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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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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기원이라는 장대한 제목의 책을 마주했다. 우리에게 폭력이란 것, 참 끔찍한 일이 아닐까? 개인적인 물리적인 폭력, 언어 정신적인 폭력, 집단의 폭력 우리 환경에서는 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이 폭력의 기원을 아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정말 방대한 작업이 아닐까? 그러기에 몇몇 고전을 통해 그 개념을 잡아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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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기원이라는 장대한 제목의 책을 마주했다. 우리에게 폭력이란 것, 참 끔찍한 일이 아닐까? 개인적인 물리적인 폭력, 언어 정신적인 폭력, 집단의 폭력 우리 환경에서는 폭력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이 폭력의 기원을 아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정말 방대한 작업이 아닐까? 그러기에 몇몇 고전을 통해 그 개념을 잡아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개인적인 폭력보다는 집단적인 폭력, 종교나 인종 등의 이유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가하는 폭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그 예를 그리스나 로마 등의 고전에서 집단폭력을 찾아서 그 당시를 분석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나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어쩌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가져본다. 침략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당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당하는 자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인데, 우리는 은연 중 승자의 편에 서서 역사를 보거나 읽고 있다.

 

현재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과거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잔혹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그 속에서 집단적인 폭력 증가한다. 그리고 종교가 집단간의 폭력의 승인하고 있다. 매일 종교나 집단의 폭력은 뉴스를 장식한다. 언제쯤 이런 것들이 사라질지.  

 

어쩌면 인간에게 폭력은 고유한 행동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유인원류의 일부에서 잔인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특히 침팬지의 사회에서는 집단 폭력이 빈번하다. 인간에게는 농경문화의 정착으로 인한 수렵문화와의 대립에서 빈번히 발생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을 헤로도투스의역사나 투키디테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보았을 것이다. 다행이 이 저자들은 역사를 윤리적인 반성의 형태로 설정하고 풀어나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역시 승자의 기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많은 문화재는 대부분 승자의 기념물이 아닐까? 저자는 “승자의 문화재를 공포에 사로잡혀 바라볼 뿐”로 조금 비꼰다. 어쩌면 처절한 희생이 벌어진 현장, 피맺힌 한을 지닌 장소나 건물은 파괴되어 잔해만 남기고, 그들을 착취하여 건설한 화려한 건물들만이 남아서 그들의 한을 잊지 말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고대 민주주의 모범을 보였다고 알고 있는 아테네는 잔인한 정복을 통해 많은 비극을 양산했다. 한마디로 페르시아 대신에 제국을 건설했다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그리고 익히 아는 테세우스는 영웅인가? 이런 와중에 다행스럽게 민주파 아테네와 과두파 스파르타 간의 코르키라의 내전을 통해 국제적인 인도주의법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페테스. 이 속의 제노사이드의 책임은 누구에게? <헤카베는 도덕성과 인간성 대 무자비함과 무관심을 잘 보여준다. 보통 정복자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다른 모습 과연 어떤 모습이 진실일까?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복수의 순환이 아닐까? 그 속에서 극단적인 공포와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외국의 야수이라는 시각과 세 여신의 참견 때문에 발생한 트로이 전쟁,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 흔히 발생하는 가족 분리와 피해자 집단의 반응 양심몰락, 도덕적 퇴보, 문화적 손실 등이 발생한다.

 

국가론. 테세우스의 자기숭배와 명예로운 식민지개척자,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철학자로 구성된 수호자계급이 통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속에서 유아살해도 지지하고 있다. 키케로의국가론에서 스키피오를 제노사이드 가해자로 보고 있다. 이 속의 무주지 선점론은 식민지 건설과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론의 기반을 제공한다. 그는 오로지 로마의 이익에만 염두에 두고 일을 벌이고 있다. 

 

출애굽기와 아이네이스. 고대히브리인들은 소유욕 많은 유목주의자들이다. 그리고 현대의 이스라엘과 오스트레일리아 백인들의 제노사이드는 기존 사회의 파괴를 통해 세로 들어오는 집단으로 대체, 파괴와 대처는 식민지 토착민의 제거와 압제자 자국만의 식민지 건설로 이어지는 제노사이드 과정이다.

 

아니네이스누구보다 뛰어난 민족, 역사의 전형적인 문화전달자서 자부심을 가진다. 트로이인이 로마건국하여 로마인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로마를 건국하느라 원주민들이 겪은 희생과 결과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 트로인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 속 정복, 식민지와 제국의 문제. 명예로운 식민지화가 가능할까? 로마인들은 역사인식이 부족하면 미개인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우월감을 가진다. 그래서 미개인을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를 통한 이중적 유산과 식민지화와 제국주의 사상 그리고 신성한 지위와 역사적 정당성을 통한 인간의 위계 개념, 역사적 인식이 뚜렷한 로마인이 그렇지 못한 미개인보다 우월하다고 가정, 인종주의적 사고, 식민지화, 제국건설,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지지 및 뒷받침한다. 그리고 정착물과 유목민에서 서양인들은 유목민을 업신여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뭘까 

 

명예로운 식민지 개척자. 미국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정복에서 항상 백인 대 백인과 유럽 중심의 방법론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공상적 이상주의+인종주의, 국수적 민족주의+반유태주의가 결합하여 히틀러의 학살이 벌어진다. 대부분 유럽의 나라들의 건국신화는 보편구제설, 식민지건설권,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다. <템페스트또한 명예로운 식민지건설을 주장한다. 특히 근대영국의 근거 없는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계몽주의 홀로코스트. 서양에서는 그리스적 아름다움에서 질서와 조화 그리고 인간의 가치 결정하여 왔다. 이에 계몽주의는 이성과 합리성의 개념에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 중 스피노자는 정신이 육체의 관념(반데카르트적) 정신은 개별적 육체의 관념이므로, 한계적 상황을 완전히 초월해서 모든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고 하며 육체, 상상, 애정을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성의 힘을 개발하고 인식을 증가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톨런드와 스피노자, 신과 예수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대한 생각들, 니체의 생각과 종교 등에서 비교를 통해 계몽주의 파악한다. 경험주의는 감각의 철학이 아니고, 주체가 세계에서 인식하는 것은 분명하고 개별적인 연속적 자각이다. 저자는 감성과 인식의 측면에서 계몽주의를 찬양하고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계몽주의가 과연 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간디의 사상에서 답을 찾는다. 간디의 비폭력은 생활양식, 정신과 존재의 양식, 일종의 영혼 주입, 교양, 도덕적 반성양성과 동일인 것이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스나 로마의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잘 알지 못하는 당시의 약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에 대해 현실을 알려주고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하여 현실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인식의 제고와 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 아닐까? 역사에서는 항상 승자들만의 기록으로 승리와 영웅을 필요로 하지만, 그 밑에 숨겨진 민중들의 희생과 약자들의 처참한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영원한 승리란 것은 존재하지 않다. 어딘가의 희생, 그것이 왜 일어나는 가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인류는 수 천년의 진보를 이루었지만, 아직도 이런 원시적인 집단학살이 끊이지 않다. 이런 것이 제노사이드(반복적인 현상), 과연 폭력과 집단학살이 인류의 본능이라면 이런 본능에서도 벗어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발전하는 것이 단지 생활의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니, 독보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주로 진출하는 지금 인간성 또한 과거의 잘못을 딛고 일어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의 역사보다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를 잘 알고, 그리스나 로마 편을 들고, 이스라엘이나 미국 편을 드는가 한번 더 생각해보기를.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자극하여 맹렬한 저항을 이끌어낸 다음, 서방세계에 자신들이야말로 팔레스타인에게 공격받는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우리는 너무 단편적인 역사에 대한 배움과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가 반성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런 반성은 단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일본이나 중국의 지배 속에서 힘겹게 산 역사가 있지 않는가? 일본이나 중국을 뭐라고 하지만, 베트남 등에 대한 사고도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결코 베트남 등지에서 한 우리의 행동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라는 것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지금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역사해석에서 다면적으로 보아야 하지 한 쪽 면을 강조하는 역사서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과 바로보기에 관하여.



p*******t 2012.10.03. 신고 공감 16 댓글 120
리뷰 총점 종이책
폭력은 번식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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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동안 눈에 가장 많이 띄었던 단어는 제노사이드다. 막연히 집단학살이라고만 추측할 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내게 이 책은 제노사이드에 대한 지식을 한꺼번에 몰아서 부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이 기본으로 삼는 텍스트는 폴란드계 유대인이며 미국의 법학자이고 역사가인 라파엘 렘킨(1900~1959)의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 』이고 그외 그의 저작들을 탐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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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 해 동안 눈에 가장 많이 띄었던 단어는 제노사이드다. 막연히 집단학살이라고만 추측할 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내게 이 책은 제노사이드에 대한 지식을 한꺼번에 몰아서 부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이 기본으로 삼는 텍스트는 폴란드계 유대인이며 미국의 법학자이고 역사가인 라파엘 렘킨(1900~1959)의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 』이고 그외 그의 저작들을 탐구하면서 도달한 결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있는 유대인 역사협회에서 발견한 “제노사이드 사건들의 개정 개요”에 나오는 범주를 활용, 세분화함으로써 이것을 이 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는 렘킨이 1944년에 발표한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 』에서 처음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렘킨이 정의한 제노사이드는 “한 집단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아래 자행되는 여러 가지 행동”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는데 렘킨 이후의 학자들은 이 범위를 축소해서 “정부가 주도하는 대량 살인”에 한정해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제노사이드는 인간집단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와 동행한다고 보고 있다. 홀로코스트이후 깜짝 놀란 인류는 이런 커다란 제노사이드는 앞으로의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집단학살을 보면서 인류의 역사가 제노사이드와 동행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없게 되었다.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있는 간디의 비폭력이다. 오랫동안 제노사이드와 문학을 따로 연구해왔던 저자는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제노사이드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손실을 가져왔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미래의 폭력을 조금이나마 예방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렘킨의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 』가 1948년 유엔의 제노사이드 범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승인을 유도한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미래의 불행한 폭력을 막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사회가 안정적이지 못할수록 법이 무겁게 적용되는 것처럼 고대로 올라갈수록 제노사이드는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정복자들은 피정복자의 항복에 상관없이 그들을 몰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생각했다. 헤로도트스의 『역사 』에서는 그리스가 리비아를 정복 대상으로 삼았고, 그 후 리비아인들에게 닥쳐온 결과는 대량 학살 뿐, 다른 선택은 없었다. 투기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에서도 아테나가 멜로스를 정복했을 때 보여준 것은 한 치의 관용도 남아있지 않은 멜로스인들에 대한 학살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수많은 문학작품에서도 제노사이드가 존재하고 있다. 스파르타 메델라오스 왕의 부인인 헬레네 왕비를 납치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로 인해 시작된 10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은 결국 목마를 트로이로 잠입하는데 성공한 그리스와 스파르트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복수에 복수를 더해 서로가 제노사이드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아가멤논 』,『헤카베 』,『트로이의 여인들 』을 통해 복수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잘못된 일에 과감한 복수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은 그 복수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 속성에는 그 칼날이 상대에게 닿는 순간 이미 또다른 복수를 낳아버린다는 걸 인류가 알고 있었더라면 제노사이드와 동행이라는 폭력의 역사는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5장에서 위험하면서도 흥미로운 서사 두 가지를 내어 놓았다. 『구약성서 』의 한 부분인 <출애굽기>와 멸망한 도시에서 탈출한 트로이인들의 이야기인 『아니네이스 』를 통해 과거에 당한 고통의 경험으로 나중에 저지르는 폭력 행위를 정당화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 당한 고통을 다른 민족에게 똑같이 되돌려줌으로써 자신들의 고난이 끝났다고 믿는 행위이다.


<출애굽기>와『아니네이스 』에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채 박해와 파괴의 희생자로 떠다니는 사람들의 고통이 있다. 애굽을 빠져나온 히브리인들은 신이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나안에 살고 있는 토착민들을 학살하고 그 땅을 자신들이 차지함으로써 신의 뜻을 이루었다는 선민의식을 가진다. 트로이에서 빠져나온 트로이인들은 이탈리아 땅에 도착해서 그 곳에 사는 정착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정복자로서 고난의 끝에 닿는다. 즉 트로이인들은 이탈리아를 침략해서 정복함으로써 로마를 건국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서구의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데 활용되었다.


로마의 제국주의를 찬양한 문학 작품들이 미래 유럽의 식민지화에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저자는 내놓았다. 타키투스는 『아그리콜라 전기 』나 『게르마니아 』같은 작품을 통해 로마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며 미화시켰다. 아그리콜라는 저작자 타키투스의 양아버지이며 브리튼의 로마 총독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의 성공적인 식민지 통치에 대한 찬양과 로마의 영광을 축하하는 한 편, 이 로마 제국주의를 번영시키기 위해 벌어지는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게르마니아 』에서는 게르만인의 내부 분쟁으로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간 브룩테리 전투에 대해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선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두 경우는 토착민의 문화와 생활 세계에 가해진 제노사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학 작품을 통해 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보다 정당성을 얻으며 뻗어나갔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반복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그 자신이 다시 피해자가 되리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백일 만에 백만 명이 학살 당 한 르완다 내전을 기억하는 한  두 번 다시 이런 학살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지구촌 어디에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이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문명의 기록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은 없다”라는 발터 베냐민의 말은 이 책에 가장 적합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순환되는 것이므로 폭력에 무저항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의도에도 공감이 간다.  그렇다면 누가 이 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과거의 피해자보다는 지금 현재 가진 자의 손에서부터 거둬들여야 할 것이라 믿는다.




t******e 2012.10.03. 신고 공감 10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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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를 중심으로 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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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 만행은 전대미문의 대량학살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크고 작은 폭력은피해자들에게는 회복하기 힘든 상흔을 남기고 치유하기 힘든 아픔을 줬다. 우리나라 역시 지정학적 위치로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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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 만행은 전대미문의 대량학살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크고 작은 폭력은피해자들에게는 회복하기 힘든 상흔을 남기고 치유하기 힘든 아픔을 줬다. 우리나라 역시 지정학적 위치로 이민족의 외침을 숱하게 받은 피해 국가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시대의 현안이 남아 있다. 21세기에 들어 세계는 표면적으로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공존과 상생의 노력을 보이는 듯하나 이면적으로는 패권을 장악한 소수의 나라에 의해 문화적, 물질적 지배를 받으며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는 영속적인 번영을 꾀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나라는 소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 구조의 심화는 또 다른 폭력을 초래하여 사상 초유의 테러, 폭력으로 대 참화를 불러 왔다.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은 예전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폭력은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하는 존 도커 교수의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은 영장류 동물학, 진화론, 성경의 출애굽기를 비롯해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등의 저작물을 탐구하여 폭력의 기원을 분석해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특정집단을 완전히 없앨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집단 학살하는 행위를 일컫는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역사가 라파엘 렘킨의 견해를 인용하여 폭력의 기원을 고찰하고 있다. 인간 집단이 상대 집단을 다루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제노사이드는 세계 전역에서 침략, 식민지화, 영토 확장을 단행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고 봤다. 수렵•채집에서 농경 사회로 변화하며 평등주의 양식이 무너지고, 저장한 식량을 누가 통제할 것인지의 문제로 계급분화가 진행되었다. 잔학 행위를 한 집단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자행되는 점을 들어 무자비한 폭력인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려면 새로운 국제법이 필요하다고 렘킨은 주장했고, 뒤이어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노사이드는 승리한 자들이 패배한 도시를 식민지로 삼아 고대 시대의 전쟁, 제국 확장, 식민지 건설 , 정적을 살해하는 재전 등에서 성하게 일어났다. 인간 집단이 상대 집단을 다루는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페리클레스는 그리스 아테네가 다른 도시의 모범으로 추앙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공유하길 바라며 페르시아를 대신해 제국을 건성하려는 야욕을 이뤄갔다.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에서 아가멤논은 트로이의 장벽을 잿더미로 만들고 트로이의 백성을 자신의 칼 아래 굴복시키는 일을 불멸의 신들이 지지해 준 결과라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일 때 아테네는 멜로스로 쳐들어가 입대 가능한 남자들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노예로 삼아 고통의 심연 속으로 몰고 갔음을 알 수 있다. 트로이의 참사는 종교적 성지, 예술작품 등을 파괴하고 문화적 지도력을 말살한 문화적 제노사이드의 기술에 부합한다.

 

 

  권위적인 국가를 추천한 플라톤과는 달리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인간이 제국을 건설하고 소유하는데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여러 견해를 제시하며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다성적이고 대위법적인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대체신학자로 등장하는 스키피오는 유토피아적 정신을 발휘하며 국민을 통치하교 교육하는 기술을 통해 신기로움을 발현했다. 고대 히브리인은 안정적인 농경사회를 침략하여 가나안 땅을 차지함으로써 포획자로이자 승리자로 자리하며 제노사이드를 감행했다. 식민지 토착민의 제기와 압제자 자국민의 식민지 건설로 이어지는 제노사이드 과정은 압제자의 민족양식이 살아남은 원주민에게 강요되는 형식은 <<사사기>>의 내용과도 일치함을 보여 준다. 파괴된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이스와 트로이 인들은 여행을 떠나 다른 장소에 정착하고 제국을 건설하면서 문화, 지식, 법을 전파하며 문명은 이동을 계속해 왔다.

 

 

  근대성과 홀로코스트를 탄생시킨 서양의 문명화 과정에 계몽주의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며 바우만은 18세기의 주요 문화적 동향은 인종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데 착안하여 유토피아적 이상을 상상해 왔다고 보았다. 제노사이드를 국제적으로 막기 위해 제정한 국제법이 유럽의 힘 있고 영향력이 강한 국가들이 동의한 원칙으로 모순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열강들 사이에서의 정복, 식민지화, 전쟁을 조정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여겨졌을 정도라니 진정한 의미의 비폭력 정신의 ‘간디즘’을 실현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n*****9 2012.10.28. 신고 공감 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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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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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는 전반적으로 <출애굽기>의 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정복되고 찬탈될 약속의 땅에 이미 거주하는 가나안족을 타도하거나 심지어 몰살하겠다는 전제로 한 민족에게 자유를 불어넣는 비전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노사이드(genocide)를 설명하며 쓴 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후반부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한다. 「니체의 생각을 예견한 듯한 흄의 기록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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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드 사이드는 전반적으로 <출애굽기>의 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정복되고 찬탈될 약속의 땅에 이미 거주하는 가나안족을 타도하거나 심지어 몰살하겠다는 전제로 한 민족에게 자유를 불어넣는 비전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노사이드(genocide)를 설명하며 쓴 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후반부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한다. 「니체의 생각을 예견한 듯한 흄의 기록에 따르면, 일신교의 하느님 같은 신이 인간보다 무한히 우월하게 묘사될 때 인간의 정신은 비굴한 복종, 굴욕, 치욕, 속죄, 소극적 고통, 비겁, 맹목적 복종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이 문장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최근 히친스의 종교와 신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서라기보다도, 의인화된 일신론에 대한 의혹과 정신이 육체의 관념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근히 계몽주의와도 끈이 이어지는데, 바우만에 의하면 계몽주의는 근대성을 위해 이성을 창조했고 이 이성은 확실성, 철저한 지식, 범주화, 분류화에 집착했고 도구적이었으며 메시아적이고 유토피아적이었다. 물론 반드시 메시아적이고 유토피아적이라고 말하기엔 계몽주의가 지니는 풍부함과 다양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런 생각들이 만연하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계몽주의 철학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관심, 세계주의 (...) 감탄스러운 것은 실제로 식민주의, 제국, 절대 통치권과 관련된 인종 사상과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 모든 민족이 평등하지 않다는 개념이 제기될 때마다, 심지어 식민지화를 추진하는 사회에서 이런 개념을 품을 때마다 언제나 제노사이드를 자행하려는 욕심이 생기거나 이를 실행하곤 한다.(p.308-309) 어떤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대체할 역사적 권리가 있으며 제노사이드를 통해 다른 인간 집단을 파멸시켜도 좋다고 인식하는 믿음, 이런 믿음과 시도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끝에서 저자가 다소 (내가 보기에) 이상주의적인 문장을 곁들여놓긴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이런 문장을 써놓았다. 「그러나 어쩌면 역사에는 폭력을 끝내고 싶은 심오하고 지속적인 욕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은 주어가 ‘역사’인지 ‘인간’인지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동어반복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주로 제노사이드를 다루고 있지만 이와는 다른 형태의 이야기가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가 그것이다. ‘순환하(되)는 폭력’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만큼 끔찍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u******o 2012.10.02.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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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제노사이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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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이 이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가해자가 되고 있고, 르완다 내전에서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끝없는 증오와 복수의 학살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노사이드'라는 것이 일회적이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니며 인간의 역사가 곧 폭력과 제노사이드의 기록이라는 렘킨의 선언은 인류에 대한 냉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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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이 이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가해자가 되고 있고, 르완다 내전에서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끝없는 증오와 복수의 학살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제노사이드'라는 것이 일회적이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니며 인간의 역사가 곧 폭력과 제노사이드의 기록이라는 렘킨의 선언은 인류에 대한 냉철한 통찰임을 알 수 있다. 제인 구달의 연구에서 곰베의 침팬지들은 한 집단에 속한 침팬지들끼리는 다정하게 지내며 서로를 배려하지만 다른 집단의 침팬지들에게는 난폭하게 공격을 퍼붓는 것을 보면서 생활권을 지키기 위해 이웃집단을 공격하고 '집단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단내의 다른 구성원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본성이 발전했다고 보았다. 집단폭력은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집단의 본성으로 인류의 역사에서도 고대의 영토정복전쟁과 근대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복전쟁등을 통해 한 집단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끝없이 이어져 왔고 다양한 신화와 고전에 그 이미지가 형상화되고 반복되어 왔다.

 

   아테네는 칭송받는 민주주의 국가지만 그들의 속국에는 자유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아테네는 뛰어난 군사력을 앞세워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자 한 멜로스를 포위해서 모든 남자들을 처형했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다. 《아가멤논》, 《헤카베》, 《안드로마케》, 《트로이의 여인들》같은 그리스 고전 비극에서 그리스원정군은 트로이를 완전히 멸망시켰고, 트로이의 후예인 《아이네이스》는 라틴족과의 전쟁으로 이탈리아에 로마를 건설했다. 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이집트 노예로서 피해자의 삶을 살았던 히브리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하고 가나안인들을 학살했듯이 현대의 이스라엘이 또다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제노사이드의 가해자가 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인간속에 있는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의 본성인 집단폭력을 근절하려면 비폭력적인 생활방식과 도덕적 존재양식이 자리잡아야 할텐데 간디의 비폭력주의외에는 역사에서 비폭력에 대한 전통이 일천하므로 이러한 사상적 전통과 대안적 생활양식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던 렘킨은 법학자로서 제노사이드를 저지하기 위해 1948년 유엔총회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실천력을 발휘했다.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도 "정복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을 허용하지 않고 인종 청소를 반인륜적인 범죄로 판단하며 어린이를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고 로마규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계곳곳에서 아직도 집단폭력이 자행되고 있고 국제법이 강대국들의 뜻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 힘이 강하다고 폭력을 쓰기 좋아하는 자들은 트로이 프리아모스왕의 아내이자 전사 헥토르의 어머니였던 헤카베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보라.

 

 

힘이 있다고 해서 옳지 않은 일에 힘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운이 좋다고 해서 행운의 여신이 언제나 자기 편이라 믿어서도 안돼요. 나도 한때는 운이 좋았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잖아요. 하루아침에 행복과 풍요로움, 그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지요. 그러니 내게 자비를 베푸세요. 부디 불쌍히 여겨 동정하세요.
99쪽, 에우리피데스《헤카베》

 

 

 

 




y***d 2012.10.04.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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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근절된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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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희 학교의 제가 속한 부서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조금 시끄러운 상태입니다. 친구들끼리 놀다 갑자기 욱해서 싸운 정도가 아니라 순전히 악의로 가득찬 폭력이었기에 향후 조치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피해학생의 심리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상당히 무거운 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해 학생의 집안 환경이나 성장에 대해 조금 들은 바가 있는 저는, 가해학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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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희 학교의 제가 속한 부서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조금 시끄러운 상태입니다. 친구들끼리 놀다 갑자기 욱해서 싸운 정도가 아니라 순전히 악의로 가득찬 폭력이었기에 향후 조치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피해학생의 심리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상당히 무거운 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해 학생의 집안 환경이나 성장에 대해 조금 들은 바가 있는 저는, 가해학생의 미래도 걱정이 됩니다. 물론 폭력은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이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흑백으로만 나눌 수 있는 단순한 세상은 아니잖아요. 한 번 욱하면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분노를 발산하곤 하는 10대 아이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 실생활과 매스컴에서 보여지는 폭력의 근원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여름을 달구었던 소설 중에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까지 '제노사이드'라는 말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상태였어요. 이 책은 그런 '제노사이드'의 어원을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국가, 민족, 인종 또는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자행하는 모든 행위를 지칭합니다. 살인은 물론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상해를 가하는 행위, 집단의 생활 조건에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 특정 집단의 출산을 막으려는 의도로 정책을 강요하는 행위,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아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행위도 제노사이드에 포함됩니다. 제노사이드라 지칭되는 모든 행위가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저는 특정 집단의 출산을 막으려는 정책이나 아이들을 강제로 이주시킨다는 행위가 가장 극악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그 모든 행위의 최대 피해자로 우리는 유대인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그런 제노사이드를 침팬지와 우리의 농경사회 시작으로부터 설명합니다. '고전으로 읽는' 이라는 수시어가 붙어 있어서 문학 작품 속 폭력의 모습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는 책이라 생각했으나 그보다는 조금 더 오래된 고전들로 폭력의 모습들을 보여주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그린 고대 그리스의 제노사이드,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과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가 그리는 제노사이드, 프라톤과 키케로의 [국가론]과 출애굽기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조금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내용이 절대 쉽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사회학과 분야에 어울리는 전공서적처럼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번역본이라는 점도 있지만 원본 자체의 내용이 간단하지 않은 탓도 있겠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마음. 그 중에서도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한 존재를 말살시키고 싶어하는 심리에 대한 해답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은 아닌가, 암울한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어려운 문제 같아요. 에휴. 모두가 온화한 마음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은 상상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계속계속 꿈꿔보고 싶습니다. 



y********j 2012.09.28.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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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존 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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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폭력과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폭력의 기원을 찾는 문제는 인간의 본질, 역사의 본질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자인 존 도커는 인류역사 속에서 ‘제노사이드’를 연구했습니다. 라파엘 렘킨(R. Lemkin)의 정의(定義)에 따르면, ‘제노사이드’란 “한 집단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자행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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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폭력과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폭력의 기원을 찾는 문제는 인간의 본질, 역사의 본질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자인 존 도커는 인류역사 속에서 ‘제노사이드’를 연구했습니다. 라파엘 렘킨(R. Lemkin)의 정의(定義)에 따르면, ‘제노사이드’란 “한 집단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자행되는 여러 가지 행동”(p. 37)을 뜻합니다. 이런 폭력과 제노사이드는 인류 역사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고유 특성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영장류인 침팬지 사회에서도 제노사이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폭력성을 잠재우고 좋은 방향으로 진보했습니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고대 그리스의 끔찍한 전쟁의 역사 속에서, 플라톤과 키케로의 <국가론>에서, 성경의 <출애굽기> <여호수아> <사사기>에서, 로마 제국주의 역사에서, 근대 식민지개척의 역사에서, 그리고 홀로코스트(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할 유대인 대학살)에서, 아니 인류 역사 내내 폭력과 제노사이드는 항상 발생한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폭력과 제노사이드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기원한 것이 분명합니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폭력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성은 종교에 의해 정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체신학, 피해자학, 선민의식 등으로 정당화되곤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구속, 박해, 고통을 경험했는데,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 가나안 땅에 가서 자신들이 경험한 그대로 폭력, 정복, 파괴행위를 일삼고 그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임으로 정당화시켰습니다. 이 폭력적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하고 그 땅에서 몰아내려 합니다. 오늘날, 중국이 동북아공정을 통해 소수민족의 역사를 말살하고 소수민족을 박해하는 일들, 여러 나라들이 영토를 놓고 분쟁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종족 분쟁과 말살 정책, 기독교인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증오와 테러, 무슬림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박해, 등 지금도 인류 역사는 폭력과 제노사이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아! 과연 인류는 폭력과 제노사이드로 점철된 슬픈 역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저자는 마무리 글에서 이런 희망을 제시합니다. 간디의 비폭력 개념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디가 말하는 비폭력은 생활방식, 정신과 존재의 양식, 일종의 영혼 주입, 교약, 도덕적 반성 양식과 동일”(p. 311)하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인류 역사는 폭력을 끝내고 싶은 심오하고 지속적인 욕구”(p. 313)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폭력의 본성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인간 스스로가 삶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 인류 역사와 미래에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 큰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l******y 2012.09.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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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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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언제부터 존재해왔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치고 박고 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옆 집에서 술을 먹은 사내가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치고 폭력을 쓰기도 하는 그런 일에서부터 경찰서에 들락날락하게 되는 경범죄까지..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범죄도 범죄이지만, 더 큰 것은 국가간의 범죄이다. 이것은 누가 얼마만큼 잘 못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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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언제부터 존재해왔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치고 박고 하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옆 집에서 술을 먹은 사내가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치고 폭력을 쓰기도 하는 그런 일에서부터 경찰서에 들락날락하게 되는 경범죄까지..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범죄도 범죄이지만, 더 큰 것은 국가간의 범죄이다. 이것은 누가 얼마만큼 잘 못 했다고 콕 집어 이야기 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기 힘들었었다. 국가간의 범죄는 복수를 부르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잘못, 니가 이만큼 잘 못 , 결국 더 잘 못 한 사람은 누군가? 를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은 폭력을 뜻하지만 개인의 폭력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집단이 만들어 졌을 때 부터 일어났던 반복적인 형태라고 저자는 이 개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2단계로 일어나는데, 피를 흘리고 죽고 죽이는 전쟁 상황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전쟁은 수많은 폭력 중의 하나일 뿐이며 사실 억압당하는 집단의 국가 형태가 무너지고 압제자의 국가형태로 점령지를 바꾸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어디서 많이 들은 정의가 아닌가. 우리가 일본에게 당했던 수모도 바로 제노사이드라고 할 수 있으며, 마땅히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빌어야 하는 일본이 국제법도 무시한 채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세월동안 있어온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많은 고전들을 통해 고대 국가에서 어떻게 제노사이드가 있어왔는지 말해주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그리스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투키디데스의 전생사라든지 시칠리아를 점령했던 아테네의 이야기 등을 들어볼 수 있다. 문학작품 외에도, 제인구달이 말했던 침팬지 사회에서의 제노사이드 등 여러 분야에서 폭력이 어떻게 있어왔는지 폭넓게 알 수 있다. 저자는 인간도 농경사회부터 제노사이드가 있어왔을 것이며, 수많은 개념으로 이 폭력성이 발현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가 설명해주는 개념은 좀 어려운 것들도 많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독교의 선민사상이라든지, 약속의 땅이라는 개념, 그리고 일본이 말했던 문화 전달자로서 내가 너희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식민지화를 합리화 시키는 과정 등 비교적 쉽게 어려운 개념들을 풀어 쓰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c*****1 2012.09.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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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폭력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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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제노사이드로 물든 폭력의 역사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러한 역사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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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제노사이드로 물든 폭력의 역사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러한 역사를 실제적으로 경험했고, 중국 동북쪽 변경지역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인 동북공정 같은 새로운 문화 탄압을 경험하고 있다.

계속...

YES마니아 : 골드 f****1 2012.10.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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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폭력을 들여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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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인류의 역사를 폭력의 역사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제노사이드로 물든 폭력의 역사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 왔다.(p.20)"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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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인류의 역사를 폭력의 역사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제노사이드로 물든 폭력의 역사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 왔다.(p.20)"고 말한다.

 

저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제노사이드 연구 분야에 직접 참여하면서, 특히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의 법학자이자 역사가인 라파엘 렘킨의 저작들을 탐구하면서 도달한 결론임을 서두에 밝히고 있다. 렘킨이 펴낸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에서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으며, 살해 사건이 개인 간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듯, '제노사이드는 인간 집단이 상대 집단을 다루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렘킨의 주장을 중심으로 인류사에 나타난 폭력에 관해 살펴보았다. 제노사이드를 제지하고 방지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국제법이 필요하다고 주창한 라파엘 렘킨은 유엔 총회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냈으며 이 책에서 렘킨의 주장과 그의 저서들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저자인 존 도커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왜 집단 폭력이 존재하며 지금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 폭력과 제노사이드 그리고 그에 대한 문제점들을 살펴 보았다. 존 도커는 개인 간의 사적인 폭력이 아니라 집단 간의 폭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신체적 폭력을 비롯해 언어와 문화, 생각, 관념, 개념, 서사, 이미지 등에 내재한 폭력을 포함한 집단 간의 폭력을 다루는 이 책에서 저자는 영장류동물학, 진화론, 세계 역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수렵·채집인 사회가 농경·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가운데 나타난 정착형 식민주의 현상과 제노사이드의 관계를 탐구하며, 농경사회의 폐해를 지적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살펴보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진보적인 역사관을 뒤집는 새로운 접근법과 관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고대와 고전 시대의 서아시아와 지중해 지역에서 창조된 텍스트를 특히 성경의 <출애굽기> .<여호수아서>,<사사기>에는 전혀 의외로 신의 명령에 따라 이미 거주하는 가나안족을 몰살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권위적인 국가를 추천한 플라톤의 국가론과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키케로의 국가론을 비롯하여 식민지화로 인한 파괴와 비폭력성을 강조한 제노사이드 문학의 고전인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잘 알려진 고전들에서도역사 곳곳에서 자행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 타키투스의 저작물 뿐 아니라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저자를 따다 왔다면 스피노자, 톨런드를 비롯한 흄, 리오타르 등 근대성을 위해 이성을 창조한 계몽주의자들의 주장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연구 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언급된 방대한 분량의 저서들뿐 아니라 설득력 있는 저자의 주장이 단연 돋보인다. 홀로코스트가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근대생활의 구조와 논리에서 비롯됐다는 점. 특히 그 같은 폭력이 ‘근대 관료주의의 최고 업적’이란 대목에와서는 폭력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책은 전반적으로 수많은 개념, 관념, 제노사이드, 대체신학, 피해자학, 선민, 약속의 땅, 문화전달자, 명예로운 식민지화 등의 용어를 활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집단 폭력을 탐구했다.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왔다. 홀로코스트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등지에서 발생항 제노사이드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토착민들에게 가한 제노사이드,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제의 민족, 문화의 말살을 경험했으며,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21세기형 문화 탄압을 경험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책은 어떻게 하면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계 역사의 형성을 돕는 향상된 역사의식의 일환으로서 비폭력 정신과 같은 대안적 전통을 계속 생각해내자”는 존워커의 말이 답이 될 수 있을까. 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오해와 편견, 소외가 부르는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집단내의 폭력부터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겠다. 역사 속에 폭력이 이어져 왔다지만 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

k******2 2012.09.23.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