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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사사로운 것들에 마음을 뺏기고 사사로운 감정들을 챙기고 사사로운 일들에 울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성장해서 누구 하나쯤은 거뜬히 받아줄 수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일 인분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 말이다. 그게 내 나름의 잘 자라난 삶, 잘 살게 된 삶이겠지(p248) 이 책은 오휘명 작가의 에세이로 형성되어 있다. 작가로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사로운 것에도 신경을 쓰고 좋은 글 주제를 찾기 위해 오늘도 허름한 곳을 걷으며 자신만의 감정을 글로 녹이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글을 읽으면서 왠지 글속에 풍기는 감정이 섬세하고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있어서 작가분이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의 직감이 틀렸구나 여겨졌다.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게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헤어짐에 한없이 눈물을 흘릴수 있고, 이별후에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기를 준비하는 과정, 솔직히 작가의 감정과 눈물이 부러웠다. 난 지금까지 그런 감정은 느껴보았지만, 그 감정을 상대의 잘못으로 인하여 발생했다는 전제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전파하지는 않았을까 반성해 보게 되었다. 키스하는 장면을 강과 강이 부딪치는 장면으로 묘사하다니 대박, 지나간 사람들을 새삼스레 추억해 본다. 누군가 보기엔 이게 참 구차한 짓일 수도 있겠지마, 지나간 모든 것을 되새겨 보고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나와 같은 작가들이 하는 일이니 괜찮지 않을까 자위를 하면서(p134) 작가라는 직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만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평소 글 주제가 되는 사건들을 메모해 두고 그 메모에 어울리는 옷장식을 입히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좋은 캐릭터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좋은 글'이란 뚝딱 나오는 게 아니였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작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닐까, 자연과 사람이 주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 다르니까, 독자들은 다양하게 그 메시지를 느낄수 있으니까, 오휘명 작가의 일기장을 조금스럽게 훔쳐본 기분이다. 그 섬세하고 은은한 향이 나에게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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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진다는 그 제목에 이미 심쿵한다. 예민하게 섬세한 그 마음 고백에 이 글의 색깔이 어떨지 짐작되어, 천천히, 연필 잡은 손에 힘을 빼고 희미한 줄을 그으며 읽고서, 둘이서 번갈아가며 소리 내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냥 혼자 읽는 게 좋겠다. 지식이나 정보, 혹은 태도나 입장에 관한 글과 달리 이런 종류의 에세이는 ‘나’의 내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해서 읽으면서도 작가님의 용기 있음에 엄지를 들리곤 한다. 혼자 먹기 위한 요리 재료로 양파 한 알도 넘칠 정도로 충분한 자취생이면서도 어느날 낭만에 목말라 요리를 하고, 바깥 밥의 나날을 보내다 며칠 후, 냉장고의 썩은 양파를 직면하고는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라고 말하는, 자주 연애라는 요리를 당하고 자주, 쓰다 남은 양파가 되는 내 모습을 고백하면서, ‘역시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그 섬세함과 예민함을 가진, 도대체 이런 감성을 가진 오휘명이라는 작가는, 이런 내면을 공개적으로 쓸 수 있는 큰 용기를 어디서 꺼냈을까? 아마도, 우리 모두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본연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겠지? 누구의 존재 혹은 부재 때문이 아닌, 본연의 외로움을 바라보고, 다독이고, 쓰다듬고, 타박타박 덮어주는 느낌이랄까. 내 영혼에는 인간 말고도 고양이의 것이 조금 섞인 것 같다는 생각, 물개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생각은 참신하게 외롭고, 어떤 사연 같은 것으로라도, 침전물이나 영영 씻겨 낼 수 없는 기름때처럼, 그렇게라도 네게 남고 싶다는 바람은 사악하게 외롭고, 남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군대 시절에 직장암의 아버지와 뇌경색의 어머니와 좀더 시간을 보내고픈 바람으로, 휴가증이나 외박증이 포상으로 걸린 행사에 지원하고 밤에 독후감을 쓰고 방송대본을 외우면서, 운동을 하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는 고백은 오래오래 외롭다. 기념품 연필 다섯 자루도, 빗방울과 빗방울도, 여러 개여서 여럿 씩 함께인 것들, 나도 잠깐 그런 것들을 꿈꾸기도 한다며 내 왼쪽 손과 오른쪽 손이 기대어 기도를 이루면 두 손은 그때마나 덜 외로워한다고, 돌맹이를 뻥 차기보단 계속 툭툭 차며 함께 건 여전히 함께이고 싶어서라는 부분에 오면 이건 물 속에 깊이 가라앉아 숨 쉴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그럼에도 비가 와서 거리의 모든 것들이 한 곳으로 쏠리고 모여, 우리도 다시 한 곳에서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함께 잠겨 가라앉아도 좋겠다고 하는 순간에는 다시, 온전히 젖어들어 물 속의 물고기처럼 그냥 외로움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유유히 헤엄쳐 나간다고나 할까. 많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위로받은 것처럼. 아! 이 책은 절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꼭 읽어 보시길. 그 모든 감정에 공감하거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촉촉해질 수 있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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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 제목처럼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신랑이 등 돌리고 누웠을때..어찌나 서운하던지.. 지금은 신경쓰지 않지만 그랬던 적이 있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 부분들이 중간중간 있어서 몰입도 더하게 되고 같이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외로움이 누군가가 옆에 있다고 해서 채워지고 없다고 해서 안 채워지고 하는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둘 이상이 함께해서 채워지는 거라면 외로운 사람이 별로 없을것이다. 같은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면 그래서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면 이런걸로도 어느정도 채워지지 않으까 싶다. 책을 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글로써 채워지는 부분이 많으니깐 말이다. 외롭다고 느끼는 그 시간들을 독서로 달래보는 것을 추천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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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진 않을까, 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 제목을 상상하는 순간, 정말 서운해지는 책, <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 모든 아픔을 위로하는 가장 다정한 손짓이 되어줄 거라는 이 책의 문구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지금 내게 다정한 손짓으로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걱정과 호의들을 담요처럼 두르고, 가장 나른한 모양새로 누워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이 나눠주는 문장들이 내 외로움을 쓰다듬어주고, 그래서 외로움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는 에세이지만, 어떤 산문은 긴 시 같다. 요즘 형식의 구분이 없어져서 다양한 형식으로 에세이를 만날 수 있는데, 오휘명 작가의 글은 일기와 메모, 시 같은 다양한 형식으로 이 책의 문장들을 채운다. 그래서 정말, 가장 나른한 모양새로 누워 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따뜻한 드립커피나, 와인이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특히 나른해지고 싶을 때, 그리고 외로울 때 이 책을 만난다면, 오휘명 작가의 문장들이 다정한 손짓과 함께 내 옆에 있어줄 것이다. 내가 지치고 외로운 몇몇 밤들에, 이 책이 내게 그렇게 해주었듯이. 외로움을 밀어내지 않고 대신 쓰다듬고 보듬어준다. 분명 쓸쓸한 문장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따뜻하다. 밝지 않아도 따뜻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차분한 목소리들이 내게 속삭인다. "내가 아직도 잠결에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지는 모른다. 다만 전처럼 울며 깨어나진 않으니 괜찮아지고 있는 것이라 믿겠다." ![]() _ 놓고 싶지 않은 것들 돌아가고 싶은 곳이 많아진다. 돌아가고 싶은 곳이 많아진다는 건, 지금 있기 싫은 곳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엥서 벗어나고 싶다고 풀어 말할 수도 있는 걸까. _돌아가고 싶은 곳 우리에겐 각각 아무리 무언가를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의 빈 병이 하나씩 있습니다. 설령 그게 술일지라도 얕은 사랑일지라도요. _빈 병 좋아해, 가둬진 곳에서 외쳤다. 어쩌면 가둬진 곳이라 외친 거지. 초라한 나와 나의 것들만 가득한 방이라서. 그러니까 소리 하나 쉽게 새어 나가지 않는 곳이라서. (중략) 골목 끝 세 번째 집에서, 가둬진 곳에서, 좋아해, 초라해. 좋아해. _머리카락 그럼에도 오래간, 당신이 미루고 미루다 기어이 이별을 말하는 그때까지도 사랑이었겠다. _피하지 말고 서로 써서 부쳐 주지 못한 편지지들도 결국엔 한 나무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망상했다. 그러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나 편지를 보내 주지도 그쪽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지도 못했지만 닿아 있는 것 같으니까 됐다고. _부쳐 주지 못한 편지 내가 그토록 자주 웅크리는 건, 어쩌면 품을 것이 없어서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당신 꿈을 꾼 적이 있었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꼿꼿한 자세로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안을 존재가 있었음에 아침부터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좋은 꿈을 꾸지 않은 보통의 날들은 그저 어떤 새우의 나날로 다시 하염없이 흘러갔습니다. 혹시 허리를 푹 숙인 채로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본 적 없으신가요. _새우의 꿈 잊고 싶지 않은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부쩍 많아지는 요즘이다. 변변찮은 기억력과 손아귀 힘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들을 잡아 두고만 싶다. 혼자이기 싫어서 목청껏 우는 아이처럼, 엄마의 손을 꼭 부여잡는 아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손아귀 힘이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_파악 반사 1. 쾌활해 보이지만, 사실 여름은 정적과 멈춤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공원 벤치와 지하철 승강장에서 눈을 감고 뭔가를 조용히 버텨내는 할머니들, 잔잔히 흔들리는 화분 이파리들과 사람의 앞머리, 요란스럽지 않은 부채질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가만히 있구나. 보이지 않는 털가죽 같은 게 내 온몸을 덮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더위를 타면서, 그러므로 더욱 가만히. 이 계절에 저렇게 손을 잡고 저렇게 껴안아야 하는 연인이 없어 다행이라고, 억지 억지를 부리면서. _ 내릴 수 없는 역 3. 몇 년 전쯤에는 ‘외로움은 어느 쓸쓸한 민족의 주식과 같아서,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기도 한다’라는 메모를 남긴 적도 있다. 서울에서 자주 외로웠고 자주 울었다. 서울살이가 조금이나마 덜 씁쓸했으면 하는 마음에 서울을 발음한다. 서울이라고 씹어 발음해본다. 서운하고 설익은 감정이 많기도 했다고. 서서히 서글펐고 서늘했고 서투른 날도 있었고 서리 어린 날이었지만 그럼에도 서슴없을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다고. 다만 그래서 우울했고 우울해서 울었던 날들이었다고. 서울, 서울. _ 내릴 수 없는 역 4. 열어 둔 창밖으로부터는 여름 내내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먼 나라의 것 같은 발음들, 바다가 있고 산뜻한 바람이 부는, 남국풍의 온화한 발음들. 사랑들. 저렇게나 바깥에는 사랑이 많고 나는 털가죽 같은 방에 오늘도 홀로 누워 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진 않을까, 미어캣처럼 귀를 꼿꼿이 세워 놓고는. _ 내릴 수 없는 역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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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유행한 영화 카피를 빌려오자면 “지금까지 이런 에세이는 없었다. 시인가? 에세이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다. 저도 이렇게 제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표현하고 드러내어 토닥임이나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에세이가 형식이 없는 아니 자유로운 글이라고는 하지만, 시처럼 쓰여진 에세이이다. 평균적으로 한 주제나 소재에 대해 한 쪽 정도의 글이고 길어도 3쪽 정도이다. 짧은 것은 네 다섯 줄짜리도 있다. 문체도 시처럼 운율이 느껴진다. 곡을 붙이면 노래로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은유나 직유 같은 비유법도 많이 사용하여 더 그렇게 느껴진다.
각각의 글의 내용이나 주제를 생각하면 가요나 노래의 형식(장르) 중에 발라드가 떠오른다. 많은 글들이 이별의 아픔을 애절하게 노래하거나 부르짖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거 연애 시절의 추억이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쓰여진 것도 많고, 마치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고백하듯이 쓰인 글들도 보이기 때문이다. ‘헤어짐의 이유’라는 글에서 연인들이 헤어질 때 껴안는 풍경을 보며 열여덟 어린 시절 자신이 연인과 헤어진 이유를 떠올리며 자책하는 내용의 노래가 한 예이다.
어떤 대상이 있는 글들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독백하듯이 쓴 글이나 넋두리처럼 읊조리는 글도 있다. ‘목련엔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벚꽃엔딩’이라는 노래를 빗대어 자신은 목련과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하며 벚꽃처럼 목련과 같은 자신도 사랑받고 싶다고 노래한다.
일상의 작은 것, 사소한 것, 평범한 것을 글감 삼아 노래한 것도 많다. 한 예로 ‘어디선가 죽어 있을’에서 폐업하며 작은 화분들을 생각하며 슬프고 서글픈 감정을 노래한다. ‘3월’이라는 글에서는 다친 발톱이 다 빠지고 새로 자라난 발톱을 보며 다시 사랑하는 꿈을 꾸는 노래를 한다.
자신의 아픔이나 어두움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토닥토닥하는 노래들도 있다. ‘선생님’에서는 자신의 학생 시절을 드러내고, 자신을 격려해주셨던 선생님들을 노래하는데 한 선생님의 경우 부수적으로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라면’에서는 어린 시절의 자신의 가난과 아픔을 노래하며 자신과 엄마를 토닥이며 위로하기도 한다. ‘발 닿은 웅덩이’에서도 그 작은 웅덩이로 인해 자신이 차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새우의 꿈’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웅크리는 새우에 비유하며 자주 꼿꼿한 자세가 되고 싶기에 토닥임 받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한다.
영감을 제대로 받은 누군가가 곡을 붙인다면 많은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유행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처럼 표현할 수 없어서 마음에만 머물러 있는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기에. 성경에 있는 다윗의 시편들도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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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무언가를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의 빈 병이 하나씩 있습니다. 설령 그게 술일지라도 얕은 사랑일지라도요. 글쎄... 이 말 때문일까, 꽤 저자는 외로운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난 이세상 모든이들이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보기에는 아무리 즐겁고 좋아보여도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 어느 누구도 외로운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그리고 다른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지 애초부터 여럿이 함께가 아닌것 같다. 나도 지금보다 젊었을때, 어렸을 때(?) 혼자서 어디를 가는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밥을 먹는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맞춰서 무엇을 한다기 보다 혼자서 하는 것이 편할때가 있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혼자인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제목이 된 「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라는 글을 보면 아직 일어나지 않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다. 그 아이를 너무 좋아서 서운한다. 그 아이는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매사에 서운해진다라는 것이.. 어쩌면 둘인데도 이렇게 일어나지 않을일에 대해서 서운해진다면 차라리 혼자인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둘이길 소망한다. 그리고 혼자가 되고서 외로워하고 둘이어도 외로워하기도 한다. 세상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너무 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하는데, 사실 그건 아주 대단한 사건이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어쩜 쉽고 당연한 것은 아닐것이다. 혼자이기도 하지만 함께여야도 해야하고 신경쓸게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저 사람들은 원래 외로운 존재라고 받아들이면 혹여 혼자가 되더라도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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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길을 끌어서 읽어보고 싶던 책, 당신이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집니다. 라는 제목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왠지 이해가 될것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증이 생겼다.
" 우리 모두 외로움과 친구가 될수 있기를...." 요즘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그런 뉴스를 만날때면 다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서운하다는 표현이 그래서 더 끌렸던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표현이 이해가 안되던 때가 있었지만 요즘은 옆에 사람이 있어도 외롭답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것 같다. 사랑하지만 표현에 서툴거나 인색하고 공감이 되지 않는 그런것이 외롭게 느껴지니 아마도 그런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분명 처음엔 사랑하는 감정이 있어서 시작이 된 관계가 어느순간 사랑이 끝이 나고 아니 사랑한다는것을 표현하지 않아서 상대가 느낄수가 없게 되면서 그 관계속에서 외로움이 생기고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그런것들을 책을 통해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을 가진것 같다.
" 사랑이란 건 땅으로부터 백 미터 떨어진 허공에서 줄 하나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일이다. 그 줄 하나에 온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그를 완벽히 믿는 일이다. " (p187)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부인것처럼 사람들은 왜 사랑이란 감정에 집착을 하는걸까 아마 나또한 그럴것이지만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살짝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감정이라는것을 되돌아 볼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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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특이하다. 돌아눕는 상상만으로도 서운해진다니... 사랑에 빠진 연인이 한 침대에 누워 얼굴을 마주 보며 씽긋 웃는 상상을 해본다. 장난으로 한쪽이 돌아눕자 남은 쪽은 입을 삐죽거리며 서운해한다. 난 꺽정씨에게 늘 돌아눕기를 청했다. 그를 뒤에서 안은 채 양날개 뼈 사이 오목한 곳에 코를 박고 그의 몸 내음을 맡곤 했다. 이상하게 거기에 얼굴을 가만히 대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방전된 새색시는 그렇게 매일 밤 나만의 충전기에 충전을 했다. 지금은? 젠더가 고장 난 모양이다. ㅋㅋㅋㅋ (이젠 뭘 해도 피곤해.) 구구절절한 사랑에 관한 에세이일 줄 알았다. 에세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디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사랑 에세이 중에 하나가 아닐까 잠시 의심도 했었다. 책을 펼쳤을 때 여백이 주는 생각과 공감들로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거실에 나와 조용히 읽고 싶은 글이었다. 부산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홀로 남은 순간 외로움을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에세이가 더 좋아진다. 어렸을 때는 에세이를 왜 읽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지식을 넣었다는 뿌듯함이 있는 것도 아닌 소소하다 못해 평범한 글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제서야 에세이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이야기나 지식이 가득한 건 아니지만 다른 글에선 얻기 힘든 공감과 위로를 건네주곤 한다. 작가는 삶의 순간순간을 어떻게 이렇게 담백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다가 글로 써보고 싶다고 마음먹는 순간 내 생각들은 되감기 버튼을 누른 솜사탕처럼 이리저리로 사라지는데 말이다. 허공에 휘날려진 내 생각들을 둘둘 감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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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짓 하나에도 헛헛해지는 마음에 대하여~ 작가가 나이가 많을까? 아니먼 나와 동년배일까? 그도 아니면 나보다 어릴까? 외로움이나 고독에 관한것은 나이에 상관없겠지만서도 계속 읽다가 궁금해진다. 지독히도 여리고 작은것에도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섬세하다는 것은 사랑이 많다는 것이겠지. 사랑에 빠지는 현상의 본질은 자아 경계의 일부를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자신의 자아와 다른 사람의 자아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자기로부터 갑작스럽게 빠져나오고,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폭발적으로 쏟아 붓고,이러한 자아 경계의 붕괴에 따른 고독감의 중단은 우리 대부분이 무아지경으로 경험하는 것들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하나가 고독이 된다.고독은 더 이상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 자아정체성과 경계및 한계때문에 고립된다. 이럴때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사람들은 외부로부터의 경험때문에 안전함을 보장해줄 수 있는 내적영역으로 도피로 고독을 선택하고 다시 그 지독한 외로움에 다시 밖으로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작가는 자신외의 것들을 사랑하고 또한 고독 또한 즐기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결국은 작가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참사랑을 찾기위해 끝없이 인생의 여정을 밟고 가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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