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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대설주의보' 등을 쓰신 최승호 시인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인 게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다." 김리리 작가는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 같이 동심이 가득한 글을 씁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동화를 쓰는 것 같아요. 맑은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해, 의도적인 교훈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재주가 멋집니다. 그래서인지 김리리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오래 남습니다.
'학교' 하면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른들의 바람대로 '배움의 장터' 일까요? 그런데 배움의 장터를 강조하는 어른들도 어릴 적에는 친구들을 만나 운동장에서 뛰어 놀려는 마음에 학교에 가는 게 좋았던 게 아니었나요. 교육은 학습과 성장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외적인 것의 주입이나 내적인 것의 발현으로만 성장이 이루어 지진 않습니다. 내/외적인 것이 적절히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상호작용에는 또래와의 의사소통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너무 학습만 강조하는 현실은 사람을 잡다 못해 도깨비까지 잡을 정도라니까요~ 백 열살을 먹은 어린 도깨비 깜복이가 만난 학교는 그랬답니다.
![]() 단정하고 얌전하고, 선생님 말씀에 '네'라고 대답하는 형식적인 틀을 견디지 못하는 깜복이는 도깨비 방망이로 자신과 꼭 닮은 허깨비를 만들어 교실에 앉힙니다. 허깨비를 만들기 위해선 오랜 손때가 뭍은 물건이 필요해요. 선생님은 말을 잘 듣는 허깨비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교실이 허깨비로만 채워지면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 책은 '학교'의 인성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하였습니다. 대립적이었던 아이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깜복이는 사고로 엄마 아빠를 잃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친구들이 많은 의외로 많은 걸 알게 돼요. 편부, 편모 가정의 친구들을 만난 것이지요.
김리리 작가의 동화에서 보이는 판타지 요소는 현실에 조금의 상상을 보탠 형태에요. 예를 들면 동물들이 이야기를 한다거나 주인공이 특별한 도구나 계기로 인해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지요. 이 작가의 다른 책 '뻥이오 뻥'에서도 보면 주인공은 삼신할머니의 실수로 귀가 트여 동물들의 말까지 듣게 되는 초능력이 생깁니다. 판타지 요소는 어린이의 생활을 소재로 삼고 있는 생활 동화를 창작 동화로 탈바꿈 시켜줍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환상적이다 보면 '동화 fairy tale'로 가는 것이지요. 김리리 작가의 창작 동화는 현실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의 이야기' 위에 판타지 요소를 가미하여 리얼리티와 상상력이 균형 있게 두 축을 이루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사투리 표현이나 짧은 문장들이 책을 읽는 리듬감을 더해주고요.
주인공 깜복이는 자신을 괴롭히던 춘길이에게 도깨비 방망이로 이마에 혹을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 춘길이가 요강을 들고 깜복이에게 옵니다. 깜복이의 비밀을 알고 자신의 오랜 물건을 가지고 온 것이지요. 그리고 춘길이의 비밀도 털어 놓아요. 사실 춘길이는 편부슬하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였어요. "날 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겄냐? 사는 게 힘들고 고달파서 그리된 거지.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살살 다뤄야 헌다." 깜복이는 할머니의 말씀을 되새기고 춘길이에게 허깨비를 선물합니다. 허깨비를 대신 교실에 앉힌 춘길이와 단오, 깜복이는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외쳐요. 아이들이 이 나무 위에 올라가게 되면 어떤 말을 외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부모님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는 비밀을 친구들과 나누며 속 시원히 푸는 이 장면에서 주제가 드러납니다. 소통없는 강요만 있는 곳은 도깨비를 잡는 학교이지만 이 안에 소통과 나눔이 있으면 도깨비와 노는 학교가 되는 것이죠.
마지막 에피소드에 반전이 있어요. 말보다 그림으로 보여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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