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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가는 중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단지 나를 다루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아닌 타자를 대상으로 내의 결정과 판단을 관철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다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가 스스로 행하는 것만이 온전히 나의 통제 안에 있다는 믿음과 논리적 귀결을 신뢰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 조차도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이런 불안정성이 초래하는 현실에 버거움을 느끼고 감정의 낭떠러지 하염없이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일시 회복된 것 처럼 느꼈지만 그건 착각이었고 마주했다고 느꼈던 바닥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확장하였다. 끊임없이 이유를 찾고, 원인을 생각하고 탓할 무언가를 두리번거렸지만, 모두 외부적 세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용량이 턱 없이 부족한 내 자질의 소모로 인한 것임을 새롭게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성찰이나 자기반성으로 포장할 수 도 있었지만 내 한계와 잘못, 욕심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외롭고 슬펐고, 붙잡을 만한 무언가를 찾게 되었다. 나는 항상 혼자라고 느꼈는데, 더 처절하게 혼자라는 사실에 얻어 맞았다. 고독은 본질이고 이는 타자와의 관계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나의 교만에 치를 떨었다. 고독은 본질이라는 정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그 고독을 기꺼이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하찮음이 존재의 본질이라고 표현한 밀란 쿤데라의 말을 신봉하면서도 나는 그런 하찮음을 돌파하고자 하는 혹은 하찮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치졸한 이면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의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호르몬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모든게 불확실하다) 가족의 기능이나 유전적 기억에 따라 씨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측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외로움과 불안의 도피처라고 표현하면 나는 정말 싸구려고 무언가 대상을 도구화 하려는 비열한 주체로만 보이는 것 같아 서글프지만, 솔직히 그랬다. 어째서 견딜 수 있고, 어째서 이겨낼 수 있는지. 어째서 나아갈 수 있고, 포기하지 않는지(못하는지)에 대해서 무한의 위안과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오히려 응원은 구속이라고 느꼈던 방해가 될 뿐이라고 폄훼했던 맹목적이면서도 불가해한 견련성을 갖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모순적이지만, 자신의 삶의 가능성을 타자와 공유하면서 축소시키는 것이 자유의 억제가 아니라 노예화된 사회적 개별 주체의 자유 안의 해방일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이야기 한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가족이나 진실한 관계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체득될 수 있으며, 내 삶의 과정에서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관계의 과정에서 얻은 상처와 부정적 효과에 집중하고 그런 경험이 가져다 주었던 안온함과 희망에 대해서 장막을 쳤던 것일지 모르겠다. 내면을 갉아먹는 부정과 자기비하, 자격지심이 발동하고 열병처럼 퍼졌음을 느꼈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게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고, 새롭게 희망을 꿈꾸거나 마음을 다지는게 용이하지도 않지만... 이러한 나의 결핍이 궁극적으로 내가 진실하게 원하는 관계와 연대를 가로막고 망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이 지금의 나에게 출구를 마련해 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갈구 하는게 무엇이며 치졸하게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어 추위에 떤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자유로운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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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면 독파가 가능한 가볍고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단순한 일상의 즐거움, 특별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함, 따뜻한 일본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상처를 주는 관계도 이상해 보이는 사람도 세상에 완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만의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주' 레스토랑에서는 그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주는 자리가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원하신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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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주》의 ‘주주’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고 엄마가 홀을 맡아 운영하는 스테이크와 햄버그를 파는 가게이다. 나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가게 운영을 함께 했다. ‘주주’라는 이름은 엄마가 오래전부터 좋아했고 나도 좋아하는 아사쿠라 세카이이치의 《지옥의 살라미 짱》이라는 만화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보다 본격적으로 가게 일을 하고 있다. 엄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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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 주위의 도움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 내용, 거기에 음식 얘기는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주주는 햄버그와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를 의미. 소소하게 읽기 좋지만 지루한 감도 있고 미츠코의 시누이 얘기는 왜 껴넣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족같다. 등장인물의 매력이 전작보다 떨어진다고 보여짐. 흥미로웠던 첫 부분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