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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앤의 어렸을 적을 읽었으니 당연히 이 책은 이어서 읽어야 한다. ^^ 2.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앤. 당장 침대에서 나와 내 얘기를 듣거라." 이 말은 마릴라 아주머니가 앤을 혼낼 때 했던 말이다. 우리 앤은 참 말이 많다. 그래서 말 실수도 많이 한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엄격한 사람이다. 말도 많이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꼭 혼내야 할 때, 잘못한 것을 조목조목 말하며 앤에게 알려준다. 앤이 어렸을 적에 토머스와 토머스 부인이 앤에게 이랬다면 앤은 더 사랑스럽고 밝고 명량한 아이로 자랐을텐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더 잘 알 수 있었을텐데. 자신만의 방식대로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눈물이 또 나기도 한다. 앤은 이렇게 하나씩 배우며 성장하고 자신의 장점(상상)을 잘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는 앤이 어렸을 적 만난 토머스네 부부와 많은 부분에서 대척점을 이룬다. 매슈 아저씨는 비록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배려심이 많고 착하다. 앤을 늘 믿어준다. 거기다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는 서로 부부도 아니다. 둘은 남매다. 아이를 길러본 적도 없는 두 남매는 아이를 많이 길러본 토머스네 부부보다 훨씬 앤을 잘 양육한다. 앤을 진짜 가족으로 생각한다. 앤이 커서 자신을 떠날 때가 가까워 오자 그 무뚝뚝한 마릴라 아주머니는 혼자 울기도 한다. 3. 완벽한 결말 빨강 머리 앤의 시리즈가 더 있다고 알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의 성공 이후 후속작을 더 썼지만 이 책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알고 있다. 어찌 되었던 이 책은 이 책만으로도 이야기의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평안하여라." 그래도 앤의 영원한 단짝 다이애나와 길버트, 앤의 다음 이야기가 눈곱만큼 궁금하기는 하다. 4. 아쉬운 점 안녕 앤을 읽을 때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이 꽤 있어서 놀랐다. 빨강 머리 앤은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그렇다면 중간에 꼭 맞는 장면에 애니메이션 삽화를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각 장(Chapter)이 시작할 때나 중간, 끝날 때 너무 아무 곳에 넣어서 조금 아쉽다. 5.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 눈이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그린 크리스마스라고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알았지만 눈이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그린 크리스마스라니. 사실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럽고 눈이 녹을 때 회색이 되서 길이 우중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앤의 소원대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였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누가 우리 앤 못생겼다고 했어. 이렇게 이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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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게 있다고 믿어요. " 하루종일 밥먹는 시간을 빼고 앤과 함께였다. 함께 웃고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녀의 성장에 뿌듯해하면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순간 들이었다. 나의 길 모퉁이에도 찬란한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들이 기다리고 있을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하루였다. 앤~! 나의 10대 초반에도 날 설레게 했고, 지금 마흔 후반에도 여전히 설레게 하는 이름.너에게 "초록으로 빛나는 나의 소녀' 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오늘 오전 오후를 보낸 집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도서관입니다~~ 책상 세개밖에 없는 도서관이지만 싱그런 초록의 느낌이나는 공간이예요~ 사람도 없어 자원봉사하시는 지킴이분들과 저밖에 없었네요~~저녁에는 매일가는 카페에서 앤과 함께였습니다. 온통 반짝이는 초록과 앤의 붉은 머리가 넘실거리는 시간들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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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0일에 1쇄를 찍고 2021년 1월 25일에 26쇄를 찍은 인기도서다. 이 책을 구매한 다른 이들과 같은 이유, 그 옛날 TV에서 방영되었던 빨강머리 앤 만화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이 책을 샀다. 사실 나에게 있어 만화 빨강머리 앤은 그다지 대단한 추억을 가진 작품은 아니었다. 여자 아이들 위주로 흘러가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보다는 비밀스런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나오는 만화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래요정 바람돌이> 라든가 <꽃나라 요술봉> 같은...ㅋㅋㅋ 그런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3개 시즌으로 제작된 <빨간머리 앤> 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드라마가 원작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원작 속 앤을 사랑해 온 다수 팬들에게 원성을 듣기도 했다고 하는데 원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나는 드라마 속 흐름이 좋아서 소설까지 읽어 보게 되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만화전집, 컬러링북, 다이어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는 가운데 단연 상위에 노출된데다 리뷰수도 가장 많고 평점도 나쁘지 않은 이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행여 이런 걸 스포일러라고 할 사람도 있을까 싶지만 뭐 그러던지 말던지 간에 여긴 내 블로그니까 내 생각을 써보련다. 우선 기대했던 것보다 길버트의 존재감이 희미해서 놀랐다. 앤에 대해 아무리 건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라 하더라도 나중에 길버트랑 맺어진다는 것 쯤은 다 아는데 정작 ㅈ닌체 에피소드 중에서 둘 사이에 감정이 오간다는 걸 느끼게 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리고 이건 예상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앤의 집에서 일하는 아이인 제리와 다이아나의 비밀스런 만남이 드라마에서는 하나의 로맨스 요소로 재미를 더해주는데 소설에서의 제리는 정말 일하는 아이로 아주 잠깐 언급될 뿐 심지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인물로 대체된다. 완벽한 추가 설정인 셈이다. 또한 원작에서는 매슈가 죽는 걸로 나오지만 드라마에서는 끝까지 든든하고 사랑넘치는 보호자로서 남는데 혹시 드라마 제작진들의 바람이 담긴 각색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든다. 몽고메리는 어째서 매슈를 죽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매슈의 죽음이 너무 당혹스럽고 안타까웠을 것 같다. 마지막에 슬프고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보통 명작 소설을 영상화 해서 좋은 평가를 듣기가 힘든데 넷플릭스 드라마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두어 시간 안에 다 보여줘야 하는 영화가 아닌 호흡이 긴 드라마였기에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대사,배우,이야기 삼박자가 조화롭게 맞아 떨어져 매회 에피소드가 빛이 났다. 이렇게 드라마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봐서인지 소설로 만나는 앤이야기는 조금 밋밋하기도 하고 중요한 양념을 빠트린 것처럼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시공주니어에서는 <빨강머리 앤>에 이어 <에이번리의 앤>,<레드먼드의 앤> 두 개의 속편까지 냈던데 더모던은 이 책 한 권만 나와서 그 점 또한 아쉽다. 인디고에서는 2편까지 나와 있던데 그 시리즈가 번역이 더 낫다는 평이 있어서 어떻게 할 지 살짝 고민이 된다. 아마도 난 인디고에서 나온 2편을 사고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레드먼드의 앤>을 사게되지 않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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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읽은 책이 거의 없는데 ‘빨강머리 앤’은 여러 번 봤다. 여러 곳에서 나온 걸로. 열권으로 나온 것도 다 봤지만 생각나는 건 별로 없다. 그때는 그냥 읽기만 했으니. 읽기만 해도 잘 볼 수 있을 텐데 깊이 못 봤다. 지금도 책을 깊이 있게 보지 못하지만. 내가 <빨강머리 앤> 만화영화를 언제 봤는지 모르겠다. 몇해 전에 다시 본 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이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캐나다 사람인데 책은 미국에서 먼저 나오고, 만화영는 일본에서 만든 게 잘 알려졌다. 그 만화영화는 1970년대에 만든 거였다. 그렇게 오래전에 만들었다니. 말하는 건 많이 어색하지 않지만 해설은 옛날 느낌이 난다. 빨강머리 앤에 나온 성우에서 길버트 역을 한 사람은 여전히 성우로 활동한다. 앤을 맡은 사람은 앤이 에이번리에 오기 전 이야기로 만든 <안녕 앤>에서 해설을 했다.
만화영화 이야기를 한 건 이 책에 만화영화 그림이 담겨서다. 어디선가는 만화영화 그림으로 만화책을 냈던데. 예전에 나온 건 그리 길지 않았는데 요새 나온 건 긴 것 같다. 만화책으로 보고 싶으면 그걸 봐도 괜찮겠다. 빨강머리 앤은 일본에서 만든 만화영화 캐릭터가 인상 깊어서 다른 모습은 앤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 나만 할까. 만화가가 그린 빨강머리 앤도 있다. 그건 못 봤지만. 빨강머리 앤은 드라마로도 만들었다. 몇해 전에도 만들었나 보다. 앤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구나. 이번에 앤을 보면서 나한테 이런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난 말하기보다 듣는 걸 좋아하니 말이다. 앤이 하는 말 잘 들을 텐데. 듣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도 나누면 즐겁겠다. 예전에는 활발했던 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앤은 나하고는 반대다. 난 지금도 말 잘 못하고 사람 대하기 어렵다.
부모가 일찍 죽은 앤은 어렸을 때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다. 앤은 자신을 바라는 사람이 없다 여겼다. 그러면 성격이 어두워질 것 같은데 앤은 그렇지 않았다. 앤은 상상을 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 못했다. 나이를 먹고 앤이 참 대단하다 여겼다. 몇해 전에 앤이 프린스에드워드 섬 에이번리에 오기 전 이야기를 담은 <안녕 앤>을 보면서는 조금 울었다. 앤이 무척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어쩌면 그때 내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을지도). 그것도 소설 봤는데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건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게 아니고 공모에 붙은 거였을 거다. 여기에도 앤이 마릴라와 화이트샌즈에 가면서 말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농장 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기다리던 마릴라는 매슈가 데리고 온 여자아이 앤 셜리를 만났을 때는 무척 놀랐지만, 앤이 하는 말을 듣고 화이트샌즈에 가면서 앤을 좋아하게 됐다. 마릴라는 자기 마음을 바로 몰랐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 그 마음이 있었을 거다.
책이 나오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도 많은 사람이 앤을 좋아하는 건 왤까. 앤이 긍정스럽고 밝아서겠지. 앤이 사는 곳도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 프린스에드워드 섬 에이번리가. 이곳은 바다로 둘러싸이고 나무와 농장 시냇물……. 도시가 아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다. 여전히 시골은 있겠지만. 앤이 살았던 시대는 전기도 차도 거의 없었다. 자연에 둘러싸인 곳. 그런 걸 바로 느끼지는 못해도 무의식은 편안함을 느낄 거다. 뺄 수 없는 것에서 하나는 마음의 친구 다이애나다. 이걸 부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앤과 다이애나는 조금 다르지만, 다르기에 친하게 지냈겠지. 앤은 퀸스 학교에 다닐 때도 다이애나를 잊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나이를 먹고 서로의 가정을 갖게 되고는 어릴 때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이런 것도 생각하다니.
오랜만에 다시 앤을 만나서 즐거웠다. 만화영화 그림이 담긴 것도 좋았다. 몇해 전에 다시 만화영화를 봤을 때 난 앤이 마릴라 자수정 브로치를 정말 갖고 나갔다가 반짝이는 호수에 떨어뜨렸는지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화영화를 만들어서구나. 마릴라가 다른 데서 자수정 브로치를 찾은 걸 보고 다행이다 여겼다. 그날 앤은 조금 늦게 교회 소풍에 가고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지금 아이들은 그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를 거다. 지금은 모자란 게 없는 시대니. 아니 어딘가에는 부모가 없어서 힘들게 사는 아이가 있겠다.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매슈는 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릴라는 앤을 조금 엄하게 대하는 쪽을 맡았다. 그렇게 나누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책을 보다 벌써 아는 끝이 다가오면 아쉽다. 난 매슈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늘 슬프다. 매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앤을 만나서 기뻤겠지. 마릴라가 앤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돌아왔을 때 매슈는 가장 기뻤을 거다. 마릴라 또한 앤이 있어서 매슈가 죽었을 때 슬픔을 견딜 수 있었겠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기뻐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이야기구나. 앤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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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마릴라 아주머니, 내일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으세요?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날이잖아요. 내 보증하마. 앤, 넌 내일도 실수를 수두룩이 저지를 거야.
그 다음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 겁니다. 분명히 TV애니메이션으로 보고 또 보고 했었는데…… '왜 기억나지 않지?' 찜찜하던 차에 큰 아 이가 거금(?)을 투자하여 사준 책. 오늘 기어이 앞 부분과 끝 부분을 읽었답니다.
이틀 뒤 매슈 커스버트는 농장 문을 지나 자신이 일구었던 밭과 사랑하던 과수원과 직접 심은 나무들을 영원히 떠났다. 에이번리는 본래의 평온을 찾았고 초록 지붕 집에도 오랜 일상이 제자리를 찾 아 예전의 규칙대로 할 일을 처리하고 의무를 다했다. 하지만 '친숙 한 무언가'를 잃은 아픈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506쪽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희생이라뇨. 초록 지붕 집을 포기하는 것 보다 더 큰 희생은 없어요. 저한테 그보다 마음 아픈 일은 없어요. 우 린 이 정든 우리의 공간을 지켜야 해요. 전 마음을 굳혔어요, 아주머 니. 레드먼드에는 가지 않겠어요. 여기서 지내면서 교사가 될 거예 요.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세요."
"하지만 네 꿈과…… 또……." "전 지금 어느 때보다도 포부가 넘치는걸요. 단지 그 대상을 바꿨 을 뿐이에요. 전 좋은 선생님이 될 거예요. 아주머니의 시력도 지켜 드릴 거고요. 게다가 집에서 공부하면서 제 힘으로 대학 과정도 조 금씩 익힐 거고요. 와, 계획이 정말 많아요. 아주머니, 일주일 동안 이 생각만 했어요. 여기서 최선을 다해 살면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 리라 믿어요. 퀸스를 졸업할 땐 미래가 곧은길처럼 제 앞에 뻗어 있 는 것 같았어요. 그 길을 따라가면 중요한 이정표들을 수없이 만날 것 같았죠. 그런데 걷다 보니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길모퉁이 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아주머니. 모퉁이 너머 길이 어디로 향 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그림자가 기다릴지, 어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지,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과 마 주칠지, 어떤 굽잇길과 언덕과 계곡들이 나타날지 말이에요." "그래도 네가 그걸 포기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될 것 같구나." 마릴라가 장학금 이야기를 내비쳤다. "전 말리진 못하세요. 전 열여섯 살이 되고도 여섯 달이 지났고, 넌젠 가 린드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듯이 '노새처럼 고집불통'이니까요." 518쪽
빨강 머리 앤은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이야기였어요.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앤 셜리가 대학을 포기하고 집에 남아 교사가 되기로 했다는 소문 이 에이번리에 퍼지자 온갖 말이 나돌았다. 선량한 마을 사람들 대 다수는 마릴라의 눈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마릴라가 어리석다고 탓했 다. 하지만 앨런 부인은 예외였다. 앨런 부인은 앤의 결정을 지지했 고, 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마음씨 좋은 린드 부인도 달랐다. 519쪽
"그랬지, 그런데 네가 여기에 지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길버트 가 이사들을 찾아갔다더구나. 어젰밤에 학교에서 이사회가 열렸잖 니. 거기 가서 지원을 취소할 테니 네게 자리를 주라고 했다더구나. 자기는 회이트샌즈의 학교로 갈 거라면서 말이야. 물론 오로지 널 도우려고 여기 학교를 포기한 거지. 네가 얼마나 마릴라 곁에 있고 싶어 하는지 아니까 말이야. 얼마나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아이냐. 진 정으로 자기를 희생한 거지. 화이트샌즈에서 있으려면 하숙비도 들 테고, 우리가 다 알듯이 그 애도 자기 힘으로 대학 학비를 벌어야 하 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사회에서 너를 채용하기로 결정했어. 토머스 가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하는데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그걸 받아들이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 때문에 …… 저 때문에 길버트가 그런 희생을 하게 할 순 없어요." "이젠 무를 도리가 없단다. 길버트는 화이트샌즈 쪽 이사회와 계 약서도 작성했다더구나. 그러니까 네가 거절해도 길버트한테 도움 될 게 없어. ……" 521쪽
"너와 길버트가 문 앞에서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 한 사이인 줄 몰랐구나." 마릴라가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우린 그냥 선의의 경쟁자였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게 훨씬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정말 30분이나 서 있었어요? 고작 몇 분밖에 안 된 것 같았는데, 사 실 5년 동안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잖아요, 아주머니." 그날 밤 앤은 한껏 만족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창가에 앉아 있었 다. 벚나무 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박하향이 실려 왔다. 골짜기 안에 뾰족하게 솟은 전나무 위로 별들이 반짝였 고, 언제나처럼 나무 사리로 다이애나 방의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앤이 나직이 속삭였다. "하느님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평안하여라." 로버트 브라우닝(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 시인)의 <피파가 지나간다>중에서 524쪽
앤 셜리…… 빨강 머리 앤과 초록 지붕 집과 마릴라 아주머니와 여러 사람 들. 그리고 슬프고도 좋은 기억들!
어제 미녀삼총사 영화를 보면서 드류 베리모어가 나온 <미녀삼총사2: 맥시 멈 스피드>를 보면서 '드류 베리모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누구지? 누구 였더라?를 계소 되뇌이다가 사랑하는 와이프가 드류 베리모어를 외쳤고 둘이 서 "그래, 우리 아직 치매 아니야! 우리 젊어."라고 기분 좋게 외쳤답니다. 빨강 머리 앤을 다시 만나고 스토리를 기억하고 자세히 읽는 것만으로도 다 시 어릴적 그 시절로 돌아간듯 합니다. 좋은 기억, 푸근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것도 삶에 활력이 되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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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일본 만화 빨간머리 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주제가 가사는 내게 악몽같았다. 사실 일본식 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불어 공부를 위하여 캔디 만화 작가 유미코 이가라시의 만화를 불어판과 한국어 판 구입하면서 앤에 대해 재발견하게 되었다. 이 만화에서 나온 앤은 참 사랑스럽고 예뻤다. 아니, 그보다는 어린 시절 읽은 앤과 성인 시절 읽는 앤의 느낌이 무척 달랐다. 어린 시절엔 앤과 같이 새롭게 보게 되는 세상의 물건들, 이벤트에 그녀가 갖는 설렘을 공유했다. 모슬린 천으로 만든 커텐, 부푼 소매의 옷, 아이스크림, 다과회, 음악회.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행동이 충동적인 앤을 어른들이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에 눈길이 갔다. 앤을 '막 되먹은' 아이로 보는가 하고.
그러다 더 모던 출판사 책을 사면 앤 초판을 표지로 한 양장노트를 준다기에 잿밥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생각은 없었다. 사실 앤 책을 사서 모으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표지디자인이 예뻐서 샀지 내용을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보문고에 진열된 책을 한 번 펼쳐보다가 '거듭된 망신'이라는 문구에 딱 필이 꽂혔다. 번역이 마음에 와 닿았다. 고전문학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이들의 리뷰를 보게 되었다. 이미 자녀와 심지어 손녀를 둔 여성분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며 읽었다고 리뷰를 쓰신 내용들을 보고 흥미가 생겨 한 번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읽은 감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앤이 참 말을 잘 하는구나, 생각도 깊고, 행동은 충동적이지만 세상사를 판단하는 태도는, 그 좌충우돌 시절에도 참 어른스럽게 하네.
책 속에 실린 프린스에드워드 섬을 그려낸 일본TV만화 풍경이 지금 보니 넘넘 아름답다. 라일락 꽃이 가득 피어 그림 속에서도 그 향긋한 꽃 향기가 풍겨나는 것 같은 초록 지붕의 집을 담은 파스텔 톤의 푸른 색감도 좋다. 그리고 은은한 파랑색의 호수 풍경도 가슴에 은은한 물결을 일렁인다. 매단원 앞에 그 단원에 해당하는 일본TV만화 장면이 실려 어여쁜 예고편을 제공하는 더 모던 출판사 빨강머리 앤 리뷰는 여기저기 좋은 리뷰가 많을 테니 나는 좀 독특하게 퓨전 소설 형식으로 리뷰를 적어보고자 한다. 줄거리를 쓰고 느낀 점을 써야 하는데, 다이애나가 썼을 것처럼 실용적으로 써야 하는데, 내가 쓰는 글은 지금 보니 영락없는 앤 방식이다. 소설 속에서 앤이 말 하는 방식 (삼천포 방식), 마릴라가 주의를 주는 방식.
개인적으로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다이애나 어머니 배리 부인과 같은 사람이 이 책에서는 배리 부인 한 사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는 배리 부인과 같은 사람들이 다수 아닌가. 그 누가 앤을 이 소설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받아줄 것인가. 대부분 배리 부인처럼 거리를 두지 않을까. 그리고 반대로 은혜를 베풀거나 능력을 보여주면, 그때는 그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아닌가. 다행히 앤은 그녀가 고생했던 지난 시절에서 얻은 산 경험의 덕으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다이애나 동생을 구함으로써 배리 부인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앤과 같은 운을 얻는 것이 보통 사람들로선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앤처럼 자신이 해낸 일에 우쭐하지 않고 자신이 보냈던 어려운 시절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하는 모습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언뜻 위-아래가 없어 보이고 감정에 북받쳐 행동하는 앤의 모습이 동방예의지국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고개를 돌려버릴 정도로 무례하게 보인다는 것을 아는 입장으로서, 소설 속 세상은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떻든 바로 쳐낸다. 그런데 소설 속 세상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책에서는 유난히 keep faith, believing mind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믿는 것, 믿어주는 것이다. 이 앤의 변화되는 이야기를 통해 그 세상이 가진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앤이 좌충우돌이라는 건 인정해도, 앤이 실수가 많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항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시쳇말로 재수가 없는 상황에 실시간으로 계속 걸려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해당 행위가 앤으로부터 비롯된 건 사실이므로 앤이 그 '되어진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앤이 그 한계 상황이 올 거라고 낙관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아니면 낙관을 하고 있었기에 그 종점을 맞이한 것일까. '실수하는 운'이 임계치에 다다를 거라는 생각은 앤의 비범함을 보게 한다. 그래서 위-아래가 없이 무례해 보여도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타인을 피하고 말을 꺼내는데 쩔쩔매고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사람이 진국인 매슈, 송곳같이 말하고 표정이 단단하고 엄격해보이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앤을 그 마음에선 인정해주고 객관적으로 맞다 싶으면 기꺼이 편도 들어주는 마릴라. 이 두 양육자가 훌륭한 이유는 세상이 꺼리는 (사람들이 표준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앤의 '약점'을 사랑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건 두 양육자뿐만이 아니다. 앤의 과장된 어투를 보고도 그녀의 중심을 발견해주는 린드 부인. 그리고 영원한 보섬 친구 다이애나와 처음엔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길버트를 비롯해 앤을 사랑하고 옹호해 주었던 반 친구들. 그녀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여자 선생님, 목사관 부인, 다이애나의 친척 할머니. 남다른 앤이어도, 그녀를 마냥 이상하다고 보지 않고 사랑으로 보듬어준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마음의 친구와 마음의 고향을 발견한다. - 나도 TV 만화 주제가 때문에 놀림을 당하며 살았어도 앤과 달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결국 말이 막히고 뻣뻣한 사람이 된 이유는, 내겐 그 놀림이 팩폭처럼 여겨져서 그 놀림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 놀림에 매몰된 이유는 나는 앤처럼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 때문에 앤을 몸서리치게 싫어하곤 한다. 아무래도 앤을 생각하면 나를 바로 생각하는 그들도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나쁜말은 자기도 모르는 새 불쑥 튀어나온다고 앤이 말했던가. 나는 상대방 앞에서 말을 못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하는 말들은 매슈처럼 엉뚱하게 말하여 목표에서 벗어난 말을 하기 때문에, 매번 정확히 '나오는' 말은 '나쁜 말' 뿐이다. 그 말들이 내 진심에서 나를 먼 모습으로 상대들에게 보이게 하고, 그것에 나를 속게 만들면서, 그 생각이 다시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젠 내게 한때 있었던 진심조차도, 그게 있었다고, 그게 내 모습이라고, 내가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번 독서에서 나는 매슈를 만났다. 앤이 던지는 질문에 거의 하나도 대답하지 못하는 매슈. 그러나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성실하고 마음이 깊고 우직한 매슈.
이제 여기부터 뜬금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앤에 대한 전세계적 반응이나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왔던 역사가 궁금하지 않으신 분은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시면 된다......
그는 폴란드 인이 경영하는 서점에서 들었던 ‘앤’에 얽힌 일화를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앤’이 특히 인기를 끈 두 나라가 있는데 한 곳은 일본이고, 다른 한 곳은 폴란드란다. (빨강머리의 볼품없는 고아 소녀, 그러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소녀,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가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나가는 소녀, 앤-이건 한국 얘기) 전후 전쟁 패배감이 짙게 배여 있던 일본에서 성장기를 맞아야 했던 어린 소녀들은 빨간 머리의 볼품없는 고아 소녀 앤에게 자신을 동일시하며 밑바닥에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꿈과 희망을 배워나갔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앤은 그 수치를 극복하고 명예 회복을 이룰 수 있는 롤 모델 역할을 했다. 그에 반해 폴란드에선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에게 이 책이 큰 인기를 끌었다. 돌아갈 수 없는 가정과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를 이 책이 자극시켰기 때문이다. 아침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자연풍경 묘사와 이웃 간 정겨운 일상이 마치 그 속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불어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군인들은 그들을 짓누르는 무섭고 잔인한 현실을 잠시 잊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동안이나마, 자신의 고향마을에 돌아갔다. 그래서 그토록 보고 싶은 가족과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 책속에서 거울처럼 비춰 보았다. 앤은 그들에게 (잃어버린) 행복을 떠올리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그건 독일도 마찬가지에요. 다만 불어로 된 첫 번역 책은 스위스 제네바(1925)에서 이미 나왔어요. 캐나다 퀘벡이 아니고요. 근데 우연히도 독일엔 앤의 마지막 권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이야기가 있었대요. 여자 주인공 이름이 지금 생각이 안 나지만 그녀도 리라처럼 똑같이 형제자매 많은 집안의 철없는 막내이고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의식이 성숙해요. 이 이야기가 독일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그 이후 시리즈가 출간되었대요. 캐나다 소설은 리라 이야기로 앤 시리즈를 마쳤다면, 독일에선 리라 이야기로 시리즈가 시작되어 그녀가 할머니가 된 이야기로 마친대요.”
빨강머리 앤이 1944년 바르샤바 봉기와 폴란드 레지스탕스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작품이 폴란드에서 뮤지컬로 처음 상연되었던 1982년, 주연 여배우는 당시 바르샤바 봉기에 참여했던 소년이 바리케이드 뒤에서 겨우 아버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낭송했다: 우린 순식간에 하나 둘 씩 죽어나가고 있어요. 마치 돌 처럼 바리케이드에 내동댕이 쳐지지만 우리는 헛되이 죽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시작되는 문구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의 책에서 본 문구와 닮았다. 1913년 아직 폴란드가 주변의 3 강국에 나라가 분할되어 세계지도에서 사라져 있었을 때 폴란드는 폴란드어로 쓴 문학 육성으로 폴란드의 민족성을 지켜나갔다. 그 중엔 번역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 폴란드 번역문학 성장에 눈부시게 기여한 작품이 바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초록 지붕집의 앤'이다. 이 앤 책이 신드롬을 일으켜서 나라가 없었을 당시 오히려 폴란드 어가 널리 읽힐 수 있었다. 이 행복한 내용의 책을 식민 정부에 의해 자기 나라에서 금지된 자기 나라 어로 읽는 상황을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갓 결혼한 신부였던 1913년에 이 책을 읽은 여성분은 나중에 연좌제에 걸려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을 때 수용소에 가지고 간 책으로 앤을 챙겼다고 한다. 나치에 금서로 찍힌 앤은 지하 출판을 통해 폴란드 레지스탕스에게 배부되었고, 1950년대 스탈린 집권 시절 앤은 상상력과 감성주의가 냉혹한 비판을 받고 서점과 도서관에서 책이 모두 몰수되었다가 폴란드 레지스탕스 출신 여성이 새로 개업한 출판사에서 다시 첫 3권부터 출판되면서 1960년대 다시 대대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세상에서 만년 소외되어 있던 고아 소녀 앤이 양부모를 만나고 친구들을 만들며 그녀가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던 일상을 발견해가고 경험을 쌓아가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메마르고 결핍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상밖에 없지요. 그 마저도 선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인데, 사람들에게는 조롱밖에 받지 못하죠. 유물론적 사회에선 그 상상력이 혹독한 자아비판과 처벌로 이어지고요. 그렇게 소외가 소외를 부르는 악순환적인 세월이 이어지는 와중에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안정된 환경을 만나, 이제 일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주역으로 살면서 점점 현실에 안착해가는 이야기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겠어요. 마음에서 꿈꾼 사람들이 사는 장소를 찾은 것 같았겠지요. 다만 사람들이 그런 환경을 찾으면서도 자신은 그 환경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모두 자신이 앤이 되고 싶어 하고, 상대는 다이애나 같은 친구이기를 바라거든요. 앤이 자기 옆에 있으면 무척 부담스러워 하죠.”
윗 글은 1960년대 앤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폴란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실시해 나온 결과를 픽션으로 재구성해 본 내용이다. 물론 앙케이트 내용 중엔 실제 주변에 앤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녀가 이 현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 항목도 있다. 대부분 그녀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만나긴 했지만 앤처럼 행동하진 못했다고 대답했다. 앤과 같이 행동했다간 우습게 보여 놀림을 당하거나, 그렇게 놀림을 당해 아주 뻣뻣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앤이 말수도 적어지고 유니크한 우아미를 갖게 되고 주도적인 여성으로 성취를 이룬 부분에 대해선, 모두가 앤을 닮고 싶어했다. 그리고 자신을 무조건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다이애나를 친구로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다이애나가 되고 싶은 응답자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되고 싶은 앤을 주변에서 보고 싶어하는 응답자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애나를 앤의 전폭적인 사랑을 듬뿍 받은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친구로부터 그런 믿음직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아무리 앤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소중하게 간직되는 책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앤은 대상화 되어 있다. 앤이 마치 자신에게 좋은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다. 우리나라에선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주어진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을 (기특하게) 보는 위치에 스스로를 두고 싶다. 상대를 놀리면서 애정해주는 대상으로 둔다. 사실 그게 인간성이 단순한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그 인간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지만은, 아무리 이게 인간의 본성이라도, 이건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앤에 끝내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앤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 현명하게 된 앤보다 불완전해 보였을 때의 앤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다고 여기며, 그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받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같다. 하지만 나라마다 '공식적으로' 미세하게 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예전에 캔디 주제가를 통해서 각 나라의 특성을 분석한바 있는데, 캔디가 아무래도 앤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작품인 만큼 캔디에 대한 연구결과가 그대로 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에서는 끝까지 빨강머리가 앤의 특징으로 등극한 적이 없다. 동양 사람들 눈에 빨강머리가 신기해 보이고, 앤이 싫어하는 그 감정에 똑같이 이입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특히 번역의 측면에서 '~의'라는 표현을 쓰는 게 어색해 초록 지붕집의 앤 보다는 빨강머리 앤이 더 리듬감있고 친숙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래서 그 제목이 상업적 성공을 견인했다 하더라도, 그건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앤이 그토록 싫어하는데, 왜 꼭 그 싫어하는 점으로 앤을 기억하려 하는지 서양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생각에 노출되면 우리들의 생각을 그들도 자연스레 흡수해버리고 재미있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뒷편으로는 우릴 정신적 난장이 취급한다. 그렇게 정신적 난장이에게 놀림을 당한 나는 자동적으로 찌질이가 된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외국 사람들은 그들이 동양인을 생각하는 '정신적 난장이' 인식을 확인사살하듯 고착화시킨다. 왜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작고 보잘것 없는 사람', 밉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거기서 그녀가 쿨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사실 그렇게 놀리고 싶은 게 진심이 아니면서,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나쁜 말의 마법에 걸려버린 것일까.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좋은 점은,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도 교양인들 위주로 '서구화'되어 찌질이들을 상종안하는 태도를 갖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 정서는 '찌질이'를 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리면서 정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도 너도 '찌질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조하고 연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찌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서양에서는 찌질이 이코르 내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상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참고로 일본에서 말하는 '빨강머리'는, 같은 빨강머리여도, 우리나라의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으로 설명되는 그 빨강머리와 미세한 차이인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크게 그 의미와 가치가 다른 것 같다. 일본에서의 빨강머리는 앤의 전인적인 성장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의미가 커서 우리나라에서 앤을 '정의내리고' '다정하게 부르는' 빨강머리의 의미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진 '빨강머리'의 의미에 대해 그 시절 미리 알았더라면, 일본 번역자는 경악했을 것 같다. 주근깨 빼빼마른 모습의 앤을 부각시킨 것도 절대로 우리나라에서 연민하고 쓰다듬어주는 대상의 의미로 설정한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 독자들에게 앤은 '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앤은 대부분 '나'가 아닌 '대상'이다. 우리나라처럼 교만하게 앤을 대하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앤을 여성미 넘치는 주도적인 여인으로 생각했던 건 물론 폴란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캐나다 TV에서도 그 이야기가 성공했으니까. 지금도 활발히 현재진행중이다. 전쟁 때도 외인부대로 파견된 폴란드 군인들에게 배포되었던 책은 앤 3권, '대학시절의 앤'이었다. 폴란드 남자들이 앤에게 이성의 흥미를 느낀 듯 하다. 그들은 대학시절 앤과 같은 여자친구를 두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그들이야말로 여자친구로부터 '길버트'가 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근데 길버트가 폴란드 여성들만의 이상형이랴.
그런데 일본에서 처음 앤 번역이 이루어진 사연도 뭉클하긴 마찬가지다. 1939년 캐나다 선교사로부터 앤 원작을 받고, ... 아 이름을 잊었다. 일본에서 대표적인 여성 번역가라는데 ... 하여튼 H씨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H씨는 전쟁 중 위험천만의 번역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권에 속한 나라들이 일본의 적국이었기 때문이다. 폭격을 당하는 와중에도 원고를 들고 피신했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번역하고 배포한 앤이 일본에서 성취한 역사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저 모던 출판사의 책이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그녀가 전쟁 중 반역자가 되는 상황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번역을 하고 폭격 중 원고를 지켜내 앤 출판을 성사시켜준 덕분 아닌가. 한마디로 반 군국주의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닌가. 20대 이상 한국 독자들은 이 용감한 여성 번역가의 수고로 '인생의 책을 만나는 혜택'을 입은 셈이다. 그녀 역시 영웅이었다. 폴란드와 일본이 유독 앤의 독자로서 빛나는 이유는 그곳에서 영웅들이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100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앤의 열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는 벤자민 르페브르 교수를 수장으로 TF팀이 결성되어 2008년부터 앤의 작가 몽고메리 여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성인소설로 분류되는 블루 캐슬은 나름 제인 오스틴 소설과도 비슷하기에 (어떻게 보면 조르주 상드의 전원소설 '소녀 파데트'하고도 비슷하다), 그들은 작가 연구를 통해 그녀를 오스틴 급의 고전 작가로 등극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생전 몽고메리 여사는 자신의 글이 아무리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려도 자신의 글이 고전작품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한다. 그녀의 우울증은 사생활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이런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녀는 코코 샤넬처럼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미화시키기도 하는 등) 여성미가 넘치고 야심이 많은 여자였다. 사실 앤이 그녀의 분신이기도 하다. 앤은 사회적으로 기여도 했는데, 거의 미신을 방불케할 정도로 고아 소녀에 대해 세인들이 가지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이 앤의 성장 소설이 잠식시켜주었던 것이다. 좋은 환경만 만들어주면 아이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이 책이 독자들에게 설득시켰던 것이다. 사랑으로 보여준 진심에 사람은 자기 희생으로 보답한다.
허구든, 실제든, 앤은 그녀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편견처럼 들어앉아 있던 그들의 원래 생각을 새로이 변화시켰다. 어느새 진심이라는 말이, 별로 그 관계에서 신경 쓸 것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상대에게 바치는 전유물인 양 취급되고 있다. 그래서 그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앤을 가볍게 보거나 얕잡아보는 사람도 많다. 소설을 통해 타고난 긍정을 넘은 그녀의 깊은 생각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도 부끄럽지만 그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진심' 대신 '중심'이라는 말을 쓴다. 앤은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영원히 우리 속에 남아있을 그 '중심'이라는 가치를 매번 우리 곁으로 소환한다. 그래서 앤이 읽혀지는 한, 그 진정한 인간성의 가치는 계속 조명되고 기억될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는 캐나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고 그녀의 작품으로 캐나다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캐나다에서는 그녀를 별로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나다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해 3년을 묵혔다가 미국 출판사에서 처음 출판해주었고, 거기서 바로 성공을 거두어 이듬해부터 스웨덴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번역이 들어갔다. 역시 다민족 국가의 저력을 보여준다. 폴란드는 스웨덴어로 번역이 이뤄질 당시 해적판이 돌기 시작했는데, 그때 작가 이름이 '앤 몽고메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앤 시리즈는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강국을 제외하고 전 유럽에 인기리에 퍼져나갔다. 특히 북구를 중심으로 공감대가 컸다. 근데 캐나다의 불어권 퀘벡 주에서는 불어번역이 상당히 늦었다. 스위스(1925), 프랑스(1964)에 훨씬 밀린다. 대신 요즘 구입할 수 있는 앤 불어판은 캐나다 퀘벡에서 나온 1995년 판이다. 폴란드 독자들은 대부분 마지막 1차대전을 다룬 리라 이야기까지 시리즈로 완독했다. 물론 지금도 폴란드에서 예전의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영국 왕세손비가 빨강머리 앤의 팬이라 프린스 에드워드 섬 샬롯타운을 무슨 행사로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공식 방문했을 때 비공식적으로 앤 뮤지컬을 보았고, 또 앤의 팬덤을 형성한, 특이할 만한 국가로 이란과 스웨덴을 들 수 있다. 이란에서 흥행한 앤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를 연구하는 TF팀이 다루는 주제에는, 앤이 번역된 각 나라마다 앤이 어떻게 그 현지인들에게 흡수되었는지, 그 민족적 기질과 접점을 살피는 연구(Anne around the world)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빨강머리 앤 신드롬을 부활시킨 백영옥 님이 그 팀에 합류하시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내 생각엔 한국에 안착한 앤의 모습은, 앤이 그토록 싫어했던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로 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이유, 그리고 앤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탁월한 상상력으로 난관을 헤쳐가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매료시킨 자기 계발적 측면 연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구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지정학적 위치가 만들어낸 우리나라 역사라든지,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시기에 다른 나라와 같은 급의 정치, 경제를 포함한 국가적 발전을 이루어야 했고, 사람이 곧 자원으로 통한 만큼 경쟁이 유독 심해 거기서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나라 특유의 환경도, 유물주의적이지만 감각적인 눈썰미도, 앤을 흡수하는 특별한 요인이 되었음을 설득력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줄 수 있는, 디테일이 강한 사람이 한국대표로 파견되었으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듯, 일본 만화로 영향받았다고 말하면, 가득이나 식민지가 되었던 전력도 있는데, 자기 정체성 없이 일본을 추종하는 국가가 되는 것 같아 민망하니까.
이건 내 조심스런 상상이지만, 사람들 생각으로는 뜬금없이 폴란드에서 앤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유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폴란드 역사를, 이 고아 소녀 앤이 알아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무의식적인 공감대가 서로를 향해 흐른 것이다. The Downfall of Poland. 제목 자체로도 큰 울림을 지닌다. 글도 매우 아름다왔으리라 짐작된다. 즉 앤을 통해서 폴란드의 아픈 역사를 전 세계에 조명해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에 대해 폴란드 사람들이 소설에 대한 전폭적 공감으로 반응했던 게 아닐까. 새로운 가족과 집이 생긴다는 희망에 부풀어 잔뜩 기대를 품고 바다 건너 섬에 왔다가 매슈와 마릴라 남매가 원했던 남자 아이가 아니라서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질 뻔한 앤의 존재감도 그렇고, 세계에서 땅은 있는데 이름은 없어진 나라의 존재감도 ㅠ.ㅠ
그러나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지기 위해 초록지붕의 집을 떠나던 날, 앤은 의연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에서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행복의 모든 액기스를 뽑아낸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초록 지붕의 다락방에서, 장차 그녀의 보솜 친구가 될 다이애나가 살고 있는 배리 저택과 초록 지붕의 집 사이에 놓인, 그녀가 그 이름을 붙인 '반짝이는 호수'에서.
작품을 통해서 몽고메리 여사는 고귀한 아름다움에의 동경과 자기희생 정신(앤 첫권에서는 매슈가 죽은 후 혼자 집을 꾸려갈 수 없어 집을 팔려고 하는 마릴라를 돌보기 위해 앤이 레드먼드 대학 진학을 포기하며 마릴라 곁에 남기로 하고, 그녀의 이런 사정을 듣고 길버트가 에이번리 학교 선생 자리를 앤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나온다)을, 우월주의와 전체주의 시각으로 대상화한 것이 아니라, 그 본연의 아름다움, 속 깊은 감수성과 인간미를 지향하는 숭고한 가치관의 형태로 전 세계에 그 문을 열어주었다. 세상에서 외면당한 고아 소녀,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나라 등 잊혀진 약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조명해 주었고, 그 국민의 격을 높이는 저항에 동행해 주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앤을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라고 흥얼거리며 깔깔거리면서 애정하는 것은, 그리고 앤이 초반에 보여준 남다른 특성, 얕잡아 보이는 모습으로 앤을 생각하며 싫다고 몸서리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편헙적인 생각이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앤이 그런 혐오존재로 취급되는 것 때문에 나는 평생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다. 그런데도, 그 앤의 존재를 내게서 완전히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더 죄책감과 책임감의 멍에를 덮어쓰고 살아왔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앤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몸서리 치며 싫어했다. 이런 경우가 앤 말고도 많은데, 그 나머지 경우, 나중에 그것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그것을 접하게 된 것이 늦어버리게 되어버렸다고 말하여, 정말 내가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는 걸 막는 존재구나 생각하고 자괴했다. 이게 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이게 과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그 싫은 감정이 제임스 조이스 소설의 '더블린 사람들'의 한 단편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해보라. 이렇게 되면 '더블린 사람들'의 한 단편에서 주인공으로 나에 대한 모든 느낌을 토로한 그들의 이야기는 문학적 감흥을 주며 그 이야기를 접하는 이들에게 공감을 받게 되고, 나는 부끄러운 인물로 영속하여 평생 그 정의 속에서 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난 안다. 그들은 폴란드와 같은 위기 상황에 국가가 처하면 레지스탕스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강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난 그들이 한 말대로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를 연상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표현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이야기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꺼내는 모든 소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악몽이 되고 싫은 것이 되었다. - 우스운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다짐할 수록 그것이 충동적으로 더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어도 안 되었다. 너무 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일본 만화에서 앤이 분명히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된 것은, 그 주근깨 빼빼마른 얼굴로 무너져 내린 얼굴을 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앤은 자신의 열망을 위협하는 경악할 일을 만났을 때 그 무너져내리는 얼굴을 만들었다. 나는 빼빼마르기만 했을 뿐 두 갈래로 땋아내린 빨강머리도 아니었고 주근깨가 있는 소녀가 아니었지만 이마가 벗겨지다시피 한 얼굴로 곧잘 무너져 내린 얼굴을 한 모습이 사람들이 앤과 나를 매치시킨 게 아닌가 한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앤은 그런 무너져내리는 보기 싫은 얼굴을 가진, 메마르고 신경질적인 소녀였다. 그리고 그 편견은 앤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그들은 앤을 오해하게 된 것이 나라는 사람을 만나야 했던 불운의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그녀는 그땐 그 앞에서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서점 윈도우에 그녀가 어린 시절 무척 좋아했던 캐나다 작가, 루시 몽고메리 여사의 ‘Anne, La maison aux pignons verts’가 신간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초등학생 동료들과 동생 엘렌 외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그녀의 ‘특이한’ 취향을 그에게 ‘자신감 있게’ 털어놓았다. 아직 순진무구했던 시절,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했을 때, 친구들은 바로 그녀를 놀릴 수 있는 소재를 찾아 기뻐했고, 엘렌은 그 취향이 친구들의 놀림을 부추기는 그녀의 특이함을 더 강조한다고 보고 그런 취향을 재고해보도록 충고했다. 그래서 그 이후 그녀는 그 비밀을 감추고 지냈는데, 불어 신간이 나온 걸 보자 반가운 마음에, 그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자신감을 빌어, 그 앞에 용기 있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의 당연한 본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아직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미숙한 생각으로 알았던 그것이, 사실 적그리스도적인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놀리거나 편견을 가졌던 그들보다, 그들의 생각에 나를 맞추었던 내 생활이 훨씬 더 적그리스도적인 죄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론은 나는 앤이 아닌데, '주근깨 빼빼마른' 일본만화 속에 나온 앤 외모로 앤으로 판단되어, 나도 내 존재감으로 앤을 왜곡하고, 앤도 만화 속에 그려진 모습이 나와 일치되어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왜곡받았던 것 같다. 특히 앤이 다이애나에게 보이는 충성적인 모습이 내게 겹쳐져, 사람들이 그걸 내게서 보고 그런 우정을 받고 싶어했던 것 같다. 긴장 연속의 이 세상에서 내 앞에서는 겨우 무장해제할 수 있는 편안감을 느끼며 마음의 친구로 지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은 인정하지 않으나 나는 그렇다고 말하는 선을 넘어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키고, 내가 배신한 친구가 되고, 그런 동시에 내가 앤 처럼 밝고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말재주와 손재주 모두 너무 보잘것 없는 사람이다보니,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나를 마음에서는 멸시밖에 되지 않는 혼란에 빠졌던 것 같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들은 부단히도 애써야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우정하는 것보다 나한테 더 수고를 들여야 했던 것 같다.
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결국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되지 않았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내가 항상 사과하고, 내게서 올라오는 생각을 항상 부인하며, 상대방에게 가장 훌륭한 답정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항상 틀리는 폭 만큼 상대방은 항상 맞았다. 그것이 내가 맞을 확률은 0%이고 상대방이 맞을 확률은 100%라는, 아주 비현실적인 일들이 실제 현실로 우리 사이에 일어났다. 이건 그들이 봐도 절대로 현실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완벽하게 다 맞고 한 사람이 완벽하게 다 틀릴 수 있을까. 그런데 실제 그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들도 어리둥절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꿰뚫고, 난 내가 본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데, 그들은 내게서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정확히 예측하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맞히고 비판했다. 내게 말하는 것이 정말 틀린 게 없었던 건 물론, 그들의 말은 내 미래에 모두 이뤄지는 예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맞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내게서 그 믿음이 사실임을 백프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날 읽었던 말이 내게서 가볍게 통과하지 않고 내가 계속 되씹는 상황은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내가 너무 과하게 받아들여서 어떤 말도 못하겠다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매번 나를 자책했다.
실제 나는 한평생 그들이 정한 시나리오가 상연되는 무대에 그들이 역할을 정해준 배우로 사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매번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타율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 미래가 외부 존재가 내게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지는 만큼, 나의 자유의지는 오로지 주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냐에만 쓰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유의지는, 나 같은 건 죽어야 하는데 못 죽는다고, 스스로 죽지 못하는 겁장이로 날 만든 하나님께 참 불경스런 생각을 하는데만 쓰였다. 죄는 정말 자타인정하듯 내가 크게 짓고 있었다. 내가 인정받아야 할 이를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그 인정을 받으라고 당부한 하나님이 아닌, 인본적으로 반듯하고 지적이고 현명한 사람들에게, 그것도 나에게 친히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지 마라고 가르쳐준 사람으로부터 그 인정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이라고 놀리는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 놀림에서 드러난 사실이 아닌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놀리던 것을 철회할 수 있도록 그 모습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한 행동은 훌륭함과는 완전히 반대쪽이었다. 마치 나를 멸시하는 그들이 그러는 게 맞다는 것을 증명해 주려는 양 멸시받을 만한 행동만 골라 하며, 그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고해성사를 그들 앞에서 꼭 꺼내고 그들이 그런 밑바닥에 있는 나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구원을 찾았다. 그들은 우습다고 생각은 했지만 상대에게 그 위치가 되는 것이 나름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서 그들은 자아효능감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작은 신으로 섬겼던 것이다. 분명 우상숭배는 아닌데, 마치 나에게 비춰지는 그들의 완전무결함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올바르게 선 사랑과 아름다워 보이는 모습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옳은 점을 인정하고 섬겼다는 것에서 우상숭배가 되어버렸다. 보이는 행동은 영락없이 교회의 형제자매를 섬기는 행동과 같은 것인데, 그건 주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사랑하는 데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부러움과 시기가 되지 못했기에, 우상숭배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그들이 그들의 정확하고 예리하고 섬세한 말로 표현하는 감정은 마치 크리스탈 구슬처럼 다채롭게 빛나 내가 내 어눌한 사고와 어눌한 말로 표현하는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무채색 구슬같은 감정과 비교해 차원이 무척 높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너무 소인배처럼 보이고 그들 앞에 내가 너무 가당치 않게 보였다. 즉 나는 나를 살리는 영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영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게 일어난 이 일이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영적 파멸에서는 그나마 한 걸음 물러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겐 양쪽 잣대가 가동되고 있어 나머지 한 가지를 내려놓으면 되었던 것이다. 잘못 알고 믿은 것은 돌이킬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 영적 파멸로 인도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아는데도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마음이다. 자기를 높이는 일과 남을 높이는 일이 나는 오랫동안 같은 것인 줄로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일이었다 - 나는 매번 그들에게 동의하고 동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동의를 해 주지 않으려는 게 사람들의 현실인데,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체면을 죽였다. 그래서 남이 옳은 말을 할 때 내가 그 앞에서 체면은 초라하게 되겠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좋은 말을 쳐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배여 있어서 그 가치 대로 표현하다보니, 그것이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눈치 없는 동의가 되고, 그들이 내 동의는 필요없다고 교만하게 말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이 교만하게 말했다고는 말했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그들의 말은 교만에서 나온 게 아니라 상대방의 정교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머리가 안 돌아가고 눈치 없는 사람에게 눈쌀을 찌푸리는 솔직한 감정 표현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게, 반응을 당하고 보니 내 속은 찢어질 듯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맞게 했다 싶었다. 지금 나는 내 어눌한 말로 맞다-라고 표현하지만,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하자면, 그들이 갖고 있는 감정이 참 설득력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그들의 입술에서는 마치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읽는 것처럼 모더니즘 소설 문장을 귀로 듣는듯한, 귀를 번쩍 기울이게 되는 문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이 소설 속에서 앤이 말하는 문장들을 구사했다. (내가 느낀 바로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가 이런 부류의 사람인 듯 보였다. 앤이 그녀의 분신이긴 하지만, 앤이 정확히 그녀의 분신이 되는 지점은, 매슈와 마릴라에게 입양되기 전의 그 참담했던 시절, 그리고 대학시절에 내로라하는 남자들과 밀당하던 앤이었다. 여사는 외조부와 외조모 아래서 컸는데, 매슈와 마릴라가 앤에게 해준 양육은 그들로부터 받지 못한 것 같았다. 다만 환상적인 사촌들이 있어 그녀는 그들에게서 아지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사촌들과 보낸 시간이 앤과 다이애나의 우정이 이야기로 태어나는 동기가 되고, 그 경험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앤의 아이들과 목사관 아이들이 맺는 우정을 그린 Rainbow Valley에서 반영되었을 것 같다. 여사는 소설 속 앤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거나 남에게 헌신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실제로는 시시해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가 컸는데, 안타깝게도 남편과 첫째 아들이 점점 그런 성에 차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어 평생 우울증에 고통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소설 속에서는 그 약점을 사랑으로 보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끔 나는 몽고메리 여사를 현실에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니 내 입장에선 정말 혼란스러웠다. 옳은 것을 옳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도, 눈치 없어 민폐 끼치는 행동이 되다니. 내 자아를 내려놓고 남을 곧이곧대로 인정해주는 행위가 도리어 마치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더 정확히 말하면 자폐적인 행위가 되어버리다니. 정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맞다와 틀리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따질 게 아니었다. 그리고 모자라다 그것은 반드시 멸시를 받는다- 이 문제로 따질 것도 아니었다. 일단 그들이 내게 한 행위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서늘하니 멋진 행위였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가증스러운 교만이었다. 남들을 모두 배경으로 몰아넣고 자기 혼자 우뚝 서는, 세상에선 똑부라진다고 칭찬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로 하나님은 이 중심에 적대감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경계하신다. 내가 그들의 생각에 흡수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특별한 장점으로, 객관적 상황, 진리를 찾고자 하고, 남의 생각에 마음으로 공감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내 중심에 기본으로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단점으로는 설득력있고 좋아보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할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에 비해 내가 터무니없이 모자란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또 중심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마음이 절실한 만큼 반대로 내 모자란 모습이 더 정확히 실시간으로 상대방 앞에 튀어나오는 반대 상황이 내 마음의 크기만큼 크게 벌어졌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모자란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보기 싫어하는 만큼 나더러 인정하라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맞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모자란 모습을 가릴 수 있을지라도 나는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왜냐면 하나님께 나는 (그 은사로) 기능해야 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부분을 남들은 아니더라도 나는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안 했으니, 평생 망신만 거듭하며 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건 그 망신을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나마 떠오른 생각도 매번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매번 반응과 행동을 거꾸로 하는 나를 실시간 보면서 자괴하여 스스로 무력감에 빠져 신체와 정신 건강을 망치지 않고,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평생 보면서 소외감과 박탈감이 불안감을 쌓아갔던 행위를 멈추는 것이다. 주님은 내게 있는 두 가지 중심 중 한 가지만 선택하길 바라신 것이다. 진리를 순종하느냐, 모자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느냐(받아들이지 않느냐).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후자를 선택하면 둘 다 잃고 전자를 선택하면 둘 다 얻는데, 사람 본성은 자꾸 후자를 선택하고 싶어 한다. 내가 내 노력으로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자아가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남들이 나에게 정한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향해 죽은 사람이다. 어차피 나는 자아가 죽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선택을 어디로 해야 할지는 이제 자명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주님이 내 주가 아니라, 내가 못하는 것을 잘 하는 타인이 내 주가 되는 상황 속에서 살며 매번 그 앞에서 망신살 뻗치는 내 모습을 보며 열등의식으로 괴롭고 소인배로 비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꼬마 앤은 그것도 언젠가는 한계상황으로 올 거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건 영적인 문제였다. 하나님이 그 혼란을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님이 알려주신 방법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적인, 인본주의적 방식을 내가 그 오랜 시절동안 추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그 미혹 속에 내버려두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나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내가 이쯤 되면 백기를 들고 그 혼란을 주님께 가지고 와 주님의 동행을 구하고 믿는 기회로 주셨는데 내가 결과적으로 주님을 참 오래 기다리시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더 좋은 모습으로, 나를 발전시키는 모습으로 해결하려 한 내가 참 고집이 셌던 것일지도 모른다. 팩트만 신봉하고 그보다 더 큰 가능성은 믿지 않은 죄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나는 보이는, 되어진 사실만 인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보이는 것, 외모로 판단하지만 그리스도는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주님께는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크고, 믿는 사람들이 짓는 죄를 더 크게 보신다. 주님은 내가 타인 앞에서 모자람을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셨던 주님의 마음으로 나도 그들을 바라보기를 바라신다. 주님은 내가 주님이 주신 자존감으로, 믿음을 갖고 타인 앞에 서길 바라신다.
폴란드 멸망 에피소드 외 앤의 초라한 처지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앤이 주기도문 카드를 가지러 가면서 집 모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그림, 예수님과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다. 앤은 그림 속에 등장한 아이들 중,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보잘 것 없는 모습의 파란 옷을 입은 소녀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그 멀리 떨어져 있는 소녀의 존재를 의식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고, 그리스도의 말 없는 사랑을 느끼고 감동받았다. 불경죄를 방불케할 정도로 날 것 같았던 앤이었어도, 그녀의 마음은 그 모든 교리의 옷을 던져버리고 순결하고 정직한 영으로 주님께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사랑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느꼈던 것이다.
"제가 저 그림 속 아이들 중 한 명이라고 상상했어요. 저기 파란 옷의 여자아이 말이에요. 구석에 혼자 떨어져 서 있는 게 저처럼 가족이 없어 보여요. 외롭고 슬퍼 보이지 않나요? 저 아이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실 거예요. 하지만 자기도 축복받고 싶어서 망설이다가 수줍게 사람들 밖으로 나온 거죠. ... (109p)
“됨됨이가 좋았던 그 소년이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나요?”
아이는 예수님이 자기를 보지 못할까 봐 불안해 하고 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알아보신 것 같아요. 그렇죠? 상상해 보세요.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 예수님 옆까지 가는 거예요.
(109p)
앞서 말했듯,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써 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가 멸시할 사람의 타입이 딱 나라서 난 오랫동안 굉장히 고통을 받았다. 아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일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여사가 돌아가신 후 태어났다. 그리고 이젠 주님이 주신 신분으로 그녀의 이야기와 소통할 수 있어 기쁘다. 앤에 세상에 준 사랑을 보고 느낄 수 있어 기쁘다.
장애인 자녀를 두었다고 부모를 무릎 꿇리는 사람들이 있고, 장애인 자녀를 위해 그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부모가 있다. 후자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자녀가 장애인인 것이 부모가 그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가? 그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이다. 앤도 세상에 포함되지 못한 아웃사이더로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을 것이다. 앤이 허구의 사람이고 아직 순진한 어린 아이의 이야기라 생략되긴 했지만,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겐 여기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과정이 먼저 반드시 있다. 그래서 그토록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그녀에게 일어난 이야기는, 빨강머리 앤 이야기의 성공을 견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세상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나뉘어진다.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아니냐. 그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앤은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준다. 앤의 이야기를 보면 천국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천국이기에 그토록 그 이야기가 어필하는 것 아닐까.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난 후 세대를 거듭하며 우리 가슴 속에 미세하게 남은 그곳의 모습을 앤의 이야기가 환기시키며, 잃어버린 우리의 고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앤 시리즈를 통틀어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여사는 '믿음'을, 믿음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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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운동이 한창인 지금, 다른 쪽 분야의 소설에 눈을 돌려보았다. 최근 '빨강 머리 앤'이라는 소설책이 봇물터지듯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한번 살펴보니 글 중간중간에 삽화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예전에 내가 에니메이션으로 보아왔던 캐릭터를 변화없이 똑같이 표현되어 있었다. 바로 예스24에서 구매한 후 글자 하나하나 정독하면서 읽어보니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빨강 머리 앤에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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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빨강머리앤~ 빨강머리앤을 참 좋아했지요^^ 책으로 보는 느낌은 어떨까해서 구입하게 된 책~ 글로 읽고 있는데 영상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상상하고 상상한 것을 이야기하고 그런 앤 셜리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게되고 상상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다시 한 번 애니메이션으로 보고싶은 빨강머리 앤~ 기억에 오래 남는 좋아하는 앤 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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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빨강 머리 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아요. 빨강 머리 앤에 관련된 책들은 이것저것 구매해서 읽어봤어요. 어릴 적 봤던 만화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좋았습니다. 앤이 하는 말도 좋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몇 권 더 구매해서 주변에 선물 해 줬는데, 받는 분 대부분 좋아하셨어요. 키다리 아저씨도 구매해서 읽었는데 그것도 한 편의 만화영화 감상한 듯해서 재밌었구요..
아무튼 저는 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빨강 머리 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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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읽어봤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넘 좋네용 ㅎㅎ 힐링하는 기분이에요! 원래 소설 잘 안 읽는 편인데 빨강머리 앤은 두꺼운 책인데도 완전 빨리 읽어버렸어요..ㅋㅋㅋ 중간중간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부분들이 특히 맘에 들었어요! 학교에서 읽었는데 친구들도 책 표지나 내용이나 그림 예쁘다고 다들 사고 싶어 하더라구용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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