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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우선 줄거리를 보자 여기 미하엘 피셔라는 초로의 신사가 있다.그는 성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향하는 가문비나무 길을 오르고 있다. 신사는 부주의하게 길을 가던 중 잡초와 풀밭과 무성한 꽃에 지팡이를 휘두르다 민들레 꽃을 살해하게 된다. 이 신사를 수식하는 말이 수시로 바뀌는데 그게 상황 상황마다 그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더욱 큰 재미를 주고 있다. 근엄한 신사라고 하지만 하는 행동은 전혀 근엄하지 않을뿐더러 타인의 시선을 엄청나게 의식하는 이 신사는 그다지 정의로운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민들레꽃을 살해한 것부터가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후 행동은 더 심하다. 우선은 자신이 저지른 짓으로부터 회피하려 하고, 잘못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잘못을 피해자에게 돌려보기도 하다가도 잠시나마 동정심을 가져보지만 행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줄행랑치고 만다. 하지만 대범하지는 못한 자라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공포와 불안에 떨다 끝까지 떨쳐내지 못하고 민들레꽃을 위해 돈을 바치고 참회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러는 와중에 고뇌를 멈추려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그 역시 실현하지 못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듯이 점점 그 악몽에서 벗어나게 된 이 신사는 그 범죄 현장인 숲으로 산책을 갈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완전히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고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그 일로부터 해방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해방이 본인으로부터가 아니라 타인의 실수로부터 얻게 된 것이라는 것까지 이 위선적인 인간을 끝까지 정의롭지 못하게 한다. 처음에는 내용에 집중해서 읽었는데 점점 읽을수록 세세한 표현을 놓치지 않는 것에 집중하며 읽었다. 초현실적인 내용과 달리 글은 매우 친절해서 작가가 풀어놓은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이 사람의 심리적 흐름이 그대로 전달된다. 중간에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신체와 싸우기도 하는 장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조종》이 생각나서 재밌기도 했다. 이야기의 시작인 민들레꽃을 살해하는 부분을 보자.
표현이 정말 무섭지 않은가? 지팡이가 꽃송이를 즐겼다니.. 지팡이로 여린 꽃송이를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것을 지팡이를 타자화시킴으로써 가벼운 여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돌변하여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식물을 내려치는 모습에는 소름이 끼쳤다. 범죄스릴러물에서 자주 그려지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범죄자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놓고는 사업 동료나 숙녀가 자기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니.. 이런 모습을 보면 소시오패스 같은 범죄자를 그린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우발성이나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이중적이지만 평범한 보통 사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말도 아주 흥미로웠다. 타인의 실수로 얻게 된 해방에 기뻐서 킥킥대는 그의 모습으로 지난날의 속죄를 위한 행동들은 모두 위선과 거짓이었다는게 명징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살해한 민들레꽃을 추모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오직 그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혹은 죄책감조차 아니라 타인에게 들킬까, 죽은 민들레꽃이 내 앞길을 막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덜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다음 인용 구절을 보면 후자에 가깝겠다.
이것 보라, 꽃을 죽인 것조차 자신의 권리라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에게 무슨 죄책감이 있겠나. 첫 시작은 우발적이었을지 몰라도 살해로 이르기까지의 행동 결과는 폭력적인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제 첫 살인을 겪고 잠시나마 가졌던 불안한 마음마저 타인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떨쳐낸 그는 이제 거리낄 게 없는 어엿한 준비된 범죄자가 되었다.
뚱뚱하고 제대로 차려입은 사람. 탐욕스럽지만 사회적 기반을 갖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평범한 사람. 뛰어나게 재미있고 뛰어나게 소름 끼치는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