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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의 거리를 좁혀가기...
"타자와의 거리를 좁혀가기..." 내용보기
표지에 그려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된 책입니다. 그림의 제목은 <철학으로의 외도>입니다. 하반신을 드러낸 여인이 등을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고, 옷을 입은 사내가 그녀의 등 옆에 앉아 있는 정경입니다. 호퍼의 부인의 기록에 의하면 남자의 옆에 놓인 책은 플라톤의 <국가>라고 합니다. 정의와 국가의 정체에 대하여 논한 철학책이 놓인 상황이 참 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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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된 책입니다. 그림의 제목은 <철학으로의 외도>입니다. 하반신을 드러낸 여인이 등을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고, 옷을 입은 사내가 그녀의 등 옆에 앉아 있는 정경입니다. 호퍼의 부인의 기록에 의하면 남자의 옆에 놓인 책은 플라톤의 <국가>라고 합니다.

정의와 국가의 정체에 대하여 논한 철학책이 놓인 상황이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철학의 슬픔>을 쓴 문성원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호퍼의 그림들을 영상으로 옮긴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서는 이 상황이 다음처럼 묘사되었다고 합니다.(제가 이 영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에서 셜리는 <국가론>의 ‘동굴의 비유’ 부분을 읽다가 스티브의 인기척을 듣고는 책을 놓고 돌아누워 자는 척하고, 스티브는 셜리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책을 들고 있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동굴의 비유는 태어나면서 동굴에 갇힌 죄수는 횃불에 드리운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슬이 풀려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대낮의 태양과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볼 수 있게 된다. 동굴 속의 세계는 현실의 세계이고 동굴 밖의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읽던 스티브가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다고 했습니다. 과연 이 상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창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방바닥에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 비치는 것은 풀라톤의 <국가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이데아의 세계에 다가갈 수 없음에 좌절하는 모습일까요?

<철학의 슬픔>에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문성원교수는 타자와 바깥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나는 물론,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나아가 우리나라기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타자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철학자 레비나스를 통하여, 철학과 닿아있는 바깥 영역과의 관계를 통하여 철학의 위치와 역할을 가늠하고 사유해보려 했다고 합니다.

레비나스와 철학과 이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을 검토함으로서 정치와 윤리의 관계 문제에 대하여 작은 통찰의 실마리를 구해보려는 생각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표제를 <철학의 슬픔>이라 한 것은 위축과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인 슬픔이 우리의 삶에서 뿐 아니라 철학의 처지에서도 때로 적절하고 긍정적인 방안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주제의 다양성을 본다면 슬픔이 딱히 긍정적인 방안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철학의 슬픔에 이어 행복에 대하여, 인공 지능 무한 그리고 얼굴, 사랑과 용서, 환대하는 삶, 정치와 윤리, 약함을 향한 윤리, 끝나지 않는 변증법의 모헙, 그리고 민주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제목들 사이에 연관성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다만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마지막 주제가 ‘민주주의를 넘어서’이고 보면 나와 너의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민중의 견해와 의지를 직접적으로 모으고 반영해내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다만 그것을 모으는 방안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더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철학의 슬픔이라는 있을 수 없는 감정은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철학을 폄훼하는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요? 예를 들면, 세계적인 유전학자 스트비 존스가 남긴 “과학에 있어서의 철학은 섹스에 있어서의 포르노그래피와 같습니다. 더 싸고, 더 쉽고, 어떤 사람들은 더 좋아하기도 하죠(20쪽)”라는 말 같은 경우입니다.

y*****2 2019.09.03.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믿음 뒤흔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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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었다.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여겨지는 분야인 철학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에게만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에 기대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했다. 결론은 역시나 ‘어렵다’이다. 언제 즈음 모든 주제를 자유로이 섭렵할 수 있을까. 과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욕심을 버리기가 힘들다.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처럼 여겨졌는데 아니었다. 나에게 그와 같은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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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었다.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여겨지는 분야인 철학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에게만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에 기대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했다. 결론은 역시나 어렵다이다. 언제 즈음 모든 주제를 자유로이 섭렵할 수 있을까. 과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욕심을 버리기가 힘들다.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처럼 여겨졌는데 아니었다. 나에게 그와 같은 생각을 선사해 준 건 다름 아닌 책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우리 손으로 뽑은 통치자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린 초유의 사태가 안긴 충격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 묻고 답하기를 수차례. 그러나 여전히 우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춥디 추웠던 지난 겨울의 기억은 우리 사회가 충분히 민주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은 여겨왔다. 4.195.18은 성공한 혁명이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이 부르짖었던 가치는 이후 들어선 보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의해 묵살당했다. 평을 하기에는 다소 이를 수도 있겠으나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선거에 따른 것이었다. 개개인의 사고가 충분히 민주화 됐더라면 그와 같은 결과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미련이 자꾸만 든다.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는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4-5년에 한 차례, 오직 선거 때만 스스로가 주권자임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그랬다. 아마 직접 민주주의를 전격 도입하는 데 따른 부담감을 피하고픈 마음이 앞섰던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 때 전세계를 뒤흔든 공산주의의 반대말로 우리가 꼽는 건 자유민주주의다. 원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이질적이다. 일찍이 독일의 슈미트는 자유주의는 독재와 양립할 수 없는 반면 민주주의는 그게 가능하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으레 따르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 자체가 민주적이지 않음을 우린 간과해왔다. 타인과 다른 의견을 취했다는 이유가 차별의 기재로 작용할 수 있는 현실이야말로 민주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 아닐지. 우리가 경험해 온 어떠한 체제와 완성이기보단 과정에 가까웠는데, 오늘날의 민주주의도 그랬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접한 이름은 레비나스였다. 유대인인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으며, 전체주의(나치즘) 체제 하에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가치의 말살을 직접 겪으면서 그는 서양 사회를 지탱해온 것들을 향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타인을 배제한 채 오로지 를 강조하는 존재론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변증법은 현재의 모든 것을 ’()로 만들 수도 있는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음에도 여러 학자에 의해 채용됐는데, 레비나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를 극복하고 너를 극복하는 것은 나와 너 사이의 견고해 보이는 경계를 허무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렇게 형성된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혹은 공동체등에 해당하기도 한다. ‘를 철저히 유지하는 가운데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데, 가장 고결하다 칭송되곤 하는 사랑 또한 그러하다. 타인과의 공존 아닌 나의 영역을 확장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써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 사랑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용서는 또 어떠한지. 용서는 철저히 피해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이른바 셀프 용서를 행해 모두의 분노를 사는 일이 현실에서는 왕왕 발생한다. 자아를 상실할까 두려운 나머지 자기중심성을 허물지 못한 유아기적(!) 존재에게서는 진정한 용서를 기대할 수 없음을 알 것도 같았다.

 

철학이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으로 이끌어 주진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었다. 행복에의 집착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이라고 저자는 지적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게 죄는 아닐 테지만, 행복을 성취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갇힌 나머지 행복할 수 없어서는 아니 된다. 철학이 행복을 보장하는 무언가는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도달했고, 불쑥 등장한 데리다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나는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달의 사락 q*****2 2019.09.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