들이 있었다. 장미묘목이 제각각이듯, 미군들 역시 그랬다. 향기로운 미군도 있었고, 벌레가 들끓는 미군도 있었고, 시들시들한 미군도 있었고, 건강한 미군도 있었다. 하지만 썩은 묘목을 뽑아내듯 썩은 미군들을 뽑아 낼 수는 없었다. 우리 골목에는 정원사가 없었다. 이 골목은 야생의 초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151)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감동하게 했던 것은 맨 마지막이다. 엄마가 남긴 유일한 흔적. 네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네 눈동자는 연한 갈색일까. 검정색일까. 네 아빠처럼 턱에 보조개가 있을까? 거리에 나가면 너는 아이 오리처럼 곧잘 내 뒤를 쫓아올까. 엄마, 라고 부르는 네 목소리는 어떨까. 언제부터 우산을 자기 손으로 들고 걷게 될까. 너에 대해 모든 게 궁금하구나. 그런데 그거 아니?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나한테는 최고라는 거... (230)
모진 마음을 가진 엄마라도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다르다. 뱃속의 아이가 처음으로 움직였을 때, 그 아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느껴질 때..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직접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낌을 전혀 알 수 없다. 내 안에 다른 생명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은.. 우주를 품고 있는 것과 같다. 엄마가 곁에 없어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렇게 선희는 성장하고 어른이 될 것이다.
열두 살의 나와 열두 살의 우리 아이가 생각나서 많이 울었던 책이지만, 행복한 책 이었다.아이의 인생 앞에 고생 없는 빨간 융단을 깔아 주고 싶지만, 평탄한 인생만이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의 인생을 사지로 몰아 놓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아이를 바른 심지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랑이란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켜줄게. 언제까지나 널 사랑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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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요.”
꿈을 가슴에 가득 품고 있는 열두 살 소녀의 시리지만 빛 같은 이야기다. 또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쇠락(衰落)하는 기지촌의 시퍼런 멍의 기록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 단지 심심할 때만 동물원 구경하듯 바라보는 시선 밖의 이야기다. 어설프게 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위선을 부끄럽게 하는 이야기이며, 슬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외된 골목이자, 공동묘지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온통 향긋한 장미꽃 향기가 “말 할 수 없는 감정들을 밝히 비추어주는” 빛처럼 흘러넘치는 정말의 이야기다. 그리고 소녀의 마음 속 거인을 품고 싶어질 만큼 사랑이 풍성한 이야기다!
소설의 프롤로그에는 “매일매일 유실”을 경험하고 있다는 조숙한 열일곱 살 소녀가 보이지만, 이내 시간은 소용돌이쳐 열두 살 소녀 ‘선희’의 시선이 자리 잡고, 이전을 앞둔 기지촌 골목의 풍경이 ‘모래 그림’처럼, 아니 지워지지 않고 허물어지 않을 기록이 되어 아릿하게 지면을 채운다. 마을에 미군부대가 들어온 직후부터 생긴 공동묘지에는 미군들에게 꽃을 파는 여인들, 그녀들과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의 고통과 죽음이 지나온 시간만큼 켜켜이 쌓여 있다. 모래로 그린 그림 같은 삶, 매일매일 허물어지는 삶, 텅 빈 가슴을 부여잡고 죽을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은 삶들로 가득 채워진 골목, 그래서 그 허기를 메우기 위해 열두 살 소녀가 찾아드는 숲 속 공동묘지는 “자다 깨어 엄마!”하듯이 단단히 쥐고 싶은 그것이다.
“꽃의 스크럼 - 장미 묘목”
미군 기지의 이전(移轉)과 함께 골목의 클럽들과 상점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마을의 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워진다. 세상의 시선은 비로소 골목을 찾아든다. 심심한 대중의 관음증을 채우기 위해 카메라 무리를 이룬 방송사 촬영팀이 들어와 ‘죽은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만들고, 더 이상 살(flesh)을 팔지 못해 꽃을 팔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할머니들에게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마이크를 들이댄다. 어린애도 묻지 않을 몰염치한 말들을. 그래서 꿈꾸는 사람인 ‘체 게바라’가 그려진 셔츠를 입은 촬영팀에게 열두 살 소녀가 묻는다. “아저씨는 우리 골목 때문에 숨도 못 쉬게 마음이 아픈가요?” , “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요.”하고 말이다. 호기심, 관음증, 고작 일회성 연민으로 자신들의 외면을 위로하는 그런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어린애다운 항변일 것이다. 위선들, 수치를 모르는 뻔뻔함들...
공동묘지는 미군 기지가 떠나고 난 터의 골프장 건설을 위한 연결 도로로 파헤쳐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엄마와 그리고 죽은 여자들과 그녀들의 아이들이 묻힌 곳, “납작한 거북이 등”같은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우르르 떨어져 죽은 약한 자들이 자리한 쉼터의 약탈을 막기 위해 소녀는 장미 묘목을 심기 시작한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흙을 덮고 물을 길러 나르는 열두 살 아이의 고된 노동은 그 어떤 것보다 성(聖)스럽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세상의 폭력을 무위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 아닐까?
공동묘지를 빙 둘러 사방에 장미꽃이 빽빽하게 둘러쳐진 곳, 눈꽃 같은“하얀 장미꽃들이 향기로운 화관”을 쓰고 있는 풍경은 슬프고 가난한 자들의 무덤이 아니라 ‘천국’ 그것이었을 게다. 열일곱 살이 되어 펼쳐보려 했던 엄마의 일기에 담긴 간절하고 따뜻한 사랑의 언어들은 에필로그가 되어 시간을 다시 옮겨놓는다. “다른 사람들을 온 마음으로 가엾게 여기는 사람!”, “온 숲에 ‘무조건적으로’ 다 내리는 비 같은 사랑”이 읽는 이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시인의 마음 아니런가. 빛과 같은 좋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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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참 낯익은 이름이다. 허나 정한아 소설 <리틀 시카고>에서의 선희는 낯설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흔한 이름을 가진 선희가 처음 바라보는 세상이 낯설었다. 태어날 때부터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고 영어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곳.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군의 주머니가 곧 그 마을의 경제 수준이 되는 기지촌, 리틀 시카고. 선희는 엄마의 품 대신 아버지의 강직함과 할아버지의 한탄, 그리고 리틀 시카고의 이색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 엄마가 그립지 않은 척하며 때때로 엄마가 묻힌 곳을 찾는 소녀는 과연 엄마가 날 사랑한 적이 있긴 할까 궁금해 한다. 엄마라는 첫 세계를 알지 못한 대신 마을 사람들의 이면을 탐색하며 성장의 가속도를 높이는 소녀는 미군 부대 이전으로 변모하는 마을 지켜보며 세상을 알아간다. 또한 아빠와 엄마가 뜨겁게 사랑했음을, 그 결과물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아빠의 헌신에도 어쩌지 못하는 엄마의 절망을 이해하려 한다. 그렇게 선희는 또 한 뼘 자란다. 싸운 적도 없는 엄마와 화해하도록 유도하는 한때 엄마와 함께 미군을 상대로 일했던 줄리 아줌마, 세상의 이치를 은연중에 가르치는 미세스 정, 세상의 치부를 보여주는 알로하클럽 아줌마와 일부 미군. 버려진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 존 목사, 사랑의 두근거림과 쓸쓸함을 알려준 흑인 소년 미카 등은 선희를 더욱 당차게 만든다.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저버릴 수 없는 이의 숨겨둔 희망이 깨지는 소리가 명징했다. 가끔씩 스스로를 위로하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그릇이 깨질 때의 여자의 망연한 눈빛, 잊을 수 없다. 아침마다 젊은 미군들로 가득한 기지촌 레스토랑의 수선스러움을 만나며 구상했다는 소설은 낯설던 선희를 책장이 넘겨질수록 낯익게 했다. 오래오래 대화하고픈 캐릭터 하나가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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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로 얼굴을 가린듯한 소녀의 모습이 그려진 리틀 시카고. 제목 리틀 시카고는 주인공 선희가 자란 골목의 애칭이다. 미군들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리틀시카고란 이름은 마피아와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따왔다고 쓰여져있다. )
이야기는 17살이 된 선희가 과거 12살의 자기를 회상하며 전개되어 나간다. 선희는 아빠와 할아버지와 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둘이 할아버지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산다. 12살 선희의 주변은 온통 미군을 바라보고 사는 클럽과 클럽의 여인들, 버려진 아이들이 있는 쉽터와 쉼터의 존 목사님 악기상을 하는 잭슨 할아버지와 양복점 할아버지 흑인 혼혈아 미카(미카와 선희의 우정과 사랑)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불법 체류자들. 선희의 시선으로 리틀 시카고 골목의 생활이 우리에게 보여진다. 선희는 얼굴도 못 본 엄마의 부재를 그리워하며 엄마 무덤가에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걱정이 있어도 즐거워도~ 외로워도.. 이 골목에서 죽은 이들이 몰려있는 공동묘지가 무섭지도 않은지.. 아마도 엄마의 무덤에서 엄마의 포근함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엄마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곳을 끝까지 지키는 이들... 그들 중에 선희와 선희 아빠도 있다. 아빠가 밤마다 몰래 무덤들을 돌보는 사실을 알게 된 선희는 엄마와의 약속으로 그러한 일을 하는 아빠를 보고.. 또 방송 취재 중에 드러난 수 많은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무덤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서 미세스 정의 장미묘목을 훔쳐 그곳에 심기 시작한다. 화려한 장미가 있는 무덤이면 그곳에 길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12살 어린 소녀의 생각이지만 기특하지 않은가.. 장미묘목이 자라서 값비싼 장미가 펴주면...어쩌면... 희망을 가져본다.
리틀 시카고는 기지촌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다. 또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주하더라도 그 땅은 남아 다른 이들을 또 품어냄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의 살기 위한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죽는게 문제가 아니라 살기위해 악착같이 사랑하고 일하고 또 타인들을 보듬어 가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속에서 성장하는 선희의 이야기가 리틀 시카고가 아닌가 싶다.
선희 개인적으로는 엄마를 그리워하다 엄마의 자살이야기는 엄마를 미워하는 계기가 되고 미국에서 온 줄리이모의 이야기로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빠의 삶을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끼기 보다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선희는 한층더 큰 그릇의 사람으로 커가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현실에 처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상황에 그냥 몸을 맡기는 사람도 있다. 선희와 아빠는 나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무심한 듯 보여도 자상하고 세심한 두 사람. 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기에 또 다른 시작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자신의 힘듦보다 서로 보듬어 가며 지내는 리틀 시카고의 사람들.. 미군이 떠난 그곳은 지금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꼭 실제 미군기지가 있던 곳을 옮겨 놓은 듯한 이야기. 그 기지촌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양한 군상들을 내세워 잔잔하게 그려낸 선희의 성장이야기가 리틀 시카고가 아닌가 싶다.
아프지 않은 꿈은 없다.. 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꿈꾸는 선희와 같은 아이들도...그리고 우리도.. 아파야 진정한 꿈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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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북하니에서 진행하는 '현주의 책'이라는 영상에서 정한아 작가를 먼저 만났다. 그 때 북하니 에디터 전현주씨는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떤 계기로 기지촌과 기지촌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 새삼...지금 이 시대에"
정한아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새삼스럽죠. 젊은 작가가 이 시대에....뭘 할 수 있겠느냐? 많이 물어보셨어요."
동시에 덧붙인 말은 어떤 상처들은 오래 되어서 아물었다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데 사실 아문것이 아니라... 하며 편집이 되어 있다. 아마도 아문것이 아니라, 그냥 잊혀진. 덮어져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리틀 시카고> 실제 동두천 기지촌이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한다. 잊고 지냈던 미군부대와 혼혈아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 한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외국여성과 미국인의 이야기로 옮겨졌을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건들어 주어야 했고 젊은 작가 정한아가 7년만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클럽에서 실제 서빙을 해 보기도 하고 발로 뛰면서 쓴 글이라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책을 펴낸 문학동네 편집자는 이 시대의 고전이라고까지 평할정도로 소설이 가져야하는 이유와 목적에 그 힘이 실려있다.
선희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시작해, 또다른 선희의 독백으로 마무리 되는 리틀시카고는 그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정말 시카고 처럼 느껴지는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피부색이 다른이들과 섞여 그들만의 작은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팔리고 팔려 마침내 이 곳까지 밀려 오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원치 않게 그 곳에서 세상을 처음 맛보기도 했다. 흘러 들어온 사람들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곳에서 살고 있던 잭슨 할아버지와, 양복점 할아버지도 있었다. (물론, 시기만 다를 뿐 할아버지들도 예전에는 그냥 흘러 들어온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을테다.)
선희는 누구보다 밝고 덤덤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밝은 생각덕분에 처절한 그들의 모습이 어쩌면 조금 편하게 독자에게 전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었고 자기 때문에 아빠의 삶이 리틀시카고를 못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웃어야했던 선희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주인공을 어른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고정시킨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이런 상처와 치유를 모두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힘들겠지만 조금의 치유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방법을 제시한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선희의 이름은 엄마의 이름과 같다. 아마도 과거 선희의 모습을 아이 선희를 통해 보둠어 주고자 했던 것 같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영을 잘 하면서도 늘 대표에서 제외된 미카의 모습은 현실을 여지없이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잘하지만 피부색이 달라서 넌 안돼.' 나아가 그것은 '네가 혼혈아기 때문에, 안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조금의 다른 이야기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다문화국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민족이 다른것인데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다민족'이 아닌 '다문화'로 지칭하는 그 표현에서부터 차별은 시작된다. 문화가 다르고, 다양한 것은 맞지만 민족 또한 다른 것이 아닌가? 오히려 한민족이라는 그 어정쩡한 틀을 깨고 여러 민족을 수용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인정한다면 지금보다는 오히려 차별이 없어지진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리틀시카고는 미군부대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함께 소멸되어 갔다. 그들 때문에 존재했던 기지촌이었기에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을 이유가 없었던 거다. 누군가는 가지 말라고 붙잡고, 또 누군가는 오지 말라며 항의하는 현실,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런 건 없어. 죽으면 더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문제는 죽는 게 아니라 사는거야." (p.143)
"제가 아는 할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자기 몸처럼 아파야, 진짜 꿈이라고요." (p.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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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친구였던 줄리 아줌마는 선희에게 열 일곱이 되면 혼자서 집을 떠나도 좋은 나이라고 한다. 그리고 선희는 줄리 아줌마로부터 전해 받은, 엄마가 남기고 간 파란 노트를 열 일곱이 될 때까지는 열어보지 않기로 한다.
프롤로그에서의 선희는 열 일곱이다. 여전히 자신이 성장한 '리틀 시카고'의 한 풍경으로 그 골목을 지키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드디어 엄마가 남긴 파란 노트의 내용을 본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나 선희를 지켜줄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열 일곱이 된 선희가 쓰는, 열 두살까지의 이야기이다. 선희가 겪어가는 많은 인생의 모습들이 아주 담담하게 그려진다. 독자에게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는 작가의 무심한 필체가 편안하다. 그러면서 그 행간을 통해 아주 밝은 빛이, 잔잔하고 따뜻한 마음이 잘 전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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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작가의 작품을 자꾸만 리뷰하네요. 정한아 작가님. 팬입니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같은 사물은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된다. 예를 들자면, 어린아이들에게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그 눈을 가지고 재밌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탄다. 아이들은 눈을 통해서 재밌는 오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인에게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똥이다. 쓸고 쓸어도 끝이 나지 않는 지독한 놈이다. 군인에게 눈은 증오심과 삽질을 할 수 있다. (눈이 무척이나 싫은 한 장병은 밀리터리 스웨거 1탄 -쓰노우 라는 UCC도 만들었더라. 국군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직장인들에게 눈은 그저 걱정거리이다. 눈이 아무리 내리더라도, 눈 때문에 아무리 길이 미끄럽더라도 출근은 제 시각에 해야 하니 근심도 더해준다. 예술가에게 눈은 좋은 영감거리이다. 눈이라는 소재로 나온 수많은 노래, 시, 미술작품들이 많지 않은가. 그리고 나에게 눈은 등교시간을 늦출 수 있는 찬스 중 하나이다. (나는 학생이고, 시간을 늦출 수 있는 또 다른 찬스는 바로 비이다.) 이렇듯이 같은 소재를 보더라도 다른 시각을 통해서 우리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또한, 바라보는 사람들에 따라서 같은 이야기더라도 전혀 다르게 서사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아주 잘 제시해주었고, 수많은 관점 중에서 가장 이 이야깃거리를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사용했다. 12살이라는 어린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책을 덮고, 나는 이 소설이 어린아이의 시각이 아닌 조금은 자란 청소년의 시각으로 쓰여 졌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정도의 소녀라면 아마도 이 이야깃거리를 조금 더 적나라하게 쓰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더욱더 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읽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강한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시각으로써 글이 쓰여 졌기에 이 이야깃거리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용은 미군기지근처의 레스토랑 주방장 겸 사장의 딸인 ‘선희’에 의해서 서술된다.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때 묻거나 어려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서술자가 아닌, 12살의 어리고 순수한, 그리고 착한 서술자에 의해 서술되는 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알고 보면 굉장히 어둡고 암울한 이야깃거리를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힘으로 인해서 펼쳐지는 결말 또한 매우 만족할 수 있었다. (맨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왠지 모를 여운을 주었다. 나는 이 에필로그를 읽고 한동안 책을 덮지 않았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간의 에피소드, 갈등이 생긴 과정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 주인공이 서술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주로 미군기지 주변에 있는 문제들이다. 미군기지 주변의 클럽, 클럽에서 일을 하는 또는 해야만 하는 여자들, 미군과 여자들에 의해 생겨나고 버려지기도 한 아이들 등)은 읽는 동안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정한아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이 책의 이름은 실제 미군기지 근처의 음식집 이름이며, 소설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제에도 일어났기 때문에 조금 더 관심 있게 지켜봤다. 깨끗한 눈으로 바라본 더러운 세상은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언젠가 나의 더럽고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본 더러운 세상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소설이 나올까. 더러워서 못 보려나? (그 정도로 그쪽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 더러 그렇게 더럽고 추악한 소설은 쓰고 싶지도, 쓸 수도 없지만.) (책의 내용이 많이 빠져있는 이유는 책을 다 읽고의 느낌을 주로 서술하기 위함입니다.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