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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은 어느 때 울분을 잠재우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쏴, 한 기운에 감각을 맡기고 있자면 너무 단조로와 파괴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일상이 소리 소문도 없이, 기척도 없이 연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박하사탕을 빨고 있다.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 상태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탓인 지 책읽기는 자주 허방에 빠지고 글자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페이지마다 험상궂은 U턴 표지판이 되돌아가기를 종용한다. 활자들이 눈에 박히지 않는다. 급체를 일으킬 것만 같다.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 속은 프로펠러의 소음으로 가득하다. 더구나 이 작가는 처음이다. 낯섦은 묵음이다. 진공의 상태에서 어떤 소리가 잡힐 지 나는 잠깐 두렵다.
하성란의 소설에서 스토리를 읽어내기란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보물찾기에서 단 한 번도 상품을 건지지 못한 내 지난 학창시절처럼. 게다가 하성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익명이다. 여자와 남자란 보통명사로 대변되는 인물들은 사각의 울타리에 갇힌 일상의 나, 이고 너, 이기도 하다. 하여 소설은 버겁다. 타인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고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있어 나 자신을 읽는 것, 읽힘을 당한다는 것은 역시나 곤혹스럽다.
또 하나,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진행으로 서술된다. 과거지향적인 나 같은 인간에게 있어 현재진행의 묘사 역시 곤욕이다. 나는 여자와 함께 길을 걷고 칼로리 높은 음식을 끊임없이 삼켜야 하고 익명을 향해 셔터를 눌러야 하고 기일이 지난 신문을 읽어야 하고 남자와 함께 트럭을 몰아야 하고 척추 교정기를 팔아야 하며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부실한 지팡이를 의지해서 육교를 올라야 하고 심한 건망증에 시달려야 하고 급기야 여자의 낙엽에 실려 고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마저 현재형으로 서술되는 통에 맥을 놓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과거를 향해 곤두박질 치기도 한다. 소설의 인물들은 자주 사출 성형기에서 찍어낸 플라스틱 인형으로 묘사된다. 그만그만하고 단순 반복되는 일상이다. 때문에 여자와 남자는 지치고 무료하고 고독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내면에 대한 친절한 지문 따윈 배치해 둘 수 없다며 완고하게 입을 다문다. 대신 철저한 객관과 세밀함으로 무장한 인물의 동작 묘사, 상황 묘사, 풍경 묘사를 좌르륵 펼쳐 보이며 자, 이제 나를 가져 봐, 하며 딴 청을 부릴 따름이다.
자, 그래서? 난 두 가지를 건진다. 사체들로 가득한 번질번질하고 피의 빛깔 분명한 정육점 이름이 '희망'이거나 '소망'의 푸른빛을 지녔다는 것(이율배반적인 것이 곧 삶이란 것을 넌지시 일러주기라도 하려는 듯)과 기억하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늘 쉽게 지친다는 것.
rosebay007. [인상깊은구절] 여자는 나뭇잎을 꺼내든다. 책상 위로 상자에서 흘러나온 나뭇잎이 가득하다. 상자 속의 나뭇잎을 다 날려도 소식은 오지 않을 것이다. 지쳤어요. 나뭇잎 위에 글씨를 쓴다. 볼펜을 쥔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뭇잎에 구멍이 뚫리고 금세 조각조각 찢겨진다. 여자는 책상 위에 놓인 과자 상자를 통째 들고 창가로 간다. 창을 열고 한줌 가득 움켜쥔 나뭇잎을 날린다. 상자 안에는 이파리가 너무 많다. 상자를 창틀에 대고 쏟아붓는다. |
| 하성란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독자다. 곰팡이꽃을 시작으로 해서 그분께서 쓰신 작품들을 모두 읽었다. 문예지에 실린 단편들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말이다. 그분의 작품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웠고 신선했다. 그분의 소재선택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분의 세심한 묘사를 사랑한다. 그분의 문체가 있어서 그분의 글을 읽는다. 이 작품은 그분의 초기작에 속한다. 그래서 좀 엉뚱한 구석마져도 느껴진다. 그분의 이야기들을 천천히 읽으면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린다. 이야기가 완성될 쯤 내 머리속의 그림도 완성된다. 그러면 그분의 이야기를 느낀 것이고 그분의 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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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란씨의 작품은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꺼에요. 독자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란 소리죠. 두 눈을 번쩍 뜨고, 책이 말하는대로 머릿속에 그리며 그렇게 열심히 읽어야만 책이 무슨 소리를 하는 중인지 알수 있죠. 특히 이번 작품집은 그래요.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집이다 보니, 난해하다는 표현도 있죠. 하지만 좀 힘들더라도, 좀 느리더라도, 열심히 읽다보면 뭔갈 확실하게 얻으실수 있습니다.
토시하나 빠뜨리지 말고 열심히 읽으세요.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그리고 세 번째 읽었을 때. 모두 다 새로운 느낌을 주죠. 처음 읽었을 때는 발견 못했던 새로운 단서를 하나 발견하며 저도 모르게 웃기도 하구요. 전 하성란씨 작품을 읽을 때는 아주 천천히 읽어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메모지를 들고서 꼭 적기도 하죠. 이번 작품집에는 시간을 뒤집어 놓은 작품도 있거든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메모도 필수죠. 읽기는 편하지 않지만. 읽고나면 편한 작품들입니다. 뭔가 제대로 된 책을 열씸히 읽어볼 결심을 하신 분. 꼭 읽어보세요. [인상깊은구절] 남자는 자신이 늘 서 있던 유리창 하나를 찾아 눈으로 더듬는다. 엉거주춤 선 남자를 비켜 사람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39층 남자의 책상 뒤에 박힌 유리창 하나는 찾을 수 없다. 광장에서 올려다보이는 빌딩 한 면만 해도 똑같은 유리창들이 삼백 개가 넘게 박혀 있다. 그림자 다리의 절반쯤에 도달했을 때 남자는 광장을 휘몰아부는 바람을 등에 지며 온몸을 옹송그린다. 그때 남자의 왼쪽 눈알을 찌르며 무엇인가 확 달겨든다. 반사적으로 두 손을 내휘두른다. 커다란 나방 같다. 나방은 남자의 왼쪽 눈에서 오른쪽 뺨까지 짧은 포물선을 그으며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손바닥으로 왼쪽 눈을 비비며 땅바닥을 살핀다. 바닥에 떨어진 나방이 바람을 타고 한 발자국 뒤로 날아간다. 남자는 발을 들어 허공에 대고 크게 찍는다. 나방의 한쪽 날개 끝이 간신히 구두의 앞창에 잡힌다. 한겨울에 왠 나방이지? 왠쪽 눈을 찡그린 채 구두등 위로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이파리다. 구두 밑창으로 반쯤 밟고 있는 그것에서 발을 뗀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새가 있었나. 남자는 빌딩 앞 화단을 눈으로 며칠 전 내린 눈ㅇ니 먼지가 섞인 채 듬성듬성 쌓여 있다. 디귿자를 |
| 하성란의 소설은 독자들을 참 불편하게 한다. 빈틈없이 빽빽한 묘사와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가득차 독자의 참여를 극도로 배제한 딱딱한 문체가 읽을수록 갑갑함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제는 어쩌면 다 그렇게 대동소이한지 고독한 도시민의 소외를 빼고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내내 불행한 기분이 들게 한다. 또, 전혀 다른 단편 소설이면서 똑같은 등장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작가의 성의 문제가 아닐까? 예를 들면 피팅모델을 하면서 살이 빠져 그만 두게 되었다는 여자의 이야기말이다. 같은 책으로 꾸며져 나오는 단편집에서 같은 이야기를 가진 인물을 만난다는 건 너무 불쾌한 일이다. 10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나와도 다 다른 성격과 인생을 담아낸 토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스토리와 무관하게 묘사만으로 실험적인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은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는 생각이다. 실험도 좋지만 소설이 지니는 기본적인 이야기문학의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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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처음일 때는 서투를 거다. 하성란의 첫 단편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잘 쓰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책 속 주인공들의 심정을 짧은 문체로 자세히 그렸다. 주민번호가 같은 두 여자의 삶, 사라진 K 등 소재는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짐짓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짧은 호흡은 오히려 더 숨이 막히기도 했다. 물론 평론가들은 이 짧은 호흡과 무심한 듯한 문체에 많은 점수를 주었으니 단지 내 개인적 취향에 맞지 않는 거일 것이다. 작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독자로서도 즐거운 일이다. 다른 책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인상깊은구절] 방과 후 집으로 와보니 대문이 잠겨 있다. 여자는 한참 동안 엄마를 부른다. 쓰레기통을 밟고 담으로 기어오른다. 마당으로 뛰어내리다가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그때 한 달이 넘게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 동안에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깁스를 너무 늦게 푸는 바람에 오른 쪽 다리는 석고와 같이 굳어져버렸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의 의사에게서는 심한 입냄새가 났다. 생선 내장들이 썩는 냄새였다. 의사는 네 오른쪽 다리가 성장을 멈췄다, 라고 말했다. 다행이도 넌 벌써 키가 다 자란 것 같구나.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여자는 그 말보다 의사가 입을 열 때마다 여자의 얼굴로 날아오는 그 악취가 더 신경에 쓰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자의 키는 5센티미터가 더 컸다. 오른쪽 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