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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따라 읽는 한시집이다. 옛사람들의 삶은 사시사철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 책은 계절의 미학과 절기에 따른 음식의 풍미까지 체험할 수 있는 그런 한시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현 송영방 선생의 그림들이 한시의 풍격을 한층 멋스럽게 한다.
봄날의 풍경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나물 캐는 아낙[菜女]과 나무하는 사내다. 시인은 산골이나 들판에서 나물 캐는 봄처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19세기 문인 이학규는 <잡다한 일을 두고서>에서 "나무하는 아이는 입으로 풀피리 불며 가고/ 나물 캐는 아낙은 머리에 꽃을 꽂고 돌아오네."라고 했고, 18세기 문인 이하곤은 <대낮에 양산에서 쉬면서> 에서 "골짜기에 드니 나무뚠의 어사용 들려오고/ 개울 따라 나물 캐고 아낙이 돌아오누나."라고 노래했다. 이승소는 <양번으로 가는 길에 나물 캐는 처자를 보고> 에서 "나물 캐는 계집아이 노랫가락 퍼지는데/ 꽃에 노니는 나비가 함께 나풀나풀거리네."라고 했다. 시골 아낙이 즐겨 캐는 봄나물의 대표주자는 냉이와 쑥, 씀바귀 등이다. 그러나 이런 전원의 낭만적인 풍경이 마냥 좋을 리만은 없다. 관찰자의 눈에는 낭만일지 모르지만, 나물 캐는 아낙에게는 생존을 위한 고달픈 노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8세기 문인 조귀명은 사대부의 이런 전원벽을 이렇게 비판한다.
"공경대부 집안의 벽에는 대부분 산간의 촌락이나 들판의 별장에 은둔하면서 고기 잡고 나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어놓고 있다. 눈으로 보면 즐겁지만 직접 살아보면 근심스러운 법이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193쪽)
여름날의 풍광에는 소나기와 낮잠, 보리밥과 막걸리, 장미와 연꽃과 파초, 백일홍(자미화), 국수와 냉면, 참외와 수박 등이 등장한다. 시인들은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를 노래했다. 조선 중기의 문인 김수항은 "구름이 갑자기 앞산의 비를 몰아와서/ 시인에게 분에 넘치는 시원함을 더해주네."라고 했고, 이수광은 "통쾌한 비가 더위를 씻어주니/ 정자의 낮잠은 정말 달콤하다네."라고 했다.
농활의 경험이 있는 이라면 땀방울을 닦아가며 보리밥과 함께 먹는 막걸리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도 그러했다. 이산해는 "보리밥에 신 막걸리가 나그네 시름 위로하네."라고 했다. 17세기 문인 고용후도 「'장맛비에 빈 숲에 연기가 피어나지 않네'라는 시에 차운하다」에서 보리밥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충분한 인생이라 하였다.
제비 새끼 지지배배 여름날이 긴데 농부는 비 맞으며 묵정밭에서 김을 매네. 초라한 농가는 좁은 밭뙈기를 부쳐 먹고 버들 늘어선 골목에는 때때로 꾀꼬리 우네. 개울 앞에 대를 마구 꽂아 울타리 엮고 아욱을 따와서 새로 보리밥 지었네. 막사발 술 익자 친한 벗이 찾아오니 술 취해 육신을 잊고 꼭 이렇게 살아가리라. 장미와 연화, 파초와 백일홍은 여름의 꽃이다. 성현은 "상쾌한 기운이 발에 가득해 막 잠에서 깨니/ 온 뜰에 내린 가랑비에 장미가 젖어 있네."라고 했고, 서거정은 연잎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부어 마시는 운치를 즐겼으며, 서유구는 병마까지 더한 무더위를 파초에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로 치유하였다.
장미꽃은 고운 벗 가우(佳友)라 불렸고, 꽃 중의 군자인 연꽃은 맑은 벗 정우(淨友)라 불렸다. 서거정은 연꽃을 사랑하여 '정정정'이라는 정자를 지었고, 이황은 도산서원 동쪽 구석에 조그만 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했다. 그런데 옛글에서 장미의 정체는 모호하다. 오늘날은 서양에서 들어온 빨간 장미가 많지만 옛날에는 대부분 노란색 장미가 많았다. 더군다나 조선에서는 장미와 해당화가 혼동되었다. 조선에서 매괴화는 장미가 아닌 해당화를 가리키고, 들장미는 찔레꽃을 가리킨다. 소한 이후 입하까지 5일에 한번씩 24가지 꽃을 피우는 바람이 차례로 부는데 이를 화신풍(花信風)이라 불렀다. 화신풍이 부는 차례를 따르면, 장미는 살구꽃과 복사꽃 다음이고, 해당화와 배꽃보다는 앞서 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서울에서 봄이면 진달래와 배꽃으로 꽃지짐을 해먹었고, 여름에는 장미꽃으로 꽃지짐을 부쳤다 한다. 한편, 연꽃은 여름날 운치있는 피서음의 술잔으로 애용되곤 했으니, 큰 연잎을 이용한 술잔을 벽통배라 하고, 그렇게 마시는 술을 벽통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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