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에 살고 소문에 죽는 게 인간쓰레기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허위 날조된 소문을 퍼뜨리는 와중에라야만 처참한 제 현실을 잊고 무슨 주류에나 가담(일생을 두고 결코 불가능할)한 양 미친 자기 기만이 가능하다. 하다못해 어떤 미치고 늙은 쓰레기는, 몇 푼 되지도 않는 공과금 납부를 회피하는 게 페미니즘의 완수인 양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를 떠들기도 한다. 이런 쓰레기는 페미니즘 진영에서조차 홀대와 배척을 받는(일생 자체가 왕따와 배제의 연속, 관계의 실패) 게 마땅하며(아니, 애초에 그 문턱까지 가지도 못함. 누가 저런 걸 끼워 주겠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대체 개인의 미숙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쳐진 인생이 어느 이데올로기로부터 구제와 옹호가 가능하겠는가 이 말이다.
말은 어디서 주워들은 번지르르한 서푼짜리 미사여구(그야말로 쌍팔년도에나 통하던)를 늘어놓아도, 정작 제 생각과 실천으로 부대낀 부분이 전무하기에(그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임), 결정적인 순간에 근본이 드러나는 비천한 헛소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범죄 계획의 일부)를 분별할 능력이 없어 그 구차한 입 밖으로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대놓고 비천한 무지와 범죄에의 소질을 자랑하듯 떠드는 저런 인간들은, 그 분수에 어울리게 죄수복들을 한번 입도록 도와 주는 게 오히려 시민 정신의 발로일 수 있다.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나 범죄 가담을 무슨 자랑이나 되는 듯 떠드는 게 도대체 저 나이 또래에서 있을 수나 있는 소리인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근본이 천한 인간이 어쩌다 없던 푼돈을 쥐고 신분상승이나 한 듯 나대면 백이면 백 저런 일이 벌어지는 법이다. 원 나, 소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영어에서 rumor has it that, 혹은 rumor says that 같은 어구 뒤에, '누가 뭐뭐 했다더라' 같은 사항을 보충하여 숙어화하는 용법이 있다. 아마 고교 과정에서는 대략 1학년 정도에 배우는 사항이겠다. 불어권도 아니고 미국 영화에서 저처럼 제목에 말줄임표로 얼버무리는 예는 그리 많지 않은데(범죄자들이나 본래 지 소리 아닌 척 딴청을 부리게 마련인데, 수갑을 차 봐야 가상현실에서 벗어날 듯), 그런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직접 보고 판단들 해 보길.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미 훨씬 어렸을 적부터 입지를 확고히한 스타였고 한국에서도 혹 이름은 몰라도 저 얼굴만은 다 알법한 배우다. 여기서는 사실 이미 청춘이 다 저물어갈 끝자락의 모습이라 큰 기대를 하면 안 되겠고, 극중에서는 신문기자 역인데 부고 전담 기자가 신문사에서 가장 비전 없는 직분이라는 클리셰는 훨씬 오래 전부터 쓰여 오던 클리셰이다. 이 애니스톤의 캐릭터의 할머니 역으로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데(그럴 만한 나이였고, 현재도 생존 중이다), 새라(애니스톤 扮)의 어머니가 결혼 직전 바람이 나 도피 행각을 벌였던 상대 남성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역을 바로 케빈 코스트너가 맡았다.젊어서는 반듯반듯한 인격자라든가, 외도 같은 비행에는 곁눈질도 주지 않던 배역만 소화하던 그가, 노년에 접어들어 이런 코믹 연기를 어떻게 해내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작과 비슷한 시기에 찍힌 <미스터 브룩스>의 연기와 대조해 봐도 좋을 것이다.
처신이란 본래 일생을 두고 정진해도 반푼의 목표에 다다르기가 어려운 목표이며, 애초에 이걸 쉽게 생각했다면 그 의식이 청소년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인간이기 십상 팔구이다. 행동과 각성이 아니라 말에서 시작하고 말에서 끝나 왔던 인간이라야 이런 엄청나게 때늦은 각성(이란 건 없고, 몇 분 지나면 또 원래 모드로 돌아감. 누차 말했듯 이런 인생에게 진짜 깨달음은 감옥 안에서만 가능)을 하는 시늉을 어설프게 벌이기 마련이다. 그 옆에 동반자 삼아 살림과 청소도 입으로 다 때우는(열심히 떠들고 바로 잊는 속도는 어느 실업자가 직장에 머물다 쫓겨나는 속도, 혹은 우사인 볼트가 트랙 뛰는 속도에 비길 만한) 어느 추한 노년이 함께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