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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이나 유고시집은 되도록 구입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시집도 배영옥 시인의 유고시집이다. 겨우 두번째 시집을 묶었는데 유고시집이라니, 안타깝다. 슬픈 시집이지만 외로움과 상실의 탑 안에 스스로 묶이고 갇힌 사람들을 위로한다.
태어나면 우리는 얻는 것이 많을까?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을까? 편안한 엄마 자궁안에서 낯선 세상으로 툭 던져진 우리 인생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슬픔일까? 기쁨일까? 세상 사람들의 총합을 평균해본다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슬픔의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이 시집은 슬픔의 노를 저어간다. 사랑해서 슬프고, 사랑받아서 슬프고, 남겨져서 슬프다. 결국은 그 사랑을 두고 먼저 떠날 것이기에 슬프다.
나의 미소가 한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의 여생이 바뀌었다 백날을 함께 살고 백날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가슴속에 품고 있던 공기마저 온기를 잃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로 내 몸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세상을 펼쳐보기도 전에 아뿔싸, 나는 벌써 죄인이구나 한 사람에게 남겨줄 건 상처뿐인데 어쩌랴 한사코 막무가내인 저 사람을 ······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사심도 없고, 의심도 의혹도 없이, 아픈 마음을 이곳 저곳에 넣어버린 말갛고 무서운 너와 나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네가 말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미인 네가 말간 눈동자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정말 아무 사심이 없는 눈동자였다. 나도 너처럼 의심도 의혹도 없는 눈동자를 갖고 싶었다 네가 머물고 있는 그곳이 어디인지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바다를 건너고 있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이제 그만'은 뭔가를 열심히 했을 때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궁구했을 때 하는 말, 나도 너처럼 열심히 사는 자의 아우라를 가지고 싶다 나도 너처럼 아이 키우는 어미의 마음을 잠시 이곳과 저곳에 간편하게 보관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우리의 사월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겠니
읽는 내내 울컥하다. 어딘가에 보관해놓고 까맣게 잊었던 마음을 시인은 내게 내보인다. 아프고 슬픈 이들을 내내 위로해주고 상실을 끝까지 애도하는 그들의 노래에 이제서야 뉘우친들 이미 문을 닫고 뒤돌아서버린 마음이다. 이미 늦은 사람이다. 그래도, 그래도, 하지만, 하지만 시를 읽는 이유이다.
-늦게 온 사람-
눈앞에 문이 있어도 당신은 문을 보지 못한다
내가 당신의 방패가 되어주었다면 내가 당신을 안아줄 수 있었다면 문밖에서 함부로 문을 닫지 않았을 텐데
문 안에서 그리워하는 사람은 안팎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사람
그리하여 한번 늦은 사람은 영원히 늦은 사람
눈앞에 문이 있어도 당신은 문을 보지 못한다
당신은 한참이나 늦어버린 사람 이미 늦은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