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는 할머니 진지를 도와 드리고 남긴 밥을 드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긴 밥을 드셨다. 어머니는 자식이 남긴 밥을 드셨다.
밥솥에 먹다 버린 생선뼈가 들어앉았다. 어머니께 여쭈었다. 어머니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걸 깜빡하고 밥솥에 넣으신 것이다. 당신께선 연신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겸연쩍게 웃으며 자책하셨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웃음 뒤, 마음 한 구석엔 불안한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공부》를 받은 날 실제 우리 집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다. 저자 이동현 씨는 노모와 함께 북아현동 달동네에서 살고 있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느릿느릿 모자의 정을 나누며, 어머니를 간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1946년 당시에 배화고녀(배화여고)에 입학할 정도로 학업에 성취를 이루었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과 함께 가장의 자리에 서게 되고, 책장을 넘기던 손으로 하숙생들의 빨래와 식사를 나르는 부엌데기가 되어버렸다.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들의 학업과 시부모 공양까지 혼자 힘으로 해낸 분이시다. 무역일을 하던 저자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자택에서 자신의 사무실까지 매일 출근을 같이 한다. 사무실로 가는 길, 지나가는 자동차들, 길거리 가로수들, 바삐 가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에겐 새로운 공부거리다. 그리고 저자는 그런 치매 어머니를 공부하고 있다. 어머니 치매와 대화하고 즐기는 여정, 그것이 내게는 공부다. 책 속의 어머니는 지난 날 팍팍하던 삶을 살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자화상이다. 전쟁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그녀들에게 공부는 사치였고, 따뜻한 쌀밥은 축복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저자의 어머니 봉양이 결코 낯설지 않다. 2007년 3월 6일(화) 어머니가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생전 처음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나 그 날은 온다. 총명하던, 누구보다 건재하고 영원토록 강인할 것만 같은 그 이름 어머니. 당신의 육신이 쇠약해지고 정신은 혼미해지는 그런 날. 몇 해 전 어머니가 처음으로 내 생일을 잊어버렸다.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깨닫고선 미안함에 점점 쪼그라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 날 이후 난 내 생일을 잊지 않았다. 내가 먼저 기억해서 어머니께 내 생일을 말씀드린다. 다시는 어머니가 내 생일을 잊어 버려 미안해하시지 않도록.. 그리고 생일날이면, 어머니께 마음의 선물을 준비한다. 낳아주시고, 이만큼 길러주신 고마움의 표현이다. 효도가 크고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저자는 책을 통해 보여준다.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인간된 도리로써 어머니를 돌보는 것인데 사람들은 효자니, 고생한다느니 하는 말로 그를 별종으로 만들어 버렸다. 평범함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는 별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마음에 동의한다. 치매 걸린 어머니, 좌반신이 마비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문병 가는 아들이 아닌, 곁에서 마지막까지 동행하며 간병하는 아들이기를 원한다. 이 책 《어머니 공부》는 제대로 나를 가르쳐 주었다. 저자와 어머니의 섬세하고 즐거운 동행은 이후 나의 어머니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김동현 씨에게 감사한다. 당신과 당신 어머니를 통해 나는 어머니의 주름을 다시 돌아 보았다. 어머니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평생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온 어머니. 이제 나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
|
어머니는 늘 어머니 역할 만 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만 가면 혀 짧은 소리로 잉잉거리며 어리광을 부릴 틈새를 엿보고 있기 마련이고 은근히 그 맛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 자신이 어머니 인 것을 놓아버리고 점차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치매 증상을 보인다면 자식으로서 그만큼 난감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그런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처음부터 두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 이가 빠지면 그 부분에 틀니를 끼워드릴 생각을 하듯이 어머니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 기억의 틀니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어머니의 훌륭함에 매일 반하면서, 모든 일상을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는 치매 어머니 간병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는 어머니를 종교와도 같이, 자신은 그 종교의 지극한 신도인 냥 어머니를 섬기고 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니 5년이니 하는 세상에 어머니와의 사랑이 날마다 두터워지는 이런 모자의 이야기는 분명 흔치 않은 내용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황당하고 괴상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상처럼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저자의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 변두리 골목의 한옥에서 수십 년 째 살아오고 있는 저자의 어머니는 남편이 실직한 후부터 하숙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을 모셔서 천수를 누릴 때까지 돌봐온 모습을 본 저자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어머니의 노후를 살피며 살고 있다. 저자가 어머니를 대하는 자세는 억지가 없이 자연스럽다. 생로병사가 삶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고 늙은 부모를 자식이 수발을 드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모습에는 수행자의 느낌조차 슬쩍 비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눈으로 본 어머니의 일생이 담겨져 있다. 누구보다 정직하고 곧게 살았던 어머니의 행적을 되살필 때마다 저자는 탄복을 하곤 한다. 자식을 키울 때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감탄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렬한데 이것이 어머니를 돌보는 저자의 한결 같은 마음 자세다. 모든 사람들이 천륜인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에 그칠 뿐 실천하는 데는 각자의 정성과 노력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그 실천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있다. 요즘 주변을 둘러봐도 생애의 마지막을 요양원에 의탁해서 보내시는 분들이 많다. 맞벌이 도시생활은 늙고 병든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드리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또 복지라는 개념에 얹혀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저자의 아버지가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이 안쓰러워서인지 아들에게 그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대목이 있다. 저자는 바로 “다시 한 번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부터 요양원에 보내 드리겠다”는 대답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막았다는 내용에서 저자의 단호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대개 모시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나머지 자식들은 한 번씩 부모님을 찾아뵈면서 모시고 있는 형제에게 이러쿵저러쿵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내보이게 된다. 이럴 때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다 모르는 형제들이 내뱉는 말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내용으로 책 속에 문병인과 간병인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간병이란 앓는 사람의 곁에서 병구완을 하는 것이고 문병이란 병문안을 이르는 것인데 문병인이 간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사실이 주제 넘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부분이다. 책의 내용은 치매가 찾아온 어머니를 돌보는 것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그 실천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하루의 생활을 온전히 함께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또 저자처럼 24시간을 부모님을 위해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가 부모님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그 가난에 그늘이 없이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가난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세태에 이만한 정신적인 부를 가지게 된 것을 저자는 다 부모님 덕분으로 돌린다. 이런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신 부모님, 특히 어머니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는 이유도 이 책을 쓴 목적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 눈 뜰 때 마다 반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는 저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행복이 저자의 바람처럼 오래 계속 되기를 기원해 드린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 종교생활을 한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도만 드릴 뿐, 모실 생각은 하지 않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는다면, 그 기도의 실체는 무엇이겠는가. 어머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한 자식의 일방적 자기합리화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자식의 자아를 왜곡시켜 이중의 불효를 저지르는 결과를 초래한다.(100쪽) |
|
예스의 작가 블로거이신 초보운전님의 책이다. 책 계약하고 쓰시는 것, 집필 과정의 어려움, 드디어 책 출간하신 것, '인간극장' 출연의 소식 다 알았지만, 그 사이 책을 읽었지만 리뷰를 차마 쓸 수 없었다. 물론 내 부족한 글솜씨로 오히려 저자분께 누가 될까봐서였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다.
책에는 저자분이 혈관성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으로 실려 있다. 저자분은 '어머니 간병하느라 수고하신다'는 인삿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시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고, 자신은 전혀 애쓰거나 수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시다. 오히려 나날이 배우고 있을 뿐. 그러므로 나 역시 저자분의 의견을 존중해서 이 리뷰에 어머님 모시는 과정에 대한 책 내용을 소개하거나 요약하며 감탄하지는 않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이 저자분이 어머님 간병하시는 그 애틋한 정성과 애정을 간과하고 지나친다는 말을 아니다. 단지 저자분께는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책을 읽는 나 역시 그 자연스러운 태도를 받아들이며 호들갑 떨지 않고 읽었다는 뜻이다.
읽는 내내 어머님 간병 사연은 물론 사이사이 북아현동 옛집, 아버님과 양가 조부모님들 이야기, 저자분의 독서 이야기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담히 쓰신 부분 역시 내 마음을 울렸다. 블로그에서 사진과 함께 조금씩 쓰신 문장들을 읽어보면, 이 분은 어머님을 간병하는 체험을 통해 '효'의 단계에서 또다른 높은 정신적 성취를 이뤄 가시는 것만 같았다. 뭔가 동양고전이나 철학 쪽의 독서체험과 사색을 자양분으로 갖고 계신 분 같았는데 블로그 포스트 글에서는 많이 드러내 주지 않으셨다. 궁금했다. 책으로 읽어보니 역시나 <논어>를 비롯한 동양 고전 철학에 심취하신 분이셨다. 이렇게 인생 선배님의 정신세계를 살짝 엿보는 재미가 이런 에세이 읽는 재미인 것 같다. 그러기에
어머니 치매와 대화하고 즐기는 여정, 그것이 내게는 공부다. 라는 본문의 한 문장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리뷰를 늦게 쓴 다른 이유는,,, 나의 지나친 사적 감상을 리뷰에 드러낼 것만 같아서였다.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장녀인 내 어머니를 편히 여겨 우리집에 오래 계시곤 했다. 손녀인 나는 당연 외할머니와 한 방을 써야만 했고, 난 외할머니의 초기 치매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다. 어머니는 불평하는 나만 야단치셨다. 너 같으면 니 엄마 흉보는 사람 좋아하겠냐고 하셨다. 결국 외할머니는 상당히 변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내 어머니가 70대 할머니가 되셨다. 난 어머니에게서 옛적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싫다. 난 잘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던 작년 가을, 엄마에게 어떤 증상이 결정적으로 왔고, 병원에 가셔야만 했다. 며칠 후, 의사는 대강 말해주기에 답답하다고 엄마는 날 불러 사진을 내 놓고 영어소견서를 시원시원히 읽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MRI 뇌사진을 보며 속으로만 울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명랑하게 말씀드렸다. "엄마, 지금 엄마의 뇌혈관이 막혀가고 있어. 그런데 연세 드셔서 자연스레 그런거니까 너무 상심하시지 마셔. 하지만 이거 하나는 꼭 잊지마. 엄마가 나랑 오빠랑 올케언니에게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울컥 들더라도, 그건 엄마가 아파서 그런 거일수도 있으니까, 대뜸 화내거나 혼자 고민하지 말고 꼭 나에게 먼저 말로 표현해줘."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빨리 쓸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겪을 수 있는 일, 생로병사를 비롯한 모든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기 성숙의 기회로 삼는 그런 '공부'의 경지에 나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 <어머니 공부>의 이동현 선생님은 그 길로 이미 걸어가고 계신다. 다정스레 어머님의 손을 잡고. 난 이제 시작일까. 이 길을 얼마만큼 따라 걸어갈 수 있을까. 전처럼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까. 겁난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나의 이 공부길에는 이미 "참고서"가 있지 않은가. 바로 이 책 말이다.
|
|
![]()
보통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치매와 그외 중병에 걸리면 요즘은 대부분 '요양병원'이나 그외 시설에 많이 가시게 한다.그리곤 시간을 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병원비나 대는 것이지 정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나 또한 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드리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폐암이라는 소리를 듣고나니 덜컥 이제 아버지를 누가 맡아야 하나하는 생각부터 들게 되었다.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게 된다면 아니면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된다면 그 뒷일을 누가 다 맡아서 할 것인가? 분명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 자식들이 있으니 모두 모여 상의를 해야했고 모두 모여 의견을 내지만 이유 없는 자식이 없다. 모두 이래저래서 안된다는 말뿐이지 선뜻 나서서 맡아서 자신이 모두 멍에를 짊어지겠다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서일까 그래도 보내 드리고 너무 많이 못한 일들이 사뭇쳐 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서지만 그래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가 함께 아버지 옆에서 수발을 들었던 그 귀한 시간들이 내 삶에 영양분처럼 날 지탱하게 해 준다. 그렇다고 홀로 계신 엄마를 좀더 챙겨 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 뒤돌아 서면 잊고 만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기에.
그런데 저자는 70중반에 치매가 온 어머니를 출퇴근 길에 함께 하면 극진히 봉양을 한다. 정말 부모님은 낳으실 제 괴로움을 다 잊은신듯 자식을 위해 허리가 휘도록 젊은 시절 열심히 두 손에 지문이 다 닳도록 하숙일을 하시며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런 어머니의 인생을 어쩌면 다시금 반추해 보는,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자신이 어머니 인생을 통해 인생이란 것을 다시 배우고 있음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모두 담아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백프로 모두를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지난날의 과거의 모든 것들,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가 잊어가고 있는 그 기억들은 아들인 장자는 다시금 불씨를 되살려내듯 하나하나 다시금 불씨를 집히고 있다. 우리 친정엄마고 그러지시만 다른 병은 걸려도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며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시골동네에 엄마와 연세가 같으신 분이 치매에 걸리신 분이 계셨다. 날마다 동네가 떠들썩 하기도 하고 자식들은 어머니를 찾아 온통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도 그 넓은 들로 찾아 다니기를 밥먹듯 하니 나중에는 어머니께 점점 험한 말도 하고 어머님이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하지 말아야 말과 행동을 일쌈는 것을 보았다. 그 어머님 울집 밭에서도 늘 고추며 콩이며 한참 수확을 하려면 따가서 엄나도 나중에는 혼잣말로 속상하다고 하시면서도 가슴 한 켠에는 불쌍한지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혀.' 하고 늘쌍 하셨다.
그렇게 치매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옆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다른 병 또한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가치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은 정말 슬픈일인듯 하다. 그런데 저자는 부모님의 과거가 모두 저장되어 있고 할머니와 외할머니까지 함께 사시다 가셨던 북아현동의 저잣거리 집을 다시 수리를 하여 부모님과 함께 한다. 어머니의 치매가 좀더 깊어진 다음에는 아예 출퇴근도 함께 하고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한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한다.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고 좋은 것이 있다면 그가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의 치매가 아니었다면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것이란 말이 와 닿는다.그런 어떻게 보며 고지식하고 세상과 소통이 그리 많이 않았던 아들이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많은 돈을 들여 집도 수리하고 마당에 감나무며 매화나무며 대추나무도 심어 사계절을 느끼고 집안에 새로운 가구와 가전제품을 들여 놓는다.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변화였는데 무엇보다 큰 것은 차를 장만한 것이다. 운전도 못하면서 차를 장만하여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고 맛난것 한번 사드시지 못한 부모님과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는,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되지 않았을까.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중병에 걸리면 물론 요양기관에 맡기면 잘 알아서 돌봐드리겠지만 무엇보다 더 안정감을 갖고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인듯 하다. 우리 부모님들도 병원에만 가시면 하시는 말씀이 '집에 가야지 여기에 못 있는다.밭에도 가봐야하고 수확도 해야 하고..' 늘 집걱정이셨다. 그렇다고 옆에 다른 사람을 시켜 돌봐드리라고 할수도 없는 처지, 그럴정도가 아니었기에 내가 시간을 내어 함께 했는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난 정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평생 후회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병간호를 한다는 것은 '문병인'이 아니고 '간병인'이라면 누구나 힘들다. 문병인들은 알지 못하는 환자와 나누는 세세한 것들을 나 또한 알고 있었고 처음엔 서로 맞지 않는듯 하면서도 가족이기에 서로가 잘 통하고 금세 우린 어느 누구도 부러워하는 짝이 되어 아버지를 돌봐드렸다. 저자 또한 요양병원에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아버지가 그 말씀을 한번 꺼냈지만 정말 본전도 찾지 못하고 아들에게 혼자고 마셨다. 남이 못하는 부분을 가족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느꼈겠지만 남이 보는 시선에서는 또 그렇지가 않다.요즘은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세상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면서 우린 자식에게 나중에 어떤 거울이 될지 생각도 못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그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은 어머니가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자신도 모셔야 된다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그 일로 그는 상을 받기도 한다. 안받겠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받게 되는 효자상, 그 앞에서 해맑게 웃으시는 어머니가 평안한 모습이다.
'어머니를 찾아 가는 길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자신들을 돌보고 키웠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살아오듯 부모님에게 못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세상공부 인생공부를 하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진솔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극진히 봉양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점점 드문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우리 또한 나이를 먹을 것이고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우리도 그런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세상은 병이란 것이 나이를 따라 오는 것이 아니고 젊은 사람도 노인들이 걸리는 병에 걸리는 것이 보통의 일이 된 세상이다. 자신의 뿌리가 박힌 곳에서 어머니의 인생을 그리고 아버지의 인생을 함께 지켜가며 지천명이라는 나이에 비로소 어머니로 인해 세상을 다시 보는 인생 공부를 하는 그의 담담한 이야기가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당연한 것이 외면 당하는 세상,난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면서 내 자식은 우리를 모셔주길 원한다면 그것이 생각처럼 될까. 본대로 배우고 익히게 되어 있는데 과연 자식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치매환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평안하신 어머님의 얼굴이 좋다. 좀더 오래 아드님의 곁에서 평안하시고 아프시지 않고 오래사시길 바라며 많이 가져서 부자가 아니라 그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품고 있어서 부자로 보인다.
|
|
내가 아는 분은 치매 아버지를 모시고 오래 사셨는데 관절염이 심해지셔서 요양소에 보내셨다고 한다. 그 분이 딱히 불효자거나 아버지가 귀챦아서가 아니라 본인 몸이 아프고 나니 효가 머리 속에서만 이르지 마음에 가 닿지 않은 것 같았고 나이가 들고 치매가 발병하셨어도 느낌만으로도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전기가 통하듯 느껴졌다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들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지은 작가 역시 그러한 생각들 때문에 효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머니 봉양하느라 애쓰십니다, 는 내가 자주 듣는 인사말이지만 역시 달갑지 않다. 나는 애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람은 깊은 진정에 가 닿을 수 있어야 타인에 대한 공감 역시 가능하고 그러한 것들이 삶과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작가가 살고 있는 오래된 동네인 서울 북아현동에 대한 이야기, 오래된 집, 동네, 보수하는 과정, 그 속에서 알게 된 아버지와의 일화, 어머니의 하숙집 시절의 고생한 이야기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전 세대들이 그러하셨듯 작가의 어머님 역시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는 어떤 핵심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치매에 걸리기 전 작가의 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 문안을 여쭙고 10년간 봉양하셨으니 그러한 모든 삶의 여정들이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세상 사는 이치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 허리가 아프셔서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먼 거리를 왕복하며 일까지 접어가면서 시간을 내 척추전문병원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렇지만 나 역시 누군가 당신 참 효자네요. 하는 말은 역시 거북살스러울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들과 만나지는 삶의 오묘한 빛깔들과 다양한 사람들의 심성이 빚어낸 어떤 과정 속의 결과물들을 통해서 조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스24에서 블로그에 어머님과의 일상을 사진들과 함께 일기 형식으로 수필형식처럼 올리고 있으니 궁금한 많은 미래의 독자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이 곳을 찾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어 본다. http://blog.yes24.com/donghlee 이동현의 어머니 공부, 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어지고 있는 곳인데 저자가 기존에 쓴 책들과 작업실, 어머님의 이야기들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치매는 단순한 몸의 질병만이 아니라 기억을 앗아가고 아이같은 백지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힘들고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처럼 24시간 늘 같이 생활하며 말벗이 되어주고 같이 식사를 하고 여행을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을 깊이 받아들이는 분이어서겠지만 공부에도 깊이가 있고 생각도 진중하시지만 날카로운 촌철살인도 날리시는 분이신지라 오히려 냉정과 이성적인 면, 감성적인 면들, 때로는 곤란하거나 곤혹스러운 과정들을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해내고 계시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지인 두 사람에게 바로 선물했고 어제도 아는 분께 소중하게 포장해 선물해 드렸다. 그리고 인간극장을 꼭 보시라는 말까지 잊지 않은 것은 작가가 삶의 흔적들이나 어머님이 살아오신 궤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하게 하는 점 때문이다.
후반부에 실린 212페이지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는 특히 전율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아직도 시골집에 가면 오손도손 가족사진들이 오래된 액자 속에 그야말로 흑백의 용태를 뽐내며 빛나고 있는 것들을 본다. 작은 손자, 손녀부터 장성한 자식들, 지금은 백발이 된 친지들까지 모두가 모여 앉아서 지난날의 한 시대를 그 프레임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책은 종교, 역사, 논어, 후한서, 시장터, 직업,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유심히 보게 되었던 것은 허리디스크 뿐만 아니라 척추뼈가 두 개가 으스러진 내 어머니를 현재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얼른 나으셨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이 또한 마음에 사무치기도 한다. 평소라면 바빠서 명절이나 찾아가거나 내가 주말에 돌보는 주말농장이나 내 취미생활 하기에도 모자른 시간에 새삼 가족들을 더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 한 가족의 역사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모두 읽고 난 지금 왠지 나는 이동현 작가가 많이 부럽기까지 했다. 효도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런 이치이기에.
|
|
어머니 공부 / 치매 어머니와 매일 출근하는 아들의 인생 공부이야기 / 필로소픽
지금은 양가 어머님이 모두 건강하시지만 만약, 양가 어머님들중에 치매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생각을 해보지만 쉽게 내가 모시고와야지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럴때는 나도 참 이기적이란 생각이든다.
며느리나 딸의 입장에서 다른 형제들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바로 내가 돌봐드려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맞는데 왜 그런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지.... 전에 시어머님이 다리수술을 하시고 잠시 모셨던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어머님이랑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편했었는지 알기때문일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모셔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고 생각을 했을 경우 흔쾌히 나서지 못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는 걸 알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게된다.
요즘 집 근처에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요양병원들이 많이 생기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직접 모시는 분들보다 치료를 포기하고 시설에 보낼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책이 많은 이들이 가슴에 울림을 주는 건 오랫동안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시설에 보내지 않고 어머니와 매일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함께 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달해주고 있는 이야기인데 그러면서 저자는 어떤 책에서도 배우지 못햇던 공부를 어머니를 통해서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아마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특별할 것이다. 늘 그 자리에 건강하신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계실거라 생각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이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은 아차~~ 늦었구나 하는 후회가 된다고 하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서점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여행을 다니는 일상이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치매에 걸렸다고 이렇게 함께 보살피면서 생활하는 자식들이 얼마나될까? 내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어머니를 위해서 낡은 집은 개조하고 간병 일기를 쓰면서 간병을 하는 아들이 어디 또 있을까??
매일 출.퇴근길에 어머니와 동행을 하고 이런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을 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의 삶을 되짚어나가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며 지극정성으로 어머님을 보살펴드려 현재는 기억을 잃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나쁜 곳이 없을만큼 건강함을 유지하고 계신다고 하니 이 모든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
|
출처 http://blog.yes24.com/donghlee 저자 이동현(초보운전)의 블로그
난 아버지의 치매를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수 있을까? 책이 출간되기 오래전부터 치매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시는 저자의 블로그를 가끔 찾아가는 독자였다. 치매라는 병에 걸리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고 계신다. 무슨 말로 서평을 시작해야 할지 많이 망설여지게 되는 책도 오랜만이다. 나 또한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기에 치매라는 것이 남의 말처럼 여기지지 않는 탓이다. 비롯 장난기 어린 농담에서 시작되었지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남자(아들 또는 사위)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것과 여자(딸 또는 며느리)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 중 어느것이 더 힘들까? 저자의 어머니께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모셨듯이 세상은 간병의 의무를 여자들에게 당연하다는듯 떠맡기려 한다.
"한 번만 더 요양원 얘기를 꺼내면 아버지부터 보내는 줄 알아!" (p.117) 아내의 치매기가 증증에 달했을 때 아들 혼자 어머니 간병하는 것이 안쓰러워 나온 소리 같은데(?) 아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부모님이 늙어 중병에 걸리면 요양원에 보내겠다는 자식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또한 그것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부모님의 사후에 그리워하기보다 살아생전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효자라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젊은 시절이라면 그 소리를 부정했겠지만 (아~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늙었다는 말은 아니야~)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 세상을 조금쯤은 알게 된 지금은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종교생활을 한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도만 드릴 뿐, 모실 생각은 하지 않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는다면, 그 기도의 실체는 무엇이겠는가.' (p.100)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 만약 다른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헛소리라 일축해 버리겠지만 몇 년간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를 직접 모시고 사는 사람의 망이라서 더 가까이 다가왔고 공감이 갔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 배려가 되는 경우가 우리 일상에는 많다.' 치매에 걸렸다 하여 몸이 불편하다 하여 누군가 돌봐주는 편안한 생활만을 해서는 건강을 회복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걷기연습을 하는 등 스스로 할수있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이다.
'혈관성 치매' 저자의 어머니가 받은 치매 판정이다. 치매에도 종류가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되는 시간이었다. 사실 처음 책을 펴들었을 때만해도 특별한 간병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 어디서 많이 본 글과 사진이 올라있기에 저자를 다시 살펴봤고 그제서야 내가 가끔 방문하던 초보운전(이동현)님이 펴 내신 책임을 알수있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아드님의 일상생활이 쓰여져 있는 것임을 알기에 특별한 간병기는 포기한 셈이다. 자식이 병들었다 하여 버리는 부모는 없는데 부모가 병들면 버리는(?) 자식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늙으면 어려진다는 말에서 간병법을 알수있는데, 자식에게 관심을 가지듯 그렇게 돌보면 된다.
2005년 치매증세를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했고, 2008년 어머니의 기력이 쇠약해지자 사무실로 모시고 다니며 돌보는 등 본격적으로 간병에 들어갔다. 부모님을 잘 모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엣날에 두 젊은이가 있었다. 한 명은 부모님께 일을 하지말고 편안히 사시라던 아들이었고, 다른 한명은 쉬지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자식이었다. 처음 책을 봤을때는 첫번째 청년이 더 효자란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고생만하시고 사시던 부모님이 아들 덕분에 편안해 지셨으니 얼마나 효자이겠는가 싶었던 것, 반면 늙으신 부모를 부려먹는(?) 아들은 불효자로 하지만 세상사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두번째 젊은이의 말을 들어보고서야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를 깨달게 된것이다. 책의 결말에는 늙었을지라도 자식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수있었던 둘번째 젊은이의 부모가 노후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남편의 도움으로 홀로 계시던 친정아버지가 봄부터 우리와 함께 기거하시게 되었다. 내 부모니까 편안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신경쓰이는 일들이 많았던 것, 어쩌면 편하다는 이유로 내가 아버지에게 생각없는 말로서 상처를 줬을지도. 지금 우리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기에 치매에 대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치매도 여러가지 병중에 하나인것을. 치매의 종류로는 노인성 치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 전측두엽 치매, 파킨슨병 치매, 헌팅턴병 치매, 정상압 뇌수두증에 의한 치매, 두부 외상으로 인한 치매, 물질로 유발된 치매 등 이 있다. 자식의 병수발은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면서도 부모님의 병수발은 힘들어 하는 것이 자식이다. 아버지께서 아직 건강하신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후에 병들었을때도 모시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자신할수만을 없는 것이 단지 변덕때문만은 아닐터. |
|
![]()
이동현 <어머니 공부> 필로소픽
어머니, 엄마라는 단어에는 항상 자연스러운 끌림이 있다. 그것이 좋은 느낌이어서 다가가는 끌림이든 나쁜 느낌이어서 거부하는 모습이라도 그 속에는 사실 엄마라는 단어 속에 담긴 느낌이 만국 공통으로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 공부, 어머니를 공부한다니? 저자의 책 제목에 끌림이 있지 않고 어떻게 머물겠는가.
p.99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서적 충일감은 쉽게 획득하려 들면서도 그에 따른 의무를 회피하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저자는 단호히 말하고 있다. 어머니라는 코드에 쉽게 동화하면서 어머니를 잘 모실 자신이 없다는 말에 저자는 반색을 한다. 그것은 곧 내게 대한 말이었다. 나는 어머니라는 단어에 쉽게 동화하고 눈시울을 붉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안부전화를 드린다거나 맛있는 것을 사드리기보다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요즘처럼 노인요양보호시설이 발달하고, 치매노인을 도저히 집에서 모시는 것은 여러가지로 낭비(?)인 시대라고 판단하게 되는 요즈음 저자의 치매어머니 봉양의 일기는 자식들에게 부모님이라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만약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면 어머니는 당연히 나를 간병하셨을거라는 후반부의 질문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치매앞에 자식들은? 이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그저 내리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참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p.98 공부란 생로병사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 학교에서는 '생'만 가르칠 뿐이다. '노병사'를 배울 기회는 사라졌다. 옛날에는 먼저 조부모로부터 그 다음에는 부모로부터 '노병사'를 직접 익혔다. 그런데 요즘은 조부모는 물론이고 부모와도 떨어져 살기에 평생 건강하게 살 줄 알다가 제 홀로 '노병사를 겪는다.
그래서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나도 내가 지금의 이 자리에 올줄 몰랐다고. 너희들도 금방 당하게 된다고.'
p.62 육이오전쟁의 격동기와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속에 꽃다운 청춘을 잃었다는 점..어머니에게는 지극한 헌신의 형식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들의 부모님 누가 헌신하지 않으신 분이 계신가? 한편 저자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하나하나 회고하며 어머니의 말씀의 자리를 뒤늦게 따라간다. 그렇게 헌신의 자리가 당연하셨던 시대상이라고 말하고 지나치는 자녀들에게 깊은 울림이 조목조목 이어진다. 자식들이 사랑스럽듯 늙으신 부모님 또한 자녀들을 길러내신 자녀들의 감당할 몫이라고.
치매는 간병하는 만큼 덜 나빠진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할아버지, 진주 할머니를 가시는 마지막 자리까지 수발하셨던 나의 어머니가 문득 생각난다. 보고 자랐으니 나도 엄마를 잘 모셔드릴 수 있을까? 최근에 두 차례 노인요양원에 방문갔다가 돌아가는 우리들을 향해 앞 침대의 할머니께서 "나도 같이 가자" 하시던 외침이 영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
|
여자에게 어머니란 애증의 존재다. 어머니에게서 나서 어머니의 길을 가며, 발치에도 못미치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없이 작아지곤한다. 그럴때 이 책을 만났다.
참으로 겸손해지는 책이다. 어머니 공부... 육아서만 목매고 들고 파던 나에게 어머니 공부란 책이 왔다. 꽂아두고 손을 못댄지 여러날 제목만 봐도 자꾸 눈물이나 펼쳐볼 수가 없었다. 나의 치부를 묻어둔 곳인마냥 엄마라는 단어 앞에 늘 작아지는 나다. 엄마라는 단어끝엔 늘 눈물이 난다. 이제 갓 60을 넘으신 세상 물정모르는 엄마는 언제나 자식걱정하며, 스스로 자식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 벌써 전전긍긍이시다. 어젠 길 찾는데 힘들었다, 자꾸 깜박하네, 낮엔 잠만오고 ... 엄마 아프면 어쩌지... 철없는 자식앞에 엄마의 걱정은 끝이 없다. 두번만 같은 말을 들어도 정색하던 못된 기집애 딸이 그나마 나아졌다며 대놓고 싫은 소리하실 때도, 점점 답이 줄어드는 전화기 너머를 생각하며 답도하기 전에 끊어버리시는 엄마.
2007년 3월 6일 (화) 어머니가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생전 처음 잊어버렸다 (이후 어머니는 두번 다시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책을 덮어버렸다.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펼쳐 뒤로 갈수록 오히려 편해졌다. 참고서적 목록만 봐도 어머니 공부라는 제목이 새삼 와닿았다.
달과 손가락...효자자격증이라는 손가락이 아니라 어머니 달을 바라볼 뿐이다.
긴병에 효자없다라고하고 어느새 나의 어머니도 요양원을 미리 알아봐두는게 좋지 않을까라며 앞선 걱정을 하시지만 아직은 유한책임자까지도 못미치고 내새끼걱정만 앞서는지라 바라보는 눈길마저 불편한 지경이긴하다.
자식은 부모의 쓸모없어짐의 현상을 통해 이제까지 앞만 보고 살아왔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의 또 다른 일면인 쓸모없음을 비로소 성찰하게 된다. 그 쓸모없음의 의미화 과정을 통해 늙고 병든 부모를 봉양하는 실천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이다. (쓸모없음의 의미화)
아직 영글지도 않은 자식들을 보며 나를 어른취급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영글지 않은 자식보듯하는 어머니에대한 공부... 어머니 달을 온전히 바라보는것.
자식때문에 어른이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님을 알았다.
어머니 공부...자신의 뿌리를 돌아보는 가족사같은 책이다.
http://blog.yes24.com/donghlee
제주도에서 두분이 찍은 사진이 행복해보인다.
|
|
[어머니 공부 - 이동현]
주행거리 7만 킬로미터,
이 책은 치매 어머니를 둔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면 병에 걸리기 싶고,
그런 뉴스들을 접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 책에서는 어느날 자신의 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어느 한순간도 편할 날이 없었던 어머니.
주인공은 연료하신 어머니를 위해서 낡은 집을 개량하기도하고,
아들은 아픈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이 책을 보니 예전에 인간극장이라는 프로에서 봤던 한 장면이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는 어머니가 치매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올 수 있는 일이고,
그리고 주인공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운전면허를 배우고 매일같이 출퇴근을 같이 하는 아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어머니에게 극친하게 잘 모실수 있을까?등등 많은 생각들이 왔다갔다 한다. 무엇보다도 효를 실천으로 옴긴 주인공이 너무나 멋져보이고, 당연한 듯 하지만 어려운 일을 열심히 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