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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1쇄 발행 2019년 6월 7일 부제: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50년 이야기
뛰어난 기술이 곧 예술 영어 '아트art'의 어원인 라틴어 '아르테arte'는 곧 뛰어난 기술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박영춘 회장의 카드 업계 데뷔 첫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된 비결은 남다른 금속조각 기술 덕분이었다.
1960~70년대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의 시기에 대대로 이어져 온 우리만의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디자이너가 자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액션 카메라 고프로를 개발해 20대에 세계 최고의 거부 대열에 오른 닉 우드먼도 자기 자신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템으로 큰 성공을 거머쥐었다.~여행 중 문득 서핑하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퍼용 1회용 카메라를 손목에 묶어 사용했는데,~'다른 서퍼들도 이런 카메라를 좋아할 텐데!'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번쩍 스쳤다. ~어떤 사업을 시작할까 고민된다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일등의 숙명, 새로움을 창조하라 팬시가든 오픈은 우리나라에 선물용 디자인 문구 상품이라는 뜻의 '팬시'라는 말을 보급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에는 없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창조적인 조직을 위한 공간은 달라야 한다 1097년 창업한 바른손의 역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념물은 1994년 방배동에 들어선 '바른손 사옥'이다. 2014년 타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종호 교수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으로 1995년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했다.
많이 다니고 사보고 써볼 것! 경험치가 곧 당신의 안목이다. -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다른 게 부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보는 감각이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III.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당신의 다음을 결정한다. 실패는 곧 배움의 순간 실패를 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실패'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할 뿐이다. ~하버드대 경영학과에는 '실패101'이라는 수업이 있다. 20년이 지난 2010년대에야 우리나라에도 비 브랜드를 표방하는 트렌드가 확산됐다.~바른손의 '실용선언'이 겨냥했던 비브랜드 트렌드는 20년이 흐른 후에야 우리나라를 강타한 것이다. 결국 시장의 니즈와 반보 앞선 트렌드 사이를 오가는 타이밍 게임이 기업 경영의 핵심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기 박 회장은 이렇다 할 부동산 등 개인 재산을 축적하지 않고 모든 재원을 쏟아부으며 회사를 이끌었다. 그에게 바른손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꾸면 실패가 기회가 된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e-카드는 2000년 당시 카드 업계의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뿌리 내리는 시간을 견뎌라 1994년 바른손 사옥으로 김수근 문화상을 받았던 고 이종호 교수가 상하이 공장도 설계했다.
바른손카드 상하이 법인은 초기에 임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오다 2008년에 6만6000m2(2만평) 대지를 구입해 상하이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중국 진출 7년 만에
새로운 시작, 아트 프린팅 온라인 음원으로 음악을 즐기듯, 집에서 부담없이 미술 작품을 즐기면 어떨까?~대중이 미술 작품을 좀 더 가깝게 즐길 수 있도록 길을 내주기. 이것이 이 사업의 명확한 의도다.
저변을 넓혀야 미술 산업이 발전한다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가 1888년 헨델의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을 최초로 녹음한 이후 더 많은 사람이 녹음된 형태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당시 축음기 때문에 음악가가 일자리를 모두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녹음 기술 덕분에 음악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음악을 접하는 방식이 더욱 쉽고 다양해질수록 전체 음악 시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박 회장은 미술도 음악처럼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어야 고급 미술 시장도 더욱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위기 상황에서 나다움을 어떻게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가능은 할까? 하는 조금은 의아함도 있지만...전반적인 기업인의 시각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개인 기업이니 본인의 뜻대로 과감할 수 있지만, 회사른 위한다는 명분이긴해도 직원에게 저렇게 쏟아 붓는 회사라...당시로써 모험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지금의 구글 같은 존재엤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 인재경영을 한 것에 놀라움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더욱. 한 번의 실패로 빨간 딱지가 붙고 모든걸 잃는 지금의 세대들에게 2번의 실패를 당당히 일어선. 어쩌면 실패운도 좋은. 인쇄시 한 번의 실패.바른손때 또 한 번의 실패.를 겪고 중국에서 다시 난항을 겪은 이 일화가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자괴감으로 다가갈지는 알 수 없으나... 꿈을 꾸고 움직이자 돈이 따라 왔다.라고도 일축할 수 있는 모습에 자신이 진정 하고픈게 뭔지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지금은 흔한 입체카드가 당시 바른손의 시작으로 나온 것이란 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자부심이 같이 클 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그들은 당대 최고였고 최초였고 시작이었기에. 그리고 아트 프린팅은 기대된다. 지금 흔하게 볼 수 있는 명화 우산이나 퍼즐이나 인쇄된 그림들의 시초인 듯 하여. 또한 서민이 소유하기엔 너무 비싼 명화를 소유할 수 있는 만족감을 주어서 고맙기도하고... 내가 갖고 있는 그림의 저자나 시대나 다양한 관심을 갖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해주어서. 무엇보다 정권유착 없이 직원 유린 없이도 기업이 기업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회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자란 그들의 자녀들도 같은 길을 걸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어떤 기업 보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지지가 우러났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유한양행만큼 멋진 기업으로 바른손을 기억 할 것 같다. 멋진 책이었고. 멋진 기업이었고. 멋진 사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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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cm로 싸우는 사람
바른손. 80년대 중반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중학교 전후가 되면서 보게 된 문구류의 브랜드입니다. 그때는 일본이나 미국 등 물건너온 제품들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국내산 제품들이 많았고 그 중 괜찮은 브랜드라고 하면 역시 바른손이었습니다. 이 회사에 대해 상세히 잘 알진 못했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선명한 바른손이라는 회사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출간되어 반가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집이 잘 산 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원하는대로 학용품들을 가매할 수 있었습니다. 바른손 제품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죠..
대학들어가고 졸업한 이후에는 문구류 자체를 거의 쓰지 않게 되었지만요. PC의 활용과 함께 그렇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글은 PC로 쓰다보니...
책중에 소개되는 다양한 문구류 디자인과 캐릭터들은 ‘아, 이런것들이 있었지’ 라는 감탄이 절로 들게 됩니다. 이 책은 바른손을 세운 박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첫 시작은 연하장이었습니다. 그 전에 싹수가 보였습니다. 그는 손재주가 좋고 미술을 전공하는 데 관심이 컸으나 여러사정으로 미대에 진학할 수 없어서 고향에 있는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배지등을 만들어 납품하였는데 금속조각을 하던 직원이 그만두어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회장에게 배지금형을 만들어보라고 하였고 만족할 정도로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전에도 사업적인 기질이 보였다고 합니다. 대학졸업 후 형을 도와 영업을 했으나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결국 그만두게 되었는데 퇴직금조로 받은 돈으로 일본산 자동금속가공 기계를 구입했답니다. 사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는 1달간 어떻게 쓰는지 알아내서는 금속가공을 시작하였다는 데...
이후 연하장 제작업과 관련 인연이 되어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사업 시작 전 명확한 시장조사와 함께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이 성공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많은 시련이 있었더군요. 박정희 사망과 함께 자금동결, 부도 IMF에 의한 부도 중국진출 후 저작권 개념이 없는 환경에서의 괴로움 등... 하지만 여전히 잘 버텨내고 살아있습니다. 바른손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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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의 50년 기업 경영 스토리를 그 뼈대로 하고 있다. 국내 1세대 경영자 중에서는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기에 그의 디자인 창업 스토리는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기업가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회사를 경영할 때 어떤 창조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지 알 수 있는 답안지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디자인 기업 바른손의 경영 이야기
박영춘 회장은 1939년 춘천에서 출생하여 강원대학교를 졸업했다. 인쇄업이 최신 산업으로 각광받던 1968년, 서울 을지로에서 다른 사람 사무실의 한 귀퉁이를 빌려 인쇄에 들어갈 글씨나 문양을 금속으로 조각하는 일을 시작한다. 1970년 카드 사업 첫해에 '바른손'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연하장이 130만 장 가까이 판매되면서 을지로 인쇄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다. 디자인 산업이 전무하던 한국 산업계에서 남다른 미적 감각으로 전에 없던 디자인 카드를 선보이며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1998년 IMF 사태 이후 바른손팬시가 부도 처리되었으나 박 회장은 60세의 나이에도 기업가 정신을 가슴에 품고 온라인 사업, 중국 진출 등 끊임없는 도약을 시도한다. 현재는 박 회장의 자녀들이 국내 카드 1위인 바른컴퍼니, 아트 프린팅 기업 비핸즈, 중국 상하이 법인 위시메이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강원도 인제의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고 있다.
을지로 인쇄골목의 떠오르는 스타
1970년대의 인쇄업은 오늘날의 IT처럼 각광 받는 미래형 산업이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동네였다. 그즈음 국내 최초의 주상 복합 아파트인 풍전상가도 이곳에 들어섰는데,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어 있고 스파게티를 취급하는 양식당이 들어설 정도로 최신 트렌드가 집약되어 있었기에, 당시의 힙스터들이 을지로로 속속 모여들어 경쟁이 치열했다.
상경한 지 3년 째인 1970년, 박영춘은 풍전상가 1층에 넓은 사무실을 얻을 정도로 꽤나 잘나가는 인물이었다. 그 시절은 활판 인쇄를 하던 때라 손재주가 좋은 그가 금속판 조각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평판도 좋았다. 그래서 한국화장품, 태평양화학 등 뷰티 업계에서 그를 자주 찾았다. 이 때의 조각 사무실 이름이 바로 '바른손'이었다.
그 시절, 새해 인사는 연하장이 활용되었다. 이에 박영춘은 연하장에 디자인 개념을 넣으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비로소 카드나 연하장은 메시지를 전하는 종이일 뿐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에너지가 움트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제품화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 기술이 없었다면 이런 아이디어는 구체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박영춘 회장의 젊은 시절
성공의 키워드, '아름다움과 정교함'
춘천에서 상경,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금속 조각공으로 인정받고, 바른손이라는 디자인 카드 및 문구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 박영춘 회장의 성공 비결은 아마도 '아름다움과 정교함'일 것 같다. 남보다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완벽하게 제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 번 볼 것을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치는 그 과정 자체에 성공이 이미 녹아들고 있었다.
회사의 성공 가도엔 직원수의 증가도 뒤따른다. 3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하면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때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맞기라도 하는 듯 뜻밖의 사건이 발발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었다. 갑자기 정국의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시장 또한 경색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큰돈을빌려 사업규모를 확장했던 바른손카드의 자금 흐름에 치명적이었다. 마침내 1981년 바른손카드는 부도를 맞았다.
제조 공장 없는 제조 기업
바른손팬시는 설립 첫해에 손에 휴대할 수 있는 작은 다이어리와 노트를 출시했다. 출시되자마자 20만개가 팔렸다. 1년 후 디자이너를 10명으로 확충하고 다이어리 노트 등 종이 제품, 봉제 인형, 포장지, 잡화 상품 등으로 상품 구성을 확대해 나갔다. 수입 디자인 문구만큼 뛰어난 디자인에 적절한 가격대로 출시된 바른손팬시 상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가히 성공적인 데뷔전이었다.
처음부터 바른손팬시는 자체 제조 공장이 없었다. 디자인 기획안을 갖고 고품질 제품을 함께 만들어나갈 협력 업체를 발굴, 이들에게 제조를 맡겼다. 하지만 엄격한 품질관리와 유통, 판매 등 모든 과정을 바른손팬시가 컨트롤했다. 자체 공장도 전무한 상태에서 첫 해부터 큰 매출액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관련업계 종사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바른손팬시가 시장을 강타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를 깨달았다. 당시만 해도 독자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고, 눈동냥과 귀동냥 만으로 디자인을 흉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본 캐릭터를 살짝 베껴서 토끼 귀를 좀 길게 한 다음 리본을 붙이는 방식으로 소위 '짝퉁' 상품을 양산했다. 사용하는 색깔도 빨강, 파랑, 노랑, 검정 등 몇몇 원색이 고작이었다. 몇몇 현력업체들이 전담팀을 구성, 이런 형태로 팬시 사업에 도전했지만 도저히 바른손팬시의 디자인 감각을 따라집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
바른손팬시의 사업목적은 단순히 디자인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 판다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 특히 아이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바른손팬시 자체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낼 수 있도록 했다. 박 회장은 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겼다.
'올해 어떤 상품이 히트 칠까'를 두고 다 같이 투표를 한 뒤 결과를 보면 박 회장의 적중률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는 트렌드를 감지하는 능력이 거의 동물적이라 다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실무자보다도 제일 정확하게 알았다. 프로 디자이너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디자인을 짚어내고, 섬세하게 수정을 지시하는 감각이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디자인 고문은 회고한다.
바른손팬시가 처음 생길 때만 해도 '디자이너'가 아니라 '도안사'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기업이 외국 제품의 디자인을 베끼기 바빴는데, 바른손은 자체적으로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직접 교육시켜서 시장을 선도했다. 창조적인 작업에 어울리는 예쁜 사무실로 인테리어를 하고, 모든 디자이너에게 매킨토시 PC를 한대씩 지급했다. 이후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바른손이 손꼽혔다.
위기 상황에도 나다움 잃지 않기
1998년, 대출 상환 기한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2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 바른손팬시가 곧 부도 처리될 상황을 앞두고 있었다. 박영춘 회장은 1981년 바른손카드 첫 번째 부도 사태의 혹독한 경험을 치른 이후 두 번째 겪는 일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도 박 회장은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 평소처럼 단전 호흡을 하고, 집에서 크로키도 그리고, 음악도 들으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최종 부도 처리되던 날, 그는 바른손팬시의 수장으로서 누리던 기득권을 모두 포기, 타고 다니던 회사 소유의 자동차마저 주차장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당시 바른손팬시의 매출은 바른손카드의 30배 규모로, 바른손의 주력 사업이었다. 비록 부도가 났을지라도 지속적인 매출로 인해 바른손팬시를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매각할 수 있었다. 1999년 박 회장은 보유주식 중 10%만 남기고 대주주로서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바른손팬시를 매각했다. 약간의 토지, 바른손팬시 주식 10%가 전부였다.
"30년 동안 사업을 했는데, 부도 직후 가장 많은 현금을 손에 쥐게 됐어요. 아이러니죠"
그런데,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주식 거래 정지 기간에 바른손팬시를 매입한 사람이 다른 기업에 이 주식을 매각한 것이다. 바른손팬시의 주식이 재상장되자 주가가 엄청난 기세로 상승, 박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10%의 주식이 엄청난 자본으로 돌아왔다. 이제 사업가로서의 인생은 모두 끝난 건가 생각했던 박 회장에게 또 다른 도전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목돈을 가지고 있던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지만 박 회장은 거액의 주식 매각 대금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IT, 게임 사업에 도전해 또 다른 도약을 꿈꿨다.
60대 초반의 나이로 중국에 진출, 그리고 파킨슨 증후군
60대 초반의 나이에 언어와 문화 모두 낯선 중국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박 회장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부동산 임대 수익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도, 그는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살기를 바랐다. 자신이 기획한 대로 새롭게 일이 진행되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 박 회장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중국 진출 3년 만에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 증상이 시작됐다. 그때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된 이후 파킨슨 증후군이 발병해 현재까지도 투병 중이다. 최근 박회장은 바른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삼남 박정식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삶이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개인이 재주가 있어서 첫 시작부터 성공적이었지만, 그 성공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뛰어난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긴 호흡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재미를 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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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0.1cm로 싸우는사람 소개 시켜 드리도록 할게요 ~ ♡
중고등학교 때 사용했던 바른손 팬시의 문구들과 손글씨로 많이 썼던 바른손카드의 추억을 떠올리며, 바른손카드의 탄생 스토리부터 ~ 2세대가 경영하고 있는 바른 컴퍼니, 아트프린팅 기업 비핸즈, 중국 상하이 법인 위시메이드 이야기 등 ~
책 한 권 속에 50년 긴 세월 속~ 기업경영을 하며 파란만장했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순 없었겠지만 ~ 이 책 한 권을 통해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의 열정을 다한 50년 경영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1939년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올해 80세,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1968년 을지로에서 사물실 한 귀퉁이를 빌려 금속으로 조각하는 일을 시작으로 디자인 카드를 선보이며 시장을 석권했으나, 두 번의 부도를 맞고도 끊임없는 도약을 시도한다. 현재는 박 회장의 자녀들에게 경영을 모두 물려주고, 강원도 인제의 산속에 집을 짓고 자연과 호흡하며 조용히 살고 있는 박영춘 회장.
생생한 바른손 50년 스토리를 듣기 위해 박영춘 회장와 수십 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이 책의 저자 김정윤. '디자인 중심 경영'에 대한 이슈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될 무렵, 국내 최초의 디자인 기업 바른손 박영춘 회장의 스토리를 접하고 1세대 경영자 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기에 디자인 창업스토리와 50년 경영 철학은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인터뷰 외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 속내용.
Prologue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당신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 이런 기술을 사용했어요" '소비자 경험이 기술을 우선한다'라는 새로운 경향은 IT업계에 전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디자이너 창업자의 대두이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정보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 이미지와 함 께 유통되면서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 카카오 조수용 공동 대표이사, 뱅크 샐러드 박지수 등 미적 경험을 이해한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느덧 경영자가 미적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기업 성패의 결정적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바른손의 광고 포스터를 살펴보면 바른손이 디자인을 어떻게 다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포스터에는 '21세기 아이들은 디자인을 먹고 삽니다'라는 헤드 카피와 함께 팬톤사의 컬러 칩을 스푼으로 떠먹는 장면이 담겨 있다.
1974년 일본의 팬시 업체인 산리오의 '헬로키티'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세계 곳곳의 문구 산업을 장악해 갔지만 일본과 바로 이웃한 우리나라에는 진입하지 못했던 것은 바른손을 필두로 한국의 문구 산업이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른손 신화의 한가운데에는 창업주인 박영춘 회장이 있다. 파킨슨 증후군으로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바른손과 함께한 50년 모험 이야기를 들려줬다.
"꿈같이 했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 처하며 자기 자신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Ⅰ최초의 입체 디자인 카드, 1970년의 바른손카드
남다른 시도로 업계의 입소문을 타라 박영춘 회장이 카드 업계 데뷔 첫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된 비결은 남다른 금속 조각 기술 덕분이었다. 예술과 기술의 조합은 실리콘 밸리에서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지 『앙트레프레너』에서 세계 100대 부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트렌드를 남들보다 일찍 파악했다는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디자인 카드로 사람ㄷ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성공 데이터를 풍부히 가지고 있었기에 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해 새로운 비전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디자인'으로 미래 사업 비전을 정한 그는 기존 바른손카드와 함께 새로운 사업 부서인 바른손팬시를 구상하고 본격적으로 산업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디자인 파트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전혀 새로운 분야, 전혀 새로운 시스템, 전혀 새로운 목적으로 무장한 바른손 팬시는 1983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 Interview1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 1993년 대전엑스포 꿈돌이를 디자인한 대한민국 대표 산업 디자이너 겸 바른손의 디자인 컨설팅 파트너로써 바른손 박영춘 회자와 40여 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현은 바른손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체 디자인을 가지고 제작에서 유통까지 총괄했기 때문이며, 마감뿐만 아니라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 경영자로서의 자질까지 갖추었던 박 회장이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Ⅱ 최초의 디자인 벤처, 1983년의 바른손
박영춘 회장은 자사 디자이너들이 더 발전된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경험한 것들이 바른손팬시 디자인 상품의 경쟁력이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조수용 대표는 "멋진 브랜드는 내가 깊이 좋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결국 내가 좋았던 경험이 브랜드의 지향점이 된다는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스스로도 경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런 경험의 결과물로 사람들이 열광하는 상품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바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다양한 경험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다.
카카오의 조수용 공동 대표는 크리에이티브 한 사람이란 "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사업을 시작할까 고민된다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내가 가슴 뛰는 일,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열광할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트렌드를 감지하는 능력이 거의 동물적으로 발달해서 다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실무자보다도 제일 정확하게 알았다. 프로디자이너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디자인을 짚어내고, 섬세하게 수정을 지시하는 감각이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어떤 디자인의 상품을 얼마에 팔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박 회장은 디자인과 가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박 회장은 늘 지금 당장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다음을 준비했다. 늘 지금 내 삶에서 가슴 뛰게 하는 것을 기준점으로 삼고 그 범위 안에서 차곡차곡 새로운 시도를 해나갔다.
새로운 계획은 새로운 경험과 배움에서 나온다. 일등 기업일수록 끊임 업신 새롭게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이유다. 자신은 물론이고 바른손의 디자이너, 영업인력까지 끊임없이 해외 출장을 다니며 박람회에서 산업계의 최신 경향을 경험함으로써 새로운 영감을 얻도록 했다. 박 회장 스스로도 감각을 기르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주일 한 번씩 이대 앞 스튜디오에서 사내 디자이너들과 함께 크로키를 직접 그렸다. 책을 많이 읽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는 일을 꾸준히 했다. 관심 있는 저자의 강의도 챙겨서 들으며 항상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박영춘 회장을 '0,1cm로 싸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과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일반인은 쉽게 지나칠 작은 실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박영춘 회장 그리고 바른손 120여 명의 디자이너는 20년 가까이 그런 꾸준함과 완벽주의로 대한민국 대중의 디자인 기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성공했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박영춘 회장은 1980년대 보기 드문 '파티 메이커'였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기획한 시퀀스대로 다른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즐겼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도구로 삼지 않고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박 회장의 행보는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했다.
박영춘 회장은 특히 최초의 한국 전통 캐릭터인 '금다래 신머루'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품고 있던 그는 한국적인 동양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민화를 수집해 왔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박 회장의 자부심은 곧 한국적인 캐릭터, 한국적인 색채, 한국적인 선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상품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 Interview2
『월간 디자인』,『행복이 가득한 집』,『맘&앙팡』등을 발행하는 매거진 기업 디자인하우스의 수장이면서 지난 40년간 한국 디자인 역사의 중심에 있어온 인물인 이영혜 대표는 1980년 『월간디자인』창간 초기에 바른손 박영춘 회장과 인터뷰하면서 인연을 맺어 평생 친구가 되었다. 그는 박 회장이 집요하게 다니고, 사보고 써본 사람이며, 그런 풍부한 경험 덕분에 남다른 안목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며, 살면서 많이 다니고 써보고 사보고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Ⅲ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에어비앤비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조 게비아는 실패를 '멋진 배움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경영학과에는 '실패 101'이라는 수업이 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학기 중에 세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매번 실패를 통해 미래 성공의 씨앗이 되는 교훈을 배우도록 교육받는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성공이란 한 번 실패를 하더라도 열정을 잃지 않고 다른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바른손의 박영춘 회장 역시 50년간 사업을 해오면서 많은 역경과 위기를 맞았지만, 그에게 실패는 반드시 새로운 성공의 열쇠가 되곤 했다.
바른손이 가장 활황이었던 1997년 즈음에는 직원 규모가 300명에 이르고 꼬마또래, 팬시 가든, 크리아트, 컨츄리하우스, 실용선언 등 자체 브랜드 대여섯 개가 사랑받고 있었다. 방배동에 신축한 바른손 사옥은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김수근 문화상을 탔고, 건축학도의 필수 답사 코스가 될 정도 유명해졌으나, 1997년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1998년 바른손팬시는 1981년 바른손 카드 첫 번째 부도 이후, 두 번째 부도를 맞는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먼저 캐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겨냥한 시장의 니즈가 얼마나 무르익었는가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시장의 니즈와 반보 앞선 트렌드 사이를 오가는 타이밍 게임이 기업 경영의 핵심이다. 결국 사업의 성패는 내가 다른 업체보다 얼마나 잘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시장의 흐름을 탔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장의 변화에 맞춰서 얼마나 나를 기민하게 바꾸느냐가 관건인다.
♥ Interview3
공채 1기로 입사해 11년간 영업, 총무, 마케팅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며 명실상부 '바른손팬시의 에이스'로 박 회장으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현재 박병순 홈스마일 대표는 박 회장님은 참 기업가였고, 좋은 생각이 좋은 사업을 만든다는 경영 철학을 그대로 실천하신 분이라고 회상한다.
Ⅳ 중국 진출,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 누구나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경영 환경. 박영춘 회장은 그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최근 바른손카드 상하이 법인을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처럼,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17년 만에 비로소 바른손카드 상하이 법인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카드와 생활용품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 다채롭게 했던 박영춘 회장이 내놓은 현업에서의 마지막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아트 프린팅 사업으로 귀결됐다. 카드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미술 작품을 좀 더 가깝게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일이다. 지금은 박 회장의 장녀인 박소연 대표가 아트 프린트를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사이트 그림닷컴, 한정판 에디션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앤에디션을 운영하는 비핸즈의 수장으로 아트 프린팅 사업을 이끌고 있다.
카카오, NHN, 삼성전자 등 IT기업의 컨설턴트 김창준 대표는 저서 『함께 자라기 』에서 21세기 전문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커뮤니케이션과 협업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디자인, IT 기술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기업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박 회장은 가업을 이어 바른 컴퍼니와 비핸즈를 이끌고 있는 자녀들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
요즘 그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챙기며 순간을 사는 것도 가치 있는 인생일 수 있었겠다고 말한다. 올해 80세. 산수 傘壽 그는 여전히 새로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Interview4
바른손팬시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14년간 일했던 신순규 이사는 박 회장의 단호한 트레이닝을 버텨낸 신 이사는 긴 세월 동안 호된 질책을 견디며 더욱 강해졌고 박 회장을 닮아갔다.
"회장님한테 많이 혼나면서 기획을 배웠어요. 어떤 가격에 대해 어떤 상품을 만들 것인가 기획하는 것,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거든요. 가르칠 때는 정말 단호하고 인정사정이 없으세요. 또 각자 그린 디자인 시안을 프레젠테이션 하면 팀원들이 너무나 솔직하게 피드백 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성장하길 바라셨어요. 어린 판다가 나무에 올라가면 엄마 판다가 밑에서 나무를 흔드는 것처럼 말이죠. 10명 중 9명이 다 떨어지는데 살아남은 한 사람만 올리셨어요. 독특한 방법으로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을 키워내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회장님의 의도를 점차 이해하게 됐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그분을 닮아갔어요."
이 책을 통해 전직 월간지 기자답게 바른손과 인연이 있는 네 명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도 박 회장의 경영철학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을뿐더러, 사업을 함에 있어 시장의 니즈와 반보 앞선 트렌드 사이를 오가는 타이밍 게임이라는 기업경영 핵심과 시장의 변화, 트렌드를 읽어내는 힘, 그리고 좋은 생각이 좋은 사업을 만든다는 경영철학, 무엇보다도 경험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삶은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요즘 일본 경제보복으로 일본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시점에서 0.1cm로 싸우는 사람 바른손 '50년 이야기'가 는 우리 국민들이 꼭 기억해야할 이야기로, 일본산 문구류가 아닌 Made in Korea 우리 나라 문구류를 더욱 사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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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손팬시에 금다래 신머루를 아는 사람들은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금다래 신머루는 한국 디자인 역사에 전무후무한 전통문화가 담긴 케릭터 입니다. 야무진 여자아이 금다래와 어수룩한 신머루의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를 우리나라 사계절에 맞게 표현해 냈습니다. 박영춘 회장은 한국의 건축, 한국의 연못, 한국의 음식, 한반도에 자생하는 나무에 정통했으며, 한국인 내면에 깔려 있는 정서와 미감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바른손팬시 상품 디자인 곳곳에 스며들어 한국 전통문화가 배어 있는 케릭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기 케릭터인 스누피로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는데 그걸 넘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바른손팬시 케릭터는 부부보이, 리틀토미, 금다래신머루, 떠버기, 부비 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위주인 소비층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타깃을 공략을 했습니다. 소비자들의 취향과 연령에 맞게 브랜드를 고안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초등학생 타깃으로 한 브랜드는 꼬마또래, 중고등학생을 위한 브랜드는 크리아트, 편안한 디자인의 생활용품은 컨츄리하우스 라고 지었습니다. 이처럼 바른손은 다양한 콘셉트의 브랜드를 확대하여 더 많은 타깃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활로를 개척했습니다. 박영춘 회장은 0.1cm으로 싸우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물건을 만들떄 어느 한 과정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원칙은 지우개 같은 작은 제품이라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는 퀄리티의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절대로 진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폰트 사이즈, 컬러, 레이아웃 등 디자인 디테일을 꼼꼼하게 점검했습니다. 이런 꾸준함과 완벽주의로 대한민국 대중의 디자인 기준을 한단계 높이는데 성공했습니다. 바른손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역할이었습니다. 시도가 거듭될수록 문구 산업의 영역은 계속 넓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문구 시장은 일본의 거대 문구 기업과 대항하기에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산업군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박영춘 회장은 지금 당장 잘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다음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기업으로부터 배우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계획은 새로운 경험과 배움에서 나온다는 신념으로 배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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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고 디자인 산업이 발달한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바탕엔 캐릭터를 계발하고 일상에서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고 있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 이런 캐릭터 디자인 산업이 발달한 일본이 부럽기도 한데 우리나라도 캐릭터 산업이 발달했으면 한다. 그런 발달에 '바른손'이라는 팬시 디자인 회사가 조금 기여한 것 같다. 1970년대 최초의 디자인 카드를 선보였고 디자인 산업이 전무하던 한국 산업에서 '바른손팬시'는 문구 시장을 장악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바른손팬시는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팬시 제품인 카드에 종이의 깊이감을 표현한 엠보싱 카드를 출시했는데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연말 카드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며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이렇게 바른손팬시는 캐릭터 디자인 산업의 개척자라고 하는데 국내 문구 시장에서 캐릭터 사업을 확장하고 기업 PR 광고를 제작한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캐릭터 시장에 국내산 캐릭터를 개발하고 상품화했다. 1990년대 당시 한국의 캐릭터 시장은 활성화되지 않았고 외국의 캐릭터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한국적인 캐릭터를 발굴했다. 그리고 바른손팬시는 자체 유통망을 넓혀가면서 점차 시장을 선점하고 초등학생의 주요 소비층에서 벗어나 다양한 타깃을 공략하기로 한다. 바른손팬시는 캐릭터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1998년 외환위기로 부도처리되어 매각되게 된다. 하지만 바른손팬시의 회장은 바른손카드를 남겨두고 자신의 모든 자산을 IT, 게임 산업에 투자해 재도약을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오래전에 인기있던 문구 회사에 불과하다고 보겠지만 최근 영화 '기생충'과 관련 있다고 하면 아마 흥미가 생길 것이다. '바른손팬시'는 IMF로 부도했지만 남아있던 바른손카드는 주식회사 바른손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른 분야에 투자를 했고 영화에까지 투자하게 된다. <0.1cm로 싸우는 사람>의 주인공 바른손팬시의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실패라고 포기하지 않았다. 디자인 회사였지만 디자인에만 멈추지 않았고 실패도 굴하지 않고 다시 시도해 결국엔 다시 성공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0.1cm로 싸우는 사람>은 바른손팬시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디자인 산업에 대해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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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우개 하나 만드는 데도 10번의 수정을 [리뷰] 『0.1cm로 싸우는 사람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50년 이야기) 』(박영춘, 김정윤 저, 몽스북, 2019.06.07.)
박영춘 회장. 그는 국내 ‘바른손’이라는 기업을 키워낸 장본인이다. ‘바른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예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낸 기억이 있다. 예쁜 글씨와 디자인은 학생이었던 내 마음을 흠뻑 적시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바른손’을 키워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부도를 맞기도 했던 ‘바른손’은 다시 팬시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지금은 중국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지금은 보편적으로 중요하게 인정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경영인은 반드시 디자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199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디자인은 그저 돈이 남으면 나중에 하는 프로세스 중 하나였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한국에 최초로 심어준 기업이 바로 ‘바른손’이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시작부터 동기가 확실히 주어진다. 일본에서 조각 기계 하나를 들여와 예쁜 글씨를 만들어 납품하면서 박영춘 회장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연하장 1위 기업이었던 ‘삼성공예’라는 기업에서 금박 글씨 의뢰를 받아 정성껏 납품했다. 그해 박영춘 회장이 조각한 글씨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그래서 완제품을 보고자 문의를 했더니, 당신이 보면 무얼 아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직접 연하장 제조업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 예쁜 카드에서 팬시까지 중국으로 진출
박영춘 회장한테 배울 점 중 하나는 그가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결국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병아리나 화초 등을 키우면서 용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농업 아이템으로 고가의 책들을 사며 배움을 이어갔다. 박 회장을 인터뷰하고 책을 쓴 김정윤 씨는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바로 그 일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면서 “지금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나의 직업이며 내 미래의 초석인 셈이다”고 말했다.
책의 제목은 ‘0.1cm로 싸우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완벽함을 추구할까? 책에 따르면, ‘바른손’은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작은 지우개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10여 번의 수정 과정을 거친 후에야 출시하는 바른손의 지난한 제작 과정은 얼마나 치밀하게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과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일반인은 쉽게 지나칠 작은 실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0.1cm가 아니라 0.01cm의 차이도 절대 흘려보내면 안 된다.
누군가를 만나는가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교묘하게 활용하라는 뜻은 아니다. 김정윤 저자는 “그는 문화적으로 뛰어난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미적 영감을 받았다.”면서 “이 인적 네트워크를 사업에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계획 없이 함께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는 시간이었다”고 적었다.
‘바른손’은 부도를 겪었지만, 게임과 IT분야에 집중하면서 기사회생하고, 이젠 중국까지 진출하고 있다.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소중하다. 기업은 그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닮았다. 앞으로 ‘바른손’이 어떻게 커나갈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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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cm로 싸우는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회사인 '바른손'을 창업한 박영춘 회장의 경영 이야기와 바른손에 대해 자세히 설명 해주는 책이다. 어린 시절 바른손 팬시 제품을 이용했던 경험이 있다. 친구들과 매일 문방구에 가서 새로운 디자인의 문구가 나왔는지 확인했었다. 특히 축구, 야구, 농구 필통 시리즈가 출시 됐을 때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서로하고 싶어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바른손을 잊게 됐고, 최근엔 청첩장에 적힌 바른손 카드, 바른손 카드와 관련이 없는 기업이기는 하지만 기생충을 제작한 영화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에서 바른손의 이름을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최근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요즘 고객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새로운 디자인, 차별화 된 디자인, 독특한 디자인, 이쁜 디자인을 가진 제품들을 구매하고 나서유튜브, SNS, 커뮤니티, 메신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유한다. 이렇듯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 역시 중요해졌다. 단순히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냐를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우리 디자인만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 자신만의 차별화 된 아이디어와 세계관이 담긴 디자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디자인,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디자인, 산업을 대표하는 디자인,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인정 받았던 사람과 기업의 스토리를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박영춘 회장과 오랜 기간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을 경영 한 이야기, 디자인 창업을 하게 된 과정, 바른손의 성공과 실패, 성장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1970년대 초반, 디자인 산업이 전무하던 한국 산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면서 성공을 거둔 바른손의 창업과정과 경영방식, 바른손 카드 출시를 통해 시장을 석권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한 문구 제품을 통해 오랫동안 문구업게 1위를 유지했던 바른손의 성공, IMF로 인해 바른손 팬시가 부도처리 되고, 매각되었던 실패의 경험,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바른손 카드 청첩장을 통해 탄탄한 기업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이야기,중국시장 진출 초반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중국 진출 17년만에 바른손카드가 중국시장에서 자생력 있는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 이야기까지. 바른손의 50년 스토리가 자세히 담겨 있다. 바른손 카드의 시작부터 아트 프린팅까지 연도 순으로 바른손 스토리를 이야기 하기 때문에자서전을 읽는 것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박영춘 회장과 바른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러 인물과 기업, 자료들을 사례로 들고, 각 장 마지막 부분에 박영춘 회장과 함께 오랫동안 일하면서 바른손의 성장을 이끌었던 사람들, 박영춘 회장과 오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여 있어서 박영춘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바른손이 성장했는지, 박영춘 회장으로 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등을 함께 알 수 있어서 다각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바른손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고, 관심이 있는 브랜드라서, 바른손의 시작과 성장,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0.1cm로 싸우는 사람>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에, 어떤 자세로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디자인, 차별화 되고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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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필두로 이제는 최신기술에 대한 이야기보다 고객들이 어떤 경험을 선사하는지가 중요하게 판단되는 시기가 왔습니다. 바로 디자인에 대한 고객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의 50년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박영훈, 김정윤 지음 "0.1cm로 싸우는 사람"을 리뷰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리고 처음으로 '디자인 기업'시대의 시작에는 바른손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현재에는 다양한 디자인과 센스있는 제품이 많아서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과거에는 가성비나 가격을 따지고 제품을 구매하던 시기에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지금보다 덜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 제품을 지금 생각해보면 투박하고 편리하지 못한 디자인을 생각할수 있는것이 그 증거이지 않을까 합니다. 바른손이 우리주위에서 어떤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내고 소비자들에게 보여준지 기억나시나요? 엽서나 카드등 과거 문방구에서 판매한 제품들이 대부분 바른손 제품인것을 기억하게 되면서 그들의 역량을 짐작하게 됩니다. I. 최초의 입체 디자인 카드 1970년의 바른손카드 II. 최초의 디자인 벤처, 1983년의 바른손 III.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IV. 중국 진출,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책 목차에서 볼수있는것처럼 책을 통해 바른손의 역사를 알수있고 디자인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볼수 있는 산업이야기를 읽을수 있는 기회를 얻을수 있습니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는 박영춘 회장을 0.1cm로 싸우는 사람이라는 표현한다.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과 집념이 남달랐던 그는 일반인은 쉽게 지나칠 작은 실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page121 디자인은 어떻게 사업이 될수 있고 돈이되고 문화가 될수 있을까요? 집요할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들의 정신이 멋진 제품을 만드는 기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책 제목과 같이 0.1cm는 무시할수 있는 오차일수 있지만 그 차이를 발견하고 수정할수 있는 역량과 관심이 디자인을 완성하는 디테일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하게되는 책, 디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0.1cm로싸우는사람,#mons,#박영춘,#김정윤, * 이 리뷰는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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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한발 앞을 본다는 것. 남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는 것. 이 작은 차이가 1등과 2등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시작은 늦을지 모르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보고 이해하고 한발 빨리 움직임으로 성공한 기업보다 현실에 안주하다가 사라져간 기업들이 더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현재에 안주할 때 다음을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람, 기업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들도 성공에 안주한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사라져갈지도 모르겠지만.
“거장과 보통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올까? 독일의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로 작은 것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 장인 정신임을 강조했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의외로 크지 않다. 마지막 순간 아주 작은 것까지 자신만의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결국 1등과 2등을 가르게 된다. 누구나 ‘완벽주의’라는 말은 쉽게 한다. 그러나 정말 완벽하게 자신의 창조물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 P. 123.
<0.1cm로 싸우는 사람 ?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50년 이야기>는 팬시와 문구업체인 바른손의 창업주인 박영춘 회장의 50년 기업 경영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제품을 만들기에 바빴던 시대인 1970년대,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이 시대에 ‘바른손’이라는 이름으로 연하장을 만들어 130만장을 판매하고, 1980년대 생소한 ‘팬시’라는 영역을 만들어 국내 최초로 자체 디자인한 캐릭터 상품을 개발하였던, 그러나 IMF의 고개를 넘지 못해 부도를 맞았지만 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지금까지 앞만 보며 달려온 주인공의 삶을 담고 있다. 저자는 주인공이 디자이너로서의 감각과 기술자로서의 전문성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이에 더해 부단한 노력과 투자를 함으로써 디자인이라는 영역의 개척자와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성취하였음을 이야기한다.
“박영춘 회장이 타고난 미감과 창의력을 지닌 동시에 뛰어난 기술자였다는 사실이야말로 바른손 성공 신화의 핵심이다. 창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라면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기술자 파트너를, 기술자라면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이너 파트너를 전략적으로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 P. 55.
“바른손은 제조와 유통을 같이했기 때문에 탄탄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거지요. 디자인 서비스만으로는 불가능해요. 사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제조와 유통을 해야 해요.... 디자인에서 시작해 생산과 유통까지 모두 해낸 첫 케이스가 바로 바른손이었습니다.” - P. 90.
한 분야의 선구자가 된다는 것,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분야에 오래 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부단한 배움과 노력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 사업적 마인드가 더해진다면 사업가로서도 성공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많은 이들이 성공한 이들의 과정을 이해하고 배우려고 하기 보다는 성공한 현재만 보고 부러워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능력이 부족해 남들보다 앞서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는 배움의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런 꾸준한 배움이 자신의 인생에 빛을 비추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을 시작할까 고민된다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내가 가슴 뛰는 일,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열광할 가능성이 높다. - P. 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