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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딜버터 12월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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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 떄에는 자기가 정상인 데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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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게 뭔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 떄에는 자기가 정상인 데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았겠지. 가장 나쁜 건 아픈 사람은 자기 아픈 것에만 골몰한다는 거야.

/ 103p

언니가 오고부터 나는 언니의 눈에 비친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 때문에 다시 불편하고 아프기 시작했어. 예전엔 정상적인 사람이 되려고 지나치게 긴장하며 살아서 아팠다면, 지금 나는 정상이라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언니에게 말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는지 판단할 수 없어서 아파. 언니가 되고 싶어하는 걸 내가 방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나봐.

/ 118p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으로 간주되어버린다는 점이 그 시절 나의 고난이었으나, 어떤 자기소개서에도 그런 고난을 적을 수는 없었다. … 실은 그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는 것을 누구도 반가워해주지 않았다. 나는 거짓으로 아팠지만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163p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에서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찾아올 이유도 찾아갈 이유도 없는 곳을 찾아내고 싶었다. 미래가 없는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가 필요 없는 미래에서 살고 싶었다.

/ 167p


1년 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썼던 글에서 "내년에는 바빠지며 놓쳤던, 책을 읽는 시간을 다시 찾고 싶다"고 적었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살면서 그리 많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니 작년의 바람대로 올해는 독서모임 레몬딜버터를 통해 못해도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지난 독서목록을 훑다 보니 뱉은 말을 지킨 것 같아 간만에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며 잃게 되는 감정들이 점점 늘어남을 느낀다. 뿌듯함, 황홀함, 기쁨, 설렘 같은 것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인 슬픔은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건 슬픈 일일까 설레는 일일까.

올해 나의 마지막 독서는 임솔아의 <눈과 사람과 눈사람>이 되었다.

사실 책을 읽는 행위로서 몇 권을 읽었는지가 베스트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독서 모임을 위해 읽었던 책 중엔 어떤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렇다고 우리의 시간이 가치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을 힘조차 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은 지난 여름, 8월의 독서 <여름의 빌라>를 읽으며 다시 책에 위로받았던 적도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과장해 발설하지 않고 객관화하는 능력이 어른의 자질이라면, 그들은 언제부터인지도 알 수 없게 이미 어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의 객관화 역시 자기 안에 고통이 충분히 스며들어야 가능하다. 자기의 고통을 자기가 인정해주어야 가능하다. 임솔아의 인물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고통은 그들 안에 스며들지 않고 미끄러진다. … 임솔아의 인물들은 그렇게 머무를 곳을 찾으며 눈치를 보는 자신의 고통과 친해지지 못하고 불화하거나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한다. 아픔이 느껴지면 그들은 혼란스럽다. 자신의 고통이 어디까지의 타의에 의해 오염된 것인지, 또한 어디서부터 자신의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기 떄문에 그들은 그것을 믿지 못한다.

모래로 만든 눈사람, 윤이형 발문

도서 후반에 기록된 윤이형 작가의 발문처럼, 눈과 사람과 눈사람 속 임솔아가 그려낸 인물들은 고통을 마주하고 느낀다기보다 고통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처럼 불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문득 두 번째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번에 마주한 고통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다시금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궁금한 게 지금 말하는 그 건강함과 건강하지 않음의 기준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이며 고통스러워 하는 지금 이 모습이 왜 건강하지 않음의 근거가 되는 것인가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때 난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 세상의 단 하나의 방법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회피는 나쁜 것, 피하지 않고 바라보기, 그래래야 하는데 나는 무너지기만 하고 있고. 그러니 건강해졌다 믿었던 지난 시간이 다 헛수고 같았고 헛살았다로까지 이어졌었다.

하지만 임솔아의 소설은 다르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되레 타인이 더 조급하다. 피하지 않고 마주봐야 한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그들은 피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인데 말이다.

윤이형의 발문에서 그러했듯 임솔아의 인물들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며 어쩌면 그렇게 느끼지도 않는 사람들일 텐데, 그러한 인물들과 대비되는 <줄 게 있어>의 '아버지'와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의 '언니'는 사랑하는 이의 힘듦을 도와주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빨리 소화를 해서 어른이 되라며 억지로 괴괴함을 밀어 넣는 '착한 사람'"들로 느껴졌고 나는 그게 불쾌했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그 아버지와 언니가 주인공들에게 했던 행동이 지난 시간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랑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 소설집에 열여덟부터 스물다섯까지의 인물이 존재하고, 그 인물들은 여태 자신이 겪어온 것들을 함께 겪어온 동지들이었다 말한다. 어떤 날은 사랑이 뭔지 모르겠고 어떤 날은 행복이 뭔지 모르겠고 어떤 날은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는 나날들 속에서 임솔아의 소설은 그 모르겠는 것들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저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계속 있다고 생각하니 어이없게 뜬금없는 위로였다. 2022년 겨울이 눈과 사람과 눈사람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0*******n 2022.12.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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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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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고 싶지 않았다. 경망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작가가 내내 말하는 게 쉽게 아는 척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 굳은 의지와 딱딱함과 뾰족함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평소대로 쉽게 떠들고 잊는 독서가 될까 봐 읽고도 전체 리뷰를 쓰지 않았다. 그대로 둔 채 떠오르는 것만 별도로 건져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인물들이 미성숙하고 폐쇄적이라고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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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고 싶지 않았다. 경망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작가가 내내 말하는 게 쉽게 아는 척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 굳은 의지와 딱딱함과 뾰족함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평소대로 쉽게 떠들고 잊는 독서가 될까 봐 읽고도 전체 리뷰를 쓰지 않았다. 그대로 둔 채 떠오르는 것만 별도로 건져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인물들이 미성숙하고 폐쇄적이라고 넘겨짚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이십대의 감정이 거칠었고 뱉어내지 못하는 울분에 휩싸였더랬다. 인생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인기를 뒤덮는 탄생과 배경의 먹구름 앞에 숙연해지고 가슴이 아렸다. 쉽고 단순한 삶은 희박할지라도, 각자의 경우와 경험이 너무나 다름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그 사람만이 아는 고통과 자기방어와 자존심을 지키는 방식이 따로 있는 법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대체로 퉁명스럽고 까칠한 이유가 더이상 삶으로부터 상처받고 싶지 않아 치는 방어막, 즉 프레임으로 읽혔다. 세상이 에워싸고 높이 친 벽과 차단에 맞서는 파수꾼의 저항 프레임이다. ‘너희가 짜둔 각본대로 따르되 나는 알고 있어. 너희의 허술함과 이기심과 무지와 겁먹음을..’ 섬뜩한 조롱과 혼자만의 조소가 깃든다. ‘너희가 아는 척 떠들어댈수록 더 맹렬히 웃어주겠어!’ 약자의 웃음은 어딘가 맹수의 공격을 닮았다.

 

   주인공들은 세상의 부당함과 막 대함을 잘 알지만, 그것에 비위를 맞추거나 살랑대지 않는다. 타인들이 자기만족과 위선에 빠져 쓰러뜨리길 넘보는 자리에서 그녀들은 굳건히 일어선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권력 사슬에서 좀더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얼마나 더 가증스러운 가면을 쓰고 우월감에 사로잡힐지 단단히 지켜보며 그 끝을 기다린다. 기성세대는 자기 한계와 몰지각을 뉘우치기보단 네가 나빠서 그래’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너는 변하지 않아라고 주인공들을 문제아나 사회 부적응자나 아픈 아이로 낙인찍어 버린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듣기도 쉽지 않다. 그들의 말이 내 귀로 들어오는 순간 내 잣대와 관점에 따라 편집된다. 그들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쪼개진 말을 고작 나의 좁은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받아들인다. 겪어보지 않은 일은 다만 짐작일뿐이다. 조목조목 다 따져 묻고는 살아갈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밀린 집세와 병원비가 현재를 지배한다. 감정조차 사치이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일상의 과소비인 것이다. 함부로 넘보고 제멋대로 찍어보는 기성세대는 그저 무시하면 그만이다. 비정규직과 무임금의 흔들리는 삶을, 임시의 막막한 시간에 속한 적 없는 사람들이 이들의 불안과 억울함과 혐오를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 체험해보지 않는 이상 어떤 고통이나 아픔, 좌절과 지침을 섣불리 아는 체해선 안 된다. 신분 도용뿐 아니라 상황 도용이 나쁜 이유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서, 그 사람도 아니면서 함부로 떠들지 말지니.

 

   작가가 그 나잇대의 고충을 감춤 없이 드러내 고맙고 기성세대로서 미안했다. 어떤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는 그들만이 아는 씁쓸한 고통과 생활고를 공유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들에게 믿을 수 없고 지탱이 어려운 삶을 주었지만, 그들은 조금은 달라질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과 내 삶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닫힌/다친 마음을 풀어 시행착오 속에서도 다른 대안을 마련하고자 움직인다. 각자가 () 가진 것을 내주는. 어찌 보면 쉬울 듯 보이지만 자기에게 없는 것을 나눌 순 없다. 그의 소설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어떤 것을 찾아보도록 이끈다. ‘네가 그의 편에 서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야.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이제는 내 목소리가 들리니? 그렇다면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에 내딛는 걸음에 발을 함께 포개주겠니? 혼자라면 불가능한 것도 너와 내가 마음을 보태 굴리면 뭔가 세워지는 순간이 올거야.’

 

   암막커튼이 쳐진 깜깜함에서 시작해 가능성을 향한 반짝임으로 소설은 흐른다   

이달의 사락 s********d 2019.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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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후기_레몬딜버터] 12월의 책, 눈과 사람과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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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끝까지 착한 년이지." 지은은 지금껏 서른 번쯤 내게 그 말을 했다. 착한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간다고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 입장을 나는 쉽게 폐기했다. 그것으로 양보를 가장했다. 그렇게 구경꾼이 된 나는 관찰하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여 타인을 꿰뚫어보았다. 그게 내 못된 면모라고 지은은 주장했다. / 다시 하자고,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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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끝까지 착한 년이지."

지은은 지금껏 서른 번쯤 내게 그 말을 했다. 착한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간다고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 입장을 나는 쉽게 폐기했다. 그것으로 양보를 가장했다. 그렇게 구경꾼이 된 나는 관찰하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여 타인을 꿰뚫어보았다. 그게 내 못된 면모라고 지은은 주장했다.

/ 다시 하자고,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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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 "이 소설집에는 열여덟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의 인물이 존재한다. 이 인물들은 여태 내가 겪어온 것들을 함께 겪은 동지들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내 삶을 살아오느라 외면해왔던 수많은 열여덟과 스물다섯의 삶이 이 안에 있다. 독서모임을 하려고 읽은 책이었는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여력이 없다."였다. 보통 문학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은, 사실은 독서모임을 가장 집단상담 테라피에 가깝다. 작품에 나온 인물 중 누구에게서 자신을 느꼈는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은가,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에 약간의 변주를 주면 우리 모임의 왠만한 질문집은 완성된다. 다만, 이야기를 나눌 책이 달라지면 답변이 달라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최근의 나는 정말 여력이 없었다. 책 속의 소녀들 중 누군가에게 나를 대입하고 그의 입장에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는 것은 나에게 꽤 큰 체력 소모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건 그만큼 임솔아의 글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소설적이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번엔, 지은이 말하는 "끝까지 착한 년"이 되기로 한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침묵하고 눈 감는다. 그런 방식으로 어떤 이들은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 나쁜 사람이 되려는 의도 없이. 

 

 

나는 이런 "여력 없음"을 통해 얼마나 많은 상황들을 무시해왔을까? 우리네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는 총 에너지 속에서, 여력이 남아있는 자들이 여력이 없는 자에게 에너지를 나눠주면서 균형을 맞춰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도 여력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정의감에 불타고, 분노하고, 행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러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나눠주는 여력에 다시 힘을 얻어 분노하고 행동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여력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열여덟에서 스물다섯의 수많은 여성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점을 잊지는 않겠다. 언젠가 내가 나눠야 할 에너지들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라는 것을, 여력이 없는 와중에도 되뇌이며 살아가겠다. 심각한 집중력 저하와 독서 슬럼프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줄거리와 감상평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력이 생기면 다시 곱씹어 읽어보고 싶다. 

 

y****5 2022.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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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정상과 비정상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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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이후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이 소설은 총 8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소설하나하나당 소감을 얘기하고 싶지만서도 읽은지 시간이 지난후에야 리뷰를 쓰는 마당에 내용을 적기 보다는소감을 적는게 좋을꺼 같다.임솔아 작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은무질서 속의 질서같은 느낌들이 많다.때론 부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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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이후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총 8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하나하나당 소감을 얘기하고 싶지만서도 

읽은지 시간이 지난후에야 리뷰를 쓰는 마당에 내용을 적기 보다는

소감을 적는게 좋을꺼 같다.


임솔아 작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무질서 속의 질서같은 느낌들이 많다.

때론 부드러우면서도 날것의 느낌들이 강하다보니

무엇보다 그 문장의 힘은 가슴에 깊이 박힌다.


사회에서 정리해논 법칙에 대한 모순들,

그 법칙안에서 무력한 일상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을 뿐더러

권력앞에서 우리가 용기를 가져야 할 필요와

그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정상이고 싶어하는 것이 비정상이고

비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정상인 아이러니들의 모습들이 소설속에 존재한다.

이 아이러니들은 사실 별 문제 아닐 수 있어도

곱씹는 다면 굉장히 큰 사회적 오류들을 작가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오히려 정상적인 범주는 어떠한 것인지?

현세상을 살아가기엔 오히려 비정상으로 살아가야 하는것인지

자문하게 만든다.



j*****y 2020.01.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